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9)

17. 표현의 방법

회사 여기저기에서 공석이 생겨났다. 대부분은 대기발령 상태였지만 직원들은 그들이 이번 사건의 브리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며칠 동안 가라앉아 있었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맡은 업무가 바빴고 살아가는 것에 치여 다른 것은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해진 업무가 내려오고, 맡은 업무를 처리하면 그뿐인 샐러리맨들에게 벌어지지 않은 산업 스파이 건은 그저 사소한 일개 사건같이 지나갔다.

글로벌유니티와 나이브레티 사이에 있었던 정보 유출 사건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가십거리처럼 지나갔다. 삼삼오오 모여 엄청난 일이 터진 것처럼 이야기했던 것도 다음 날이 되자 금방 시들해졌다.

다만 UT 1팀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여러 말들이 오갔다. 대부분은 대표가 꾸려놓은 팀이라 연구소에서 실세를 틀어쥐리라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업무량을 논하면서 불퉁한 목소리들은 쑥 들어갔다.

회사는 다시 원래의 사이클을 찾아갔다. UT 1팀 옆으로 2, 3팀이 생겨나고 서해는 처음으로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늘 혼자 일하고 고민했던 일들은 함께하는 사람이 더해지면서 활기를 찾아갔다. 이곤은 서해에게 선임님은 지치지도 않느냐고 물었지만, 서해는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이 소중했다.

그러니까 요즘 서해의 불만은 딱 한 가지였다. 막상 사귀고 난 다음부터 좀처럼 한태경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비서실이 생겨난 뒤로는 그와 업무로 만나게 될 일이 없었고, UT 셀이 층을 옮겨가면서부터는 우연히라도 마주칠 일이 없게 되어버렸다.

카우치 아래에 쪼그리고 있던 서해의 입이 살짝 삐져나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노트북에는 서해가 꾹꾹 눌러쓴 논문 번역본이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조만간 학술지에 제출하면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모든 것이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욕심이 서해를 흔들었다. 웹 서핑 창에는 여러 학술지 사이트와 논문 검색본이 열려 있었지만, 서해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에는 엉뚱한 내용이 입력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사귄 뒤로 더 서먹해졌어요’까지 입력해 보다가 내용을 지웠다. 연인과의 일주일간 데이트 횟수, 정상적인 잠자리 횟수 등을 검색해 보던 서해의 시선이 한 엉터리 자랑 글에 꽂혔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달려드는 연인이 버겁다는 글이었다.

뒤로 가기를 눌렀다.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고민 상담 글이 가득했다. 종일 붙어 있었더니 질린다는 글부터 사귀고 난 뒤 잠자리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타이틀까지 여러 글이 보였다.

회원 가입을 요구하는 팝업에 가입까지 한 뒤 꼼꼼히 읽어본 서해의 표정이 단호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하나였다. 서먹해졌다고 분위기를 깨면 안 되고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해는 고개를 들어 계단 위 2층을 바라보았다. 짧고도 긴 여정을 지나온 한태경은 주말이 되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을 뿐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 디카페인 티를 내려온 한태경이 서해 옆에 앉았다. 이러다 다시 주말을 놓쳐버릴 것 같은 생각에 서해는 하던 일을 접고 2층의 화장실로 향했다. 선반에 놓여있는 팩을 뜯는 눈빛이 결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몇 주 만에 속을 비워내는 느낌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고 이상했다.

몸을 닦고 머리까지 말린 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롯이 휴식을 취한 얼굴이 다시 보기 좋게 변해 있었다. 아직 옅게 남아있는 멍 자국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서해는 손에 잡히는 검은색 드로어즈를 꺼내 입고 1층으로 향했다.

서해는 일부러 한태경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금방 씻고 나온 서해의 몸에서 보디 샴푸의 냄새가 났는데, 체향과 섞여 은은한 향이 피어올랐다. 한태경은 슬쩍 몸을 물리며 서해를 돌아보았다

“또 씻었어요?”

“그, 그냥요.”

“약은?”

“이제 먹으려고요.”

곧게 뻗은 다리가 카우치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한태경은 옆에 놓여있던 블랭킷을 들어 서해의 다리 위에 덮어두었다. 손끝 하나 닿지 않는 그 모습에 서운했다. 서해는 괜히 발끝을 세워 들었다 내리며 테이블 위만 바라보았다.

길고 곧은 손가락이 조그만 알약을 집어 서해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서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베어 물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혓바닥이 빠져나와 엄지와 검지를 훑고 지나갔다.

“한 컵 다 마셔요.”

급하게 물을 들이켠 서해가 머그잔을 내려놓고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없는 듯한 그와 시선을 맞추자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어깨가 말렸다. 무슨 신호를 어떻게 보내야 알아채 줄지를 고민하다가 입술을 베어 물었다. 조금 더 찾아볼걸.

가만히 서해를 지켜보던 그의 인상이 다시 찌푸려졌다. 천천히 올라온 손끝이 서해의 눈가를 쓸었다. 크고 따뜻한 손이 서해의 눈과 귓가를 덮자 목에서 앓는 소리가 올라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면 어쩌자는 거야.”

입술을 깨물고 어색하게 웃는 서해를 바라보는 한태경의 입에서 짧은 숨이 터져 나왔다. 잠시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는 카우치에 앉아있던 서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표님, 으악. 저 무거워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서해의 몸에 덮여있던 블랭킷이 계단 어딘가에 떨어져 내렸다. 팔과 다리를 감아 매달리자 엉덩이와 허벅지 아래를 받쳐 들고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기다린 품에 몸을 잔뜩 비비며 매달렸다. 2층까지 올라가는 길은 길지 않았다. 서해가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몸을 물려 뒤로 벗어나려던 한태경은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손에 그대로 침대 위에 손을 짚고 쓰러졌다.

