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XX 2부
01.
선착장에 내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2월의 겨울이 되었다. 스치는 바람이 칼이 되어 손끝을 저미는 엄동설한.
오늘도 작업장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인부들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분명 아침 뉴스에선 오늘이 영하 몇 도라고 그랬는데, 인부들의 이마와 목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들 사이에 존재감 없이 섞여 있던 나도 마찬가지로 흙 칠갑을 한 상태였다. 눈은 매웠고, 코는 따가웠다. 지이잉, 멈출 만하면 다시 들리는 굉음 때문에 머리도 너무 지끈거렸다.
“…….”
이젠 좀 쉬고 싶었지만,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하는 할당량이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곤 목 토시를 코밑까지 끌어 올렸다. 창문을 타고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철렁, 임시로 설치해 둔 발판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아찔한 4층 높이. 그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섬을 에워싸고 있는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수평선이 물결치는 것 같다고 느낀 순간, 순간 눈앞이 아득했다. 얼른 머릴 흔들어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잡았다.
차가운 벽을 손으로 짚어가며 한 발짝, 한 발짝 뗐다. 뻥 뚫린 밑으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여기에서 발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가는 골로 가기 딱 좋아 보였다. 두려움이 벌컥 일었지만, 이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
톱으로 자른 철근을 무사히 위로 전달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철근이 쌓여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는데. 눈 위치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있는 안전모 위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씨! 그거 이쪽에다 가져다 놔!”
이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거기 말고!
째앵, 바로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공기를 채찍질했다. 난 흠칫 놀라 얼른 등을 돌렸다. 동시에 땅 위에 흩어져 있던 분진이 순간적으로 모래바람을 훅,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참사에 얼른 팔로 코를 틀어막았다.
입 안에서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콜록콜록.
“뭐 하는 거야, 씨팔!”
술과 담배에 쩐 목소리들이 공사장 판을 요란하게 울렸다. 실수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목소리가 모래사장 같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정신 안 차려?! 당신이 사인을 제대로 보냈어야지!
순간 바짝 얼어붙었던 난 금세 정신을 차렸다. 긴장을 풀기 위해 팔 토시를 한 번 고쳐 끼웠다. 목장갑도 한껏 끌어 올려 손목을 완전히 덮었다. 주변에선 아직 다툼이 한창이었지만, 난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척, 다시 손을 놀렸다. 어깨가 빠질 듯 뻐근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 잠깐 숨 돌릴 틈이 주어졌다. 바람 청소기로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먼지를 밀어 내곤, 식당으로 우르르 들어서는 무리 끝에 달라붙었다.
대부분은 그릇에 코 박고 먹느라 숨소리도 안 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도 이따금씩 내게 관심을 보여 오는 이들이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는 식당 아주머니였다.
벽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앉아 숟가락질을 하던 참이었다. 평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말이다. 아주머니가 내 바로 앞에 반찬 그릇을 내려놓더니 물어 왔다.
“왜 어린 청년이 즈어기, 육지로 안 나가고 이런 데로 엉덩이 비비러 들어왔대?”
“…….”
“얼굴도 뽀야안해서.”
당황스러워 눈동자만 도르륵 굴렸다. 대답이 없자, 모든 이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해 왔다. 퍽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그에 난 기계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조용한 곳이 좋아서요.”
싱거운 대답이었다. 아주머니는 많이 먹으라며 어깰 토닥이곤 등을 돌려 가셨다. 내 쪽에 쏠려 있던 시선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남몰래 허벅지에 슥 문질러 닦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머릴 비우고 일을 하다 보면 해가 금방 기울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작업 반장이 어디선가 나타나 하얀 봉투를 나눠 줬다. 하루 일당은 17만 원. 꽤 넉넉한 편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받았었던 월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액수이지만. 뭐, 이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인부들은 먼지로 옷감을 짠 듯한 옷을 입은 채로 작업장을 나섰다. 하나같이 뒤풀이 생각에 들떠 있었다. 고기에다 술을 하겠다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난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축축하고 짠 바닷바람이 등을 떠밀어 댔다. 목을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수축하자, 등에 난 땀이 습기와 뒤엉겼다.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얼른 뜨거운 물로 씻고 싶다.’
그 일념 하나로 열심히 발을 굴렀다.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분진이 땅 위로 뚝뚝 떨어졌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고갤 들어 산을 깎아 만든 마을을 올려다보았다.
“…….”
낡은 집들은 회오리 모양으로 산의 군데군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집들을 구분해 주고 있는 벽들은 부분 부분 깨져서 동네 개들의 오물 덩어리로 오염된 지 오래였다. 혹은 술에 취해 몰래 남의 담벼락에다 오줌발을 갈기고는 개 탓을 하는 인간의 것들이거나.
휘이이잉. 바닷바람이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한층 더 불쾌한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얼굴이 절로 팍 찌푸려졌다.
계단을 발로 밟자, 전봇줄 위에서 몸을 지탱하고 있던 회색 새들이 후루룩 소릴 내고 날아갔다. 놀라 자빠지며 뿜은 깃털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로 흩어졌다. 어둑한 색의 깃털들을 짓밟으며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머리 위로는 복잡한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는 전봇줄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들은 껌뻑껌뻑, 당장이라도 수명을 다할 것처럼 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부의 혜택 따윈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섬. 음산한 기운을 머금은 바다 때문일까. 전체적으로 음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친숙했다. 오랜 시간 이런 곳에서 자라 온 내겐 그저 일상의 한 자락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집 바로 앞에 있는 슈퍼에 잠시 들렀다. 허기를 채울 음식들을 고르고, 담배 한 갑을 샀다. 얄팍한 검은 봉지를 손에 든 채로 빠져나와, 슈퍼 바로 옆에 있는 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다이얼을 누르곤, 허공을 응시했다. 뚜르르, 수화음이 길게 울렸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전화는 상대방에게 닿지 못하고 끊겼다. 두 번 더 시도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수화기를 내려놓고 물러섰다. 전화 부스에서 나와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부로 벌써 일주일째다.
