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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시간을 먼저 따라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세상에 응애 하고 태어난 순간 시계는 가기 시작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고 정체되기도 한다.
물론 남들과 출발선부터가 달라 사는 게 좀 더 유리한 사람도 있긴 했다.
지현재는 출발선이 달랐다. 사람의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집안이 하는 일이나 가지고 있는 재력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지현재의 외모가 그랬다.
지현재가 태어났을 때 그 산부인과에서 큰 사건이 있었다. 근무하던 당직 간호사의 눈을 피해 어떤 남자가 신생아실에 침입, 자던 아기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일이었다. 다행히 한 아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 재끼는 덕분에 당시 신생아실에 잠들어 있던 아기들이 다 깨어나서 범인이 잡혔다.
그 아기가 지현재였다.
간호사들이나 갓 해산한 엄마에게는 단 한 번도 싫은 기색 없던 아기 지현재가 범인의 손이 닿자마자 소리 내 울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범인의 진술에 따르면 누워 있는 아가들 중 지현재가 가장 눈에 띄어서 빨리 안고 도망가려 했는데 안기도 전에 너무 심하게 발버둥을 치며 소릴 질러서 놀랐다고. 자식이 너무 갖고 싶은데 불임의 원인이 자신이라 며칠 전부터 내내 창문 너머로 훔쳐보며 눈독을 들였었다나 뭐라나.
-설령 납치를 성공했어도 가만히 안 있지. 그러려고 버는 돈인데 네 아버지가 가만히 있었겠니.
남들은 식겁할 만한 사건을 어머니는 오히려 얼굴값이라는 게 이런 거라며 신나 하며 말했다. 그렇게 지현재는 인생의 시작부터 얼굴값을 톡톡히 치렀고, 제가 남들과 다른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했음도 분명히 인지했다.
어딜 가나 외모 덕분에 칭찬도 많았지만 외모 때문에 위협도 많았다. 특히 어릴 때는 납치, 유괴, 추행 등에 노출이 잦았다. 다행인 건 그런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집안에 태어났다는 거다.
일반인들은 모두 꺼려 하는 대부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집안 탓에 돈만큼은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그만큼 위험도 많았다. 물론 지현재와 그의 집안은 그 위험을 다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과 주먹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 좋아.”
들썩이는 뽀얀 엉덩이 사이로 성기를 파묻던 현재가 만족스러운 신음을 터뜨렸다.
눈앞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시트 위로 관리받은 것처럼 매끈한 피부의 남자가 흐트러져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떻게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탄탄한 허벅지와 그에 비해 얄팍한 허리, 느끼는 안쪽을 살짝 찔러 주면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는 엉덩이와 그 위로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으응, 아.”
꿈틀거리는 내벽이 물고 있는 기둥을 감싸며 안으로 빨아 들였다. 느릿하게 벌어지며 들어가는 감각을 느끼며 삽입하던 중이었다.
“재선 씨도 좋아요? 여기……, 누르면 안이 움직여.”
현재가 점점 고조되는 흥분에 절로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부끄러웠는지 재선의 뒷목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허리를 밀어 살살 안으로 들어가면서 엎드려 있는 등 위로 입술을 누르면 그에 따라 흠칫거리는 것도 좋았다.
아직도 벌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재선은 이렇게 뒤로 하는 체위에선 그나마 삽입을 수월해해 현재가 자주 선택했지만 문제는 재선이었다.
“그, 그만……. 흐으……. 안, 들어가요오…….”
어느 정도 삽입을 이어 가다 보면 재선은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곤 했다. 아직은 받아들이는 게 익숙하지 않아 그런 건가. 현재는 상체를 숙여 재선의 뒷목에서 귓불 아래까지 입술로 지분거렸다.
“안 무서운 거 알잖아요. 응? 조금만 더요.”
“……하, 아으……읏.”
완벽할 정도로 벌어진 어깨가 애처롭게 떨렸다. 거기서 현재의 나쁜 성정에 발동이 걸렸다. 반쯤 들어간 성기를 조금씩 안으로 누르며 양손을 재선의 앞으로 돌려 살집이 있는 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평소에도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끔 주물럭댄 가슴은 탄탄한 재선의 몸 중에서도 유독 살집이 있어 만지는 맛이 있는 부위였다.