서해는 뒤로 물러나려는 그의 티셔츠 끝을 꽉 잡아당겼다. 옷을 들어 올리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는 손길이 허리를 스쳤다 떨어질 때마다 한태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만.”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여러 이유를 고민해 보던 서해는 그와의 섹스가 늘 복도 끝 방에서 이루어졌던 걸 기억해 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준비하래.”

“여기서 하기 싫으시면 저쪽 방으로 가도….”

“그만하라고 했지.”

단호한 말투에 서해의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바빠서 그런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바쁜 일이 끝났는데 여전히 거리를 두는 한태경이 서운했다.

“대표님, 저 안 아파요. 그날은 조금 놀라서, 지금은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비켜요.”

“지난 주말에도 바빠서 안 계셨잖아요. 그전에도….”

서해는 한태경의 목 뒤로 손깍지를 끼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서늘한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별것 아니었지만 작게 세웠던 계획을 포기했다. 역시 평범한 연애와는 다른 관계에 있는 저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크게 도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키스 한 번만 해주세요. 그럼 비켜 드릴게요.”

“…….”

“사, 사귀는 사이에 이 정도는 얘기할 수 있잖아요. 대표님이 먼저 연애하자고 하셨잖아요. 사귀는 사람끼리 매일 키스한다는데 이번 주에 대표님 얼굴도 잘 못 봤잖아요.”

서해는 한태경의 얼굴이 가까워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붙였다가 떨어졌다. 원하던 키스는 아니었지만, 기어코 입술을 붙였다 떨어진 얼굴에 맑은 웃음이 걸렸다가 사라졌다.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던 침대였는데 몸이 포개져 있다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이상하고 간지러웠다.

서해의 머리 위에서 긴 한숨이 뱉어졌다. 정적이 이어지자 한태경의 목 뒤에 걸쳐있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어요. 대표님이 자꾸 피하시니까….”

급히 들어온 손이 서해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순식간에 엎드린 서해가 팔꿈치와 무릎을 세워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 뒤에서 어깨를 누르는 손길에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긴 손가락이 허리선부터 긁어내리다가 드로어즈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거리를 벌려두는 게 느껴지면 그러려니 하고 있을 것이지. 어디서 버릇없게 보채고.”

서해의 등 뒤에서 옷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티셔츠가 벗겨지는 소리, 바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 옷이 어딘가에 비벼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팔을 등 뒤로 뻗자 교차된 손목이 한 손으로 결박됐다. 손을 맞잡고 다정한 키스를 하려던 서해의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다. 순식간에 드로어즈 끝을 내리고 들어온 손이 엉덩이 사이를 쓰다듬었다.

“읏. 천, 천히. 윽.”

“애초에 그게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게 안 되는데 멀쩡한 척하고.”

“아… 흣.”

“생각해 주는 척하고.”

“으응….”

“뒤에서는 다른 생각 하고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한태경은 허리를 들고 쓰러져있는 서해의 드로어즈를 무릎까지 끌어 내렸다. 조명을 받은 매끄러운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펼치고 양쪽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어디 가서 다치고 온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 하아….”

“엉뚱한 사람 손길 묻히고 온 데 화가 나서.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여서, 엉망이 될 때까지 울게 만들고. 눈도 못 뜨게 만들어서.”

“아, 윽!”

갑자기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귀두가 바짝 붙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주름을 비집어 열려는 몸짓에 서해가 몸을 앞으로 물렸다. 건조한 구멍으로는 귀두 끄트머리조차 밀려들어 가지 않은 상태였다.

“내 흔적만 잔뜩 남기고, 못 일어서서 나에게만 의지하게 만들고, 나만 기다리게 하고 싶은데.”

“흐…. 대, 대표님.”

양쪽 치골을 잡고 금방이라도 끝까지 들이칠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잔뜩 건조한 주름이 열리지 않아 엉덩이에 있던 살이 꾹꾹 눌렸다.

억지로 서해의 몸을 열고 들어서려던 한태경이 뒤로 물러섰다. 이마를 덮은 채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엎드려있는 몸을 바로 눕혔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런데 이 눈만 보면.”

“조금만 천천히….”

“…젠장. 천천히가 아니라 그만하라고 해야지.”

“대표님.”

“마지막으로 하는 경고예요. 손 놔요.”

어설프게 걸친 드로어즈를 다시 올려주고 물러서려는데, 서해가 한태경의 어깨를 꽉 잡아왔다. 손을 뻗어 목 뒤로 깍지를 끼고 끌어당겼다.

서해의 얼굴 양옆으로 겨우 팔을 지탱한 한태경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서해의 손이 허리로 향했다.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입고 있던 드로어즈를 벗어 침대 아래에 내려두었다.

“저는 대표님이랑 있으면 제일 마음이 편해요.”

“…이게 기어코 사람 미치게 만드네.”

넓게 펼쳐진 손 아래로 턱이 잡혔다. 몸을 눌러 내리는 압력에 숨이 막혔다. 겨우 고개를 틀어 짧게 숨을 들이켜면 혓바닥이 옭아매듯 다시 입을 막아왔다. 숨이 차서 힘들어할 때면 틈틈이 시간을 주던 키스와는 달랐다.

품 안에 꼼짝없이 갇힌 서해의 얼굴은 숨이 통하지 않아 붉어졌다. 입술에 가득한 타액이 흘러내리기도 전에 다시 먹혀들었다. 얼굴 이곳저곳에 짧은 키스를 남겨주며 따라올 틈을 주던 것을 기대하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한태경은 서해의 등 뒤에 손을 밀어 넣고 그대로 안아 올렸다. 다리와 팔을 감아 떨어지지 않게 매달렸는데, 방 한쪽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엉덩이 아래를 받치고 있던 손가락이 세워지고 엉덩이 사이를 쓸어내렸다.