삼촌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예전부터 워낙 제멋대로인 인간이긴 했다. 일 년 동안 집에 들어온 횟수를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던 치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나가 뒤졌나 싶으면, 그때서야 그 좆같은 면상을 들이밀어 오곤 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걸까.
“…….”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 잡생각들이 자꾸 뭉게뭉게 크기를 키워 나갔다. 집으로 가는 내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빌라 입구에 도달해서야 머릴 마구 흔들었다.
그자는 원래 그런 치잖아. 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돈 필요할 때 되면 또 그 특유의 뻔뻔함으로 맡겨 놓았다는 듯 요구하겠지.
삼촌 생각은 애써 한구석으로 밀어 내곤 천천히 허름한 빌라 안으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볼썽사납게 깨져 있는 계단을 올랐다. 철문에 붙어 서서 열쇠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저벅.
밑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뒤로 몸을 홱 돌렸다. 놀라서 확장된 시야로 가장 먼저 까만 옷이 보였다. 명치가 쿵 내려앉았다. 머리 뒤 꼭지까지 소름이 돋아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상대를 응시했다. 올라오던 상대가 입술을 들썩거렸다.
“뭐요?”
그의 목소리가 파들짝 놀란 내 정신을 일깨웠다. 다시 보니 위층에 사는 중년 남자였다. 남자가 내게 이상하단 눈빛을 보내더니,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저벅저벅. 위층에서 남자가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콰앙,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난 얼른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 냈다. 벽지에 핀 곰팡이마저도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발을 서둘러 옷장으로 향했다. 너무 낡아 판자때기에 가까운 옷장 문짝엔 자물쇠 세 개가 달려 있었다. 모두 내가 직접 박은 거였다.
점퍼 안주머니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열쇠를 꺼내 모두 돌려 땄다. 철컹, 철컹, 철컹.
“…….”
옷장 문을 열고, 둥글게 말려 있는 이불 사이로 손을 쑤셔 넣었다. 팔꿈치까지 깊숙이 밀어 넣고 안에서 시트 보따리를 꺼냈다. 그걸 일일이 풀어 헤쳤다. 꽁꽁 숨겨져 있던 지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강박적으로 지폐를 일일이 셌다. 손안에서 지폐가 착, 착 소릴 내며 넘어갔다. 액수가 어제 셌던 것과 맞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했다. 아직도 여운이 남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마르기만 한 중년 남자는 그 어디에서도 까만 정장의 사내를 연상해 낼 수 없었다. 입고 있던 까만색 점퍼만 아니라면.
까만색. 그걸 눈앞에 떠올렸을 뿐인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다시 시트로 지폐들을 감싼 후,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 놓았다.
자물쇠도 일일이 잠그고 나서야 화장실로 향했다.
온수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조금 걸리니, 물을 졸졸 흐르게 틀어 놓곤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어 냈다. 물 옆에 서서 속옷만 입은 상태로 추워서 어깰 껴안았다. 차단되지 않은 외풍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분진 잔여물들이 씻겨 나갔다. 물을 손으로 받아 세수하며 상념도 함께 떨쳐 내고자 했지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몸을 씻은 후엔 갖고 들어온 옷들을 간단히 손으로 빨았다. 옷이라고 해 봐야 오늘 입은 작업복, 속옷, 양말, 토시 따위가 전부다. 이런 소량의 빨래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라, 샤워하는 김에 빨고는 했다.
버억, 벅. 모래를 떨어내려 문지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신체 구석구석에서 바늘로 들쑤시는 것 같은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
이런 육체노동은 아주 진득한 피로를 남겼다. 일 끝나고 돌아가면 영락없이 녹초 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이 겨울이라 낮이 짧고 볕이 약하다는 점이다. 가을만 하더라도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땐 피부가 온통 따끔거렸다.
물론 라운딩 돌 때도 필드 위에 서 있는 게 괴롭긴 했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동하는 시간도 제법 기니까, 한여름에도 자외선 차단제로 견딜 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공사장 판에선 하루 반나절은 무조건 볕 아래에 있어야 했다. 유달리 약한 피부를 고스란히 낮볕 밑에 제물로 내놓아야 했다. 아침노을이 봉숭아 물 들인 빛으로 타오르는 가을은 거의 고문이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목 뒷부분이 벌겋게 익었고, 며칠이 지나자 뱀처럼 허물을 벗기도 했었다.
별수 없이 얼굴과 목, 팔, 밖으로 노출되는 신체란 신체는 모두 천때기로 가리는 걸 택해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
인구 유입이라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섬. 매해 교육과 취업으로 유출만 이뤄지고 있는 섬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20대의 이방인. 처음엔 인부들은 그런 날 무슨 외계인 보듯 봤었다.
‘상판때기는 밀가루 반죽처럼 하얀 놈이 거추장스럽게 뭘 저렇게까지 둘둘 싸매 놔. 뺀질거리는 거 아니야?’
