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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내리고, 원정 경기 후에 씻고 오지 못한 관계로 로커룸에서 가벼운 샤워를 마치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각자 내일 쉬는 날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아내가 친정에 애를 맡기고 동창들과 여행을 갔다는 박신우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일주일 넘도록 새끼 못 봤는데, 그렇게 좋냐?”
부러움을 이기지 못한 권승훈의 타박에도 박신우는 끄떡없었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무시했다. 그저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집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늦은 저녁 식사 파티원을 모집하기에 바쁠 뿐이다.
아내가 멀쩡히 집에서 일주일 만의 귀가를 기다리는 대부분의 유부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얼른 가서 자는 애 얼굴이라도 구경해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박신우를 향한 부러움을 차마 감추진 못했다.
아내와 애가 없는 하루. 그건 유부남들에겐 하이테크 무기와 슈퍼카를 몰며,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는 대사를 읊는 영국 요원보다도 멋진 존재였다. 비록, 남자들끼리 모여 만두전골을 먹는다 하더라도.
계속된 거절을 당했던 박신우는 이제 노선을 틀었다. 유부남들은 필요 없다. 그는 고양이 세수를 하듯 샤워를 하는 와중에도 미혼인 선수들에게 밥을 같이 먹고 들어가자며, 쉼 없이 추근댔다.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울리는 로커룸에서 머리의 물기를 털던 강희찬은 그의 파티 제안을 받은 열일곱 번째 인물로 선정됐다.
“너 어차피 집에 밥도 없을 거 아냐. 혹시 어머니 오셨대?”
“아닐걸요. 연락 온 거 없었어요.”
한 손으로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만지는 강희찬이 심드렁히 대답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박신우는 ‘그럼 잘됐네!’라며 반색했다.
“네 친구는 무슨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놨는지 안 간다는데, 너라도 같이 가자.”
“…친구 아닌데요.”
“나이 같으면 다 친구지, 무슨. 아무튼, 너 무게 다시 돌려놓으려면 부지런히 채워야 할 거 아냐.”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185개가 쌓인 문자 목록을 슥, 내렸다. 대부분이 카드사에서 날아온 것이었고, 가끔 쓸모없는 녀석들이 쓸모없는 이유로―‘개새끼 왜 전화 안 받아. 나 차단했냐?’― 보낸 것도 있다.
쓸모없는 문자는 기가 막히게 많이 오는 데 비해, 필요한 연락은 오지 않는다. 화면을 슥슥 내리던 강희찬의 손가락이 누군가의 이름이 보인 순간 멈추었다.
“…….”
정이선.
공무원 주제에 공무원이라고 저장했더니 싫다고 발작을 하기에, 차선책으로 저장했던 이름 석 자였다. 서울을 떠난 일주일 내내,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만들던 이름이기도 했다.
언젠가 홍보팀장의 전화번호를 보냈던 날 이후로, 며칠이 지나서야 대화창에는 새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월요일에 차 가지고 출근해요? 한 차로 움직이게.]
[아니요. 그때 5부제 걸리는 날이라서요. 걸어서 출근할 것 같아요.]
원정 첫날. 등판을 마쳤던 강희찬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낮부터 평소엔 잘 만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손에 가지고 있어서 감독에게 혼이 날 정도였다. 핸드폰 하지 말고 일찍 자라는 권승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호텔 침대에 누워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산이인지 강이인지. 어쨌든 애새끼가 좋아할 거라는 말랑한 내용과 말투의 문자를 보다가, 충동적으로 문장을 쳐서 보낸 거다. 다음 주 월요일인 약속 당일에 물어봐도 충분할 것을, 굳이 그 전주 화요일, 그것도 11시에.
2분을 간격으로 두고 온 이선의 답장을 보다가, 강희찬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너무 오래 답을 보내지 않으면 제 문자를 보지 않는다고 여기고 시무룩해질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읽었다는 표식이 남는 메신저가 아닌,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걸어서 출근하겠다는 사람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왜 가지고 있는 차를 못 쓰게 하는 거냐, 그 망할 학교는.
[그래요.]
하지만 결국 보낸 건 그게 전부였다.
자신이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일과이지만, 이선은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지금쯤이면 자려고 준비해도 이상하지 않다. 괜한 말을 붙여서 귀찮고 성가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원체 착한 사람이니, 귀찮고 곤란해도 직접 말하진 못할 것이다. 졸음을 꾹 참으며 억지로 답장을 보내겠지. 성가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만약 자고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먼저 무슨 말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핸드폰을 쥔 채였다.
