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흐릿한 빛이 어느 순간부터 어둠을 비집었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과 경험의 연속이었다.
이선의 눈은 지쳐 버린 몸과 정신을 대변하듯 감겨 있었다. 타인의 움직임에 의해 온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감은 두 눈은 뜨일 줄을 몰랐다.
“흐으… 응…….”
고치 안의 나비처럼. 아무런 감각도 없던 이선의 정신을 흐느끼는 신음 소리 하나가 자꾸 헤집었다. 소리는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청각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감각이 소리를 받아들이며 이선의 정신을 두드렸다.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 그리고 소리의 빈 곳을 채우는 젖은 소리. 그것은 감각을 모두 닫고 있고 싶은 이선을 끈질기게 괴롭혀댔다. 이대로 있게 해달라고. 거슬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선은 눈꺼풀을 쉬이 들어 올리지 못했다.
“아……. 아으, 읏, 응…….”
한참을 그 소리에 노출된 후에야 이선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제 목소리라는 것을.
손끝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퍼진다. 휴식을 원하던 이선의 온 세포가 억지로 일깨워졌다. 깨어지는 정신과 더불어 감각이 점점 선연해졌다.
피가 도는 것처럼 퍼지는 감각 속에서, 가장 먼저 이선이 인지한 건 아래에 고여 있는 열감이었다.
내밀한 그곳은, 제 몸 일부분이었지만 한 번도 인지의 범위에 닿아본 적이 없었다. 탐욕스러운 성기가 안을 밀고 들어왔던 기억은 이미 아득하다.
믿기지가 않았다.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공포스러웠던 입구가 활짝 열린 채, 타인의 성기를 받아내고 있다. 새삼스레 되새겨 봐도 믿기지 않았다.
“으…흣! 아…으응…….”
…녹아 있다. 젖은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는 이선의 정신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미 아래는 풀리다 못해 녹아내린 거라고. 잔뜩 녹은 채 누군가의 성기와 뒤섞여서 하나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다시 원래대로 떨어질 수 없이, 평생을 그의 성기를 머금고 살면 어쩌지…….
그런 우스운 생각에 이르자, 왈칵 겁이 차올랐다.
“아… 이제, 그만……. 윽…….”
“뭐야. 깼어요?”
힘겹게 눈을 떴다. 가늘게 뜨는 것이 최선이라 시야는 한정적이었다. 그 안으로, 잔뜩 긴장감이 올라 있는 누군가의 가슴팍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에 충분히 익은 부피감이었다.
“…….”
피부가 흰 편인 사람은 몸이 좋아 보이기가 힘들다고 그랬었나? 방학을 틈타 친구들과 휴가 계획을 잡던 김경원이었던가, 아니면 그에 맞장구를 쳐주던 유성희의 입이었던가. 어쨌든 이선은 그런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생존 수영 연수만 끝나도 녹초가 되는 이선에게는 퍽 반가운 핑곗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거였다. 자신은 아마도 피부가 흰 편일 테다.
“…아으…….”
드러난 몸은 훌륭한 삼단논법으로 빈약한 몸을 무장하던 이선의 핑계를 와장창 깼다.
강희찬은 자신에게 몸을 겹치지 않고 허리를 세운 채였다. 덕분에 그의 상체를 빠짐없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실내스포츠를 하는 사람처럼 하얀 피부. 그 아래의 근육은 제 존재감을 지나치게 드러냈다.
더 이상 피부색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씁쓸한 사실을 강제적으로 깨달은 이선의 마음이 뾰족해졌다.
뜨기도 힘든 눈이 재빨리 강희찬의 가슴께에서 도망쳤다. 황급히 아래로 내려가니, 더욱 속상하게도 가슴보다 더 굴곡진 음영이 드리운 복부가 기다린다. 이선의 의식과 무의식은 그곳 역시 거부했다.
결국 도망가던 눈동자를 그 아래, 엉망이 된 채로 맞붙은 서로의 하체 부근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복부 아래, 힘없이 늘어져 있는 자신의 허벅지와 그의 젖은 하체가 연결되었다. 다른 이의 벗은 몸을 보고,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도망쳤던 끝엔 더욱 울고 싶어지는 끔찍한 광경이 있다.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냥, 운동의 세월이 느껴지는 가슴을 보며 남자로서의 패배감을 느끼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선은 문득 울고 싶어졌다.
그런 이선이 하는 양을 젖은 눈이 빠짐없이 담았다. 쾌락으로 멍했던 눈에 이채가 돌고, 후회로 일그러지는 순간까지 전부.
“그냥, 쭉 자는 줄 알았는데.”
“아, 읏! 아아…….”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강희찬은 성기를 잔뜩 이선의 몸 안에 파묻은 채, 최소한의 진동만으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깊이 삽입하고 그가 진동을 줄 때마다 단단한 허리 근육이 음영을 달리했다.
처음엔 그의 성기 끝이 스치기만 해도 자지러졌다. 그런 곳이 지금은 무자비하게 짓눌려지고 있다. 쾌감의 정도가 옅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이선의 안은 단단한 기둥에 꽤 적응한 채였다.
그가 일부러 노리고 눌러댄다고도 할 순 없었다. 이미 크기 자체로 이선의 안을 빠듯하게 채웠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의 귀두는 이선의 자극점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도 없다. 어떻게 몸을 뒤척여도, 그가 주는 쾌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절해도 계속할 거라던 그의 겁박은 단순한 겁박이 아니었다.
“흐으……. 으, 희찬 씨……. 제발, 그만…….”
비빌 만한 언덕이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그리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집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던가. 혼자서 먼저 걸음을 걷다가도, 뒤를 돌아 자신을 살펴준다. 그러고 나면 티는 내지 않지만 그의 걸음은 계속 느려졌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하지만 기대는 깨졌다. 욕망이 이긴 강희찬의 아래에서, 자신은 아무리 울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선은 의미 없이 시트를 손으로 쥐어 당겼다. 그렇다고 해서 이 넓은 침대, 그리고 그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 안 돼. 이제, 못 하겠…….”
너무도 무력하다. 타인이 주는 쾌감을 오롯이 느껴야만 하는 박탈감이 끝인 줄 알았다. 눈을 감고 나면, 정신이 꺼지고 나면. 잔인할 정도로 떨어지는 정염도 끝이 날 거라 무의식은 생각했었다.
이선은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순간,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남자의 커다란 몸이 이선을 절망시켰다.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러다 아침이 되어도, 아니, 평생 그의 체향이 잔뜩 밴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은 점점 현실감이라는 옷을 둘러쓰고 이선을 겁주었다.
그 무엇도 시야에 담기는 버겁다. 화가 난 것처럼 위협적인 강희찬의 몸도, 힘이 하나 들어가지 못해 늘어져 있는 제 몸도. 잔뜩 젖은 채 맞붙은 서로의 피부는 더욱 그랬다. 강희찬의 얼굴을 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제 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각을 이기지 못해 질금거리는 제 성기를 그가 보지 말아주기를. 제발 혐오스럽다는 생각만은 하지 않아 주었으면……. 이선은 보이지 않는 그의 생각이 너무도 두려웠다.
결국, 고개를 모로 틀 수밖에 없었다. 그만해 달라고, 이제 더는 못 한다는 간절한 애원이 저도 모르게 잇새로 흘렀다.
“아파요. 다칠 것, 윽… 같아……. 이제, 고장 나서, 더 안 나와…….”
강희찬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허리를 크게 움직였다. 가장 안쪽의 지점이 가감 없이 짓눌렸다. 이선의 안을 꽉 들어찬 성기는 잔움직임으로도 자극받는 지점을 잔혹하리만치 강한 힘으로 눌렀다.
