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420호. 룸 안에선 마작 게임이 한창이었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가 무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패를 만져 댔다. 박진경이 뭐 재밌는 것 없나 눈을 돌리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아, 수원이 지금 와 있지?”
느닷없이 흘러나온 여원의 얘기에 남자가 음, 목 안을 울렸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패에서 눈을 떼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박진경은 흥미로운 듯 눈을 빛내더니, 룸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무료해 꽥 뒈질 판이니까, 수원이도 이곳으로 불러야겠다. 괜찮지, 대표?”
남자는 뭐라 답이 없었다. 그의 턱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나 하관이 술잔에 가려져 있는 탓에 박진경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자, 여자가 나서서 사장실로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원이 룸서비스를 직접 손으로 갖고 들어왔다. 얼굴엔 억지로 끌려 나왔단 기색이 스며들어 있었다. 불러들인 게 그 누구도 아닌 VIP 고객이기에 마지못해 나온 듯했다. 남자는 제가 사 준 슈트를 입고 있는 여원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릴 비틀었다. 사장 자리보다는, 어디 잡지 카탈로그에 실려 있어야 어울리는 꼴이었다.
“아가, 오랜만.”
김미란이 반가운 티를 내자,
“안녕하세요.”
여원이 살짝 목을 숙여 묵례를 해 보였다. 그에 남자의 얼굴에 묘하게 서려 있던 웃음기가 가셨다. 여원은 그에 멈추지 않고 가지고 들어온 트레이에서 접시를 직접 내리려고까지 했다.
…아주 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일개 직원들이나 할 법한 일을 아직까지도 손수 나서서 꼴이 무척이나 제 맘에 들지 않았다. 남자가 여원의 손목을 잡아챘다. 의아한 눈빛이 남자를 향했다.
“…왜?”
왜 그러시냐고 시선으로 물었지만, 남자는 철저히 무시했다. 제 손에 힘을 주곤 여원을 잡아당겨 자리에 앉혔다. 그의 기색이 눈에 띄게 불편해졌음을 그제야 깨닫곤, 여원이 룸에 있는 전화기로 손을 뻗더니 조용히 말했다.
“여기 420호입니다. 서빙할 직원 하나 올려 주세요.”
전화를 끊고, 다시 남자의 옆에 앉았다. 남자가 한 팔로 여원의 어깨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선 광대 부근에 제 입술을 눌렀다. 여원은 눈을 내리감으며, 순순히 그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살빛 허연 얼굴엔 될 대로 되란 식의, 체념의 빛이 은은히 서려 있었다.
여원을 제 품에 끌어안고 뺨에 입술을 맞추기까지, 남자의 모든 제스처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보는 눈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한 치의 거리낌이 없었다. 남자에겐 그저 마땅한 일이기만 하니, 구태여 남의 시선을 제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춥, 하고 남자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여자들이 흐응, 하는 소릴 내며 흥미로워 했다.
몇 분 후에 직원이 도착했다. 숙달된 실력으로 테이블 위에 빠르게 룸서비스를 세팅한 후에, 정돈된 미소와 함께 마무리 인사를 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직원이 떠났다. 네 사람이 모여 있는 원형 테이블 위엔 착착, 유리 패가 붙는 소리가 났다. 박진경이 새빨간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새붉은 립스틱이 발려 있는 입술에 물었다.
“김 사장이 갑자기 쫓겨나는 바람에.”
박진경이 콧구멍으로 잿빛 연기를 맛깔나게 뿜으며, 패가 두 개씩 쌓여 있는 태산에서 패 하나를 가져갔다.
“이제 로열로 들이는 물건들은 모두 장 대표랑 얘기해야겠네.”
그다음 차례인 남자는 제가 가진 패 하나를 버리며, 말없이 술로 목을 축였다. 박진경의 말대로, 여원을 그 자리에 앉히는 바람에 일이 배로 늘었다.
박진경은 원래 중국에서 물건들을 은밀한 경로로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일을 했다. 차익이 꽤 짭짤한지, 차고 넘치는 게 돈이면서도 유흥거리처럼 그 짓을 즐겼다. 물론 이 로열에도 몇몇 물품들을 대고 있었다. 고급 담배와 술 같은. 이쪽엔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장사지만, 중국 쪽에 콧김이 센 여자라 상호 간 이익을 보고 있었다.
“엄청 마음에 찼나 봐. 이렇게 한자리 해 줄 정도면.”
박진경의 시선을 받은 여원이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박진경은 그 멀건 얼굴을 품평하듯 지켜보았다. 눈, 코, 입, 하나씩 뜯을 듯 자세히 지켜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흐응 콧소릴 내었다.
“아.”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검지를 들어 보였다. 제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비닐에 싸인 옷 하나를 꺼냈다.
“이거 출장 갔다가 보고 우리 애들 입히려고 산 건데.”
새카만 색이 발려진 손톱으로 비닐을 뜯어내자, 새틴 재질의 붉은 옷이 나왔다.
“예쁜데 허리가 조금 작은 것 같아서. 좋을 때 아가 입혀 봐.”
남자는 옷 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여원의 허리를 눈에 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선 흰 셔츠에 감겨 있는 허리 사이즈를 가늠했다. 한 팔 안에 가뿐히 감겨 오는 게, 제법 가느다랬다.
