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6)

12.

하진을 끌고 오는 건 아주 쉬웠다.

그가 오전에 재무팀에 찾아갔다는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차선오는 이미 하진의 몸에 놓아둔 몇 개의 덫으로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하진의 행동을 감시하고 보고하게끔 만들어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직접 누를래?”

오피스텔 문 앞에서 그는 키패드를 열어 놓고 하진에게 물었다.

“어….”

LED로 반짝이는 숫자들을 눈앞에 두고 하진은 머뭇거렸다.

“모르겠어. 기억 안 나.”

“지갑은 잘 갖고 다니지?”

“지갑…?”

하진은 가방 앞주머니를 더듬었다.

“응, 있어. 근데… 빨리 들어가면 안 될까? 나 화장실 급해서….”

이 집에 그렇게 거부감을 보이더니. 얼른 열어달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차선오는 비로소 만족감을 느꼈다.

아니, 만족감이 맞나.

안심할 수 없었다. 떠나겠다니,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니. 그 말을 다시 회상하는 것만으로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가 굳은 얼굴로 번호를 눌렀다. 마지막으로 하루만 더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 그건 다시 말해 더는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겠단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띠릭, 탁. 열린 문틈 사이로 하진이 황급히 발을 들였다.

“나 얼른 싸고 올… 아!”

등 뒤로 문이 닫히기도 전에 차선오는 눈앞에 보이는 흰 목덜미를 낚아챘다.

“읏, 선….”

“쉬이. 가만히.”

그가 짧게 중얼거리며 하진의 상체를 뒤에서부터 끌어당겼다.

“하진아.”

당황해 버둥거리던 팔다리가 서서히, 아주 서서히 굳었다.

“나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그리고 차선오는 감추었던 얼굴을 전부 드러냈다.

“그러니까 예쁘게, 얌전히 굴어야지.”

가방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진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속박되었다.

“…하아.”

반항 의지를 잊고 인형처럼 얌전해진 하진을 코앞에 두고, 차선오는 잠시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진을 조수석에 태우고 귀가하는 동안 전혀 내보이지 않던 온갖 감정들이 비로소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를 다시 잃을 뻔했다는 불안감. 하진이 자신을 떠나려 했다는, 또 한 번 하진에게서 버림받을 뻔했다는 절망스럽고도 두려운 감정.

그를 향한 끔찍한 애정. 갈망. 소유욕. 배신감….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담긴 목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눈을 내리깔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처절히 애원하던 입술이 비틀렸다.

단단한 팔이 아래로 향했다. 서로의 복부와 등이 바짝 붙었지만, 하진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다. 차선오는 이내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하진의 흰 목에 코를 박았다.

“네가 나한테 올 줄 알았어.”

“흡….”

살갗은 보드라웠고, 달콤한 체취가 가득 묻어 있었다. 그가 깊게 호흡했다. 하진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이내 입술을 묻고 여린 살갗을 혀로 문지르다 힘주어 씹었다.

“이제 이런 거 안 해도, 기다리기만 하면 올 줄 알았다고.”

“흐, 흐으.”

보이지 않는 힘에 갇힌 하진은 그저 떨기만 할 뿐 얌전히 온몸을 내어주며 버텼다. 흰 피부에 벌써부터 붉은 울혈이 맺혔다. 그래 봐야 시작일 뿐이었다. 차선오는 하진을 품 안 가득 끌어안고 매달리듯 커다란 몸을 무너뜨렸다.

“내가 착각했어? 그래, 하진아?”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하진에겐 지금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었다.

알면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닿아 있는데도 모자랐다. 이대로 사라질까 하는 조바심이 쉼 없이, 켜켜이 끓어올랐다. 그가 다급하게 하진의 턱을 붙잡아 제 쪽으로 돌려 놓고 말했다.

“키스 좋아했지.”

“…….”

“또 해줄게. 입 벌려.”

일일이 명령하는 기분이 쓰기만 했다. 거짓말처럼 하진이 입을 벌렸다. 그 틈으로 혀를 쑤셔 넣으면서 그는 양손으로 하진의 가슴을 급히 문질렀다.

“흡…!”

“소리 참지 말고.”

“으… 응, 아흐, 읍.”

더듬거리며 위치를 찾지 않아도 그의 손가락은 정확히 하진이 느끼는 곳을 짚었다. 도톰하게 솟은 유두를 뭉개듯 누르면서 혀를 휘저었다. 호흡이 섞이고 다디단 숨이 넘어왔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차선오는 하진의 모든 것을 샅샅이 핥아먹을 기세로 거칠게 키스했다. 입 안의 살점이 다 녹아내릴 듯한 집요한 입맞춤과 젖꼭지를 튕기는 손놀림에 반쯤 눈이 풀린 하진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차선오는 그걸 빌미로 더 강하게 하진을 고쳐 안았다. 유두를 꼬집은 손끝엔 금세 미지근한 물기가 묻어났다.

“이런 몸을 하고 가긴 어딜 간다고.”

“하으, 응… 흐….”

하진이 내는 소리가 점점 야릇해졌다. 정면의 얼굴은 보이진 않지만 이미 집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몽롱하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두었으니까. 차선오의 눈도 어둑해졌다.

사실 그는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하진이 가장 좋았다. 최면을 풀어두고 조용히 기다린 것도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따지자면 욕심이었다. 사랑하는 하진이 혼자만의 의지로 저를 갈망하길 바라는, 지극히 순애보에 가까운 욕심.

그는 벽을 만든 당사자가 바로 자신임에도 하진이 그 벽을 깨고 스스로 안겨 오길 기대했다. 견고한 미로 속에서 우정과 애정을 넘나들다 끝내 제게 새 감정을 품기를, 최후에는 다른 관계로 묶여 완벽히 의존하게 되기를 원했다. 사랑이 있다면 그 벽이 스스로 힘을 잃고 연약해질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하아… 하진아.”