“뭐가. 좆물?”
이선의 손은 차마 제 앞을 만지지도 못했다. 정말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봐. 쾌감에 녹아 성기가 없어지기라도 했을까 봐, 덜덜 떨리는 손을 가져가지도 못했다.
머뭇거리는 손끝을 가만히 보던 강희찬은 음심이 일었다. 떨고 있는 손끝은 아마 저에게는 조금 차게 느껴지겠지. 그 손을 꼭 잡고 온기를 나누어주고 싶으면서도, 가늘고 깨끗한 손에 자신의 좆을 잡게 하고 마음껏 좆물을 묻혀 더럽히고 싶다.
제 좆이 두 개였다면, 망설임 없이 쥐게 했을 거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희찬은 이선의 손을 더럽히는 대신, 다른 것을 택했다.
“윽……. 흐읏……!”
쾌락에 힘겨워하며 발딱거리는 성기를 쥐자, 마른 몸은 크게 떨렸다. 이선의 걱정과는 다르게, 언제 나왔는지 모를 백탁액이 강희찬의 손에 감겼다.
“잘만 나오고 있어요.”
“흑……. 으윽, 제발…….”
강희찬은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이선의 말을 머릿속에서 꿰맞추었다. 오롯이 문장이 되지 못하는 단어들의 남발이다.
하지만 중요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만해 달라는, 들어주지도 못할 소리다.
저 얼굴이라면 별이라도 따다 줄 것만 같다는 제 다짐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그나마 저의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이선을 배려하기로 마음먹었다.
양손으로 뼈가 드러난 골반께를 쥐었다. 그냥 눈으로만 봐도 마른 편이라고 생각했던 몸이었다. 제 손이 닿자 확실히 느껴졌다. 굳이 큰 힘을 쓸 것도 없다. 이선의 하반신과 허리는 그의 손을 따라 너무도 쉽게 종잇장처럼 들어 올려졌다.
“보여요?”
단번에 몸의 중심이 뒤틀렸다. 놀란 이선이 버둥거렸다. 그럼에도 억센 손은 몸을 쉬이 놔주지 않는다. 대신, 엄한 목소리가 이선을 다그치듯 물었다.
무서웠다. 가뜩이나 버거웠던 숨은 머리로 무게가 쏠리자 더욱 벅차게 느껴졌다.
불편함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이선은 이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뭐라고 하든, 강희찬은 어지간하면 제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야 이선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을.
…선택지는 없다.
이선은 힘겹게 눈을 뜨고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곳엔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한 광경이 있었다.
“좆물 잘 싸고 있잖아요. 응?”
“아윽, 으……. 아냐, 나… 나 아니에요…….”
“아니긴. 그럼 이거, 누구 좆인데?”
몸이 흔들릴 때마다 울컥거리며 물이 샌다. 눈을 돌리고 싶으면서도 돌릴 수 없었다. 성기 끄트머리에 맺히는 물방울처럼 투명한 액이 이선의 눈에 고였다.
“왜 울어요. 정 선생 자지 멀쩡하다니까?”
“…….”
“하도 싸대서 좀 묽긴 한데. 그렇게 쌌으면 당연히…….”
“그, 그만…하세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미 그의 아래에서 추한 꼴은 다 보이는데 자존심이 대체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이선의 서러움은 풍선처럼 커졌다. 서러움에 비례해 터진 눈물이 주륵 흘렀다.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마치 귀에 오물이라도 묻은 것만 같다.
이선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귀를 벅벅 문지르며 더러운 오물을 닦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이선의 양 손목을 틀어쥔 남자에 의해 가볍게 제지당했다.
“왜 울어요. 정 선생 고자 안 됐다니까.”
목소리는 은근히 책망조다. 이선은 그 사실이 못내 억울해졌다. 지금 원망을 하고 싶은 건 자신이었다.
“…흐윽……. 아, 아까… 심한 말 안 하겠다고, 윽……. 약속하셨는데, 왜 자꾸, 그런 말 하세요.”
힘으로 이기는 것은 역부족이다. 팔을 비틀어 빼내려고 해도 지치는 건 이선뿐이었다.
포기한 채 이선은 제 얼굴 위를 드리운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흥분감. 열기. 그 위를 무표정으로 무장한 당혹감이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선의 말을 끝까지 들은 순간에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정 선생은… 꼭 말 시켜놓고 먼저 이래요? 물어봤잖아.”
“…놔, 놔주세요.”
고집스레 팔을 비트는 이선을 보며 강희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계속 잡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경식구를 쥐던 제 손의 악력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다치게 할 것만 같았다. 이미 제 손이 스친 바 있던 이선의 허벅지는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같은 사람의 몸인데 팔이라고 다를까.
강하게 쥐지도 그렇다고 놔주지도 못한 채, 강희찬은 이선이 팔을 버둥거리는 대로 함께 움직여주었다. 옆에서 본다면 퍽 우스꽝스러운 몸짓이었다.
“듣기 싫으면, 차라리 내 입을 막지 그래요?”
“으으…….”
자연스레 들어가는 손힘을 제어할 자신은 없다. 결국, 강희찬은 협상 카드를 먼저 제시했다. 점점 멎는 버둥거림이 제 카드가 통한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지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강희찬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제 말이 먹혔음을 깨달았다.
“내 입 다물게 하는 방법, 잘 알잖아요.”
서러움과 짜증으로 덮여 있던 이선의 헐떡임이 간헐적으로 변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단정한 얼굴이 눈에 가득 담긴다. 이선의 위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몸이 닿지 않아도 그의 무게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선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제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이라는 것을.
가만히 팔을 움직였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수갑보다도 더 단단하게 옥죄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너무도 쉽게 떨어진다.
이선은 망설이듯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이 그의 어깨에 닿았을 때 너무 뜨거워서 손을 물려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자신이 그를 뜨겁게 느끼는 만큼, 그는 자신을 차갑다 느끼려나?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계절에 그와 몸을 섞게 된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날이 쌀쌀해졌다면, 자신의 체온은 강희찬에게 선뜩한 불쾌감을 주었을지도 모르니까.
조금 더 빨리 섹스를 했다면……. 그는 과연 자신의 체온을 기분 좋다고 여겨주었을까?
차마 입으로는 물을 수 없는 궁금증들이다. 좆물이 어쩌네, 너무 직접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강희찬에게는 더더욱 물을 수 없었다. 저런 직설적인 어조로 자신을 쳐내는 말을 듣는다면. 그 타격이 어떨지 이선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가 제시한 방법은 어쩌면 이선에게 가장 필요한 명답이었다.
이선은 단단한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제힘으로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고목에 몸을 기댄 것만 같았다. 강희찬은 저에겐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선이 끌어안고 있는 건 온기와 약간의 배려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피부 아래에서 돌고 있을 피와 잔뜩 흥분한 근육의 열기가 오롯이 느껴졌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움칫거리는 아주 미약한 힘이면 된다. 이선의 팔이 안쪽으로 당겨지자, 강희찬의 체중은 믿을 수 없을 만치 쉽게 이선의 위로 떨어졌다.
숨을 틀어막을 것 같은 가슴이 닿고, 성기가 눌린다. 입술은 그다음이었다. 이선은 이제 키스를 하는 방법을 안다. 다물지 않은 채 벌어져 있는 입술 위로, 이선의 것보다 높은 체온이 맞붙었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말 대신. 혀를 섞은 젖은 소리가 서로의 귀를 채우는 것도 금방이었다.
* * *
“으… 으응…….”
