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 노예 경매장(은꼬공금갠소) (9/24)

09. 노예 경매장(은꼬공금갠소)

  도훈이 끓여 준 김치찌개는 확실히 맛있었다. 매콤하면서도 참치가 들어가서 진한 국물은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나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수하는 식탁에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들고 찌개를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뜨듯한 연기가 올라오는 김치와 국물을 후후, 불고 먹자 매콤하고 아삭아삭한, 국물이 잘 스며든 김치가 너무 맛있었다.

   

  한 입 두 입, 밥과 함께 찌개를 먹고 있는 수하의 맞은편에 앉은 도훈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맛있게 밥을 먹는 수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달그락, 달그락,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 수하의 손이 멈추었다.

   

  수하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의자에 힘을 풀고 기대어 앉았다. 그런 수하의 모습을 지켜보던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놓여 있는 식기를 전부 치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따듯한 연기가 올라오는 찌개 위에 뚜껑을 닫는 도훈을 힐끔 쳐다보았다. 식탁에 있던 식기를 들고 싱크대로 가져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은 옷 때문에 도훈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등 근육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기대고 있던 상체를 살짝 숙이고 나른한 얼굴로 식탁에 팔을 올려놓았다.

   

  샤아아, 틀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달그락거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반쯤 열린 방 안에 캡슐이 보였다. 게임에서도 실컷 하고 현실에서도 했는데도. 다시 게임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 툭 두드렸다. 설거지를 끝낸 도훈이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몸을 돌려 수하를 바라보았다.

   

  “왜?”

  “… 너 언제 가냐고.”

  “나? 음… 왜? 게임하고? 싶어서?”

   

  도훈이 앞에 있는 의자를 끌어 빼낸 뒤에 자리에 앉았다. 수하가 그런 도훈을 쳐다보았다가 시선을 돌리는 게 느껴져서인지, 도훈은 낮게 웃기만 했다. 도훈의 눈에 빨리 게임에 들어가고 싶어서 움찔거리는 수하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얼마나 게임이 하고 싶었으면, 섹스도 하고 밥도 차려 준 자신을 보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도훈의 말에 수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섹스를 한 것도 자신이 덤빈 거고, 씻겨 주고 밥도 차려 줬는데 쫓아내기 미안했다. 그렇지만 게임에 들어가서 튜토리얼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튜토리얼을 끝내야, 데스티니. 말 그대로 운명의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눈앞의 도훈이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고 의자에 올려놓았다. 살짝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훈이 수하에게 걸어왔다. 도훈은 수하의 둥근 하얀 어깨를 손으로 툭툭, 부드럽게 두드렸다.

   

  “내일 또 올게.”

  “…오지 마. 문 안 열어 줄 거야.”

  “비밀번호 아는데. 123321.”

  “바꿀 거야.”

  “비밀번호는 바꾸는 게 좋긴 할 것 같아. 너 남자라고 해도, 비밀번호 너무 쉬운 거 알지?”

   

  수하는 뚱한 얼굴로 웃고 있는 도훈을 올려다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데, 도훈의 얼굴을 보자 목을 긁으면서도 가래침을 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하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것이 보였을 때 장난스럽게 웃고 있던 도훈이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난 갈 테니까, 꼭 비밀번호 바꿔라!”

  “네가 엄마냐! 그만하고 좀 가!”

   

  결국, 수하가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났을 때, 도훈은 크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쿵, 소리와 함께 큰 소리로 닫친 현관문과 함께 삐리릭,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도훈이 잠깐 왔다가 갔다고, 그새 집이 너무 조용해진 것 같았다. 고요한 집이 너무 조용하니까 이상했다. 낮은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끼익,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몸에 둘러 싸매고 있던 이불을 벗었다. 따듯했던 이불에서 벗어나자 조금은 서늘한 것 같았다.

   

  도훈이 나간 현관문을 한번 쳐다보았다가 다리를 움직여 캡슐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열려 있는 캡슐의 뚜껑이 먼저 보였다.

   

  “아….”

   

  생각해 보니까, 게임에 들어가면 도훈과 마주 칠 수밖에 없었다. 그 뜨거운 노란색 눈으로 쳐다보던 게 도훈이었다는 생각이 저릿한 허리가 더 뻐근하게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게임에 들어가면 테인, 아니 도훈을 만날 텐데. 이제 어떻게 섹스를 해야 하나 고민까지 됐다.

   

  모르고 할 때랑 알고 나서 할 때가 달랐다. 밧줄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던 것도 보고, 구멍 안에서 알을 산란한 것도 봤다는 생각까지 들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캡슐로 걸어갔다.

   

  “괜히 쫓아냈나….”

   

  하지만, 집에 캡슐이 한 개밖에 없는 걸…, 수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애초에 하려고 치킨을 사 온 놈인데 무슨 걱정을 하냐는 생각을 하며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 위로 차갑고 부드러운 캡슐 안의 침대가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 뚜껑이 천천히 내려와 닫혔다.

