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로그아웃 불가능과 사건의 결말.(은꼬공금갠소) (22/24)

22. 로그아웃 불가능과 사건의 결말.(은꼬공금갠소)

   

   

   

   

   

  “역시. 재미는 있는데 멍청하단 말이지.”

  “…뭐?”

   

  수하의 얼굴에 의아함이 생겨났을 때, 몸을 움직여 수하가 풀어헤치고 정액과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는 레위스를 바라보았을 때 레위스는 수하를 가만히 지켜보며 말했다.

   

  “지도를 열면. 네게 소속되어 있는 자들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레위스의 말을 들으며 수하가 ‘지도’라고 중얼거리자. 수하의 눈앞에 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대상에 소속되어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해당 ‘물건’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겠습니까?]

  [YES / NO]

   

   

  떠오르는 창 위로는 반려동물이라든가 노예라는 단어가 아닌, ‘물건’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차라리 테이밍이 되었다든가 소속되어 있는 인물이나 사람이라고 적혀져 있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수하의 눈앞에 보이는 창에 떠오른 글은 바뀌지 않았다.

   

  수하가 한숨을 내뱉으며 YES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투명했던 창이 반투명하게 바뀌며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지도 모양 창이 떠오른다 싶더니,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는 붉은색 동그라미와 저 멀리 검은색 동그라미 3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저기에 모여 있는 거지?”

   

  위치상으로는 수하가 아까 로그인했을 때 처음 서 있던 자리인 듯한 위치에 모여 있는 모습이 보여서 수하는 의아함을 담아 고개를 기울이고 레위스를 쳐다보았다.

   

  레위스는 그런 수하를 가만히 바라보며 웃더니 긴 다리를 움직여 옷장에 다가가 옷장 문을 열고는 안에 걸려 있던 옷 하나를 꺼내 수하에게 던져 주었다. 수하가 당황하며 뻗은 손에 잡힌 옷을 붙잡고 멍하니 레위스를 바라보자. 레위스는 수하의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안 갈 건가?”

  …갈 거야.”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수하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힘이 들기는 하는지. 몸은 중심이 잡히지 않아 비틀거렸다. 한 손을 뻗어 근처에 있는 선반을 붙잡으며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기를 몇 번. 수하는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내뱉고 한 손에 움켜쥐고 있던 옷을 펼쳐 대충 소매에 팔을 껴서 입었다.

   

  벌어진 옷을 허리에 걸려 있는 매듭으로 단단히 동여맸다. 일상적인 옷으로는 보이지 않고 잠옷처럼 보였으나, 다시 옷장에 걸어가 바지를 찾아 입기도 힘들었고 레위스에게 옷을 꺼내 달라고 말하기도 싫었다.

   

  저리는 허리를 한 손으로 두드리며 수하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 관절이 한번이 꺾여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런. 그러다가 가는 길에 몇 번은 넘어지겠군.”

   

  수하는 레위스가 멀리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찰나 넘어지려는 순간 허리에 감긴 팔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다리에 힘이… 풀린 것뿐이야.”

   

  수하가 근처에 벽을 한 손으로 짚으며 허리에 감겨 있는 레위스의 손을 풀어냈다. 레위스는 딱히 기분이 나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힘이 빠진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나려 하는 수하를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힘들 텐데?”

  “별로….”

   

  힘들었다. 허리는 부서질 것처럼 욱신거렸고 크고 단단한 성기가 쑤셔졌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던 구멍은 뜨거웠다.

   

  “안 힘들어.”

   

  즐길 때는 즐기지만. 그렇다 해서 연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의 몸도 밥을 잘 안 먹어서 삐쩍 마르고 힘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으나,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수하가 들어온 발레리 수하라는 캐릭터도 약한 캐릭터였다. 남들이 마법을 쓰고 검술이 좋으며 힘이 강할 때, 수하의 캐릭터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그나마 나중에 생긴 능력이라고 해 봐야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몽마’ 스킬밖에 없었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것 중에 하나였고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분명 좋은 스킬이었다. 누군가는 이 게임에 들어와서 세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 현실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모험. 만들지 못하던 무언가를 만들고 사라진 감각을 작게나마 느끼기 위해 시작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잡아 주지 마.”

   

  하지만 수하는 그런 것을 원하고 이 게임을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섹스하고 싶은 욕구.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섹스나 진득하게 하면서 원하는 섹스 라이프를 하자는 계획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게임의 플레이어를 현실에서 만나고 그게 지인이어서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현실에서도 섹스를 하게 되었던 그 기억을 수하는 천천히 떠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혼자 걸어갈 수 있어.”

   

  수하는 반쯤 숙여 있던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문밖으로 나갔다.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빠지면 바로 바닥에 엎어질 것만 같았다.