움찔하고 놀란 서해가 몸을 웅크렸다. 손가락이 주름진 곳을 벌리고 들어왔다. 아래쪽과 위쪽을 조급하게 쓸어내리는 열기에 눈을 감고 어깨에 매달렸다. 언젠가 집요하게 비벼져 엉망으로 쓰러져 내렸던 부분이 강제로 쿡쿡 문질러졌다. 갑자기 들이쳤다가 빠져나가는 손가락에 움찔거리며 다시 매달렸다.

“아, 으응…. 대표님, 천천히….”

“다른 사람이 남긴 흔적 여기저기 남긴 채 보챘으면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갑작스럽게 등이 벽에 달라붙고 어느 한 곳이 찔렸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아서 팔과 다리를 감아 온몸으로 매달렸다. 한동안 드나들지 않은 곳이었지만 내부를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치고 올라오는 몸짓에 다리가 꿈틀댔다.

숨조차 내쉴 수 없는 통증이 허리 뒤를 타고 올라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귓가에서 한태경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흐, 흐읏!”

예고 없는 삽입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분명 따뜻한 체온과 숨소리가 맞닿아 있었지만 전에 없이 급한 움직임에 서해는 덜컥 겁이 났다. 허리를 뒤틀어 속도를 조절하려던 서해는 등 뒤로 닿는 벽의 서늘한 감촉에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서해를 안고 벽으로 붙이고 있던 한태경이 일부러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갑자기 들이치려는 움직임에 긴장한 주름이 잔뜩 모여들었다.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 몸은 빠듯할 정도로 벌어지며 성기를 삼키려 끔벅거렸다.

“흐아, 윽….”

급하게 움직여 몇 번을 들이친 한태경이 억지로 열다시피 한 몸을 겹쳐 서해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고 내려가다가 허벅지를 잡고 힘으로 허리를 밀어 넣었다.

벽 앞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묶인 허리가 강제로 앞으로 끌어당겨짐과 동시에 가쁜 숨소리가 뱉어졌다. 아직 다 들어오지 못한 성기가 금방이라도 깊은 곳까지 들이칠 것 같았다. 서해는 위험한지도 모르고 목에 감고 있던 한쪽 손을 풀어 허리를 밀어냈다.

허공에서 벌어진 다리를 붙들고 있던 한태경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이를 세우고 쇄골 윗부분을 베어 물었다.

잇자국이 남을 만큼 강한 깨물림이 몇 차례 이어지자 서해의 몸이 더 뻣뻣하게 굳었다. 잠시 얼굴을 물린 한태경은 혓바닥으로 여기저기 남은 잇자국을 쓸어 올렸다.

“힘 빼.”

“흐읍….”

“실컷 사람 미치게 하더니, 힘 빼라니까.”

벽에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허벅지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축 처진 눈동자로 한태경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틀고 입술을 핥아왔다. 서해는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은 키스가 아쉬워 서둘러 입술을 벌리고 한쪽 다리를 허리에 감았다. 넓은 어깨를 끌어안은 팔이 소중한 것을 안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아! 흐읍, 윽.”

순간 등이 뒤로 밀려들어 갈 것 같은 몸짓과 함께 몇 차례 끊어 치는 한태경의 허리가 기어코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터져 나오는 뜨거운 숨결은 그대로 키스에 먹혀들어 가고 웅얼거리는 말도 그대로 입안에 남았다. 사정 봐주지 않는 삽입에도 얼마 들어서지 못한 것을 확인하는 한태경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걸 내가….”

서해가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자 한태경은 엉덩이 아래를 받쳐 들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찢고 들어오는 성기에 손과 발끝이 말려들어 갔다.

한동안 걸음 하지 않던 복도 끝 방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침대 위에 떨어진 서해는 긴장으로 굳어졌던 것도 잊은 채 짧게 떨어진 순간이 아쉬워 손을 위로 뻗어 올렸다. 붙잡힌 손등에 쪽 소리가 나게 키스한 한태경은 서해의 손바닥을 뺨에 붙이고 온기를 느꼈다.

가만히 한태경을 올려다보던 서해의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꼭 지금 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아, 하아…. 대표님.”

“왜.”

“…대표님, 좋아해요. 좋아해서 그랬어요. 같이 붙어있고 싶어서.”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에 담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서해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 같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떨리고 초조한 발가락 끝이 시트를 말아 쥐었다.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서해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한태경이 급하게 젤을 찾아 발랐다. 유난히 긴장한 것같이 굳어진 몸을 몇 차례 쓸어내렸다.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한 몸을 몇 번이나 움켜쥐었다가 놓아주었다. 손이 붙었다 떨어진 곳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다.

“연애하자고 한 뒤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쩐지 떨리는 것 같은 손길이 서해의 무릎 뒤를 잡아 몸을 반으로 접었다. 침실에서 급하게 있었던 삽입으로 생긴 열상 위에 시원한 젤이 발리자 따끔했다. 통증보다는 뒤에 이어질 말이 더 궁금했다.

“윽. 왜요?”

“연인들은 서로 아껴준다고 하길래.”

서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애써 숨을 골랐다. 손을 앞으로 내밀고 한태경의 어깨를 끌어안으려 했는데, 앞으로 쏟아지듯 몸으로 내리누른 한태경이 서해의 양쪽 손목을 머리 위로 잡아 눌렀다.

“어떻게 해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직 답을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흡, 으응….”

목덜미에 남은 잇자국 위를 혀로 쓸어 올리던 그는 입술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다. 화끈한 느낌이 목을 타고 팔과 가슴으로 퍼져나갔다. 한 손으로 손목을 결박하고 허리 가운데쯤 걸쳐진 티셔츠를 위로 끌어 올렸다.

“아! 흐읏….”