원정 경기 내내 자꾸만 들여다봤던 핸드폰은 매정하게도, 끝내 원하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멀거니 화면을 보던 강희찬은 때때로 웃었다. 마치, 지금처럼.
“어디 가?”
박신우는 강희찬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물어왔다. 망해가는 게임의 파티원이 게임을 관두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머리 말리게요.”
강희찬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방금 이승주가 내려놓은 헤어드라이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싹 말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바글거리는 파마머리가 가까워졌다.
요새 저 새끼를 보면 자꾸 무언가 생각날 듯 찝찝했다. 분명 조져야 할 일이 있었는데 생각나지 않아 몇 날을 그냥 보냈던가. 이래 놓고 꼭 나중에 그 이유가 떠오르는 게 문제였다.
“승주, 같이 갈래? 넌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리시나?”
“뭐 먹는데요?”
“만두전골. 저번에 갔던 데.”
“아아, 거기.”
대체 왜 머리는 주기적으로 볶아대는 거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이승주는 ‘관리하기 편해서’라고 답했던가? 저게 과연 관리가 되는 건 맞는지. 뜨거운 바람을 맞아서 한층 더 고슬고슬 부풀어 오른 머리가 강희찬의 옆을 스쳤다.
“…….”
그 순간,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번졌다.
분주한 로커룸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춘 강희찬이 뒤를 돌았다. 마스코트 탈처럼 부풀어 오른 뒤통수에 박신우의 얼굴이 가려진 채다.
기분 나쁠 것이 없는 익숙한 냄새였다.
자신은 분명 까다롭지 않은 취향이었다. 미용실에서 적당히 추천해 주는 걸 쓸 만큼, 냄새에 민감한 타입은 아니다.
초봄부터 쭉 써왔던,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냄새가 유독 예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누군가의 온기와 제 목덜미에 내뱉던 숨소리가 그려진다. 그것이 강희찬을 갑자기 불쾌하게 만들었다.
“야.”
“…네?”
만두전골을 먹을까, 아니면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저녁밥을 먹을까.
고민하던 이승주는 뜬금없는 부름에 뒤를 돌았다. 지나가는 똥개 새끼를 향한 호칭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저 목소리가 ‘야’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몇 안 된다는 걸 이승주는 잘 알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핸드폰을 보면서 웃던 인간이 왜, 갑자기…….’
이승주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는 선배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불행한 사실은, 강희찬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래도 좋지 못한 기분이 급격히 망해가는 구단의 팀 성적처럼 바닥을 찍는다.
“너 샴푸 바꿔.”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승주의 귀에 날아와 꽂혔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선배의 부당한 갑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승주는 바짝 언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네, 네…….”
“…….”
“형, 저 먼저 가볼게요.”
게처럼 걷는 옆걸음으로 슬금슬금 강희찬의 손이 미치는 사정거리 밖으로 나갔다. 어디까지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어서 함부로 나댈 수가 없다.
어쨌든 빨리 저 성질머리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이승주가 동아줄처럼 로커룸의 문을 잡았을 무렵이었다. 묘한 웃음기를 띤 박신우가 이승주를 불렀다.
“저녁 먹고 가는 거 아냐? 집에 가봤자 밥 없을 거 같다며.”
…밥은커녕 생수 한 병 없어도 집에 가고 싶다. 가는 도중에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을 먹는 한이 있어도, 저 저승사자랑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기는 싫다. 저승사자보다 여덟 살이나 연장자인 선배는 절대 이해 못 할 마음이겠지만.
이승주는 동분서주 움직이는 안면근육을 최대한 다스리며 뻣뻣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저, 지하철 시간 때문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밥만 먹고 가면 되지. 아니면 먹고 내가 데려다줄게.”
“아, 아뇨……. 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붙잡아대지?
단합을 강조할수록 팀이 못한다는 증거다. 컵스 투수조의 대대적인 신조가 아니었던가. 역대 몇 번째 투수조장인지 모를 박신우 역시 늘 그랬듯 대대손손 내려오는 암묵적인 자세를 채택했다.
