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얀 손끝이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자 눈에 익은 공간이 하진을 반겼다. 오피스텔 안은 어제와 똑같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그 위로 내려앉은 차분한 어둠. 좋은 향기.
하진은 종이쪽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얼른 외워야 하는데. 그것보다도 적어도 오늘은 안 잃어버리는 게 중요했다. 집에서는 그렇다 쳐도 혹시 밖에서 누가 주우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정말로 차선오에게 면목 없을 것 같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지갑에 잘 넣어놔야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생각했다. 열린 문 사이로 서둘러 몸을 들일 때까지도, 계속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오피스텔의 어둠이 하진을 삼키고, 등 뒤로 문이 닫히자.
“…….”
그는 다시 쪽지를 놓치고 말았다.
툭. 현관에 가볍게 떨어져 내린 종이처럼 하진의 이성도 빠르게 무너졌다.
첫날이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곧바로 기절하듯 쓰러지지 않았다. 겉보기엔 똑같았다. 대신 정신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부터 해야 할 행동이 또렷하게 떠올라 그를 지배했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하아….”
조급한 마음에 나른한 숨을 내쉬면서, 하진은 신발과 가방을 동시에 벗었다.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지퍼를 열고 택배 박스를 꺼냈다. 분명 오피스텔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스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다시 최면에 걸리자 너무도 당연하게 박스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최 대리가 재포장한 박스가 빠르게 뜯겨나갔다. 하진이 찾는 건 하나뿐이었다. 아까 입으려다 만 스타킹. 얼른 그걸 입어야 했다. 선오가 이따가 집에서 입자고 했으니까. 약속했으니까. 분명 기대할 테니까….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입고 준비해야 했다.
현관에 꿇어앉은 채로 한참이나 뒤적거린 끝에 찾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진은 스타킹 포장부터 뜯어 놓고 황급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미 회사에서 한 차례 벗으며 구김이 남은 셔츠와 바지, 끝에 침이 묻었던 흰 티셔츠가 빠르게 벗겨져 나갔다. 하얀 양말과 회색 속옷까지 거침없이 내리자 하진은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여름의 끈적한 실내 공기가 하얀 나신을 훑고 지나갔다.
이제… 스타킹을 신을 차례였다.
급한 대로 집어 올려보니 얇고 흐물흐물한 망 같은 것이 기다랗게 늘어졌다. 그걸 보는 하진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는 오피스텔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얼른 입어야 하는데, 사실 하진은 스타킹을 신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가 신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어쩔 줄 모르고 망설이던 하진은 비교적 널찍하게 트인 허리 부분부터 양옆으로 벌려보았다. 생각보다 쉽게 벌어졌다. 어떻게든 다리를 잘 밀어 넣으면 될 것도 같았다. 사실 마음이 급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진은 오피스텔 현관 바닥에 알몸으로 서서 서툴게 스타킹을 신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해도 멀쩡한 성인 남성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여성용 스타킹을 신는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그걸 신고 싶어서 내내 안달이던 사람으로 오해하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하진의 목적은 확실했다.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단 생각도 없이 한쪽 다리부터 밀어 넣기 시작했다. 요령이 없어 생각처럼 잘되지 않자 무작정 손으로 끌어 올렸다. 얇고 흐물거리는 게 자꾸 이리저리 움직여 점점 초조했다. 그는 잡은 손끝에 힘을 주어 당겼다.
결국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올이 나가고 말았다.
“아, 안돼….”
하진은 좌절했다. 단순히 신으려던 스타킹이 망가져서가 아니었다. 선오에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맺히려고 했다.
실망하면 어쩌지? 신으면 예쁠 것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찢어진 걸 신고 있어도 예뻐해 줄까. 선오가 예쁘지 않다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점점 커졌다.
“…흐윽.”
혹시 다른 게 있는지 살펴봤지만 똑같은 건 없었다. 새하얀 망사 스타킹이 있긴 했지만, 척 보기에도 너무 달라 보였다. 나머지는 전부 란제리류였다.
하진은 어쩔 수 없이 찢어진 스타킹을 계속 끌어 올렸다. 올이 나가긴 했어도 얇은 검정 스타킹은 살집 없는 매끈한 다리와 무척 잘 어울렸다. 다행히 양다리를 전부 감싸는 데는 성공했지만 찢어진 구멍은 한층 커져 있었다. 하필이면 허벅지 쪽이어서 유독 더 잘 보였다.
찢어진 부위를 계속 매만지다가 무릎을 꿇고 허리 밴드를 잡아 올렸다. 쭉쭉 늘어나는 스타킹은 하진의 늘씬한 허리에도 무리 없이 잘 맞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흡…?”
속옷까지 전부 벗은 터라 하진의 성기 위에 그대로 스타킹이 닿았다. 오피스텔에 들어오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발기한 탓에, 부풀어 오른 분홍빛 귀두에 매끄럽고 얇은 막 같은 것이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으, 하앗….”
느낌이 이상했다. 차갑기도 하고, 간질간질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이 감촉이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소한 자극에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하진은 일부러 민감한 귀두 부분을 스치려고 몇 번인가 매무새를 고치는 척하면서 스타킹에 자지를 비볐다.
“으응, 흐…! 응… 아아….”
어느샌가 그의 입에서 달콤한 신음이 새어 나갔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머릿속에서는 누군가 성기를 만져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손의 주인은 분명했다. 핸들을 잡고 있던, 커다랗고 단단한 손….
“하… 아흐, 선오야….”
참을 수 없는 자극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계속 아래를 만지작거리던 하진은 바닥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미지근한 대리석 바닥이 하진의 몸에 닿았다. 그는 정신없이 쾌락에 빠져들었다.
귀두를 감싸고 흔드는 손이 점점 빨라졌다. 탁, 탁. 감기는 느낌만큼이나 소리도 생소했다. 모든 것이 하진을 음탕하게 만들었다. 계속 부풀어 오르는 성기 때문에 얇은 스타킹의 앞부분이 따라서 들리다가, 곧 동그랗게 젖어 들었다.
“흣…!”