“…하아….”

땀에 젖은 몸이 바짝 붙고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다음, 그제야 급하게 밀어붙이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사실 더 밀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서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표정 없이 죽일 것처럼 밀어붙이던 사람은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도, 서해 씨 많이 좋아합니다. 내 손에 다칠까 봐 걱정할 정도로.”

서해의 귓가에 전에 없이 다정한 말이 흘러 내렸다. 삽입할 때면 느껴지던 아픔 같은 것도 느낄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서해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꽉 잡힌 손목을 풀어내고 한태경을 끌어안고 싶었는데 그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굴 여기저기에 따뜻한 키스가 내려앉았다. 서해는 꽉 잡힌 손목을 힘주어 빼내려다가 한태경의 손가락 끝을 겨우 걸쳐 잡았다. 꽉 들어찬 내벽이 성기를 훑어 내렸다가 아쉬운 듯 놓아주었다.

몇 차례 몸을 움직이자 긴장한 것처럼 굳어있던 주름이 천천히 벌어졌다. 엉덩이에 힘을 줬다 풀자 골반에서 찌르르한 느낌이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허리가 위로 들리고 그가 움직이는 것을 따라 허리를 흔들었다.

한태경은 천천히 뒤로 몸을 물렸다.

“아, 아흑.”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내가 헤집어줄 것 아닙니까.”

“흐, 앗, 아아….”

다리가 쭉 펴졌다가 한태경의 어깨에 걸려 접혔다. 둥글게 올라붙은 부분에서 잘게 문질러지던 귀두가 다시 빠르게 밀고 들어왔다.

서해는 등허리에서 떠날 줄 모르는 성감에 눈을 감고 이를 깨물었다. 순간 눈앞이 번쩍거리고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찾아왔다. 연달아 같은 지점을 쳐올리는 움직임에 바로 이어서 몸이 바르르 떨렸다.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으로 밀고 들어오는 성기가 배를 뚫고 나올 것 같다고 느낄 때였다. 갑자기 몸을 세운 한태경이 손바닥으로 서해의 배를 덮고 꾹 눌렀다. 손바닥 아래로 숨을 들이켰다 내쉴 때마다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대, 대표님….”

전기라도 통한 듯 튀어 오르던 몸이 강제로 눌렸다. 깊고 진득한 삽입이 집요하게 이어지자 성기 끝으로 투명한 액체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한태경은 배를 쓰다듬으며 서해의 성기 끝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참으면 배 아파.”

“이, 이거 싫… 흐윽.”

서해가 들이쉬는 숨이 어딘가에 턱턱 걸려들었다가 뱉어질 때는 짧게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유를 찾은 손이 서둘러 배 위를 덮고 있는 한태경의 팔목을 붙들었다. 빨갛게 변한 눈동자와 집요하게 파고들 것 같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얽혔다.

싫다는 말은 뱉어내다가 멈췄는데 금방 인상이 찌푸려지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움켜쥐고 있던 팔목에 힘을 빼자 귀두 끝에 붙어있던 엄지손가락이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하, 아으읍…. 흑.”

“엉덩이에 힘 빼고.”

“으응… 못 해, 못 하겠어요.”

허리를 굽히고 가슴을 바짝 붙인 한태경이 입술을 맞붙였다. 허리 옆으로 붙은 허벅지 안쪽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태경의 한쪽 손이 서해의 초커를 풀어낸 뒤 목을 감싸 쥐었다. 갑자기 들어온 손길에 놀란 목덜미가 잔뜩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팔뚝을 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서해의 목을 조이며 턱을 들어 올렸다. 애써 몸에 힘을 빼는 서해를 내려다보던 한태경은 목을 감아쥔 그대로 허리를 물리고 성기를 움켜쥐었다. 귀두 끝에 손이 닿자 경련하듯 몸을 떨던 서해가 두 발을 밀어 올려 위로 도망가려 했다. 목을 잡아 누르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허벅지 안쪽이 부르르 떨리고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몸에 달려있던 실이라도 끊어진 듯했다. 손가락이 몇 차례나 펴졌다 접히기를 반복했는데 온몸을 잡아 누르는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꽉 감긴 눈을 바라보던 한태경이 입술을 붙인 채 허리를 끝까지 물렸다.

“응, 착하지.”

“흐윽, 흐아아….”

“허리에 다리 감아봐.”

볼품없이 덜덜 떨리던 서해의 다리가 허리께에 비벼졌다. 잔뜩 녹아내린 몸은 빠져나가는 성기가 아쉬운 듯 조였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겨우 다리를 들어 등에 붙여놓자 뒤로 물렸던 허리가 단번에 끝까지 밀고 들어왔다. 끈적이는 소리와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등 뒤가 축축하게 젖은 것이 느껴져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한참을 목을 잡고 움직이던 한태경의 손이 떨어지자 눌러 참고 있던 기침이 발작적으로 터져 나왔다. 여전한 갈증에 그는 서해의 치골을 잡아 올렸다.

힘 조절 같은 건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한태경이 몇 차례나 허리를 쳐올렸다. 밀려 올라가던 서해의 머리가 침대 헤드에 부딪혔다.

“아, 하윽…. 대표님, 빠… 빨라요, 악.”

쑥 하고 끌려 내려간 몸은 뒤로 돌려졌다. 녹아내린 젤이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을 짧게 바라보고 다시 몸을 열고 들어섰다.

서해는 급하게 손을 뒤로 뻗어 움직임을 막아보려 했는데, 단호한 손길이 손목을 교차시켜 잡고 등 뒤를 눌러 내렸다. 내벽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퉁퉁 부은 느낌이었다.

“자세.”

차가운 목소리가 서해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무릎을 세우고 허리를 들어 올린 뒤 기다리고 있자 등 뒤에 잡혀있던 손목이 풀어졌다.