차게 끓는 눈빛과 애절한 목소리가 공존했다. 우습게도 첫 키스라고 인지하던 아까와 달리 지금의 하진은 난잡한 키스에도 곧잘 응했다. 자신이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도 모르고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입술을 열고 헤프게 혀를 빨아대는 하진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했다. 오직 제가 주는 자극에만 반응하고, 무너지고, 속박된다. 그런 순종적인 모습 역시 사랑해 마지않았다. 차선오는 치미는 애정에 못 이겨 그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씹어 물었다.

“아읏… 흐으, 응.”

가슴에 맺힌 젖물이 질질 흐르기 시작했다. 하진은 반사작용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 선오야….”

“응.”

그가 기꺼이 대답하며 하진의 몸을 정신없이 만지고 핥았다.

“나 여깄어. 여기서 너 기다리고 있어, 하진아.”

“으, 흐읏.”

하진의 바지춤은 이미 불룩했다. 앞이 묵직하게 불거져 나와서 거길 문질러주니, 하진이 어깨를 흠칫 떨며 난처한 목소리를 냈다.

“아, 안돼…. 거기, 잇.”

“…안돼?”

부드럽게 속삭이던 차선오가 즉시 차갑게 되물었다.

줄곧 참아온 요의와 더불어 보지를 숨겨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하진은 어물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차선오가 더 노골적으로 앞을 움켜쥐었다.

“다시 말해. 내가 싫어?”

“으읏… 아….”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피하진 못했다. 어차피 그렇게 되어 있었다. 손바닥 안에 갇힌 성기가 빠르게 부풀었다. 손길은 점차 집요하고 끈적해졌다. 자연스레 열린 하진의 입도 이내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아… 아니, 흐응….

“좋아, 선오야, 더….”

그제야 만족스러웠다. 응, 그래야지. 좋아해야지. 전부 좋기만 한 거야, 하진아. 내 앞에서는…. 차선오는 낮게 중얼거리며 더 빠르게 하진을 자극했다.

닿는 살갗이 점점 뜨거워졌다. 좀 더 수월히 만질 수 있게 바짝 붙은 허벅지 사이를 건드리자, 하진은 쉽게 다리를 벌려 틈을 만들었다. 그는 하진의 바지 버클을 벗겨 약간 내리고 속옷 위로 부푼 기둥을 쓸어 올렸다.

“흐으, 읍.”

소변이 마려워 예민해진 성기를 직접적으로 자극당하자 하진은 몸을 배배 꼬며 제대로 서 있질 못했다. 그럴수록 차선오는 더 집요하게 손을 놀리며 물었다.

“여기, 기분 좋아?”

“으, 아흣… 조, 좋아, 너무 좋아….”

하진은 끙끙대며 기계처럼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차선오는 그 말을 듣기 위해 계속해서 앞을 만져주었다. 이대로 사정시킬 생각이었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몸에 대고 밤새 좆질을 하고 다물리지 않는 구멍에서 정액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사랑해줄 작정이었다.

“흡…!”

그때 하진이 돌연 벌렸던 허벅지를 꽉 다물었다. 어딘가 갑자기 자극당한 건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감추듯 모은 다리를 발발 떨었다.

“벌려야지, 하진아.”

“여, 여기는….”

하진은 난처해하면서도 무어라 설명하지 못했다.

“왜?”

무릎뼈가 서로 닿도록 양다리를 힘껏 모은 게 아무래도 수상했다. 차선오는 자지를 주무르던 손을 뒤에서부터 넣고, 열 오른 허벅지 안쪽을 강제로 더듬었다.

“아… 아으흐, 선오야. 제발.”

하진의 귀가 새빨갛게 익어갔다. 난처해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향했다. 그가 손을 더 깊숙이 미끄러뜨렸다. 통통한 엉덩잇살이 맞붙는 지점, 그 아래.

살짝 다물려 겉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회음부 쪽을 탐색하듯 더듬던 손끝이 오목한 어느 지점을 짓눌렀다.

“우으응!”

속옷 아래 은밀히 감춘 보짓살을 건드리기 무섭게, 하진은 전기라도 오른 사람처럼 전율했다.

“하, 이게 뭐야.”

닿는 느낌이 어제와 확실히 달랐다. 차선오는 중지 하나를 세워 회음부에 생긴 얕은 틈을 앞뒤로 문질렀다.

“흐… 흐아아….”

“하진아, 이게 뭐냐니까. 여기 왜 축축해?”

그가 옅게 웃었다. 꼭 웅덩이 위에 천을 덮어둔 느낌과 비슷했다. 힘을 빼고 슬슬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 고인 습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으웃, 잠, 잠깐, 응…!”

“언제 이렇게 됐어. 알고 있었어?”

하진이 대답 대신 숨 가쁘게 헐떡였다. 차선오는 느리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춰주었다. 순순히 자백할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하진은 몸이 달아 곧 입을 열었다.

“아흑, 오,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응. 화장실에서.”

망설이는 건지 제대로 된 설명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차선오는 다시금 손가락을 바짝 세웠다. 축축해진 얇은 속옷 위로 정확히 구멍이 생긴 부분을 짓누르자 하진이 울먹이며 다시 말했다.

“흣, 이, 임신… 임신이 안 되니까… 이게 생기면 좋을 거라고, 흑, 그래서 몰래 확인해 봤는데, 아… 아읏. 으응.”

조금만 겁을 줬는데도 술술 이야기하는 하진이 사랑스러웠다. 차선오가 칭찬하듯 목덜미의 붉은 울혈 위로 쪽, 입을 맞추었다.

“놀랐겠네. 그렇지? 갑자기 보지가 생겨서.”

“보… 보지….”

“헷갈리니까 앞보지라고 할까? 울진 않았어? 내가 먼저 벌려보고 얘기해주면 더 좋았을 텐데.”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느릿느릿 이야기하던 그가 하진의 속옷 안으로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었다.

“…실은 선물이었거든. 우리 사랑이 맺어진 걸 기념하는, 선물.”

“읏, 흐앗.”