희미한 신음은 약하게 켜둔 침대 옆 조명과 비슷했다.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으면서도 집요하게 이어진다. 이상하게도 불규칙한 소리가 전혀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다. 강희찬은 제법 소음에 민감했다. 주변의 평도 그랬고, 강희찬 자신도 인정하는 바였다. 물론, 그 뒤에 붙는 ‘더럽게 까다로운 새끼’라는 말은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이 신음이라면 온종일 귀 옆에 틀어놔도 거슬리지 않을 만했다. 그야, 당연히 수반되는 몸의 변화는 차치해야겠지만…….
“…아……. 나, 으음…….”
강희찬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하도 빨아대서 통통하게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앞니가 슬쩍 보인다. 안쪽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혀끝을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입술을 내리고 집어삼키고 싶다. 하지만 이선은 자신의 체중이 눌리면 묘하게 힘들어하며, 찡찡거리는 어린애처럼 인상을 썼다.
힘들어서 자는 사람인데. 더 힘들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눈을 감고 있는 이의 몸을 파고들고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시간 동안 허리를 흔들고 있는 주제에. 강희찬은 가소롭게도 자비로웠다.
자는 건지, 기절한 건지. 듣는 순간 쌀 것 같은 신음을 흘리더니, 가늘게나마 뜨고 있던 눈은 감겨버린다. 울먹이는 눈동자를 보지 못하는 건 퍽 심심하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강희찬은 곧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냈다.
아까부터 자지러지게 떠는 몸은 안쪽 깊은 곳을 찔러주면, 내벽이 강희찬의 좆을 빨아먹었다. 더 해달라고. 더 깊이 들어와 달라고. 어디 하나 조금만 만져도 벌벌 떨며 가리려고 들고, 키스 하나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안쪽은 완전히 달랐다. 이선은 정신을 놓은 와중에도 느낄 건 착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 씨발, 진짜……. 선아, 어?”
“으음……. 읏, 으……. 으응……!”
여기만 주인의 성향과 다른 걸까?
이미 한껏 좆을 처박고 있음에도 습한 살점은 더 들어와 달라며 쪽쪽 빨아댄다. 유혹을 거절하는 건 불가능이다.
그거였다. 구두를 신더니 춤추는 것을 멈추지 못하던, 어느 동화의 소녀였다. 이미 머리 안쪽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읏……. 큿!”
결국, 자는 사람을 상대로 하기엔 격한 움직임의 끝은 사정으로 직결된다.
강희찬은 더 들어갈 수도 없을 만치 붙어 있는 허리를 좀 더 이선의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단단하게 솟아오른 등 근육이 잘게 떨렸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뱉어낸 씨물이 나오지 못하게. 조금 더 상대의 몸속을 파고들기를. 수컷의 본능이었다.
상대가 남자이고는 중요치 않다. 아직도 멍한 강희찬의 손은 자연스럽게 이선의 골반을 잡고 들어 올렸다. 안에서 제 좆과 내벽과 좆물이 뒤엉킨다. 빨아들이는 힘이 없는 입술보다는 야무진 아래 구멍이 오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자면서, 방금 싼 좆을 자극한다. 이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그랬듯, 강희찬의 성기는 이선이 주는 자극에 착실하게 반응했다.
“선아……. 선이…….”
자각도 못 하는 중얼거림이 강희찬의 잇새를 갈랐다. 내뿜는 숨에 비해 들어오는 공기는 점점 모자라다.
사고가 불가능했다. 자신이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지, 그런 걸 생각할 여력 따윈 없다. 강희찬은 그저 주린 듯 절박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되뇌었다.
붉은 입술이 달고 따끈한 숨을 내뿜는다. 모자랐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모자랐고, 기갈이 난 사람처럼 자꾸 갈증이 났다.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 무엇인지는 본능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강희찬은 상체를 내려, 더운 숨을 내뿜고 있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으음…….”
불만일 테지만, 강희찬에게는 투정도 되지 못할 신음이 입술을 울렸다.
동화 속 소녀는 지칠 때까지 춤을 추다가 결국 발목이 잘렸다고 했던가. 자신은 그러면 좆이 잘려야 멈추려나? 얼마 남지 못한 이성이 하는 쓸데없는 사고는 스스로에게 금방 부정당했다. 그럴 리가. 좆이 잘려도 허리를 흔들어댈 제 모습이 눈에 훤했다.
입술을 붙인 채로,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외롭진 않았다. 탐욕스럽게 몇 번이나 사내놈의 좆물을 머금은 내벽이 그의 움직임을 반겨준다. 제대로 볼 순 없지만, 이선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남은 양심으로 강희찬은 강하게 움직이던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신기하게도 신음은 움직임에 맞추기라도 하듯 은근해졌다.
하도 물고 빤 덕에 말랑해지고 퉁퉁 부은 입술을 힘껏 빨자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기갈을 채우고 나니, 제 아래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이선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강희찬은 얼른 제 상체를 들어 올려 무게를 덜어주었다.
제 허리 아래, 힘없이 누워 있는 편편한 배를 바라보았다. 지나친 쾌감으로 좆이 녹았을 줄만 알았는데, 다행히도 얇은 피부 아래에서 보이는 성기는 그대로였다. 타인의 피부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욕심이 부푼 모습은, 보다 보면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을 일으킨다.
이미 자신의 좆은 이선의 안에서 녹아 없어졌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것은 제 성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 목덜미를 통해서 머리로 피가 몰렸다.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미약한 분노의 불씨였다. 갈 길을 잃은 감정은 아래와 직결되었다. 방금 사정을 마쳤던 성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납게 자극을 요구했다. 강희찬은 허리를 좀 더 세게 움직였다. 이선이 자극을 받는 순간 허리를 떨었던 지점을 누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아, 으응……. 응…….”
꺼질 듯이 가는 신음이 더욱더 성감을 돋운다. 이렇게까지 유혹을 해대면 사내새끼는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강희찬은 어느새 탐욕스럽게 발기한 제 좆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한층 더 얇아진 것 같은 이선의 배 아래. 강희찬의 분노를 자아내던 음영 옆에는 이선의 성기가 있었다. 완전히 발기한 것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지쳤는지 힘껏 일어서지 못하는 성기의 끄트머리에선 묽은 액이 강희찬의 움직임에 맞춰 토해지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건 정액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묽은 액이었다. 마치 먹은 것 하나 없는 이가 토해내는 것처럼, 힘겹게 뱉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성기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홀로 바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잘게 떨리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묘하게 흥미를 돋우었다. 강희찬은 부러 허리를 깊게 처박았다.
“아! 아아……. 흐으, 시…….”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놔버리고 사정하고 싶은 욕구와 허리를 더 흔들어 쑤셔 박아대고 싶은 본능. 온몸의 말초신경이 강희찬의 안에서 치열하게 대치했다.
열심히 오물거리며 강희찬을 즐겁게 해주었던 입술에서는 이제 사람을 애달프게 하는 신음이 흐른다. 어설픈 키스나 제 허릿짓에 꼭 맞추어지는 신음이나. 무엇 하나 성감을 돋우지 않는 것이 없다. 더 해달라는 유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는 이의 소리를 멋대로 해석한 강희찬은 더욱 허리를 바짝 붙였다. 제 몸과는 확연히 다른 나긋한 살갗이 몸에 착 붙어온다. 문득 시선을 내렸다.
따뜻한 색을 내는 조명 아래에서도 피부색이 다름이 확연히 느껴진다. 살갗이 맞붙어 있는 틈과 그 주변으로 무엇이라, 그리고 누구의 것이라 정의할 수 없는 액체들이 흥건했다.
