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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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이 간절히 바라는 온기는 끝끝내 손을 맞잡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매몰차게 뿌리치지도 않는다.

잔인하고 애매한 온기에 매달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었기에, 이선은 언제까지고 매달릴 셈이었다.

지금 돌아서 나간다면, 다신 이곳에 올 수 없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았다. 이선은 강희찬의 왼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이러지 말라고. 이러지 말아달라고. 빌면서도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이선은 그의 입에서 ‘농담이었어요’라는 한마디가 나오길 간절히 빌었다. 그가 마지못해서라도 그렇게 말해줄 때까지 매달릴 셈이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방법도, 붙잡는 방법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선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뿐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매달리는 것도 이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구단의 트레이너인지 개인적으로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의 관계자인지 모를, 건장한 남자가 병실 문을 열었다. 선객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주춤하며 잠시 나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강희찬이었다.

묵언의 축객령이었다. 이선은 젖은 뺨을 다 닦지도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병실을 떠나야만 했다.

이제 완전히 그의 영역에서 내몰린 것이다. 충격에 사로잡혀, 택시를 타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야구장 주차장에 세운 차를 가져올 힘도, 정신도 이선에게는 남아 있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에 돌아와 침대에 파묻혀 웅크렸다. 저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에 컨디션이 좌우되어, 고치를 말고 숨어 들어가는 것은.

“…윽…….”

하지만 이토록 아팠던가? 이토록 서러웠고, 이렇게 숨을 쉴 겨를도 없이 눈물이 났던가.

숨을 쉬기 위해 울음을 참다가 결국엔 끅끅거리며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다. 가지 않았다면…….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희찬 씨…….”

언제나 부르기도 전에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불러도, 그는 언제나 돌아봐 주었다.

요즘따라 항상 얕은 잠으로 깨어버리는 꿈속에서, 그는 언제나 이선을 보고 있었다. 애원에도 굳게 눈을 감고 외면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아파요. 윽……. 희찬 씨…….”

그 남자를 애타게 찾았다.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를. 이선이 그토록 바라던 사람은 거기에 있었다.

“흐으…….”

꿈이 차라리 저의 현실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 * *

대형병원이란 곳은 어느 시간에 오든 사람이 참 많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아서야, 원…….’

번잡스러운 원무과 창구를 훑으며, 송재혁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아픈 것이 아픈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보험 처리를 위한 여러 서류를 발급받는 귀찮음까지 이어진다. 여러모로 서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송재혁은 벽에 붙은 전자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엔 구장 사무실에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송재혁 역시 ‘아프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있었다.

정확히는 미뤄오던 치과 진료를 위해서였다.

[정기적인 검진이 치아 건강을 유지합니다.]

치료를 받았던 이가 잘 있는지 검사가 필요하다는 치과의 문자를 몇 번이나 무시하면, 결국 간호사가 직접 전화까지 넣어준다. 동네 장사를 하는 개인병원은 이토록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무튼, 병원에 가야 해서 다음 날 반차를 쓰고 늦게 출근해도 되냐는 말에 홍보팀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대신, 파티션 너머로 있던 운영팀의 대리 한 놈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재혁 씨, 내일 늦게 와요?’

‘네? 아, 네. 진료 좀 받으려고요. 왜 그러세요?’

‘그럼 오는 길에 세브란스 들러서 서류 좀 떼다 줄 수 있을까요? 위임장이랑 신분증은 다 있으니까.’

동네에서 치과 진료를 받고 구장으로 출근하는 코스다. 그 길 어디에도 세브란스 병원을 ‘오는 길에’ 들러서 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절대 불가능한 소리였지만, 송재혁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염병. 귀찮아서 떠넘기기는.

온갖 욕설을 속으로 주워섬기며, 송재혁은 당연스레 대리가 건네는 서류봉투를 받았다. 동봉된 신분증은 강희찬의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찍은 것인지 머리가 다소 짧았지만, 그것조차 굴욕이 없다는 점이 송재혁을 더욱 짜증 나게 했다.

어쨌든 천천히 진료를 받고 오라는 홍보팀장의 말에 드디어 몇 달 만에 치과를 찾았다. 몇 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진료 후, 송재혁은 구태여 차를 몰아 이곳에 왔다. 강희찬의 수술과 관련된 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러.

‘내 진료도 5분이면 끝났는데, 남의 보험금 타는 서류에, 씨발, 30분이 넘게 기다렸어.’

창구 직원이 넘겨준 서류를 확인하며 병원 로비를 지날 때였다.

툭.

“아, 죄송… 어?”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확인보다도 먼저 입이 움직였다. 누구와 부딪혔는지는 그다음이었다. 눈을 마주치면 한 번 더 사과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송재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야, 너……!”

“…재혁아.”