귀두에서 묽은 선액이 팍 튀었다. 맞닿은 부분을 정확하게 물들이고도 모자라 밖으로도 흘렀다. 투명한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미끌미끌한 스타킹에 비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데 질척한 물기까지 더해지니 점점 더 성감이 짙어졌다. 흐아… 아, 아…! 온몸에 열이 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진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닿을 때마다 헐떡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만지는 족족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 끝에서 부끄러운 물이 튀었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스타킹의 감촉에 몇 번이나 싸버리고 만 하진의 손은 이어서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향했다.
집에선 틈이 날 때마다 젖을 키워야 했다. 사실 스타킹을 신는 것만큼 급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선오와 약속한 부분이었다.
하진의 젖꼭지는 이제 가만히만 있어도 잔뜩 민감해진 채였다. 팀장실에서 혀가 닿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다시금 한 차례 물을 흘려버릴 것 같았다. 흐으읏…. 하진이 화끈거리는 유두의 겉을 조심조심 건드렸다. 그러자 뜻밖에도, 무언가 미끄덩한 액체가 손끝을 적셔왔다.
“……?”
뭐, 뭐지…? 그가 감은 눈을 떴다. 손자국이 남아 불그스레한 가슴을 내려다보자, 젖꼭지 위에 무언가 몽글몽글하게 맺혀 있었다.
묽고 반투명한, 흰 액체였다.
아래에서 흘린 게 묻었나 싶었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아니었다. 그보다 흰빛이 돌았다. 아래로 뚝뚝 흐를 정도까진 아니어도, 동그란 단면 위로 작은 방울들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이, 이게 뭐야…. 흐아, 앗….”
가슴에서 뭐가 나온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었다. 몸이… 어떻게 된 거지? 이런 이상한 게 왜…. 왈칵 두려워진 하진은 더 이상 어디에도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자신의 젖은 유두를 정신없이 내려다보았다.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푼 게 이것 때문이었을까. 꼭… 아이들이 빨아먹는 젖을 연상케 하는 액체였다. 자칫 여기서 조금만 세게 문지르면 더 새어 나와서 아래로 흐를 것만 같았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면 어쩌지. 차선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상한 걸 흘린다고 생각할 텐데. 걱정이 무럭무럭 커졌다. 사색이 된 하진은 급한 대로 벗어 던진 속옷을 집었다. 그걸로 가슴의 젖은 부분을 훔치듯 닦아냈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때였다.
삑삑삑. 아주 가까운 곳에서 경쾌한 기계음이 들렸다.
“아아….”
어떡해. 울상이 된 하진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열린 틈 사이로 차선오가 나타났다. 센서 등이 밝아지며 하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이런.”
문밖에 선 이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현관 앞에 널브러진 하진은, 차선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어제보다 한층 더 예쁜 모습으로.
“하진아.”
“흐….”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순간 하진의 손에서 얼룩진 속옷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발긋한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들어가 쉬지 않고.”
군살 없이 매끈한 다리에는 살결이 비치는 검정 스타킹이 신겨 있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헤벌어진 채, 찢어진 구멍과 앞부분의 얼룩을 다 드러낸 모습이 꼭 봐달라는 것처럼 무방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흐윽, 그… 그게….”
가슴이 젖어 있었다.
하진이 급히 닦아낸 것이 무색하게도, 그의 유두에는 다시금 희멀건 젖물이 맺혀 번들거렸다. 아주 위험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차선오가 눈앞에 나타난 이상, 하진의 온 신경은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었다.
차선오가 하진이 떨어뜨린 회색 브리프의 얼룩을 보았다.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까운 걸 겨우 저런 천 조각으로 문지르다니. 그는 입속의 혀를 느리게 굴렸다. 진득하고 달큰한 맛이 입가에 맴도는 듯했다.
“선오야….”
그는 애타게 제 이름을 부르는 하진을 슥 보고는, 신고 온 구두부터 벗었다. 현관 바닥의 구둣발 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스산했다. 곧 아래로 향한 시야의 가운데,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진이 또다시 까맣게 잊어버린, 종이쪽지였다.
그래, 아직은…. 차선오는 쪽지를 집어 앞뒤로 대강 돌려 보고는, 다시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구두를 마저 벗고 들어서는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사이 하진은 무슨 일이 지나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몸을 일으켜 현관 앞에 어설프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 선오… 흡.”
그가 아까보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눈이 마주쳤다. 더없이 순종적인 하진의 낯에는 완전히 버리지 못한 수치심이 언뜻 배어 있었다. 그새 또 겁을 먹을 줄은 몰랐는데. 워낙 다정하게 대해준 탓일까. 조금만 반응이 없어도 큰일이 난 것처럼 구는 하진이 귀여웠다.
“뭐 했어? 차에서 내려줄 때 들어가서 쉬라고 한 것 같은데.”
“이거….”
“응?”
하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스타킹을 뭐라고 지칭했더라. 기억을 더듬던 하진이 답을 찾아 얼른 설명했다.
“잠옷… 입은 거 보여주려고 기다렸어.”
“아아.”
짧게 대꾸한 차선오가 시선을 낮추었다. 스타킹은 상상 이상으로 잘 어울렸다. 체모 없이 날씬한 다리는 이보다 더 과감한 디자인도 어렵지 않게 소화할 듯했다. 또 다른 걸 입혀볼 생각에 허리와 허벅지, 종아리를 샅샅이 살피는데 묘하게 하진의 자세가 경직된 게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살에 달라붙는 느낌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세뇌 때문에 당연히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워한다거나.
후자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와중에 수치심까지 느끼면, 차선오에게는 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가느스름해진 눈으로 하진을 살펴보던 그가 느긋이 말했다.
“예쁘게 잘 어울리네. 그런데….”
기다란 손가락이 한 곳을 짚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 때문에 고스란히 보이는, 올이 나간 부분이었다.
“여기는 찢어졌네? 젖기도 했고.”
“아, 이건…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기로 번들거리는 사타구니를 정확히 가리키자, 하진은 황급히 그 부분을 가렸다. 겨우 손바닥으로 전부 가려질 리 없는데도, 어떻게든 애는 썼지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뭘 했는지 알만했다. 차선오가 픽 웃었다.
“서툴러서 그랬구나.”
“잘… 해보려고 했는데….”