“애기 궁둥이처럼 피부 뽀야니까 잘 어울리겠다.”
“…….”
“나도 보고 싶다고 그러면….”
박진경이 슬쩍 남자의 얼굴을 힐긋댔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약간 각져서 고집스러워 보이는 턱만이 들썩거렸다. 혀를 굴려 씨발, 이라 욕을 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박진경이 제 입술을 안으로 오므라뜨렸다.
“대표가 끝내주게 싫어할 테니까 이만 입 다물어야지. 그렇지, 언니? 그게 맞겠지?”
“그놈의 주둥이 좀 다물고, 나도 한 대 주기나 해.”
김미란이 손을 내밀자, 박진경이 제가 피우던 담배를 끼워 넣었다. 인생이 무료한 여자들은 양껏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 대다가 새로운 재미를 찾아 룸을 떠났다.
이제 룸엔 두 사람만 남았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듯, 룸 안은 어지러웠다. 남자는 마작 패들이 아직 남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입에 담배를 물었다.
여원은 담배꽁초가 수북이 꽂혀 있는 재떨이를 들고 일어섰다. 휴지에 물을 충분히 적셔서 남자의 앞에 내려놓고, 병을 하나씩 들어 트레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
“…….”
남자는 쭉 찢어진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여자들이 있을 때와는 영 다른 태도였다. 여원이 시중을 들고 있는 상대가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쳐 밀던 불쾌감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여원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테이블을 치우다가, 비닐에 감싸인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아.”
여원의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 옷 쪼가리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던 남자의 관심이 쏠린 건 그때부터였다. 붉은색의 옷감이 대조되니 흰 피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데다가, 여원이 그 옷을 지독히 싫어하는 눈치를 보였다. 남자가 동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아직 테이블 위엔 아까 하던 마작 게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자는 마작 패들을 만지작거리며 지껄였다.
“입어 보지 그래요.”
여원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되물었다.
“…네?”
“고객 상대해야죠.”
저를 향해 있는 여원의 눈빛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정신 이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변했다.
“박진경, 그 여자도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던데.”
뒷말을 생략했음에도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빠른 여원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의 말인즉슨, 박진경까지 룸으로 다시 들여오기 전에 입으라는 것이었다.
“밑도 벗고 나와요.”
남자는 제 앞에서 갈아입는 모습을 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여원은 아랫입술을 꽉 문 채로 옷을 갖곤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룸에 홀로 남은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늘인 상태로 문 안에서 들리는 사부작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달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시선이 방문으로 향했다. 여원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붉은 차이나 드레스는 전등 밑에서 한층 더 은은히 빛났다. 여원의 몸에 착 달라붙어선, 몸 선을 그대로 내보여 주고 있었다. 제법 얇은 허리에, 허벅지까지밖에 오지 않는 치마 밑으로 길게 쭉 뻗어 있는 하얀 다리가 시선을 잡아챘다. 한쪽 허벅지 옆 부분이 깊게 파여 있는 것조차, 퍽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
“슈트보단 이쪽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웃음기가 서려 있는 말에 여원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아마 목덜미까지 새붉으리라. 칼라가 높게 목덜미를 덮고 있어 보이지 않는 게 못내 아쉬웠다. 남자는 대신 훤히 드러난 다리를 노려보았다. 위험하게 파여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 부분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밑에는 어떻게 했어요.”
낮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여원이 머뭇대다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벗으라고 했잖아.”
여원이 제가 입고 있는 치파오만큼이나 붉은 입술을 치아로 꾹 눌렀다. 한참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제 허벅지 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은 치마 안까지는 차마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주춤댔다. 속옷을 벗으려면 일단 치맛단부터 걷어 올려야 하니, 망설여지는 듯했다.
남자는 입 안이 타는 기분이었다. 그는 술잔을 들어 안에 있는 액체로 목을 축였다. 당장이라도 저 치마에 감싸인 가랑이 사이를 한계까지 벌려 양껏 취하고 싶었으나, 일단은 느긋이 기다릴 참이었다. 무엇이든 기다렸다가 제 타이밍에 취해야 맛이 좋은 법이니.
여원은 체념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남자가 쉬이 물러나지 않을 거란 걸 눈치챈 거다. 이내 두 눈을 꼭 감고, 심호흡을 해 보이더니 제 치맛단을 걷어 올렸다. 남자의 눈엔 아직 한참 덜 영글어 보이기만 한 사타구니가 잠시간 모습을 보였다가, 금세 사라졌다. 여원이 말려 올라간 제 치맛단을 급하게 내려 버린 탓이었다.
여원은 치마 밑으로 속옷도 둘둘 말아 내렸다. 얇은 천이 선이 매끄러운 허벅지에 이어 무릎을 통과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여원이 주춤대며 똬리를 튼 속옷에서 제 발을 빼내 옆에 섰다. 그러곤 죄 지은 아이처럼 제 두 손을 마주 잡고는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벗었습니다.”
“…….”
남자는 젖었는지 확인하려 여원의 속옷을 노려보았다. 예상대로 약간 물이 밴 곳이 있었다. 아래를 손가락으로 쑤셔주거나 한 것도 아닌데, 제게 범해질 상상에 적신 것이다.