일할 땐 그저 간편히 입는 게 최고라 생각하는 자들이니. 내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그들한텐 유난 떠는 걸로 보였을 거였다.
그에 따가운 눈총들이 화살처럼 몸에 꽂혀 왔었다. 그 아무리 미세한 실수라도 포착해 내려는 듯, 내가 만드는 모든 움직임을 감시했다.
그래서 더 이 악물고 일했다. 섬이라서 이런 개발 공사가 아니면 일할 데를 쉽게 찾을 수 없으니까, 불필요하게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일을 습득하는 과정에선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사장에서 굴렀던 잔뼈가 제법 굵었던 덕분이었다.
경계 어린 시선들은 며칠이 지나자 차차 수그러들었다. 트집거릴 잡아내지 못하자, 흥미를 잃은 듯했다. 그들이 이방인에게 갖는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
옷감들을 꽉 쥐어짜, 거실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방으로 들고나왔다. 꽈배기처럼 말린 옷감들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 걸쳐 놓았다.
일과를 모두 끝내니 이젠 허기가 졌다. 마트명이 적힌 검은 봉지를 뒤적거렸다. 레토르트 음식을 데워 칠이 다 벗겨진 좌식 테이블 앞에 앉았다.
적막이 싫어 리모컨으로 손바닥만 한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 빗발 같은 세로 물결이 치더니,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집 안에 흐르던 정적이 삽시간에 깨졌다.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억지로 욱여넣었다. 힘겹게 밑바닥을 본 일회용 그릇을 정리한 후, 수저를 닦고 이불 위로 누웠다.
가장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몇 번 몸을 뒤척거리자, 귓가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눈꺼풀이 절로 끔뻑끔뻑, 씀벅여졌다. 손끝에 힘이 풀리더니 사지가 낡은 천 위에서 나른하게 늘어졌다.
고된 노동 후, 며칠 만에 거세게 밀려들어 오는 잠기운을 이길 방법이란 없었다. 수마가 해일처럼 날 덮쳐 왔다. 난 깊은 바다 밑 같은 무의식의 세계로 이끌렸다.
***
까마득 멀어졌던 정신이 어렴풋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처음 느낀 감각은.
…갑갑해.
그래, 갑갑하다는 거였다. 가슴팍 위에 바위 덩어릴 얹어 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아직도 공사판 한가운데에 있는 건 아닌가 했다. 낮에 추락했던 철근이 기어코 내 몸 위로 떨어져, 지금도 내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는 거라 착각했다.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선 눈을 떠 봐야 했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어둠과 마주한 순간. 허억, 난 헛숨을 들이켰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짐승의 것과 같은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난 소리 없이 경악했다.
…장 대표, 그 남자다!
젖 먹던 힘까지 비틀어 짜며 발버둥 쳤다. 물론 남자에겐 별 의미 없는 움직임들이었다. 그가 자신을 밀어 내는 내 손목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침대에 눌러 단단히 고정시켰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허벅지로 내 다릴 꽉 짓누름으로써 모든 저항을 일단락했다. 엄지로 개미 새끼를 눌러 죽일 때처럼 아주 손쉬워 보였다.
입 안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갔다.
‘…아악!’
장 대표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오른손을 추켜올렸다. 그의 손엔 무시무시한 이빨들이 달린 톱이 붙들려 있었다. 남자가 숨 한 번 끊어 내지 않고 말을 줄줄이 엮어 뱉었다.
‘사람의 뼈란 생각보다 단단한 거여서 잘 벼린 톱으도 몇 번을 썰어야 했습니다. 그때 중지와 약지가 같이 잘려 나갔어요. 돌팔이 의사는 중지를 먼저 기웠고, 약지를 그다음 차례로 수술했습니다. 어찌나 외졌는지, 마취제도 변변치 않아서 약지는 거의 맨정신에 기워야 했어요.’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친 듯이 머리와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저항해 본다 한들. 난 깃털을 뿜으며 전봇줄에서 날아가던 새처럼 도망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파수꾼에게 목이 붙들린 새처럼 날갯죽지를 파들짝거리는 것뿐이었다.
‘…살, 살려 줘!’
살려 줘! 아무나 좀 도와주세요! 도움을 요청할 데라곤 있지도 않은 주제에, 그렇게 외쳐 댔다. 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무척 공허한 울림이었다.
그가 톱을 쥔 손에 꽉 힘을 줬다. 중지와 약지에 죽죽 그어져 있는 흉터들이 틈을 벌리며 시뻘겋게 도드라졌다.
‘…그 새끼들 말이에요. 언감생심, 도망이란 단어는 머리 한 켠에도 수납해 놓지 못하게 경고한 거예요.’
‘…으, 아악!!’
분명 악다구니를 써 대고 있는데. 공간은 섬뜩하리만큼 적요했다. 난 그제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포로 뭉친 공이 목구멍 바로 앞에서 막혀 밖으로 튀어나올 줄을 몰랐다.
톱이 빠른 속도로 내 손을 향해 하강했다. 난 도리질을 쳐 대며 발작했다. 목구멍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소릴 내질렀다.
***
“…아, 악!”
이부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허억, 헉….”
어릿한 시야로 무지개 빛깔의 조정 화면이 들어왔다. 삐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기계음이 귀에 꽂혀 왔다.
난 몸을 웅크려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꿈이었구나.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하체에서 찝찌름한 감각이 들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불을 걷어 냈다. 사타구니 부근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밑에 깔린 솜이불 또한 마찬가지로 이상하리 만큼 눅눅했다.
