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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안내 팜플렛에는 어디에도 고리대금 회사라고는 나와있지 않았다.
취직 내정통지에도, 고리대금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한쪽 구석에 쬐그만 글씨고 그렇게 쓰여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정이 결정됐다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불경기 가운데 도쿄의 중소기업이 자신 같은 시골뜨기에게 내정통지를 보내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우선, 불경기인 나가노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도쿄에서 다시 취직활동을 할 금전적인 여력도 없다.
만약 여길 거절한다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드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리대금이라니. 변제가 늦은 사람들한테 무서운 소릴 하거나 하는 거잖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코토는 여사원 앞에서 자문자답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어..손님?"
눈앞의 여사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다.
마코토는 여사원을 보자 각오를 굳힌 듯 일어서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저어..저는 내일부터 이 회사에 출근하게 된 미하라 마코토라고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취직 인사차 찾아뵈었습니다."
"네?저어..."
"고리대금 회사라도 좋습니다. 수금이든 뭐든 열심히 일할테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마코토의 정정당당한 인사가 끝나자 창구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슬금슬금 손님 중 한 사람이 돌아갔다.
"저,저어 손님?"
"다,다시..오겠습니닷."
담당하고 있던 사원이 다급히 불러 세웠지만 아직 젊은 여자 손님은 그렇게 말하며 총총히 나가버렸다.
창구 사원들이나 안쪽의 수트차림의 남자 사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그런 와중에 안쪽 방에서 한 사람의 중년남성이 모습을 나타냈다.
"저 바보 자식은..누구야? 누가 설명해."
상당히 비싸 보이는 수트를 입은 뚱뚱한 중년남자가 엄한 얼굴로 안쪽문에서 나오더니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으며 한 여사원의 얼굴을노려보았다.
"아,예. 저어...내일부터 여기에 출근하다는..."
"뭐야-? 내일부터 출근이라고오--?"
7대3 가르마를 탄 남자는 화난 목소리로 외치며 안절부절못하고 서있는 마코토를 향해 손을 뻗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하?저..저 말입니까?"
마코토는 부름에 응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콰당하고 안쪽 문이 닫히자 여사원들은 다급히
평소의 업무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코토는 안쪽 방으로 불려 들어감과 동시에 몇명의 인상 나쁜 남자들에게 뒤에서 붙잡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느 상황에 처했다.
"저,저..저어..."
마코토는 뭐가 뭔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코발트
블루의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눈앞의 뚱뚱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중년 남자는 그런 마코토를 다리를 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은?"
"네?"
"네 이름 말야. 내일부터 여기서 일한다며?"
"아, 네. 미하라 마코토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저어...이사람들..절 어쩌려는 건가요?"
마코토는 인사를 마치고 두 손을 뒤로 돌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있는 남자들을 보며
중년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 모양이 이상했는지, 우스웠는지, 아니면 전혀 동요하지 않는 마코토의 배짱에 놀랐는지,
그 중년남자는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했다.
"캬하하...재미있는 녀석이로군..앗하하...이봐, 놔줘라."
중년 남자의 명령에 몇 명의 화려한 복장을 한 남자들이 노려보며 마코토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마코토는 겨우 어깨 힘을 빼었다.
"난 휴우가오카 류조. 여기 사장이다."
"...엣? 사장...님..이세요?"
"우리 회사에도 남자 사원은 많지만, 너 같이 정직한 녀석은 처음 봤다.
푸른 눈의 사원도 처음이지만...뭐어..좋아. 배짱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다. 말이 지나친 건 봐 주겠다. 내일부터는 일에 전념해 줘.
모르는 일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르쳐 줄 테니까.아하하..."
휴우가오카 류조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남자는 아무래도 이 회사의 사장같았다.
뚱뚱한 중년에 머리를 7대3으로 가르고, 고가의 보석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있는,
좀 흐리멍텅해 보이는 남자가 사장이라고 해서 마코토는 또
한 번 놀라버렸다.
도쿄의 회사 사장이라고 하면 반듯하게 수트를 입은,
키도 크고 멋있는 나이스가이로 센스도 좋고 우아할 것이라는 이미지였는데,
모든게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갔다.
하지만 이런 일로 일일이 실망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고리대금 회사가 뭐가 어때서.
회사임에는 틀림없고, 급료도 좋고, 게다가 양친이 없는 시골뜨기를 채용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했다.
이런 회사라면 학벌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단시간 내에 출세할 가능성 역시 있는 것 아닌가.
사장도 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전혀 사장다운 풍모는 아니지만 왠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말귀가 통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빨리 효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저어..내일부터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새 수트로 몸을 감싸고 있는 마코토는 연갈색의 머리칼을 사락사락 날리며 기세 좋게 머리를 숙였다.
"좋아,좋아..알았어. 꽤 장래성 있는 녀석이군. 특별히 내가 개인적으로 가르쳐 주지."
휴우가오카는 기분 좋아하며 그렇게 말하고 맛있다는 듯 수입담배를 피웠다.
마코토는 그런 사장을 굉장히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코토의 직감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