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9)

11. 휴가 (2)

서해는 그대로 카우치에 기절한 것처럼 모로 누워있었다.

카우치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품에 내려둔 서해를 내려다보고 있던 한태경이 손을 뻗었다. 엉망으로 붙어있던 머리카락을 조금씩 떼어 이마 위로 넘겨주었다. 눈가를 가리던 것이 사라지자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에 서해의 눈꺼풀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손을 뻗어 서해의 눈가를 가려주던 그가 카우치 테이블에서 조명을 약하게 조절했다. 벽 한쪽에 붙어있는 간접 조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명이 약해졌다. 카우치 테이블에 팔꿈치를 걸치고 비스듬히 내려와 누웠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서해의 뺨을 건드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오랜 시간 물고 빨려 부어있었다. 입을 벌리고 쌕쌕거리며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등 뒤의 온기를 찾는 서해가 한태경에게 붙어왔다.

따뜻한 몸을 끌어안고 담요를 덮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흠칫 놀라 경련하듯 품에서 떨리는 서해의 어깨와 팔을 쓸어내렸다.

서해가 팔을 앞으로 뻗어 카우치를 급하게 잡자 그 위로 따스한 팔과 손등이 겹쳐졌다.

“괜찮아요?”

“…아.”

가끔 나오던 잠버릇이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이나 잠들기 직전,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거나 짧게 경련하는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었다. 혼자 이겨내기에는 짧고도 길게 체감되었던 시간이었는데. 등 뒤에서 감싸 안아주는 손길 덕에 금방 깨어났다.

서해는 정신을 차리자 버둥거리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꿈꿨습니까.”

“잠시, 흠. 잠시 놀라서.”

서해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목에 힘을 빼고 속삭이듯 말을 이어가자 손이 잡힌 채 그대로 품 안에 당겨 들어갔다.

서해는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호텔 룸 안은 이미 어두워져 작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머리가 몽롱했다.

“서해 씨.”

“네, …주인님.”

서해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서해의 호텔 룸 창에 카우치에 얽히듯 누워있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 창가에 비친 한태경은 서해를 품에 가득 안고 있었다.

“아픈 데는 없습니까.”

한태경이 서해의 머리 위에 턱을 붙인 채로 질문했다. 서해는 팔과 손등을 얽듯이 잡고 있는 그의 손끝을 잡아 목덜미까지 끌어당겼다.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였다.

“조금 쓰리긴 한데,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는 않아요.”

서해의 목 바로 아래까지 덮여있던 담요가 내려갔다. 한태경의 손가락이 목을 감쌀 듯 다가오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서해는 다급하게 팔뚝을 잡았다. 한태경은 얼마간 쇄골을 더듬다가 손에서 힘을 빼고 떨어져 나갔다.

“아, 잠시만요. 만지면….”

“알겠습니다. 약 발라줄 테니까 바르고 자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 있을 겁니다.”

등 뒤에서 서해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한태경의 입술이 뒷덜미에 닿았다. 한태경이 다시 서해의 목덜미를 빨아올리기 시작했다. 서해는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두 팔을 꽉 끌어안았다.

“아, 읏.”

“다 씹어 삼켰으면 좋겠네.”

“으응….”

쭉 뻗어 옆으로 내밀어진 서해의 손끝에 테이블이 닿았다. 목 뒤에 입술을 붙인 채로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목선을 따라 올라오는 집요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서해는 목을 앞으로 구부리고 눈을 감았다. 어깨선과 팔에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흐… 주인님, 목에 자국, 아.”

“지난번 자국이 다 사라졌네요.”

서해는 무릎을 당겨 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여전히 목 뒤에 달라붙은 한태경은 떨어질 줄 몰랐다. 뜨거운 혓바닥이 목 뒤에 튀어나와 있던 뼈를 핥아 올렸다. 그러다가 입술을 벌려 붙이고 빨아 올렸다.

“으… 아, 안 돼.”

“안 돼는 무슨, 감사하다고 해야지.”

귀 뒤에 코를 바짝 붙인 한태경이 혀를 내밀어 간질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서해는 짧은 숨을 내뱉었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팔을 잡으며 고개를 비틀었다. 그러자 다시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그가 막대 사탕이라도 빨아먹는 것처럼 서해를 핥아 올렸다.

달아오른 목 뒤가 뜨끈했다. 몇 차례 얕은 프렌치 키스를 남긴 한태경은 셔츠가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부분에 짙은 키스 마크를 남겼다.

서해가 손으로 급히 목덜미를 막았다. 그러자 이번엔 손가락 위에 키스가 잔뜩 내려왔다.

“아, 주인님. 목에는, 제발…….”

“손 떼요.”

“누가 볼, 누가 봐요.”

“보라고 하는 겁니다. 주인이 있는지도 모르고 누가 데려갈까 봐. 지난번처럼 남기지 않을 테니까 손 떼요.”

한태경은 목덜미와 튀어나온 목뼈를 반복적으로 빨아올렸다. 서해는 마치 온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에 몸서리쳤다. 목덜미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슴 앞쪽이 다시 찌릿해져 몸을 움찔거렸다.

서해는 입술을 깨물고 몸을 돌려 한태경과 마주 보고 누웠다. 한태경은 깨물린 서해의 입술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얼굴 위로 손을 들어 올려 쓰다듬었다.

귓가에 걸쳐진 손가락, 뺨을 가득 덮은 커다란 손 아래로 꼼짝 않고 시선을 마주하는 서해가 보였다. 꼬물거리며 위로 올라온 서해의 얼굴이 점점 한태경의 얼굴로 기울어졌다.

“입 벌리고 혀 내밀어봐요.”

통통하게 부은 입술이 벌어지고 서해의 혓바닥이 아랫입술 위로 빼꼼히 올라왔다. 마주 보던 시선을 피하고 아래로 눈을 내리깐 서해의 속눈썹이 그늘져 눈을 덮고 있었다. 코끝이 부딪치고 얼굴이 맞닿았다.

한태경은 서해의 혓바닥을 가득 베어 물고 입술을 겹쳤다. 한참 동안 몸을 쓸어내리며 키스하던 그가 점점 몸을 기울였다. 서해를 카우치 위에 당겨 눕히고 팔꿈치를 세워 위에서 내려다봤다.

이대로 다시 잡아먹히는 것은 아닐까. 서해는 손을 들어 올려 한태경의 어깨를 밀어냈다. 예상은 했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오히려 몸을 덮어 누르며 내려와 서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저희 여기서 3일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응.”

다급하게 말하는 서해의 목소리를 들은 한태경의 입에서 소소한 웃음이 터졌다. 영문 모를 웃음에 그를 멈춰 세우려고 꺼낸 대화를 멈추었다.

목덜미 근처에 묻혀있던 한태경에게서 다시 낮게 울리는 웃음기가 느껴졌다.

“…….”

“그래서 콘돔이랑 이것저것 잔뜩 챙겨왔는데.”

“그러니까… 오, 오늘만 하실 거 아니잖아요.”

목을 타고 내려간 입술이 밖으로 이가 세워져 쇄골을 물었다가 사라졌다. 서해는 다급히 한태경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저녁! 아직 못 먹었어요. 여기 테이블에 세팅해 주셨는데. 앗, 따가…. 윽.”