어지러움을 눌러 참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해달라고 보챘으면 넣어줄 마음이 생기게 잘 벌려. 손이라도 쓰든가.”

“흐, 흐으….”

서해는 덜덜 떨리는 팔을 뻗어 엉덩이 위로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올려두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손에 입술을 깨물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던 것과 달리 엉덩이 옆으로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불같은 손길이 내리붙었다. 벌어져 있던 주름이 다시 가득 모여들었다.

“윽!”

“다시.”

엉망인 머릿속과 달리 서해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엉덩이 위에 손을 올리고 좌우로 벌리는 손가락이 하얗게 변했다. 땀으로 젖은 손가락이 이리저리 미끄러졌다.

뒤에서 들어온 손가락이 고환을 타고 회음을 지나 벌어져 있는 엉덩이 사이를 쓰다듬었다. 몇 차례 손가락을 세워 훑는 감각에 팔을 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들어올 듯 말 듯 주위만 애태우는 손가락에 허리가 잘게 떨렸다. 잠시 한곳에 머무르던 손가락 두 개가 입구를 누르고 내벽 안을 헤집었다. 열상이 남은 입구는 따끔거렸지만 둥글게 휘어져 들어오는 손가락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뒤가 꽉 조이는 움직임에 손가락을 물렸다가 둥글게 부풀어 오른 곳을 쿡쿡 찔렀다. 그렇게 깊은 곳도 아니었다. 다만 맞춘 것처럼 손끝에 꼭 맞게 걸린 부분이 닿을 때마다 허리가 무너져 내렸다.

“…끊어먹겠네.”

“아….”

아래를 짧게 누르던 손가락이 빙글 돌아가고 손가락 끝이 어딘가를 뚫을 것처럼 문질렀다. 서해는 자세를 바로 하라고 일렀던 것도 잊고 한쪽으로 쓰러져 내렸다. 무의식적으로 성기를 잡은 손끝으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찰싹하는 소리가 들리고 엉덩이가 화끈해졌다. 등 뒤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왔다.

“앞이 아니라 뒤로 가야지.”

서해는 어지러운 시야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손바닥을 침대로 바짝 붙였다. 한쪽 다리가 들리고 손가락이 급하게 빠져나갔다. 침대 위에 머리를 비비다가 그대로 굳었다. 손가락이 빠져나간 자리 위로 발기해 있던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마치 제자리를 찾는 것 같은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엉덩이 사이에 연결된 부분이 벌름거리는 것이 머릿속에 울려댈 정도의 자극이 이어졌다. 힘없이 풀어진 몸이 잘게 떨리고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에 몸서리쳤다. 덜덜 떨리는 손이 그만하라는 듯 한태경의 허리를 밀어냈다.

“흡, 대표님.”

서해의 손목이 다시 등 뒤에서 잡혔다. 이를 꽉 깨물었지만, 사이로 소리가 그대로 새어 나왔다. 빠듯하게 물려있던 성기가 급히 움직임을 반복했다. 몸이 아래로 처박힐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아, 왜.”

“잠깐, 잠깐만요. 흐으윽.”

“뭘 잠깐만이야.”

“잠깐만….”

“어떻게 해줄까.”

“얼굴 보고….”

몸이 뒤집혔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숨을 몰아쉬었다. 옆으로 떨어져 있던 다리가 접혀 올라가고 땀에 젖은 몸이 미끄러지듯 맞붙었다.

아래로 내리뜨고 있던 서해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주시하던 한태경은 서해의 어깨 밑으로 팔을 밀어 넣고 서해가 밀려나지 않게 꽉 붙들었다.

얼굴을 맞대고 움직이자 맞닿은 배 앞으로 끈적한 정액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녹진하게 풀어졌던 내벽이 다시 조였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반으로 접혀서 흔들리는 몸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어지러움이 몸으로 쏟아졌다. 몸 안에서 길게 사정하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머리가 웅웅 울렸다.

벌어진 서해의 입술 위로 따뜻한 키스가 내려왔다. 몸을 가득 눌러오는 느낌은 여전히 따뜻하고, 편안했다. 떨리는 다리를 침대로 내리고 어색하게 허공에 멈춰 섰던 손을 어깨에 올렸다. 기대하던 따뜻한 손길을 느끼던 서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귓가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눈가를 쓸어주는 손길이 한없이 다정했다. 잠들기 직전의 몸이 짧게 경련하듯 떨렸다. 서해가 선잠에 들 때면 몸이 떨리는 것을 알고 있던 한태경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안 돼. 이건 바닐라 섹스잖아.”

“…으응….”

서해는 목덜미를 훑는 입술을 느끼고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관자놀이 부근에 남아있던 멍 자국 위에 입술을 붙이는 그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미세하게 남은 자국 위로 입술이 떨어졌다.

욱신거리는 느낌에 잠이 확 달아난 서해가 발을 밀어 올려 옆으로 벗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태경은 손을 뻗어 서해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어디 가, 이제 시작인데.”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앞으로 보채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알려줄 테니까 잘 배우고 갑시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태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끄러워진 서해가 몸을 웅크렸다. 늘 단정한 슈트 안에 숨어있던 단단한 어깨와 허리 그리고 엉덩이 위에 쏙 들어간 보조개가 보였다.

선반 위에 놓인 박스를 내리느라 등 근육이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린 한태경과 눈이 마주쳤다. 서해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몸을 움직이자 아직 부풀어있던 내벽이 스치며 찌릿한 감각이 타고 올라왔다. 분명 조금 전 사정을 마친 그였는데 다시 아랫배 위로 달아오른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도드라진 굵은 핏줄 아래로 굵고 단단하게 부풀어진 기둥이 보였다. 괜히 엉덩이 사이가 더 따끔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해는 눈을 꾹 감았다.