익숙한 정이선. 올해로 안 지는 햇수로 13년째인 친구는 처음 보는 얼굴로, 마치 픽 쓰러질 것 같은 종이 인형 같은 모습으로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송재혁을 보자마자 영 좋지 못한 안색에 눈물이 더해졌다.

“야, 너 왜 갑자기……. 아니, 여기 왜 있어?”

“재혁아.”

“어? 어어…….”

‘상태가 왜 이러지? 어디 심각한 병이라도 걸린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이선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

“…….”

“네 명함, 몇 장 좀 주면 안 될까?”

그렁그렁.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툭, 하고 병원 로비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그와 동시였다.

“어이고…….”

입에선 정체 모를 감탄사만이 흘러나왔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송재혁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딱히 별 의미는 없는 탄식이었지만, 커피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 있는 이는 죄인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아, 그러고 보니 죄가 아예 없진 않겠구나.

“너, 남의 명함을 그렇게 쓰고 있었냐.”

“미안……. 관계자 아니면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걸 그 자리에서 명함 주고 들어갈 생각을 한 너도 참 대단하다. 임용 통과한 게 맞긴 했네.”

“…….”

애써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송재혁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강희찬과 문제가 있는 거라고.

애초에 정이선은 그가 한마디라도 경호원에게 해두었다면 바로 통과가 가능했을 터였다. 송재혁 역시, 제 눈에만 띄지 않았을 뿐이지, 이선이 뻔질나게 병원에 드나들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이틀 전에 퇴원한 사람을 병원에서 찾고 있는 모습 따윈 상상한 적은 없었다.

“…미안.”

이선은 잔뜩 움츠린 동물처럼 조용히 사과했다. 아니, 딱히 그렇다고 미안할 건 아니고. 송재혁은 어느새 마음이 약해지고야 만다.

“뭐… 근데, 내 명함 있어도 이제 소용없는데.”

“어?”

“퇴원했어. 그저께.”

“…….”

요 몇 주 사이에 눈이 더 커진 건지, 아니면 얼굴이 작아진 건지. 깜짝 놀라는 이선의 얼굴에서는 눈밖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역시 몰랐군.’

잔뜩 흔들리던 눈동자가 정처 없이 갈 곳을 잃었다. 그러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송재혁을 향했다. 연락도 없이 퇴원한 강희찬에게 가야 마땅할 원망 어린 눈동자를 마주하자, 송재혁은 오히려 제가 죄인이 되었다.

“아……. 아아…….”

“정 선생. 너 혹시 무슨 일 있냐?”

홀로 멍하니 침음하던 이선은 송재혁의 말에 눈물방울을 후드득 떨어트렸다.

“야, 너……!”

10년이 넘게 알아왔지만, 정이선이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송재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많이 운 것처럼 얼굴이 엉망이라고 어렴풋이 여기는 것과 실제로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희찬……. 윽, 희찬 씨가……. 나도 잘, 모르겠어.”

“…….”

“갑자기… 연락도 안 받으시고, 그때… 왔을 때는 이상한 소리만 해서……. 나는, 아직도 잘…….”

더 들을 것도 없다. 거기까지만 듣고도 송재혁은 감을 잡았다.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며 퇴근을 하자마자 병원에 왔을 모습도, 오늘 하루 멀쩡히 수업은 했나 싶을 안색도, 쉽게 툭툭 떨어지는 눈물방울도.

“…….”

송재혁이 봐온 정이선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고등학생 시절엔 그저 지독하게 공부만 하는 놈이었다.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던 철벽이 둘린 양 공부를 하고, 성적 하나 떨어지지 않던 정이선.

교복을 벗고 만난 정이선은 예전보다는 더욱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누군가를 이유로 우울한 얼굴을 하곤 했으니까. 그건 아마도, 정이선이 변했다기보단 자신이 친구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송재혁이 기억하는 대부분의 정이선은 누군가로 인해 참 힘들어했다.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정이선은 송재혁에게도 난감했다. 그리고 원망은 자연히 강희찬을 향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애가 이따위로……!’

“…….”

순간 열이 뻗쳐올랐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딱히 자신이 다혈질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송재혁은 알고 있었다. 구단에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숱하게 봐왔다.

부상 당한 선수. 보통 사람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봐 왔다.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기에, 송재혁은 더욱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혁아. 나, 그럼 가볼게.”

어딘가 혼을 뺀 표정으로 이선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송재혁은 가만히 그것을 말렸다.

“강희찬 집에 가도 소용없어. 팔 다쳤는데 혼자 있어서 어쩌게? 퇴원할 때 부모님이 본가로 데려가셨대.”

“아… 그, 그럼… 혹시 본가는 어딘지 알 수 있을까?”

순간 서류봉투 속에 담아둔 그의 주민등록증이 머리를 스쳤다.