   

   

  [사용자의 홍채를 인식합니다.]

  [홍채 인식을 완료하였습니다.]

  [사용자 「홍수하」 님 오늘도 새로운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데스티니.”

   

   

  [사용자 「홍수하」 님의 뇌파를 연결합니다.]

  [새로운 운명. 당신의 앞에 축복이 깃들기를-…]

   

   

  눈부신 하얀빛도 익숙했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도 이제는 익숙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들어 올렸다. 환한 빛이 눈 안을 가득 채우고 코끝은 싱그러운 장미 향이 가득했다. 바보처럼 우뚝 서 있는 상태로 두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아버지의 침대에서 자는 거로 로그아웃이 되었는데. 그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렀던 건지 캐릭터는 아버지의 방이 아니라 장미 정원 중간에 서 있었다.

   

  “수하야?”

  “…아…. 네?”

   

  눈앞에 있는 장미를 쳐다보다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로한이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형…?”

  “운동하다가 방으로 가던 길에 수하, 네가 보여서.”

  “아…, 산책… 산책하고 있었어요.”

   

  수하도, 왜 여기에 캐릭터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로그아웃을 하면 캐릭터가 인공 지능으로 움직이는 걸지도 몰랐다. 플레이어가 나갔다고 캐릭터가 하루에서 삼일동안 백치처럼 멍하니 서 있거나 누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음… 아, 수하야.”

  “네?”

  “이번에 경매장에 재미있는 물건이 나온다는데. 같이 갈래?”

  “물건이요…?”

   

  게임에 경매장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좋은 물건이라는 말에 수하의 머릿속에 온갖 것들이 가득 채워졌다. 물건이면, 혹시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노예 같은 걸까, 이종족이나 몬스터 그런 것들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물건이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지,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수하는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로한을 올려다보았다.

  물건이면 특이한 물건을 사면 되는 거였고, 만약 정말 노예 경매장이라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하면 되는 거였다.

   

   

  [이벤트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이벤트 퀘스트 밤의 경매장.]

  『발레리 로한이 오늘 밤 열리는 경매장에 좋은 물건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수하에게 줄 선물이 있을까 경매장에 가려던 로한은 훈련을 끝내고 씻으러 가는 길에 당신을 만났다. 발레리 로한과 경매장을 가서 함께 물건을 구입할지, 아니면 형인 로한이 가져오는 선물을 기다릴지 정할 수 있다.』

  「제한 시간 : 5:00」

  《보상 : ???》

   

   

  튜토리얼 퀘스트도 제대로 깨지 못했는데 이벤트 퀘스트는, 생겨도 너무 잘 생겼다. 수하는 눈앞에 있는 퀘스트 내용을 대충 훑으며 읽었다. 로한이 가져오는 물건을 기다릴지, 아니면 같이 가서 살지 고르라는 내용이었다. 수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로한의 답이 나오기 전에 급하게 입술을 열었다.

   

  “갈래요, 같이 가요! 경매장!”

  “어?”

  “경매장 같이 가요. 같이 가고 싶어요!”

  “어…어어 같이 갈 거야. 일단, 씻고 올 테니까 방에서 쉬고 있을래?”

  “네.”

   

  로한은 더운지 셔츠를 펄럭거렸다. 살짝 웃는 얼굴로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대로 몸을 돌려 저택으로 걸어갔다. 그런 로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수하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여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해 보이는 옷은 약간의 레이스가 달려 있어서 치렁치렁하고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 착용감은 편해서, 역시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은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음….”

   

  밤의 경매장이라고 하면, 아직 시간이 오래 남아 있었다. 아쉬움에 다리를 흔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짝은 기울어 있는 해가 금방 넘어가 어둠이 찾아올 것 같았다. 수하는 벤치에 나른하게 앉아 멍하니 솜사탕 같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 바라보았다.

   

  천천히 움직였다가 점점 작아지는 구름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방으로 돌아가 로한을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튜토리얼 (4) 아버지와 정원에서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튜토리얼 (5) 늦은 밤 운명적인 만남.]

  『오늘 밤 12시에 열리는 밤의 경매장에 특별한 물건이 들어왔다. 로한이 선물로 가져올 수도 있었으나, 당신은 경매장에 직접 가는 것을 선택했다. 경매장 안에서 알 수 없는 두 사람을 만나자.』

   

   

  저택에 들어가기 직전 수하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튜토리얼 4 퀘스트를 못 깼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시스템 창에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알 수 없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튜토리얼은 말 그대로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 주는 건데 이건, 튜토리얼 퀘스트가 아니라 메인 퀘스트를 깨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진짜 게임 접을 때까지 튜토리얼을 끝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 밖으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멈추었던 발을 움직여 방으로 걸어갔다. 굳게 닫혀 있는 방문을 보고 바싹바싹, 마르는 입안에 침을 모아 목구멍으로 삼켜 냈다. 손을 뻗어 차가운 문을 밀어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테인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수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넌… 누구냐.】

  “…응?”