   

  긴장감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을 때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긴 복도를 멀게 쳐다보며 힘겹게 다리를 움직였다.

   

  저벅저벅. 느릿한 걸음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레위스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수하는 등 뒤를 바라보지 않고 한 걸음 두 걸음 다리를 움직여 계단으로 걸어갔다.

   

  “하….”

   

  눈앞에 보이는 계단이 그리 높지도 계단이 많지도 않았지만, 지금 보니 그 높이가 너무 높은 것 같아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수하는 한 손을 뻗어 난간을 움켜쥐고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갔다.

   

  발끝에 걸리는 보드라운 카펫을 느끼며 계단의 반쯤 내려온 수하가 난간을 붙잡으며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뱉었다. 다른 손으로 지끈거리는 허리를 두드렸다.

   

  눈앞에 보이는 창에 테인과 다른 사람들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였다.

   

  “도와줄까?”

  “…필요 없어.”

   

  바로 옆에서 멈추어 선 레위스가 수하에게 다시 한번 도와줄지 물어봤지만. 수하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레위스의 도움을 거절했다. 레위스가 어깨를 작게 으쓱이며 수하를 한번 보았다가 한 걸음 먼저 계단을 내려가 등을 돌려 수하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힘들 텐데.”

  “…….”

   

  레위스의 말은 맞았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시고 근육통에 온몸이 찢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아픔과 고통을 만들었던 모든 것이 레위스였기에 수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레위스를 내려다보았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수하는 그저 고개를 작게 흔들고 난간을 쓸어내리며 한 걸음 두 걸음 다시 다리를 움직여 힘겹게 계단을 내려갔다. 앞에 서 있던 레위스가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을 때 수하는 더 이상 레위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서로의 걸음이 엇갈리고 맞춰지지 않게 걸었을 때 어느 순간 커다란 문에 도착했다. 지도에 보이던 검은색 점들이 움직이며 그사이에 내가 서 있는 문밖으로 멈추어선 검은색을 바라보며 수하는 떨리는 손으로 문 앞에 손을 대고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뱉기를 반복하던 수하가 손을 뻗어 문을 천천히 밀어냈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밖으로 서 있는 테인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수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로 수하를 쳐다보았고, 그 옆에 서 있던 로버트 역시 웃는 얼굴로 수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플레이어가 캡슐 해킹을 하고 들어온 자인지. 아니면 플레이어가 빠져나가고 남은 NPC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기에 수하는 느릿느릿하게 걸어 문밖으로 나가 테인을 한 번 보고 손을 뻗었다.

   

  “이리 와.”

   

  테인의 탐스러운 꼬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천천히 걸어오는 테인이 고개를 기울이며 수하를 한번 보았다가, 수하의 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작게 미소 지었다.

   

  【…안녕.】

   

  작은 목소리였지만, 보상으로 받은 웨어울프의 언어 때문인지 전에는 알아듣기 힘들었던 테인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됐다. 수하는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테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가 테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웃었다.

   

  “안녕 테인.”

   

  테인이 말하는 말이 웨어울프의 언어였기에 도훈이 로그인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수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테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테인의 인사에 인사를 건네며 웃었을 뿐인데. 테인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것처럼 수하를 바라보았다. 수하는 잠깐 고민하는듯하다가 두 팔을 뻗어 테인의 목덜미를 감싸 안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응. 알아듣지.”

  【어떻게 해서 알아듣는 거지….】

   

  테인의 목소리에 약간의 혼란이 묻어 있었지만, 수하는 등 뒤로 살랑거리는 꼬리가 빠르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테인이 기분 좋다는 것을 알고 등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서 있는 메이슨과 그 발목에 연결되어 다리를 움직여 쇠사슬을 당기고 있는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더 이야기해 볼까 했던 수하는 다음 날 도훈과의 데이트를 생각하며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로그아웃.”

   

  그 말을 한 수하의 두 눈이 점점 커다랗게 떠졌다. 평소 같았으면 수많은 상태 창이 떠올랐을 텐데. 그런 창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하는 당황한 얼굴로 테인을 안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그아웃.”

   

   

  [데스티니 서버가 불안정합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로그아웃.”

   

   

  [데스티니 서버가 불안정합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로그아웃 키워드가 사라집니다.]

  [로그아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수하는 눈앞에 있는 창들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 되었고, 이내 고개를 빠르게 돌려 등 뒤에 서 있는 레위스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수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도 레위스는 웃는 낯으로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며 수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했지 않나. 목숨이 소중한데 돌아왔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무슨….”

   

  수하의 목소리가 약간은 떨렸다. 로그아웃이 사라졌다는 말에 이곳에서 나갈 방법이 보이지가 않았다. 수하는 멍청한 얼굴로 레위스를 바라보았지만. 레위스는 그런 수하를 지켜보며 말했다.