짧은 내적갈등이 일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정 선생.”

“그냥,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물어보게. 희찬 씨가…….”

“이선아.”

송재혁은 다소 엄한 얼굴로 이선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부터 이선은 제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알게 된 세월에 비해 불러본 것은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낯선 호칭에 이선은 제 말을 멈추었다. 누군가를 떠올린 듯 아랫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쯧. 송재혁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새끼가. 세 살이나 어린 주제에 벌써 이렇게도 불러봤단 말인가.

난감함을 감추기 위해, 송재혁은 의미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 임용 한 번에 붙었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선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알려달라는 강희찬의 주소 대신 다른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겠지만, 송재혁은 부러 모른 척했다.

“교사니까 어지간한 일 없으면, 넌 정년까지 쭉 학교에서 애들 보면서 일하다가 퇴직할 거야. 연금도 나올 거고.”

“…….”

“너 임용 합격하고, 바로 육군 입대했을 때…….”

송재혁은 가만히 말을 끌었다.

혼자 생각하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피하곤 했다. 속말을 꺼내는 것은, 그것도 당사자인 이선에게 꺼내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송재혁은 어느새 시선을 테이블 위 유리잔으로 향했다.

“만약에 너 군대 안 갔으면… 내가 먼저 연락 끊었을지도 몰라.”

“…뭐?”

오직 한 사람으로 집결되었던 이선의 집중력이 순간 분쇄되어 파스스 흩어졌다.

십여 년을 이름은 알아온 고등학교 동창이며, 지금은 이선의 유일한 친구. 그런 이에게서 처음 듣는 말에, 이선은 울먹이던 것도 잊은 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수아랑도 그때쯤 헤어졌거든.”

“…….”

“넌 군대 가긴 했어도, 어쨌든 다녀와서 발령만 받으면 바로 직장 생기는 거였잖아. 수아도 그때 회사 다니고 있었고. 나만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었으니까.”

“그거야…….”

교대를 나온 이선이 특수한 경우라고. 스물넷, 다섯 즈음의 남자는 대부분 대학을 다니고, 그때의 학생들은 미래는 물론 현재마저도 불안정하다. 그런 당연한 사실은 교대를 나온 정이선보다도 보통의 대학을 나온 송재혁이 더 잘 알 터였다.

“알아. 내 주변 애들이 거의 다 그랬으니까. 네가 특별한 경우였던 거 알아. 수아도, 졸업 먼저 했으니까 입사 빨리 했다고 해도……. 알잖아. 걔도 공대 나와서 바로 칼 입사했던 거.”

“…….”

“같이 학교 다닐 땐 그냥 둘이서 커피 하나 사서 돌아다녀도 재밌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만나기도 싫어지고. 너도 수아도, 다들 저 멀리 앞서가는데 나만 언제고 이 근방에서 못 벗어날 것만 같았어.”

“…….”

“내가 그 얘기 한 적 없었지? 걔랑 헤어졌던 이유, 그거 걔네 팀에서 점심 회식해서 그랬다고.”

“…어? 아, 응…….”

처음 듣는 말에 이선은 어색하게 맞장구를 쳤다. 송재혁은 일부러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듯 장난스러운 얼굴을 했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냐. 팀 사람들이 다들 술은 못 하고, 집도 멀리 살아서 그냥 점심에 호텔 뷔페 가서 회식했다. 그게 끝이었어.”

‘회식으로 가봤는데, 뷔페치고 생각보다 메뉴가 괜찮더라. 나중에 같이 가자.’

짧은 한마디였다. 어디에도 악의도, 낮춰보겠다는 우쭐함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때 송재혁의 열등감을 자극하기는 충분했다.

직장을 가진 여자와 아직은 대학생인 남자. 흔하디흔한 캠퍼스 커플의 끝을 향해가는 궤도에 저희도 올랐던 이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송재혁이 그때의 송재혁을 책망할 자격은 있을까.

송재혁은 조심스레 눈을 들어 올렸다. 혼란스러움에 버거워하는 이선이 망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그럴 때가 가끔 있어. 고작 직장 하나가 뭐라고 그랬나 싶기는 한데……. 그냥, 이렇게 사람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내 주제에 사치라고 느낄 때가 있더라고. 곁에서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진심이란 건 아는데, 내 자격지심이 그걸 곧이곧대로 못 듣는 거야. 그렇게 삐뚤게 듣고, 또 그렇게 꼬인 나 자신이 더 싫어지는 거지.”

대학 시절 어정쩡하게 재회한 고교 동창 사이는 송재혁이 야구단에 입사한 이후로 더욱 돈독해졌다. 그가 졸업반이던 시절, 그리고 졸업을 하고 입사를 하기까지의 기간은 다소 연락이 소원했다.