급하게 끌어안는 바람에 세게 부딪힌 유두가 쓸렸다. 몸을 웅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한태경이 급히 몸을 물리고 일어섰다. 담요가 허리 아래로 흘러내렸고 서해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끄러움을 느낄 틈도 없이 찡- 하고 올라오는 통증에 발끝을 오므렸다. 손으로 덮어 누르려다가 애꿎은 근처를 눌러 문질렀다. 앓는 소리가 끙끙 흘러나왔다.

“봅시다.”

“괘, 괜찮아요.”

괜히 아프다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려다가 실패했다. 가슴을 누르던 손이 둘째손가락을 쭉 뻗어 한쪽 유륜을 잡아당기자 빨갛게 부어오른 유두와 유륜 사이의 피부에 생긴 생채기가 보였다.

“아, 파… 당기지 마세요, 흡.”

“약 가져올 테니까, 잠시 누워서 기다려요.”

이마에 키스를 내려준 한태경은 허리에 큰 타월을 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서해는 몸을 웅크리고 발끝으로 밀려난 담요를 당겨 올렸다. 이불을 감고 카우치 등받이 쪽으로 몸을 물리자 조금 전까지 한태경이 누워있던 온기가 느껴졌다.

피부에 닿지 않게 어깨를 말고 눈을 깜박거렸다. 건드리지 않으니 따끔거림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금세 약을 가져온 한태경이 서해의 옆에 앉아 밴드와 연고를 꺼내 들었다.

“내려봐요.”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한태경은 작은 솜을 꺼내 소독용 알코올을 듬뿍 묻힌 뒤 서해를 바라보았다.

“내려요.”

“흐….”

서해는 가슴 아래로 담요를 천천히 끌어 내렸다.

주위에 배회하고 있던 서해의 손을 가지런하게 내려준 한태경이 예고 없이 유륜 위에 솜을 덮고 꾹꾹 눌러 닦았다.

서해는 한태경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다시 반대쪽에 똑같은 행동이 이어졌다. 시차를 두고 따끔한 정도를 넘어선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들었다.

“흡, 아!”

“많이 까졌네. 앞으로 이런 건 바로 말해요. 나는 모르고 있다가 여기에 또 클립 꽂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습니까.”

“…….”

“대답.”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아서, 참으려고… 앗.”

서해의 이마에 가벼운 꿀밤이 내려왔다.

“나는 서브가 다치는 걸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섹스 끝나고 아픈 데 있으면 얘기해요.”

“네, 주인님….”

“이제 따가운 건 없을 테니까 약 바릅시다.”

한태경은 연고 뚜껑을 열고 손가락 끝에 반투명한 연고를 가득 짜냈다. 스치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양쪽에 연고를 듬뿍 올려놓고 방수 밴드를 붙여주었다.

서해는 엉덩이가 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 앉았다. 머리 위로 헐렁한 티셔츠가 입혀지고 팔다리가 쑥 빠져나왔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 누가 먹습니까.”

서해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방울토마토를 집어 먹었다. 입속에 먹을 것이 들어오자 그때야 저녁을 먹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상큼하게 터지는 토마토즙을 삼키자 배고픔이 밀려왔다.

“…먹을 걸 잔뜩 깔아놨는데 처음 집어먹는 게 고작 방울토마토입니까.”

“이거 맛있어요. 대표님도 드셔 보실래요?”

서해는 방울토마토 하나를 집어 한태경의 입으로 가져갔다.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치고 앉은 한태경이 고개를 돌리고 입을 벌렸다. 입속에 토마토만 놓고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둘째손가락 끝이 입술 끝에 스쳤다.

“다른 게 맛있네요.”

한태경은 방울토마토를 입에 머금고 서해의 입술에 쪽 하고 짧은 키스를 남겼다.

둘은 포크와 젓가락을 들고 서로 입에 음식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서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하나씩 입에 넣어줬는데, 혼자 먹기 미안해진 서해가 다시 한태경의 입에 음식을 집어주며 생긴 일이었다. 서로의 입속에 핑거푸드가 들어갈 때마다 입술에 짧게 남겨지는 키스도 빠지지 않았다.

많이 늦은 저녁 식사가 끝나갈 때쯤, 한태경이 카우치 테이블의 전화기를 들어 턴다운 서비스를 신청했다. 어딘가에 실수한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둘러봤지만 이 넓은 곳을 다시 더듬어 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서해가 무엇을 살피는지 알아챈 한태경이 동그란 머리통을 좌우로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냥 풀에서 쉬었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서해 씨 장난감은 내가 챙겨서 올라가겠습니다.”

“저 그럼 먼저 2층에 올라가서 씻고 있어도 될까요.”

“같이 올라갑시다. 벌써 자야 할 시간 한참 넘었습니다.”

서해는 몸을 덮고 있던 담요로 몸을 대충 감쌌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구슬 다섯 개가 나란히 붙은 플러그와 클립을 빠르게 주워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한태경의 한쪽 눈썹이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가더니 서해를 마주 보고 말했다.

“이리 내놔요.”

“제, 제가 씻어서 드릴게요.”

“혼자 사용하려는 거 아니고?”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흠, 말하다가 보니 생각난 건데. 서해 씨가 혼자 하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 집에서 자위해 본 적은 있습니까.”

“……?”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네요.”

계단을 올라가려던 서해의 얼굴이 순간 굳어져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짓궂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처음 보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였다.

* * *

2층 화장실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해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아직 채 다물리지 않은 주름 사이로 손가락 두 개가 밀려들어 왔다.

“아, 마… 만지면.”

“배앓이 하기 전에 빼내야 하니까 그러지. 싫으면 다음부터는 오늘 알려주는 대로 혼자 빼내요.”

“그게 아니라. 아, 읏.”

“힘주지 말고, 안쪽에 힘 빼요.”

“흐으, 어떻게 하는지….”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태경의 어깨를 잡았다. 힘을 빼라는 말을 몇 차례 뱉어내고 기다리던 그의 손가락이 구멍 안에 들어와 좌우로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의 섹스를 기억하고 있던 내벽이 꿈틀거리며 손가락을 물어왔다. 서해는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손가락 마디가 툭툭 걸려들 때마다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이 가위질하듯 벌어지며 내벽을 벌리고 들어왔다.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에 서해는 몸을 물리려 했다.

“하아… 아, 잠…깐만.”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흐르는 선연한 느낌에 발끝을 세워 벽으로 도망치려 했다. 단호한 손길은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게 집요하게 빼낸 다음에야 그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서있는 동안 발끝까지 꼼꼼히 씻겨주는 한태경 때문에 온몸이 붉어졌다.

“제, 제가 할게요.”

“가만있어요. 금방 씻겨줄 테니까.”

부드러운 손길에 몸이 금방 녹아내렸다. 침대에 머리가 닿자마자 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해는 머리카락과 귓바퀴 그리고 눈과 입술을 꼼꼼히 문지르며 거품을 헹궈내는 손길을 느꼈다.

한태경과 함께 자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티셔츠 말고는 입으면 안 된다는 말에 굼뜬 동작으로 침대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꾸물거렸을 서해는 한태경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금방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았다.

허리 뒤편에 덮여있던 포근한 이불이 들썩거리고 찬바람이 맨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허리 가운데까지 올라간 티셔츠를 끌어 내리다가 여전히 추위를 느끼고 온기를 찾아 옆으로 어깨를 바짝 붙었다.