“후, 가슴 만져 주니까 또 커진 거 같아요. 나중에 좆도 끼울 수 있겠다.”
하도 만져 댄 탓일까, 이제 현재가 쥐기만 해도 재선이 낯을 붉힐 정도로 감각이 예민했다.
“앗! 아…… 대, 대표님. 손, 손을……. 아응!”
성감으로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유두 위를 피해 가슴을 쥐어짜듯이 몇 번 주무르면 허리에 힘이 빠지고, 엉덩이는 들려 순간적으로 조금 더 진입이 가능했다.
“……허리 빼지 말아요. 애써 넣었는데 빠지잖아.”
“으……. 흐으…….”
현재는 일부러 짓궂게 지껄이면서 재선의 유두를 꼬집었다. 수치심으로 피부가 붉어지고 힘을 빼려 움찔거리는 입구가 느껴졌다. 마치 조르듯 오물거리는 느낌으로 성기를 자극하는 조임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눈앞의 이, 재선의 은밀한 모습을 자신만이 만끽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었다.
“하아……. 빨리 다 넣고 움직이고 싶어.”
“그, 그냥 넣으면……. 읏.”
“막 처넣다가 여기 찢어지면 안 되잖아요.”
“안, 그렇……. 흣, 아아……. 그냥 빨리……!”
손이 가슴에서 한쪽 엉덩이로 옮겨 가, 쥐고 벌렸다. 그러고는 엄지로 팽팽하게 늘어난 입구를 문질러 대며 능청스레 중얼거렸다.
내벽이 벌어져 있는 게 익숙해지도록 얕게 안쪽을 치대던 현재가 재선의 재촉에 빠르게 성기를 빼냈다.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한 손으로는 젤과 알 수 없는 액체로 범벅이 된 성기를 흔들면서 나머지 손으로는 재선의 몸을 뒤집어 바로 눕게 했다. 재선이 잠시 숨을 돌리던 사이 현재가 우악스럽게 한쪽 다리를 잡아 벌리며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 현재의 표정엔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미안, 지금 좀 급해요.”
퍽! 단박에 쳐올린 허리에 현재의 성기가 재선의 배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내벽이 성기를 뜨겁게 휘감아 왔다. 아까까지와는 전혀 다른 압박감으로 기둥을 조였다. 부드러운 엉덩이가 음모에 닿는 느낌이 날 정도로 깊은 삽입이었다.
“……아! 아아! 흐응.”
현재의 골반 양옆에서 잘게 경련하는 재선의 허벅지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꼭 완전히 사정한 뒤 같은 반응인데. 그 정도로 강렬했던 걸까.
제 것을 삼킨 구멍과 도톰하게 부풀어 있는 회음부, 아직도 바짝 서 있는 성기까지 훑던 현재가 씩 웃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재선의 눈동자를 확인하고는 아프지 않게 재선의 뺨을 두드렸다.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며 현재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물기에 번들거렸다.
하여간, 참 내 얼굴 좋아한다니까.
재선은 쾌감에 푹 빠진 와중에도 현재의 얼굴을 보곤 반응했다. 너무 티가 나서 모를 수가 없었다. 괜히 후배위보다 정상위를 선호하는 게 아니었다.
몸 위에 재선을 올려놓을 때는 더했다. 얼굴도 보이면서 깊게 자리한 포인트까지 쑤셔져서 그런지 배로 좋아했다. 뭐, 현재가 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재선은 모르겠지만. 뭐든 귀여웠다.
“재선 씨 지금 먼저 갔죠.”
“……아, 으으……. 죄송합…….”
“아니, 아니 왜 죄송해. 난 지금 너무 좋은데요.”
즈즛, 즈으윽. 서서히 허리를 뒤로 빼자 붉은 살들이 조금 딸려 나오다가도. 다시 콱, 안으로 쑤셔 넣으면 금방 내벽이 오므라들면서 뜨겁게 기둥을 감쌌다.
현재는 빼려 하면 놓기 싫다는 듯 매달리면서도 넣기 전까지는 티도 안 내는 구멍이 문득 수줍음 많은 재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사정하기까지 재선의 성기를 쥐어짜 줘야 간신히 느낄 수 있었던 조르는 감각이 지금 느껴진다는 건 재선이 이미 절정을 느꼈다는 뜻이었다.