바쁘고 정신이 없을 시기라고. 겪어보진 않았기에 모르는 취업대란이었다. 이선 역시 당시에는 학교 일을 따라가기도 벅찬 초짜 선생이었다.

그러던 송재혁이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불러내서는, 안주가 차려진 테이블 위로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합격한 것을 진작 알려주지 않아 섭섭하긴 했어도, 이선은 정말 기뻤다.

…그때 받은 송재혁의 명함이 몇 년 뒤 이렇게 사용될 줄도 모르고. 새삼 제가 한 짓을 깨달은 이선은 양심이 아팠다.

“비슷할 거야. 내가 운동선수가 아니라서 잘은 몰라도, 사실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아.”

“그런…….”

“그리고… 아마 너는 그걸 정년 때까지 이해 못 할 거고.”

덧붙는 송재혁의 말이 비수처럼 이선을 쑤신다.

너는 이해 못 해. 넌 몰라.

그와 자신의 사이에 벽이 쳐졌다. 이 순간만큼은 이선은 송재혁이 원망스러웠다. 마치, 그가 강희찬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을 하는 이선을 송재혁은 가만히 달랬다.

“건강한 거 하나로 밥 먹고 사는 프로잖아. 근데 그게 한순간에 무너졌어. 오른팔 다친 거고 뼈도 빨리 붙어서 퇴원도 빨리했어도……. 그냥, 그렇더라고. 다들… 남들한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그게 지금 자기한테는 크고 힘든 거야.”

“…….”

“곁에 누구 하나 두기가 버거울 만큼 힘들 때가, 가끔 있더라고.”

송재혁은 말했다. 정년이 될 때까지 모를 거라고.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도망치는 것에 익숙한 것은 정이선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간다면……. 그곳에서의 ‘정이선’도 잘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했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은 ‘남겨질 이’의 자리에 서본 적이 없었다.

훌쩍 떠난 후, 제 곁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살 거라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정이선이 사라진 거로 마음을 쓸 이는 없다고. 어머니도 처음엔 속상하시겠지만, 하자 많은 아들은 잊고 당신 편하신 대로 사실 거라고 마음대로 여겼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 바람이었는지, 이선은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나 때문에…….”

“네 탓이 아니야. 정 선생, 그렇게 생각하지 마.”

“…….”

“그냥… 지금은 좀 힘들 수 있어. 그거, 네 탓 아니야.”

“재혁아…….”

하지만 머리로 이해를 한다고 해서 포기가 되는 건 아니었다.

매달려야 한다. 다시 한번 그를 만나서 매달려보면……. 그러면, 어쩌면……. 그 사람은 언제나 저에게는 제법 무른 편이었으니…….

이선은 입술을 한 번 꾸욱 물었다. 피가 맺힐 듯 새빨개졌지만, 요 며칠 잠이 부족한 탓인지 아픔에는 무뎌졌다.

“수아 씨 말이야……. 그때, 헤어지자고 말할 때… 안 힘들어했어?”

이선은 조심히 물었다. 연인 사이의 일을 묻는 것은 실례였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힘들어했지. 걔가 나 엄청 잡아줬어.”

차라리 나도 학생 만나는 거 시시하고 힘들었다고 나왔다면 나았을까. 나 같은 게 뭐라고 매달리는 모습이 마음 아파서 더 모질게 굴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인 순간에도 이수아는 좋은 여자라서, 그래서 송재혁은 더욱 비참했다.

“너… 저기, 수아 씨가 뭐라고 했으면, 네가…….”

송재혁은 이선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

“아니, 그러니까, 나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정제되지 않았다. 이선의 말이 자꾸만 끊겼다. 송재혁은 그것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었지만, 이선이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는 진작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이수아도… 아마도 저것을 알고 싶었을까.’

송재혁은 일자로 굳게 다물었던 입을 뗐다. 무의미한 희망의 끈을 쥐고 있는 친구가, 최대한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아니.”

“…….”

사랑으로 상처받는 건 충분하지 않았던가.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선이 조금이라도 빨리 아픔을 덜기 위해선, 자신이 모질어져야 했다.

“아니야. 걔가 무슨 말을 했어도, 그땐 헤어졌을 거야.”

“…….”

물기가 어린 눈이 한 번 깜빡여진다. 그러자 툭, 하고 물방울이 후둑 떨어졌다. 얼굴을 흐르는 것도 아닌, 아래로 툭 떨어지는 모습에 송재혁은 어딘가가 저릿했다.

“정 선생…….”

“그럼… 그럼, 나는 어떡해?”

“…….”

인연은 인연인가 보네.

송재혁의 연애사를 대충 아는 대학 동기들은 그런 말을 했다. 송재혁 역시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였다.

“…….”

‘인연이면 다시 만날 거야.’

그 흔하고 뻔한 위로가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답이었다. 인연이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얼마나 무책임하고 속 편한 소리란 말인가.