   

  테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반쯤 감고 있는 눈으로 수하의 온몸을 훑었다. 테인의 시선이 닿는 부분이, 꼭 옷을 입지 않고 알몸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수하는 한 손을 들어 올려 멋쩍은 기분에 목덜미를 주물렀다.

   

  의자에서 일어난 상태로 수하가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를 전부 탐색하겠다는 것처럼 쳐다보는 테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현실에서는 아프던 허리가 게임에 들어오니 아프지 않다는 건 다행이었다. 수하는 살짝 고개를 돌려 테인을 쳐다보았다. 알몸으로 쪼그라든 성기가 흔들리는데도 부끄럽지도 않은지 입술을 꾹 다물고 수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인의 금색의 눈동자와 마주친 수하는 말없이 눈만을 깜박였다.

   

  도훈이 아직 게임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테인은 이제야 NPC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부락을 침범해서 납치하듯 데려왔는데. 테인이 날 보고 경계도,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는 것도 정말 이상했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솔직히 도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 테인이 말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경계를 한다기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 탐색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로한과 카데스보다 힘이 약해 보여서 경계를 안 하는 건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기분은 나빴다.

   

  【대답해. 넌 누구지?】

   

  머릿속이 영어도 아니고 저건 무슨 말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정말 강아지나 고양이가 울고 짖어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수하도 그랬다. 테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보디랭귀지라도 해야 되는 걸까. 우리말로 말고 몸으로 말해요! 를 펼쳐야 할지도 몰랐다.

   

  수하의 벌어진 입술에서 한숨과도 같이 깊게 숨을 내뱉으며 테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테인.”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냐!】

  “수하.”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치고 다리를 움직여 수하에게 뛰듯이 걸어왔다. 벽에서부터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더 이상은 오지 못하는 테인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목에 감겨 있는 사슬을 움켜쥐고 몇 번 손을 움직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저게 고열로도 녹이지 못하는 사슬은 건지, 팔뚝의 근육이 도드라지고 핏줄이 올라오는데도 벽에 고정된 철판이 뜯기지도, 그렇다고 사슬이 끓어지지도 않았다. 그게 신기하면서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보는 눈이 섹시해 보여서 수하는 고개를 기울이며 아이처럼 웃었다.

   

  “수하.”

   

  수하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테일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미간의 주름이 가득 생겨 일그러진 얼굴로 수하를 쳐다보던 테인은, 쇠사슬이 어떻게 해도 끊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쇠사슬을 잡고 있던 테인의 손이 내려와 수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수하.】

   

  드디어 테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왔다. 살짝은 어눌한 느낌이 있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잠깐 고민하던 얼굴로 테인을 보던 수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인의 손이 뻗어져 침대 헤드를 붙잡았다. 손아귀에 붙잡힌 쇠가 보이지도 않았다. 수하는 그런 테인을 쳐다보았다가 선반에 올려진 ‘빵’ 하나를 집어 들고 테인의 손이 겨우 닿는 부분에 빵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밀었다.

   

  【…뭐지?】

  “어… 배가 안 고픈가? 아니면… 먹는 방법을 모르나?”

   

  혹시 데려올 때 머리가 다친 건지 테인은 손에 닿는 빵을 들지도 먹지도 않는 것에 수하는 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빵’ 하나를 더 가져와 입으로 가져갔다.

   

  “…냠냠?”

  【하?】

   

  빵을 먹지는 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는 테인이 답답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밥은 제대로 먹어야 할 텐데, 저러다가 굶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손으로 빵을 다시 한번 가리키고 손안에 들고 있는 빵을 찢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촉촉한 빵이 고소하게 맛있어서 생각 없이 먹으면 계속 먹다가 살이 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먹는 법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건가?】

  “먹여 줘야 하는 건가?”

  【지금… 뭐 하는!】

   

  마무리해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에 수하는 침대에 내려놓은 빵을 들고 테인이 벌리고 있는 입안에 빵을 쑤셔 넣었다. 그런 수하의 손목을 그러쥐는 테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수하는 눈을 깜빡이며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맛있어요?”

  【….】

   

  입안에 가득 채워진 빵 때문인지 테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잠시 쳐다보고 있는데, 날카롭게 쳐다보던 눈이 갑자기 힘이 풀리더니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테인의 고개가 살짝 돌아가더니 입안에 있는 빵을 우걱우걱 씹어 대충 삼켰는지 목울대가 움직였다. 힘주어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어지고 천천히 당겨 수하의 손가락에 입술을 문지르며 웃었다.

   

  “안녕.”

  “…도훈?”

