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6)

10.

하진의 머릿속은 다른 의미로 고장 난 것 같았다.

“이걸로 살까?”

하루 종일 차선오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심지어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어도 그랬다.

“어,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짧게 웃은 그가 들고 있던 구이용 소고기 두 팩을 카트에 넣었다. 주말을 맞아 장을 보자고 백화점 지하로 데리고 오더니, 무슨 대규모 파티라도 준비하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식재료를 골랐다.

카트는 이미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잔뜩 담았으면서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차선오는 저만치 앞서가서 다른 걸 구경했다.

거리가 멀어지자 또 그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진은 잠시 얼떨떨한 기분으로 같은 자리에 서서 차선오를 지켜보았다.

원래도 그랬지만 정말이지 근사한 남자였다. 너른 등. 듬직한 어깨, 긴 다리를 감싼 바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두 가지를 들고 진중하게 고민하는 옆얼굴이 보였다. 이마에서부터 떨어지는 곧은 콧대와 날렵한 턱선이 도드라져 한층 빛이 났다. 살짝 찌푸린 미간마저 잘 어울릴 만큼 음영이 완벽했다.

그러니까 저 얼굴로 뭐라고 말했더라.

‘연애도 안 했고 섹스도 안 했어. 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

하진은 우수에 젖은 얼굴로 그렇게 고백하던 차선오를 생각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 너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하고.’

사실 처음 생각한 건 아니고, 이번이 적어도 열 번, 아니 스무 번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말이었다. 그 순간에 겪어야 했던 난처한 감각들은 죄다 지워지고, 오로지 목소리만이 기억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무슨 의미로 말한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손을 붙잡고 중얼거리던 목소리는 분명 애틋하게 들렸다. 착각이라 생각하려고 해도 한번 신경이 쓰이니 전보다 몇 배나 그를 의식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그저 타고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다정한 모습이나 틈틈이 보여주는 배려가, 혹시 다른 감정으로부터 기반한 게 아닌가 하고.

무엇보다 하진은 그를 생각하면 몸에 이상할 만큼 열이 고였다. 커다란 손이나 날렵하고 탄탄한 허벅지를 보면, 조금은 낯선 기분도 들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어딘가 심각하게 망가져 그대로 스러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

어느새 그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차선오가 그림 같은 모습으로 하진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또 다른 걸 심각히 살펴보았다. 그를 따라 웃음이 번졌다. 얼른 다가가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나타난 인영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대로 지나가는 줄 알았던 여자는 갑자기 멈추어 서서 차선오와 똑같은 물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여자는 정작 상품의 가격이나 상태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차선오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티가 났다.

불현듯 속이 답답해졌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하진은, 곧 급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오야.”

“응, 소스 어떤 게 좋아? 매운 것보단 단 게 좋지?”

차선오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평소와 똑같이 다감한 목소리였다.

“…매운 것도 괜찮아. 근데 이제 그만 사도 될 거 같은데.”

“다 네 몸 생각해서 고르는 거야. 남으면 나중에 또 먹으면 되고.”

“우리 집 냉장고 터질까 봐 그러지.”

“별걱정을 다 하네.”

그쯤에서 당장 차선오에게 연락처라도 물어볼 것 같던 여자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하진만을 향해 미소 지었다.

“하진아, 근데 방금 우리 집이라고 한 거야?”

하진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여자가 사라지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완전히 둘만 남게 되자 참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

“너… 쳐다보는 거 몰랐어?”

“왜 몰라. 저쪽에 서 있어서 내가 계속 봤잖아. 어디 안 좋아? 이만 갈까?”

곧장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진은 민망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 나 말고. 방금까지 이쪽에 있던….”

차선오가 들고 있던 소스 병을 카트에 넣었다. 두 가지로도 모자라 하나를 더 골라 담았다.

“아무도 못 봤는데. 너 신경 쓰느라.”

“…….”

“누구였는데? 아는 사람?”

하진은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차선오와 눈이 마주치자 절로 솔직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떤 모르는 여자가… 너한테 번호 물어보려는 거 같았거든.”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하진은 고개를 떨구면서 이어 중얼거렸다.

“너 혼자 있는 줄 알고 그랬나 봐. 나만 없었으면 아마 금방 말 걸었을걸. 예쁘던데… 옷차림도 그렇고….”

순간 차선오의 입매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하진아.”

“어?”