정말 팀의 분위기가 초상집이라면 이승주도 적당히 눈치껏 알아서 움직인다. ‘같이 저녁 먹자’라는 선배의 제안이, ‘너 이 새끼 요새 정신 못 차리지? 나랑 독대 좀 하자’라는 의미임을 알아먹을 눈치는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정말 박신우가 기분이 좋아서 모이는 게 분명했다. 이런 날은 적당히 일이 있다고 빠져도, 선배들―적어도 투수조의 선배들은― 딱히 눈치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먹는 입이 줄어서 다행이라 여기면 여겼지.
그랬기에, 자꾸만 함께 가자는 박신우의 제안이 호랑이의 아가리에 제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수작으로밖에 안 보인다. 게다가 저렇게 묘하게 빙글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다면 더더욱. 하여간 이 구단에 제 편이라고는 없었다.
“왜. 어머니가 빨리 들어오라고 하셔? 오랜만에 아들 보고 싶으시대?”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고 올리며, 박신우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선배 행세를 했다. 이승주는 퍽 불만스러웠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아, 네! 네! 아까 문자 왔어요!”
“어머니 그런 캐릭터였나?”
…전혀 아니다. 자신의 모친께서는 승주는 여자친구가 있냐는 주변의 물음에, ‘애인이 있는 녀석이 이렇게 꼬박꼬박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을 리가 없다’라며 고개를 저으시는 분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자신의 어머니는 일주일 동안 타지로 원정을 갔던 아들을 기다리셔야만 한다. 아들이 살이 쏙 빠졌을까 봐 한 상 거하게 차리고, 이승주의 귀가를 기다리는 분이셔야만 했다.
이승주의 본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라고 시켰다. 그리고 이승주는 생각보다는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머리가 어지럽다고 생각될 무렵, 박신우는 “그래. 얼른 가.”라며 드디어 반가운 축객령을 내려주었다.
꾸벅. 옛날 핸드폰처럼 허리를 숙이는 이승주를 향해 박신우는 드물게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그동안에도 강희찬은 여전히 찌푸린 인상을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마치 ‘저 새끼 또 뭔가 조져 놓을 게 있었는데…….’라며 고민하는 것만 같다. 저번 주 원정 내내, 이승주는 종종 강희찬의 저런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눈치 빠르게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있었다.
더는 망설일 것도 없다. 이승주는 재빨리 로커룸의 문을 열고, 그 틈에 제 몸을 밀어 넣었다.
“저,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쾅!
마지막 ‘맛있게 하세요’는 거의 닫힌 문 너머로 들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서불안처럼 움직이는 모양새를 가만히 보다가, 결국 문이 닫히고서야 강희찬의 입에선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울렸다.
저것이 이상 행동을 보일 때마다 선배, 혹은 감독이나 코치마저도 강희찬에게 ‘쟤 왜 저러냐?’라며 물었다. 나이 차가 비교적 적어서, 같은 요즘 것들에게 묻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강희찬은 그런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저런 이상한 놈의 속을 자신이 알 리가 없었다.
“왜 저래?”
쥐약이라도 주워 먹었나. 정상이 아닌 녀석이 나간 문을 보며 강희찬이 낮게 중얼거렸다. 질문의 당사자는 이미 바람같이 달려가 누군가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구걸하고 있을 것이다.
웃음기가 배인 박신우의 목소리가 대신 답을 채웠다.
“뭐야. 너 알고 갈군 거 아니었어?”
“뭐가요.”
어느새 박신우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다.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강희찬의 미간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박신우는 이미 이승주가 나간 후로도, 다른 선수가 퇴근하겠다며 나갔던 로커룸의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네 샴푸 쓰고 있잖아.”
“…네?”
“아니지. 쟤만 쓴 게 아니지. 2군에서 자기 동기 올라오면, 비싼 거라고 한번 써보라고 나눠 주기도 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단계별로 박신우의 말을 쪼개고 나서야, 강희찬은 그의 입에서 나온 ‘쟤’라는 게 누군지, 그리고 그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완전히 알아들었다.
“…….”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이해하지 못해 구겨졌던 미간이, 완전한 이해를 마친 후에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구겨졌다.
박신우는 그의 표정 변화를 보며 낄낄댔다.
“대체 언제 알아채나 가만히 뒀더니. 1년 넘게 훔쳐 썼을걸? 아니, 넌 그걸 어떻게 모르냐? 2주에 한 번씩 새 샴푸 가져오면서. 여자도 그렇게 많이는 안 쓰겠다.”