  “여기서는 테인이지.”

   

  수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꾹 다물어졌다. 나중에 NPC 테인과 도훈인 테인을 비교하기는 쉬울 것 같았다. 말하는 걸 알아들으면, 도훈인 거고 못 알아들으면 NPC니까.

   

  “좀 떨어져.”

  “흐응? 싫은데.”

  “내가 게임에서도 너랑 들러붙어 있어야 해?”

  “그러면 그냥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도훈, 아니 테인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했기에 수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기는 했지만, 이미 친구라고 알고 있는데 캐릭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수하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와 테인을 쳐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 숨김없이 보였다. 테인의 어깨가 살짝 움직이며 웃고는 입술로 문지르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야. 왜 거기로 가?”

  “누가 와서.”

   

  테인의 말에 수하는 귀를 기울였다. 귀를 쫑긋거리며 움직여도 발걸음 소리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냐고 말하려고 테인을 쳐다보자 머리 위에 달린 귀가 뒤로 넘어가 빳빳하게 서 있는 게 보였다.

   

  수하는 자신은 인간 귀고, 테인은 늑대 귀라서 들리지 않는 게 들리는 걸까 생각을 하는 사이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간다.”

   

  방문이 열리고 로한이 들어왔다. 서 있던 테인은 그새 자리에 주저앉아 로한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로한은 방 안에 들어와 테인을 한번 보았다가 수하의 손에 들려 있는 빵을 쳐다보았다.

   

  “배고팠어?”

  “아…. 입이… 좀 심심해서요.”

   

  테인이었던 NPC가 음식 먹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보여서 앞에서 빵을 먹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그저 웃으며 로한을 쳐다보았다. 로한은 긴 다리를 움직여 수하에게 손을 뻗었다.

   

  “밖으로 나가서 음식을 사 먹자.”

  “…네.”

   

  단단한 로한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웃는 얼굴로 수하의 허리를 살짝 감싸는 손을 고개를 숙여 쳐다보았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었다. 로한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가 다리를 움직였을 때, 수하는 살짝 고개를 돌려 테인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턱을 괴고 있는 상태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로한을 쳐다보던 테인은, 수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눈을 접고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조심히 다녀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꼭 조심히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귓가에 들리지도 않는 장난 섞인 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로한과 방에서 나와 집 밖으로 걸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집 밖을 나갈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시종이 손안에 들고 있던 담요를 그대로 수하의 몸에 둘러 준 로한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차 문을 열었다.

   

  “갈까?”

  “좋아요.”

   

  경매장에 뭐가 있을지, 어떤 진귀한 물건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에서도 경매장은 있지만, 보통 값비싼 예술품을 수없이 비싼 돈으로 사는 부자들만이 경매장에서 입찰을 했지 일반인들은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마차에 탑승해서 자리에 앉자 푹신푹신한 쿠션이 덜컹거리며 움직일 마차의 충격을 흡수할 것만 같았다. 로한도 마차에 타서 자리에 주저앉고, 마부에게 들리게 벽을 손으로 툭툭 내리쳤다. 그 소리에 마차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살짝 나 있는 창문에 배경이 휙휙 지나갔다. 그사이에 해가 져 버린 건지 창문 밖으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가로등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들고, 아니면 일이 끝나 피곤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NPC일까 플레이어일까. 이제는 알 수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경매장은 처음 가겠네.”

  “네, 네?”

  “저번에 경매가 열렸을 때는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쉬었잖아.”

  “…아… 네, 그래서 너무 기대돼요.”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마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렸다. 수하는 손으로 부드러운 소파를 문지르며 로한과 창밖의 풍경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경매장이 가까웠던 건지, 아니면 마차가 그만큼 빨리 달린 건지, 한참을 달렸던 마차가 멈추었다.

   

  “내릴까?”

  “네.”

   

  로한이 마차 문을 열고 내려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수하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로한은 마차 아래에서 손을 내밀어 주고 있었다. 수하는 그런 로한의 손을 붙잡고 마차의 발판을 밟으며 내려왔다. 시원한 밤공기가 몸을 훑고 지나가자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로한의 손을 붙잡고 같이 걸음을 옮겼다.

   

  로한이 자신보다 다리가 긴데도, 발걸음 속도를 맞춰 주는지 발걸음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함께 걷는 길이 꼭,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상하게 쳐다볼 텐데.

   

  게임이라서 그런지 이것 하나는 마음이 편했다. 옛날과는 다르게 동성애 연애가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싫어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었다.

   

  뭐, 이제는 만나고자 하면 편하게 만나거나, 만나지 못한다 해도 게임에서 즐길 수 있으니 상관은 없는 일 중에 하나였다. 게임에서 버는 돈으로 일상에서 생활이 가능한 만큼, 게임 속에서도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 여기예요?”