도저히 입을 뗄 수 없었다.

“나는…….”

한 가닥이 남은 인연의 끝을 동아줄처럼 쥐고 있는 친구를 향해……. 그와 네가 인연이라면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딴 속 편한 소리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첫사랑의 아픔을 뒤늦게 겪고 있는 이선에게. 이제야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보는 친구에게 ‘지나면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쉼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 * *

학기 초의 환영회, 학예회, 학기 말 이후의 송별회. 거기에 스승의 날까지. 초등학교 교사들의 회식 핑계가 되는 날은 거기서 거기일 거다. 물론 아직 첫 부임 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선으로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중고등학교였다면 중간, 기말고사가 구실이 될 수도 있지만, 요새 초등학교는 시험도 거의 보지 않는다.

어쨌든 이번 회식의 핑계는 스승의 날이었다.

어차피 빨간 날도 아닌 거. 그냥 달력에서 이름을 없애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다. 스승의 날을 핑계로 전체 회식을 진행하는 교감 선생님의 엄한 얼굴이 그 생각에 박차를 가했다.

늘 가는 고깃집은 언젠가 강희찬이 야구부를 데리고 왔던 곳이었다.

학교에서 일하면 잠시나마 그가 잊혀야 하는데. 그는 저의 주변 어디에나 있었다. 이선은 그것이 퍽 분했다. 그래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기만 했다.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 줄 몰랐다며, 신이 난 교장 선생님이 채워주는 잔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을 정도로.

“으아…….”

인생 최대의 주량 갱신이다. 그것도 최단 시간 주파였다.

알딸딸하다 못해 세상이 흐물거렸다. 이선은 고깃집을 나와 해산하는 무리에게 겨우 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가물거리는 오피스텔의 이름을 겨우 말했다. 지나치게 가까운 목적지에 기사는 짜증을 낼 법도 하였으나, 취객을 향한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몇 번 와본 동네에서 이선은 내렸다. 하차하자마자 보이는 편의점에 들렀다.

고깃집에서 마신 술이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술이 깨고 있는지. 살짝 정신이 들고 있었다. 애매한 취기는 불쾌함을 선사할 뿐이다.

이선은 편의점에서 초록 포션을 사고 호기롭게 오피스텔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곳에 쪼그려 앉았다.

까득.

안주도 없이 덜렁 사 온 소주병을 열었다. 자꾸만 손이 삐끗해서 몇 번이나 고쳐 쥐며 뚜껑을 열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드러난 병의 입구를 보자, 이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히히.”

양손으로 소주병을 쥐고 한 모금 마셨다. 액체는 이미 혹사당한 식도를 쉬이 넘어갔다. 그리고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고깃집에선 무서울 정도로 아무 맛이 안 나던 소주가 너무 썼다.

“으…….”

이선은 질겁하며 병에서 입을 뗐다.

“상했나 봐.”

속상함이 잔뜩 묻어나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팽개치듯 소주병을 바닥에 놓았다.

“아으…….”

땅이 흔들린다. 마치 놀이기구나, 아기들이 누워 자는 흔들 요람에 탄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한 모금 마셨다고 다시금 취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휘청이는 몸을 애써 다잡는 이선은 거의 오뚝이였다.

흔들흔들. 미풍에도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한참 몸을 흔들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무렵이었다.

“…정 선생님?”

또 꿈을 꾸는 모양이다. 꿈에서나 듣는 목소리가 차 소음에 섞여 오늘따라 퍽 멀게 들렸다.

깨지 않기를. 오늘은 좀 더 그와 같이 있기를.

이선은 오늘이야말로 오래오래 잘 수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야가 일렁였다. 흐릿한 세상이었지만, 봐야 할 오직 한 사람은 분명했다.

“…….”

오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가벼워 보이는 깁스를 한 강희찬이.

처음엔 대체 뭔가 싶었다.

누군가 무단투기한 쓰레기겠지 싶어 무심히 주차장 입구를 향해 차를 몰다, 그것이 사람임을 문득 깨달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에 익은 옅은 머리 색이 존재감을 내밀었다.

길가에 급히 정차했다. 뒤에서 오던 차를 생각할 새도 없었다. 강희찬은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팔이 아직 온전히 다 나은 것이 아니라 운전은 다소 위험했지만, 그는 이미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주정차 구역도 무시한 채 차를 대고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희찬은 제 추측에 대한 확신이 섰다.

“…정 선생님?”

조심히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곁에 있는 소주병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양이 남아 있었지만, 명백히 개봉의 흔적이 있었다.

“와아.”

기가 막힐 무렵, 이선은 어느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확실히 정이선이 맞았다.

정이선이었으면 하면서도, 아니어야 했다. 길거리에 이렇게 엉망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순간, 강희찬은 차라리 이번에도 자신이 환영을 본 것이었으면 했다.