“다음부턴 내가 직접 신겨주는 게 좋겠다. 아니면 언제 같이 잘 신는 연습이라도 할까?”
“으, 응. 좋아….”
차선오는 느릿느릿 말하면서 하진의 말캉해 보이는 분홍빛 고환과 부풀어 오른 기둥을 즐겁게 구경했다. 아까보다 젖물이 더 배어 나온 유두도 물론이었다. 빼놓지 않고 꼬집은 모양인지 약간 불그스름한 게 무척 탐스러웠다.
기껏 포장해 온 저녁거리를 아무 데나 올려둔 그가 천천히 하진의 뒤로 움직였다. 눈길도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무릎을 꿇고 있어 맞붙인 채 짓눌린 발뒤꿈치. 그 끝은 은근히 엉덩이 사이의 구멍을 짓누르고 있었다.
입맛이 돌았다. 그가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주춤거리는 하진을 일으켜 세웠다. 달콤한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 황홀함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껴안듯이 제게 지탱하도록 했다.
“읏….”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하진은 민감해진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단단한 팔로 허리를 감싸 안고 안으로 이끌었다.
“하진아, 그 잠옷 말이야.”
“으응…?”
“혹시 뒤에는 안 찢어졌는지 한 번 봐야겠는데. 어디가 좋겠어?”
그의 손이 하진의 몸을 선 채로 은근히 주무르듯 만졌다. 품에 꼭 들어맞는 사이즈여서 도저히 건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밥도 먹고, 마사지 핑계로 충분히 유희도 즐기면서 천천히 섹스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전부 어그러지고 있었다.
“아읏, 거… 거기는….”
“소파? 침대? 아니면, 부엌 테이블에 올라갈래?”
의사를 묻는 세심한 말투에 하진은 어쩔 줄 모르고 눈을 굴렸다. 스타킹의 뒤가 찢어지지 않은 건 이미 몸을 기댄 자세 때문에 차선오도 충분히 알만했으나,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중요한 건 방금의 질문이었다.
소파. 침대. 부엌 테이블. 선택지가 여럿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서 보여주면 좋을까? 선오는 어디를 가장 좋아할까.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잠옷을 보여주는 거니까 당연히….
“침대…?”
“응, 그러자.”
조심스러운 하진의 말과 달리, 대답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말끔했다. 가볍게 웃은 차선오가 하진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 사실 서 있는 곳에서는 하진의 침실이 더 가깝긴 했으나 지금은 목적지가 명확했다.
차선오에게는 이 순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온 순간이었다. 자신이 골라준 옷차림으로, 자신의 침대에 스스로 눕는 박하진이라니.
온갖 감정이 고양되었다. 벌써부터 저릿한 만족감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가 불을 켰다. 밝아진 방의 정면에 커다란 침대가 마치 하진을 위한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 하진의 탁한 시선이 정확히 그쪽을 향했다.
“…자.”
유혹하듯 달콤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여기서 보여줘. 하진아.”
그러나 하진의 발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몇 초간 머뭇거렸다. 호기롭게 침대로 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하려니 벽에 부딪힌 듯 모습이었다.
하진은 자신이 없었다. 괜찮을지 걱정도 됐다. 처음 마주한 차선오의 침대가 낯설어 좀처럼 확신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 그릇된 일을 저지르는 것 같다고, 그의 온전한 정신이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다시금.
“얼른.”
절대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보여주려고 입은 거잖아.”
뒤에 선 차선오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 역시 점점 기대에 젖어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체취.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을 넘기 직전 고민에 빠진 하진의 얼굴이 그를 흥분케 했다.
“네 몸, 천천히 제대로 보고 싶어.”
“…….”
“전부 핥고 빨아주고 싶어. 안까지 샅샅이 만지고 밤새 키스할 거야. 하진이 너도 그걸 바라잖아.”
음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하진의 두 눈에도 점점 욕망이 차올랐다.
“…응.”
결국 고개를 주억거린 하진이 천천히 움직였다. 상식은 재정립되었다. 이왕 보여줄 거면 제대로 보여주는 게 좋으니까…. 용기가 없어도 당연히 해야 했다. 역시 선오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이토록 배려해 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자신의 당연한 의무였다.
침대로 가까이 다가간 하진이 조심스레 한쪽 다리를 올렸다. 스타킹이 주욱 늘어나면서 유일하게 잘 보이지 않던 뒷구멍이 언뜻 보였다.
“읏, 선오야. 여기면… 흐으, 잘 보일까?”
시선이 어디에 꽂히는 줄도 모르고, 하진은 대뜸 상체부터 숙였다. 위에 달린 조명이 그의 등허리와 그 아래를 가감 없이 비추었다.
“응. 거기서 엎드려볼래? 허리 더 숙이고. 아직 잘 안 보이네.”
“으응, 그럼….”
하진은 시키는 대로 했다. 뒤가 벌어지는 느낌이 나자, 어쩐지 떨리고 흥분됐다. 그의 목덜미와 귓불이 붉게 익어갔다. 그 아래의 동글동글한 어깨와 휘어진 등허리, 위로 치켜 올라간 엉덩이 사이에도 전부 야릇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 이제… 잘 보여?”
“…….”
“선오야. 얼른 봐줘, 내 여기….”
조용하던 차선오가 발을 옮겼다. 침대 가까이 다가온 그는 어느새 거추장스러운 넥타이며 손목시계를 다 풀어 놓은 채였다. 흰 이불 위에 개처럼 엎드린 하진의 검은 스타킹이 반짝거렸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예뻤다. 이대로 영원히 박제해두고 싶을 만큼.
차선오는 잠시 무엇도 하지 않고 하진을 눈으로 훑었다. 살면서 본 어떤 것보다 자극적인 광경이었지만, 그보다도 황홀하단 기분이 더 컸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충만감이 몸속 곳곳으로 번졌다. 이대로 하진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싶은 욕망과, 영원히 제 곁에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애정이 번갈아 들끓었다.
뻗어 나간 손이 반질거리는 엉덩이를 쥐었다. 으흐읏…. 하진이 긴장 섞인 신음을 흘렸다.
“좀 더 제대로 말해줘, 하진아. 뭘 보라는 건지.”
“하앗, 그건….”