이불을 끌어와 덮어주고 허리 위를 단단히 감싸는 손길이 쑥 들어왔다. 이미 붙어있는데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이쯤 되니까 서해 씨가 내 나이에 뒤늦게 생긴 애착 인형 같은 느낌이네요.”

“주인님은 어렸을 때도 애착 인형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애착 인형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터진 서해가 그대로 한태경의 품에 끌려들어 왔다. 다리가 얽혀 들고 단단한 팔이 서해의 갈비뼈 아래쪽 즈음에 올려졌다.

천천히 쓰다듬는 손길이 간지러워 어깨에 올려져있던 머리를 비볐다.

“저 계약서 다시 보고 싶어요.”

“왜. 싫었던 것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몇 개는 선택을 바꿔도 될 것 같아서요.”

“선택을 바꾼다?”

한태경은 손가락을 세워 서해의 갈비뼈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서해가 한 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느라 더 느릿해진 움직임이었다. 서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 그게… 매번 저만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서해 씨.”

“저부터 말하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계속해 봐요.”

“생각해 보니까 계약서가 전부 제 위주라서…. 뭘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요. 저도 뭔가 해드리고 싶은데.”

서해의 갈비뼈 아래쪽을 손끝으로 문지르던 한태경은 자세를 바꿔 서해의 머리 옆에 팔꿈치를 세우고 몸을 붙여 덮었다. 눈을 내리깔고 서해를 바라보자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한태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태경은 눈가에 입술을 붙이고 짧은 키스를 여러 번 날렸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그냥 갑자기… 대표님이 해주시는 것에 비해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너무…. 제가 워낙 재미없는 성격이라서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태경의 몸이 점점 내려오더니 가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었다. 딱 붙은 배가 틈 없이 달라붙고 다리를 벌리고 누운 틈으로 단단한 허벅지가 들어왔다.

서해는 두 손을 올려 한태경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가득 덮어오는 체중이 기분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아무렇게나 대하면 어떻게 하려고.”

“…안 그러실 거잖아요.”

서해는 부르튼 입술을 들어 올려 가만히 입을 맞췄고, 한태경은 입술을 맞대고 있는 서해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틀어 그대로 입술을 붙인 채 말했다.

“나라는 사람이 믿을 만한 것 같고.”

“네.”

“나랑 섹스하는 게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네, 그러니까….”

“본인이 얼마나 위험한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그건 앞으로 아, 흣.”

한태경은 혀를 베어 물고 서해의 입술을 건드리다가 혀를 밀어 넣었다. 동그랗게 말린 혀가 감기고 통통한 입술이 짓눌렸는데 서해는 그대로 팔을 뻗어 힘주어 끌어안았다. 세상 소중한 것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이마와 귓가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 * *

제법 따뜻해진 봄바람이 불어왔다.

서해는 한태경의 가방 안에서 나온 폴로셔츠와 바지를 입고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제 옷은 언제 사셨어요.”

“서해 씨랑 떨어져서 외근하던 날이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좋아지길래 샀습니다. 같이 라운딩 가려고. 잘 어울리네요.”

한태경은 살짝 웃음 짓고 서해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자 서해가 그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대표님, 그게 아니라, 저 골프 못 쳐요. 그냥 대표님 하는 거 구경할게요. 괜히 엉뚱한 데….”

“배우세요. 사교 스포츠 하나 정도 배워두면 쓰일 데가 많습니다.”

“…비지니스 말씀하시는 거면, 다른 장소에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중요한 이야기는 회의실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대표님이야 사업 이야기하실 일 많으실 테지만, 보통의 직원들은 회의실에서 이야기해요.”

“이상한 편견이 있네. 외국처럼 캐주얼하게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필요하게 될 수 있으니 배워두세요. 지난번에 나갔던 오프 더 레코드 모임의 코디테이터는 서 대리가 계속해야 할 것 같으니까, 회장님 대표님이랑 라운딩 나갈 일도 생길 겁니다.”

“대표님….”

“그분들이랑 라운딩하고 싶어서 줄 서서 기다리는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습니까. 기회 있을 때 가까워지세요. 언젠가는 도움 주고받을 일이 생길 겁니다.”

“그렇지만.”

“골프가 금방 배울 수 있는 운동도 아니고, 챙겨야 할 에티켓도 많아서 시간 있을 때 미리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나랑 주말에 3개월만 다녀봐요. 그 뒤에도 취미에 맞지 않으면 그만둬도 좋습니다.”

서해는 생각보다 완고한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그럼… 3개월만 할게요. 골프 좋아하세요?”

“한국에서는 오히려 별 관심 없었는데, 미국에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편하게 라운딩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라운딩하면서 항상 중요한 얘길 하시는 편이기도 하고.”

“아, 회장님이랑 많이 다니셨어요?”

“한겨울 빼고는 거의 다 나갔던 해도 있고 그랬는데. 한국 와서는 거의 다닐 일이 없네요. 회원권 끊어서 다닐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한국 패치되셨네요, 대표님.”

“그걸 그렇게 부릅니까.”

가까이 붙어서 걸어가던 둘 사이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한국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여가 시간 보낼 여유가 없으니까요. 대표님도 그럴지는 몰랐는데.”

“나도 직원 아닙니까?”

“임원이 직원이랑 같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그때 산책길이 환하게 트이며 퍼팅을 연습하는 장소가 나타났다. 작은 건물의 로비로 들어가 룸 넘버를 말하고, 장비를 대여했다.

한태경이 서해의 등에 손을 올리고 인공적으로 마련된 그린존 위에 올라섰다. 10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홀컵과 깃발이 보였다.

“오늘은 그냥 맛보기만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주말부터는 제대로 배우게 해주겠습니다.”

“…네.”

한태경은 골프 클럽 안에서 골프채 하나를 집어 들고 자세를 잡았다.

“잠깐 떨어져 있어요. 다칠 수도 있습니다.”

“네, 대표님.”

몇 차례 로우 스윙을 날리다가 풀스윙을 테스트해 보는 한태경이 보였다. 정적인 운동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파워풀하고 스피드 있는 스윙에 서해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와.”

“가까이 와봐요.”

한태경은 서해를 옆에 세워두고 골프 클럽 안에 꽂힌 여러 장비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주었다. 간단한 룰 정도는 알고 있던 서해는 금방 이해하고 따랐다.

“…드라이버가 장타의 티샷에 사용된다면, 아이언은 표적에 정확하게 가져다 댈 때 사용합니다. 쇼트아이언은 100미터 내외의 거리에 어프로치에 사용하고, 롱아이언은 정확하게 날려야 할 장타에 사용합니다. 이건 연습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 어떤 샷을 사용하게 될지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아마추어들은 7번 아이언으로 연습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한태경은 골프 클럽에서 7번 아이언을 꺼냈다. 서해는 골프채를 어색하게 받아들었다. 등 뒤로 이동한 그가 품에 감싸 안듯 팔을 내려 자세를 바로잡아 주기 시작했다. 등 뒤에 바짝 붙어선 몸이 신경 쓰였다. 그의 설명을 100% 따르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립을 잡을 때는 짧게 내려 잡는 게 좋습니다. 조금 더 끝을 잡아요.”

“이, 이렇게요?”