어깨에 차선오의 손이 올라오더니 몸이 훅 당겨졌다. 멀리서 보던 단단한 가슴팍에 그대로 꽉 안기게 되자 하진의 목덜미가 화르르 달아올랐다.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

“읏… 뭐, 뭘.”

그가 고개를 낮추어 귀에 입술을 붙였다.

“나 여자 안 좋아해.”

간지러운 음성에 소름이 쭈뼛 섰다.

“…….”

스쳐 간 말만큼이나 몸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민감한 부위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사타구니가 간질거렸다. 아, 몸이 왜 이렇게….

하진이 아무 대답도 못 하는 사이, 차선오는 어깨에 올렸던 손을 놀려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사악, 사악. 닿는 족족 기분이 녹아내릴 것처럼 좋아서 하진은 얌전히 그 손길을 받기만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짝 붙어 있는 둘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지나갔다. 차선오의 품에 가려진 하진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크고 따뜻한 손은 그의 귀와 목을 스쳐 팔까지 쓸어내렸다.

하진은 선 채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짝 맞붙였다. 차선오는 한참 그렇게 하진을 만지다 팔을 뻗어 능숙하게 카트를 당겼다.

“가자, 계산하러.”

그렇게 말하는 얼굴엔 순수한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

느긋하고 편안한 주말이었다.

하진은 큰 반항 없이 차선오가 만든 미로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는 제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차선오는 장 봐온 음식들로 하진에게 근사한 한 끼를 차려주었다. 이번엔 아무 약도 섞지 않았다. 모든 걸 느슨히 풀어두었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하진의 심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 다만 조금 솔직해지도록 도수가 약한 술을 권했고, 하진은 순순히 차선오가 따라주는 걸 전부 받아 마셨다.

재미있는 건 그런 멀쩡한 정신으로도 때때로 암시가 튀어나온단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차선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그랬다.

테이블을 말끔히 치우고 디저트를 준비해 거실로 나갔다. 하진은 소파에 모로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한 건지 바로 근처까지 다가갔는데도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뭘 보고 있나 했더니, 화면에선 성인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뜻밖이었다. 차선오는 디저트 접시를 소리 나지 않게 놓고 조금 떨어진 싱글 소파에 앉아 하진을 구경했다. 영화에 집중한 줄 알았건만, 제대로 보니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그런 멍한 눈으로 시선은 화면에 고정한 채 쿠션에 가슴을 슬쩍슬쩍 비비고 있었다.

“…….”

암시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것도 욕실이나 방에 숨어서가 아니라 거실 소파에서 대놓고 가슴을 비빌 정도라면,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티브이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끊어지는 듯한 배우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싸구려 서양 영화였다. 누가 들어도 연기하는 티가 날 만큼 작위적이었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도 하진의 뇌리에 스민 성적 본능이 깨어나기엔 충분한 듯했다.

차선오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스름한 머릿속으로 흥미가 돋았다. 오늘은 얌전히, 푹 재우려고 했는데….

그는 꼭 끌어안은 쿠션으로 가슴에 압박 자위를 하는 하진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현실과 최면의 괴리가 얕아지고 있단 증거 같았다. 아주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달뜬 숨소리에 아래가 뻣뻣해졌다.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는 하진의 모습에, 그는 결국 접시를 들고 다가갔다.

“이런 것도 봐?”

하진이 그제야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냥 누워 있어.”

“어, 응…. 배가 불러서 잠깐 눕는다는 게.”

“근데 머리 불편해 보인다. 내가 받쳐줘?”

갑작스러운 제안에 하진이 고민했다. 우물쭈물할 때는 한 번 더 얘기해줄 필요가 있다는 걸, 차선오는 이제 잘 알았다.

“불편한 거 맞잖아. 그렇게 해.”

“…응, 그럼.”

깔끔한 수락에 차선오가 웃으며 다가갔다. 그는 기다란 소파의 비어 있는 자리를 두고 굳이 하진의 머리맡에 바짝 붙어 앉았다. 불편한 각도로 목을 세우고 기다리던 하진은 약간 망설이다 천천히 차선오의 허벅지를 베고 모로 누웠다.

“아, 저건 그냥 채널 돌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본 거야. 다른 거 봐도 돼.”

