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이름 모를 손님
로열 골프장.
입사한 지 이제 막 2주 차에 접어드는 신입은 밀대로 홀 바닥을 닦고 있었다. 돈지랄도 아주, 이런 돈지랄이 없지. 바닥을 온통 대리석으로 깔아 놓아, 하루에도 수십 번 쓸고 닦아야 그 광채가 유지가 됐다. 넓기도 어디 좀 넓은가.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넓어서 쓸고 닦다 보면 반나절이 훅 지나갔다.
무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슬렁슬렁, 움직이다가 입구로 들어오는 사장과 딱 마주쳤다. 신입은 빗자루를 일자로 세우곤, 얼른 고갤 조아렸다.
“안녕하세요.”
“…네.”
빛 한 점 못 본 것처럼 하얀 얼굴. 그 덕에 작게 달싹이는 붉은 입술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사장이 신입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신입은 저 말도 안 되게 젊은 사장의 뒤태를 빠르게 훑어 내렸다. …어째,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마다 죄다 명품이다. 괜한 열등감이 속에서 치달아,
처음 봤을 때부터 여간한 금수저가 아닐 거라곤 생각했다. 기껏해야 20대 중반이나 됐을까 싶은 앳된 얼굴로 이런 큰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니. 이거, 웬만한 뒷배 없이는 불가능한, 일반인으로선 상상도 못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혀끝이 떨떠름했는데.
저만 그런 생각을 품은 건 아닌지, 며칠 전에 라커룸에서 쑥덕대는 소리를 들었다. 직원들이 고객들의 골프 백을 정리하며, 목소리를 낮춘 채 저희들끼리 뒷말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 사장 말이야, 왜 저렇게 젊어?’
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가 물었다. 그에 질문을 들은 직원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선 내뱉는단 말이 아주 가관이었다.
‘나 들어왔을 땐 저 자리에 누가 봐도 내가 사장이다, 얼굴에 써 붙인 돼지 상 인간 있었어.’
‘근데?’
먼저 들어온 직원이 목을 쭉 빼고 이리저리 기색을 살폈다. 몰래 엿듣고 있던 신입은 시선을 느끼곤 휴대폰에 고갤 푹 박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하고 있으려니까, 그제야 말을 이었다.
‘그 사장도 처음엔 직원으로 들어왔었어. 애인 하나 잘 물어서 한자리 꿰찬 거야.’
‘…뭐? 여기를?’
쉬잇, 조용히 해. 목소리가 높아지니 조용히 하라며 입단속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다 듣고 있단 거 알면서도 저러니 우스웠다.
‘그렇게 얌전하게 생겼는데?’
‘저런 타입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족을 못 쓰지.’
둘은 라커룸을 나갈 때까지 저희들끼리 쑥덕거렸다. 룸의 문이 닫히자, 신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얘길 듣고 나니 안 그래도 재수 없던 놈이, 더 재수 없어 보였다.
고생 한 번 안 해 본 것 같은 미끈한 낯에, 비율 좋게 잘 짜인 뼈대에 달라붙은 늘씬한 근육. 누구는 먹고 살기 힘들어 밤낮없이 작살나게 일하는데. 누구는 반반한 얼굴로 애인 하나 잘 물어 희희낙락하게 잘 사는 게, 아주 세상이 불공평해 보였다.
재미없는 삶, 따분하기만 한 오후. 스케줄이 비어 호텔에서 서빙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실례하겠습니다.”
펜트하우스 가장 안쪽에 있는 1104호 문을 두드리자, 처음 보는 고객이 문을 열고 나왔다.
“들어와요.”
키가 아주 큰 거구의 남자였다. 눈동자가 그의 칠흑 같은 머리칼만큼이나 시꺼메 인상적이었다. 고객들의 정보를 분류해 놓은 파일에 따르면 이 남자는 소문의 그 장 대표일 거였다. 돈 아주 잘 벌고, 아주 잘 쓴다는 그 젊은 대표.
눈에 띄는 미남이었으나, 왜 소문에 외모 얘기가 별로 없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진 분위기가 외양보다 압도적인 느낌이 강해서가 아니었을까. 테이블 위에 룸서비스를 세팅하며, 신입은 저 혼자 추측해 보았다.
그러다 와인 병을 들어 올리는 남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유부남인가? 파일에선 그런 정보를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신입은 조금 의아해졌다. 겉으론 거의 표를 안 내고 있으면서, 속으론 끊임없이 남자에 대해 추측하던 신입의 머리 위로 울림이 묵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사장 좀 불러 줄래요?”
“네, 미리 연락을 하고 오셨을까요?”
남자가 말없이 주시해 왔다. 그딴 것까지 내 손으로 하고 왔어야 하나. 그런 얼굴이라, 아차 싶은 신입은 얼른 수습하려 했다.
“바로 연락 취해 보겠습니다.”
신입이 룸 안으로 갖고 들어온 트레이를 놓고, 돌아서서 나가려 할 때. 남자의 시선이 문밖으로 옮겨 갔다. 그가 가죽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낮게 읊조렸다.
“왔네, 저기.”
이윽고 누군가가 문을 똑똑 노크했다.
“예, 누구십니까.”
신입이 나가서 문을 열자, 밖에 사장이 서 있었다. 신입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사장이 들어와선 고객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고객은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굵직한 목 중간에 있는 목울대가 꿀꺽꿀꺽 울렸다. 사장은 반쯤 내리깐 눈으로 고객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고객이 와인 잔을 내려놓곤, 젖어서 묘하게 반들대는 입술로 말했다.
“매출 많이 떨어졌던데.”
“그야 겨울이니까요,”
들릴 듯 말 듯한 사장의 목소리에 남자의 턱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입아귀가 길게 찢어졌다.
“…그리고 사람들도 다 알아요, 저 바지 사장이란 거.”
하, 이번엔 남자가 흉통을 들썩이며 낮게 웃었다. 골프채 헤드만큼이나 커다란 손으로 사장의 목을 쓰다듬고는, 나지막하게 종용했다.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봐.”
“…저 바지 사장인 거 다들 안다고요.”
“이젠 아주 한마디를 안 지지.”
날카로운 말에 사장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고객이 “응?” 하고 반응을 요구해도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고객은 픽 느슨하게 웃으면서 마디가 제법 굵은 손가락으로 사장의 귓바퀴를 매만졌다. 은밀한 부위에 닿고 있는 손길에 신입의 머릿속으로 ‘뭐지?’ 란 물음이 가로질렀다. 저도 모르게 둘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제게로 닿는 시선을 느꼈다. 사장이 곁눈으로 절 힐긋하고 있었다.
신입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손에 쥐고 있던 포크 나이프 세트를 얼른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만 가 보셔도 됩니다.”
“네, 즐거운 시간 나누십시오.”
사장의 말에 신입은 묵례하며 룸 밖을 나섰다. 트레이를 밀고 나오며 신입은 미간을 찌푸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홀로 향할 때까지, 아까 본 장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묘하게 찝찝한 구석이 있어, 도저히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는 것이었다.
장 대표란 남자의 손톱이 사장의 귀 끝을 살짝 긁어 내던 장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