“이제 안 싸도, 하으……. 뒤로만 잘 느끼는데 어떻게 안 예뻐.”
“무, 무슨……. 흐응! 아……! 하윽!”
안, 아니. 아……! 두려움이 서린 눈동자를 무시하고 허리 짓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이제는 숫제 재선의 성기 끝에서 방울방울 뭔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성기로 마구잡이로 짓이기면 다시금 내벽은 움찔거리며 현재의 성기를 조였다. 안쪽을 비비고 자극할 때마다 재선의 발끝이 구부러지고, 쑤셔 박을수록 오는 반응에 현재 역시 이성을 잃었다.
“나는, 좀…… 걸릴 줄 알았는데.”
“흐, 아으……!”
“하아……. 다행이지. 아까워 죽을 뻔했잖아요.”
재선이 바짝 숙이며 다가오는 현재의 얼굴을 몽롱하게 바라보다 팔을 뻗어 매달려 왔다. 현재가 기꺼이 몸을 숙인 채로 난잡하게 아래를 박아 넣었다. 거친 움직임이 내벽을 꿰뚫었다.
얼굴이 가까워져 뜨거워진 숨결이 섞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둘의 입술이 벌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혀끝을 휘감으며 입 안을 문질렀다.
위고 아래고 다 먹혀드는 기분이 이런 걸까. 재선은 현재에게 매달려 신음했고 그럴수록 현재는 재선의 목덜미며 귓불을 짓씹었다. 피부 위로 흔적들이 늘어 갈수록 흥분은 정도를 모르고 치솟았다. 맞붙은 아랫배가 정체 모를 액체로 축축하게 젖는 느낌이 났지만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뜨겁게 부대끼는 피부와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은 이미 서로의 더 깊은 곳을 탐하길 원할 뿐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팔꿈치로 침대를 딛고 움직이던 현재가 다급하게 이마를 맞대며 재선의 정수리를 양손으로 감싸 안았을 때. 재선이 현재의 골반을 다리로 감으며 허리를 붙여 온 때. 가장 깊은 곳으로 성기를 파묻은 그 순간, 현재가 사정했다.
정점까지 치솟은 성감으로 사정한 현재가 재선을 바라본 게 먼저였는지 재선의 눈동자가 현재의 절정을 확인하는 먼저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둘이 맘 편하게 붙어 있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하아……. 아…….”
쾌감이 과했는지 재선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눈두덩이 위로 몇 번이나 입을 맞추던 현재는 그대로 재선의 몸을 끌어안았다. 다독여 주는 현재의 손바닥 아래로 재선의 세밀한 등 근육이 느껴졌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재선의 옆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가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시달려 상처가 많은 지현재라서라면, 다른 모습은 들켜선 안 됐다. 현재의 재력과 힘은 그래서 아주 편리했다.
***
지현재는 집안의 막내로 애지중지 자랐으니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순진하고 순박하게 컸다면 참 좋았겠지만.
“지금 사기 친 건 넌데 왜 내가 뒤집어쓰고 있냐는 거죠. 안 그래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도 영악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덩치 큰 삼촌들이 자주 오가던 집과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형제들. 말보다 주먹이 가깝고 주먹보단 돈이 편리하다는 걸 너무 일찍 알게 되는 환경이었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막내는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한다면서도 결국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배운 갖은 호신술과 운동이, 성질에 못 이겨 사고를 쳐도 무마할 수 있는 재력이 있다는 사실은 편했다.
물론 지현재도 사람이기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질풍노도의 시기는 있었다. 다만, 수준이 좀 유별났을 뿐.
처음에는 현재가 다치면 당연히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 생각하던 가족들은 그 횟수가 양손을 넘어가자 지현재가 남다른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갓난쟁이 때부터 사람을 골라 가며 패악을 부리던 기억은 지현재보다는 엄마 아빠나 형들이 잘 알아서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친 사고에선 상대방을 아주 죽사발로 만들어 놓는 바람에 좀 심각한 상황까지 갔었다. 다행히 상대가 현재를 강간하려고 시도한 정황이 있어서 무마할 수 있었지만.
-죽이고 싶어도 네 손으로 직접 하면 안 돼. 머리를 써야지.