남자의 눈동자가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리 와 앉아 봐요.”
그가 제 허벅지 위를 눈짓했다. 그렇게 종용하는 목소리는 흥분에 끝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여원은 주춤대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느릿하게 남자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남자는 제 허벅지 위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엉덩이를 느끼며 웃었다. 여원의 허리를 팔 안에 넣고는, 허리를 교묘히 쓰다듬었다. 옷감에 손끝이 차르륵 미끄러졌다.
그의 손끝이 척추를 타고 내려와선 여원의 허벅지에 닿았다. 그가 안쪽으로 깊게 커팅된 슬릿에 손을 밀어 넣었다. 여원이 몸을 움칠하는 게 느껴졌다. 그가 은밀한 곳에 손을 내뻗으려 하자, 여원이 몸을 뒤로 뺐다. 손바닥에 착 감겨 오던 부드러운 살결. 그것이 사라지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한 티를 여감 없이 내는 그 때문에, 여원이 변명했다. 변명하듯 중얼거린다는 말이,
“안에 아무것도 안 입어서….”
고작 그따위의 것이었다. 덕분에 남자는 퍽 즐거워졌다. 당장이라도 제 허벅지에 맞닿아 있는 이 야들야들한 살덩이를 둘로 벌려 그 가운데 구멍을 쑤시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제 허벅지 위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원을 계속해서 두고 보고 싶은 마음 또한 들었다.
남자는 박진경이 놓고 간 담뱃갑을 손에 쥐어 들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잇새에 물고는, 여원을 응시했다. 여원이 로열이라 적혀 있는 성냥갑을 들어 올리더니, 갈색 부분을 성냥으로 그었다. 치익 불이 붙자 성냥 끝을 담배 끝에 붙여 왔다.
남자는 눈썹 한쪽을 구부려 인상을 쓰면서, 숨을 안으로 들이마셨다. 여원이 성냥 끝에 대고 호, 바람을 불자 불이 휙 날아갔다. 아까까지 여자들과 하던 게임을 남자 혼자서 이어 나갔다. 여원을 바라보면서, 제 앞에 놓여 있던 패 하나를 태패1)했다.
이렇게 제 허벅지 위에 여원을 앉혀 두고 있으니 담배 태우는 맛 하며, 패 만지는 맛이 한결 더 좋은 듯했다.
남자가 잇새에 담배를 물고는, 여원의 가슴팍을 주물 댔다.
“…아.”
여원은 그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번번이 신음이 튀어나왔다.
“읏, 흐응….”
이내 얇은 옷감을 뚫고 두 개의 작은 살점들이 도드라졌다.
“대표님.”
여원이 재촉하듯 남자를 부르자, 남자가 여원의 단추를 뜯어냈다. 툭, 툭, 툭. 가슴에서부터 겨드랑이를 가로지르는 단추들이 뜯겨 나갔다. 남자가 떡처럼 주물럭댄 탓에 양쪽 젖꼭지가 모두 발딱 일어서 있었다. 여원도 그걸 느꼈는지, 수치심에 이젠 눈가까지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제 무릎 위에 있는 여원을 안아 올려 테이블 위에 앉혔다. 유리로 만들어진 마작 패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쨍, 하는 소릴 냈다. 그럼에도 남자는 개의치 않고 여원의 치마 속으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여원이 질색하면서 거부했으나, 안을 추행하려는 남자의 뜻은 확고했다.
사타구니를 감싸고 있는 보드라운 솜털을 밀어 올리고 일자로 서 있는 살덩어리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 남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끄응 목을 울렸다. 협탁 서랍 안에 있던 윤활제로 제 손가락을 적신 남자가 여원의 구멍에다가 손가락 두 개를 넣곤, 안을 쑤셔 주었다.
“으, 으응….”
그것만으로도 좋다며 여원은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신음했다.
남자가 제 허리에 둘려 있는 벨트를 풀었다. 그러곤 지퍼를 지익 내려 여원의 구멍에 댔다. 이미 한계치까지 발기한 딱딱한 좆 머리가 여원의 안을 파고들어 갔다.
“…아!”
남자는 여원의 늘씬한 다리가 제 허리를 꽈악 조이는 걸 느꼈다. 이미 길을 잘 들여 놓은 여원의 구멍은 큰 무리 없이도 남자의 것을 잘 받아들였다. 몇 번의 허리 짓으로 안을 충분히 넓힌 남자는 본격적으로 안을 치대기 시작했다.
처벅, 처벅, 처벅! 비좁은 구멍 안에서 물기 젖은 소리가 났다. 천박한 날것의 소리가 남자를 한층 더 흥분하게 했다. 여원의 부드러운 살 벽에 대고 남자는 갈급하게 좆질을 해 댔다. 손아귀에 허연 엉덩이를 가득 쥐고선 터뜨릴 듯 그러쥐었다가, 철썩 소리가 나게 때렸다. 탄력 좋은 피부가 파도처럼 흔들렸다.
“……아, 아, …파!”
