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23)

적색 신호

잔디밭을 따라 심어진 가로등이 운전석 사이드미러 속에서 빛났다. 송곳처럼 뾰족한 시선이 멀어지는 거울 속 풍경에 따라붙었다. 이상하네. 왜 자꾸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 같냐. 거대한 원뿔을 거꾸로 처박아 둔 것 같은 조형물은 분명 초면이 아니었다.

건물을 되게 헷갈리게 지어 놨네. 정문을 통과한 지 꽤 지난 것 같은데 승의 차는 여전히 정문 근처를 헤매고 있었다. 해가 진 후의 대학 캠퍼스는 외부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사방이 어두웠다. 간간이 교정을 거니는 학생들이 아니었다면 원뿔 조각상 역시 잔디밭이 아니라 새까만 호수에 박혀 있는 줄 알았을 터였다. 승은 동일한 길을 무려 세 번이나 돌고 나서야 저를 이곳에 오게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저녁은 먹었니.”

“아뇨, 정신이 없어서….”

체육관 앞 주차구역을 서성이고 있던 정호는 그 뒷모습만으로도 훌륭한 이정표 역할을 수행했다.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훤칠한 키에 트레이닝 바지를 군더더기 없이 소화해 낸 판판한 뒷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실루엣이 아니었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

말끝을 흐리는 제 대답에 눈 사이를 좁히던 정호가 화통하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고 올 걸 그랬나.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에 조금 뜨끔했으나 오늘은 정말로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후엔 정밀 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온 저녁에는 팀 의료진들과 향후 계획을 논의하느라 차마 식사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어디 가세요.”

“…….”

“천천히 좀 가세요.”

“…….”

얼음장 같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던 정호가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캠퍼스를 앞서가는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이럴 땐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빠른 걸음걸이를 나무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곁에 없었기에 승은 서둘러 정호의 뒤를 쫓았다.

체육관을 등진 두 사람은 가로등이 점점이 박힌 인도를 빠르게 걸어 나갔다. 암흑이 먼지처럼 내려앉은 교정 속에서 푸른 지붕을 얹은 둥그런 체육관 건물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술래잡기하듯이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 1층에 딸린 학생 식당이었다. 석식 시간도 끝물에 이르렀는지 내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캠퍼스 안에서는 모르는 게 없다는 양 익숙하게 행동하는 정호를 따라 승도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수저가 꽂혀 있는 스테인리스 통이 생각보다 깔끔했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 건가. 하얀 식판 역시 반짝반짝 윤이 났다. 낯선 곳의 단체 배식 시스템을 앞두고 버릇처럼 잠시 머뭇거리던 승은 결국 식판을 하나 집어 들었다.

배식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인심이 아주 후했다. 각각의 작은 칸 안에 꽉꽉 눌러 담은 음식들이 넘칠 듯 출렁거렸다. 마감을 앞두고 남은 음식을 몰아받은 식판이 묵직했다. 음식을 받고 돌아서자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즐길 때나 썼을 법한 길쭉한 테이블이 두 사람을 반겼다.

“병원에선 뭐래.”

“찢어졌대요.”

“얼마나.”

“3cm 조금 넘게요.”

앉아서 국을 한술 뜨기가 무섭게 질문이 날아왔다. 프로 선수가 된 이후부터 운동 이야기는 가급적 서로 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엔트리에서 제외될 정도의 부상 앞에서는 암묵적으로 지켜 온 규칙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오늘 같은 날, 굳이 몇 시간을 운전해 그동안 와 본 적 없는 정호의 직장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조급하게 제 상태를 살피는 정호만큼이나 승 역시 이렇게 해서라도 제가 괜찮음을 정호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찢어진 건 어떻게 알았어?”

“뛸 때 느낌이 왔죠.”

“심각한 건 아니래?”

“네, 심각하지는 않고 당분간 그냥… 최대한 쉬라고. 쉬어야 근육이 빨리 붙으니까….”

여느 때처럼 서브를 넣으려던 때였다. 완벽한 타이밍에 뛰어 올라 공을 칠 준비를 하는데 뻗은 손 아래로 찌릿 전기가 통했다. 근육 파열. 다년간의 경험으로 의사의 진단 없이도 원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 순간에는 부상의 정도에만 신경을 쏟았었다.