하체가 온통 끈적한 액체로 젖어 추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온몸이 찬물을 끼얹은 듯 써늘해졌다.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감각이었다. 10대 시절에도 아주 가끔 있었던 일이었다. 또래 녀석들이 돌려 보던 잡지를 우연찮게 본 날 새벽. 처음 경험했었다.
…이 좆같은 몽정을.
“…….”
이불과 하의를 모두 세탁기에 쑤셔 넣었다. 빨랫감 양 때문에 뚜껑이 닫히려고를 하질 않았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억지로 욱여넣었다.
그러곤 얼른 다시 몸을 씻었다. 손으로 짓무른 비누를 꽉 부여잡고 빨래를 하듯 몸을 득득 문질렀다. 층이 엷은 피부가 손 아래에서 처참하게 짓눌렸다.
시뻘건 자국들을 몸에 매단 채로 방에 웅크리고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성인 주제에 바지를 적셨다는 죄책감과 악몽의 여운이 몰려들어 왔다.
이 불필요한 생식 기관은 성적으로 흥분할 때뿐만이 아니라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도 부풀어 오르곤 했다.
분명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에게 붙들리곤 했다. 계속해서 장 대표가 그림자처럼 발끝에 붙어 온다.
몸을 끌어안아 자신의 품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오른쪽 손끝이 아직도 벌벌 떨렸다.
***
결국 또 잠을 설쳤다.
새벽빛이 가득 들어찬 작은 집 안. 쭈그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유령처럼 일어났다. 때맞춰 집결지에 도착하려면 지금부턴 몸을 움직여야 했다.
빵을 입에 물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벽에 붙어 있는 우편함이 문득 눈길을 끌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호수에 엄청난 개수의 우편 봉투가 꽂혀 있었다. 우편함이 그것들을 억지로 소화하다 못해 이젠 토해 내고 있었다.
전에 살던 집주인이 아직도 주소 변경을 해 놓지 않아, 자꾸 이쪽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공과금은 달마다 정해진 액수를 집주인에게 현금으로 내고 있어, 고지서조차 내 앞으로 올 게 없었다.
그간은 귀찮아서 손조차 대지 않고 있었는데. 이 이상 방치했다가는 필히 쏟아질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봉투를 한 뭉텅이씩 꺼냈다. 받는 이를 일일이 확인해, 우편함 상단 위에 정리해서 올려놓았다. 봉투들이 위로 착착 쌓여 올라갔다. 역시나 전부 전에 살던 사람 앞으로 온 거였다.
“…어?”
그러다가 이상한 편지 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봉투였는데, 받는 이와 보내는 이가 전부 적혀 있지 않았다.
앞뒤로 뒤집어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적힌 게 없었다.
이건 뭘까. 가늠도 전혀 가지 않았다. 뜯지 않은 채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곤, 손에 들려 오는 부피 하며 무게가 꽤 묵직하다는 점 정도였다. 약간 께름칙했지만, 이미 쌓여 있는 봉투들 위에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것으로 손을 털어 냈다.
어련히 알아서 잘 찾아가시겠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몸을 돌려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그렇게 또 보름이 흘렀다.
어느 하루 튀는 날 없이 단조로운 나날이 반복되었다. 새벽이면 습기를 머금어 눅눅한 이불을 걷고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거의 한나절을 공사판에서 뒹굴다가, 해거름 지난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그러고 텔레비전을 켜 둔 채로 이불 위로 쓰러져 잠든다.
여기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해 봐야 덥수룩하게 자라난 내 머리칼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발소를 들른 게 벌써 세 달 전이라, 이젠 머리칼이 눈가를 다 가릴 정도가 되었다.
거울로 본인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엉망으로 자라난 머리칼을 보며 혀를 쯧쯔, 찼다.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린 후, 챙이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기술이 있는 다른 인부들과는 달리, 난 보통 다른 인부들에게 자재를 대 주거나 힘을 쓰는 일을 도맡고는 했었다. 오늘도 자재나 들어다 옮기면 될까 하고 있었는데.
작업 반장이 느닷없이 목재 판과 사포 쪼가리들 몇 장을 내게 건넸다.
“자, 받아.”
당황스러워서 품 안에 그것들을 안고 눈꺼풀을 씀벅거렸다. 시선을 들어 눈을 찌르는 머리칼 사이로 반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곧바로 핀잔이 들려왔다.
“뭘 꾸물대고 있어? 일 안 해?”
반장은 타협이 되는 자가 아니었다. 별수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려 구석에 자릴 잡고 앉았다. 목재를 다리 사이에 두고 사포로 뻑뻑 밀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마감이 되지 않은 부분이 톱밥처럼 쓸려 나갔다. 돌연 속이 거북했다. 그걸 보고만 있는데도 손안이 다 따끔거렸다.
사포질은 작업장의 꽃이었지만, 여태까지는 이렇게 도맡아서 한 경우가 없었다. 고작해야 마무리 단계에서 하는 정도. 슥슥슥. 언제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
사포질과 동시에 피부 안쪽이 득득 깎여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 깊숙이 불쾌감이 스며들었다.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반장이 인부들에게 봉투를 나눠 주며 언질했다.
“내일은 작업 없을 예정이니까 푹 쉬다가 작업 재개하자고.”
인부들은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턱턱 바닥에 쳐 댔다. 모처럼 만의 휴일이니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겠단 실없는 소릴 저희들끼리 해 댔다.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근처 술집으로 삼삼오오 몰려 들어갔다.