“미친 새끼가…….”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로커를 뒤지는 뽀글머리가 눈에 그려졌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근래 이승주가 샤워하기 전이나, 후의 모습밖에 본 적이 없다. 보통 사내새끼 벗은 몸이야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우니 별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다 남의 샴푸를 몰래 쓰기 위함이었다.
“…….”
제 품에 안겨 따끈히 데워지던 체온과 더불어 익숙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샴푸 냄새가 그렇게까지 기꺼웠던 순간이 있었던가. 같은 냄샌데 이럴 수가 있는 걸까. 그것이 신기해, 강희찬은 이미 제 품에 알맞게 들어찬 몸을 바투 당겨 안았다.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더욱 파묻고 숨을 몇 번이나 들이켜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기억은 지나칠 정도로 불현듯 떠올라 몸을 덥혀댄다. 하지만 기억과 완전히 결합한 향기를 뒤집어쓰고, 불쾌한 녀석이 틈을 들쑤셨다. 저 파마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나봐야, 잡아 뜯고 싶어지기밖에 더하나.
내일. 아니, 화요일에 출근하면 조져 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요 일주일 내내, 이승주를 보기만 하면 뭔가 말을 해야 할 것이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던 원인이 퍼뜩 떠올랐다.
…손버릇이 안 좋은 새끼가 원래는 입버릇도 좋지 못했었지. 남의 사생활이나 조잘대고 말이다.
먼저 이승주를 조져야, 선생의 친구인 카메라맨을 조질 수 있다. 주둥이를 놀린 순번이 그랬으니, 처리하는 일의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강희찬은 이선이 어떻게 저의 끝난 연애를 알게 되었는지, 차분히 뒤를 캐었다. 사실, 캐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선생은 인간관계가 지나칠 정도로 좁았고, 자신의 연애사 종지부를 알고 있는 건 한 놈뿐이었다.
원정 경기에서 카메라를 든 송재혁을 볼 때마다 얼마나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던가. 사람이든, 아니면 그 사람이 든 카메라든.
뭐 하나는 손을 대야, 성에 찰 것 같은 순간에도 강희찬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선생의 친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선 일단 이승주를 조져야만 했다. 그놈이 카메라맨에게 조잘거렸고, 그걸 또 쪼르르 달려가 선생에게 고자질했겠지.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도 브레이크가 걸리는 강희찬을 보며 송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일단 이승주를 조지고, 카메라를 던지든가 물을 뿌리든가 하자.’
그리 생각하고 넘어갔다가, 막상 이승주를 봤을 땐 이유를 까먹어서 화를 내지 못했던 게 지난주의 일상이었다. 쥐새끼 같은 게. 눈칫밥만 먹고 살아서 그런지 욕먹겠다 싶으면 귀신같이 도망가는 재주가 있었다.
“야, 안정원 씻고 나오면 너 몰랐다고 제대로 말해야 해. 그 새끼, 네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거라고 하도 우겨대서 내기까지 했잖냐. 강희찬이는 절대 그런 새끼가 아니라고.”
“그런 걸 왜 내기까지 해요?”
“무조건 내가 이기는 내긴데 왜 안 해? 하여간, 이렇게 에이스 투수 파악이 안 될 수가 있냐? 그 새낀 주전 포수 실격이야. 마스크 벗어야 해.”
오늘 밥값은 안정원한테 받은 돈으로 내겠다며 웃는 모습이 심하게 얄밉다. 대체 얼마를 걸었기에 저렇게까지 좋아한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는 자그마치 8년이나 선배였다.
꾹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 강희찬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결국 핸드폰뿐이다.
…여전히 조용하다. 자신은 핸드폰에 꽤 무심한 편이라고 타인에게 평가받곤 했는데. 선생은 아마 자신 이상으로 핸드폰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투아웃 새끼 말고는 다른 것에 관심이 없던가. 아마 후자일 확률이 농후하겠지만.
“…….”
머리를 감고, 핸드폰을 쳐다보고, 차를 타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서고.
이런 일상적인 모든 것을 할 때마다, 한순간 제 옆을 채웠던 존재를 떠올리겠지. 그건 너무도 자명했다.
기억의 끝엔 달큼한 향기와 숨을 달싹이며 제 품 아래에 오롯이 있던 열기와 욕망으로 이어질 테다. 종소리만 들어도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침을 질질 흘려대는 개새끼처럼.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가지 바람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저만의 기억이기를. 저만의 추억이고, 저만이 맡을 수 있는 향기이며……. 저만의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