음습한 샘은 말랑말랑하고 촉촉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부위였다. 그가 거친 숨을 뱉으며 벌어진 살점을 더듬었다. 흘러나온 애액이 손가락을 끈적하게 적셨다.

“하필 이럴 때 생겼네.”

자극이 아니라 그저 겁을 주기 위해 손만 가져다 댄 수준이었는데도, 하진은 다시 파들거리며 튀어 올랐다. 없었던 게 생겨서 그런지 다른 부위보다 배로 민감한 듯했다. 아니면 몸이 주인을 알아봤거나.

“내가 그냥 보내줬으면, 숨길 생각이었어?”

“아, 아흐, 으응!”

“응? 이런 거 달고 또 영영 도망가버릴 생각이었냐고.”

“아니… 흣, 아니야.”

느껴서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도 하진은 대답했다. 벌어진 틈을 더 노골적으로 문지르니 습한 보짓살 안쪽에서 꿀 같은 물기가 흘러나왔다. 속옷 안을 헤집는 차선오의 손이 금세 음탕하게 젖었다.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질질 흘리기나 하고. 이렇게 좋아하면서 대체 왜.

“아니면 뭔데.”

“…흐…!”

손끝이 어딜 건드렸는지 하진은 갑자기 가쁜 신음을 터뜨리며 허리를 휘었다. 그러더니 스스로 자세를 고쳐 아래에 닿는 손가락에 은근히 보지를 살살 비벼왔다.

손끝으로 둥글고 도톰한 살점이 느껴졌다. 아, 아응, 좋아…. 하진이 정신을 못 차리고 끙끙거리며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손톱보다 자그마한 클리토리스가 점점 부푸는 게 느껴졌다. 차선오는 손놀림을 멈춘 채로 조용히 그를 불렀다.

“하진아. 아니면 뭐냐니까.”

“흐으, 으응, 더, 더 해줘.”

“하… 임신하고 싶대서 만들어줬더니, 다른 데 가서 보지 돌릴 생각이었어? 그래?”

그가 보짓살을 꽉 꼬집었다. 하아, 앙…! 하진이 발꿈치를 들고 허벅지를 벌벌 떨었다. 보지에서 다시금 끈적한 게 울컥 샜다. 한 차례 물을 흘린 하진이 더듬거리며 입을 벌렸다.

“아냐. 흐읏, 나, 나는 네가 싫어할까 봐….”

“…싫어한다고? 내가 너를?”

“갑자기 몸에 이런 게 생겼, 으니까. 이상하잖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하진은 조금만 건드리면 엉엉 울 기세였다. 차선오는 그를 돌려세웠다. 마주치는 자세가 되기 무섭게 하진이 몸을 기대어 왔다.

“하나도 안 이상해.”

가까워진 귓가에 대고 그가 중얼거렸다.

“예쁘고, 잘 어울려. 어차피 전부 날 위한 거잖아.”

“그래도….”

“들어가서 볼까?”

“응… 근데 나….”

품속에 안긴 하진이 허벅지 쪽을 어색하게 띄웠다. 왜 그런가 봤더니 걸쳐진 속옷 위로 발딱 선 자지가 튀어나와 있었다. 귀두 색도 평소보다 더 진한 선홍색에, 끝이 약간 젖어 있었다. 거길 내려다보고 있으니, 하진이 잔뜩 곤란해진 얼굴로 다시 허벅지를 맞붙인 채 눈을 굴렸다.

화장실에 가겠다던 말이 떠올랐다. 보지가 건드려져서 아까부터 참았던 요의가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한숨처럼 말했다.

“얘기하지 그랬어.”

화장실 가는 걸 허락하는 줄 알고 하진이 기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차선오는 다른 명령을 내렸다.

“옷 답답했지. 이제 벗어도 돼.”

“…으, 응.”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하진의 손이 움직였다. 애매하게 걸쳐진 속옷부터 단숨에 끌어 내리고 셔츠와 양말까지 남김없이 벗었다. 마치 벗으란 소리만 기다린 것처럼 모든 행동이 빨랐다.

“이리 와.”

차선오가 팔을 벌리자 하진은 이번에도 달아오른 알몸을 숨기지 않고 얌전히 품에 안겼다. 딱딱하게 부푼 자지와 녹녹한 가슴팍이 옷깃에 닿자, 요의와 성감이 동시에 차올랐는지 몸을 비비적거렸다. 차선오는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진을 안은 채 속삭였다.

“하진아.”

“으응….”

“오늘 임신할래?”

잔뜩 흥분해 모자란 숨을 쌕쌕 몰아쉬던 하진이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무언가 말하고 싶어 입술이 움찔거렸다. 분명 좋은데, 알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공허한 눈이 차선오의 품 안에서 깜빡였다. 그러자 따뜻한 손바닥이 망설이는 하진의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둔부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길에 비로소 목소리가 나왔다.

“…임신….”

한 번 소리 내 중얼거린 하진은 이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그러더니 찰나의 침묵도 못 견뎌 스스로 조르기에 이르렀다.

“하, 하고 싶어. 여기에도… 자지 넣어줄 거야? 그럼 최대한 안쪽에 깊이 싸줘…. 흐르지 않게….”

“그래, 들어가자.”

차선오는 하진을 안고 방으로 향했다. 하진은 화장실 앞을 지날 때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것도 잠깐일 뿐, 이내 별수 없이 얌전히 그를 따랐다.

그가 재킷을 벗어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진은 피가 몰려 발딱 선 자지를 내놓은 채로 그 앞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흐릿한 눈동자가 아래로 굴렀다. 성욕에 지배된 하진이 두툼하게 부푼 차선오의 고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차선오는 하진의 허리를 당겨 납작한 가슴팍에 입 맞췄다. 그러면서 넓게 벌린 다리 사이에 하진을 세워두고, 손으로 달뜬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참, 화장실 가고 싶어 했지.”

“하, 하아….”

“괜찮겠어?”