공터에 남은 싸늘한 정적이 혼자 서 있는 날 휘감아 왔다. 난 발밑을 힐긋 했다. 목재 판을 문지르다 남은 사포 쪼가리가 거기 놓여 있었다. 두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얼른 사포 쪼가릴 손에 주워 들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곤 점퍼 주머니 안으로 그 주먹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발걸음을 돌려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집 맞은편에 있는 슈퍼를 잠시 들러 담배 한 갑과 간단히 배를 채울 거리를 사곤, 그 옆에 붙어 있는 공중전화로 향했다.
수화기를 집어 들고 기계적으로 삼촌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지난 보름 동안 매일 전화를 해 대고 있으니 이미 손에 습관처럼 익은 거였다. 귓가로 익숙한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며칠 전부턴 이렇게 휴대폰도 아예 꺼져 있는 상태다. 누리끼리한 하늘색으로 틀이 짜인 전화 부스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무소식이 이렇게까지 텀이 길었던 적이 있었나.
고민은 깊게 할수록 골치만 아픈 거라, 처음엔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선이 계속해서 벽에 붙어 있는 달력으로 향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입으론 별일 없을 거라 지껄이면서도, 머리로는 삼촌의 부재가 며칠 동안 이어졌는지 착실히 세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꽉 찼다. 물론 일 년에 대여섯 번 집에 돌아왔던 예전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그러나 그때 들어오지 않았던 건, 집 안에서 긁어먹을 게 없어서였다.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기둥으로 간신히 슬레이트 지붕만 받치고 있는 빈곤한 살림이었으니, 밖으로 나다닌 거였다.
“…….”
초조하게 담배를 태우며 제자리를 뱅뱅 돌았다. …병원비 내야 하는데. 입원비 납부 일은 매달 말일이니까. 당장 내일이었다. 물론 무기명으로 송금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으론 ‘이곳에서’ 보냈다는 흔적이 남게 된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을 하고 싶지 않아, 그 인간에게 맡겨 둔 거였는데.
꽁초를 바닥으로 던져 발로 슥슥 비벼 껐다. 그러고선 다짐했다. 그래, 하루만.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 암만 오물장에 버려 놔도 아깝지 않을 치라지만, 설마 혈육까지 내팽개칠까. 만일에 하나 납부일을 기억해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다릴 덜덜 떨며 집으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냄비에 물을 받았다. 컵라면의 비닐을 미리 벗겨 놓았다가 물이 끓자 하얀 연기가 풀풀 나는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매운 내가 코를 찔렀다.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면 용기 안을 뒤적거렸다. 점심때도 깨작거려 뱃가죽이 등에 눌러붙을 지경인데. 며칠째 허기를 밀가루로 채우다 보니, 이제 이런 건 냄새만 맡아도 물렸다. 전혀 동하지 않았다. 고무 따위 같은 사물로 보였다.
결국 부어 넣은 물이 채 식기도 전에 뚜껑을 다시 덮었다. 팔로 테이블을 밀어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이불도 깔지 않고 바닥에 누워 몸을 둥글게 말았다. 팔을 베곤 모로 누워 허공을 응시했다.
낡은 창문에서 훼엥, 훼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부딪히고 있는 거였다. 그 소릴 제외하면 이 개집만 한 방 안엔 소리랄 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삭막한 정적이 이불 대신 몸을 덮어 왔다. 그 써늘한 적요함에 감싸인 채로 눈꺼풀만 씀벅거렸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면 어느 정도 해결될 적막인데. 왠지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이젠 네모난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그 모든 인기척이 모두 허상 같았다.
그토록 바랐었던 해방의 시간인데. 훼엥, 다시 한번 바람이 불었다. 난 왜 아직도 남들과 어울려 술 한잔도 가벼이 걸치지 못하는 걸까. 사고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치자, 순간 헛웃음이 났다.
“…하.”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그렇게 무서운 일을 두 손으로 저질러 놓고. 이기적이게도 호사를 바라는 자신이 우스웠다.
퉁퉁, 바람이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창문이 흔들렸다.
눈을 감았다 뜨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추라도 달아 놓은 것처럼 눈꺼풀이 자꾸만 닫혔다. 공중에 떠다니는 찬 공기에 짓눌려 베고 있는 팔에 더 깊숙이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끝에 힘이 풀릴랑 말랑 하며 자꾸 절로 움찔거렸다.
잠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제발 오늘 밤만은 무사히 그냥 지나가 줬으면 하는데. 그 생각을 끝으로 난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아주 깊은 심해. 잠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
갑갑해. 아무래도 위에서 뭔가가 날 깔아뭉개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철근 덩어리 밑에 깔려 있는 것 같은 기분. …철근?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에도 이런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아! 고민하던 나는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니, 오히려 그 장면들이 내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꿈이란 걸 의식했으나, 그럼에도 난 두려움을 벌컥 집어삼켰다. 꿈에서라도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참혹하고, 잔인했으며, 또한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깬 이후에도 난 완전히 그 꿈에 압도당한 채로 며칠간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에 필사적으로 눈을 뜨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꿈 안에서의 나는 나인 반면에 또 내가 아니라서, 내 의지에 따라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눈이 서서히 뜨였다. 예상대로 몸 위엔 장 대표가 있었다. 남자는 내 손목을 우악스럽게 붙든 채로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쓰컹쓰컹.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으로 불안한 눈빛을 옮겼다.
‘…으, 으아악! …아악!’
