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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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봄 

일본의 대도시,도쿄. 

수많은 사람들,다양한 인종이 스쳐 가는 도쿄 역에 청년 한명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려섰다. 

그의 이름은 미하라 마코토. 

올 해 나가노의 4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순진 무구한 호청년이었다. 

"역시 도쿄는 굉장하구나.활기가 넘친 달까..사람이 많달까,시골하곤 딴 판이네..." 

흰 파카와 블랙진,나이키 운동화 차림의 미하라 마코토는 한손엔 보스턴 백을 들고 

신간선 홈에 내려서서 인파에 밀리듯이 바쁘게 계단을 내려가며 놀라워했다. 

개찰구를 나와 한 숨 돌리고 싶어 멈춰 섰다. 

그러자 그런 마코토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아본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시선의 이유는 미하라 마코토가 혼혈이기 때문이였다. 

아버지가 미국인,어머니가 일본인인 마코토의 용모는 세련된 것에 익숙 

한 도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짧은 황갈색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과 예쁘게 쌍커플 진 코발트 블루의 눈,

뚜렷한 이목구비와 가는 턱선은 일본인에겐 없는 것이었다.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입술은 립스틱이라도 바른 듯 붉게 젖어있다. 

하지만 옷차림은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전신에서 풍겨나는 분위기나 입고 있는 옷의 센스는 

좀 유행에 뒤쳐진 것이었다. 

신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도 닳아 헤져 있었고,들고 있는 보스턴 백은 아무리 봐도 싸구려였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을 장식 할 것 따위 전혀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마코토의 내면에서 빛나는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단연 눈에 뛰는 것이었다. 

"저 사람..혹시 연예인?" 

"아닌것 같은데...얼굴은 꽤 괜찮지만 왠지 촌티나지 않아? 그래도..멋지다♡" 

"굉장해..눈동자 색이 코발트 블루야.봤어?저런 파란색 나 처음 봤어." 

"나도..♡ 왠지 매력적인 느낌이야.중성적이라고나 할까.남자인데도 예뻐...♡" 

마코토 앞을 지나치는 여고생이나 커플들은 제각각 뭐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코토는 그런 일 따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나가노의 산골짜기 농촌에 살고 있을 때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동자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혼혈이라는 것만으로 동경이나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아직 폐쇄적인 사람들이 많은 시골에서 혼혈에 대한 인식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사정이 있어 할머니,할아버지 두 분께 길러진 마코토는 어렸을 적부터 

쭈욱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해왔다. 

하지만 그런 편견의 눈초리 속에서도 마코토의 솔직하고 순수한 성격은 일그러짐 없이 올곧게 성장했다. 

"또냐.." 

마코토는 자신의 모습이 이목을 끈다는 것에 조금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 없없다. 

마코토는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경 쓰지 말자. 그보다도...빨리 아파트로 가지 않으면...

시모오치아이에 가려면 지하철이 가장 빠르댔지?" 

도쿄역에는 한 달 전에 아파트를 찾으러 온 것 뿐으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마코토는 일단 개찰구를 나왔다. 

그리고 나서 머리위의 게시판을 보며 루트를 확인하고, 

잔돈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어 표를 사려했다. 

하지만 그런 마코토의 등에 쿵하고 기세 좋게 부딪쳐 온 남자가 있었다. 

"앗..." 

마코토가 들고 있던 동전이 부딪치는 바람에 짤랑거리며 바닥에 흩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굴러간 동전을 서둘러 주위 모으면서 

마코토는 부딪쳐 온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 

"저어..죄송합니다.." 

키가 큰 수트 차림의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마코토가 먼저 사과했다. 

그러자 비싸 보이는 수트를 입고 있는 그 남자는 

주위에 서 있던 비슷한 수트 차림의 남자들에게 손짓을 했다. 

수트와 넥타이로 몸을 감싸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들은 

무릎을 굽히고 일제히 바닥에 흩어진 동전을 아무 말 없이 줍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행동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규율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아..저기..정말 죄송합니다.." 

마코토는 남자들이 주워 온 동전을 받아들고 겨우 일어서서 부딪쳐 온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딪쳐 온 남자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데다 검은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고 

고급스런 다크 그레이의 수트와 감색 바탕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넥타이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마코토가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남자답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야무지게 당겨진 굵은 눈썹과 쭉 뻗은 콧날. 약간 두꺼운 입술과 길게 찢어진 검은 눈동자. 

남성의 전신에는 우아한 오데코롱의 향기가 베어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전신에서 풍겨나고 있는 것은 향기만은 아니었다. 

마코토가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었던 위압감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게다가 묘한 침묵과 냉정함이 남자를 휘감고 있었다. 

'혹시 연예인?' 

그런 생각이 문득 마코토의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주위에 질서정연하게 서 잇는 검은 선글라스 차림의 몇 명의 남자들을 보고 

아닐 거라 생각했다. 

매니저라고 하기엔 뭔가 분위기가 너무 수상했다. 

그럼 이 사람들은 대체? 

"아..저기.." 

독특한 분위기에 왠지 무서워진 마코토는 가만이 응시 당하고 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그만 시선을 돌리고 뒷걸음질쳤다. 

마코토들의 모습을 보고있던 역원들도 입을 다문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마코토는 그런 중에 고급스러운 수트를 입고 있는 단정한 얼굴의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갑자기 마코토의 팔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아..저기.." 

반사적으로 남자의 검은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본 마코토는 무심코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는 사람을 강하게 압도하고 힘으로 누르는, 유무를 말하지 않고 굴복 

시켜버릴 듯한 차가움이 마코토에게 전해져 왔다. 

"저.." 

마코토는 팔을 강하게 잡힌채 검은 눈동자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불안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마코토의 팔을 잡고 있는 남자는 약간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 미묘한 미소조차도 오싹할 정도로 냉담한 것이었다. 

"..너 이름은?" 

불안하게 전율하면서도 갑자기 이름을 물어오는 바람에 마코토는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남자의 목소리도 차가운 느낌이었던 것이다. 

"마,마코토라고 합니다. 미하라 마코토.." 

마코토는 남자의 냉혹한 눈동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그만 자신의 이름을 말해버렸다. 

"마코토라..좋은 이름이군." 

남성미가 넘치면서도 단정한 얼굴의 남자는 전신으로부터 굉장한 압도감과 독특한 빛을 내뿜으며 

가만히 마코토의 코발트 블루의 눈동자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 똑바로 구멍이라도 뚫을 듯한 시선에 마코토는 마음속으로부터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토오도우라고 한다. 토오도우 히로야다. 기억해 둬라." 

"토,토우도우..히로야..?" 

마코토는 자연스레 몸이 떨리는 와중에 몇 번이나 지금 막 들은 이름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그런 마코토가 만족스러웠는지 토우도우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는 

겨우 마코토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쿄역으로 사라졌다. 

"..저 사람, 혹시 야쿠자?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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