하진은 완전히 무게를 싣지 않은 채로 조심스레 변명했다. 발가락을 꼼질대면서 쿠션을 더욱 꽉 끌어안는 걸 보니, 커다란 브라운관 가득 나타난 난잡한 영상이 퍽 민망한 모양이었다.

“뭐 어때서. 놔둬.”

어차피 리모컨은 이미 치워둔 상황이었다. 차선오가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하곤 관심도 없는 영화를 유심히 보는 척하며 덧붙였다.

“나도 보고 싶었던 영환데 잘됐네. 같이 보자.”

“…….”

꼼짝없이 계속 성인영화를 보게 된 하진은 그때부터 뻣뻣하게 몸을 굳힌 채로 화면에 집중하는 체했다. 다시 가슴을 비비고 싶단 생각뿐이겠지. 차선오는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 위로 느껴지는 하진의 눌린 귀나 볼의 감촉을 만끽하면서, 접시에 담아온 쿠키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샀어. 맛있는 거래.”

불쑥 입술 앞까지 다가온 손가락을 보고, 하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내가 집어먹을게.”

“뭐하러. 부스러기 떨어지면 성가셔.”

“…….”

“얼른, 입만 벌려. 넣어줄게.”

난처해하던 하진은 코앞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버터 향에 곧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입 안으로 쿠키가 쏙 들어왔다. 정말로 부스러기가 잘 생기는 쿠키여서 아랫입술에 가루가 묻어났다. 그걸 손으로 닦으려는데 차선오가 서슴없이 입술을 훑어 다시 밀어 넣어주었다.

“맛있지?”

“…웅.”

씹느라 발음이 뭉그러졌다. 조금 기분이 묘했다. 입속에 쑥 들어왔다가 점막을 스치며 나가는 굵은 손가락의 느낌이 어딘가 야릇한 충동을 일으켰다. 안쪽의 혀나 손끝이 닿은 입술 위가 저릿했다.

하진은 불온한 상상을 하면서 쿠키를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런 자각도 없이 다시 가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집에선… 꼬박꼬박 젖으로 자위를 해야 하니까.

“흐응….”

“금방 먹었네? 또 아 해봐, 하진아.”

차선오는 뻔히 보이는 그 광경을 전혀 못 본 척하면서 다시 하진에게 쿠키를 먹여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그래서 하진은 얌전히 차선오가 먹여주는 걸 거부하지 않고 족족 받아먹었다. 같은 행위가 몇 번 더 반복되었고, 차선오는 실수를 가장해 하진의 입술이나 혀를 점점 대범하게 건드렸다.

누가 봐도 이상야릇한 광경이었다. 싸구려 성인영화를 틀어 놓고 한 사람은 젖꼭지를 비벼대고, 한 사람은 그 입에 꼭 손가락을 물려주듯 쿠키를 밀어 넣는 상황이. 하지만 하진은 자신의 신체 반응에 푹 빠져 좀처럼 의심을 품지 못했다.

쿠키를 건네는 횟수가 조금씩 뜸해졌다. 그러다 한참 만에 다시 입술 앞에 무언가 다가오자, 하진은 기다렸단 듯이 얼른 입을 벌렸다.

“하으… 웁….”

그러나 이번엔 쿠키가 없었다. 그저 차선오의 굵고 유려한 손가락뿐이었다.

하진이 알아차렸을 땐 단단하고 힘 있는 손끝이 이미 그의 혀를 짓누르고 있었다. 흐, 으응…. 미약한 압박감에 절로 눈이 풀렸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닿는 손끝에서 버터와 설탕 부스러기의 맛이 느껴졌다. 그걸 조금 빨아보자 손가락이 안을 느리게 휘젓기 시작했다.

쪽쪽 소리가 났다. 하진은 차선오의 손가락을 핥아대며 민감할 대로 민감해진 유두를 더 세게 쿠션에 문질렀다. 흐으…. 본능에 빠져든 그의 몸은 무언가를 열렬히 원하고 있었다.

“맛있어?”

“으웅….”

차선오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세 개로 늘렸다. 그걸 빠듯하도록 깊이 물려 놓은 그대로, 제 허벅지를 베고 누워 바르작대는 하진의 몸을 훑어보았다.

“쓸리지 않게 해.”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하진은 이해하지 못하고 시선만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젖꼭지 말이야. 상처 나면 안 된다고 했잖아. 기억하지?”