“7번 아이언 그립을 잡을 때는 왼손 새끼손가락이랑 오른쪽 둘째손가락을 걸쳐 잡아요. 이걸 인터록킹그립이라고 부릅니다.”

한태경이 말하는 대로 엉성하게 그립을 감아쥐자 한태경이 손을 덮어 손 모양을 바로잡아 주고 그 위를 똑같이 감싸 쥐었다. 서해는 숨을 들이켰다가 잠시 멈췄다.

“다리는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골프공은 중앙보다 왼발에 가까이 오게 두는 게 좋습니다. 볼이 날아가는 방향과 스윙이 평행이 되어야 하는데, 목표를 설정하고 발을 딛는 일을 스탠스라고 부릅니다. 오른발이 뒤로 빠질 때는 클로즈드스탠스, 오른발이 앞으로 빠질 때는 오픈스탠스라고 불러요.”

“아….”

한태경은 발 모양을 설명할 때마다 서해의 무릎 뒤편을 번갈아 가며 쿡쿡 찔렸다. 서해는 아무 감정 없이 설명해 주고 있는 한태경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허벅지를 내리고 클럽을 감아쥐자 여전히 함께 7번 아이언을 겹쳐지고 있는 한태경이 더 의식됐다. 마치 뒤에서 섹스할 때처럼 엉덩이가 맞닿았다. 서해는 눈을 부릅뜨고 바닥에 놓인 골프공을 바라보았다.

“자 이렇게, 스탠스를 정하고 클럽을 바닥에 댄 동작까지를 어드레스라고 불러요.”

“네에.”

“상체에 힘 빼고, 그립 가볍게 잡아요. 공에서 눈 떼지 말고. 여기까지가 기본자세라고 생각해요.”

“이렇게요?”

“맞습니다. 잘하네요.”

손등을 덮고 있던 큰 손이 두어 차례 세게 신호를 주듯 쥐어졌다.

“탑스윙 할 때는 어깨 회전을 충분히 돌려주면서 오른발로 체중을 싣는 겁니다. 그리고 왼팔을 굽히지 말고 쭉 펴고, 스윙한 뒤에 피니시 자세 때 상체를 회전시키면서 왼발로 체중을 이동시켜요. 스윙할 때 하체가 흔들리면 공이 엉뚱한 데로 날아가니까 허리 아래까지는 잘 고정시켜요.”

한태경이 팔을 들어 올리자 서해는 정말 뒤에서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 같은데. 서해는 그가 등 뒤에 있어 어설픈 포즈로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태경은 다시 팔을 내리고 스윙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스윙할 때 물건 떠올리는 것처럼 팔이 휘어지면 거리가 나지 않게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기만 하고 골프공이 멀리 나가지 않으면 비거리 손실만 나고 오버파 나올 거예요. 공은 아래로 던질수록 멀리 나가는 것 잊지 말아요.”

“네에.”

“혼자 해 보겠습니까. 여기서는 풀스윙 필요 없고, 어깨를 써서 스트로크해요.”

서해는 제법 그럴싸한 자세로 퍼팅을 시도했다.

몇 차례의 자세 교정과 연습 끝에 그린존의 골프 컵에 공이 들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바로 다음 자세를 잡았다. 두 번째 공이 바로 들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 배우네요.”

“대표님, 내기하실래요?”

“이제 걸음마 시작한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네. 날 이기려면 엄청난 골프 천재여야 될 겁니다.”

“제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내가 이기면 내 소원 들어줍니까?”

“네, 그럴게요.”

“약속 무르기 없습니다.”

“대표님도 무르지 마세요.”

“핸디캡 줄까요. 세 번 중에 한 번만 들어가도 이기는 거로.”

“그럼 대표님은 단번에 넣는 거로 하시게요?”

“이 정도야 눈 감고도 치는데 조금 양보해 주겠습니다. 비켜봐요.”

한태경은 가볍게 퍼팅을 성공시키고 그린존을 벗어났다.

서해가 자리를 잡고 서는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불기 시작했다. 한태경은 홀컵에 집중하고 있는 서해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조금 전과 같은 힘, 같은 방향으로 보낸 공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서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두 번째 퍼팅을 시도했다. 두 번째 공은 첫 번째 공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서해의 고개가 뒤로 꺾여지고 짧은 숨이 뱉어졌다.

“괜찮겠어요?”

“…집중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도와주려고 그랬지. 바람이 달라졌잖아.”

그제야 머리카락을 세차게 흔들고 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서해가 한태경을 돌아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해는 변덕스러운 봄바람에 울상을 지었다.

세 번째 골프공이 서해의 7번 아이언을 떠난 순간, 마치 마스터즈 대회의 빅 매치 경기라도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서해는 클럽을 꼭 쥐고 무릎까지 굽히며 공을 쳐다보았다. 나름대로 바람의 방향을 계산한 퍼팅이었다.

“으으, 들어가라. 들어가.”

공이 중간쯤 굴러갔을 무렵, 갑자기 세차게 불어오는 맞바람에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제대로 굴러갔으면 홀컵에 떨어졌을 골프공은 한 뼘을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멈춰 서있었다.

망연자실한 채 있는 서해의 어깨에 팔이 둘렸다. 한태경은 서해를 위로하듯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어….”

“저기 보이는 깃발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맞바람이 불 때는 티를 낮게 꽂아요. 골프공 위치도 오른발 쪽으로 더 이동시켜서 스윙하는 게 좋습니다.”

“…대표님.”

“그럼 이제 내 소원 말할 차례인가?”

“대표님 소원이, 뭔데요.”

“우선 룸으로 돌아갈까요.”

한태경은 서해에게서 골프채를 빼앗다시피 한 뒤 클럽에 꽂아 넣었다. 퍼팅장 끝에서 대기하고 있던 캐디에게 짧게 눈짓하니 멀리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한태경은 서해의 어깨와 등에 손과 팔을 걸치고 산책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등 떠밀리다시피 걸어가는 서해의 발끝이 신발 속에서 말려들어 갔다.

* * *

“준비됐어요?”

샤워 가운을 입고 나타난 한태경이 침대 위에 있던 서해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멀리서 여상하게 뱉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서해는 꿀꺽 소리가 날 만큼 긴장한 상태로 침을 삼켰다. 말려 올라간 티셔츠를 한 손으로 잡아당기고 다리 사이를 가렸다.

한태경은 침대 옆으로 의자를 가져와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댔다. 테이블 위에 손을 뻗어 가죽 케이스를 들어 올렸다. 뚜껑을 열자 나란히 꽂혀있는 시가 세 대가 보였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중 가장 짧은 시가를 뽑아 올렸다. 긴장한 서해와는 다르게 나른함이 느껴졌다.

“불붙기 전에 시작해요.”

한태경은 커터로 시가의 캡 부분을 잘라냈다. 지나치게 조용한 방에서 시가 끄트머리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해의 눈에 한태경이 시가의 풋 부분을 손가락을 세워 천천히 돌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느릿한 손동작이 마치 앞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깨를 움츠렸다.

엄지와 검지로 시가를 잡은 한태경은 성냥을 꺼냈다. 꾹 다물려있던 입술이 벌어지고, 입에 베어 문 시가를 몇 차례 더 돌려가며 고루 불을 붙였다. 가끔 차에서 맡을 수 있었던 향이었다. 가벼운 입김으로 성냥불을 끈 그가 서해를 바라보았다.