아니, 조금만 따져보면 어차피 좆물이다.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전부 선생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이 분명했다. 제 좆은 지금 이선의 몸 안에 쑤셔 박혀 있었고, 처음 삽입을 시도한 이후 단 한 번도 빼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많이도 쌌네.’
왠지 자위도 거의 하지 않을 것 같은 이의 몸에서 나온 흔적들로, 강희찬은 알 수 없는 고양감을 느꼈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는 어린애처럼, 자극을 주면 좆은 힘들어하면서도 꼬박꼬박 반응했다.
끄트머리가 발갛게 익은 이선의 성기는 반쯤 흥분한 채로 잔뜩 지쳐 있었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좆은 혼자 움칫거리며 덜덜 떨어댔다. 그 모습이 마치, 느낄 것은 다 느끼면서도 지쳐서 나가떨어진 채 신음만 흘려대는 지금의 이선과 퍽 닮아 있었다.
좆은 제 주인을 닮았다.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벌벌 떨기만 하는 모습만은 아니다. 색이 옅고 흥분이 몰리면 발개졌으며 손대기가 차마 미안한 점까지.
이 좆이라면, ‘좆같이 생겼다’라는 말을 들어도 욕이 될 수 없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을 이어가던 강희찬은 물끄러미 이선의 성기를 내려다봤다. 애처롭게 떠는 성기에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선의 손목을 잡는 것도 불안한 제 손이 함부로 잡았다가는 왠지 아파할 것만 같았다. 샤워할 때 척척 소리가 날 만큼 흔들어가며 자위를 하는 제 성기와는 달랐다. 선생도 말하지 않았던가. 스스로 만질 때도 살살 한다고. 이런 좆이라면 유리공예처럼 다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아아……. 으… 흐읏… 아니, 으응…….”
게다가 아까 하도 만져서 아프다는 말을 직접 하기까지 했다. 결국 흥분을 가라앉혀주기 위해선 직접 좆을 만지는 것이 아닌, 뒤를 자극해서 싸게 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또다시 기적의 합리화를 마친 강희찬은 이제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비교적 이선의 얼굴을 감상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조금만 깊이 들어와도 안 된다고 앙앙거리며 잔뜩 겁먹은 입술을 집어삼키는 것도. 안쪽 깊은 곳을 찔러주면 좋아서 내는 소리에 본인이 놀라는 것도.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게 없다.
선생과 놀랍도록 닮은 좆 역시 그에게 즐거움을 주기엔 모자라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이선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소리를 응원 삼아, 조금씩 허리를 흔들었다. 이미 깊이 박아댄 상태에서 얕은 진동으로만 움직였다. 지쳐 쓰러진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단단한 허리와 엉덩이의 근육이 그늘을 만들며 움직였다. 그에 맞추어 이선의 소리는 깊어졌다. 그리고 노골적인 시선이 닿는 성기의 끝에는 투명한 액이 맺혔다.
“아으……. 응, 흐으…….”
“왜. 더 움직여줘?”
“으응…….”
비겁한 방식이었다. 정신을 놓은 사람의 입에서 흐르는 신음이 긍정의 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강희찬은 끈질기게도 제가 원하는 질문만을 쏟아부었다.
깊이 잠든 것은 아닌지 이선은 종종 ‘선이’라고 불리는 이름에 반응을 보이곤 했다. 잠투정을 부리는 어린애처럼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대며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이선의 입에선 ‘아니’라는 부정의 말이 또렷이 나오진 못한다. 결국, 강희찬은 멋대로 완성한 대화를 기반으로 제 욕심을 합리화했다.
골반을 틀어쥐고 제 쪽으로 바투 당겼다. 이선이 맨정신이었다면 성기가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이번에야말로 가슴께까지 찼다고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겁이 많은 이선과는 달리, 안쪽은 이미 침입자의 모양대로 풀어지고 녹아 있었다. 녹진해진 안쪽 살이 성기를 쪽쪽 빤다. 제 좆 모양대로 맞춰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고환이 부드러운 엉덩이에 짓눌리는 감각마저도 좋았다. 강희찬은 일부러 이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드럽게 젖은 살갗을 제 허벅지와 샅에 비볐다.
“응? 선이야. 안에, 더 눌러줘?”
어느 순간부터 강희찬의 입에선 ‘선이’라는 호칭이 더없이 자연스레 흘렀다. 이선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미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 멋대로 잔뜩 불러댄 탓이었다.
“아아, 으으, 흑! 으……. 좋아……. 아니…….”
이선의 다리가 벌벌 떨렸다. 그와 동시에 성기에선 투명한 물이 줄줄 샜다.
물 밖으로 나와 힘들어하는 물고기처럼 이선의 성기가 홀로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이선은 두서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으……. 응…….”
자는 사람이 무슨 저딴 야한 소리를 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강희찬의 성기를 감싼 내벽이 바르르 떨리며 좆을 꼭꼭 물어댔다. 그의 성기는 몇 번이나 한참 좆물을 싸댔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느껴온 이선의 압박은 빡빡한 고통보다는 오롯한 쾌감에 더 가까웠다.
당장이라도 이선의 몸 위에 엎드려 이대로 싸기를 원한다. 본능이 바라는 건 그것 하나였다. 그런 충동 속에서 다른 것이 강희찬의 시선을 붙잡았다. 안쓰럽게 바르르 떨리는 이선의 성기에서 투명한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하도 사정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이미 이선의 정액은 묽어질 대로 묽어진 채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액은 아예 투명했다.
“아……. 으… 아, 안 돼…….”
“…….”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강희찬의 허릿짓도 잠시 멈추었다.
‘…오줌인가?’
그런 물음이 머리를 스쳤다.
“…….”
…하도 싸대더니,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예쁜 색으로 물든 끄트머리에서 고장 난 것처럼 물이 줄줄 샌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까부터 선생이 줄기차게 사정을 해댄 액체도 솔직한 말로 정액이라고 쳐주긴 민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명확히 달랐다. 조금이나마 희끄무레한 기미라도 보이던 액체와는 달리, 아예 투명했다.
“응… 흐으……. 아……!”
강희찬은 조심스레 이선의 성기를 쥐었다. 제 손이 닿은 순간, 허리가 튀어 오르며 커지는 신음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강희찬은 최소한의 힘을 손아귀에 주며 성기를 감싸고는, 슬쩍 위로 쓸었다.
“아, 아니이……. 으응……!”
질질 흐르던 물이 픽 하고 튀며 이선의 가슴께를 적셨다.
성기에 가해지는 자극이 심했는지, 이선은 거의 울고 있었다. 강희찬은 손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레 허리를 들썩였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이선의 성기는 물을 연신 토해냈다. 깊이 쑤셔 박는 만큼 토해지는 투명한 물이, 마치 이선의 몸을 거쳐 나온 제 좆물 같았다.
“씨발…….”
오줌까지도 꼭 저를 닮은 거나 싸고 있다. 입술을 짓씹은 강희찬의 허리가 더욱 깊이 움직였다.
“아, 읏, 흣……! 으응…….”
물이 새어 나올 때마다 좆이 빠듯하게 조인다. 서툰 입술에 비해 아래는 강희찬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이는 솜씨가 제법 늘었다. 안으로 파고들면 더 들어와 달란 듯,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나면 잡아끄는 것처럼 바싹 조여댔다. 그때마다 정신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아… 씨발, 선아…….”
제대로 눈도 못 뜨고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점이 더욱 질이 나쁘다. 다른 어떤 새끼가 이 위에서 허리를 흔들어도 똑같이 굴 거다. 그리 생각하면 좆이 팍 죽을 것만 같다가도, 제 체액으로 젖어 있는 안쪽 살이 나긋하게 굴 때마다 다시 아래로 피가 몰렸다.