하진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커다란 손은 허리로, 다시 엉덩이로, 허벅지와 그 틈까지 연신 부드럽게 훑었다.
사악, 사악. 손바닥이 스타킹 위를 스칠 때마다 간지러운 소름이 일었다. 점점 몸이 달아올랐다. 낯선 공간이지만 차선오의 냄새가 가득 밴 곳이었다. 하진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꼭 사방에 그가 가득한 느낌. 더 보여지고 싶고, 만져지고 싶었다. 그것만이 지금의 하진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흐, 으응, 흑….”
허벅지 안쪽까지 스쳐오는 차선오의 손길에 하진이 비음을 흘렸다. 이제는 무릎에 닿는 이불의 촉감마저 자극으로 다가왔다. 기대감과 긴장이 뒤섞였다. 흥분을 참지 못한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데, 때마침 등 뒤에서 그걸 간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보지 검사해 달라고 말해야지.”
“…….”
“그러라고 내밀고 있는 거 아니었어? 자지 먹을 준비 됐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아… 그렇지. 잠시 멈칫하던 하진이 곧 떨리는 턱을 끄덕였다. 그러고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양손을 뒤로 뻗었다. 하얀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가 엉덩이를 활짝 벌렸다. 사이에 다물린 좁은 구멍을 잔뜩 보이곤 말했다.
“검사… 해 줘.”
처음엔 작았던 목소리가 점차 확신을 얻으며 분명해졌다.
“흐읏, 준비됐는지… 검사해 주세요. 선오야… 자지 잘 먹을 수 있어요. 네…? 흐으, 얼른 봐줘…. 뒷보지에 박히고 싶어서 벌리고 있어요….”
그는 정말 바란다는 듯 애타게 빌었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타킹에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사이가 벌어지면서 부끄러운 부위가 가득 드러났다. 차선오가 소리 없이 웃었다. 하진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았다.
“그러게, 하진아.”
힘이 들어간 검지 끝이 숨겨져 있던 가운데를 노골적으로 스쳤다. 아직 스타킹이 사이에 있어 직접 닿은 건 아니었지만, 아까 스타킹에 비비며 한 차례 자위했던 하진에게는 그 역시도 엄청난 자극이었다. 촘촘한 주름이 즉시 움찔거리며 꽉 조여들었다.
“이제 잘 보여. 하진이 보지 벌렁거리는 거.”
“하으, 아… 아흥….”
“언제부터 준비했어? 누가 보면 하루 종일 자지 씹을 생각만 한 줄 알겠다.”
차선오는 낮게 중얼거리면서 하진의 약한 부위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축축한 성기부터 회음부, 구멍까지 전부 놓치지 않고 건드렸다. 팽팽해진 스타킹 때문에 완전히 닿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하진을 애타게 했다.
“흐으으…! 아, 흐…!”
“흔드는 것 좀 봐. 하진아, 기분 좋아? 울 정도로?”
“조, 좋아, 거기이, 으으응…!”
하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감추거나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차선오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계속 뒤를 벌린 채 내어주기 바빴다.
차가운 손끝이 열 오른 구멍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칠 때면 애가 타서 견딜 수 없었다. 유독 예민한 부위가 건드려질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지워질 정도로 좋았다. 그는 어느샌가 차선오의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더 뒤로 빼면서 매달렸다. 진작부터 젖어서 번들거리는 귀두는 어김없이 부풀었고, 입 밖으로 자꾸 달뜬 신음이 새어 나갔다.
“얼마나 씹질이 고팠으면 이렇게 벌리기까지 하고. 그동안은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아흣, 으, 응…! 모, 몰라. 얼른….”
“이 정도면 내 좆집하려고 태어났나 봐. 그렇지?”
“아앙… 앗, 흐으, 아…!”
손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할딱이는 하진의 숨소리 역시 더욱 가빠졌다. 버티는 게 점점 힘들어지자 애가 탄 하진이 허리를 크게 떨었다. 그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려 자신의 성기를 쥐려는 순간.
투둑, 하고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흑.”
그건 하체를 조이고 있던 얇은 스타킹의 일부가 찢겨나가는 소리였다. 올이 나간 부분에는 차선오의 손가락이 박혀 있었다.
얄팍한 섬유는 너무도 쉽게 갈라졌다. 반투명한 검은 스타킹 사이, 세로로 기다랗게 생긴 틈은 엉덩이 가운데의 가장 부끄러운 곳만을 교묘하게 드러내 보였다. 꽉 다물린 분홍빛의 구멍과 번들거리는 성기가 동시에 해방되자 하진은 놀라 젖은 눈을 크게 떴다.
당황할 새도 없이 곧바로 맨살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일까? 어쩌면 이제부터 제대로 만져주려는 걸지도 몰랐다. 욕심과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여태도 좋았는데 얼마나 더 황홀할지. 그대로 먼저 문지르며 비비고 싶을 정도로 잔뜩 안달이 났다.
“흐, 선오야, 나 급해… 어, 얼른….”
하진이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찾아올 쾌감에 다시금 눈을 감으려는 순간.
“……!”
어떤 예고도 없이, 구멍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밀려 들어왔다.
“끄, 흐…!”
얻어맞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세심하게 매만져주던 손이 아니었다. 딱딱하고도 거대한, 뜨겁게 박동하는 살덩이가 좁은 구멍을 억지로 벌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하아… 좁네.”
여전히 셔츠와 바지를 온전히 걸친 모습 그대로, 흉기 같은 성기만 내놓은 차선오가 희미하게 웃었다. 입구를 짓이기며 무자비하게 쑤셔 넣으려는 아래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하기만 했다.
“잘리겠어, 하진아. 아직 끝만 살짝 들어갔는데… 왜 이렇게 못 받아먹을까.”
“흐, 아, 아흑….”
“좋아하는 자지 먹여주고 있잖아. 힘 풀어야지.”
그러나 그의 밑에 엎드린 하진의 사정은 달랐다. 준비 없이 삽입을 맞이한 탓에 본능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물을 질질 흘리며 스스로 비비던 게 언제였냐는 듯, 성기가 약간 비집고 들어온 것만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이게… 맞는 건가?