   

  “그동안. 네가 했던 플레이를 지켜보며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뭐?”

  “선택은 홍수하, 네가 한 것이니 후회 또한 안 하겠지.”

  “…무슨 소리야?”

  “77777번째 플레이어.”

   

  처음 게임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시스템 창에 떠오른 숫자였기에 수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위스를 바라보았다.

   

  데스티니 게임의 운영자. 자신의 몸을 본떠 만든 레위스라는 캐릭터. 그 이름과 외모를 동일시 만들었던 인공 지능 캐릭터가 정말 인공 지능이 맞나 하는 의문이 지금 피어올랐다. 수하는 설마설마하는 얼굴로 레위스를 바라보았지만. 레위스는 수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앞으로도. 네가 하는 플레이를 지켜볼까 한다. 그리고 오늘부로, 데스티니 서버는 종료되겠지.”

   

   

  [데스티니 서버가 불안정합니다.]

  [사용을 하는 사용자는 로그아웃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수하가 레위스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버그가 아니라 …레위스… 운영자… 당신이….”

   

  어쩌면 처음에 TV에 운영자가 나와서 한 말부터가 이상한 것일지도 몰랐다.

   

  ‘게임 속에 제 모습을 하는 방랑자 NPC가 있습니다.’

  ‘쉽게 해결이 되면 아쉬울 것 같아, 하나의 게임을 추가해 놓았습니다.’

  ‘게임과 도박. 그리고 즐거움.’

   

  게임에 버그가 생겼는데. 굳이 버그를 바로 해결해 주기 아쉬워 도박 같은 게임을 추가해 놓은 운영자 레위스.

  ‘어떠한 버그로 인해 지금 서버가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게임 접속 자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들 때부터 감각도가 높은 데스티니 게임이 정말 버그 하나 때문에 서버가 불안정해져 게임을 접속하지 못했을까.

   

  ‘목숨이 위험하기도 합니다. 현재 사이트에서 접속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과 동일하죠.’

  ‘캡슐 안의 감각을 올려 주는 불법적인 해커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버그로 인해 불안정한 데스티니 서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캡슐을 해킹해 감도를 100%로 바꾼 플레이어들입니다.’

   

  버그로 인해 서버가 불안정해져 게임이 접속하지 못하는데. 감각도를 100%로 올리는 캡슐 해킹을 하면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는 말을 믿은 것이 멍청했다.

   

  “…모든 걸. 당신이 설계한 거야?”

   

  운이 아무리 좋아도. ‘77777번째 플레이어.’가 되기는 힘들었다. 만약 그걸 마음대로 누가 조정을 할 수가 있었다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을지도 몰랐다. 12시까지 기다렸던 플레이어 중에 시간 초과를 하여 루크 마을로 시작한 것이, 모든 것이 운영자가 정했고 그걸 따라간 거였다면. 그 모든 것이 운영자의 손 위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었겠지.

   

  수하의 물음에 레위스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수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수하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아 레위스를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모든 것을 설계한 것은 아니지.”

   

  ‘[튜토리얼 (7) 집 밖을 나가 보자.]

  『발레리 수하는 한동안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누군가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도록 하자. 어쩌면 즐겁고 흥미로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튜토리얼 퀘스트 또한 이상했다. 집 밖을 나가 보자. 한동안 집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몰랐다. 그 퀘스트 전에 분명 수하는 집 밖을 나가 노예 경매장을 갔었으니까. 하지만 바보 같고 멍청하게, 그때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

   

   

  모든 할 말이 사라진 수하가 입을 다물고 레위스를 가만히 바라보자 레위스는 다리를 움직여 수하의 코앞까지 다가와 수하의 어깨를 한 손에 아프지 않게 움켜쥐고 손가락으로 불룩 튀어나온 뼈를 문질렀다.

   

  “발판만 만들어 놨을 뿐. 그걸 따라간 것은 네가 선택한 것이지.”

  “…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수하는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믿어지지도 않았다. 분명 레위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하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레위스가 의도한 것을 따라갔다는 말이었다.

   

  “…캡슐 해킹도. 아니 캡슐 해킹을 하지 못하면 게임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든 것도. 당신이 한 거야?”

   

  설마. 아니겠지. 이것까지 전부 설계가 되어 있던 거라면, 멍청하게 붙잡힌 생쥐가 멈추지 않는 쳇바퀴 속에서 달리고 달려 결국 넘어지고 나서야 이게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이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운명 같은 게임 데스티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고 나서야 수많은 비밀과 설계를 눈치챈 것이다.

   

  “이 게임을 만드는데 몇 년이 걸렸지. 감도가 높고 안전한 게임을 위해 버그는 전부 삭제하고 그 작은 오류를 찾는데도 몇 년이 걸렸었지.”