여원의 허리가 풀썩 꺾여 내려갔다. 동시에 구멍을 꽉 메우고 있는 남자의 기둥을 끝내주게 조였다. 한참 제 행위에 심취해 있던 남자는 목을 뒤로 홱 꺾었다. 그의 굵직한 목덜미에 검붉은 핏줄이 올라섰다.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론 묵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음.”
쫄깃한 건 이루 말할 데가 없고, 축축하기까지 해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 남자는 여원의 마른 가슴팍을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여린 젖꼭지가 남자의 거친 손바닥에 무자비하게 쓸리면서 더욱 도톰하게 부어올랐다. 남자가 붉어진 두 돌기를 제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몇 번 문질러 주다가 빙빙 돌려 주니, 여원이 정신을 못 차리곤 흐물흐물 녹았다.
“…대표님, 흑, 대표, 대표님.”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남자는 여원이 다시 한번 극치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원이 먼저 몸을 잔뜩 수축시켰다. 절정에 오르면서, 남자의 것을 아주 강하게 조였다. 밑으로 풀썩 꺼지는 여원의 몸을 안아 올려 남자는 침대로 향했다.
사정의 여운에 발발 떨리고 있는 엉덩이를 양쪽으로 확 벌리자, 여태까지도 구멍은 벌렁대고 있었다.
“……아, 아직!”
아직은 안 된다며 여원이 허리를 뒤로 빼는데도, 남자는 괘념치 않고 제 걸 꽂아 넣었다. 그의 허리 짓에 장골이 크게 도드라졌다가, 다시 푹 꺼지기를 반복했다.
불 앞에 놓인 초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여원이 시트에 얼굴을 푹 묻은 채로 남자를 불렀다.
“대표님.”
여원이 남자에게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그의 복근에 닿았다가, 바지 지퍼 사이로 보이는 검은 음모로까지 흘러내렸다. 남자가 그 손을 잡아채선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껴 넣었다.
“위로 올라와.”
남자의 종용에 여원이 몸을 벌벌 떨며 움직였다. 사타구니 부분이 이미 분비물 따위로 잔뜩 더럽혀진 여원이 제 치맛단을 손수 걷어 올렸다. 남자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는 배 위에 올라탔다.
남자는 눈까지 찌푸리며 그 모습을 모두 제 시야에 담아 두고 있었다.
여원이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단추를 열어 분리된 치파오의 윗부분이 파도처럼 너울졌다. 발갛게 일어선 젖꼭지는 전부 드러내 놓곤, 여원이 제 위에서 헐떡대고 있다. 옷의 붉은빛이 얼굴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어 어딘가 고혹적이기까지 했다. 남자는 치파오의 밑단을 배꼽까지 올려 날씬한 복부에 제 좆이 쑤셔 들어가는 윤곽까지 모두 눈에 담아내었다.
“아아!”
여원이 대뜸 허벅지 사이를 딱 붙였다. 오줌을 참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원이 제 몸에 힘을 주자, 구멍 안도 크게 조였다. 축축한 살 벽이 주는 쾌감에 으윽, 신음을 내던 남자가 여원의 허릴 손으로 틀어쥐곤 거세게 허리 짓을 시작했다. 여원의 몸이 위로 튀어 올랐다.
“자, 잠시만! 화, 화장실……!”
새된 비명에도 남자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내 여원의 자지에서 울컥울컥 하얀 물이 오줌발처럼 새어 나와 남자의 복부 위로 차르륵 쏟아졌다. 남자의 복부를 세로로 깊게 가로지르는 근육에 투명한 액체가 점점 고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원의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짤 듯이 한계까지 몰고 갔다. 여원은 발가락 끝까지 구부린 채로 바들바들 떨면서 투명한 액체를 똑 한 방울 흘리고 나서야 남자의 몸 위로 풀썩 꺼졌다.
허억, 헉. 두 사람은 몸을 겹친 채로 잠시간 숨을 골랐다.
“대표님.”
자그맣게 남자를 부른 여원이 키스해 달라, 제 입술을 벌려 보았다. 붉은 입 안에 담겨 있는 혀가 남자의 시선을 잡아채 갔다. 남자는 지체 않고 여원의 입술을 삼켰다. 혀로 여원의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자, 작은 입 안에 남자의 혀가 가득 들어찼다. 매끄럽고 축축한 입 안을 남자가 거칠게 혀로 쑤셨다.
“하, 아….”
여원이 좋다며 남자의 뺨을 제 손으로 그러쥐었다. 질척하게 얽혀 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남자는 제 뺨을 덮은 손을 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러곤 손가락 안쪽을 혀로 하나하나 핥기 시작했다. 예민한 남자의 미뢰에 매끄럽고 보드라운 피부가 질척거리는 소릴 내며 문질러졌다. 남자는 아주 집요하게 굴었다. 옥에 티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뱀처럼 혀를 움직였다.
“…대표님.”
그 야릇한 모습을 바라보는 여원의 눈가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손가락 안쪽. 남들에겐 별 의미 없는 부위일지 몰라도, 적어도 두 사람에겐 아니었다. 그 어느 곳보다 더욱 은밀하고, 뜻을 가진 곳이었다.
여원 또한 남자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었다. 그러곤 그의 약지를 제 입에 살짝 물었다. 강아지가 핥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아예 제 약지를 여원의 입에 물려 주고, 허리를 크게 휘둘렀다.