차선오는 젖은 손가락을 빼 뺨을 문질러주면서 말했다. 위기감이랄게 전혀 없었다. 하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속에 감춘 뭘 건드리는지, 조금도 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얘기를 들은 하진이 턱을 낮추었다. 가슴 쪽이 축축하다는 걸 이제 막 깨달은 듯했다. 그 얼굴마저 위험할 만큼 온순했다.

“어때, 젖었어?”

“응. 많이는 아니고… 살짝.”

하진은 뒤늦게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비비적댔다. 그러자 무언가 딱딱하고 거추장스러운 게 그의 정수리 쪽에 닿았다. 하진이 고개만 빙글 돌렸다. 바로 앞에 불룩하게 솟은 차선오의 고간이 보였다.

“…….”

누가 봐도 한계까지 발기한 게 분명한 부피감에, 하진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아.”

좆을 세운 차선오는 태연히 바지 위로 제 것을 움켜쥐고 두어 번 가볍게 쓸어 올렸다.

“놀랐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 자극적이란 생각은 실수였다. 조금 당황한 표정도, 무척이나 새롭고 꼴렸다.

“미안, 좀 흥분해서.”

“흐, 흥분….”

바지 주름이 한층 더 팽팽하게 당겨지자 하진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차선오의 성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렇게 큰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옷 안에 가려졌는데도 윤곽이 어찌나 또렷했던지, 팽팽하게 들린 고간만 봐도 굵기와 길이를 알 것 같았다. 이번에도 뒤쪽이 확 조여들었다. 굵고 탐스러운 자태에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순간 스피커의 어색한 신음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흠칫 놀란 하진이 겨우 시선을 회피했다.

아, 흥분했다는 게… 영화 때문이겠구나. 그는 뒤늦게 깨닫고는 이상하게 풀이 죽어 입술을 꼭 물었다. 하지만 아까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의미로 한 말이려나….

머릿속이 뒤죽박죽된 하진은 애써 허튼 감정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면서도 허벅지를 바짝 맞붙인 채 자신의 다리 사이를 뻐근할 정도로 세게 압박했다.

“너무 서서 여기가 아프네.”

그때 머리꼭지 위에서 나지막한 혼잣말이 들렸다.

“좀 꺼내서 만져도 괜찮지?”

하진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지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익. 하진은 이유도 모르고 숨을 참았다. 습한 내음이 호흡기를 파고들었다. 정말 꺼낸 모양이었다. 그 굵고 탐스러운 걸. 어떻게… 왜?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어떻게 그런….

“하아….”

돌처럼 굳어 꼼짝도 못 하던 하진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가 베고 누운 허벅지 근육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바로 근처, 아주 가까이서 살을 치대는 듯한 소리도.

“너….”

탁, 탁, 탁. 소리는 제법 규칙적이었다.

“지, 지금 뭐 해?”

후우. 그가 숨을 뱉었다.

“왜, 이런 거 싫어?”

“…싫다기보단….”

하진이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자칫 머리에 그 무시무시한 기둥이 다시 닿을까 봐서 그랬다.

“놀랐잖아. 왜 갑자기 내 앞에서….”

“네가 먼저 유두로 자위했잖아.”

차선오는 당연하게 말했다.

“나도 이게 좀 아파서 그래.”

…그런가? 내가 한 게 자위였던 건가? 하진은 확인을 핑계로 슬며시 다시 가슴은 문질러 보았다. 흣…. 입술 새로 애타는 소리가 샜다.

하진은 쿠션으로 잘 숨기고 몰래 시도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차선오의 시야에선 훤히 다 보였다. 그가 헐겁게 쥔 자신의 귀두를 더 노골적으로 흔들었다. 이제 끝이 끈적한 액체로 찔꺽거렸다.

그 물기 어린 소리가 하진의 고막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본능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하진은 입속에 들어왔던 손가락의 느낌을 은밀히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혀를 짓누르는 그 감촉이 어쩐지 익숙했다. 조금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데…. 이런 건 분명 이상한 일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몸은 위화감이 없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무슨 행동이든 저지르라고 계속해서 그의 정신을 추궁하고 몰아붙였다. 후으…. 차선오가 다시 정제되지 못한 숨을 토해냈다. 그 거친 신음에 하진은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너… 마, 많이 아파?”

“글쎄….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

“왜. 도와주려고?”

차선오가 기다린 사람처럼 물었다. 두근두근. 하진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어떡하지…. 도와줘도 되는 걸까, 이런 걸….