예고 없이 찾아온 행위가 하진에게 혼란을 주었다. 선오가 좋아한다면, 원하는 거라면 분명 기뻐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도 생소한 고통이었다. 흐윽… 끅. 서러운 울음소리를 도무지 삼킬 수 없었다. 고작 이틀 만에 애정 어린 전희에 익숙해진 몸은 지레 겁부터 먹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
“숨 제대로 쉬어, 하진아.”
그때 낮은 속삭임이 내려앉았다. 귀두와 그 아래까지 빡빡하게 달라붙는 내벽의 느낌이, 차선오는 싫지 않았다. 야릇한 차림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진의 모습이 예뻤고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마냥 아프게만 할 생각은 없었다. 얼른 넣어달라 조르는 모습이 예뻐서 급히 찔러 넣긴 했지만, 아직 이성이 남아 있었다.
그가 흘끗 시선을 내려 접합부를 살폈다. 두꺼운 성기를 버겁게 물고 있는 구멍이 마치 박동하는 것처럼 벌름거렸다. 제법 유연하던 허리도 뻣뻣하게 굳어서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자비를 베풀 듯 암시를 불어넣었다.
“계속 쑤셔지고 싶었잖아.”
깊고 뜨거운 숨과 함께.
“하루 종일 자지 먹고 싶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집에 오자마자 도와주는 건데…. 제대로 씹어야지.”
“…흐, 으흑….”
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금방 흐물흐물하게 풀어질 법도 한데, 이쯤이면 정말로 버거운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덧붙였다.
“하기 싫어?”
“…….”
“하진아. 나도 억지로 할 생각은 없는데, 하지 말까?”
“아, 아니…! 아니야… 흑, 읏.”
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하진은 엎드린 채로 곧장 고개를 저었다. 오해를 살까 봐 무서웠다. 그는 아랫입술을 꾹 문 채로 떨리는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차선오가 조금 밀어 넣었던 귀두를 다시 빼내고는, 벌름거리는 입구를 짓이기듯 둥글게 비비면서 재차 물었다. 두툼한 선단이 닿을 때마다 엉덩이 전체가 애교를 부리듯 움찔움찔 떨렸다.
“그럼 어떻게 해줘. 얘기해 봐.”
“하앗, 그… 흐, 그건….”
자지가 빠져나가자마자 다시 좁아진 입구에 닿는 느낌이 너무도 적나라했다. 하진은 눈을 꽉 감았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고부터 내내… 아니, 어쩌면 하루 종일… 이렇게 쑤셔지고 싶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전 들어왔던 건 너무 크고 굵었다.
“하, 하고… 싶은데….”
조금 천천히. 다른 것부터 하면 안 되는 걸까. 혀를 빤다든가 가슴을 만진다든가…. 하진의 머릿속에 다른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부탁했다간 화를 부를 것 같았다.
어떡하지…. 이대로 그만두면 안 되는데. 조바심이 났다. 하진이 어떻게 할 줄 몰라 망설이자 이번에는 그보다 작은 무언가가 구멍을 건드렸다.
“…흐, 아…!”
“쉬이, 아픈 거 아니야.”
그건 축축하게 침을 묻힌 엄지손가락이었다. 차선오는 손끝으로 움츠러든 주름 사이사이를 간질이면서 하진을 다독였다. 한층 부드러워진 애무에 뻣뻣하게 굳어 있던 하진도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읏… 으으응.”
구멍이 서서히 젖어갔다. 주변이 번들거릴 때까지 공들여 매만지고 살살 풀어주는 동안, 하진의 신음도 점점 가느다랗게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은 건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자지를 조르듯 벌름거렸다. 안쪽의 분홍빛 내벽이 슬쩍슬쩍 보였다가 사라질 때마다, 차선오는 인내심이 점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스타킹 신은 하진의 허벅지를 붙잡은 채로, 살짝 벌어진 구멍 위에다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검지와 중지를 맞붙여 타액을 깊이 밀어 넣듯 푹 들쑤셨다.
“으, 응…!”
일부러 한 번에 깊이 박아 넣었는데도 하진은 아까처럼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는 너무 급하게 넣은 게 실수였던 모양이었다. 쫀득하게 달라붙는 내벽이 꼭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듯 움찔거렸다.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다.
차선오는 찔러 넣은 손가락을 둥글게 휘젓기 시작했다. 살짝 부푼 듯한 옆을 스치듯 긁어 올리자, 하진이 크게 자지러졌다.
“흐아! 아…!”
“여기가 좋아?”
“으응… 하, 조, 좋아. 아흐… 어떡… 응!”
하진이 꽉 움켜쥔 이불이 회오리 모양을 그렸다. 차선오는 확인하듯 같은 부위를 다시금 찔러주면서 동시에 엄지로 주름의 겉을 훑었다.
“흐, 아앙…!”
“거봐.”
금방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차선오가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점점 질척한 물소리가 났다. 손짓이 빨라질 때마다 엉덩이도 따라 들썩거렸다. 하진은 계속해달라 조르는 것처럼 허리를 움직이면서, 은밀하게 제 다리 사이로 손을 내렸다.
뭘 하려는 건지 일부러 내버려 두고 지켜보니, 하진의 행동이 가관이었다. 그는 발기한 자신의 것을 쥐더니, 본능처럼 귀두 위에 스타킹을 문지르려 했다.
“으으응…! 읏, 하아….”
“스타킹으로 딸치는 건 또 어떻게 알아서.”
차선오가 황당해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왔을 때부터 앞을 적시고 있었다. 뭐 때문에 흘렸나 했더니…. 그런 차선오의 말을 듣지 못한 하진이 정신없이 아래를 스타킹에 문지르며 훑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아흑!”
찰싹. 그가 하진의 엉덩이를 가볍게 내려쳤다. 스타킹이 걸쳐진 살점이 손바닥에 쫀득하게 달라붙었다. 하진은 예상 못 한 손찌검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던 손을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차선오는 열감이 느껴지는 하진의 둔부를 함부로 주물러대면서 다시 자신의 것을 쥐었다. 잘 느끼는 건 예뻤지만 그래도 버릇없이 구는 건 마음에 안 들었다.
“아, 아파….”