“아…흐으……. 으응…….”
마른 사정의 여운이 남은 듯, 이선은 흐느끼는 소리를 겨우 내었다. 생긴 것만 토끼일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토끼 새끼랑 비슷했다. 이선이 들었다면 퍽 자존심이 상할 만한 생각을 멋대로 이었다.
어차피 같은 첫 경험이라지만, 그래도 선생은 겁이 많고 몸이 약하니 최대한 맞춰주자.
홀로 이선의 샤워를 기다리는 동안 했던, 그런 다짐은 도저히 실현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멋대로 싸대는 것에 맞춰주었다가는 아마 섹스는 시작도 못 하고 끝났을 거라고. 강희찬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내리고 흐느끼는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다.
“으응…….”
“쉬. 괜찮아, 선이야.”
맞닿은 입술이 떨리도록 웅웅대는 말소리가 제법 마음에 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를 친근하게 부르는 부드러운 애칭에 제 목소리가 덮여 있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선이.’
강희찬은 멋대로 선할 선 자를 쓸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일단 자신만 하더라도 이름에는 기쁨이라는 뜻이 멋대로 들어가 있었으니까. 항상 기쁘고 옥처럼 빛나며 살라는 의미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자신은 대체로 기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니, 부모님의 의도를 철저히 배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착했다. 착하게 살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면, 그걸 충족하고도 남을 정도로 바보같이 살고 있다.
“응… 으음.”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이의 숨을 훔쳐 마셨다. 입술이 빨리면 이선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린다.
선생이 먼저 입술을 맞춰주었을 때도 조금만 깊숙이 혀를 집어넣으면 움칫거렸다. 어차피 익숙해졌다. 강희찬은 따뜻하게 젖은 입술 안쪽을 갈급히 찾았다. 손은 깜짝 놀랄 정도로 찬데, 몸 안쪽은 위든 아래든 지나치리만치 뜨거웠다. 마치 갓 태어난 동물처럼.
아래를 파고드는 성기처럼, 강희찬의 혀끝이 이선의 붉은 입 안을 파고들었다. 키스는 섹스와 몹시도 닮아 있었다. 강희찬은 지쳐 있는 몸을 끌어안으며 허리를 더욱 깊이 움직였다. 본능적인 신음이 흘러나오려는 입술은 그가 틀어막고 있었다. 소리는 한 자락도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으… 으응, 읏! 으으, 흐…….”
사정의 여운 위로 삽입을 깊게 이어갔다. 맞붙은 몸 사이에 애처로이 끼어 있는 이선의 성기는 쌓여만 가는 쾌감을 애처로이 견뎌야만 한다.
가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선은 자면서 느끼다 못해, 소변까지 지리고 있었다.
강희찬의 손끝이 이선의 성기를 향했다. 질질 뱉어내는 액체를 만져봤다. 역시 정액이라고 할 수 없는, 한없이 액체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니, 섹스를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으니, 당연히 처음 보는 모습은 맞겠지만, 이건 상상해 보지 못한 범주였다.
“그만…….”
몰아붙이던 힘이 잦아들자 무의식인 이선 역시 살 만했는지 제법 말다운 말이 흘렀다. 감은 눈 사이에서 물기가 비어져 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안쪽의 살점은 부지런히 강희찬의 좆을 씹어대기 바빴다.
“…가지가지 하네.”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강희찬은 널브러지듯 누워 있는 사람의 몸을 훑어봤다.
이 집에 들어올 때보다 더 살이 빠진 것 같은 가늘고 흰 몸은 여러 가지 것들로 더럽혀지고, 적셔진 채였다. 곧은 목선과 두드러지는 쇄골을 내려와 가슴을 지나, 더 아래로. 손으로 더듬는 것보다 훨씬 노골적인 시선이 이선을 훑어내렸다.
불감증처럼 뻣뻣하게 굴어도 좆 달린 새끼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 밑에 두고 싶어 할 거다. 지금의 자신이 그렇지 않은가. 선생이 자든 말든, 느끼든 아파하든. 성기를 쑤셔 박고 빼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는 그 어떤 것도 방해요소가 될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이건 좀 너무했다. 자면서도 꼬박꼬박 느끼고 반응하는 몸이라니. 게다가 좆물을 질질 싸다 못해, 소변까지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랑 까진 게이처럼 생겼다면 그럭저럭 납득했을 것이다. 가르치는 애새끼들보다도 맹하게 생겨서는, 이렇게 쾌감에 약했다. 그냥 이건 사내놈들한테 날 잡아먹으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제정신이고,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이 몸은 남자 한둘쯤은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다. 일단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좆질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빼고 싶지 않다. 이미 자신이 싸놓은 좆물로 가득 찬 곳에서 나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허했다.
“…아, 으음…….”
숨을 쉬려 입술을 더 벌리는 이선의 입 안으로 더욱 혀를 쑤셔 넣었다. 목구멍까지 핥아 먹을 기세로 들어가는 혀는 욕심 가득한 제 좆과 닮아 있었다. 위아래로 부드럽게 젖은 살갗을 탐하는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아래를 뻐근하게 만들던 좆물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정의 순간, 잠시 숨이 멎으며 머릿속이 점멸된다. 이미 타인의 살갗을 파고든 성기는 더욱 습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씨물을 깊이 남기려는 사내의 본능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강희찬은 굳이 본능을 거스르지 않았다. 감언이설로 순진한 이를 얼러 들어온 따뜻한 내벽. 그곳은 안에 들어와 있어도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몸 안의 모든 물을 다 빼서 쏟아붓듯이 허리를 잘게 움직였다.
‘아니, 이렇게 좆물을 싸댔으면…….’
어쩌면 임신이 되지도 않을까. 바람이 제법 섞인 허튼 생각이 본능만 남은 강희찬의 머리를 채웠다.
몇 번이나 허리를 들썩이며 사정이 마무리된 후에도, 강희찬은 겹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
힘없이 늘어진 사람을 물고 빠는 게 제 취향이었던가.
끈질기게 물고 있던 입술을 슬쩍 풀고 얼굴을 조금 들었다. 타액으로 젖은 작은 입술이 반짝인다.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가감 없이 눈에 담았다.
“흐으…….”
‘이런 게 취향일 리가 없다.’
막연히, 다른 사내새끼들처럼 자연스럽게 여자와 몸을 섞게 될 것이다. 숫되게 구는 쪽보다는 능숙한 것이. 손만 대도 툭 부러질 것 같은 것보다는 풍만한 쪽이 취향일 거라고. 다른 평범한 새끼들처럼.
하지만 오만한 믿음은 깨졌다. 이내 인정해야만 했다.
누구라도 사랑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확인도 못 해본 제 취향 따위는 가볍게 부술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는 벌레 새끼 하나 죽이지 못할 것처럼 생긴 주제에. 강희찬을 무장해제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렇다면 고민할 건 없다. 머리를 써가며 고민하는 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넘어와 달라고 유혹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
젖은 입술이 공기에 닿자 차가웠는지 오물거렸다. 눈꺼풀이 가늘게 올려지며, 이선의 눈동자가 아주 약간 드러났다.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수마에 휘어 잡혀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 저 자신이 담긴다. 정신을 잃은 이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이 아래를 채웠다.
“…희찬 씨…….”
영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 왠지 모르게 싫지 않다. 따뜻한 호칭보다 더 뜨거운 것을 이미 강희찬은 알고 있다.
“으응…….”
옹알거리던 입술이 집어삼켜지는 건 순식간이다. 강희찬은 이미 저의 아래에서 꼼짝도 못 하는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잠에 취한, 힘이 잔뜩 풀려 있는 양팔이 강희찬의 등 뒤로 올라와 둘러진다.