매섭게 혼내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그 말로 지현재의 질풍노도의 시기는 막을 내렸다. 물론 겉으로만 그랬다는 거였다. 원래 피곤하게 산 사람은 피곤하지 않는 방법을 가장 빨리 익히게 된다. 영악해졌다고 한숨을 내쉬던 형들도 오히려 수습하는 법을 따로 알려 줄 정도였다. 머리도 몸도 쓸 줄 알게 된 지현재가 가업을 잇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판단한 건 당연했다.
“빨리 말 안 하면 내 선에서 안 끝나요. 왜 알 만큼 아는 사람이 이러실까.”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는 지현재가 있는 곳은 사무실이었다. 그러니까 평소 재선에게 출근하겠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나오는 그 사무실은 아니고. 집안에서 관리하는 약간 작은 사무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미 직원들에게 온통 두들겨 맞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제, 제가 다 수습하겠습니다. 이, 이렇게 폭력으로 겁박하시는 거 경찰에 시, 신고 되면 대, 대표님도 온전치는…….”
대부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불법 추심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불법 추심이란 채권 추심자 즉, 돈을 받아야 하는 자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지 않거나, 반복적인 전화를 낮밤 가리지 않고 하거나, 무단으로 주소지 방문을 하거나, 돈 받겠다고 폭력을 쓰거나, 감금처럼 협박이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위 등을 하는, 하여간 뭔가 회사에서 할 법한 일이 아니라고 의심되는 모든 일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듯이 불법이 아닌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꼭 관리가 안 되는 놈들이 생겼다.
“브로커랑 짜고 쳐서 가져간 회사 돈이 15억인데요. 박 과장님. 네가 가져간 건 5억뿐이니까 5억만 갚겠다는 거잖아요. 어디서 배워 처먹은 셈법이야. 돈놀이로 월급 받아먹은 주제에.”
구둣발에 얻어맞은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져 깽깽거렸다. 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지만 그 순간에도 현재는 아주 평온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냐면 며칠 전부터 자신의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이재선 덕분이었다.
하얀 도복을 입고 푸른 경기장 안에서 상대와 기 싸움을 하던 날카로운 눈매와 분명히 여러 차례 훈련을 하면서 단련했을 게 분명한 단정한 손끝, 생각보다 얄팍한 발목과 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하려 끝까지 힘주고 있는 오므라든 발가락. 그리고 기어이 상대에게서 기선을 빼앗아 단박에 거구를 넘긴 뒤 흐트러진 도복 사이로 보이던 말캉해 보이는 풍만한 가슴과 분홍색 유두까지.
-한 판! 한 판입니다! 이재선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형이 출전한 청소년 대회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다가 처음 봤던 고등학생 유도 선수 이재선은 아직도 현재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었다. 생각해 보면 현재 자신의 취향도 그때 전부 세워진 게 아닐까. 어린 나이였던 그때에도 당장 그를 데려다가 제 방 안에 숨겨 놓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은 건 흔한 충동은 아니지 않나.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재선에 대한 마음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진 않았다. 오죽하면 업무 스트레스로 혼자 찾아간 바에서 우연히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아 묻고 싶어졌을 정도였다.
-이거 하다가 정말 큰일 나면 나 죽어.
-큰일은 무슨, 돈 만들어서 6개월 안에 해외로 뜨면 아무도 못 잡아. 지금 사는 집 보증금까지 하면 밖에서 평생 먹고살 돈은 나올걸.
-같이 산다던 그 사람이랑 잘 지내던 거 아니었어?
-이재선?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랑 어떻게 계속 살아. 당장 살 집도 없었으니까 꼬신 거지. 나랑 떡만 잘 쳐 놓고 아닌 척한다. 박 과장님, 쫄려요? 쫄려서 오늘은 방 안 잡으시나?
-왜 몸도 좋고 잘해 줘서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밤마다 몸이 근질근질해?
-그야, 몸은 참 좋은데 사용감이 별로라. 돈도 써야 좋은 거잖아.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냥 평소처럼 조용히 술 한잔하러 찾은 남성 전용 바에서 우연찮게 듣게 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들은 파티션 뒤 으슥한 자리에서 속삭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자리가 가까웠던 게 다행이었다 싶다.
회사에서 대출이 나간 돈 중 이상하게 회수가 안 되는 건들이 있어 살펴봤더니, 직원 중 하나가 브로커와 함께 저지른 일들이었다. 대출 승인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한 사람들을 데리고 보증인과 담보를 껴서 승인이 나게끔 조작한 다음, 연체를 늘려 보증인이나 담보에 뒤집어씌우는 방식이었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연체가 누적되면 채무 불이행으로 회수하는 마지막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때 중간에 낀 그들은 도주해 버리면 끝이었다.
