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106화 (106/224)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106화>

106화. 이러다

시사회 당일.

영화관으로 출발하기 전, 정혜영이 직접 안시현의 옷매무새를 점검해 줬다. 넥타이를 손수 매 준 정혜영이 미소를 지은 채 안시현과 눈을 마주쳤다.

“역시 자기는 슈트 핏이 끝내준다니까요. 넥타이 색은 마음에 들어요?”

“당연히 마음에 들죠. 누가 사 준 건데.”

“상영회 보러 가고 싶은데,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힘들겠네요. 대신 개봉하면 둘이 보러 가요.”

“네. 간만에 데이트해요. 바쁜데 챙겨 줘서 고마워요.”

“당연히 챙겨야죠. 저한테는 자기가 최우선이니까요.”

몇 분 뒤.

박정상의 전화를 받은 안시현이 밖으로 나갔다.

이내 놀이터 구석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박정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 담배 끊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긴장돼서 한 대만 피고 가려고. 냄새 배니까 가까이 오지 말고 떨어져 있어.”

“하하하. 저도 긴장 안 하는데, 형이 긴장을 하면 어떻게 해요?”

“좋아서 긴장하는 거야, 좋아서. 가장 최근에 이렇게 긴장한 적이 언제였는지 알아? 『두밀령』 시사회 때야. 진모가 군대 가 있을 때라 우정태 배우만 픽업해서 가는데…… 진짜 심장 떨린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더라. 대박 날 거 같아서 좀처럼 진정되지가 않더라고.”

“오. 형의 감이 이번에도 적중한다면, 『편지』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겠네요?”

“그러면 소원이 없겠다. 내 담당 배우 두 명이 모두 천만 배우에 등극하는 것만큼 매니저에게 영광스러운 순간이 있겠어?”

“그 영광,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1000만 관객 돌파.

안시현의 박정상의 소원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박정상과 자신뿐만 아니라, 『편지』를 함께 만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되어줄 테니까.

*   *   *

『편지』의 경우 한국에서의 시사회 다음 날에는 일본에서의 시사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일주일 후에는 한일 동시 개봉한다.

따라서 시사회는 개봉 초반의 흥행을 좌우할 만한 마지막 홍보 기회였다.

일단 분위기는 좋았다.

시사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아예 주차장에서부터 배우들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이 다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안시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수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일 수밖에 없었다.

“안시현 배우님, 황금영화제에서 3표 차이로 남우주연상 수상이 불발됐는데 아쉽지 않으십니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는 평소 제가 좋아하던 분이고, 워낙 좋은 연기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표 차이가 적기에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된 것만 하더라도 『편지』에서 제가 보여 준 연기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편지』가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음에도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습니다. 안시현 배우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1000만 관객 돌파보다는, 일단 손익 분기점 돌파가 목표입니다. 물론 주연 배우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분들이 영화를 재밌게 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안시현은 기자들의 질문에 능숙하게 답을 하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편지』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인터뷰해 드리고 싶은데, 지금 다 해 버리면 기자 간담회 때 할 말이 없잖아요? 영화 다 보시고 많이 질문해 주세요.”

본격적인 대답은 기자 간담회 때 하기로 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잘 지내셨죠?”

“와 줘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영화 재밌게 봐 주세요.”

안시현은 시사회에 초청된 안면이 있는 다수의 배우들과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눴다.

시사회에 연예인들이 초청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편지』의 경우는 분위기가 사뭇 남달랐다. 곽상필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 때문인지 내로라하는 주연급 배우들이 다수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시사회에 초청된 배우들에 대한 기사만 쓰더라도 포털사이트 뉴스 페이지를 도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편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마침내 시작된 언론 시사회.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자잘한 소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침 삼키는 소리마저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만큼 언론 시사회에 초청된 이들은 『편지』를 감상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 직후.

짝짝짝!

배우들을 시작으로 모든 관객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를 쳤다.

‘곽 감독님 작품이라 의례적으로 나온 기립박수일 수도 있지만…… 일단 분위기는 좋아 보이네.’

황금영화제에서 선 개봉을 했을 때의 좋은 분위기가 언론 시사회에서도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실제로 기자 간담회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대박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대다수의 기사들이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홍보에 도움이 될 법한 질문들을 연이어 던진 것이다.

다음 날.

일본에서의 언론 시사회 또한 반응이 뜨거웠다.

현지 언론에서는 『편지』가 한국 영화치고는 이례적으로 일본에서 성공을 거둘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일부 언론들이 영화의 과도한 잔인함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근거 없는 잔인함이 아닌 영화의 완성도와 메시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기에, 부정적인 기사들은 큰 이슈를 끌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언론들은 『편지』의 잔인함보다는 최정수와 안시현의 연기, 주연임에도 조연인 것처럼 최정수와 안시현을 받쳐 주는 역할에 집중한 김진모,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곽상필 감독의 연출력에 초점을 맞췄다.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

2005년 6월 24일 금요일.

『편지』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개봉을 했다.

*   *   *

개봉 첫날.

안시현은 최정수와 김진모와 함께한 토크쇼 녹화에 매진하고 있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촬영은 저녁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촬영이 이어졌기에 막바지에는 세 배우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특히나 안시현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당장이라도 잠이 들 것처럼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역시 예능은 나랑 잘 안 맞아.’