“함부로 싸면 혼나. 아무리 좋아도 혼자선 안 돼. 할 수 있지?”
“하으… 아….”
“여기로 자지 물고 싸는 거야. 그래야 예쁘지.”
그가 두툼한 귀두를 다시 입구에 맞추었다. 아까도 충분히 커져 있었는데 그새 더 발기해 흉흉한 색으로 번들거렸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기둥은 손가락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굵었다.
그저 닿았을 뿐인데 하진이 숨을 참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공들여 만져주었으니 아까처럼 아파하진 않을 게 분명했다. 차선오는 제 것을 위아래로 몇 번 더 훑다가, 뿌리를 쥐고 그대로 힘주어 찔러 넣었다.
흐아아, 아…! 가쁜 호흡이 터졌다. 배 속을 세차게 때리는 듯한 감각에 하진은 입을 벌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나 뭘 어쩌기도 전에 성기는 다시 뒤로 빠지는가 싶더니, 방심한 틈을 타 더 깊은 곳을 쑤셔왔다.
아까 허리를 발발 떨 정도로 느꼈던 부위였다. 뭉개듯이 휘젓는 느낌에 아픔은 서서히 사라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흐윽, 흐… 으응! 하진은 꿰뚫린 채로 크게 움찔거렸다.
생소한 느낌은 여전했지만 그 뒤로 환희가 따라붙었다. 민감한 안이 거세게 요동쳤다. 철썩. 매서운 손바닥이 다시 엉덩이를 내려치자 그 진동이 안쪽까지 전해졌다. 뜨겁고 축축한 내벽이 허겁지겁 오물거리며 조여졌다.
“하아….”
낮은 숨이 터지고 안에 박힌 것이 무섭도록 더 부풀어 올랐다. 마치 비좁은 내벽을 꾸역꾸역 밀어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느낌이 들 수 있는지. 한계에 다다른 하진은 흐느끼며 결국 상체를 무너뜨렸다. 가슴과 배가 이불이 비벼지고, 뒤만 위로 쑥 내민 듯한 자세가 되었다. 자연스레 성기가 닿지 않던 부위까지 밀려 들어왔다.
“으, 흐으, 아, 응!”
하진은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울었다. 건드려질 거라고 상상도 못 한 위치까지 닿아오자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엉망이 될 것 같았다. 하진은 좋으면서 또 무서웠다. 흘러내린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 들어갔어, 하진아. 후우…. 박아주니까 보지 느낌이 어때. 난 너무 좋은데.”
“흣, 너무, 커… 조, 좋은데, 으응, 흐…!”
“하아, 자지가 커서 좋아?”
“응, 으으응…!”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흥분한 하진과 달리, 차선오는 아직 모자랐다. 빠듯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황홀해도,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몇 번 더 같은 곳을 찔러주던 그는, 곧 엎드린 하진의 상체를 끌어 올렸다. 급한 대로 허리 부분을 거칠게 잡아챘더니 부욱, 하고 스타킹이 더 찢어졌다. 성감이 오른 하진을 다루는 건 아주 쉬웠다. 몸이 흔들리며 안에 박힌 좆이 다른 지점을 찌르니 그것만으로 다시 할딱대며 울었다.
군데군데 올이 나간 스타킹을 간신히 걸친 하진은 이제 음탕한 창부처럼 보였다. 물론 차선오의 눈에는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마치 소중한 연인 대하듯 하진을 뒤에서부터 껴안았다. 탄탄한 가슴에 하진의 등이 닿도록 상체를 바짝 맞붙이고는, 가까워진 도톰한 귓불을 빨았다.
츗, 츄웃. 붉은 혀는 뱀처럼 움직였다. 노골적인 소리를 따라 성기를 삼킨 구멍이 흠씬 조여졌다. 꼭 더 깊이 넣어달라 조르는 것 같았다. 달뜬 호흡과 뜨거운 숨이 마구 섞였다. 그는 하진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껴안아 당긴 채로, 귓가에 핥듯이 속삭였다.
“우리 하진이는 구멍 만져주는 것도 좋아하고, 자지는 크고 굵은 거 좋아하고….”
“하아… 아으, 흐….”
노골적인 음담패설이 달콤한 즙처럼 흘러 귓속을 끈적하게 적셨다.
“이래서,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성에 안 차겠네.”
언뜻 지나가는 혼잣말 같았지만, 그 역시 하진에게는 특별했다. 완벽하게 가두어진 하진은 허리를 잔뜩 젖힌 채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른 남자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그, 그런 말 하지 마….”
하진은 자신을 이미 차선오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었다. 뒷보지를 매만지고 쑤셔주는 건 사랑의 표현이었다. 기쁜 게 당연했다. 굵고 뜨거운 성기 역시 과분하도록 벅찬 것이었다.
그는 이제 언제든 그걸 위해 다리를 벌릴 수 있었다. 차선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입고 쑤셔 박힐 준비를 해야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선오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의심하는 걸까. 무얼, 무얼 잘못했기에. 이미 잔뜩 젖어 있는 하진의 눈에서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가 더 노력할게. 선오야, 흐, 흐으… 다른 남자는 싫어어….”
그가 애타게 빌면서 급하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읏, 아으응…. 차선오가 성기를 넣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조차 불안이 되었다. 계속 쑤셔주길 바랐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더 노력해야 했다.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지를 모셔야 했다.
붙잡혀 고정된 상체와 달리 하진의 아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흐… 조, 좋아…! 차선오를 회유하기 위해 시작한 행위는 곧 찌릿한 성감을 주었다.
흥분이 짙어질수록 마음도 급해졌다. 하진의 손은 곧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화끈거리던 유두의 겉에는 약간 새어 나온 젖물이 끈적하게 굳어 있었다. 그걸 살살 긁다가, 짓이기듯 강하게 꼬집자 즉시 환희가 차올랐다.
“흐아… 앙…!”
참을 수 없었다. 고개가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좆을 물고 있는 구멍은 한층 더 음탕하게 벌름거렸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스타킹에 차선오의 음모가 거칠게 비벼졌다. 접합부가 점점 뜨거워졌지만,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 하진은 스스로 가슴을 괴롭히면서 계속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할딱이는 신음이 점점 가빠졌다.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하진의 유두와 성기에서 희멀건 액체가 줄줄 샜다. 눈이 절로 감겼다. 이대로 곧 사정할 것 같았다. 자지 물고 싸야… 예쁘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가 크게 경련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귀두 끝을 억세게 틀어막았다.