“지금도 아프니.”

“아프긴 아픈데 그래도 괜찮아요. 아까 병원에서 진통제 맞았더니 좀 나아졌어요.”

“몸을… 아껴서 써.”

“늘 그러려고 해요. 잘 안 돼서 문제지만….”

파열된 근육은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큼 찢어진 옆구리 근육은 당분간의 엔트리에서 제 이름 두 글자를 모조리 지우게 했다. 합당한 절차였다.

기본적으로 수직 운동에 해당하는 배구에서 점프를 못 한다? 그것도 공격수가? 그건 제가 더는 코트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의미했다. 손상된 근육은 고작 3cm에 불과했으나 파장이 컸다. 부상은 늘 이런 식이었다.

“좀 먹지 그러니.”

“…….”

입맛이 없어서 국물만 깨작대고 있었더니 핀잔이 날아왔다. 체중 관리에 민감한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먹는 걸 가지고는 좀체 입을 대는 법이 없던 정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수상했다. 수북하게 쌓인 반찬들을 보던 승은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찰기 있는 흰 쌀밥이 따끈하고 달았다.

“네 엄마가 걱정하더라.”

“안 그래도 오기 전에 잠깐 통화했어요. 엄마야 뭐… 언제나 제 걱정을 하시죠. 아시잖아요.”

현역 시절 오른손 공격수였던 정호는 은퇴 이후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제대로 만세를 못 했다. 조금 펴지다가도 엉거주춤하게 멈춰 버리는 오른팔이 문제였다. 수만 번의 스파이크가 남긴 상흔이었다.

승이 정호의 불편한 어깨 사정을 처음 알게 된 건 수명이 다한 욕실 전구 앞에서 혜경이 정호가 아닌 저를 불렀을 때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승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를 대신해 까치발만 들어 전구를 갈아 끼웠다.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해하던 제 표정과 달리 묘한 상실감이 흐르던 혜경의 복잡미묘한 미소를 승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어때요? 잘해요?”

“그럼. 다들 눈 돌아가게 열심히 하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제 막 식당으로 들어선 요즘 학생 두 명이 멀리서도 정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는 정호와 더불어 승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저를 알아봤는지 멈칫 떨리는 학생들의 시선을 느꼈으나 승은 개의치 않고 다시 식판으로 눈을 돌렸다.

타기 직전까지 구운 소시지는 씹을 때마다 오독오독 재밌는 소리가 났다. 묵묵한 숟가락질이 이어졌다.

“산책 좀 할까? 소화도 시킬 겸.”

“네, 뭐…. 전 다 괜찮아요.”

식사를 끝낸 정호는 자연스럽게 승을 이끌었다. 식당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반쯤 빙 돌아 건물 뒤편으로 향하자 작은 샛길이 나왔다. 아마도 학교 측에서 조성해 놓은 산책로 같았는데 잘 다져진 나무 계단이 야트막한 뒷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심긴 낮은 조명등이 산으로 향하는 길을 환하게 밝혔다.

“여기 공기가 참 좋아.”

“…네.”

밑에서 볼 때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직접 올라 보니 결코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숨이 찼다. 조명이 있다고는 하나 닦아진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죄다 암흑이었기에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산책치고는 집중력을 크게 필요로 하는 환경이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정호의 뒤를 따르던 승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속았다. 잘 정비된 계단이 끝나고 울퉁불퉁한 흙길이 나왔을 때였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뭐가 너무하다는 말이냐?”

“이런 데를 데리고 오실 거였으면 사천오백 원짜리 학생 식당 밥이 아니라 적어도 소고기 정도는 먹이셨어야죠.”

차오르는 숨 때문에 입이 바짝바짝 탔다. 왜 갑자기 이런 급경사 구간이 나오냐고. 혀로 입술을 축인 승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아까 왜 그렇게 밥을 먹이나 했더니…. 정호의 큰 그림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며 평소 같지 않다고 여겼던 말과 행동들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먹은 거 소화할 겸 동네 뒷산 오르는데 소고기는 무슨 소고기야.”