베드 테이블 옆으로는 작은 박스가 놓였다. 고개만 들어 올려 박스로 시선을 쫓던 서해는 출렁이는 침대에 걸터앉은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선반에서 로프와 수갑을 가져온 그는 서해의 눈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고르세요.”

로프보다 가죽 수갑의 부드러움을 선호했던 서해가 몸을 웅크린 채 수갑 끝을 잡았다. 짧게 연결된 체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두 개의 수갑이 딸려왔다.

손가락에 걸친 수갑을 가져간 한태경이 서해의 한쪽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서해는 순순히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잘했는데, 이번엔 그쪽이 아니라.”

모로 누워있던 몸이 반듯하게 눕혀지고 오른쪽 무릎이 접혀 세워졌다. 허리까지 바짝 접힌 오른쪽 발목이 오른쪽 손목과 연결됐다. 그리고 연달아 왼쪽 발목과 왼쪽 손목이 연결됐다. 손을 짚어 일어나려다가 고개만 겨우 들어 올렸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한태경은 서해의 몸을 가슴 앞으로 끌어 올렸다. 맞닿은 등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보다 활짝 벌리고 앉은 몸 앞에서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겨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그는 눈가에 짧게 키스하고 떨어졌다.

손에는 베드 테이블 옆에 놓여있던 작은 박스가 들려있었다. 상자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얇은 막대가 여럿 들어있었다. 매끈한 모양, 작은 돌기가 붙어있는 모양, 나선형 모양의 금속 막대가 보였다.

서해는 나선형 모양의 금속 막대가 한태경의 손가락 끝에 걸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처음이니까 얇은 거로 해줄게요. 움직이면 다치니까 가만있어요.”

귀두 끝에 카테터가 달라붙는 순간 진정됐던 가슴팍이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손바닥을 펴고 고환을 들어 올려 안쪽을 살짝 문지르자 눈치 없이 금방 고개를 든 성기가 보였다. 서해는 눈을 감고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안….”

귀두 끝의 벌어진 틈으로 젤이 문질러졌다. 얼마 되지 않는 틈으로 젤을 최대한 많이 발라 넣는 손가락과 성기가 얽혀들어 쩍쩍 달라붙는 소리가 울렸다.

틈 사이를 비집고 카테터가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의 공포감이 찾아왔다.

손을 뻗어 저지하려던 서해는 발목에 묶여 꼼짝하지 않는 손을 바라보았다. 눈앞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단단한 가슴 위로 몇 차례나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다리 사이로 젤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무릎을 모으고 버티는 서해의 다리 사이로 커다란 손이 들어와 한쪽 다리를 옆으로 눌러 내렸다. 한태경은 손바닥으로 귀두를 받치듯 감싸 쥐고 천천히 카테터를 밀어 넣었다.

“흡, 윽…. 아, 안 들어가…. 대표님.”

젤을 발랐지만 따끔함이 느껴지자 허리가 한쪽으로 튀어 올랐다. 한태경은 팔로 서해의 허리 근처를 눌러 내리듯 끌어안았다. 다시 침대 위로 주저앉혀진 서해는 좌우로 벌어져 있는 다리를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대표님, 아…. 흑….”

눈앞이 잔뜩 흐려졌다. 흐릿하게 보이는 서해의 시야 앞으로 기다란 손가락이 천천히 카테터를 돌려 넣는 것이 보였다.

절반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숨이 헉하고 뒤로 넘어갔다.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이 턱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던 한태경은 고개를 돌려 뺨에 입술을 붙였다.

“흐으, 흡….”

“괜찮아요. 아픈 거 아닙니다.”

잔뜩 가빠진 숨을 고르고 흐릿한 눈을 감았다. 자유롭지 못한 손으로 침대를 내려 짚자 겨우 닿을 것 같은 곳에서 한태경의 무릎이 손끝에 닿았다. 서해는 한쪽 다리를 옆으로 밀어 손으로 무릎 뒤편에 손가락을 붙였다.

천천히 회전해서 들어가던 카테터가 어딘가에 쿡 찔렸다. 그가 허리를 누르지 않고 있었다면 다시 크게 들썩였을 허리가 한쪽으로 틀어졌다.

잠시 밀어 넣던 손을 멈춘 한태경은 서해의 눈가에 입술을 붙이고 남은 부분을 끝까지 넣었다.

“흐아, 앗….”

“잘 먹는데.”

서해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렸다. 귀두 끝에 남겨진 물방울 장식 부분이 볼록하게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잘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적응할 틈도 없이 몸이 앞으로 밀려났다. 근육이 긴장할 때마다 카테터 끝이 볼록하게 솟은 내벽의 한 곳을 쿡쿡 찔렀다.

“아, 흐윽!”

팔과 다리를 타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서해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양쪽 무릎을 붙이고 웅크렸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데, 무릎 사이로 손이 들어오고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어깨가 침대 위로 박히고 무릎으로 겨우 허리를 들어 세웠다.

눈앞에 놓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미친 듯이 뛰어대던 심장이 조금은 진정됐다.

따끔함이 의식되어 배에 힘을 줄 때마다 허리 부근이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치골까지 엉겨 붙는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서해도 익히 알고 있는 성감이었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아으, 읏… 아, 대표님. 으응….”

한참 동안 다가오지 않는 한태경을 부르자 잔뜩 젖은 엉덩이 사이로 굵어진 귀두가 문질러졌다. 한차례 섹스 후 벌어진 주름 위를 천천히 오가는 움직임에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졌다. 천천히 머리를 밀고 들어서는 침입자에 주름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한태경은 안으로 엉겨 붙는 내벽을 따라 올라가다가 멈춰 섰다. 긴장한 내벽 안쪽이 굳어있었다. 엉덩이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쓰다듬자 침대 위에 쓰러져있던 서해의 발가락 끝이 펴졌다 오므라들었다.