“와, 희찬 씨다.”

발갛다 못해 붉어진 뺨에 눈은 다 풀렸다. 9시도 되지 못한 시각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정이선이어서는 안 되었다.

강희찬은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오른다는 감각을 살면서 처음 깨달았다.

“지금, 대체……!”

“…….”

“술 마셨어요? …여기서 마셨어요?”

“교장 선생님이…….”

씨발, 교장! 그놈의 학교는 왜 이렇게 애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란 말인가.

강희찬은 확신했다. 그놈의 학교를 드디어 교육청에 민원 넣을 때라고.

“하아…….”

생각을 겨우 진정시키기 위해, 강희찬은 일단 한숨을 쉬었다. 아직 밤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각에 교사를 잔뜩 취하도록 술을 먹이는 교장에게 열을 내봐야 눈앞에 있는 건 이선뿐이다. 힘이 없는 어린 교사는 잘못이 없었다.

강희찬은 웅크려 앉은 이선을 향해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화가 난 기색을 최대한 누르고 팔을 뻗었다.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왼팔을.

“일단… 일어날 수 있겠어요? 차에 타요.”

손이 멀쩡했다면 둘러매든 안아버리든 했겠지. 두 팔이 멀쩡했다면…….

강희찬은 이제 그럭저럭 익숙해진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뼈가 거의 다 붙었다고. 회복력이 성장기 청소년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별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래 봐야 아직도 깁스를 두른 신세였으니까.

“…싫어요.”

잔뜩 풀린 목소리가 반항의 말을 중얼댔다.

강희찬은 인생 대부분을 제 의견을 관철하며 살아왔다. 당연히 반박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그 상대가 이선이라는 점은 더욱 낯설다. 때문에 그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뭐?”

“싫어요. 여기 있을 거예요.”

“허…….”

말 같지도 않은 거부를 계속한다면 차라리 업어버려야지. 각오를 다졌다. 한쪽 팔뿐이었지만, 업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이선은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행동이 하도 느려서 마치 나비가 번데기를 찢고 나오는 것 같았지만, 강희찬은 차분히 기다렸다.

이선이 몸을 일으키자, 강희찬 역시 따라 일어섰다.

앉았을 때보다 더 휘청이는 마른 몸이 위태롭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방향으로 절로 손이 뻗어 나갔다. 다행히 이선은 그의 팔이 부축하기 전, 스스로 중심을 잡았다.

…위태로워 보이는데, 의외로 안정적이다. 신기하면서도 불안한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희찬 씨.”

“네.”

오피스텔 입구. 널브러진 소주병을 곁에 둔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얼마 만인지. 오랜만에 마주한 강희찬은 이선의 얼굴을 꼼꼼히 내려다보았다. 기억보다 조금 더 지쳐 보이고 살이 내린 뺨으로 밤거리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흐드러졌다.

“희찬 씨 맞아요?”

“네, 맞아요.”

“진짜 희찬 씨에요, 아니면 꿈이에요?”

“…….”

“…꿈이구나.”

이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 강희찬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익숙하게 저의 정체를 확인하는 이선이 그간 어떻게 지내왔을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강희찬은 발밑이 무너졌다.

…안 된다. 그래서 안 되었다.

고작해야 자신이 뭐라고. 이제야 재활을 시작하는 운동선수가 대체 뭐라고 이선이 힘들어한단 말인가.

‘이딴 놈이 뭐라고, 이 귀한 사람이 아직도…….’

눈가의 피부는 눈으로만 봐도 약해져 보였다. 강희찬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눈을 떼었다.

애써 시선을 돌린 채, 재차 이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걸어볼래요? 데려다줄게요.”

“희찬 씨.”

이선은 뻗어오는 강희찬의 왼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희찬 씨… 많이 힘들어요? 저 때문에.”

“…….”

“네? 말해주세요. 나 때문에… 희찬 씨 많이 힘들어요?”

“정 선생님.”

“저, 이런 거 잘 몰라요. 그래서 말해주시지 않으면 안 돼요.”

“…….”

눈을 질끈 감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눈꺼풀만 내리면 찾아오는 암흑 속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렇게 잔인한 질문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눈앞의 이는 정이선의 탈을 둘러쓰고 온 악마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선을 미끼로 찾아온 악몽이든가.

“…그렇구나…….”

답이 없는 강희찬의 반응을 이선은 어렵지 않게 해석했다. 그 순간, 강희찬의 발밑은 또 한 번 벼랑이었다.

“희찬 씨……. 안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

“정말… 정말 많이 힘들어요? 조금 많이 말고. 진짜 진짜 많이 힘들어요?”

“선아…….”

“그러면은… 안 되는데…….”