“내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울 방법이, 있어?”

살 부딪히는 소리가 멈추었다.

“괜찮겠어?”

소리라도 멈추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리꽂히는 차선오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하진은 꼭 얼굴이 뚫리는 듯한 기분에 그만 고개를 비틀고 말았다. 그리고 짙은 샅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좆을 코앞에서 마주했다.

“나는….”

“입술, 아니면 손만 빌려줘.”

“…어떻게….”

“조금 만져주면 돼. 지금 내가 이렇게, 흔드는 것처럼.”

바지에 갇혀 있을 때보다 더 컸다. 무서울 만큼 부풀어 오른 크기에 즉시 거절할 만도 하건만, 하진은 어느새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거기서 시선을 못 뗐다. 풍겨오는 냄새도 전혀 역하지 않았다. 오히려 야릇하고 유혹적이었다.

“역시 안 되겠지. 내가 괜한 얘길….”

“하, 할 수 있어.”

“…그래?”

차선오가 나른하게 웃었다. 징그럽도록 부푼 귀두는 이미 선액이 조금 흘러 번들거렸다. 그가 뿌리 부분을 쥐고 하진에게 말했다.

“그럼 잡아봐, 여기.”

그가 젖은 끝을 가리켰다. 다른 남자의 성기였다면 분명 끔찍했을 텐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하진은 자세를 고쳐 눕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아….”

뜨거운 게 손끝에 닿자마자 하체까지 열이 올랐다. 두툼한 귀두를 살짝 말아 잡으니 그게 안에서 움찔대며 더 커졌다.

“괜찮아? 이렇게 해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다 좋으니까.”

차선오는 좆만 내놓은 그대로 소파에 등을 깊게 기댔다. 자리가 더 넓어지자 하진은 저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몸을 올려 부푼 자지에 달라붙었다.

어느새 영화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진은 주저하던 게 언제냐는 듯 점점 손을 빠르게 놀렸다. 탁, 탁. 아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그는 용기를 내서 손아귀를 조였다가 풀고, 더 아래까지 훑어보기도 했다.

갑자기 선단에서 희멀겋고 묽은 거품이 나와 기둥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진은 제 손에도 살짝 묻은 그것을 멍하니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 뭐가 자꾸 흐르는데….”

하진의 눈이 더욱 흐려졌다. 이거, 흘리면 안 되는 건데. 왜 이렇게 기분이….

“하진아.”

들려온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하진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도 모르게 벌어진 허벅지를 꽉 맞붙이고 손장난에 계속 집중했다. 움켜쥔 손바닥 안으로 마찰열이 고였다.

처음엔 그저 부드럽고 뜨겁다고만 생각했는데, 손목을 위아래로 흔들 때마다 위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내린 선액이 윤활제가 되어 닿는 부분이 죄다 미끄럽고 질척였다. 계속 보고 있으니 정말 이상했다. 거부감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술을 조금 마셔서인지 아까부터 몸이 좀 덥기도 하고… 엉덩이 사이가 움찔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

정말 좋아하게 된 건가. 누굴 좋아하면, 다 이런 건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차선오와 나는, 무슨 사이가 되는 거지.

“괜찮아?”

갑자기 목 근처를 어루만지는 손에 하진이 깜짝 놀라 몸을 튕겼다.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무서울 만큼 자극적이었다.

“하진아. 혹시 힘들면 지금이라도 말해.”

“아, 아니야.”

“몸이 뜨겁네. 더워?”

“으응….”

덥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단 마음은 여전했다. 분명 손아귀 안에서 꺼떡거리는 걸 보면 싫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쩌면 모자란가 싶기도 했다.

“혹시 별로야? 좀… 다르게 해볼까?”

하진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차선오는 하진의 부드럽고 촉촉한 살결을 만지작대며 제안했다.

“그러면 얼굴 조금만 더 붙여 볼래?”

“…이렇게?”

그는 서툴게 목을 빼는 하진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내렸다. 이번엔 등 쪽을 은근히 쓸어 만졌다.

“응. 거기서 입만 살짝 벌리고 있으면, 내가 흔들게.”

“흣….”

쥐고 있던 자지를 말랑한 뺨에 맞붙인 하진이 얼떨결에 입을 살짝 벌렸다. 비릿하고 짙은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벌리고 나서야 걱정이 됐다. 벌써 턱 끝을 찌르는 두께감이 심상치 않았다.