   

  로한이 걷는 걸음과 맞춰서 걷던 수하의 정면에 한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벽과 기둥에 금칠을 했는지, 아니면 금박을 씌운 건지 노란 벽을 긁어 팔면 돈이 될 것만 같았다. 저 건물의 주인은 정말 돈을 펑펑 뿌려서 쓸 것만 같았다.

   

  로한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는 수하를 보며 다정하게 웃었다. 손안에 들어와 있는 작은 손을 힘을 주고 붙잡으며 수하의 손을 아프지 않게 당기고 앞으로 걸어갔다.

  새하얀 문 앞에 서 있던 경비원으로 보이는 가드가 로한과 수하의 앞을 막았다. 말없이 수하와 로한을 쳐다보았을 때, 로한은 품 안에서 화려한 편지지 하나를 꺼내 가드에게 보여 주었다. 가드는 로한이 보여 주는 편지지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하얀 문을 열어 주었다.

   

  “원하시는 물건을 얻기를 바랍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가드의 목소리보다 쿠쿠쿵, 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문이 무겁기도 한지 뭐 하나 부딪치거나 밀리면 사람 하나 죽을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수하는 가드의 듬직한 등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반쯤 열린 문 안으로 로한과 함께 들어갔다.

   

  외관도 화려했지만 안은 더 화려했다. 마블링이 들어간 하얀 대리석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 신코에 부딪치는 카펫은 툭툭, 발끝으로 건드려도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도 부드러운 카펫이 충격을 흡수할 것만 같았다.

   

  레드카펫은 저 끝에 있는 검은색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커다란 홀 안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그 끝에는 다이아몬드로 보이는 투명한 보석들이 가득 매달려 노란 불빛이 이리저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주변에도 저건 비싸 보인다 하는 화려한 장식품들이 가득해 수하는 검은색 문으로 다가가는 동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했다. 그런 수하의 모습이 작게 웃던 로한은 검은색 문에 멈춰 섰다. 커다란 홀 안과는 다르게 사람은 없었다. 꼭, 오늘은 초대장을 가져온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수하와 로한 앞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던 사람이 문에서 빠져나와 그들 앞에 서서 품 안에 있는 하얀 가면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R님.”

  “오늘 좋은 물건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꼭 만족하실 물건일 겁니다.”

   

  앞에 있는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로한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가면을 가져와 수하의 얼굴에 조심히 씌워 주었다. 로한은 수하의 얼굴에서 가면이 떨어지지 않게 끈을 머리 뒤로 넘겨 단단하게 묶어 주고는 자신도 얼굴에 가면을 묶어 썼다.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래.”

   

  남자는 몸을 다시 한번 숙여 인사하며 수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남자의 시선이 뱀처럼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남자를 한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던 수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정면을 보고 열려 있는 검은색 문 안으로 로한과 함께 들어갔다.

   

  문안에 들어오자 검은색의 실크로 된 커튼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로한이 손을 뻗어 눈앞을 가리는 커튼을 전부 치우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많은 자리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로한은 익숙한 것처럼 그곳에서 벗어나 한쪽 벽에 있는 작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수하는 커다란 무대 위에 붉은색 커튼이 한쪽으로 묶여 있는 부분을 쳐다보았다가 로한이 저 앞으로 걸어가는 것에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여기에 앉아서 경매에 참가할 거야.”

  “여기서요?”

   

  VIP룸처럼 눈앞에는 테라스와 같이 둥근 부분에 떨어지지 않게 작은 하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부분에 있는 화려하고 폭신거리는 의자가 보였다.

   

  “여기가 우리 지정석이야.”

  “지정석이요?”

   

  로한이 먼저 자리에 앉자 수하도 로한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명색이 후작 가문인데 설마, 경매장에 귀족들이 앉을 지정석이 없을까 봐?”

  “아… 경매장은 처음이라서…”

  “하긴, 경매장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네가 아파서 같이 못 갔으니까.”

   

  로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몸을 감싸는 쿠션은 부드러우면서도 기분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무슨 경매장이에요?”

   

  가장 궁금했던 것이기에 수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로한을 쳐다보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경매가 시작하면서 알게 되는 거였다. 하지만, 수하는 물건인지 사람인지가 궁금했기에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아. 경매장이라고만 말하고 무엇을 사는지는 말 안 해 줬지.”

   

  로한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마저도, 금세 둥글게 휘며 눈웃음을 지었다. 로한은 손을 뻗어 수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긴 한데. 이제 경매가 시작할 시간이라서 보는 게 더 빠를 것 같네.”

   

  로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홀 안은 짙은 어둠이 가득 내려앉았다. 그 순간 테라스 밑으로 보이는 커다란 무대 위로 환한 조명이 내려앉았다.