“말 안 듣네. 마스터베이션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야 합니까?”

“아, 아니요.”

서해는 한태경을 등 뒤에 두고 천천히 몸을 돌려 무릎을 꿇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귀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두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어깨를 침대에 붙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성기를 쓸어내리는 것보다는 직접 흔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눈을 꼭 감고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성기를 감쌌다.

“잠깐, 이쪽으로 해야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뒤를 돌아보는 서해는 목이 탁 막히는 걸 느꼈다. 발을 들어 올린 그가 발등으로 허벅지 안쪽을 느리게 문질러 올렸다.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

“주, 인님….”

별다른 말이 없었다. 뿌연 연기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한태경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정확히 보이지 않아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한쪽 팔을 침대 위에 내려 지지하고 튜브를 집어 올리는 서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어댔다.

“엉덩이 들고 젤 발라요.”

한태경의 눈에 어설프게 벌어진 다리와 밤새 꾹 다물린 주름이 들어왔다. 가볍게 빨아들인 시가의 끄트머리가 타오르고 짧게 입에서 머무른 연기가 뱉어졌다.

잘게 떨리는 손에 쥐어진 튜브와 함께 손가락으로 주름을 더듬는 모습이 보였다. 위치를 확인한 손가락이 비켜난 자리에 부드럽게 깎인 노즐이 걸쳐졌다. 서해는 입술을 깨물고 튜브에 힘을 줘 젤을 짜 넣었다.

“…읏.”

반사적으로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젤이 얼마만큼 필요할지 몰라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안으로 밀려들어 가지 못한 젤이 허벅지를 타고 따라 흘러내렸다. 시트에 흘러내리는 것이 신경 쓰였다. 허리를 내리고 다리를 벌려 무릎 뒤편에 고일 수 있게 자세를 바꾸었다.

엎드려 엉덩이를 들고 있는 서해의 손에 쥐어있던 튜브가 빠져나가고 다른 무언가가 쥐어졌다. 한 손에 빠듯하게 겨우 감싸 쥔 것은 바이브레이터였다.

성기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와 알 수 없는 버튼을 바라보던 서해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떨어트렸다. 한태경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서해의 손에 바이브레이터를 쥐여주었다.

연보랏빛의 반투명한 재질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다행이라면 플러그처럼 딱딱한 재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서해는 몇 차례 움켜쥐며 사이즈를 가늠해 보았다. 안될 것 같은데. 손에 다 잡히는 사이즈이긴 했지만 역시나 무리인 것처럼 보였다.

“넣고 잘 흔들어봐요. 내 마음에 들게 잘하면 바닐라섹스로 끝내줄 수도 있습니다.”

“이, 건 안, 안 들어…갈 것 같아요.”

“내 좆보다 훨씬 작은 건데.”

“…….”

“슬슬 지겨워지려고 하네요, 서해 씨.”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해는 금방 초조해졌다. 손가락으로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한쪽 팔로 몸을 지지하고 바이브레이터를 주름 가까이 갖다 댔다. 허리에 힘을 빼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몸을 비집어 열었다.

내벽을 미리 채우고 있던 젤이 쩍쩍거리고 끈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해는 눈을 감고 그대로 천천히 밀어 넣기 시작했다. 주름 밖으로 흘러나온 젤이 바이브레이터의 귀두 부분에 맺혔다가 바닥으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바짝 마른 입이었지만 침을 꿀꺽 삼켰다. 입술을 베어 물고 무작정 밀어 넣었다.

“아으, 읏.”

서투른 손짓을 보고 있던 한태경의 눈이 점점 얇아졌다.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기대고 다리를 침대 가장자리에 대충 걸쳤다. 입에 물린 시가가 짧은 시간 머물렀다가 떨어져 나갔다.

좀처럼 안으로 밀어 넣지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이 보였다. 한태경은 연기와 함께 숨을 뱉어냈다. 침대에서 무릎을 세운 채 숨을 가다듬던 서해가 그 소리를 듣고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어설픈 동작이었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별로 재촉할 생각이 없었던 한태경은 별말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만 그 침묵을 오해한 서해가 급히 바이브레이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실리콘이 빠듯하게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귀두가 쑥 밀려 들어갔다.

“하아, 아….”

가빠지려는 숨을 고르며 눈을 깜박였다. 금방 눈앞이 흐려졌다. 분위기에 휩쓸려 어처구니없는 내기 따위를 내뱉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벌써 빠듯한 느낌에 손가락을 뻗어 더듬었다. 이제 겨우 얼마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서해는 급히 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주름이 벌어지며 내벽이 꿈틀대 귀가 빨개졌다.

잘 들어서지 않는 물건을 끝까지 밀어 넣으려 어깨와 허리를 내리고 엉덩이를 높이 들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빨리 끝내버릴 생각으로 바이브레이터 끝을 단단히 잡고 끝까지 밀어 넣으려 했다.

몇 차례나 숨이 턱턱 막혔다. 끈적거리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앗!”

바이브레이터가 중간까지 삽입되자 은근하게 치고 올라오려는 성감이 느껴졌다. 깜박거리던 눈이 꾹 감기자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었다.

어제까지 뒤에 붙어서 뒤를 드나들던 한태경의 성기가 생각나자 단숨에 허리가 간지러워졌다. 엉덩이에 힘을 빼고 지그시 밀어 넣는데 찌르르한 감각이 밀려왔다.

삽입을 중단하고 숨을 골랐다. 바이브레이터의 귀두 부분이 내벽의 둥근 표면 위에 멈춰 서있었다. 발가락이 펴졌다가 오므라들었다가, 팔이 푹 꺾여 팔꿈치에 힘을 주고 버텼다.

다시 밀어 넣는데 허리 부근이 붕 뜨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뭉쳐지는 것같이 느껴져 손을 멈춰 세웠다. 서해는 다리 사이로 고개를 떨구고 한태경을 살폈다. 허리를 들고 있는 각도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아 다급해졌다.

성기를 잡고 자위하던 것처럼 바이브레이터를 뽑아냈다가 천천히 밀어 넣었다. 계속해서 허리 부근이 몽롱하게 취한 느낌이 들었다. 서해는 얕은 추삽질을 천천히 반복했다.

“흐으으, 읏…….”

바이브레이터가 몇 차례 둥근 표면을 스치자 성기가 금세 빳빳하게 서 올랐다. 당황스러움을 느낄 틈도 없이 꼬리뼈 부근이 징- 하고 울려 숨을 들이켰다. 눈가에 맺혀있던 물기가 속눈썹으로 고여 들었다.

“…앗, 아으!”

“전원 버튼 켜고 해야지.”

귓가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깨로 자세를 지지하다시피 쓰러져있던 서해는 손가락을 더듬거려 전원을 켰다. 꿈틀거리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물건에 파드득거리다가 아기처럼 옆으로 누워 몸을 둥글게 감았다.

내벽을 천천히 휘젓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내벽과 다리 사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바이브레이터가 볼록하게 올라온 곳을 스칠 때마다 엉덩이 근육이 뭉쳤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천천히 바이브레이터를 뒤로 물렸다가 다시 앞으로 밀어 넣었다. 같은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하던 중 갑자기 허벅지와 골반 사이에서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피스톤질을 더 이어갈 수 없어 내벽에 물린 채 멈췄다. 척추를 타고 작은 경련이 올라왔다.