“그 정도는 괜찮지? 하아, 너 팔 아프니까….”

손가락만 넣어도 입이 꽉 찼는데, 이렇게 큰 게 다 들어가긴 할까…. 하지만 아까 입 안을 휘젓고 꾹꾹 눌러대던 압박감을 떠올리니 슬쩍 침이 넘어가기도 했다. 자글거리는 흰 거품이 보였다. 검붉은 귀두 가운데 고여 있는 그 액체에 이유 모를 욕심이 일었다.

차선오는 축축한 기둥을 천천히 훑다 뿌리를 쥐었다.

“많이 안 넣을 테니까 겁먹지 말고.”

그가 하진을 어르고 달랬다. 사실은 이미 목구멍 깊이까지 뚫어 놓은 지 오래였지만, 지금의 하진은 오럴 섹스를 처음 겪는 처지였다. 막상 좆을 박아 넣고 나면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그의 정신만큼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불그스름한 입술이 예쁘게 벌어져 그의 자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한 그의 것이 공중에서 꺼떡거렸다.

마치 하진의 처음을 여러 번 가지는 기분이었다.

차선오는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기둥을 조준해 하진의 입술 사이에 살짝 걸쳐 놓았다. 습하고 뜨거운 숨이 선단의 살갗을 감쌌다.

“후….”

“흐읍.”

고작 손가락 따위를 물릴 때와는 비교 못 할 만족감이 치솟았다.

“아… 좋다, 하진아.”

사실 지금은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다. 평소와 달랐다. 비록 직접 머리를 움직이거나 입술을 오므려 빨지는 않지만, 맨정신의 하진이 이렇게 얌전히 제 자지를 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차선오로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이대로 전부 내 것이 되었으면. 그가 팔걸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프지 않지?”

“으흐, 웁….”

“나도 좋아. 네 입 안, 축축하고 뜨거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서… 미치게 기분 좋아.”

그는 일부러 노골적인 표현을 쓰며 하진을 이 행위에 빠르게 적응시켰다. 이상한 게 아니라고, 좋은 거라고.

“조금 더 넣어도 돼? 미안, 조금만. 안 다치게 살살 흔들 테니까.”

의례적으로 달래는 목소리에 하진이 뭐에 홀린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가 아랫입술에 걸쳐둔 귀두를 좀 더 밀어 넣었다.

“후우.”

순간 하진의 윗니가 핏줄 돋은 기둥을 살짝 긁었다. 생소한 감각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처음 좆을 물릴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지금의 하진은 정말 오럴에 무지했다. 그토록 많이 빨아본 자지 앞에서 이를 세울 만큼.

차선오의 내리깐 눈에 이채가 돌았다. 하진의 반응이 어떨지 시도만 조금 해보다 그만두려 했는데, 어느새 그런 생각이 까맣게 지워졌다. 놓치기 싫었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였다.

그는 일부러 윗니에 긁히도록 자지를 몇 번 더 흔들었다. 그 느낌이 이상했던지 하진이 살풋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곧 어떤 본능에 이끌려 감추었던 혀를 내어 기둥 아래를 살며시 감쌌다.

여전히 순한 낯이었다. 제가 정확히 뭘 하는 줄도 모르는.

터져 나오려던 욕설을 간신히 삼켰다. 차선오는 단숨에 끝까지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겨우 갈무리했다.

점차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실은 이미 다 넘어온 게 아닐까? 이대로, 끝까지 저질러도 되는 게 아닐까? 만약 하진이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보지가 생기기 전이라도 그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면. 짐승의 눈을 한 그가 팔을 뻗어 하진이 끌어안은 쿠션을 낚아챘다.

“나도 만져줄게.”

가면 같은 얼굴을 벗은 그가 막무가내로 말했다. 쿠션 안쪽이 흥건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하진이 입고 있는 티셔츠는 정확히 젖꼭지 주변만 둥글게 젖어 있었다.

살짝만이라더니. 그의 머릿속이 점점 차가운 흥분으로 들끓었다. 충동이 빠르게 치솟았다. 순식간에 쿠션을 빼앗긴 하진이 달아오른 몸을 비틀어 숨기려 하자, 그가 솟아오른 유두를 짓눌렀다.

“…흐…!”

“여기 기분 좋지.”

“읏, 흐으… 잠, 웁, 잠깐….”