   

  “자! 밤의 경매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마이크로 말하는 것처럼 남자의 목소리가 웅웅, 경매장 안에 울렸다. 수하는 팔걸이를 손으로 붙잡고 환한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무대 중간에 틈이 생겨 심플한 붉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는 얼굴을 전부 검은색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자, 처음 순서는! 머나먼 땅! 팔아덴 나라에서 가지고 온! 물건입니다!”

   

  남자의 소리에 웅성거리던 소음이 쥐 죽은 듯이 사라졌다. 남자가 한걸음 물러나자 남자가 올라왔던 나무판이 움직여 아래로 들어갔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

   

  나무 의자에 온몸이 묶여 있는 남자의 근육질 몸이 수하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무엇을 파는지, 그게 물건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졌다. 로한의 말대로 경매가 시작하면서 나온 첫 ‘물건’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였다. 무대 위에 나온 남자는 정신을 잃은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사회자는 그런 남자의 등 뒤로 다가갔다. 남자에게 손을 뻗어 숙이고 있던 그의 턱을 거칠게 붙잡고 들어 올렸다.

   

  붉은색 머리가 뒤로 넘어가고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은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아 보였다. 하지만 몸만은 예술로 보였기에 수하는 입을 다물고 물건이 되어 버린 남자와 로한을 힐끔 쳐다보았다.

   

  “저것을 가지고 싶어?”

  “아…, 아뇨.”

  “처음 나오는 물건은 질이 별로 좋지는 않아. 중반부로 갈수록 좋은 것이 더 많으니까 기다릴래? 저 물건이 좋다면 지금 입찰해도 괜찮고.”

   

  로한은 상관없다는 것처럼 수하와 로한 사이 선반에 올려진 하얀색 판을 만지작거렸다. 수하는 로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반에 좋은 몸과 얼굴을 가질 사람들이 더욱더 나올 것 같았다. 밤의 경매장이 노예 경매장이라는 건 조금은 놀랐지만, 그렇다고 양심에 찔린다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왜? 게임이니까.

   

  “팔아덴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일을 하던 농부입니다! 이 몸을 보면, 힘쓰는 일은 잘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사회자는 남자의 턱을 붙잡고 있던 손을 떨어트리고 들고 있는 지팡이로 남자의 불룩한 가슴을 꾹 눌렀다. 그런 행동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던 사회자는 낡아 빠진 천 조각이 언제 찢겨 떨어질지 모르는 옷을 툭툭 건드렸다.

   

  “거기다, 물건도 크고 탐하죠.”

   

  허벅지를 살짝 가리던 천을 지팡이로 들어 올리자 천 아래 발기하지도 않았는데 두껍고 큰 성기가 드러났다. 멀리서 보는데도 큰 성기가 발기하면 얼마나 커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자! 입찰은 1골드부터 시작합니다!”

   

  1골드 10골드, 금액은 점점 올라갔다. 마지막 입찰자인, 저 밑에 덩치 있는 남자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하얀색 패널을 높게 들어 올렸다.

   

  “42골드 20실버! 42골드 40실버! 더 없습니까?”

   

  사회자는 주변을 둘러보고 더 이상 없는 입찰자에 세 번 더 42골드 20실버를 불렀다. 그래도 입찰자가 나오지 않자 근처에 있는 망치로 나무판을 탕탕, 두드리렷다.

   

  “73번 42골드 20실버에 입찰하셨습니다!”

   

  첫 번째 경매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이 나왔다가 입찰되어 팔려 나갔다. 수하는 그런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운 좋게 7777인지 77777번째의 행운 때문에 귀족이 되어서 이런 거지, 만약에 농부나 영지민이었다면. 지금 자신이 있을 위치는 이곳이 아니라 저곳이었을지도 몰랐다.

   

  안도하는 마음과 마지막에 나올 사람이 누굴까 하는 기대감이 뒤섞였다. 말없이 무대만을 쳐다보는 수하의 모습에 로한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가지고 싶은 물건은 없어?”

  “…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고 말하는 로한에 수하는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로한은 귀족이었다. 당연히 노예는 물건으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수하가 만약에 로한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귀족인 발레리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운이 나쁘게 물건 취급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어쩐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게임이라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자신이 되는 순간은 끔찍할 것 같았다. 수하는 이 순간 운이 좋게 7번의 행운을 얻어 귀족이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자! 이제 분위기는 뜨거워졌군요. 초반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자, 이제 다음 경매로 넘어가도록 하죠.”

   

  사회자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크게 내리쳤다. 시민이자 영지민이었을 수없이 많던 노예들은 저 밑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팔려 나갔다. 커다란 나무에서 올라오는 이번 사람은 처음과는 달랐다. 몸도 몸이지만, 얼굴도 잘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 아델 마을 남작가의 귀족이었으나, 이제는 몰락 귀족으로 내려간 물건입니다! 힘든 일이나 고생은 해 보지 못한 도련님이지만, 당연히 뒷구멍은 사용해 보지 않았죠. 자 입찰은 300골드부터 시작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패널을 꺼내 들며 골드를 부르짖었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수하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해 버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왜? 저게 마음에 들어?”