“아흑! 흣!”
하마터면 여원이 남자의 약지를 크게 물 뻔한 상황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겠지만 여원은 너무나도 화들짝 놀랐다.
“…아, 아프셨어요?”
제가 다 고통스러웠다는 듯 일그러진 눈가가 예뻤다. 남자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여원을 제 시야에 가득 담았다.
“…….”
“…….”
남자가 뭐라 답을 하지 않자, 여원은 불안해서 촉촉한 혀로 남자의 약지를 빨기 시작했다. 제가 상처를 보듬어 주겠다는 듯이, 만들어진 지 이미 20년 가까이 된 그 흉터를 핥는 것이었다.
그에 남자는 제 가슴을 깊게 파고드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어떤 약 기운보다 더욱 빠르고 강하게 이성을 짓누르고, 몸의 감각들을 마비시킨다. 제 몸을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뭐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좆같은 기분. 남자는 그것을 이겨 내려, 여원의 몸을 더욱 거세게 파고들었다. 아, 아아. 제 위에 올라탄 여원이 점점 더 높은 신음을 토해 냈다. 약지에 산발적으로 불어 넣어지는 숨결에 남자는 더욱더 흥분했다. 자신을 휘감은 그 묘한 기분에 더욱 더 잠식되어 가는 듯했지만,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들은 사타구니를 맞댄 채로, 서로의 상처 자국을 혀로 핥아 주며 개처럼 관계했다.
“…물.”
시트 안에서 팔이 하나 튀어나와선, 협탁으로 길게 손을 내뻗었다. 물컵을 찾고 있는 듯한데. 번번이 목적지엔 닿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여원을 안고 있던 남자는 그 모습을 그저 제 눈에 담고만 있었다. 그의 팔 길이라면 닿고도 남았을 테지만, 도와줄 생각 따윈 전혀 안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여원이 비척비척 상체를 조금 일으키더니, 물컵을 모두 비워 냈다. 그러곤 끙 소릴 내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원은 바로 잠들지 못하고, 조금 뒤척거렸다.
“저 밑이 너무.”
“왜요.”
아픕니까? 남자가 묻자, 여원은 힘없이 고갤 내저었다.
“그것도 그건데, 너무 축축해요.”
갈증 난다고 물까지 마셔 놓고는 축축해서 잠을 못 자겠단다.
“그렇게 싸 댔으니 당연하지.”
나직하게 나무라는 말에 여원이 집 안에 몸을 숨기는 달팽이처럼 시트 안으로 푹 코까지 묻었다. 남자는 제 품에 여원을 끌어다 놓고, 멍청한 이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
어느새 2월에 접어들었다. 남자는 건조한 바람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이 정도면 마중 나와 있어야 하는데. 외출했다고는 보고받지 못했으니, 화장실 안에 있을 거였다.
남자는 제 재킷을 목재 행거에 걸어 두곤 화장실로 향했다. 문 안쪽에서 철벙철벙하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지체 없이 문을 열었다.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언제 오셨어요?”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있던 여원이 놀라선 얼른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의 눈이 그런 여원의 몸을 훑어 내렸다. 배 부근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바지는 허벅지 바로 밑까지 돌돌 말려 있어 톡 도드라지는 무릎을 그대로 내보였다. 방금 전까지 손을 담그고 있던 것 같은 대야 안에는 흰옷이 담겨 있었다. 남자는 어렵지 않게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제가 어제 입고 있던 셔츠였다.
여원이 얼른 제 바지를 발목 끝까지 내렸다. 그러곤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셔츠는 세탁기에 돌리면 옷감이 상해서.”
이미 여원이 이따금씩 제 셔츠를 손빨래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두 눈으로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부족한 것 없이 양 주머니에 돈이 차고 넘치게 해 주고 있는데. 생활 습관이 그리 쉽게 바뀌는 건 아닌지, 아직까지도 이렇게 청승을 떨곤 했다. 궁핍하던 과거가 여원의 몸 곳곳에 이끼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원은 대야를 뒤로하곤 화장실 밖으로 나와 남자에게 물었다.
“저녁은 드셨어요?”
어찌나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는지. 창백하던 양 뺨에 약간 붉은 홍조가 피어 있었다. 남자가 제 앞에 있는 이의 꼴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자, 여원의 얼굴이 불붙은 성냥처럼 화악 달아올랐다. 여원이 제 뺨을 물 묻은 손등으로 문질렀다.
“씻고 나오세요.”
남자는 가운으로 제 몸을 감싸고 거실로 나왔다. 매콤한 내가 집 안에 가득했다. 여원이 국자로 냄비 안을 휘젓고는 그릇에 조금 떠서 맛을 보았다. 촙촙,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확신이 서지 않는지, 소금을 조금 더 뿌린 후에 다시 맛을 보았다.
남자는 테라스로 향했다. 거무스름하게 탄 자국이 남아 있는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태웠다.
둘은 저녁에 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여원은 여느 때처럼 얌전을 떨며 뺨 안에 있는 음식을 우물거리다가,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러곤 또 남자를 힐긋댔다.
“할 말이 있는데.”