역추적해서 범인을 잡아내던 중 갑자기 퇴사한 직원의 대출 심사 건들을 뒤졌고 그중 보증인에 이재선의 이름이 껴 있었다. 자신이 가지 않아도 상관없을 금액의 대출 건인 데다가 동명이인이거나 헛수고거나 하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당시엔 그저 촉이 왔다.
지금 놓치면 평생 놓칠 수도 있다고.
“잘못,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흐으…….”
“짜지 말라고 듣기 짜증 나니까. 그래서 서영원 그 새끼는 어디 있는데요? 멀리는 못 갔을 텐데.”
작당한 무리 중 회사 직원이 껴 있지 않았다면 하지 못할 아주 낡은 사기 수법이었다. 일반 금융회사도 아니고 대부회사라는 점을 이용해서 직원도 브로커도 작정하고 빨리 치고 빠지려던 거였겠지만…… 돈도 다 쥐었겠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었을 순간에 다행히 덜미를 잡았다.
솔직히 짜증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이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게이였다는 건 좋은 정보였지만 웬 거지 같은 사기꾼에게 걸려서 물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재선은 인생 곳곳에 안타까운 일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하나 찾아가서 다 작살내고 싶어질 정도로 화가 났다. 간신히 이성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럴 시간에 재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서였다. 성질에 비해 잘 참아 낸 현재였다.
아마 현재 자신이 직접 그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재선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란 그림이 충분히 그려졌다. 그딴 사기꾼 새끼도 전 애인이랍시고 경찰에 신고도 안 하고 다 뒤집어쓰려던 순한 이재선. 신고를 안 해서 이렇게 자신이 손수 조져 줄 수도 있는 거지만.
“……우, 울산에 아는 형이 있다고 했.”
“지금 큰형한테 전화 넣어요. 사람을 좀 찾을 일이 있다고. 더러울수록 좋으니까 빨리.”
사무실에서 질질 울던 남자를 끌어내라고 시키며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재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원래 직장에 가서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지방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는 이재선의 전 애인, 서영원이라는 인간은 원래도 남의 등이나 처먹고 다니던 한량이었다. 좀 가냘픈 외모나 체구 때문에 쉽게 호감을 샀지만 조금만 뒤를 파 봤더니 쏟아지는 구린내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경찰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처리하는 데 조금 더 돌아가야 해서 차라리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큰형에게 말해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나았다.
“서영원 잡으면 아예 인력으로 돌리라고 해요. 뭐로 돌려도 상관없으니까 피해 금액 알려 주고, 딱 죽고 싶어지기 직전까지. 원래 희망도 있어야 떨어질 때 더 아프지 않겠어요?”
가족들은 현재의 본성을 잘 알았다. 아마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더러운 꼴을 보게 될 거란 사실을 알 테니, 기다리면 얼마 안 가 소식이 올 거다.
물론 아직까지도 막내를 애지중지하는 가족들이 현재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되면 재선을 귀찮게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크게 개의친 않았다.
재선을 힘들게 한 날만큼 서영원이라는 작자는 아주 바닥까지 긁어먹어 줄 생각이었다.
지현재는 출발선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선을 요긴하게 이용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필요한 부분과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기가 막히게 알고 난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스토커와 변태들은 재선의 동정심을 사는 데 유용했다. 재선은 바쁜 회사 일 덕분에 늦게 귀가하는 현재를 신경 쓰여 했다. 아마 자신에게 점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다소 억지스럽긴 했지만 이미 집으로 들여다 놨으니 절대 풀어지지 않을 올가미만 준비하면.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예쁘게 함께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
“으음…….”
“일어나요. 오늘은 늦잠 잘 거예요?”
“아뇨, 깼습니다…….”
묵직한 눈꺼풀이 그대로 보이는데도 답은 성실하게 한다. 현재가 재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작게 웃었다.
침대 안에서 뭉개며 여유 부리는 아침은 주말에만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평일에는 새벽같이 잘만 일어나던 재선은 신기하게도 주말엔 꼭 스위치를 끈 것처럼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렸다.