이선은 어느새 바닥으로 눈을 내린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희찬 씨, 힘들면은 안 되는데…….”

이 사람은 언제나 웃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은 그것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처럼, 울음을 삼키는 얼굴 말고. 웃는 걸 보고 싶었다.

아주 잠깐은 자신이 해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내가 나아.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 손을 뻗었는지도 모른다.

우는 건 죽어도 싫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정이선이 운다면, 저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치겠다는 감언이설을 할 자신도 있었다. 평생 울리지 않겠다는 호기로운 다짐도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럼…….”

이선은 손을 들어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강희찬은 순간 눈을 찌푸렸다.

다른 곳보다도 약한 피부에 물기가 닿고, 거길 또 거친 손길로 문지른다. 금세 빨개지는 피부가 안타까워 강희찬은 손을 들어 올렸다. 팔을 잡아채어 말릴 생각이었으나, 이선은 어느새 굳은 결심을 마친 표정을 보여주었다. 두 주먹을 말아 쥐고, 입술을 앙다문 채 강희찬을 바라보았다.

“희찬 씨,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왜 이래야 하는지…….”

“…선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매일 생각해 봤는데. 아직도, 저는…….”

“…….”

“그래도 희찬 씨 안 힘들게 할래요.”

“…….”

“저도… 제가 노력할 테니까. 희찬 씨, 힘들지 마세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선이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지.

무엇 하나 강희찬에게 버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도, 자격도 없었다.

애써 굳세게 보이려 노력하는 이선은 어느새 또다시 눈물을 매달고 있다.

“…….”

참 많이도 운다. 몸에 있는 물기를 다 눈으로 쏟아낼 셈인지.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기만 해도 명치가 저리는 얼굴을 계속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이대로 품에 넣어서 달래주고 싶었다. 그 언젠가처럼, 자꾸만 품에서 벗어나려 해도 억지로라도 품에 넣어서 울지 말라고 달래고 싶었다. 이선을 달랠 한마디를 강희찬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이선을 달랜다면……. 결과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부상 재활 따윈 해본 적도 없었다. 재활하는 강희찬이 어떤 인간인지는 20년이 넘게 강희찬으로 살아온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다. 저조차도 어떤 놈일지 모를 놈을 이선의 곁에 세울 수는 없었다. 망가진 팔이나 보며 둘이 앉아 우울한 얼굴이나 하다, 결국 이선은 돌아서서 몰래 울기나 하겠지.

차라리 지금 이렇게 한 번 아프고 마는 편이 나았다.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타나 품에 넣어주고 웃게 해줄 날은 금방 올 거다.

“희찬 씨는… 아프면 안 돼요.”

동감이었다. 비록 주어가 달라도,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강희찬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네. 고마워요.”

차라리 지금 좀 울더라도……. 그게 차라리 나았다. 저의 곁엔 이제, 모든 것이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 불확실한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명확했다.

입술을 힘주어 문 이선의 턱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 너무도 티가 났다.

“…….”

지금은 저렇게 힘들게 울음을 참고 있더라도……. 조금만 지나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겠지. 그런 이선의 곁에서, 예쁘게 웃는 얼굴을 넋 놓고 지켜볼 이도 분명 생길 테고.

그래야만 한다. 이선이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저 울음을 제가 오롯이 받아갈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강희찬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타요.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안 탈래요.”

이선은 고개를 모로 틀어 강희찬의 팔을 슬며시 피했다. 강희찬의 손바닥엔 서늘한 밤공기만이 외롭게 스쳤다.

분명 먼저 돌아선 것은 저였는데도, 이기적인 마음엔 상처가 생긴다. 이선의 거절은 늘 이렇게도 아팠다.

“그럼 택시 잡아줄게요.”

“싫어요. 걸어갈 거예요.”

“무슨…….”

이제 삐뚤어지기로 제대로 마음먹은 건지.

오늘의 이선은 지금까지와 달리, ‘싫다’가 많았다. 마지막이라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참 고마운 일이었다. 꿈에서 볼 정이선이 늘어났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저의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말만큼은 절대 고마운 소리가 되지 못했다.

남은 인내심을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좋은 남자인 척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내 차 싫으면 택시 타요. 지금 똑바로 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걸어가겠다고.”

“갈 수 있어요. 택시 안 타요. 돈 아낄 거예요.”

“…뭐요?”

강희찬의 미간이 짙게 파였다. 좋은 남자의 가면은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었다. 평소의 이선이라면 한 번 움칫 떨었을 법도 한 표정의 변화였지만, 술을 마신 이선에겐 두려움이 없었다.

술에 취한 이선에게 남은 것은 자기주장뿐이었다.

“돈 아껴서, 나중에 나 혼자 잘 먹고 잘살 거예요.”

원대한 노후 계획 선포였다.

