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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도 입학하기 전인 아주 옛날, 승은 때때로 혜경의 손을 잡고 체육관을 찾았다. 아빠 정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 승은 커다란 체육관 건물로 나들이를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신이 나서 경기 시작 전부터 이런저런 장난을 치기 바빴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꿋꿋하게 의자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제 옆을 지키는 엄마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쏘다니고 있으면 곧 혜경이 조그만 두 손을 꽉 붙잡고는 속닥속닥 귓속말을 해 왔다.
‘있잖아, 아빠가 좀 있으면 우리한테 인사할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앉아서 엄마랑 같이 아빠 인사 기다리자.’
술래도 없이 술래잡기를 하던 승은 그 별스럽지 않은 꼬임에 넘어가 순순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때부터 유달리 컸던 발에 신겨진 하얀 운동화가 바닥에 닿을 듯 말듯 닿지 않아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그렇게 혜경과 나란히 앉아 앞을 내다보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정호가 저 멀리 넓은 경기장 한구석에 있었다. 어깨를 돌리고, 제자리에서 가볍게 뜀박질을 하고, 앉은 채 뻗은 다리의 발끝을 당겨 허벅지 근육을 풀고…. 팀 로고가 박힌 저지를 걸치고 여유 있게 웜업을 하던 정호는 곧 뭔가를 찾아 헤매는 듯 고개를 들고 천천히 주변을 훑어 나갔다.
계단식으로 설계된 관중석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앞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벗기 위해 부산을 떨 때마다 저의 시야도 덩달아 가려지기 일쑤였다. 혜경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다리를 꼬고 앉아 손끝으로 제 손바닥을 간질였다. 몸을 비비 꼬게 하는 간지럼에 발장난에 여념이 없던 승도 이내 시선을 들어 얌전히 경기장을 바라봤다.
그러고 있다 보면 팔을 쭉쭉 잡아당기며 어깨를 풀던 이의 시선이 어느 순간 정확히 저와 엄마를 잡아내는 게 느껴졌다. 하던 스트레칭을 멈춘 정호가 한쪽 손을 살짝 흔들었다. 가히 최신식 기능을 탑재한 레이더도 울고 갈 만한 눈썰미였다.
명백히 저희를 향한 알은체에 손바닥 위를 배회하던 장난이 멎었다. 옆을 돌아보면 늘 그렇듯 조금 놀란 얼굴을 한 혜경이 혼잣말 같은 물음을 작게 읊조렸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빠는 어떻게 매번 우리를 한 번에 찾아내는 거지?’
UFO의 착륙이라도 목격한 것 같은 엄마의 반응이 재밌어서 승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어쩌면 그렇게 엄마와 저를 한눈에 찾아낼 수 있었을까. 오랜 궁금증에 대한 답은 몇 년 후 제가 선수 타이틀을 달고 경기장에 서는 처지가 되자 자연스레 풀렸다. 멀고 복잡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라는 보통의 추측과 달리 어떤 것들은 코트에서 제일 잘 보이기도 한다는 걸 승은 경험으로 체득했다. 이를테면 ‘아는 사람’ 같은 것들.
라커룸 문을 연 승은 유니폼 상의를 벗으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같은 장소에 있었으니 뭐라도 와 있지 않을까. 섣부른 기대가 외롭지 않게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었다.
재밌게 보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