장 대표가 기어코 내 손가락들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 어떠한 고통도 없었다. 오로지 공포심만이 날 완전히 장악해 왔다. 사지를 펄떡거리며 미친 듯이 발광했다.
손가락들은 남자의 끔찍했던 설명과는 달리, 비교적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다섯 개의 소시지들이 바닥 위에서 나뒹굴었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폭포수처럼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철철 흘러넘치는 시뻘겋고 뜨거운 액체를 바라보며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골프장에서 봤던 분수는 형형색색으로 빛나 아름다웠었는데. 이 끈적거리는 피는 그저 더럽고 천박하다는 느낌밖에 주지 않았다. 피가 이젠 흘러넘치다 못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별안간 난 뭔가를 눈치챘다. 이 많은 양의 피는 비단 내 손에서만 터져 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난 이 피 분수의 다른 진원지를 눈으로 좇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피로 물든 강. 그 끝에는….
난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 위에서 떡 버티고 있던 장 대표가 어느새 사라져 있단 것도 의식지 못한 채로 네 발로 아등바등 기어갔다. 손바닥과 무릎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났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머리 깨진 중년의 남자가 대 자로 누워 있었다. 뭍으로 올라온 생선처럼 호흡을 펄떡거리고 있는 건….
‘…아.’
내 애비였다. 천천히 다가가 아버지의 머릴 손으로 감쌌다. 왼손으로 아버지의 머릴 감싸 올린 뒤, 손가락들이 썰려 나간 오른손으로 아버지의 뺨을 툭툭 쳤다.
‘…버지.’
손바닥만 남은 오른손에서 싸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꿈인데 감촉 따위가 있을 리가. 이건, 이건 그러니까 실제로 아버지의 식어 가는 몸을 만졌을 때 느꼈던 내 감정이었다.
미치광이처럼 서슬 퍼렇던 눈동자가 눈꺼풀로 덮여 있었다. 언제든지 위로 추켜들 준비를 하고 있던 손이 아래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
뺨을 타고 뭔가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것도 피인가 했는데 내 턱에서 뚝뚝 떨어지는 건 투명한 액체였다. 난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저기, 누가 좀 도와주세요.’
병원, 얼른 병원에 전화해야 하는데. 고갤 홱홱 돌려 전화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머리맡 오른쪽. 그쪽에 무언가가 던진 듯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적색 벽돌이었다.
거기에 아버지의 머리칼과 핏자국이 어지러이 뒤엉켜 있었다. 그래, 맞아. 아버지는 벽돌에 맞아 계단으로 굴러떨어졌었지. 두 쪽 난 수박 통처럼 머리가 깨져 죽었다.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난 도움을 요청하며 눈물을 줄줄 흘려 댔다. 들어 주는 이 하나 없으니 공허한 울림으로만 남아 다시 내 귀로 들어왔다. 두 손바닥을 아버지의 피로 잔뜩 물들이고선 꿈에서 깰 때까지 같은 말만을 중얼거렸다. …도와주세요.
***
눈가가 붓고 메마른 탓에 속눈썹들이 저희들끼리 엉겨 붙어 잘 떼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난 한동안 희부연 시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구석에서 섬뜩한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시뻘건 형체가 거기 서서 날 텅 빈 눈구멍으로 노려 보고 있었다. 저건 참 지겹게도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점퍼로 손을 뻗어 주머니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사포 쪼가리였다.
달력 한 장을 쭉 찢어 바닥에 놓고, 그 위를 허벅지로 깔고 앉았다. 사포는 새것이라 단면이 아직 거칠었다. 고통스러울 거였다.
그러나 난 망설임 없이 지문 부근을 사포로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작업할 때처럼 머릴 비우고 행위에 몰두했다.
점점 손끝이 아릿아릿해졌다. 뭔가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져,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피부에서 새어 나온 새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한동안 넋을 놓은 사람처럼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뜨거운 액체가 손끝에서부터 손금을 타고 부드러이 흘러내렸다.
…나라고 이런다고 해서 지문이 닳아 없어질 거라 정말로 믿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원아, 그거 못 찾았다.’
두려워서 벌벌 떨고만 있던 내게 삼촌이 다가와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미 사고할 능력을 잃어버린 난 찾지 못했다는 게 대체 뭐냐. 내 손을 적셨던 그건 뭐였냐. 아버지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삼촌은 주변을 수소문해 알 수 없는 약품들을 가져왔었다. 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상태로, 텅 빈 동공으로 삼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삼촌이 이미 수십 번 약품에 담갔다 뺀 내 손 안쪽을 들여다보고는 지껄였다.
‘씨벌, 이래 갖곤 소용없겠네.’
그렇게 말하곤 집을 나가, 검은 봉다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내 옆으로 툭, 던지듯 내려놓은 봉지 안에서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걸 보고도 허공만 응시하고 있자, 삼촌은 자신의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올리더니, 표면이 거친 사포로 약간 흐릿해진 내 지문을 문대기 시작했었다.
“…….”
꽉 감고 있던 눈을 떠서 시선을 손으로 내렸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펼쳤다.
이제 어느 정도 지혈이 된 것 같았다.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사포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여린 살갗들을 슥슥 문질렀다. 이런다고 해서 내가 했던 짓거리가 모두 없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만 그 감각만은 잊고 싶었다. 제발 잃고 싶었다. 살아 숨 쉬던 생명체의, 그것도 내 아버지의 뜨끈한 피가 양손 가득히 묻어났던 그 무참한 감각만큼은 말이다.
유일한 스케줄이던 잡일마저 쉬는 하루. 온종일 이불 위에서 시간을 죽였다.