드러난 맨 어깨 위로 입술을 문지르던 현재가 힘껏 재선의 살 내음을 들이켜자 그제야 재선이 피하듯 몸을 움찔거린다. 같은 방에서 잠들게 된 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선이 수줍어하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일어나자마자 나 피하는 거? 그래요?”
“……그런, 그런 거 아닌데요.”
부끄러우면 먼저 붉게 달아오르는 뒷목과 어깨가 좋았다. 더듬거리며 변명하는 느린 말투도 귀여웠다. 어디서든 남자답다고 여겨졌을 재선의 무덤덤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매가 자신이 몸을 덥히면 덥힐수록 촉촉하게 젖어 풀어지고 색이 입혀지는 순간은, 격렬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조금 더 있어요 그럼. 재선 씨 어제 늦게 잠들었어.”
“……대표님은.”
“현재는.”
“……늦게 잠들었.”
“현재는, 얼른요.”
아직까지 대표님이라고 하면서 말을 놓지 않는 재선을 다그쳐 가끔 반말을 하게 하는 게 현재가 요즘 새로 재미 들인 취미였다.
횟수를 더할수록 좀 더 자주 길게 해 주는 걸 보니, 재선이 일상적으로 현재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머지않은 듯했다.
쪽.
“……잘, 잤어?”
가볍게 입 맞추며 물어보고 난 뒤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 또 한참 남은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엄청 잘 잤는데.”
“……그, 그래. 근데 왜 자꾸.”
“잘 잤으니까요. 우리 재선이랑 인사하고 싶대요.”
이미 단단하게 서서 서로 바짝 맞대게 되는 아래는 결코 현재의 잘못이 아니었다.
성기끼리 비벼지면서 발기하는 노골적인 느낌이 선명했다. 재선이 난처한 듯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하는 게 빤히 보였지만 현재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게 누가 아침부터 그렇게 앙큼하게 인사를 하랬나.
눈을 뜨자마자 허리 아래 위주로 움직이는 현재의 파렴치한 행태에 재선은 애써 몸을 물리려고 했지만, 현재가 입술끼리 맞붙이며 모르는 척 살살 웃는 탓에, 그대로 멈추고 가만히 기다려 줬다.
재선의 촉촉하게 젖은 검은 눈이 현재의 얼굴을 멍하니 응시했다. 현재는 그 눈을 마주 보는 순간을 참 좋아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 어젯밤 내내 하느라 풀어져 있던 구멍 안으로 단박에 들어갔다. 뜨겁게 감싸 오는 쫀득한 내벽이 현재를 반겼다.
“아……!”
“하, 씨……. 부드러워.”
“잠, 깐만……. 아으…….”
현재의 둘째 형이 집으로 찾아온 날, 정신 나간 스토커를 물리치는 척해서 환심을 사려고 각본대로 움직였다. 자신에게 스토커가 달려들면 재선이 막으려고 할 테니까 잠깐 실랑이를 하다가 재선을 공격하는 스토커에게서 현재가 재선을 짠 구하는 식의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점수를 따려고 한 건데 오히려 재선이 스토커로 위장한 직원을 땅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당시엔 정말 놀랐지만 현재는 재선의 실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절대 그런 잔챙이에게 질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건 그 이후로 재선은 현재의 안전에도, 재선 본인의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제 주변에 둔감하던 재선이 본인을 좀 더 챙길 수 있게끔 태도를 바꾼 점은 다행이었다.
“너무 좋아……. 후우, 한 번만, 금방 할게요.”
“으응, 아……! 살, 살살…….”
진한 흥분으로 고개를 비트는 재선의 울대 아래로 드러나는 쇄골이 야했다. 동시에 현재의 어깨를 잡으며 버티는 팔뚝에 근육이 도드라졌다. 제대로 힘을 쓰고 기술까지 걸면 현재 정도는 단박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몸이었다. 이런 몸으로도 자신의 아래에서 밑이 뚫린 채 신음을 뱉었다.
“아, 좆 녹을 거 같아……. 뜨거워.”
“흣! 제발…… 좀, 그마안……앗!”
강하고 단단한 재선은 현재의 앞에선 가장 나약한 사람이 된다. 조금 노골적인 말에도 쉽게 수치스러워한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얼굴로 녹아내리고 누구에게도 들려준 적 없는 목소리로 운다. 절대 보이지 않을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배 속을 마음껏 탐하게 놔둔다.