  “…그 말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굳이 답을 들어야 하는 건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임을 나갈 수 없다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수하는 자신도 모르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으로 받아졌다. 수하는 허탈한 얼굴로 레위스를 바라보았다.

   

  바보 같고. 멍청하다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졌다. 오류가 걸렸다 했을 때 게임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나서 TV를 보는 그 순간 버그를 삭제할 수 있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도, 게임에 들어와서 동시에 버그 삭제 퀘스트를 받는 것도 모든 게 완벽하게 짜여 있던 설계였고 계획이었던 거라는 걸 알았다.

   

  “…왜…?”

   

  수하는 어깨를 잡고 있는 레위스의 손을 힐끔 바라보았다가 떨리는 손으로 레위스의 손을 뿌리쳤다. 한 걸음 물러난 수하의 다리가 그대로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궁둥이가 차가운 바닥에 닿고 옆에 서 있던 테인이 걱정하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가 수하의 근처에 주저앉아 수하의 어깨를 안고 부축했을 때 레위스는 수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Destiny 게임에서 당신의 페티시와 판타지. 무한한 운명을 느끼시기를.”

  “…뭐…? 잠. 잠깐만!”

   

  처음 게임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그 익숙한 말과 함께 눈앞에 서 있던 레위스의 모습이 점점 부서져 내렸다. 수하는 놀란 얼굴로 손을 뻗어 레위스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것마저 허상을 보는 것처럼 손이 통과되어 버렸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넓어. 그러니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봐. 홍수하.”

  “레위스!”

   

  목을 긁어내리듯이 수하가 소리쳤을 때 레위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데스티니 서버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신 플레이어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씨발…!”

   

   

  [해당 플레이어의 메뉴에 로그아웃이 없습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데스티니 서버를 운영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시스템과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

   

  바닥에 앉아 있는 수하가 멍하니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 창을 한동안 바라보았지만 점점 투명해지는 시스템 창은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퀘스트 창… 상태… 상태 창! 지도!”

   

  수하가 당황하는 얼굴로 아무리 소리쳐도 익숙하게 떠오르던 시스템 창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하?】

   

  옆에서 들리는 테인의 목소리에 수하는 멍하니 풀린 눈으로 테인을 바라보았다. 고개가 기울어지고 머리 위에 달린 검은색 귀가 쫑긋거리며 등 뒤에서 탐스러운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보며 수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테인을 꼭 껴안았다.

   

  “….”

  【괜찮아?】

  “…괜찮아.”

   

  눈앞이 컴컴했지만. 수하는 천천히 한숨을 내뱉었다. 캡슐 해킹을 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면서도 ‘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죽더라도 자신은 그럴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수하는 테인의 품 안에 안겨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정원, 그 앞에 서 있는 로버트와 메이슨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도망가지 않았고 점점 자신에게 다가왔다.

   

  “멍청하게 주저앉아 뭐 하는 거지?”

  “주인님. 바닥이 차가운데 차라리 옷이라도 깔고 앉으시는 게 낫지 않나요?”

   

  플레이어가 떠나간 자리에 기억이 남아 있는 건지. 수하에게 손을 뻗는 메이슨과 옆에서 벗을 옷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표정으로 맨살을 문지르는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하… 푸흐흐. 괜찮아.”

  수하는 메이슨이 뻗는 손을 붙잡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정쩡하게 같이 일어나는 테인이 수하를 품 안에 안고 메이슨을 같이 바라보았다. 수하는 저 멀리 있는 대문을 바라보았다가 주변에 서 있는 자신의 소유물이자, 이제는 같이 갈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원했던 대로. 같이 다른 지역으로 가자.”

   

  허탈했지만 그렇다고 실수했던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로그아웃도 되지 않았고 데스티니 서버가 종료되면서 남아 있던 자신에게 남은 거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시스템 창도 사라졌고. 지도마저 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서버가 종료가 되었는데 이 세상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작은 미로에 갇혀 버린 기분이었다. 작디작은 소인이 되어서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을 운영자가 지켜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멍청하게 주저앉아 울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내가 후작의 아들이라. 돈은 많거든?”

   

  수하가 짓궂게 웃으며 메이슨의 팔을 당겼다. 주춤, 메이슨이 앞으로 걸어오자 그 옆에 서 있던 로버트도 비틀거렸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수하가 테인의 허리에 손을 감고서는 테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허리 아파서 그런데. 나… 안고 방으로 가 줄래?”

  【…응.】

   

  테인이 상체를 살짝 굽혀 수하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가 다시 방으로 걸어가는 길은 짧은 것처럼 느껴졌다. 수하는 테인의 품 안에 안겨 도훈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욕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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