등과 어깨를 타고 소름이 돋아나고 꽉 다물린 입에서 호흡이 흩어져 나왔다. 전신이 흔들려와 등을 세우고, 바이브레이터를 빼내려고 꽉 쥔 상태로 몸을 떨었다. 허벅지와 손끝이 덜덜 떨리고 이가 부딪쳐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아….”

“버릇이 엉망이네.”

“흐으읍, 아으, 흑.”

“혼자 자위하라고 했지, 누가 허락도 없이 드라이 오르가슴을 느끼라고 했습니까.”

한태경은 시가를 재떨이에 올려두고 커터로 잘라냈다. 그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서해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세우고 엉덩이를 높이 세운 다음 손가락 끝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살짝 밀어 넣었다.

“안 돼, 안… 그거….”

“가만히. 내기에서 졌잖아.”

“아윽! 읏….”

한태경은 각도를 약간 아래로 돌려 서해의 성기가 있는 방향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천천히 문질렀다.

“아, 주인님. 가… 갈 것, 같. 흐윽.”

“그럴 리가.”

“흐아… 아, 흡.”

분명 사정하고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평소처럼 힘을 줘도 아무것도 빠져나오는 게 없었다.

다시 온몸이 바르르 떨리며 온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짙은 쾌감이 지나갔다. 등 근육과 다리에 참을 수 없는 떨림이 찾아왔다. 푹 쓰러진 상체는 한태경의 다리 사이로 떨어졌다.

뜨거운 열기를 피하려고 앞으로 기어 나가려는데 한쪽 발목이 붙잡혔다. 벌벌 떨리는 내벽을 파고드는 손길이 배를 파고들었다.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뒤로 물러섰다. 손끝과 발끝이 차가워졌는데 뻐끔거리는 내벽을 타고 계속해서 몸이 달아올랐다.

바짝 선 서해의 성기 끝에서 전립선액이 찔끔거리며 새어 나왔다. 서해는 손끝에 만져진 것으로 사정을 했다고 오해했다. 여전히 절정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바로 이어서 몸이 바르르 떨리고 사정감이 다시 찾아왔다. 두 번째엔 손톱을 세우고 침대를 긁어내렸다. 허벅지를 타고 녹아내린 젤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팔뚝과 등, 무릎 뒤까지 소름이 바짝 돋았다.

물기를 머금어 가득 촉촉해진 속눈썹이 벌어졌는데 기어코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뇌가 저릿저릿하고 손발이 벌벌 떨렸다.

“아, 아흑… 앗!”

“이 정도로 잘 느끼는지 몰랐네.”

사정하면 시원해질 것 같았는데 내벽에서 시작된 경련만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꼼짝할 수 없이 몰아치는 감각에 몸을 뒤틀었다. 내벽을 둥글려 나가는 바이브레이터가 얕은 추삽질을 아주 느리게 반복했다.

“이렇게 한 번 드라이 오르가슴에 오르고 나면 몇 분 동안 계속 절정감에 오르는데, 지금이 뒷구멍 길들이기 딱 좋습니다.”

“하, 하으으, 윽. 그…만, 가고 싶어요. 흡….”

서해의 엉덩이 사이를 누르던 바이브레이터가 뽑혀 나갔다. 한태경은 서해의 엉덩이를 끌어당기고 그 뒤에 무릎을 세워 붙었다. 손가락이 아직 채 벌려지지 않은 주름 주위를 훑어 내렸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위아래를 힘주어 문지르자 서해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가빠졌다.

참을 수 없는 감각에 서해는 손을 뻗어 성기를 감싸고 끝을 쳐올렸다. 갑자기 뒤에서 들어온 손이 서해의 팔을 등 뒤로 돌리고 손등을 내리쳤다.

“버릇없게 무슨 짓이야.”

“아아! 흑, 으응….”

잔뜩 예민해진 내벽이 움찔거리고 안팎으로 흘러내린 젤과 액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 전체가 성감대라도 된 것 같은 것처럼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엉덩이를 잡아 올리다가, 허리를 쓰다듬다가, 목덜미를 꽉 잡는 한태경의 손길에 몹쓸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열이 오르고 몸이 떨렸다.

서해의 흐려지는 머릿속으로 한태경이 말했던 세이프 워드가 둥둥 떠올랐다.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실망하고 떨어져 나갈까 봐. 무서워진 서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금만 참으면 찾아올 온기를 기대하고 눈을 내리감았다. 한계를 진작 넘어 새로운 곳으로 밀어 넣는 손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허리 아래에서 뭉쳐진 근육 가닥 전체가 간지러웠다.

서해의 이마 한쪽이 침대 시트에 깊게 묻혀 있었는데 콧잔등을 타고 눈물이 흘러 침대 위로 떨어졌다. 머리 위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손가락 끝이 하얗게 물들었다.

한태경은 서해의 양쪽 엉덩이를 잡아 벌리다가 고개를 들어 올린 성기에 콘돔을 씌웠다. 앞에 웅크리듯 쓰러져 있는 서해의 등 뒤에서 양쪽 팔목을 잡고 상체를 들어 올리며 성기를 느리게 밀어 넣었다.

빠듯하게 벌어지는 구멍이 겨우 한태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슴 앞으로 따뜻함이 가득 느껴졌다.

“아! 아아……. 하으읏.”

“숨 내쉬어.”

서해는 그제야 숨을 뱉었다. 붙잡힌 양쪽 팔목 때문에 상체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서해의 등에 짧게 키스를 남긴 한태경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는데 서해의 성기 앞쪽에서 다시 맑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턱 아래로 고여든 눈물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앞이 뿌옇게 흐렸다. 한태경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던 양쪽 손목이 버둥거렸다.

“주인님, 흡, 주인, 님. 아읏… 손잡아 주세요.”

한태경은 서해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몸을 물릴 수 없었다. 예민하게 조여드는 내벽을 비집고 들어서는 몸짓이 전에 없이 다급해 보였다.

젤이 끈적하게 녹아내렸다. 번들거리는 성기가 한동안 거칠게 몸속을 드나드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서해는 눈을 감았다 뜨며 가쁜 숨만 들이쉬고 뱉어냈다. 점점 숨 쉬는 것이 어려워질 만큼 텐션이 높아졌다.

“으, 흑… 흐읍, 주인님, 아으읏….”

“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숨넘어갈 듯한 울음소리가 들리자 한태경은 잠시 허리를 물리고 서해의 몸을 돌려 눕혔다.

천천히 손가락 끝이 얽혔다. 단단한 몸이 서해의 상체를 덮어오자 관자놀이로 눈물이 다시 툭 터져 흘렀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 보려 했는데 앞이 자꾸 흐려졌다. 울음을 눌러 참느라 들썩이는 가슴이 서럽게 오르내렸다.

한태경은 서해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입술을 마주 대었다. 서러운 듯 파르르 떨리는 입술의 경련이 그대로 밀려들어 왔다.

손깍지를 침대에 내리누르며 속삭이듯 달랬다.

“쉬, 쉬…. 지금 그만하면 배가 뭉쳐서 더 아플 텐데.”

“으, 아, 아픈 거 싫어요, 흡….”