차선오는 부드럽게 타이르는 척하면서 하진의 의중을 확인했다.

“괜찮아. 얼른….”

예상대로 성욕이 더 강해져 다른 생각은 잊은 듯했다. 그는 나직하게 웃으며 하진에게 암시를 심었다.

“그럼 싸지 말고 잘 참아야 해.”

“응….”

“깼을 때 좋아서 오줌까지 싸고 있으면, 너 많이 놀랄 거잖아, 하진아. 그치.”

그가 걱정스럽게 물으며 아랫배를 살짝 눌렀다. 흐으…. 그 미약한 압박감에도 하진은 벌써 괴로운 듯 허벅지를 떨었다. 사실 당장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머리와 달리, 그의 몸은 조금만 긴장을 풀었다간 곧장 실금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임신해야 하니까…. 하진이 긴장한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고는 뇌리에 새겨진 우선순위에 따라 얌전히 수긍했다.

“으응… 참을게.”

“착하네.”

이제 꺼내도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진은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두 손이 망설임 없이 지퍼를 내리고 자지를 꺼냈다.

차선오는 제 허벅지 사이에 웅크린 하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넣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하진은 눈앞에 드러난 굵은 기둥에서 시선을 못 떼고 물었다.

“선오야, 나… 빨아도 돼?”

하진은 물으면서도 얼른 빨고 싶다는 듯 벌써부터 입술을 움찔대고 있었다.

“너, 너무 빨고 싶었어. 입속에 가득 넣고… 하아, 자지 냄새 맡으면서 뒤 쑤시고 싶어.”

그러면… 안 돼? 하진은 믿을 수 없게도, 도저히 그렇게 묻지 않고선 못 견디겠단 얼굴이었다. 입에 군침이 고여 소변이 마려운 것조차 잊은 모양새였다. 차선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급해 보였는데 바로 넣는 게 낫지 않겠어?”

“그, 그래도. 나 잘할 수 있는데….”

그는 조금 복잡해진 눈으로 허락했다. 그럼 그렇게 해. 대신 뒤는 쑤시지 말고. 대답이 떨어지자 하진이 황홀한 표정으로 서둘러 얼굴을 내렸다.

“으음….”

하진은 부푼 귀두 위에다 입술을 찍듯이 뽀뽀하고 콧등이 짓눌리도록 뺨을 부볐다. 그러다 이내 입을 벌리고 익숙하게 자지를 머금기 시작했다.

굵은 기둥이 좁고 뜨거운 입속으로 단번에 빨려 들어갔다. 버겁지도 않은지 커다란 자지를 목구멍까지 수월하게 넣고 사탕을 빨듯 기둥 옆을 맛있게 핥아댔다.

“…….”

차선오는 그런 하진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들리는 침 소리가 요란했다. 하진이 열렬히 매달릴수록, 그의 눈은 반대로 차갑게 식어갔다.

지난날 당황해 방으로 도망치던 하진과 지금의 하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좋으면서도 그 이상으로 괴로웠다.

양가적인 감정이었다. 그토록 기다린 순간인데, 그게 현실로 오니 있는 줄도 몰랐던 벽에 부딪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체가 느끼는 흥분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차선오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하진의 입을 물렸다.

“하으, 왜… 벼, 별로야?”

계속 빨고 싶은지 하진은 풀린 눈으로 혀까지 살짝 내민 채 기다렸다.

“하진아, 너 정말….”

좋은 거야?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왜일까. 한 번도 이런 의구심을 품은 적 없었다. 이렇게 불안한 적이 없었는데. 차선오는 섹스에 미친 것처럼 구는 하진이 금방이라도 훌쩍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결심한 그가 하진을 일으켜 세웠다.

“아… 이제 넣을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하진은 수줍게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임신해야 한다는 암시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나 급해, 선오야….”

소변이 마려워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섹스가 급한 건지 모호했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차선오는 자신의 어깨를 짚은 하진의 손을 쥐어다 목을 감싸게 했다.

“올라와서, 직접 넣어봐.”

“응….”

약간의 거부 반응도 없었다. 하진은 한쪽 다리를 천천히 들어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서로 거꾸로 겹쳐 앉은 자세였다. 하진은 수월한 각도를 찾기 위해 그에게 몸을 기대곤 꼿꼿한 자지 위에 미끄러뜨린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흐으, 응.”

하진이 곤란한 표정으로 신음했다. 다리가 벌어져서인지 긴장했던 아래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순간, 무언가 실수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참을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의 뒤로 곧장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버텨야 했다. 고마운 일이니까. 임신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오에게 고마워하면서… 정액을 잘 받아먹어야 하니까. 하진은 한계를 보이는 요의를 그대로 덮어두고 차선오의 기둥을 잡아 세웠다.

“흐읏, 너, 넣을게.”

아직 보지가 생긴 건 어색한지, 하진은 뒷구멍에 대고 귀두를 비볐다. 굵고 뜨거운 기둥이 뒷구멍을 흠씬 벌릴 듯 꺼떡거렸다. 차선오는 대답이 없었다. 하진은 아랫입술을 꾹 물고 천천히 몸을 아래로 내렸다.

“아흐… 읏….”

삽입은 수월했다. 손가락으로 넓히거나 혀로 빨아주지 않았는데도 구멍은 능숙하게 커다란 자지를 머금었다.

속살이 부드럽게 갈라졌다. 위에 올라탄 자세 때문에 배 속이 무언가로 채워지는 느낌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그 압박감마저 기분이 좋아서, 하진은 아랫배에 손을 올린 채로 울먹였다.

“아으응, 깊어….”

소변을 참고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더 빠듯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느낄 만큼 평소와 달랐다.

“하… 깊이 넣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야 임신도 하지.”

“으응, 하아, 읏….”

가만히 있지 말고 흔들어, 하진아. 차선오가 하진의 엉덩이를 가득 움켜쥐고 말했다. 어쩐지 손길이며 목소리가 좀 거칠어진 듯했지만, 이미 삽입이 주는 만족감에 취한 하진은 금방 엉덩이를 위아래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흐읏… 으으응, 좋아.”