   

  수하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로한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수하를 쳐다보았다. 로한의 목소리에 수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기는 들었다. 쩍 벌어진 어깨부터 옷을 입은 것 같지도 않은 거적때기 한 장만 걸치고 있는 남자의 성기는 한눈에 보아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자는 뒷구멍을 사용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수하는 남자를 만약 사게 된다면 뒤가 아닌 앞을 사용할 거였다.

   

  “하지만….”

  “사고 싶으면 사면 돼. 말했잖아, 네 선물 사러 왔다고.”

   

  로한은 수하를 한번 쳐다보고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하얀색 패널을 들어 올렸다.

   

  “5백 골드! 5백 골드 나왔습니다! 1천 골드!”

   

  사회자가 말하는 금액은 빠르게 올라갔다. 침을 튀며 흥분감에 얼굴이 붉어진 사회자가 목을 긁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사회자의 모습과는 대비되게 로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하얀색 패널을 기계처럼 들어 올리기를 반복했다.

   

  “2천 2백 골드! 2천 4백 골드 있습니까?”

   

  로한이 패널을 가만히 들고 있기를 반복하기를 몇 분,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올라가던 골드가 점점 느려지더니 더는 금액이 올라가지 않았다. 사회자가 2천 2백 골드를 3번 부르고 나서야 손을 움직여 소리쳤다.

   

  “5번 자리에서 2천 2백 골드로 가져갑니다!”

   

  낙찰이 끝나고 나서야 로한은 들고 있던 하얀색 패널을 내려놓았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필요 없으면 나중에 노동을 시켜도 되니까, 상관은 없어.”

  “…음….”

  “그리고,”

   

  로한은 고개를 돌려 눈앞에 있는 수하를 한번 쳐다보며 웃었다.

   

  “형도 돈 많아.”

  “…….”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로한에 수하는 작게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싶은 건 말해, 아까도 말했지만 네 선물 사 오러 온 거니까.”

  “…고마워요. 형.”

  수하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로한은 그저 미소 지었다.

   

   

  [튜토리얼 (5) 늦은 밤 운명적인 만남.]

  [대상 1 컴벌리 로버트를 만났습니다.]

  《대상 1 : 컴벌리 로버트》

  『아델 나라 남작가의 장자였으나 단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컴벌리 로버트. 아델 나라 남작가의 장자였던 컴벌리 로버트. 그는 똑똑한 머리를 잘못 사용해 단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방탕하게 살았던 컴벌리 로버트를 노예로 사들였다. 당신은 로버트의 머리와 손기술을 사용해 즐거운 일상을 즐길 수 있다.』

   

   

  수하는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시선을 돌려 다시 무대를 바라보았다.

  무대의 열기는 점점 올라갔고 수없이 많은 노예가 올라왔다가 팔리기를 반복했다. 그 뒤에는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기에 수하는 지루한 얼굴로 무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루하지?”

  “아… 아니에요.”

   

  로한의 목소리에 수하의 두 눈이 잠시 커졌다가 반쯤 감으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이제 마지막 물건이 나올 거야.”

  “마지막 물건이요?”

  “피날레 같은 거지. 가장 좋은 물건이라서 이번에 나오는 게 마음에 들면 그걸 마지막으로 사서 돌아가면 될 것 같아.”

   

  로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하는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밤의 경매장의 마지막 물건입니다!”

   

  로한의 말이 맞았는지, 사회자는 과장되게 몸을 움직이며 한 바퀴 몸을 돌리더니 커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쿵쿵, 시끄러운 소리가 홀 안에 울렸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수하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을 뻗어 하얀색 울타리를 움켜쥐고 무대 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물건은 바로바로, 흔히 보지 못했던 엘프죠. 아름답고 힘이 강하기로 유명한 엘프를 이제 만나 봅시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놀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판타지 배경이기는 한지 엘프라는 말에 수하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흔히, 인터넷에서 엘프는 아름답다고 말을 한다. 기본적으로 몸매부터 외모까지 완벽한 엘프가 이곳에서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천막이 걷히자, 그 안에는 의자에 묶여 있는 남자가 보였다.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는 두 명의 건장한 남자에 의해서 의자가 무대 위로 끌려 나왔다.

  의자에 온몸이 묶여 있는 엘프의 모습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신비로운 머리색도 색이었지만, 하얀 피부와는 다르게 옷 같지 않은 거적때기 안에 숨겨진 근육은 뒤에 앉아 있는 로한의 몸과 비슷해 보였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의자에 앉아있던 로한도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에게 다가왔다.

   

  “엘프가 흔하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운이 좋았네.”

   

  로한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기절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엘프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수하의 시선이 엘프의 보석과도 같아 보이는 두 눈과 마주쳤다. 아니, 어쩌면 보지 않았으나 그 눈에 시선이 빼앗긴지도 몰랐다.