“아프게 안 할게. 천천히 해줄 테니까 조금 더 해보자.”

서해는 그대로 입술을 붙인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확인하자마자 눈가와 이마에 여러 번 키스를 남긴 한태경이 허리를 물렸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리꽂히는 움직임 사이로 손이 들어와 서해의 성기를 훑어 올렸다.

마른 절정감에 휩싸여 쉽게 사정하지 못하다가, 한태경이 귀두로 내벽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툭툭 쳐올리자 서해의 목소리가 짧게 끊어져 나왔다. 뒷구멍이 흐물거리다가 콱 조여들기를 반복했다.

“하, 으응, 죽을, 것… 아….”

눈을 감았다 떴는지,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래가 간지럽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입 밖으로 뱉은 고백과 함께 손을 뻗어 한태경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한태경은 이를 세워 서해의 뺨을 깨물었다. 잇자국이 세워질 만큼의 힘이었지만 서해는 밀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품에 안겼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안 되지. 이제 막, 좆질하는 기분을 알아놓고.”

“아! 흐아, 흣.”

한태경은 성기를 가득 물린 게 아니라 온몸을 잡아먹힌 느낌에 입술까지 짓씹고 서해를 내려다보았다.

“주, 인님, 저… 정말 못, 하겠어요… 몸이, 아….”

내벽에 강한 자극이 들어오자 다리를 버둥거리던 서해에게 이명이 울렸다. 온몸을 간지럽게 긁어대는 것 같던 감각이 시원하게 터져 나가고 고개를 젖힌 채 한동안 숨을 헐떡였다.

느릿하게 허리 짓을 하며 몸을 물려서 잔떨림이 계속 이어졌다. 서해는 덜덜 떨리는 손을 더듬어 한태경에게 매달렸다.

“흐으읏, 흡.”

“쉬, 괜찮아.”

한태경은 이를 악물고 잘게 경련하는 서해를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손을 놓으면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것처럼 붙들고 있던 서해가 한태경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는 서해의 엉덩이가 짓뭉개질 만큼 세차게 때려 박은 다음, 허리를 끝까지 밀어 넣고 길게 사정했다.

“하아….”

키스하려던 그가 몸을 물렸다. 떨어지려는 것으로 오해한 서해는 더 바짝 붙어왔다.

“안 돼, 안 돼요. 잠깐만… 가지 말고, 흐….”

한태경은 서해의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서해의 몸 위에 체중을 실어 눌렀다. 묵직한 체중이 느껴지자 서서히 진정하기 시작한 서해가 한태경의 허리를 감싸던 팔에서 힘을 풀었다.

* * *

손끝과 발끝의 감각을 확인하려고 조금씩 움직였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에 없는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서해가 잠결에 뒤척이자 잠투정하는 것으로 생각한 한태경이 무의식중에 서해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서해는 그 손길에 눈을 깜박이다가 어두워진 주위 때문에 깜짝 놀랐다.

언제 잠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짧게 숨을 들이켜며 눈을 크게 떴다. 급히 손을 뻗어 시트를 잡았는데 허리와 배에 걸쳐진 한태경의 팔이 느껴졌다. 서해는 베드 사이드 테이블에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다시 자리에 누웠다.

침실에 둘린 암막 커튼 때문에 낮인지 밤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는 것은 없었다. 그가 눈뜰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일정이 따로 있는 휴가는 아니었지만 마음껏 쉬는 것으로 충분했다.

몸에서 긴장을 풀고 고개를 돌려 잠에 빠진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조차 흐트러짐 없이 반듯했다.

몸을 옆으로 천천히 돌려 마주 바라보고 누운 서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가 허공에서 멈췄다. 근래에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 같아 단잠에서 깨우고 싶지 않았다.

주먹을 말아 쥐고 몸을 구부렸다. 눈만 빼꼼히 뜨고 한태경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서 누군가 자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둘째손가락을 세워 한태경의 어깨 끝에 살짝 붙였다. 매끄러운 피부가 손끝에 닿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계약으로 시작할 때는 이토록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평범하지 않은 규칙이 가득한 섹스가 이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울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묻었다. 선을 넘어서 이 관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서해는 맞닿은 손끝으로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한태경을 바라보았다. 늘 혼자여서 외로웠던 지난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누군가의 체온이 이토록 따뜻는 위로로 다가와 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손가락을 문지르자 한태경이 서해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모로 누워있던 몸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그의 몸 위에 포개지듯 엎드려 누운 서해는 그제야 둘 다 옷을 입지 않은 것을 알아챘다.

“깨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더 주무세요.”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자길래 기절한 줄 알았네.”

한태경은 자신의 어깨를 문지르던 서해의 손을 잡고 손가락 끝에 키스했다. 다섯 손가락 끝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 나서 서해의 귓바퀴에 입술을 묻었다. 언제 닿아도 부드러운 감촉이 그를 기분 좋게 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몇 차례 쓰다듬자 서해가 금방 몸에 힘을 풀고 안겨 왔다.

“윽… 기절했던 거 맞는 것 같아요.”

“자다가 깨어날 때는 원래 이렇게 놀랍니까? 며칠 전에도 그러는 것 같더니.”

증상이 많이 좋아진 건데. 권율기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잠들고 깨어나던 날들이 생각났다. 굳이 사실을 얘기해서 한태경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아니요. 깊이 잠들어서 그랬나 봐요. 지금 몇 시예요?”

“음, 오후 일곱 시가 넘었네요.”

“벌써요? 아…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보내는 게 진짜 휴가 같고 좋네요.”

“제가 너무 오래 자서… 오후에 따로 예약해 두신 것 없었어요? 어제 통화하시는 것 같았는데.”

“별거 아니라서 마음에 둘 것 없습니다. 나야말로 여기 데려와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이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맛있는 곳도 많은데.”

서해는 한태경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다가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시선 끝에 서로의 웃음이 걸려있었다.

“저는 밥 먹는 것보다 이렇게 있는 게 더 좋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럼 내려가서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래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많이 진정됐어요.”

서해는 한태경의 가슴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심장이 뛰어오는 소리와 따뜻한 온기가 가득 느껴졌다.

서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지금 순간을 만끽했다. 무심하게 등을 덮어오는 손길에 시차를 두고 다시 한번 코끝이 찡해졌다. 숨이 아주 약간 흐트러졌는데 한태경이 금방 알아챘다.

“왜 이래.”

“…그냥, 갑자기.”

“갑자기 뭐. 내가 실수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요.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누군가 옆에서 눈 뜨고 일어나는 게 아직 신기해서….”

커다란 손이 허리를 지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서해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망설이던 서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한태경의 귓가에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것 같이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쓸데없는 걱정은.”

서해의 몸을 쑥 끌어 올린 한태경이 이마에 입술을 붙이고 말했다.

“내일이면 체크아웃해야 하는데 나가기 싫네요.”

“저도요.”

“매일 서해 씨랑 내기 골프도 하고.”

“…놀리지 마세요.”

“일어납시다.”

침대에 엎드려서 끙끙댄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에는 손대지 말라고 울고, 떨어지면 가지 말라고 울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서해는 몸을 굴려 침대 한편으로 내려와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뜩 벌어져서 흔들리던 몸에서 비명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시 인상을 찌푸린 서해가 바닥을 내려 보다가 침대에서 막 일어선 한태경을 불러 세웠다. 그는 어느새 바지를 입은 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서해는 망설이며 말했다.