손끝 하나 까딱거릴 힘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게 언젠지도 이젠 가물가물했다. 늑골 안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래도 뜨순 밥보단 매캐한 연기 생각이 났다. 씁쓸한 담배 연기로 이 허한 안을 채우고 싶었다. 두 개비 정도라면 분명 배부르게 만족할 수 있을 거였다.
누운 상태로 손을 위로 쭈욱 뻗어 바닥을 더듬거렸다. 손끝에 종이 갑 하나가 딸려 왔다. 뚜껑을 열어 보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담배도 떨어졌구나.
그러잖아도 하루 종일 누워 있어 이쯤이면 옆구리에 버섯이 필 것 같던 참이었다. 담배나 사 올까 싶어 누운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손으로 의자에 걸쳐 있는 점퍼를 들어 올리는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감각에 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아!”
손을 뒤집어 안쪽을 들여다봤다. 원래는 지문이 있어야 하는 자리. 검붉은 색 피딱지들이 대신해서 그 자릴 메우고 있었다. 열 손가락들이 모두 엉망이었다.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음침하게 머릴 길러 눈을 가려 놓은 데다가, 손끝은 모두 찌그러져 있는 이방인이라. 스스로 보기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장갑 하나 사 놓지 않았단 걸 깨닫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가리지.
그러다 생각해 낸 게 일할 때 쓰는 목장갑이었다. 옷장에서 허연 실이 부슬부슬 일어난 목장갑 한 쌍을 꺼내 왔다. 허벅지에 대고 탁탁 턴 다음, 입구로 슬슬 손을 밀어 넣었다. 조심한다고 해 봤지만, 손가락 끝부분이 까칠한 면에 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통에 아랫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고 윗니로 꽉 물었다.
“…으으.”
감각이 모두 손끝에 쏠린 듯했다. 아주 끔찍하게 쓰라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목장갑은 안쪽이 빨간 면이라 피가 흘러도 그렇게 티가 나진 않을 거란 거였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다행도 아니었다.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겠지 싶어 목장갑을 끼운 손을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끼익, 콰앙. 등 뒤에서 철문이 오래된 쇳소릴 내며 닫혔다.
이제 막 현관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던 때였다. 뭔가 시선을 확 붙들어 갔다. 무심히 지나치려다가 고갤 뒤로 홱 돌려 그걸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우편함 위. 아직도 수북이 쌓여 있는 편지 봉투들이 시야로 들어왔다.
‘…어?’
뭔가에 홀린 듯 우편함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가 가까이에서 봉투들을 내려다보았다.
뭐가 이상한 건가 했더니. 그 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받는 이와 보내는 이가 모두 적혀 있지 않던 그것. 그것만 제외하면 다른 봉투들은 내가 며칠 전 추슬러 놓은 그대로였다. 누군가가 딱 그것만 골라 쏙 빼 간 느낌이었다.
주인이 찾아간 걸까. 새로운 의문점이 생겼다. 보내는 이가 적혀 있지 않은데 어떻게 그게 자신의 것인지 알고 가져간 걸까.
“…….”
생각에 집중하느라 미간까지 찌푸린 와중에. 보다 본질적인 문제 하나가 머릴 두드려 왔다. 내가 이걸 지금 왜 신경 쓰고 있는 거지. 그냥 봉투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말이야. 보낸 이가 사전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보낼 거라고 언질을 준 뒤, 직접 주고 간 걸 수도 있었다. 단순히 호수를 착각해 내 것에 넣어 놓았다고 하면 상당히 말이 되는 시나리오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져다 놓은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다시 회수해 갔을 수도 있는 거고.
갖가지 상황을 만들어 내며 석연치 않은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밀어 내려 허덕댔다. 등을 돌려 다시 건물 출구로 향하는 순간까지도 온 신경은 뒤에 있는 우편함에 쏠려 있었다.
만약 정말 별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거라면. 이토록 열심히 내면에서 돋아난 의구심과 언쟁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였다.
대체 뭘까.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삐그덕. 낡은 문을 열자, 날카로운 바람이 처밀려 들어왔다. 살기를 품은 것 같은 추위가 몸을 맹렬히 파고 들어왔다.
***
비좁은 슈퍼 안엔 물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컵라면 하나를 사서 주인이 앉아 있는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담배를 달라 했다.
“육천오백 원.”
주머니 안에서 미리 추려 온 지폐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주인은 내 손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로 느릿느릿 지폐를 세더니, 내게 담배 한 갑과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건넸다.
가게에서 나와 전화 부스로 향했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선 주화 입구에 방금 받은 동전을 넣었다. 공공 전화기가 찰랑, 찰랑 소릴 내며 동전을 꼴딱 삼켰다.
다이얼을 꾹꾹 누른 후, 수화기를 귀로 가져왔다. 그러나 송신 음은 울리지도 않았다. 익숙한 여자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한숨과 함께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인간쓰레기가 그럼 그렇지.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어 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병원으로 직접 전화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역 번호를 먼저 누르고, 기억을 천천히 되짚으며 병원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루루, 송신 음이 울렸다. 단순한 문의를 하는 전화일 뿐인데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제일 종합 병원입니다.
“…아.”
한 템포를 쉰 후에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임선화 환자 병원비 납부하려고 하는데요. 미납분이랑 돈 부칠 계좌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실까요?
엄마의 생년월일을 답해 주자, 간호사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 말했다. 타닥, 타닥.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락사락, 카텍스를 넘기는 소리도 귓가를 스쳐 왔다. 달칵. 이윽고 간호사가 다시 전화를 들어 올렸다.