무엇이냐고 묻자, 여원이 한참을 입술을 들썩이다가 말했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으나, 남자는 인내심을 발휘해 느긋이 여원을 기다려 주었다.
“아무래도 골프장 일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이맘때쯤이면 그만둘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원이 변명처럼 이유를 늘어놓았다.
“…이제 날이 풀리니까. 고객들이 새로 들어올 때가 됐잖아요.”
남자는 아주 넓은 아량을 발휘해, 그리해도 된다고 승낙했다.
“죄송합니다.”
작게 사과하는 여원의 얼굴엔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다. 남자가 자신에게 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하등 쓸데없는 일인 줄 모르고 말이다.
남자는 여원을 떠보듯이 물었다.
“그럼 이제 뭘 해 보려고요.”
여원이 아랫입술을 꾸욱 물더니,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무능력한 저 자신이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는 제 앞에 놓여 있는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흰 두피 위에 제 주인처럼 정갈하게 난 연갈색의 머리칼들. 그걸 노려보며, 여원 모르게 입꼬리를 길게 찢어 웃었다.
한동안 학교에서 겉돌았다고 보고 받았다. 거기다 유일하게 어울려 다니던 여학생과도 거리가 벌어졌다 들었다. 남자의 망막 안으로 여원을 데리러 갔던 날 보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끝내주게 불쾌해 남자의 턱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술집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 했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남자는 비틀대며 나오는 여원을 보고는 다시 등줄기를 일자로 폈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여원은 얼굴에 이어 목까지 발갛게 물들인 채로 휘청댔다. 여학생이 딱 달라붙어 부축해선 여원을 어딘가로 이끌었다. 남자는 어둠 속에 숨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액셀을 누르고 있는 구둣발이 들썩거렸다. 그쪽에 힘이 들어갈 것 같아 몇 번이나 그 개 같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여학생은 마침내 그 촛농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몸을 벤치에 앉혀 놓았다.
여원의 고개가 바람 밑에 놓인 개풀처럼 맥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에 여학생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여원의 머리를 제 어깨로 눌러 기대게끔 했다. 키가 더 작은 탓에, 여원의 목이 거의 수직으로 꺾였다. 그 덕에 셔츠 칼라 안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목이 드러났다. 여학생의 눈길이 그쪽으로 끌렸다. 아주 당연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눈앞에 두고 식욕을 느끼는 건 인간으로선 아주 당연하니까.
그러나. 여원의 목에 여학생의 손길이 닿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제 성질 같아선 다른 이들에겐 철저히 불가침 영역이어야 할 부분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무방비한 얼굴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이젠 집에만 틀어박혀서 살림이나 해야겠네요.”
“아마도 당분간은.”
우물쭈물하던 여원은 당분간이라며 그 기간을 좁혔다. 그에 남자는 눈썹을 휙 추켜올렸다.
“당분간?”
하아, 남자가 낮고도 길게 숨을 뱉더니, 여원에게로 손을 뻗었다. 여원은 유순히 남자의 손길에 따랐다. 약간 취기가 도는지 눈에 초점이 조금 없었다. 그때도 이런 눈빛을 하고선 그 여학생의 손길이 제 목에 닿게끔 유도했을 거라 생각하면, 몸에 불붙은 구렁이들 따위가 배 속에 드글대는 기분이었다.
“집구석에 처박혀서 내 식사나 차리고, 내 셔츠나 빨고 다리는 게 편한 거 아니었나?”
입 안이 타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던 여원이 남자에게 되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그러고 있기를 바라세요?”
물음이 되바라졌다. 구부러져 있던 남자의 눈썹이 한층 더 큰 각도로 꺾였다.
“네가 그러는 게 더 편하잖아.”
남자의 눈, 혹은 콧대 위 그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던 여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너무 생활력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왜.”
남자가 묻자, 여원은 답하는 걸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해 보였다. 한참 머뭇대더니, 조심스레 첫 운을 뗐다.
“대표님이.”
취기에 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장기주 씨가.”
남자는 여원의 눈을 가리는 머리칼을 치워 내며,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라도 마음 바꾸실 수 있는 거니까.”
예상보다 더 뜻밖인 말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눈이 평소보다 조금 크게 뜨였다. 방금 들었던 말을 곱씹어 보던 남자는 이내 의심으로 머릴 물들였다. 제 생각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단 뜻인 걸까. 나중에라도 제가 놓아줄 거라 기대하고 있는 거라면, 그 얼마나 영악하고도 터무니없는 생각을 이 머리에 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원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멍청하고도 순진했다.
“그럼 저는 그때 어떡하죠.”
무언가 했더니, 버려질 제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였다. 서여원이 생각보다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남자는 거친 손등으로 여원의 뺨을 어루만졌다.
제 셔츠를 빨고 있는 여원을 보자마자,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기나 할까.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여원이 제 아이를 배 속에 품는 걸 상상해 보았다. 물론 아이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제 아이를 밴 서여원이 궁금했을 뿐. 제 씨앗을 속에 품고는 하루하루 싹을 틔워 나갈 여원의 얼굴은 어떠할까. 제가 내어 준 집에서, 제가 사 준 옷을 입고, 제가 싸질러 놓은 씨 때문에 배가 불러선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저만 기다리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손끝이 찌릿찌릿할 만큼 쾌감이 느껴졌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쾌미를 느끼던 남자는, 제 면상 밑에 그 저열한 욕구를 숨겼다. 그가 태연함을 가장한 채 나직이 말했다.