독립 선언을 낭독할 때보다도 더 비장하게 선언을 마친 이선은 방향을 틀어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었다. 비틀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다.

강희찬은 서둘러 걸음을 떼다가 주춤했다. 이선이 존재를 잊은 소주병이 덩그러니 길바닥에 서 있었다.

‘저거…….’

“…….”

강희찬은 재빨리 이선의 흔적을 챙겼다. 차 뒷좌석에 그것을 던지듯 넣고, 키를 챙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견인 조치를 면할 수 없겠지만.

“…정 선생님, 잠깐만요!”

일단 이선의 뒤를 따르는 것을 택했다.

* * *

차로 왔으면 5분도 되지 않았을 거리를 거의 두 시간째 걷고 있었다.

“…….”

“가세요! 오지 마세요!”

흐물흐물. 휘청휘청.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걷다가도, 이선은 가만히 뒤를 따르는 강희찬에게 다가와 저리 가라며 엄포를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가슴팍에 양손을 대고 체중을 실어 밀어내기까지 하다, 혼자 또 걸어가기를 반복했다.

“혼자 갈 거예요! 따라오지 마세요!”

작은 동물이 잔뜩 털을 세우는 모습이다.

양손으로 세기도 벅찰 만큼 뒤로 밀려났던 강희찬은 멍하니 생각했다. 이번에도 순순히 뒷걸음을 치며 이선이 미는 대로 물러났다. 그는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러니 두 시간이나 걸리지.’

가슴팍에 얹어진 손에서 나오는 미약한 힘이 강희찬을 밀어냈다. 두세 걸음 정도 밀려주고 나니, 이선은 다시 뒤를 돌아 몇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뒤를 따라가려는 강희찬에게 다가와 엄포를 놓기를 반복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웬 개그 연습이라도 하는 건가 싶을 바보 같은 꼴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목적지까지 올 수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허름한 원룸의 입구를 마주하자, 안도감과 함께 짙은 아쉬움이 강희찬을 뒤덮었다.

“…….”

비록 밀려나더라도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강희찬의 발걸음이 멈춘 것도 그 순간이었다.

“들어가요.”

“…….”

원망스러운 눈길이 강희찬을 매섭게 올려다본다. 물기가 어린 눈빛은 그리 위협적이진 못했다. 다만, 이것이 마지막이란 사실이 두려울 뿐이다.

강희찬은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이제 곧 이선을 삼켜버릴 원룸의 입구를 보고 있을 자신이 없다.

“응? 얼른 올라가요.”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같이 있어달라고.

사실은 그런 이기적인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차마 내뱉을 순 없었다. 어느새 이선의 눈엔 또다시 눈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눈물을 들키기 싫다는 듯 이선은 홱 뒤를 돌아버린다. 순간, 강희찬은 손을 뻗었다. 유약한 온기는 쉽게도 그의 손바닥에 감겼다.

“정 선생님.”

“…놔주세요.”

이선은 뒤를 돈 채 울먹였다. 애써 가시를 세우는 뒷모습을 끌어당겼다. 작은 몸은 무력하게도 제 품에 떨어졌다.

“…….”

어느새 품에 눈물이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만… 부탁 하나만 할게요.”

“놓으세요. 이러시면, 저는…….”

“울지 마요.”

강희찬은 언제나 봄볕의 향기가 날 것 같은 머리카락에 코를 파묻었다. 마지막이라는 핑계를 둘러맨 이기심이었다.

“정 선생님이 울 때마다, 내가 낫는 게 하루씩 늦어진다고 생각해요.”

“무슨, 그런……!”

품에 들어온 몸이 바르작거렸다. 강희찬은 그것을 왼팔로 감싸 안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버텨줘요.”

“…희찬 씨…….”

“괜찮아져요. 분명 괜찮아지니까…….”

아마도. 그리고 이선에게만큼은 반드시.

“…….”

“오늘까지만, 딱 여기까지만 울고…….”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런 게… 나빠요.”

“난 원래 못된 새끼였잖아요. 착한 정 선생이 봐줘요.”

“나빠요. 너무 나빠요…….”

원망의 말조차도 무디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차마 이선은 강희찬의 팔을 뿌리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도 너무 착하고 예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강희찬 역시 품에 갇힌 이의 온기를 한참이나 놓지 못했다. 마지막 욕심을 한껏 채워 넣었다.

“희찬 씨… 정말 나빠요.”

입고 있는 티셔츠가 축축하다 느껴질 때까지. 언젠가의 이선이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눈물 자국을 남길 때까지 한참을 말없이 안고 있었다.

강희찬은 코끝에 닿는 가는 머리카락에 몰래 입술을 맞추었다. 마지막이라는 핑계를 둘러 입은 이기심이었다.

“…….”

끝. 그리고 시작.

세 번째 아웃 카운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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