“부끄러워할 거 없어. 나 혼자만 좋으려니 미안해서 그런 거니까. 난 뭐든 해줄 수 있거든.”

그가 촉촉한 돌기를 손끝으로 능숙하게 둥글리면서 골반을 얕게 쳐올렸다. 하진은 점점 깊게 밀려드는 성기 때문에 퍽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혀를 내밀고 있었다. 가슴을 만져주니 좋은지 열 오른 눈꺼풀을 파르르 떨기도 했다.

“이상하지 않잖아. 창피하다 생각하지 말고. 나도 이렇게, 너한테 다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거부하고 피할 거였으면 애초에 지퍼를 내렸을 때부터 반항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몸에 새겨진 기억이 너무 많으리란 걸, 차선오는 알았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허리 짓에 박차를 가했다. 서툴게 이를 세우던 하진은 어느새 힘을 빼고 숨마저 참고 있었다.

“후읏, 끅….”

넣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그가 하진의 미끄러운 입천장에 귀두를 넣어 비비면서 축축한 유두를 꼬집고 비틀었다. 하진이 크게 바르작거렸다.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깊이 빨아당기듯 기둥에 달라붙는 점막의 느낌. 손안에 감기는 매끈한 유두의 감촉에 파괴적인 기분이 솟구쳤다.

경계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웃음이 났다. 현실을 간과한 전신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찔꺽, 찔꺽, 야릇한 침 소리. 뽀얀 젖물이 질질 흐르는 소리. 입보지가 자지를 삼키고 기쁘게 핥아먹는 소리.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나의….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흐웁, 으… 흐, 켁, 큽…!”

하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목 끝까지 좆을 쑤시고 있었다.

“…아.”

하진의 목 위로 기둥의 실루엣이 툭 불거져 나온 게 보였다. 고아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한계까지 벌어진 입술은 옅게 경련했다.

고양되던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차선오가 얼굴을 구겼다. 지나치게 흥분한 게 실수였다. 잠깐만 넣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이런….

그는 벅차도록 밀어 넣은 좆을 빼내려 허리를 물렸다. 그러나 처음엔 이를 세우고 서툴게 입술만 벌리고 있던 하진은 어느샌가 스스로 목구멍을 조여가며 짓눌린 혀끝으로 기둥을 핥아대고 있었다.

“잠깐… 큿.”

그 무의식과 같은 행동에 차선오는 허무하게 사정하고 말았다.

끈적한 정액이 하진의 좁고 뜨거운 입 안에 몇 번에 걸쳐 흩뿌려졌다. 목구멍 안쪽에 바로 싸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역시 의도한 결과가 아니었다.

“흐읍….”

갑자기 입 안으로 덩어리져 쏟아지는 뜨끈한 액체의 느낌에 하진은 깜짝 놀라 한쪽 눈을 떴다. 귀두를 핥던 혀도 굳어버렸다. 그제야 성기가 입 안에서 빠져나갔다. 입술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그것은 여전히 크고 단단해 보였다.

입속이 끈적했다. 하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을 헤벌리고 차선오를 올려다보았다. 현실과 최면의 경계로 얼룩진 눈이었다. 혀 위에 모인 것을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특유의 짙고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쳐 들자,

“…….”

하진의 이성 어딘가가 마비될 것처럼 흔들렸다. 선오 냄새…. 하진은 풀린 눈으로 정액을 오물오물 음미했다. 정액이 혀 위로 굴러다녔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아래가 뻐근하고 뜨거워졌다. 그대로 혀에 묻은 걸 손으로 훑어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니, 확인이 아니라….

“…여기 뱉어.”

그때 턱에 무언가 닿았다. 차선오가 어느샌가 티슈를 뽑아 하진의 입가에 대주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진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번에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침과 섞인 흰 정액은 양이 꽤 많았다. 차선오는 더러워진 티슈를 뭉쳐 내던지고 새 티슈를 다시 잔뜩 뽑아 하진의 입 주변을 직접 닦아주었다.

구겨진 티슈에 자꾸 눈이 갔다. 뱉어낸 정액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진아, 그….”

차선오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사정했음에도 여전히 꼿꼿하게 선 성기를 대강 정리하고는 거칠게 얼굴을 쓸었다. 하아…. 무거운 한숨이 적막을 메웠다.