“선아…….”
더없이 안락했다. 품에 완전히 들어오는 작은 몸. 마치 그 안에 파묻히고 오히려 안긴 것만 같은 안락함이었다. 더없는 고양감이었다.
* * *
입술과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쪽, 쪽 하며 간헐적으로 공기를 울렸다.
강희찬은 양팔로 이선의 얼굴 옆을 짚은 채 몇 번이나 온 얼굴에 입맞춤을 남겼다. 입술과 뺨은 이미 수없이 괴롭혀졌다. 그런 당연한 부분은 물론이고, 이선의 얼굴 어디에도 그의 침질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동그란 이마부터 예쁜 눈썹을 더듬었고, 콧날로 내려왔다.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자는 어린애가 예뻐서 괴롭히는 것처럼 강하게 입술을 비빌 때도 있었고, 오밀조밀한 코를 한입에 머금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선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끙끙거리다가도, 마치 애교를 부리듯 강희찬의 목덜미를 꼭 안아주었다. 강희찬은 반응이 신기하여 몇 번 더 괴롭혀보았다. 이선은 저를 꼭 안아줄 뿐이다.
신기했던 것도 잠시. 묘하게, 아니 대놓고 신경에 거슬렸다.
입맞춤도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애인도 없이 혼자 사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자는 것에 익숙해질 수가 있는 건가. 자는 것을 괴롭히는데도, 팔을 둘러 목덜미를 꼭 끌어안아 주는 건 대체 무슨 잠버릇이란 말인가.
“…선아.”
보들보들한 피부 위에 입술을 댄 채로, 자는 이를 상대로 숱하게 불렀던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으응…….”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제 입술과 말랑한 뺨 사이에서 울렸다. 자는 걸 방해해서 짜증이 났는지 이선이 끙끙거리는 소리를 낸다. 강희찬은 제 입술로 이선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어깨 위의 모든 부분에 입술을 한 번씩은 대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 이선은 에취 하고 재채기를 했다.
그제야 강희찬은 맨몸끼리 꼭 붙어 있는 이 상태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몸을 겨우 떼었다. 그러자 저와 마찬가지로 벗고 있는 마른 몸이 드러났다.
목에서부터 예쁘게 내려오는 어깨와 그 아래. 어스름한 조명이 몸 선에 부딪힌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흐릿한 빛과 선의 경계도, 그 안쪽의 좀 더 명확한 몸의 색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언젠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기억 속에는 언제나 남을 수 있게.
“…….”
먼 훗날 이선은 그가 바라는 이와 함께 있을 거다. 자신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못할 예쁜 웃음을 짓고 있겠지. 그 순간, 이선의 앞에 있는 건 자신이 아닐 테다.
그때 볼 수 있는 건 기억 속에 남은 이다. 제 아래에서 단 숨을 내며 좋다고 중얼거리는 사랑스러운 얼굴. 그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은가.
“에취!”
멍하니 보던 사이, 이선은 또 재채기를 했다. 강희찬은 아차 싶어 정신을 차렸다.
침대 한구석에 구겨졌던 얇은 이불을 손에 집었다. 얼굴만 덜렁 보일 만한 위치까지 끌어 덮고, 공기 한 자락 들어가지 못하도록 꽁꽁 몸을 싸맸다.
여름이라 덮는 이불은 얇은 천 한 장이었다. 그마저도 사실 강희찬은 평소 홀대하던 물건이었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 자신이 이불 때문에 아쉬워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아직 더운 기색이 가시지 않은 지금 시기에 말이다.
강희찬은 얼굴이 달린 김밥이 된 제 작품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이불은 덮어도 딱히 보온에 도움은 안 될 것 같다.
“…쯧.”
저도 모르게 혀 차는 소리가 흘렀다. 이쯤이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냥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겸사겸사, 아직 본가에서 보냈을 리가 없는 겨울 이불이 있는지 찾아볼 심산으로.
하지만 이내 멈칫했다. 쓸데없이 시간을 쓰는 사이, 홀로 남은 몸은 더욱 차게 식어서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선생은 왠지 자주 아플 것처럼 생겨 먹었으니까.
“…씨발.”
여러모로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았다. 짧은 순간 생각을 마친 강희찬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움직였다. 협탁 위에 두었던 티슈 몇 장을 거칠게 잡아 뽑았다. 휴지 뭉텅이를 쥐고 제 좆을 한 번 훔쳤다. 뿌리까지 묻어 있던 희뿌연 좆물이 아쉽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감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강희찬은 욕실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걷는 사이 미등이 밝히는 방을 한 번 훑어보았다.
“…….”
이젠 낯선 곳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원정 경기를 갔던 사이, 강제로 마련하게 된 새 보금자리는 그에겐 지방에서 머무는 호텔과도 비슷한 감각을 줄 뿐이었다.
이젠 그럭저럭 익숙해진 이 방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그것이 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존재 때문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다.
자신은 누군가와 한 공간에 있을 때, 대체적으로 불편함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불쾌함을 먼저 감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침대를 점령한 이를 위해 팬티 하나 걸치지 못하고 걷는 지금, 그런 감정은 요원했다.
괜히 어딘가가 간지럽다. 강희찬은 그것을 머리라고 결론지었다. 아무 느낌도 없는 뒷머리를 의미 없이 몇 번 긁적이며, 도망치듯 욕실 문을 열었다.
자꾸만 저의 모든 것을 바꾸는 존재가 있음을. 숨만 쉬어도 저를 뒤흔드는 존재에 대한 인정을 잠시 미루고 싶다. 하지만 이선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욕실 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선은 왠지 손도 대지 않았을, 제가 두었던 모양 그대로인 샤워가운이 괜히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애써 지나치고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이 늘 써서 둔해진 용품들의 냄새와 아주 옅은 습기. 그리고 이제는 차게 식어버린 공기가 퍽 자극적이다.
아무것도 특이할 것이 없다. 늘 같은 제품들의 냄새, 비슷한 습기.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것들이 신경을 들쑤셨다.
묘하게 다른 이의 체향이 섞인 듯한 습기를 들이마셨다. 이내 그 향기는 욕실이 아닌, 몇 시간이나 살을 맞대고 있던 탓에 제 몸에 옮아 붙은 이선의 냄새임을 깨달았다.
낯선 이의 흔적이 불쾌하냐고,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묻는다면 과연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생각이 뻗어가는 것을 막는 데 가장 좋은 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강희찬은 뜨겁지 않을 정도로 온도를 맞추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듯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물이 채워지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샤워는 하지 못해도 몸을 헹구기라도 해야겠지. 강희찬은 엉망이 된 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정사의 흔적이 나쁘진 않지만……. 이선을 뽀송뽀송하게 씻겨놨는데, 제 몸에 남은 흔적으로 다시 더럽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스 안에는 좀 더 향기가 고여 있었다. 감각은 여러 가지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
옷을 다 입고 샤워를 하는 변태가 아니라면, 이선은 이 안에서 다 벗고 씻었을 거다. 당연한 소리였다. 이선을 홀로 들여보낸 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내내 상상하지 않았던가.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옷을 벗겠지. 옷은 다 개어두는 편일까, 아니면 의외로 정리를 하지 않는 편일까. 빨갛게 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희찬의 손이 숱하게 스쳤던 엉덩이를 다 내어놓고, 욕실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샤워한다.
그런 이선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스스로가 얼마나 변태 같은 새끼인지를 깨달았다. 로커룸에선 새끼들이 입고 다니든 벗고 다니든 신경도 쓰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 사람의 알몸이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던 시간이 지나도, 머리를 뒤덮는 상상은 여전하다. 강희찬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이선의 몸을 그렸다.