내벽의 긴장이 풀릴 때까지 얕은 추삽질을 반복했다. 성기 끝이 몇 차례 둥근 표면을 오가자 손가락과 발가락이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귀여운 움직임에 괜히 같은 곳을 반복해 찔렀다.

아랫배를 두드려 맞은 것같이 얼얼한 느낌이 단번에 머리까지 치달았다. 서해는 침대에 이마를 비비며 입술을 깨물었다. 빳빳하게 선 성기에 꽂힌 카테터 틈으로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턱이 덜덜 떨리고 꼬리뼈 부근에 전기가 통한 것 같았다. 묶여있던 손가락이 활짝 펴졌다가 침대 위로 내려왔다.

“앗, 아! 흐으윽.”

천천히 드나들던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더니 꽉 닫힌 부분을 단번에 열어젖혔다. 둥글게 말린 서해의 몸이 덜덜 떨렸다. 등 뒤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하아…. 허리 더 들어.”

서해가 허리를 들자마자 몸이 앞으로 밀려 나갔다. 젤 때문에 입구가 끈적하게 맞붙는 소리와 엉덩이와 배가 부딪치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푹 들어와 내벽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서해의 입에서 짧은 숨이 뱉어졌다. 성기가 빠져나갈 때마다 딸려 나갔다가 들어오는 내벽이 주는 아찔함에 엉덩이 근육이 경련하듯 떨렸다.

사정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서해는 빨갛게 짓무르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성기 끝에 빼꼼히 나와 있는 카테터 장식만 바라보았다. 주르륵 흘러내린 투명한 액체가 장식 끝에 방울졌다. 손이 자유로웠다면 앞뒤 없이 빼내고 흔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는 것도 모르고 베개에 얼굴을 가득 묻었다.

“대표님… 흑.”

서해의 양쪽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던 한태경이 손을 뻗어 서해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바르르 떨리는 살갗이 부드러워 양쪽 허벅지를 말아 쥐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 바뀐 자세에 긴장한 내벽이 가득 조여들었다.

“그, 그만, 으응… 아!”

“좋으니까 더 해달라는 게 아니고?”

“흐, 흐악…. 읏.”

“하고 싶었던, 섹스 실컷 하는데, 협조를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으윽, 아, 아아….”

몸이 어딘가에 둥둥 뜬 느낌이었다. 배 속에 멍 자국을 새길 것같이 퍽퍽 쳐올리는 움직임에 콧잔등을 타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앞뒤로 꾹꾹 눌리는 전립선에 머릿속이 녹아내렸다.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세이프 워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망설이던 서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 허리를 타고 쾌감이 뚝뚝 떨어졌다.

“아아, 아… 으응. 떨어… 떨어질 것 같아.”

“어디로 떨어진다는 겁니까.”

툭툭 끊어 치던 한태경이 서해의 잠긴 목소리를 듣고 허리를 물린 뒤 웃었다. 어깨로 침대 위에서 버티는 것을 내려다보던 그는 서해의 한쪽 얼굴이 마찰로 벌써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 혀를 찼다.

허공에 들려 잘게 떨리는 다리를 내려놓고 서해의 등 위로 몸을 겹쳐 안았다. 몸을 둥글게 말고 긴장해서 솟아오른 날개뼈를 이를 세워 깨물자 내벽이 다시 꽉꽉 조여들었다.

“…하아….”

“그, 만….”

“오래 하고 있으면 안 되니까 금방 빼주겠습니다.”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뒤에 붙어있는 허리는 여전히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성기를 내려다보다가 몇 차례나 더 내벽의 부풀어 오른 곳을 스치듯 문질렀다. 아래에서는 목 아래에서 억눌린 신음이 짧게 끊어졌다.

한태경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척추뼈를 타고 올라가 목덜미 뒤를 깨물었다. 몇 번 지나지 않아 목덜미에 남은 잇자국을 혀로 쓸어 올리던 한태경은 아래에서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서해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로 울음소리가 뚝뚝 떨어졌다.

성기 밑동을 꽉 잡은 손바닥을 펴고 귀두 아래까지 한 손에 감싸 쥐고 쓸어 올렸다.

“아! 하으윽, 흣….”

머리가 울리고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야가 알 수 없는 무늬로 점멸하고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대로 영영 눈을 뜰 수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을 불안하게 헤집었다. 한태경이 알려줬던 세이프 워드가 눈앞에 그려진 것처럼 강렬하게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얘기해도 될지 상황을 살피는데 다리가 다시 벌어졌다. 까무룩 넘어가려는 정신을 겨우 이어 잡았다. 엉덩이를 벌리고 들어오는 움직임에 맞춰 귀두 끝에 예민한 부분이 잔뜩 문질러졌다. 배 속이 엉망으로 엉키는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아, 윽, 빼주세요. 흑….”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구분이 어려웠다. 몸 전체가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쾌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대로 머릿속이 녹아내릴 것 같은 생각에 덜컥 무서워졌다.

허리를 끝까지 물렸던 한태경은 성기 아랫부분을 잡고 있던 손으로 아래를 슬쩍 쓸어 올렸다. 카테터 끝에 방울진 묽은 액체가 한태경의 손가락 끝에 고여 들었다.

“흐, 아악, 안, 아… 가고 싶어….”

“하아….”

“잘못했어요, 흐윽.”