회귀 전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인지도를 쌓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안시현에게 맞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나 스튜디오에서 장시간 촬영하는 토크쇼 같은 경우는 한 번 촬영하고 나며 기력이 모두 빨려 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작품의 흥행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것과 안시현이 다작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출연할 용의가 있지만, 솔직히 자주 하고 싶지는 않네. 너무 힘들어.’

피곤에 찌든 안시현은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 촬영하는 동안 쌓인 문자메시지와 부재 중 전화를 확인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안시현은 습관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중.

곽상필 감독으로부터 온 문자메시지 하나가 안시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히게 만들었다.

-첫날 38만 명 기록했습니다.

『편지』는 개봉 첫날부터 무려 38만 관객을 돌파하며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안시현은 기쁜 마음에 곧장 김진석 대표에게 연락해서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수도권은 주말 예매 거의 다 찼다더라. 『두밀령』 때보다 초반 분위기는 더 좋다고 봐야 돼. 청소년 관람 불가라서 기세가 얼마나 갈지가 문제지.

“관객이 제한된다는 건 엄청 큰 페널티이니까요.”

-근데…… 그렇게 큰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라온 후기를 보면,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꽤나 많거든. 분위기 자체가 매우 호의적이야. 중간에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만 없다면, 1000만 관객 돌파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 지금 사옥으로 갈게요. 후기 정리한 거 좀 보여 줘요.”

-빨리 와라. 정수랑 진모는 이미 와서 보고 있으니까.

『편지』의 관람 후기는 호의적인 반응이 넘쳐났다.

개봉 첫날 38만 관객을 동원한 것보다도 주연 배우들을 더 기쁘게 한 건, 인터넷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긍정적인 후기들이었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운이 많이 남았다,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등.

긍정적인 후기들이 차고 넘쳐났다.

오프닝 스코어 38만과 긍정적인 후기들, 거기에 토요일과 일요일 수도권 예매 경쟁이 치열한 것까지.

개봉 전의 예상처럼 흥행을 낙관할 만한 상황이었다.

“진모랑 시현이 팬덤의 관람 인증 행렬도 초반의 흥행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분위기네.”

“저희 팬들 단합이 장난 아니긴 하죠.”

“게다가 시현이 같은 경우는, 저랑 다르게 『빌딩 숲』 이후로 공백이 3년 가까이 됐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팬들의 열기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20대 배우들 중 가장 두터운 팬덤을 지니고 있는 안시현과 김진모는, 『편지』의 흥행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새였다.

팬들이 팬클럽 카페와 개인 미니홈피에 남기고 있는 장문의 관람 후기들이 아직 『편지』를 보지 않은 이들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관심을 끌지 않는 게 이상했다.

워낙 많은 후기가 올라왔으니, 인터넷을 하는 한 안 보려고 해도 한두 개는 볼 수밖에 없었다.

개봉 2일 차.

『편지』는 62만 관객을 동원하며 첫날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 나가는 데에 성공했다.

개봉 3일 차.

55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순식간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예고하고 나섰다.

개봉 5일 차.

이변은 없다는 듯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문제만 없다면 100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인 『두밀령』의 5일 차 스코어와 비교해 보더라도, 『편지』쪽이 25만 명 이상을 더 불러 모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이에 언론들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200만 돌파 『편지』, 역대급 흥행 돌풍 예고.

-곽상필 감독 ‘1000만 관객 돌파하면 생애 첫 예능 프로그램 출연하겠다’.

-배우들의 연이은 공약, 새로운 홍보 전략인가?

-흠잡기 힘든 『편지』,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탄생.

-가장 곽상필 감독답지 않으면서, 곽상필 감독다운 그의 마지막 영화.

언론에서는 『편지』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며 사실상 낙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일단 판 자체가 제대로 깔린 상태였다.

여러 차례에 거친 홍보 영상을 통한 관심 유도, 황금영화제 그랑프리상 수상, 때아닌 안시현의 선행 이슈, 언론 시사회에서의 극찬까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그 관심은 개봉 이후 줄곧 이어지는 분위기였고, 좀처럼 식을 것 같지 않았다.

분위기가 식으려면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슈가 터지거나,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할 작품이 나타나거나, 혹은 개봉 후 날짜가 제법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세 가지 모두 불가능해보였다.

부정적인 이슈는 터질 만한 게 없었고, 안시현의 기억에 따르면 박스오피스 1위를 할 만한 작품이 최소 한 달 동안은 개봉하지 않을 예정이며, 날짜가 제법 지났을 때는 이미 불러 모을 관객은 다 불러 모은 상황일 테니까.

“이 기세라면 정말 1000만 관객 돌파가 충분히 가능하겠는데? 관객 증가 추세가 말도 안 되게 빨라. 청소년 관람 불가인데도. 게다가 영화 후기도 너무 잔인하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호의적이고.”

“그나마도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 잔인한 장면이 필수적이었다는 의견이 반 이상이고요.”

“이러다 진모랑 정태, 우리나라 최초로 1000만 관객 돌파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되겠는데?”

김진석 대표, 최정수, 안시현, 김진모.

네 사람 모두 일찌감치 김칫국을 사발째로 들이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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