“……!”
상체를 잡고 있던 차선오의 손이었다. 하진의 기대와 달리, 그의 눈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하진은 숨도 쉬지 못했다. 길게 참은 사정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분출할 수 없게 되자 죽을 것만 같았다. 입에서 꺽꺽거리는 소리가 샜다. 그 사이로 차선오의 성난 속삭임이 스몄다.
“하진아 나는, 네가 예쁘게 굴 때마다 좀 화가 나.”
“흐… 으….”
틀어막은 손이 금세 축축하게 젖어갔다. 귀두의 갈라진 틈이 거칠게 문질러졌다. 미끄러운 표피가 짓이겨질 때마다 안에서 금방이라도 물기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진은 몸을 발발 떨었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시간 낭비였잖아.”
오로지 싸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허리를 흔들 수도, 스스로 가슴을 꼬집을 수도 없었다. 눈앞이 하얗게 지워졌다가 검게 물들었다. 안에 박힌 묵직한 살덩이의 느낌이 잔인할 만큼 생생했다.
“생각해 봐. 진작 나한테 왔으면, 하아, 우리 둘이 씹질을 얼마나 해댔을지.”
“으읏, 선…! 제발, 선오야….”
찌걱찌걱. 성기를 비비는 소리가 커질수록 하진의 얼굴도 점차 창백하게 질렸다. 이대로는 실수할 것 같았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말이야. 난 너랑 살 집까지 다 준비해 놓고 기다렸는데.”
차선오도 그걸 바라는 건가 싶었다. 여전히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무겁게 들려오는 목소리. 하진이 인지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이미 팽팽한 성기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계속 부풀며 진동했다.
“으응! 흑, 흐.”
사정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한 하진은 저도 모르게 뒤를 조였다. 그러자 더 큰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너무 좋으면서도 절정에 닿을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온몸이 경직돼 뻣뻣해지고 입술이 헤벌어졌다. 아, 아아…. 차라리 아프게 들쑤셔줬으면. 전부 망가져도 좋으니까, 간지러운 부분을 거칠게 헤집어주면 좋을 텐데.
“너도 분명 좋아했을 거야.”
그러나 차선오는 괴로워하는 하진을 그대로 둔 채 계속 지껄였다.
“네 예쁜 곳마다 전부 정액을 싸주려고 했어. 아무리 씻어도 내 냄새가 빠지지 않을 만큼.”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질수록 목소리에 점점 광적인 힘이 실렸다. 앞에 안겨 있는 하진은 보지 못했으나, 차선오의 얼굴엔 어울리지 않는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건 파괴적인 욕망이면서 동시에 해묵은 애정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의 팔이 하진의 목을 감아 당겼다. 온몸이 밀착되어 겹쳐졌다. 하진의 등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미끈거리고 촉촉한 살결에 차선오는 더 발정했다.
“…흐앙!”
박혀 있던 성기가 주르륵 빠지는 느낌이 났다. 더운 살덩이가 축축한 내벽을 죄다 훑고 지나갔다. 무서운 쾌락이었다. 그대로 끝까지 빠지자 배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흐… 아… 안돼, 싫어어…!”
“말해봐, 하진아.”
본능과 같은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차선오는 다시 하진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퍽,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센 힘이었다. 흉기처럼 부푼 좆이 좁고 뜨거운 굴을 파듯 구멍 깊숙이 틀어박혔다.
“얼른. 하아, 어떻게 생각하냐니까. 응?”
“너, 너무 깊… 하, 앗… 응!”
처음엔 느릿하던 허리 짓이 점점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하진이 어설프게 흔들고 비빌 때와는 전혀 달랐다. 속에 쌓여 있던 무언가를 터뜨리듯, 힘이 가득 실린 움직임이었다. 철퍽철퍽.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싸달라고 말해봐. 후으… 어? 하진아. 좆물로 잔뜩 적셔달라고.”
“아, 아흑, 으응…!”
연약한 살점을 망가뜨릴 것처럼, 수면 아래의 깊은 애정을 드러낸 그는 멈추지 않고 아래를 들쑤셨다.
“진작 그러고 싶었다고 말해. 이제야 다시 만나서 너무 좋다고, 나 버린 거 후회한다고.”
대답을 갈구하는 차선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두꺼운 기둥이 구멍을 짓이길 때마다 음모가 번들번들하게 젖어가고 살결이 붉어졌다.
푹, 푹, 상체가 앞으로 쏠릴 만큼 강한 힘에 하진은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게 깊고 뜨거웠다. 안에 꽉 들어찬 기둥의 느낌이 황홀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쾌감과 고통이 범벅이 되어 온몸으로 녹아내렸다.
“아읏. 싸, 싸줘.”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샜다. 하진은 혹여나 그가 제대로 듣지 못했을까 봐 아래를 확 조이면서 서둘러 덧붙였다.
“제발, 흐윽… 적셔줘, 안에, 응? 선오야.”
“…하아.”
“너무 좋아. 다시 만나서 너무… 흐으, 응! 그러니까 엉덩이… 보지 안에. 제발, 아으응…!”
새하얀 기쁨이 시야 가득 번졌다. 하진은 정말 그걸 원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 좋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는 팔을 뒤로 뻗어 허겁지겁 차선오의 몸을 만졌다. 탄탄한 허리를 당겨, 제게 더 강하게 박도록 문질렀다.
예쁜 곳마다 정액을 싸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애틋하고 달콤한 고백인지. 하진은 분명하게 알았다. 말해달라 하기 전에 먼저 빌었어야 했는데. 선오에게 사랑받는 좆집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왜, 그동안 나는….
“예쁜 데다가 싸준다고 했더니.”
콱, 성기가 가장 깊은 곳을 쑤셨다.
“흐아…!”
“보지 예쁜 건 어떻게 알았어.”