곧장 기분 좋은 부위에 비벼지는 게 황홀해서, 하진은 연신 좋다는 말만 내지르며 몸을 들썩였다. 삽입 섹스에 대한 거부감에 지레 겁먹고 피하던 하진은 이곳에 없었다. 그저 굵은 자지에 개발된 뒷구멍을 가쁘게 조이며 정액을 삼키기 위해 안달 낼 뿐이었다.

그렇게 하진이 스스로 움직이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차선오의 얼굴은 점점 알 수 없는 쪽으로 변해갔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던 그가 돌연 하진을 끌어안고 허리를 퍽, 강하게 쳐올렸다.

“흐아…!”

위태로운 교성이 터졌다. 하진은 그에게 매달린 채 붉게 물든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참아야 한다고 세뇌되어 있어도, 몸의 반응까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방금의 자극 때문에 요도 끝이 살짝 젖은 것도 같았다.

참아야 하는데.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난감했다. 이젠 목덜미와 어깨까지 전부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참으려고 버티는 하진을 보면서, 차선오는 호의를 베풀었다.

“못 참겠으면 그냥 뺄까?”

“아니, 흑, 아니야.”

“힘들면 손으로 막아.”

여기, 이렇게. 그가 직접 하진의 한쪽 손을 끌어다 귀두를 쥐게 했다. 의미를 알아챈 하진은 엄지를 세워 축축한 요도 끝을 틀어막았다. 흐읏…. 이렇게 한다고 해서 요의가 가시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 방어막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빼지 마. 응? 흣, 빼면 안 돼.”

“알겠으니까 손 떼지 말고.”

그가 하진의 골반을 부드럽게 당기면서 침대 헤드 쪽으로 더 올라갔다. 깊숙이 삽입된 성기가 안쪽에서 요동쳤다.

“하윽, 읍, 끅.”

몸 전체가 덜컹거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진은 울음을 참아야 했다. 이제 차선오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었고, 하진은 그 위에 다리를 쫙 벌린 채 올라타 있었다. 조금만 힘을 빼면 무너질 법한 자세여서, 요도를 막지 않은 손으로 침대 위를 짚으며 간신히 버텨야 했다. 벌어진 채 앞을 향해 빠끔 드러난 보지가 멋대로 벌름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움직여야지.”

그가 손을 뻗어 하진의 무릎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얼핏 달래는 듯한 손길이었지만 사실 무릎을 은근히 밀어 허벅지를 더 벌려 놓기 위함이었다. 그에 반응한 하진이 서서히 하체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아… 아응… 응, 아.”

앉아서 올라탔을 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흐읏, 조, 좋아…. 접합부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살짝만 긴장을 풀어도 소변이 흐를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하진은 점점 헤프게 허리를 움직였다. 위태로운 느낌에 중독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가 아래로 무너뜨릴 때마다, 구멍과 보지가 동시에 경련했다.

한창 엉덩이를 흔들며 비비는데 셔츠 단추를 풀어 헤친 차선오가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아래가 삽입된 채 몸이 더 가까워지니, 그 자체만으로 또 다른 자극이 됐다. 하진은 코앞까지 다가온 차선오의 품에 아양을 떨 듯 몸을 기댔다. 그러자 키스가 쏟아졌다.

“흐으읏, 으.”

내내 다정한 말도 손길도 주지 않던 그가 턱을 감싸 쥐고 입술을 빨아주자 하진은 단숨에 거기에 빠져들었다. 고집스레 움켜쥔 귀두 아래로 차선오는 자신의 손을 미끄러뜨려 그새 다물린 보지를 더듬었다.

“하으, 으, 아.”

“축축하네, 만져달라는 것처럼.”

사실 하체가 부딪힐 때 은근히 보지가 스치는 느낌만으로도 좋았는데, 차선오가 다시 만져주니 금세 또 젖어버렸다. 하진의 보지는 색이 옅은 데다가 크기도 아주 작아서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전체가 덮였다. 차선오는 그걸 간파한 것처럼 보짓살을 조심스레 헤집으며 긁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힘 조절 없이 허리를 강하게 위로 쳐올렸다.

“읏! 아앙!”

위아래가 전부 요동치자 온몸이 성감대가 된 것처럼 뜨거웠다. 겨우 참고 있는 소변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보지가 간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진은 허겁지겁 아랫배에 힘을 줬다. 요도 끝을 막은 손도 이젠 별 소용이 없었다.

“선오야, 나 쌀 거 같, 아흑, 잠깐, 잠, 흐윽!”

몸이 공중에 살짝 뜨는가 싶더니 그대로 아래로 내리꽂혔다.

“흐으…!”

“참겠다 했으면서, 이제 안 되겠어?”

더 이상 들어올 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깊은 내벽 안쪽이 거세게 짓눌리며 무언가 꿰뚫리는 느낌이 났다. 너무 느낀 나머지 발가락이 전부 안으로 굽었다.

“아, 아아….”

차선오는 보짓물로 축축해진 손을 올려 하진의 아랫배를 문질렀다. 좆을 내장 깊숙이 쑤셔 넣을 때마다 손바닥 아래로 기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쩌지, 아직 멀었는데.”

좀 더 참을 수 있지? 그는 간악하게 속삭이며 계속 허리를 거세게 쳐올렸다. 하진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손으로 만져져 민감해진 보지와 한계까지 내몰린 자지의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하진은 이제 제가 무슨 소리를 내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흐우… 으…. 하진은 가쁜 숨을 간신히 몰아쉬면서 오직 귀두를 막은 손에만 끝까지 힘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가버리려고 했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거칠어진 목소리에도 하진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고개를 저어댔다. 아… 아아, 제발…. 배가 터질 것 같아….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고개를 숙여 퉁퉁 부어오른 하진의 유두를 씹듯이 빨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려 끈적한 애액으로 뒤덮인 보짓살을 세게 문질렀다. 오직 제게만 반응하도록 개조한 몸을 되짚어주듯이.

