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미지수
“영숙이 이모가?”
“응, 안 그래도 저번 달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 점심때 찾아왔길래 내가 갖고 있던 두통약을 줬었어. 받자마자 그 큰 알약을 막 급하게 꿀떡꿀떡 넘기더니 지금 지수 너 앉아 있는 딱 그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볼수록 애가 명치 부근 혈이 꽉 막힌 것처럼 안색이 파리하더라고. 보다가 내가 걱정이 돼서 야야, 너 지금 다 늙은 노인네한테 약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병원을 가 봐야 한다, 그리 말을 했지. 근데 그게 또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니라서 내가 하는 말을 듣지를 않아. 가게 봐줄 사람 없다고.”
“아니, 지금 가게 봐줄 사람 없는 게 문제야? 나 참… 그래서? 이모 지금은 괜찮대?”
꽁꽁 언 만두 하나가 데구루루 철제 쟁반 위를 굴렀다. 너무 황당해서 그런지 손도 말을 안 들었다. 지수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옆에 놓인 박스에서 새 비닐장갑 두 장을 뽑아 양손에 하나씩 끼워 넣었다. 단골손님들에게 포장용으로 팔기 위해 따로 얼려 놓은 만두가 옆에 아직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의사가 그러는데 일주일만 늦게 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단다. 천만다행으로 하늘이 도운 거지.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지내다가 며칠 전에 그 집 딸 영신이가 가게에 뭐 가지러 올 게 있었는지 우리 시장에 왔더라고. 아장아장 걷는 자기 아들이랑 같이 있길래 내가 반가워서 아는 척 인사했더니 그제야 애가 나를 붙잡고 막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휴, 진짜 나도 눈물이 나서 혼났다.”
“영신이? 누구지…. 혹시 나 고등학생 때 결혼한 영신이 누나?”
“그래, 그 집 첫째 딸 영신이. 자기 엄마 병간호한다고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너무 안 좋길래 해 줄 게 없어서 이야기 들어 주고 만두나 좀 손에 들려 줘서 보냈지. 그 정신 없을 와중에도 애가 나한테 꼬박꼬박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내가 진짜 마음이 어찌나 안 좋던지.”
만두 빚기를 막 끝낸 연옥은 개수대 앞에 서서 쌓인 설거지 처리에 한창이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못 오긴 했나 보네. 밀린 보따리를 풀어 놓듯 두런두런 이어지는 수다를 듣고 있자니 입은 웃고 있어도 속이 썼다.
두 달 반 동안 지수의 애를 태웠던 영화 촬영은 지난 주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크랭크업에 빠질 수 없는 뒤풀이는 어느 고깃집에서 간단하게 이뤄졌다. 끝까지 살아남아 새벽까지 음주를 즐겼던 몇 스태프들이 말해 주기를 술자리는 3차로 갔던 술집에서 만취한 감독이 조감독 등에 업혀 실려 나가는 사태를 끝으로 파했다고 한다. 술기운이 올라 중반쯤에 일찌감치 자리를 뜬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귀중한 구경거리를 놓친 셈이었다.
“할머니도 조심해. 나 진짜 걱정된단 말이야.”
“나는 괜찮지. 내가 아직 팔팔하니까 이렇게 만두 빚으면서 여기 앉아 있는 거잖아. 그런 걱정 같은 건 한 개도 할 필요가 없다.”
“영숙이 이모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얘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봐, 영숙이 이모가 할머니보다 십 년은 넘게 젊은데도 일만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갔잖아. 맞지? 이거에 대해서는 할머니도 할 말 없지?”
연옥은 내년이면 예순일곱이 된다. 백세시대의 예순은 마치 옛날의 마흔과 같다는 말이 심심찮게 떠돌지만 그건 비교적 고생 없이 삶을 누린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지수의 나이 공격에 연옥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우리 시장에서 제일 젊게 살어. 나 봐, 아직 머리숱도 많잖아. 내 친구들 다 머리 없어서 빠글빠글 파마하고 돌아다니는데 난 아직 파마도 안 해. 그건 지수 너도 인정하지?”
“솔직히… 그래. 그건 내가 인정하지. 우리 할머니 제일 젊지.”
“그거면 됐지 뭘 그렇게 따지고 들어?”
“응, 인정은 하는데…. 내 말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응?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라 이거지.”
고운 얼굴로 어릴 땐 동네 남자들을 제법 울리고 다녔다는 연옥. 워낙 영리해 공부도 곧잘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시장 바닥에 눌러앉게 됐다는 지수의 할머니, 연옥.