“아, 좋아. 진짜 좋아…….”
“아읏, 흐……아아…….”
“형, 재선이 형……!”
현재가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접합부에 거품이 일 때까지 마구잡이로 움직이다 흐느끼는 재선의 입술을 깨물었다.
혀끝으로 벌어진 치아 사이를 헤집으면서 숨이 막힐 지경으로 탐해도, 동시에 파고드는 구멍 깊숙이 성기를 찔러 넣고 사정할 때까지 내벽을 다 들쑤셔 놓아도, 온몸으로 끌어안아 주는 재선을 현재는 알았다. 알면서도 자꾸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내가 이렇게 해도 받아 줄 거야? 내가 더 심하게 해도 망가지지 않을 거야? 당신을 붙잡은 나를, 나에게 잡힌 당신은.
어떤 나라도, 날 좋아해 줄 거야?
“……아, 아읏!”
“하……. 미안해요. 안에 했다. 가서 금방 수건 좀 가져올게요.”
“……잠시.”
몸을 일으키려던 현재를 재선이 잡았다. 현재가 그대로 재선의 위로 쏟아지듯 기울며 재선과 눈을 맞췄다. 현재에게로 뻗어진 재선의 양손이 뺨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대로 감싸 당겼다. 재선이 몇 번이고 입을 맞춰 왔다. 가볍지만 부드럽고, 조심스럽지만 충분히 애정 어린 입맞춤.
“뭐야아…….”
“……사랑해 현재야.”
“…….”
“그러니까 아침에는 좀 봐주십쇼. 매번 이러면 몸이…… 으앗!”
“……내가 더 사랑해요, 형.”
현재가 와락 재선을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현재는 재선이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이 된다는 걸 알았다. 이재선은 무서울 게 없었던 남다른 자신의 삶을 유일하게 흔들 수 있는 존재였다.
가장 가지고 싶었고, 가졌다고 생각한 지금은 또 가장 잃기 싫은 게 재선이었다.
“그럼…….”
“아무래도 한 번은 정 없는 거 같죠, 사랑하는 사이에?”
원하던 바와 다른 반응에 재선은 사색이 됐다. 그 모습에 현재가 웃음을 터트리며 달래듯 입 맞췄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밝게 웃음 짓는 현재의 얼굴에 재선의 표정이 황홀하게 풀렸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할 현재가 아니었다.
“응? 그쵸, 재선이 형.”
“……어.”
지현재는 자신의 외모가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있어서 편리하다는 걸 인정했지만 편리한 만큼 불편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재선을 알게 되고 난 뒤 현재는 재선이 제 외모라도 좋아해 줬으면 했다. 그리고 재선의 눈에 꽤 잘 먹힌다는 걸 알았을 때, 제 잘난 외모가 처음으로 고마웠다.
“오늘 점심은 좀 늦게 먹어야겠네요.”
어제는 서영원을 찾았다는 이야길 들었다. 알아서 처리하라곤 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재선을 괴롭힌 인간인데, 그런 인간이라도 전 애인이랍시고 재선이 또 마음을 쓸까 봐 불안했다.
물론 재선에게 서영원을 찾았단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재선은 귀가한 현재를 보고 뭘 느꼈는지 기분을 맞춰 주려 애썼고, 그 덕분에 자잘한 건 싹 머리에서 치워 버릴 수 있었다. 현재는 더는 다른 것들이 둘 사이를 좌우하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만 다시 한번 새겼다.
“……사랑한다니까.”
“음, 그럼 딱 한 번만 더.”
현재는 뒤에서 온몸을 끌어안은 채 재선의 손을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며 깍지를 끼자 못 이기는 척 힘을 풀어 주는 모습이 못내 사랑스럽다. 이 손으로 다른 이를 안고 다독이고 어루만졌으리라는 건 현재도 안다.
지난날의 재선은 평범하게 누군가를 지탱하는 삶을 그리며 살아왔을 거란 게 너무 잘 상상이 됐다.
“정 싫으면, 안 할게요…….”
“그런, 건 아닌데…….”
“절대로 형 싫은 건 안 할 건데…….”