“그럼 내가 서여원을 버리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여원이 고갤 주억거렸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해 봐.”
여원은 우울감에 젖은 것처럼 보였다. 눈시울이 붉었다. 여원이 술이 마시고 싶어 저를 찾아 로열까지 왔다는 날. 여원의 얼굴이 그날 어땠는지, 남자는 되새겼다. 바들바들 떨리는 속눈썹에, 물기 어린 눈동자. 파도처럼 떨리던 입술은 상처 받은 동물의 얼굴이었다.
그는 잠든 여원 옆에서 김중덕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중덕은 여원이 차에 타면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으니 알아 오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이튿날 보고 받은 내용은 가관이었다. 그러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여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문들이 제 상상보다 더욱 추잡스러웠다. 이런 면에서 눈치가 빠른 편이니, 여원이 모르고 있을 리도 없을 것이고.
“버리지 말아 주세요.”
불분명한 목소리로 뱉어 놓고는, 남자에게 매달렸다. 남자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속눈썹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남자를 올려다봐 왔다. 여원은 눈빛으로써 그의 답을 구했다.
답이 없자 서서히 불안감에 젖어 드는 눈동자를 보면서 남자는 속으로 작게 신음했다. 희열을 담은 탄식이었다. …여원이 제게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안겨오는 것에서 오는 쾌감, 역시 제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는 데서 오는 쾌미.
어찌나 폭발적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지, 정신적인 쾌감이었음에도 아랫도리가 묵직하게 부푸는 느낌이었다.
술 취한 채로, 하느작거리는 몸을 아무에게나 기대는 걸 봤을 때. 남자가 제 성질대로 행동하지 않은 건, 수많은 것들을 계산에 넣고 도출해 낸 결과 때문이었다.
물론 남자는 엄청난 자제심을 발휘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하루에 수십 번, 그 장면을 찢어 발겨 버리는 상상이 뇌리를 가로지르곤 했다. 흉부에 폐수가 가득 차 출렁이는 듯한 불쾌한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뼛속까지 사업가인지라,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경계했다.
다만, 그는 이번만큼은 서여원이 행동하길 기다렸다. 자신이 분노를 간신히 억눌러 여원을 봐준 만큼, 서여원도 변한 바가 있었음 했다. 그토록 바라왔던 평범한 삶, 윤미현을 등지고 그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하루 이틀, 얼마 허락되지 않은 인내심이 뚝뚝 잘려 나가려던 찰나에.
이 서여원이 자신을 택했다.
“원래는 날 풀리면 바다에 가기로 했었는데.”
여원이 작게 읊조렸다. 촉촉이 젖은 눈을 하고, 무언가를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이 애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누구와 바다를 가기로 약속한 건진 굳이 묻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여원의 이마에 입술을 붙이며, 기꺼이 가 주겠노라 답했다.
***
남자는 짧은 수면 이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제 가슴팍 한쪽에 기대어 있던 여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제 가슴팍을 누르던 무게감이 가시자, 그의 눈매가 불쾌감에 찌푸려졌다.
여원의 기척을 쫓던 남자는 부엌 쪽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는 그제야 씻고 나서 부엌 쪽으로 향했다. 집안에 원두 냄새가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주방 안을 서성거리던 여원이 남자를 맞았다.
“일어나셨어요.”
가운을 느슨하게 걸친 남자는 말없이 테라스로 들어갔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뒤쪽에서 문이 열렸다. 여원이 커피 두 잔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허연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동트기도 전,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남자는 몸을 풀기 위해 인적이 드문 새벽이나 밤 시간대를 이용해 수영을 하곤 했다. 레일을 반 바퀴 돌고 물 위로 나오는데, 한쪽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원이 어느새 물에 무릎까지 담그고 있었다. 제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내려다보면서, 그걸 만지작거렸다. 남자는 다시 물속을 가르고 들어갔다. 속이 모두 다 비치는 물 안에서 여원의 두 발이 엇갈리며 발장구를 쳐 댔다. 밀가루처럼 하얀 작은 살점 덩어리들이 물 안에서 너울지는 걸 바라보던 남자는 여원의 앞에서 타일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물에서 나왔다.
“웬일로 물에 들어오기를 하고.”
“윗옷을 못 벗으니까 못 들어가고 있던 건데요.”
“아, 그렇겠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는 남자는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다음 날, 두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대에 수영장 입구로 향했다. 아직 잠이 덜 깨어서 몽롱한 여원의 두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뜨였다. 이 시간대면 원래는 열려 있어야 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
여원이 당황한 눈길로 남자를 돌아봤다. 남자가 문으로 다가가, 카드를 대고 비밀번호를 찍으니 도어 록이 풀렸다. 여원의 의아한 눈길이 남자의 얼굴로 닿아 왔다. 4시부터 6시까지, 남자가 다른 이들의 출입을 막아 놓았다는 걸 여원이 알 리 없었다. 원래도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대이기는 했으나 만일에 대비해 손을 써 둔 것이었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온 여원은 여느 때처럼 선 베드에 앉으려 했다. 여원에게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여원은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남자의 말에 엉거주춤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다. 티셔츠를 입은 채로 조금 낯선 듯이, 제 몸으로 물을 끼얹던 여원이 물 안으로 들어왔다. 적응을 해 보듯 천천히 안을 돌아다니다가, 이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레일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수영 자세가 거의 선수에 가까울 만큼 완벽했다. 물 밖으로 나온 남자는 타월로 제 몸을 가벼이 훔쳤다. 남자는 여원에게 제대로 수영을 배운 적이 있느냐 물었다.