“널 이렇게 만들고… 좋아한단 말을 아무리 퍼부어도 모자라면.”

“하, 하으!”

“그럼 어떡해야 해, 하진아. 어?”

그가 꽉 다물린 보지 구멍에 손가락을 후벼 넣을 기세로 겉을 휘저었다. 찔꺽거리는 소리를 따라 자지를 삼킨 구멍이 꽉 조여들었다가 이완하길 반복했다.

“그냥 전부 기억나게 해줄까.”

그러면 다신 그런 생각 못 할 텐데. 차선오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아… 아흐응.”

하진은 그저 보지가 만져지는 게 너무 좋아서 어느새 오줌을 참기 위해 틀어막은 손으로 귀두를 은근히 비비고 있었다. 세 개의 성기가 동시에 자극당하자 곧 무언가 터질 것처럼 한계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허락하기 전엔 쌀 수 없다는 암시에 걸려 마음대로 실금할 수도 없었다. 흐읏, 주, 죽을 것 같아. 너무…. 발갛게 젖은 눈꼬리가 위태로이 움찔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너 또 나간다고 할 거지.”

싸고 싶어. 풀어버리고 이대로 전부, 내보내고 싶어. 망가져도 좋아.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지금은 이렇게 좋아해도, 내일 되면 또 나만 여기 두고….”

“흐, 흐으, 서… 선오….”

“내가 얼마나 사랑해줬는지, 어떻게 예뻐해줬는지, 그딴 건 다 잊고. 예전 졸업식 날처럼.”

그렇게 가버릴 거잖아. 차선오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그렇겐 못 놔두겠어.”

난 무서워, 하진아. 널 잃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 그래서 못 믿겠어.

뒷말을 삼킨 차선오가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흐읏…! 하진은 거의 눈을 까뒤집고 더듬거렸다.

“나 싸, 싸고 싶… 아, 아응, 푸, 풀어줘, 이제 도저히….”

그래. 풀어줄게. 다신 못 잊게 해줄게. 그가 선물처럼 말했다. 혀끝이 부드럽게 귀를 핥아 올리는 순간, 요도를 틀어막은 하진의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동시에 차선오는 하진을 꽉 끌어안고 경련하는 구멍 깊숙이 좆을 박아 넣었다.

“…아… 흐, 읏….”

쪼르륵. 오래 참은 오줌이 터져 차선오의 배를 뜨끈하게 적셨다. 그러고도 모자라 투명한 물기가 주룩주룩 흘렀다.

가라앉은 정신이 돌아왔다. 동시에 하진의 구멍 안으로 정액이 넘칠 듯 쏟아졌다.

“이, 이건….”

하진이 젖은 눈을 크게 떴다. 흐릿했던 시야가 맑아지듯 그제야 주변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또다.

차선오의 오피스텔. 까맣게 잘려버린 시간. 그리고….

“흐윽….”

하진이 괴로운 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분명 문 앞에서 그가 키패드를 누르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언제 이 방에 들어왔는지는 불분명했다. 지겹도록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렇게나 피하려 했던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대, 대체 어떻게….”

이번에도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인지한 하진이 겁에 질려 더듬거렸다. 그때 아랫배에서 정체 모를 무언가가 요동치듯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흐, 아…!”

뭐, 뭐지? 하진은 그제야 아래를 봤다. 속옷 한 장 없이 전부 벗은 채로 누군가에게 안겨 있었다. 그냥 안겨 있는 게 아니라, 뒷구멍으로 성기를 받고 있었다. 뱃가죽이 지저분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상대는.

“너, 너….”

차선오였다.

“또… 이게, 어, 어떻게 된… 흐읏, 아, 흑…!”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진아.”

안심시키듯 중얼거린 차선오가 다시 허리를 쳐올렸다. 아으응…! 녹녹하게 풀린 구멍이 부드럽게 벌어지며 자지를 삼켰다. 기둥이 박힌 틈을 타고 무언가 질척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흐… 으응….”

기분 좋아…. 순간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아아, 어떡해…. 하진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이렇게 중간에 깨우는 일 없어. 하나가 됐으니까.”

“그, 그게 무슨… 흐으, 아, 흡.”

“내가 첫날부터 얘기했잖아.”

이 집에선 전부 내 뜻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다고.

그렇게 중얼대는 입 모양을 하진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몸은 계속해서 앞뒤로,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느낌이 몸에 새겨진 것처럼 익숙했다. 안에 고인 정액이 울컥 흘러내려 두 사람의 샅을 하얗게 적셨다.

“기억해?”

차선오가 웃으며 물었다. 동시에 그는 하진의 최면 속에 잠긴 기억을 서서히 일깨워주었다.

“…….”

죽은 듯 잠들어 있던 장면들이 하나둘 선명해졌다.

처음, 이 오피스텔에 온 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고 현관에 쓰러져 있던 자신. 몰래 가슴을 문지르며 자위하다 들켜선 수줍게 얼굴을 붉히던 그 첫 순간. 오래 기다려온 것처럼 기쁘게 몸을 핥던 차선오의 모습. 거기에 응해 쉽게 무너져버린 자신.

몇 번이고 그에게 안겼던,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난잡하게 뒹굴며 신음하던, 욕망에 젖은 제 몸까지.

“아… 아아….”

12년 만에 만난 동창은 살 곳을 주었고, 일자리도 주었다.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연약한 경계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하진은 그제야 모든 걸 알았다. 완벽히 깨달아버렸다. 그동안 꿈 같은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다 사라지고, 새겨졌다 지워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왜, 라고 묻기도 전에 차선오가 말했다.

“너 묶어 두려고 그랬어. 날 사랑하게 만들려고. 네 몸이라도 날 못 잊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어쩐지 비에 젖은 듯 슬퍼 보였다.

“그래야 네가 날 버리지 않을 테니까.”