차선오가 하진을 꽉 안은 채로 속삭였다. 이윽고 배 속이 뜨거워졌다. 하아, 아, 좋아…. 너무 기뻐…. 터져 나온 정액이 하진의 안을 몇 번이나 적셨다. 내벽을 꽉 채우다 못해 흘러넘칠 것처럼.
“힉, 흐으….”
좁은 구멍이 화답하듯 움츠러들었다. 차선오는 제 품에 안긴 하진을 온몸으로 느끼며 끝까지 사정했다. 그제야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다시 광기와도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거야.
부드러운 세뇌와 함께 마침내 귀두를 막은 손이 떨어져 나갔다. 곧바로 하진의 것에서도 희뿌연 정액이 터졌다.
“히으, 아, 앗, 좋아아….”
공중으로 튄 끈적한 액체가 이불을 더럽혔다. 너무 오래 참아 한 번에 다 나오지 않았다. 여러 번에 거쳐 나오는 동안 하진은 내내 좋다고 흐느끼며 발발 떨었다.
성기를 빼낸 차선오는 그대로 곧 쓰러질 것 같은 하진의 얼굴을 당겨, 단숨에 입술을 삼켰다. 베어 물 듯 빨아 당기고 혀를 깊숙이 넣어 점막을 훑으니 하진이 끙끙거리며 어설프게 화답해왔다. 깊은 키스였다. 질척한 침 소리에 하진의 아랫배와 허벅지에도 다시 힘이 들어갔다.
“흐응, 흡, 음… 흐으….”
“하아….”
차선오는 금방이라도 다시 넣을 것처럼 두툼한 귀두 끝을 말랑한 엉덩잇살에 문지르면서, 하진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넣었다. 여전히 반쯤 발기한 기둥을 위아래로 훑고 젖은 스타킹에 비벼주자, 입속에 갇힌 신음이 더 가빠졌다.
뱀처럼 틀어박힌 혀가 안을 크게 휘저었다. 흐으읍…! 방금 사정을 마친 하진의 몸은 극도로 민감했다.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만 같았다. 손끝만 스쳐도 더운 숨이 터지는 귀두가 미끄러운 스타킹에 비벼지니 하진은 곧 죽을 것 같았다.
쾌감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빌 정신도 없었다. 하진은 목이 졸리는 사람처럼 울었다. 곧 그의 것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힘 있게 터져 나오지도 못하고 마치 소변처럼 질질 흐르는 그것은 냄새도 색깔도 없었다.
“앗, 아… 안돼, 흐으, 응!”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 하진은 크게 당황해 끝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참으려 해도 묽은 액체는 한참이나 흘러나왔다. 정액이 나올 때보다도 더 적나라한 느낌이었다. 꽉 조여 있던 구멍까지도 헐겁게 벌어지면서 그 안에 담긴 끈적한 것이 흘러넘쳤다.
“하아… 하… 으….”
“이불 다 젖었네.”
차선오가 웃으며 말했다. 축축해졌어. 스타킹도, 꼭 무늬라도 생긴 것 같아.
“흑, 화… 화장실 가려고, 그랬는데….”
“뭐하러 그래. 내 앞에서 싸면 되는데.”
차선오는 하진이 흥건하게 젖은 허벅지를 가리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그의 유두 주변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흐으응….”
“창피한 거 아니야. 그리고 하진이 네가 흘리는 건 뭐든 좋아.”
뾰족하게 선 돌기에는 일부러 손대지 않았다. 마사지라도 하듯 주변의 살집만 문질렀는데도,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흰 젖물 방울이 더 굵게 차올랐다. 손끝에 그걸 묻혀 하진의 입속에 밀어 넣으니 뭔지도 모르고 울면서 쭉쭉 잘 빨았다.
어쩜 온몸이 선물 같은지.
차선오는 흔적도 없이 깨끗해진 손가락을 보며 웃었다. 어서 손대지 않아도 비릿하고 단 액체가 질질 새어 나왔으면 했다. 엉망으로 젖은 가슴팍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물만 뚝뚝 흘리는 하진을, 하루라도 빨리 예뻐해 주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그래봤자 곧이겠지만 그래도.
“…미칠 것 같아.”
차선오가 하진의 몸을 앞으로 돌렸다.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서. 미칠 것 같다고, 하진아.”
“…….”
마주 본 얼굴이 꼭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아직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질척한 섹스 때문에 온갖 체액으로 엉망이었음에도 그는 더없이 고아하고 아름다웠다. 정말로 그랬다. 차선오는 그의 이마에 입 맞추며 중얼거렸다.
“만약 네가 또 사라지면….”
그땐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 차선오의 낮은 속삭임에 하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그래.”
“정말?”
“응, 정말….”
“그럼 약속 하나 할까?”
약속.
그 경건한 단어는 세뇌를 예쁘게 포장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 그러나 차선오의 속을 알아차리지 못한 하진은 탁한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이제부턴 내가 네 집이 될 거야.”
“…….”
“잠깐 길을 잃어도 언제든 다시 돌아오는, 집.”
그의 읊조림은 마치 성스러운 고백 같았다.
“나도 그럴게, 하진아. 맹세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약속해. 너도 내게 돌아오겠다고. 떠나지 않겠다고. 차선오가 그렇게 속삭이는 순간.
“…….”
하진의 풀린 눈이 그를 향했다.
하진은 여전히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다. 아주 얌전히, 순종적으로, 약속이라는 이름의 암시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진의 눈 속이 꼭 텅 빈 것처럼 보였다. 순간 차선오는 그 시선 앞에서 격렬한 갈증을 느꼈다.
그가 걸어 놓은 최면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에 기대고 있음에도, 그토록 원했던 하진을 가졌는데도, 다시 놓칠까 봐 조바심이 났다. 너무 오래 걸렸기에. 이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럴 거지.”
사랑 때문이었다. 마음이 너무 깊어 그랬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그때 입술이 열렸다.
“선오야.”
찰나가 영원 같았다. 응, 하진아. 차선오가 대꾸하기 무섭게 하진은 그에게로 안겨 들었다. 망설임 없는 완벽한 애정의 갈구였다.
약속할게…. 무의식에 갇힌 하진이 속삭였다. 흩어질 듯 작은 목소리였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끌어당겼다. 품 안에 온기가 느껴졌다. 그거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