“…룸서비스로 바꿔도 될까요?”

“미치겠네, 이리 와요.”

서해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고 팔을 벌려 선 한태경에게 다가갔다. 그는 서해를 끌어안고 한참 웃었다. 서해가 발뒤꿈치를 세우려 하자 등을 쓰다듬으며 위에서 누르듯 감싸 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저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이러다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런데, 어디서 입을 삐쭉거리고.”

“퍼팅할 때 바람 같은 건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신 거죠.”

“그 골프 내기는 서해 씨가 먼저 하자고 했지 내가 하자고 한 게 아닙니다. 골프채 잡은 첫날에 내기하자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전까지 분명 잘 들어갔으니까 그랬던 건데요.”

“덕분에 나는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서해 씨랑 섹스까지 했네. 골프에는 변수도 많습니다. 다른 데 가서는 이렇게 함부로 내기 같은 거 절대 하지 말아요.”

서해의 입술 위에 한태경의 입술이 포개졌다가 떨어지자 아직 붉게 달아오른 눈가와 코끝이 보였다.

“그런데 서해 씨 소원은 뭐였습니까?”

“제가 이기면 골프 안 배운다고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마음 바뀌었어요.”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 생겼습니까?”

“네, 다음에 내기 한 번 더 해요.”

“다음번 내기에는 무슨 소원 빌려고.”

“비밀이에요.”

“그때도 지고 나서 승부욕에 불타오를 것 같은데.”

“저 금방 배워요. 리벤지 매치 신청할 거예요.”

한태경은 웃으며 서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리벤지 매치하기 전에 저녁부터 먹읍시다. 물도 많이 마시고.”

“…웃지 마세요. 진심이니까.”

“알겠습니다. 옷 입고 내려갑시다.”

한태경은 서해의 눈꼬리에 입술을 붙였다 떨어졌다. 서해의 머리 위로 티셔츠를 입혀 주고 소매까지 다듬어준 다음에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1층으로 내려온 둘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서해는 룸서비스가 가능한 메뉴를 보고 디너 코스를 골랐다. 연어로 만들어진 에피타이저와 양갈비 스테이크가 메인인 코스였다.

“이거 어때요?”

“양갈비? 좋습니다.”

“여기 18층이죠? 제가 주문할게요.”

서해는 카우치에 있는 룸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보다 밝아진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이 좋을 일인지. 한태경은 메뉴판을 펴고 이것저것 설명하는 서해를 바라보다가 턱을 괴고 웃음 지었다.

* * *

저녁 식사를 하고 카우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서해의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있었다. 서해는 자신이 사인했던 파일을 복제하고 언더바를 붙여 한태경의 이름을 채워 넣었다. 태블릿을 넘기는 손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항목에 체크해 주세요. 7점 척도 선택도… 같이 해주세요.”

“서해 씨, 오늘 내기 골프 해서 어떻게 됐는지 잊었습니까?”

“전부 다는 못 해 드릴 수도 있어요. 먼저 확인만 해보고 그다음에….”

“나랑 몇 번 잤다고 아주 발랑 까졌네.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습니까.”

“화…나셨어요?”

서해를 바라보고 있던 한태경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걸렸다.

“확인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이리 넘겨요.”

한태경은 태블릿을 받아들고 거침없이 선택했다. 서해는 다리를 가슴 앞으로 모아 소파 위에 세우고 무릎에 턱을 올려두었다.

“서해 씨가 한 거에서 조금만 더 해볼까요.”

이제 시작일 뿐인데 귀부터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서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을 한 모금 들이켠 후 테이블에 컵을 내려두었다.

순식간에 페이지를 넘기며 항목을 선택한 한태경이 서해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어깨에 팔을 올렸다.

“확인해 봅시다. 서해 씨가 선택한 거랑 나란히 놓고 보면 되겠네요.”

서해는 손을 뻗어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항목 몇 가지가 보였다. 당연하게도 선택한 항목들의 점수 분포도는 확연하게 달랐다.

“차례대로 볼까요. 위쪽에 있는 소프트한 항목들은 서해 씨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크게 설명할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네, 저도.”

한태경의 손이 허벅지 사이로 쑥 들어와 서해의 다리 안쪽을 쓸어내렸다. 티셔츠만 입고 앉아있던 서해는 천천히 다리를 내리고 손을 떼어낸 다음 손깍지를 꼈다.

“여기서부터. 사정 컨트롤 정도는 처음 선택한 것보다 3점은 더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서해 씨가 내 손에서 잔뜩 느끼는 얼굴 보는 게 너무 좋거든.”

가만히 설명을 듣다가 지난번 섹스가 생각났다. 서해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있던 머그컵을 들어 올리고 컵 가장자리를 베어 물었다.

한태경이 서해의 손에 들고 있던 머그컵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쇄골을 느릿하게 핥아 올렸다. 턱 끝에 짧게 키스한 한태경은 서해의 턱을 잡아 고정하고 입술을 붙인 채 말했다.

“그리고 멀티 오르가슴 느끼는 것도 보고 싶네요.”

“그건… 뭐예요?”

“요도에 작은 금속 스틱을 꽂으면 그 끝에 서해 씨가 제일 잘 느끼는 부분이 닿습니다. 그 상태로 섹스하면….”

테이블 위에 컵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태경은 이야기하다 말고 서해의 볼에 키스를 남겼다.

“지금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무슨 말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달콤한 키스가 날아왔다. 고개를 젖히며 그대로 카우치 등받이로 넘어갔다.

“…이거 마저 보고.”

“어차피 다 몸으로 하는 일인데 누워서 설명만 들으면 되지 않습니까.”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손이 쑥 들어왔다. 한태경은 서해의 판판한 배와 갈비뼈를 지나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잔뜩 자극당했다가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두는 얕은 자극으로도 금세 부풀어 올랐다. 가까이 붙어있던 서해의 눈이 반쯤 내려 감겼다.

“입안이 헐 때까지 물고 있게 한다든가, 목이 따가워질 때까지 밀어 넣는다든가.”

“아….”

“스팽킹을 한다든가.”

“읏, 그건… 아, 잠시. 손 좀.”

“그리고.”

티셔츠 위로 계속해서 올라온 한쪽 손이 서해의 목을 감싸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서해를 내리눌렀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것들인데. 서해 씨가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잠시 몸을 물린 한태경과 카우치에 누워있던 서해의 시선이 얽혔다. 손을 뻗어 서해의 눈가와 귓바퀴를 쓰다듬은 그는 고개를 숙여 서해의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서해는 양손을 들어 올려 한태경의 허리를 잡았다. 힘주어 당기지 않았지만 바짝 붙여 몸을 눌러와 그의 체중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하나씩 알려주세요.”

서해는 팔을 뻗어 마주 보고 있던 한태경을 안았다. 불안한 듯 꽉 안고 있던 서해의 몸 아래로 단단한 팔이 들어와 허리를 끌어당겼다.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정감 있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던 한태경이 쇄골 아래에 입술을 묻고 강하게 빨아올렸다. 서해는 어깨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고 몸을 비틀었지만, 엉켜있던 마음이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아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다정하고 또 달콤한 향이 룸 안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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