“…아, 학교 입시할 때 시험 과목이었어요.”
여원은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기를 제거하느라 남자가 테이블 한쪽에 빼놓은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치 제 것을 만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반지 때문에 사람들이 대표님 유부남인 줄 알던데.”
“그래서요.”
여원이 머뭇거리더니 남자의 손 쪽으로 제 손을 뻗어 왔다. 톱니바퀴 자국이 난 약지에 반지를 천천히 끼워 넣었다. 반지가 내려앉은 제 손을 내려다보다가, 남자가 나직이 물었다.
“나한테 유부남 행세라도 하라고?”
여원은 목덜미까지 붉힌 채로 남자의 시선을 회피했다. 타월에 제 얼굴을 푹 묻고는 물기를 제거하는 척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
남자는 평소보다 조금 느슨한 차림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여원이 자꾸 할 말이 있는 듯 남자 쪽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붙였다 했다. 딱 뭐 마려운 것 같은 동물의 모습이었다. 그 얼굴을 앞에 두고, 남자는 어제 김중덕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들이 김중덕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듣던 남자는 한 대목에서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낮에 백화점에 들렀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남자가 물었다.
‘거긴 왜.’
‘2층 서점에서 한식조리사 기초부터, 라는 책을 하나 구매했습니다.’
어제 저녁 식탁에서 여원은 요리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며 남자에게 넌지시 제 뜻을 전해 왔다. 남자는 눈앞에 있는 이를 제 시야에 담았다. 처음으로 아주머니 없이 혼자서만 만들어 본 저녁이라고 밝힌 음식들을 앞에 두고, 여원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답변을 선고처럼 기다리는 두 큰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했다.
남자는 손에서 젓가락을 놓고, 대신 식탁의 양 끝을 손아귀에 쥐었다. 큰 식탁이 그의 품 안에 넉넉히 모두 담겼다. 그가 가벼이 턱 운동을 하다가 물었다.
‘본격적으로 살림이라도 배우겠다고?’
이기죽거리자 여원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여전히 남자의 속뜻을 알 수 없는지, 조금 초조해 보였다.
그때까진 로열 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두고 가끔씩 이진석에게서 주요한 소식만을 전해 듣고 있던 중이었다. 언제든 여원이 원한다면 양여해줄 수 있게끔 손을 써 둔 것이다.
김 사장이 그토록 손에서 놓기 싫어했던 사장 자리는 한사코 마다하고, 제 집에서 살림이나 배우겠다는 어리석은 이에게 남자는 지껄였다. 입술이 자꾸만 비틀려 올라가려 해 입가 근육을 억지로 굳혀야 했다.
‘김중덕에게 일주일에 2번, 일대일로 하는 수업을 알아오라 하죠.’
여원이 눈 꼬리를 접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이거는 제가 인터넷에서 레시피 보고 한번 해 본 거예요.’
여원이 국자로 국물을 조금 떠서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제 시야 앞에 놓인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접시마다 김이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부러 자신이 올 때에 맞춰 식탁을 차려 음식엔 늘 온기가 차 있었다. 그는 시선을 다시 올려 여원을 마주 보았다. 예전엔 기껏해야 속눈썹으로 제 눈을 가리고 있던 여원이 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대고 있었다. 제 샅을 감싼 솜털보다 풍성한 속눈썹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오롯이 저만 제 시야에 가득 채웠다.
“…대표님?”
자신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남자는 짧은 회상을 마쳤다.
“……그리고?”
“그리고 로열에서 받은 월급으로 반지 하나를 구매했습니다.”
…반지? 게다가 남자의 카드로 긁은 게 아니라, 월급으로 구매했다기에 더욱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남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여원을 응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원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원래는 제 것이었던 반지가 여원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새로이 샀다는 반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눈이 계속해서 여원이 샀다는 그것을 추적해 나섰다. 그러고 보니 주머니 한쪽이 유달리 조금 불룩한 듯도 했다.
전면의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던 여원이 작게 와, 탄성을 냈다. 커다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원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도 남자의 시선은 오로지 그 허연 얼굴에만 박혀 있었다. 여원이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와선 조심스레 남자를 불러 왔다.
“대표님.”
드디어 결심을 내린 듯 여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릴 게 있어요.”
약간 옅은 빛을 띠는 눈동자는 고요했으며, 입가엔 수줍은 미소가 걸렸다.
두 사람을 태운 까만색의 차체는 도로를 계속해서 내달렸다.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길이 너무나도 길고 길어, 끝이 보이지 않는가 했더니.
드디어 목표점에 도달했다. 제가 손에 넣은 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고 있는 남자의 입가에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고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