졸업식. 내가 너 기다리겠다고 했던 그 날처럼.

하진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좋아해, 하진아. 내가 너 좋아한다고. 가장 가까운 기억 속, 주차장에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백하던 차선오가 겹쳐 보였다. 그 짧은 한마디엔 사실 무수한 시간이 함축되어 있었다는 걸, 하진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

“네가 날 잊은 순간에도… 난 너만 생각했어, 하진아.”

재회한 이후부터 온통 거짓말뿐이던 그가, 이 순간만큼은 진실을 말했다. 그걸 하진도 온 마음으로 느꼈다. 완벽히 우위를 점한 주제에 초조하게 제 대답을 기다리는 차선오가, 문득 지난날의 언젠가와 겹쳐 보여서.

하진은 어느 날 꿈에서 봤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만 보고 있던 차선오를. 해치고 싶은 눈이 아니었다. 위험하고 파괴적인 눈이 아니었다.

그건 사랑해 달라는 눈이었다. 간절히, 애정을 갈구하는 눈이었다.

“나… 나는….”

우윽…! 하진이 하려던 말을 맺지 못하고 크게 헛구역질했다. 속이 뒤집혔다. 이대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차선오는 그런 변화를 예견한 듯 일렁이는 하진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안아 다독였다.

“괜찮아, 하진아.”

걱정하지 마. 이제 거의 다 됐어. 괜찮아. 괜찮아…. 많은 것이 머릿속에, 몸속에 새겨졌다. 하진의 몸이 스르르 무너지며 차선오의 품에 겹쳐졌다. 날 사랑해. 날 사랑해줘, 하진아. 떠나지 말아줘. 차선오가 중얼거렸다.

그럴게.

어쩌면 하진은 그렇게 대답한 것도 같았다. 순전한 자의였다.

*

모든 것이 바뀐 후, 새벽은 쏜살같이 흘렀다. 하진은 감긴 눈을 억지로 떴다.

“아으….”

엉덩이 사이가 묵직했다. 온몸은 무언가에 꽁꽁 묶인 것처럼 갑갑했고, 특히나 허리가 끊어질 듯 저렸다. 하진은 하체를 살짝 뒤틀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뒤에서 그를 가두듯 안고 있는 차선오는 하진에게 좆을 넣은 채로 그대로 잠든 듯했다.

간밤에 꿈을 꿨다. 이번엔 흐릿한 얼굴들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교실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꿈속의 계절이 세 번 바뀌고 앉은 자리가 열 번쯤 바뀌었다. 차선오는 한결같았다. 그는 계속 하진의 주변을 맴돌았다. 간혹 말을 걸었고, 필요한 걸 손에 쥐여줬고, 잃어버린 걸 찾아주기도 했다.

사실 하진은 그 모든 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꿈속에서 다시 보니 달랐다. 차선오는 둘만 있을 때면 다른 얼굴을 했다. 다른 녀석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와 다르게, 웃을 줄도 알았고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추위가 매섭던 어느 날, 외투 없이 교복만 덜렁 입은 차선오가 꿈속에 고스란히 되살아났을 때.

‘졸업식 끝나고 잠깐 시간 돼?’

그렇게 묻던 얼어붙은 입술이 기어이 떠올랐을 때.

‘할 얘기 있는데… 네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아스라이 흩어지는 하얀 입김 속에서 하진은 깨달았다.

‘기다릴게.’

어쩌면 차선오는 그때부터 나를….

“…….”

허리를 감싼 손이 부드럽게 아랫배를 매만졌다. 간지러워 푸스스 웃음이 터졌다. 하진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뒤에 맞붙은 이에게 몸을 기댔다.

“있잖아, 선오야.”

대답은 없었지만 기다리기 어려워 얼른 물었다.

“우리 졸업식 날 기억나? 엄청 추웠던 날.”

“…….”

“너 나한테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 그 잘난 얼굴이 죄다 빨갛게 얼어서는, 내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마치 첫날밤을 보낸 연인처럼 들뜬 목소리가 침실 안을 울렸다.

“너… 그때부터 나 좋아했지?”

두근두근.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떨렸다. 하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을 기다렸다. 마주 보고 있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끝이 갈라진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 아니라고? 하진이 그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뒤틀려는 순간, 어깨에 입술이 닿았다.

“사랑했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담담한 고백이 어깨 위로 공허하게 흩어졌다. 차선오의 입술은 마치 오랜 칼바람에 얼어 있던 것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하진은 당장 그를 마주 안고 싶었으나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고요했다. 자신의 들뜬 마음마저 가라앉게 하는 목소리여서, 하진은 차마 더 묻지 못했다.

*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동시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먼저 침대를 벗어난 차선오는 엉망이 된 침구와 주변을 정리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하진은 혼자 몸을 씻었다. 정신이 아주 맑고 또렷했다. 어제의 일들도 전부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 그간 깜빡깜빡 잊어 놓쳐버렸던 기억들까지, 모두.

그래서 더 어리둥절했다. 이해되지 않는 건 오로지 차선오의 행동뿐이었다. 하진은 구멍 안에 넘치도록 채워진 정액을 긁어내며 조금 안심했다. 오직 그 흔적만이 꿈이 아니란 증명 같았다.

“거기 앉아.”

금세 정갈한 아침상을 차린 차선오가 씻고 나온 하진에게 말했다. 그가 가리킨 건 건너편 자리였다.

“…왜?”

하진은 공연히 심술이 나서 그릇과 수저를 옮겨 차선오의 옆에 붙어 앉았다.

“싫어. 여기 앉을래.”

“…….”

그렇게 행동으로 보이면 무슨 반응이라도 돌아올 줄 알았는데, 차선오는 별말 없이 하진의 옆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달그락대는 가벼운 소음만 울렸다. 말만 하지 않을 뿐 하진은 온갖 생각에 빠져 제대로 먹지 못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밥알이 버석한 모래알처럼 입속을 굴러다녔다. 반면 금방 밥공기를 반이나 비운 차선오는 이번에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살 곳 다 준비해놨다고 한 거, 기억하지.”