손으로 삐딱하게 허리를 짚은 승이 앞에 난 길을 바라봤다. 동네 뒷산? 동네 뒷산이라기엔 너무 본격적이지 않나. 길이 잘 닦여 있다고 해도 산은 산이었다. 날씨 따위 상관없다는 듯 땀마저 흘렀다.

“그럼 내려가자. 그렇게 힘들면 다시 내려가면 되지.”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끝까지 가야죠.”

대놓고 자존심을 긁는 말에 화르르 불길이 일었다. 이대로 산 좀 오른다고 죽기야 하겠냐고. 진통제의 효과인지 가끔 욱신대는 것만 빼면 옆구리도 아직은 괜찮았다. 호언장담하듯 굳세게 의사를 밝힌 승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이대로 내려가자고? 정호가 진짜 내려갈 심산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거에 승은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벗은 점퍼를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친 승은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정호가 하늘 같은 선배인 것과는 별개로 현역에 몸담고 있는 선수로서 저에게도 지켜야 할 체면이란 게 있었다.

“말씀대로 진짜 좋네요. 공기도 상쾌하고.”

“낮에 오면 더 좋아.”

설마 다음엔 낮에 오자고? 섬뜩한 말에 솜털이 쭈뼛 서는데 반대편에서 나타난 할아버지가 잰걸음으로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등산용 스틱이 흙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멀어져 갔다.

“저 봐라. 노인분도 다니신다.”

“저 할아버지가 은둔 중인 무림 고수이실 가능성 같은 건 없고요?”

티격태격하며 길을 오르는 동안 몇 명의 행인을 더 만났다. 편한 옷차림으로 가볍게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을 보아 또 다른 입구가 근처 아파트 단지 후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호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

“잠깐… 숨이 좀 차서요.”

경사를 오를 때면 복근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옆구리에 잔잔한 통증이 퍼질 땐 잠깐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두꺼운 후드티 한 장 입었을 뿐인데 이마 아래로 송골송골 더운 김이 솟았다. 깨끗이 남김없이 먹길 잘했네. 좀 전에 열심히 집어먹은 소시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기력이 바닥났을 것 같았다. 조용히 산길을 걷는 기분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흙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운동기구가 늘어선 좁은 공터가 나왔다. 이게 끝이야? 더는 위로 향하는 길이 없는 것으로 보건대 아마 여기가 정호의 최종 목적지인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사천오백 원짜리 밥 먹이실 만했네요.”

“내가 말했잖니. 겨우 이거 올라오는데 무슨 소고기 타령을….”

“네, 제가 참… 할 말이 없네요.”

이 길로 정상까지 가자는 건 줄 알고 기함을 했던 조금 전 일에 머쓱함이 들었다. 멀리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이마를 얇게 적신 땀이 흔적도 없이 말라갔다.

땀을 닦은 승이 벤치가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화려한 불빛을 품은 시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흙냄새 섞인 나뭇잎 향기가 상쾌하게 폐를 적셨다.

“저 내일부터 숙소 들어가요.”

“잘 생각했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지.”

“네, 빨리 나으려면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게 많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승은 굳이 전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의료진의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고, 정호 역시 부상과 관련해 더는 새로운 걸 묻지 않았다. 그 이상의 설명은 사족에 그칠 뿐이었다. 그렇게 말 대신 침묵으로 공기를 채우던 승은 얼마 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응.”

“엄마한테 잘해 주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뿌듯하게 산 아래를 바라보던 정호가 의문이 들어찬 눈으로 저를 돌아봤다. 그러게… 나는 왜 불쑥 이런 소리를 했지? 제가 생각해도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고 정호가 혜경에게 못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냥요.”

이유를 모르는 목소리가 흐지부지 공중으로 흩어졌다. 숨을 크게 내쉰 승은 더워서 벗어 둔 점퍼에 다시 팔을 끼웠다.

“플래시 끄고 찍어 보세요.”

“…끄고?”

정호는 혜경에게 보여 주겠다며 야경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네 엄마가 또 야경을 되게 좋아하잖아. 초점을 잃어 형편없는 결과물을 보던 승은 결국 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찍으면 더 잘 나올걸요? 훌륭한 예시를 몸소 보여 주려 화면을 켰으나 야경 사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는 의외의 장애물에 가로막혔다. 열심히 산을 타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있었다.

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