공기가 무섭도록 어색해졌다. 의식을 되찾은 하진은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에 휩쓸려 돌발 행동을 저질렀다는 걸 그제야 자각할 수 있었다. 몸을 살피니 젖어 있는 가슴이 보였다. 언제… 이렇게 됐지. 하진은 당황해서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얼른 주워 몸을 가렸다.

“나 오, 오늘은 먼저 잘게.”

그러고는 차선오를 내버려 둔 채 소파에서 황급히 벗어났다.

*

그날 밤. 하진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새것이나 다름없는 손님방 침대에 누웠다. 오피스텔에 들어온 이후로 멀쩡히 혼자 잠드는 게 처음이었지만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꿈을 꿨다.

이제는 거의 휘발되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학창 시절의 장면들이 새삼스레 스쳐 지나갔다. 좋은 시절이었다. 즐겁고 평범한 나날들. 공부엔 전혀 소질이 없었지만 언제나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심심할 날이 없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한 몇몇 얼굴들이 보이더니, 곧 주인공이 나타났다.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교복을 입은 차선오. 흑백 영상 속에서 오직 그만이 색을 입은 것처럼 눈에 띄었다.

그는 하진만 보고 있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결 앳된 얼굴로, 어울리지 않게 서늘한 눈을 한 채 하진의 움직임만을 무섭도록 쫓았다.

처음으로 의심이 생겼다.

다시 만났을 때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그다지 친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 기억이 왜곡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사실은 그 작고 네모난 교실 안에서 저 역시 그를 의식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자그마한 의심.

“잘 잤어?”

아침이 되어 부딪친 얼굴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하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차선오를 그저 친구로만 대할 수 없게 됐단 사실을.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굴렀다. 안 보는 척하면서 다리 사이를 은근히 훑어보니 뺨에 열이 올랐다. 어제 저기에 얼굴을 대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니…. 수치심과 더불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만약 차선오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분명 거부감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 반대였다. 하진은 그 이유가 오로지 우정이나 고마운 감정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면 알 것도 같은데. 이 감정이 뭔지….

“으응. 너는?”

“난 못 잤어.”

차선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혼자 자니까… 잠이 안 오더라.”

덧붙여 중얼거린 말은 좀 이상했다. 매번 혼자 잤을 텐데 무슨 소리일까. 그만큼 어제 일이 혼란스러웠다는 의미일까…? 하진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발끝을 어색하게 꼼지락댔다. 어제 그렇게 방으로 도망쳐버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할까 싶었다.

“저기… 어제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

“…….”

“자연스러운… 거니까. 순간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주저하던 하진이 용기 내어 웅얼거렸다. 그때 묘한 얼굴을 하고 있던 차선오가, 갑자기 하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서, 선오야.”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몸 전체가 푸딩처럼 크게 흔들렸다. 얼떨결에 품에 안긴 순간, 차선오가 무너지듯 하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다행이다.”

늘 차갑게 보이던 얼굴이 뜨거웠다. 몸이 너무 가까이 붙어서, 하진은 저도 모르게 하체를 살짝 뗐다.

“불쾌했을까 봐 계속 걱정했는데.”

안겨 있는 자세 때문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귓가에 닿는 목소리만큼은 더없이 진중했다. 하진은 애꿎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사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렇게 불쾌하지 않았으니까….

“술 때문에 내가 주체를 못 했나 봐.”

안정을 되찾은 차선오가 부드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수였어. 이제 이런 일 없게 할게.”

그 말엔 되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난, 또 해 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오히려 선오가 난처해하겠지. 순전히 술기운 때문이라면….

“어… 응.”

하진은 일말의 의심 없이 속아 넘어갔다. 그는 용기를 내어 손을 올렸다.

처한 상황도 모르고, 하진이 차선오의 등을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토닥였다. 어설프게나마 위로를 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마저도 곧 설렘으로 바뀌었다. 손바닥 아래 느껴지는 뜨거운 피부와 단단한 등 근육, 그리고 제 것과 비슷하게 뛰는 심장 박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 차선오는 하진이 보이지 않는 쪽에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지난밤의 사건으로 하진이 자신을 밀어내거나 벗어날까 봐 내내 걱정하던 마음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그는 믿게 됐다. 어떤 환희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는 걸.

가까운 미래에 하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두 사람의 앞날을 단단히 묶을 것이다. 그는 확신을 새겨 넣듯 하진을 더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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