   

  튜토리얼 퀘스트, 늦은 밤 운명적인 만남 중 마지막 한 명은 저 엘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수하는 손을 들어 올려 엘프를 가리켰다.

   

  “형. 저 엘프, 가지고 싶어요.”

   

  화려하고 잘생긴 외모도, 온몸에 가득한 근육도. 어떤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앞에 샀던 컴벌리 로버트보다도 큰 성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수하의 말에 로한은 어깨를 작게 으쓱이고는 몸을 돌려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하얀색 패널을 들었다.

   

  “시작은 5천 골드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금액은 빠르게 올라갔다. 경매하는 동안 지금처럼 금액이 빠르게 올라간 적도 없었다. 뜨거운 열기에 수하는 몸을 작게 떨었다.

   

  “원래, 마지막 경매에 좋은 물건이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로한은 하얀 패널을 들어 올린 상태로 수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수하의 고개가 돌아가 로한을 바라보자 로한은 그런 수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한 달에 한 번, 어떨 때는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경매에서 가장 화려한 꽃은 마지막 물건이니까.”

  “…꽃.”

   

  확실히, 꽃처럼 화려한 외모일지도 몰랐다. 금액은 점점 올라갔다. 수없이 올라가는 금액에 하나둘,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패널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과 로한이 서로 패널을 들고 있었다.

   

  “1만 2천 골드, 1만 2천 골드 나왔습니다. 1만 3천 골드 있습니까?”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은 한 명이 하얀색 패널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 물가를 모르기에 저 금액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쉬이 적은 돈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밖에 없었다.

  수하는 나른하게 풀린 눈으로 의자에 묶인 상태로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을 쳐다보는 엘프를 내려다보았다.

   

  “5번 자리에서 1만 2천 골드로 가져갑니다! 오늘의 경매는 이걸로 끝났으니 다음번 경매에서 더 좋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상 2 : ???》

  『노예 상인인 판매자가 아델 마을에서 발레리 영지인 에레스트 산맥으로 들어오는 길에 다친 상태로 쓰러져 있는 ???를 발견했다. 피가 묻어 더러웠지만, 한눈에도 몸과 얼굴은 최상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를 데리고 마차에 태워 치료해 주었으나, 반항이 너무 심해 마력 제어 목걸이를 착용시키고 무거운 족쇄를 착용시켰다. ???는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은 ???의 힘과 외모를 이용해 즐거운 일상을 즐길 수 있다.』

   

   

  수하는 눈앞에 보이는 상태창을 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컴벌리 로버트와는 다르게 엘프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수하는 상태창을 보던 시선을 돌려 큰돈을 벌어들인 사회자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로한은 그런 사회자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려 테이블에 패널을 내려놓았다.

   

  “가자.”

  “…아.”

   

  엘프는 아직 무대에 있는데 가자고 말하는 로한에 수하의 몸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곧 몸을 돌려 로한의 등 뒤로 걸어갔다.

   

  “물건은 마차 앞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나가야지.”

   

  로한의 말을 들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하얀색 가면에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에 누구는 행복해하고 누구는 분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로한은 그런 것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 이곳으로 들어올 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수하가 그런 로한의 등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가자 입구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로한을 바라보았다.

   

  “오늘 만족스럽게 즐기셨나요?”

  “마지막 물건이 가장 만족스럽더군.”

  “다음번에도 R님이 만족할 만한 물건을 준비해 드릴게요.”

   

  직원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로한이 걸음을 옮겨 밖으로 걸어 나갔다. 수하는 그런 로한의 등 뒤로 따라 나가며 경매장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잔금은 안 치러도 되는 거예요?”

  “아. 산 물건에 대한 금액은 나중에 집으로 청구될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로한의 말도 맞았다. 그 큰 금액을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수하는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로한의 옆에 섰다. 경매장의 입구에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로한은 익숙하게 마차 문을 열고 수하에게 손을 뻗었다.

   

  “가자.”

   

  산 노예는 어떻게 된 건지. 이대로 가도 되는 건지 수하는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손을 뻗어 로한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 올라타 부드러운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로한 역시 마차에 올라타고 문을 닫았다.

  마부가 들을 수 있게 마차 벽을 쿵쿵, 때리자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건은 네 방에 있을 거야.”

  “…오늘 고마워요. 형.”

   

  로한이 같이 가자고 말한 것에 튜토리얼 퀘스트도 깼지만, 커다란 물건을 가진 남자 2명을 얻은 것이 가장 좋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마차에 기대고 있는 상태로 두 손을 모아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그 노예는 어떻게 사용할 거야?”

  “네?”

   

  어떻게 사용하는지 묻는 로한의 물음에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뒤는 형들이 알려 줬어도, 앞은 사용하지 못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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