할아버지는 총기 있고 명랑했던 연옥이 아픈 본인을 간호하느라 시장판에 영영 발목이 묶여 버렸다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연옥에게 미안해했다. 나 죽으면 마음의 짐일랑 잊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즐겁게 살다가 저승에서 만나자는 게 할아버지의 유언일 정도였으니.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기가 가득했다는 연옥. 그 기운에 사로잡히듯 할머니에게 반해 버렸다던 할아버지는 알까. 타고나길 총명하고 낙관적이었던 연옥이 본인이 죽은 후엔 혼자 남은 손자를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느라 다시 또 시장판 만둣집에 발목이 콱 묶여 버렸다는 걸.
“알았어,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해. 너 잔소리할 때마다 내가 아주 머리가 아파.”
“머리? 머리가 어떻게 아픈데? 나가서 약 사다 줘?”
“아, 됐어! 내가 농담도 못 해?”
불호령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하도 커서 어린애 한 명쯤은 거뜬히 들어갈 것 같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씻으면서 그 흔한 싸구려 고무장갑도 안 끼다니. 돌아서서 저를 향해 눈을 흘기는 연옥의 두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좋네. 우리 할머니 정정하네. 아주 백 살까지 사시겠어요?”
“백 살? 넌 그런 징그러운 소리 하지도 말어!”
시멘트 바닥에 이지러지는 물 자국들을 보며 지수는 간절한 소망을 농담 속에 섞어 보냈다. 본인 말마따나 모든 것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연옥이었지만 한평생 만두를 빚느라 무섭도록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만은 거짓말을 못 했다.
“내 걱정 하지 말고 지수 너나 잘해. 테레비 보니까 연예인들 일하러 갈 때 바쁘다고 과속도 무진장하고 건널목에서 신호 위반도 파리 잡듯이 한다더만.”
“그건 스케줄 많은 가수 쪽 이야기야. 나는 안 그래.”
“일할 때 너 태우고 운전해서 여기저기 데려다준다는 그 형하고도 잘 지내고. 화나게 하는 일 있어도 네가 참고 절대로 사람들이랑 싸우지 말고.”
“싸우긴 뭘 싸워. 할머니, 언제 내가 누구랑 싸우는 거 봤어? 그리고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 사이에 싸우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연옥의 염려를 산뜻하게 받아친 지수는 비닐봉지에 만두를 넣으며 숫자를 셌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그리고 스물. 동그란 고기만두 스무 개가 투명한 비닐 안에 담겼다. 개수를 맞춰 이렇게 1차로 깔끔하게 투명 봉투에 넣어 두면 후에 연옥이 ‘우정만두’라는 상호와 전화번호가 찍힌 두꺼운 흰 봉투에 담아서 원하는 손님들에게 따로 판매하는 식이었다.
빼곡하던 쟁반들이 텅 비도록 열심히 일한 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만나는 사람들한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엉.”
쪼그려 앉은 채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후 문을 닫으려는데 냉동실 문 모서리에 엷게 낀 성에가 보였다. 행주 어딨지. 젖은 행주를 가져와 힘주어 벅벅 문질러 닦는데 연옥이 너무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말들을 읊어 대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오늘은 왜 안 나오나 했다. 일명 남연옥 여사의 잔소리 종합세트.
“나이 많은 어른들한테 인사 잘하고.”
“어엉.”
“인기 좀 생겼다고 처음 가졌던 그때 마음이 변하면 안 되는 거야.”
“엉.”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든 성실해야 해, 성실. 알지?”
“어엉.”
스테인리스 표면을 따라 매달려 있던 얇은 얼음들이 행주질 몇 번에 남김없이 사라졌다. 긴 다리를 구부리고 한참 애를 쓰던 지수는 뿌듯한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무보수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치고는 실력이 괜찮지 않나? 혼자 앓고 있던 죄책감이 깨끗해진 냉장고와 함께 한 스푼이나마 덜어졌다.
“가기 전에 만두 좀 챙겨 줘?”
“응, 나야 그럼 좋지.”
귀에 인이 박이게 들어서 지겨웠다는 게 티가 난 걸까. 평소보다 훨씬 간소하게 잔소리를 끝마친 연옥이 늘 하던 질문을 건넸다.
“잠깐 기다려 봐. 아까 아침에 갓 만든 거로 챙겨 줄 테니까.”
설거지를 끝낸 연옥이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만두를 담으러 나섰다. 지수는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현욱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저녁 여덟 시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