울음 섞인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순간 한태경은 엉망으로 젖은 몸을 바짝 붙이고 퍽 소리가 날 때까지 허리를 붙였다. 몸에 힘이라고는 남아있지 않던 서해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다시 허벅지를 쥐고 억지로 각도를 맞춘 한태경이 깊게 들이쳤다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비틀리듯 열린 몸 때문에 순간 지나간 통증 위로 저릿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깊숙이 박힌 카데터 끝부분을 스쳤다 지나가는 성난 기둥에 엎드린 채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한 번도 들어온 적 없었던 곳까지 망설임 없이 들어서는 몸에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귓가에 숨소리만 가득 들리다가, 윙- 하는 이명과 함께 간지럽던 치골과 아랫배에 서늘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 찾아왔다. 숨을 제대로 쉬기도 어려웠다.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서해는 입속에 고여 망설이던 말을 힘겹게 뱉어냈다.

“흐아아, 윽, 흐읍. 읏…. 비가 올….”

등 뒤에서 천천히 꿈틀거리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몸을 괴롭게 만들 만큼의 움직임은 멈췄지만 정적이 무서웠다.

콧잔등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절정에 다다른 몸은 혼자서 움찔거렸다. 눈치 없이 카테터 장식 위로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을 꾹 감고 기다리는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죄, 죄송해요…. 너무… 읏.”

엄지와 검지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전립선액을 확인한 한태경이 서해의 등으로 가슴을 바짝 붙였다. 그는 서해의 귓불을 깨물고 중얼거렸다.

“…뺄 때는 조금 아픈데.”

“아픈 거 싫, 흐….”

침대에 엎드린 서해의 귀두 끝으로 나와 있던 카테터 장식이 한태경의 손끝에 걸렸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운 그가 느린 속도로 삽입을 반복했다.

머릿속이 녹을 것 같은 달콤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따끔한 정도를 넘어선 통증이 아랫배를 가득 긁어왔다. 가만히 웅크려있던 서해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다. 몸을 앞으로 밀고 나가려던 서해는 발목에 결박된 손목을 불안한 듯 크게 잡아당겼다.

“대, 대표님, 아, 아…. 흡!”

손톱을 세우고 긁는 듯한 통증이 치골로 퍼져나갔다. 성기 밑동이 부드럽게 잡히고 반대로 돌려 나오는 카테터는 겨우 조금 밀려나 있었다.

묶여있던 손이 급히 당겨지고 체인이 팽팽해지는 소리가 울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생각나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흐, 흐읍…. 흣, 아파…. 아파요…. 하지 마.”

“금방 빼줄 테니까 움직이지 말고.”

“으, 윽. 흐윽!”

한태경이 손을 앞으로 뻗어 서해의 성기와 카테터 끝을 손가락으로 얽어 잡았다. 천천히 돌려서 빠져나올 때마다 굳어진 몸이 뒤로 밀려와 사정하듯 비볐다 떨어졌다.

귀두 밖으로 카테터가 빠져나오고 손으로 성기 끝을 쓸어 올리자 한참 막혀있던 정액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몸 전체가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으, 응…. 아!”

사정하는 동안 달게 달라붙는 내벽에 들어서 있던 성기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귀두 끝이 크게 움찔거렸다. 한태경은 허리를 뒤로 물리고 성기를 빼냈다가 서해의 다리 사이에 바짝 붙였다. 허벅지 안쪽을 타고 길게 불투명한 액체가 쏘아졌다.

서해의 등 뒤로 따뜻한 손이 훑고 지나갔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숨을 뱉어내기만을 반복했다. 발목에 묶여있던 체인이 사라지고 구석구석 살피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피부 곳곳에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다. 저도 모르게 발버둥 친 손목과 발목에 남은 붉은 자국과, 한태경이 충동을 참지 못하고 물어뜯은 자국이 어깨에 붉게 자리했다.

손바닥을 맞잡고 아랫입술을 베어 무는 것에서 순식간에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서해는 한동안 묶여 뻣뻣하게 굳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한태경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목 안으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등과 허리를 토닥이는 손길에 속절없이 눈물이 터졌다.

점멸하는 시야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인영을 보며 서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짜릿한 절정이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를 애타게 더듬었다.

맞잡은 손으로 온기를 전하고 마음을 나누는 연인의 손길은 따뜻하고 다정했으나 아슬아슬할 만큼의 쾌락을 선사하는 주인으로서의 손길은 여전히 무섭고 단호했다. 조르고 졸라 얻어낸 섹스로 서해는 제 연인과 사랑을 나눌 때만큼은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죄송해요….”

“죄송하다니, 어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연인한테 누가 그런 말을 써요.”

“그래도, 갑자기 세이프 워드 쓰는 바람에….”

“쓰라고 만든 겁니다. 잘했어요.”

모든 것이 끝난 뒤, 벌어진 뒤를 손으로 눌러 닫는 손길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서해는 몸을 포개고 다리를 감아오는 한태경의 어깨를 가득 끌어안았다.

틈 없이 맞닿은 몸의 온기를 느끼며 이 방에 들어온 첫날에 그가 설명했던 말을 더듬었다. 주도권.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런 섹스를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밀려와 오롯이 한태경에게 집중했다.

잔뜩 짓무른 눈가 위로 입술이 포개졌다. 눈꺼풀이 따끔따끔했다. 고개를 들자 한태경의 얼굴이 서해의 눈에 들어왔다.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좋아 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둘째손가락으로 입가를 살짝 눌렀다 뗐다. 일자로 굳게 닫혀있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서로의 가벼운 웃음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직 손가락 까딱할 힘이 남아있나 보네.”

“…대표님.”

“가까이 오세요. 안아줄 테니까.”

침대에 누운 한태경은 한쪽 팔을 쭉 뻗고 누웠다. 어깨 위로 머리가 올라오는 것을 본 뒤, 팔을 뻗어 서해를 품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잘게 떨리는 몸을 보듬어주고 쓰다듬어 주자 서해가 편히 자리 잡는 것이 느껴졌다.

들이쉬고 내쉬는 서로의 숨이 교차하고 달뜬 숨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아무 말 없이 내어주는 품은 미치도록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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