“…어?”

전혀 예상 못 한 화젯거리에 하진이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차선오는 그래도 앞만 보고 있었다.

“밥 다 먹고 바로 가면 돼. 필요한 건 전부 준비해뒀으니까 몸만 가면 될 거야.”

“무슨… 나, 나는….”

“네 이름으로 남아 있는 빚이랑 회사도 오전 중으로 정리할 거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전에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부담 갖지 마.”

고저 없는 목소리는 점점 쌀쌀맞게 들렸다. 천천히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다 끝내 심장이 덜컥 무너져 내렸다. 뭐가 문제인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차선오가 한 말들은… 전부 사실이었다. 하나하나 분명 그가 했던 얘기들이 맞았다.

…나가고 싶지 않은데.

하진이 테이블보 모서리를 움켰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위에 놓인 그릇이 다 흔들릴 정도였다. 차선오는 그제야 옆을 보았다. 그가 하진의 손을 겹쳐 쥐고, 아프도록 힘이 들어간 손가락을 하나둘 펴 주었다. 닿는 손끝도 그가 뱉은 말만큼이나 차가웠다.

테이블보에 남은 구김이 흉했다. 차선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짧게 덧붙였다.

“지갑에 종이쪽지 있을 거야.”

주소는 거기 있어. 조용히 식기를 정리하는 차선오의 뒷모습에 대고, 하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조그만 짐 가방 하나만 들고 하진은 몇 달간 머물렀던 차선오의 오피스텔에서 나왔다.

그는 심지어 배웅도 하지 않았다. 여길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한 건 저인데, 어쩐지 등 떠밀려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함께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게 좋은데. 이제 와 말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망설이다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

…가볼까.

하진은 운동화 뒤축을 땅바닥에 툭툭 치곤 미련이 남은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매번 차선오가 운전하는 차로만 왔다 갔다 하던 동네였다. 보이는 풍경이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좀 걸어볼 생각이었다. 가방에 잘 넣어둔 지갑을 꺼내 보기 전에, 가볍게 동네 구경이나 하며 싱숭생숭한 기분을 달래기로 했다.

비싼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주변은 꽤 한적했다. 지나다니는 차도 많지 않았고, 아이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만 간혹 하진을 지나쳐 갈 뿐이었다. 하진은 그들을 따라 걸었다. 어차피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잘 가꾸어진 공원엔 인공 호수가 반짝였고, 푸르른 녹음이 가득 드리워져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계절이 어느새 여름의 끝자락으로 향해갔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알기나 할까. 자신의 집 근처에 이렇게 근사한 공원이 있단 걸.

처음 그와 다시 재회했을 땐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좋아 보였는데, 지금의 인상은 달랐다. 차선오는 가진 결핍이 너무 커서 그걸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진은 공원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 동네까지 와 있었다. 그저 걷고 또 걸은 모양이었다. 편한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발바닥이 아팠다. 늦여름 볕에 오래 시달린 피부도 후끈거렸다.

잠시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녁이 다 되어갔다. 한계였다. 몸도 지쳤고 배도 고팠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하진은 한숨을 푹 쉬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

그리고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새로 넣어놨다고 하기엔 어딘가 오래된 것처럼 낡고 더러워진 종이쪽지를.

열어보니 익숙한 오피스텔 이름이 보였다. 정확한 호수, 그리고 비밀번호까지.

“바보같이….”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하진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돌아가는 길은 가깝게만 느껴졌다. 한계까지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정해진 목적지가 뚜렷해서, 그저 거길 향해 걸었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종국엔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비로소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한 저녁이었다. 이상하다, 바람이 좀 차가워진 걸까? 오래된 쪽지를 펼쳐둔 채 키패드를 여는데, 가벼운 소름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꾹꾹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조금 떨렸다.

띠릭, 탁. 잠금이 풀렸다. 익숙한 어둠이 보였다. 하진은 심호흡과 함께 문고리를 당겼다.

“선오야.”

불 하나 켜지 않은 컴컴한 오피스텔 안. 어렴풋이 인영 하나가 보였다.

그는 하진이 집을 나설 때와 똑같은 모습 그대로 소파 한쪽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변한 게 있다면 그 몇 시간 사이 얼굴이 한층 더 불안하게 가라앉았단 것뿐일까.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하진은 그에게 다가갔다.

“선오야, 나 왔어.”

그리고 깨달았다.

‘기다릴게.’

차선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자신만을 기다려왔다는 걸.

어둠 속에서 초라하게 웅크려 있던 차선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빛을 맞이한 듯 눈을 살짝 찡그렸다. 자신이 만든 미로 속에서 겁에 질려 있던 얼굴이 아프게 구겨졌다.

“잘… 다녀왔어?”

그 표정이 얼핏 웃는 듯 보였다.

“응.”

“…….”

“잘 다녀왔어.”

하진이 마주 웃었다.

“…이상하지.”

이번에도 널 잃는 줄 알았어. 당연히 올 걸 알았는데도.

차선오가 차갑게 언 입술로 고백했다. 아침부터 내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쌀쌀맞게 굴던 방어기제가 그제야 낱낱이 드러났다. 최면과 현실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하진을 완벽히 묶어두었으면서도, 그는 안심하지 못해 불안에 떨었다. 하진이 기어이 제 발로 돌아오기까지 홀로 숨죽여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나약한 모습에 하진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계속 같이 살자며. 다 내 거라고 생각하라며.”

눈이 마주쳤다. 하진은 이 찰나의 눈 맞춤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이제야 그렇게 됐다.

차선오가 비로소 웃으며 팔을 벌렸다. 하진이 편안히 그의 품에 안겼다. 아주 짧은 찰나, 머릿속에서 무언가 요동쳤으나 이내 사그라들었다. 얼어붙은 벽이 힘을 잃고 녹아들었다.

잠깐 길을 잃어도 결국 다시 돌아온,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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