욕실 바깥의 거울 앞에는 여전히 샤워가운이 있을 거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내미는 것이라면 내키지 않아 하는 이선의 태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섭섭한 건가? 그러면서도 굳이 바디워시를 제 손에 짜서 몸을 문지르는 이선을 상상하자, 또다시 어딘가로 피가 몰렸다.
‘…한 번 뺄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그만뒀다. 지금도 헐벗은 몸을 지켜주는 건 얇은 이불 하나가 전부다. 이선이 그사이 얼마나 재채기를 했을지 알 수 없었다.
강희찬은 그대로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더운물이 머리에서부터 확 쏟아진다.
“아…….”
물을 맞은 그는 순간적으로 놀라 수압을 줄였다. 멍하니 물이 흐르는 샤워기를 보며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온도를 확인했다. 졸졸졸 흐르는 물은 여전히 강희찬에게는 덥다 싶었다. 샤워기의 수도꼭지 역시 자신이 늘 맞춰두는 것보다는 조금 비뚤어진 채다.
“…….”
타인이 자신의 욕실을 썼다는 명백한 흔적이다. 맞지 않은 물 온도에도 불구하고, 강희찬은 기꺼이 다시 수도꼭지를 원래의 방향으로 맞추고 물을 틀었다.
이선이 맞춰둔 물 온도는 너무도 뜨겁다. 하지만 욕실에 남은 이선의 흔적이 불쾌하지 않았다.
강희찬은 비누칠도 하지 않고 물로만 샤워를 마쳤다. 물만 조금 맞았음에도 두 사람의 합작품인 여러 체액은 쉬이 씻겨나갔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미련 없이 샤워부스를 나섰다. 물이 반 정도 들어찬 욕조 안에 손을 넣어봤다. 방금까진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물이 어딘지 찰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조금 더 온도를 높였다.
성큼성큼 걸어 욕실을 나온 강희찬은 샤워가운 옆에 놓여 있는 젖은 수건을 들었다. 누군가 이미 사용한 수건으로 제 머리와 몸을 대충 닦아낸 후, 빨래통에 수건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다시 급한 걸음을 떼고 방으로 돌아갔다.
미등이 켜진 방 안. 여전히 이선은 강희찬이 만들어놓은 그대로인 채였다. 잠버릇이 거의 없는 모양인지, 김밥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차림으로 이선에게 다가갔다. 만약 제 모습을 봤다면, 선생은 아마 쭈뼛거리며 고개를 모로 틀었겠지. 같이 벗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웃음이 흘렀다. 강희찬은 제가 만들어둔 김밥을 조심스레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맛있는 반찬만 골라 먹듯 홀랑 벗고 있는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자는 어린애를 안아 옮기는 것처럼, 정면으로 마주 안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으응…….”
몸이 일으켜지는 걸 느꼈는지 이선의 입에선 잠투정이 흐른다.
강희찬은 번쩍 들어 올리려던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행동을 이었다. 느릿느릿. 1초면 끝났을 움직임을 천천히 이어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원래 운동도 비슷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몸에 익혀온 동작이었다. 그걸 단계를 쪼개어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보여주는 게 더 힘든 법이다.
혹시라도 잠에서 깰까. 올리는 무게보다도 그 사실을 신경 쓰는 게 더욱 고됐다. 강희찬은 제 입가에 머문 이선의 귀에 끊임없이 낮은 목소리를 뱉었다.
“쉬이. 괜찮아요.”
“…아빠…….”
이선을 달랑 들어 올리는 순간, 낯선 호칭이 그의 귀를 스쳤다. 순간적인 당혹감에 강희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주 어릴 때가 아니었다면 불러본 적도 없는 호칭이고, 들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20대 남자의 입에서 나온다기엔,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귀여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그대로 들어 안은 몸을 위아래로 조금씩 흔들었다. 마치 갓난쟁이 아기를 달래는 아버지가 된 것처럼.
“아빠랑 목욕하자, 선이.”
허리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팔 아래, 의도를 가진 손이 움직인다. 훤히 드러난 엉덩이에 손바닥이 맞물린다. 강희찬은 제 손에 알맞게 들어찬 엉덩이를 주물렀다.
아빠인 척 어르고 달랬지만, 자는 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른다. 제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괴롭히려는 손길을.
“…으…….”
괴롭혀서 싫었는지 조금씩 비틀거리는 몸을 다시금 단단히 부여안았다. 손바닥 안에 들어찬 말랑한 살을 소리가 나도록 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이선이 멀쩡히 깨어 있어도 엉덩이를 맞는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토끼처럼 놀랄 거다. 하물며 자는 중이다. 애써 잘 자는 사람을 때려서 깨울 수는 없었다. 대신, 강희찬은 훈육의 노선을 바꾸었다.
“왜 싫어해. 아빠가 엉덩이 만지는데.”
손길은 밀가루 반죽을 만지듯 노골적이었다. 손에 힘을 쥐었다 풀 때마다,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피부가 채워졌다. 중심을 뜨거울 정도로 품어주던 안쪽 살과는 달랐지만, 이 역시 기분이 좋은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선의 미간은 이제 더 찡그려질 것도 없이 구겨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대며 거부하는 모습에 강희찬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엉덩이를 만지는 손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아빠’라는 호칭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대로 더 괴롭혔다가는 이선이 악몽을 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입이 다물리자 이선의 미약한 반항도 누그러진다. 입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신음이 조금 걱정이지만, 강희찬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투정 섞인 신음을 하며 끙끙거리는 이선을 데리고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더운물이 만들어내는 훈기가 몸을 감쌌다.
김이 약간 피어오르는 욕조 앞에서 조심스레 허리를 굽혔다. 물이 너무 뜨겁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뜨거워하면 바로 들어 올릴 생각으로 천천히 이선의 몸을 욕조에 넣어 앉혔다. 다행히 이선은 뜨겁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잘만 잤다. 오히려 강희찬의 품에서 벗어나자 구겨진 미간이 다시 예쁘게 돌아오기까지 한다.
“하…….”
한고비를 넘긴 후, 강희찬은 허리를 쭉 폈다.
몸이 힘들다기보단, 정신이 피로한 작업이었다. 지금도 강희찬은 자는 이선이 몸의 균형을 잃고 물 안으로 들어가진 않을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깨지도 않네.”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자는 얼굴은 밝은 빛 아래에서 보니, 한층 더 피로가 느껴졌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야구장에서 데려올 때보다 살이 더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선 구태여 생각의 끈을 엮지 않았다.
물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조금 오므리고 물을 퍼낸 후, 공기에 노출된 어깨에 몇 번 부었다. 더운물이 닿아서 기분이 좋았나.
“으응…….”
이선의 입이 무언가를 먹듯 오물거리더니, 어깨에서는 조금 더 힘이 풀어진다.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었나?’
아래로 내려온 이선의 앞머리를 가만히 옆으로 치웠다. 긴 속눈썹이 눈 아래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
억울해서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나 같으면 죽여도 죽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데, 억울해서 어떻게 가셨을까. 선생이 착하고 예쁘고 귀여웠던 건 비단 어릴 때 일만은 아닐 텐데. 지금도 훌륭하게 커서,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도 보셨어야 할 텐데.
이런 아이가 있었다면, 자신의 모습은 불 보듯 뻔했다. 아까워서 혼자서는 밖에도 못 나가게 했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데, 어릴 땐 얼마나 천사 같았을까.
‘아빠’라는 잠꼬대를 하던 시절에서 이선의 시간은 멈춰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 살고 있는 지금도, 밤이면 ‘아빠’를 찾을까. 어둠 속에서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고, 심지어 본인조차 모를 부름이 이어지는 걸까.
