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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아파트에 돌아오자 곧 유리코가 문을 노크했다.
마코토는 목욕탕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유리코라는 걸 알고 곧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나가시는 참이었나 보죠?"
유리코는 미안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유리코는 아침에 본 원피스차림이었다.
"무슨?"
"...좀..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괜찮을까요?"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하고싶다고 유리코의 커다란 눈이 호소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마코토는
곧 '들어오세요'하고 말하고 유리코를 작고 오
래 된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 방에 들였다.
"상담이 있어서..."
다다미 위에 앉자 곤란한 듯한 얼굴로 유리코는 곧 말했다.
"상담...이요?"
마코토도 테이블을 끼고 다디미 위에 정좌하고 들고 있던 목욕바구니와 타월을 눈앞에 놓았다.
"어제 막 알게된 분이라...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유리코는 굉장히 괴롭고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하고 마코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유리코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숙이고 있더 고개를 들고
봇물이 터진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어...저는 유우라쿠쵸의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실은 그곳으로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시골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뇌종양으로..수술해야 한대요.
전 부모님도 안계셔서 쭈욱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기 때문에 친척도 없어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하지만 수술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고, 수술하지 않으면 돌아가신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좋을지 모르겠어요..."
거기까지 말한 유리코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전...그런 큰 돈 가지고 있지 않아서...이바라기의 시골에서 막 와서..
이 아파트를 빌리는 데 전부 돈을 써버렸어요...하지만 부탁할 사람도
없고, 이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유리코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부탁이에요.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이런 걸 부탁하다니,
뻔뻔하다는 거 알지만, 하지만 어떡해서든 돈이 필요해요. 그러니까...저 한테 돈 좀 빌려주세요."
유리코의 갑작스런 부탁을 듣고 일순 놀란 마코토였지만 곧 그건 동정으로 바뀌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의 여성이 곤란해하고 있다.
양친도 없이, 마코토에겐 할아버지는 있지만 할머니와 둘뿐으로
일가친척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마코토와 비슷했다.
틀림없이 이 사람도 여러가지환경에 견디며 여기까지 왔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돈...얼마나 드는데요?"
마코토는 잠시 침묵했지만 유리코의 얼굴을 가만이 보며 물었다.
유리코는 도움을 구하는 조난자같은 얼굴로 '3백만'이라고 말했다.
"사,3백만..."
그건 마코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그런 큰돈은 뒤집어털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아파트 보증금과 이사비용으로 어렸을 때부터 저축해온 저금의 거의 대부분을 써버렸던 것이다.
지금 수중에 있는 건 월급날까지 생활할 약간의 식비뿐이었다.
"미안..조금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마코토는 얼굴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는 유리코에게 말했다. 할수있다면 빌려주고 싶다.
효자에 다정한 이 여성의 힘이 되어 주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도쿄에는 친한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어 어쩔 방법이 없다.
"미안해요"
마코토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자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듯한 얼굴을 한 유리코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돌아가셔..."
유리코는 몇번이나 그렇게 말하며 소리내어 울었다.
마코토도 그런 모습을 보고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이것이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이 와서 곧 수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듣는다면 난 어떡할까.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난 어떨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마코토의 머릿속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금융회사였다.
고리대금이자는 높지만 제대로 매달 돈을 갚기만 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고 걱정도 없는 것이다.
왜 좀 더 빨리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저어...혹시 제 회사에서 빌릴수 있을지도 몰라요.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금융회사거든요.
거기서 빌리면 어떻게든..."
하고 마코토가 말하자 유리코는 다시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안돼요.몇번이나 금융회사에 가봤지만 제 이름만으로는 아무데도 빌려주지않아요.
보증인이 필요하다고만.."
"보증인..."
그렇군, 하고 마코토는 생각했다.요는 보증인인것이다. 그것을 잊고있었다.
하지만 달리 연고가 없다면 보증인이 되어 줄 사람 역시 없을 테고
하지만 보증인만 있다면...
"저어..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보증 서 드릴까요?"
마코토의 한 마디를 듣고 유리코가 울음을 뚝 그치고 얼굴을 들었다.
"부탁드립니다."
유리코의 말에 마코토는 굉장히 좋은 일을 한것같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