재선은 현재가 엉덩이를 잡아 벌리면 제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껴 버둥거린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허리를 잡아 누를 때마다 힘을 빼는 버릇이 생긴 것도 알았다. 현재 탓이었다. 제 힘으로 현재가 혹 다칠까 걱정하는, 현재를 해치지 않으려는 재선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드러나곤 했다.
“……그럼, 조금만.”
“나도, 사랑해요.”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안으로 파고드는 현재를 그대로 밀어낼 수도 있겠지만 재선은 그러지 않았다. 재선을 그대로 찍어 누르고 마음껏 취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 역시 그러지 않았다.
재선은 유치하고 어설픈 설득을 하다가도 현재에게 져 주는, 현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먹잇감인 동시에 가장 미치게 만드는 마약이었다. 현재는 애교를 부리며 재선의 품에 뺨을 비비다가도 재선을 탐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발라 먹을 듯이 구는, 재선에게 처음 만난 새로운 세상임과 동시에 절실했던 구원이었다.
***
결국 두 번은 더 뒹굴고 도로 잠이 들어 버렸다. 천천히 눈을 뜬 재선은 아직 잠들어 있는 현재의 얼굴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지현재가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것도 신기한데 잠든 얼굴을 제 쪽으로 두고 잔다는 건 더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생긴 사람이 현실에 있을까. 뽀얗고 결 좋은 피부, 가지런하게 난 눈썹, 오뚝하고 반듯한 콧날, 움직이면 팔락팔락 소리가 날 것처럼 풍성한 속눈썹,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광대와 자느라 발긋해져서 복숭아 같아진 두 뺨, 날렵한 턱선, 닿을 때마다 말캉하고 촉촉한 붉은 입술.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완벽한 얼굴이 잠들어 있었다.
차마 잠든 현재의 얼굴에는 손을 대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허공에 휘저으며 윤곽을 한참 짚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얼굴을 관람하던 재선은 퍼뜩 든 생각에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남겨야 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휴대폰을 찾아 들었다. 앵글에 잡히는 얼굴이 완벽했다. 어떻게 담아도 빛이 났다. 셔터 버튼에 엄지를 가져가 꾹 누르는 순간.
챠챠챠챠챠챡.
“……흐업!”
요란한 경고음이 조용하던 침실에 울려 퍼졌다. 크게 당황한 재선이 자신이 낸 소리에 또 당황했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느라 낸 우스운 소리는 덤이었다.
“……내 얼굴이 그렇게 좋아요?”
“당연, 아니 깨 있었……?”
“내가 내 얼굴에도 질투를 해야 하나.”
재선이 휴대폰을 찾느라 움직일 때부터, 아니 숨도 안 쉬고 얼굴을 보고 있을 때부터 이미 깨 있었던 현재였다. 폰을 끄면서 허둥지둥하는 재선의 몸을 그대로 당겨 안았다. 목에서 쇄골까지 새빨개진 재선의 피부 위로 현재의 입술이 미끄러졌다. 얼굴도 들지 못하게 부끄러워할 거면서 몰래 찍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혼자 찍어서 뭐 하려고요. 매일 보면서 언제 쓰는 건데.”
“…….”
“말 못 하는 거 보니까 말 못 할 일에 쓰는 건가.”
“……지, 지울 겁니다.”
잠에서 깨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이런 식으로 들킬 줄 몰랐다. 난처했다. 재선은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현재를 피하려 해 봤지만 어찌나 꽉 잡고 있는지 옴짝도 할 수 없었다. 귓가에서 바로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장난기가 자글자글 끓었다.
“안 지워도 돼요. 형 건데 뭘 지워. 근데 뭐에 쓸 건데요?”
“……뭐에, 안 씁니다.”
“뭐가 뭔데. 뭘 생각하고 안 쓰겠다는 건데요?”
재선은 끝날 줄 모르고 놀리는 현재 때문에 곤란했지만 그저 아니라고만 반복했고, 현재는 붉어진 재선의 피부가 보일 때마다 입술을 누르며 간지럽혔다. 둘 다 이 상황을 끝내려면 침대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도 그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침대에서만 보내는 건 귀하고 소중한 휴일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상관없었다.
시간은 공평하고 유한하다. 시간 앞에 모든 인간은 무력하다. 출발선이 남다른 지현재도 어쩔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다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삶이 특별해진다.
남은 삶이 소중해진다. 유일해진다.
대체할 수 없는, 연인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