상상해 본 광경이 심장 아래 어딘가를 저리게 만들었다.
어디에서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 손이 미치는 범위 아래에만 두고 싶다. 추잡한 욕망뿐은 아니었다. 그냥……. 그냥 마음 한 자락 다치지 않고, 예쁘게만 웃었으면 좋겠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백치처럼 웃고만 살다가 곱게 늙었으면 좋겠다고. 삶의 그늘 하나 없이 정말 즐겁게 늙은 할아버지가 되길.
어딘지 모르게 눈언저리로 뜨거운 것이 몰렸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다. 전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이 감각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는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익숙하지 않아도, 야구부에 들어가기 전엔 분하면 꽤 자주 울었다고 하니까.
강희찬은 본능적으로 눈을 움직여 뜨거운 것이 퍼지도록 만들었다. 자는 사람 앞에서 우는 건 정말 추하지 않은가.
눈가의 물기를 날리려는 그의 시야에 물에 담긴 이선의 몸이 들어왔다. 이선을 감싸고 있는 부연 물도 함께였다. 출처를 깨닫는 건 금방이다. 배에 말라붙은 정액이 뜨거운 물을 만나면서 녹아 섞이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은 그의 몸 안에 고여 있을 정사의 흔적에 미쳤다.
“…….”
잠깐의 고민 후, 강희찬은 욕조 물에 발을 담갔다. 저 혼자 쓰기엔 넉넉했지만, 성인 남자 둘이 들어가기엔 조금 빠듯하다 싶은 공간에 억지로 몸을 넣었다.
좁은 공간은 그에게 아무런 불만이 되지 못한다. 좁으면 붙어 있으면 그만이다.
강희찬은 이선의 맞은편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그의 몸을 품 안에 넣었다. 등 뒤로 감싼 팔을 아래로 내리고, 엉덩이 사이의 골을 파고들었다. 중지와 검지가 함께 구멍 입구에 닿자 이선은 뒤척인다. 내내 시달린 몸이 본능적으로 반항했다.
“아니야. 괜찮아요.”
강희찬은 끊임없이 이선의 귓가에 입술을 내렸다. 아니라고. 안 할 거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효과가 있었는지, 이선은 다시 온몸의 힘을 풀었다.
“…선이, 괜찮아. 아픈 거 아니야.”
말을 하고서야, 왠지 모르게 아이를 달래는 아버지 같은 투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자신은 눈도 못 감고, 무덤에서 뛰쳐나왔을 거다.
어디서 변태를 만나서 몸 이곳저곳에 이상한 거나 묻히고 있을까. 자신이 아버지였다면, 이선의 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학교고 뭐고 그만두게 했겠지. 두상이 작고 예쁜 편이라 삭발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게 흠이긴 해도……. 그리고 망할 놈의 변태 새끼는 땅에 세로로 묻어버리든, 외국으로 보내버리든가.
“다 했어요. 조금만 더…….”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리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부지런히 안쪽에 남은 정액을 긁어냈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도 어쩐지 거부감은 없다. 다만, 자신이 해주지 않는다면 안 되겠다고. 분명 이선은 제 구멍 안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정액을 품고 다녔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무섭고, 싫어하는 건 전부 대신해 줄 자신이 있었다. 지금처럼.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여 줄 자신도 있다. 이선이 바라기만 한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선은 언제나 그의 앞에선 바라는 것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
새삼스러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언제나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자신에게는 이선에게 내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을 내밀어도, 자신이 내미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는 초라할 뿐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바라는 것을 줄 순 없다면, 별수 없다. 지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흘러나오는 한숨을 삼킨 채, 강희찬은 제게 오롯이 기댄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탁해진 물을 한 번 갈고, 깨끗한 물에 한 번 몸을 헹구고 나서야 어렵사리 샤워는 끝났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강희찬은 여전히 부지런을 떨었다.
샤워가운을 들고 와서 대충 이선의 몸에 둘렀다. 다시 침대 위에 눕혀두고도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붙박이장을 뒤졌다. 열이 많은 아들의 체질을 잘 아는 어머니께선 역시 겨울용 이불을 아직 챙기진 않으셨다. 그나마 조금은 두꺼운 가을용 이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불을 꺼내고, 누워 있는 이선의 몸의 물기를 닦고. 옷방의 서랍장에서 제 티셔츠를 하나 찾아서 꺼내 입히고. 어찌 보면 단순한 작업이지만, 이선이 절대 깨선 안 된다는 전제가 붙으면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여러 가지가 묻어 더러워진 시트를 빼냈다. 새 시트를 찾아 깔 시간까지는 없다. 궁여지책으로 매트리스 위에 이선을 누이고, 바닥으로 던진 가을 이불을 이선의 몸에 둘렀다. 무엇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얇은 이불은 시트와 함께 애처로이 바닥으로 쫓겨났다.
강희찬은 한참 품을 들여 좀 더 커진 김밥을 만들어냈다. 바닥에 널려진 젖은 샤워가운을 들고 제 몸 이곳저곳을 닦았다. 이미 젖어 있는 수건으로 닦는다는 찝찝함까진 생각이 미치지도 못한다. 제 몸을 대충 닦고, 새 속옷을 찾아 입고 난 후에야 겨우 김밥의 옆자리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하…….”
지금 몇 시쯤 됐을까. 침대 머리맡을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더듬자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을 확인하고, 강희찬은 다시금 화면을 껐다. 순간적으로 밝은 빛이 확 하고 번지자 김밥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비튼 탓이다.
“으으…….”
“알았어, 알았어. 얼른 다시 자.”
핸드폰을 베개 아래에 숨기고, 강희찬은 왼편으로 몸을 틀었다. 김밥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이미 목 끝까지 덮고 있는 이불 아래로 고개를 숨기려 한다.
“왜. 추워?”
겨울 이불은 없는데……. 이선의 행동에 그는 난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이 문을 여는 시각이라면 당장 뛰쳐나가 이불이라도 하나 사 왔겠지만, 지금은 새벽이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오른팔을 이선의 몸 위에 올렸다. 뒤척이던 움직임은 그제야 잠잠해졌다. 이선은 온기를 찾는지 몸을 모로 틀고는 강희찬의 쪽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꼬물거리는 김밥이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버릇이 이럴 것까지 없지 않나.’
자꾸만 제 품으로 들어오려는 거대한 김밥에 다리를 올리며, 강희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은 무게가 더해지면 자는 데 불편하지 않나. 하지만 이선은 그의 체중이 더해지자 다시 얌전히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뱉었다. 이불이 없는 것을 책망하는지, 김밥은 멋대로 자신에게 겨울용 이불이 될 것을 명령했다.
‘소인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픽 웃은 강희찬은 기꺼이 겨울용 이불이 되었다.
거대한 이불 포장이 된 사람을 끌어안으면, 그의 입술은 이선의 이마에 자연스레 닿는다. 자신이 늘 쓰는 샴푸 냄새가 풍겼다. 그 이마에 닿은 입술을 비볐다.
인공적인 제품의 냄새 따위 없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한껏 숨을 들이마셔야 제대로 느껴지는 유약한 향기를 방해할 뿐이라고. 하지만 코끝을 스치는 가는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익숙하디익숙한 향기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것처럼 꼭 어울릴 정도였다.
“…….”
더운 목욕물도, 계절감이 맞지 않게 지나치게 두꺼운 침구도, 처음으로 제 침대를 파고든 타인의 온기도.
더없는 안락함이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뒤섞인 자신과 제 품 안에 꼭 맞물리는 누군가의 체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