- 지금 확인해 봤는데요.
“네.”
- 임선화 환자분 이송 수속 밟으실 때 밀린 병원비 모두 완납하신 걸로 나와요.
“…네?”
간호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상치 못한 단어에 난 덜떨어진 놈처럼 반응했다. 이송 수속이라니?
- 더 큰 병원으로 가신다면서 이미 이송 절차 이미 밟았습니다.
“그럼, 그게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 죄송하지만 그건 안내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 어째서죠?”
대체 왜. 스스로 그런 말을 뱉고 있단 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가족이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르나요?”
말을 뱉고 나선 순간 아차, 했지만 가족이란 단어는 본래 친족 관계에 있는 집단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것이니 마음을 조금 놓았다. 역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간호사가 사무적인 어조로 답했다.
- 보통은 안내를 도와드리고 있긴 한데, 이 경우엔 보호자분께서 직접 사생활 보호 신청을 해 놓으신 상태라서요. 보호자분 쪽으로 연락을 취하셔야 할 것 같아요.
수화기를 쥔 손이 안으로 곱아들었다. 보호자라 하면 삼촌을 뜻하는 거였다. 대체 왜 저딴 짓을 해 놓은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잠깐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서요.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표현은 완곡했으나, 간호사의 뜻은 단단했다. 후우, 후우. 한동안 수화기엔 내가 내뱉는 호흡만이 흘렀다.
- 이 이상 문의할 게 없으시다면 이만 끊겠습니다.
난 얼른 간호사를 붙들었다.
“…저, 저기. 이송한 게 언제쯤인가요?”
- 한 달 전으로 확인되네요.
…한 달 전이라고?
피우다 만 담배 대신 엄지를 장갑째 입 안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뒤죽박죽하게 얽혀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 보호자 쪽으로 연락 취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난 다시 한번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011로 시작하는 번호를 꾹꾹 누른 후, 수화기를 귓가에 가져왔다. 초조하게 아랫입술의 각질을 뜯으며 송신 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성이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상대방의 전화가 꺼져 있다는 것만 알려 왔다.
“…….”
손에서 스르륵 전화기가 빠져나갔다. 긴 줄 끝에 매달린 차가운 플라스틱이 전화 부스 벽들에 이리저리 빗맞았다. 탕, 탕. 작은 정사각형의 공간 안에 큰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다 이내 미미한 잔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송된 게 한 달 전쯤이라고…?
한 달 전쯤이라면 삼촌과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을 시점과 맞물렸다. 목장갑을 끼운 검지로 플라스틱 벽을 툭, 툭 건드렸다.
요즘 쓰는 휴대폰과는 달리, 삼촌이 사용하는 구식 폴더 폰은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면 며칠이고 배터리가 유지가 되곤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만약 한 달 전쯤부터 삼촌의 휴대폰이 ‘아예’ 사용되지 않았던 거라면….
시선을 내려 두 눈에 전화기를 담았다. 전화기는 그때까지도 공중에서 대롱대롱 춤추고 있었다. 흡사 줄에 목을 매달아 거꾸로 추락한 모양새였다.
***
집에 돌아와선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서성거리고 다녔다. 네 모서리를 모두 훑고 다니며 목장갑째 엄지를 입 안에 넣은 채로 질겅질겅 씹었다.
삼촌은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이기적인 데다가 정이라곤 없는 자였다. 제아무리 혈육이었던들, 거동을 하기는커녕 의식도 없는 누군가를 구태여 이동시키는 수고로운 짓을 사서 하지 않을 치였다.
…그럼 도망간 걸까? 대체 뭐로부터?
빚? 명백히 말하자면 그건 내 아비의 빚이었다.
그걸 갚는다는 명목으로 내게서 돈을 더 뜯어 갔으면 뜯어 갔을 테지. 도망가진 않을 자였다.
“…….”
그럼 대체 뭘까.
주먹만 한 심장이 늑골 안에서 이리저리 발 바쁘게 뛰어다녔다. 온 장기들을 누르고 다니며 신경을 건드려 왔다.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만 생각들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호흡기로 실낱같은 생명 줄을 이어 나가던 엄마의 창백한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덧그려졌다.
삼촌은 그렇게나 연약하던 엄마를 데리고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만약 돌보기 귀찮다고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말하고서 집에다 두고 방치한 거라면…. 엄마는, 엄마는 괜찮으신 게 맞겠지…? 자꾸만 머릿속에서 불안한 생각들이 곰팡이처럼 빠르게 증식되어 갔다.
유일한 연락망이던 전화가 끊겨 버렸으니 이제 엄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곤 딱 하나가 남았다. 직접 고향으로 가 보는 것.
그곳에 다시 돌아간다. 그건 내가 그곳에 묻어 두고 나왔던 과거에 다시 한번 발을 들여놓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난 눈을 감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가자. 잠깐만, 아주 잠깐만 다녀오는 거야.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은밀히 다녀와 내일모레엔 일터에 나가는 거다. 비쩍 마른 데다 도자기처럼 창백하던 엄마의 손 온기가 꽉 쥔 주먹 안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
빛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눈꺼풀을 닫고 있는데도 아직 이른 새벽임을 눈치챘다. 물기 없이 뻑뻑한 눈으로 벽시계를 확인했다. 큰 시침은 숫자 ‘5’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오늘도 역시 한숨도 자지 못했다.
“…후우.”
이부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켜 손바닥에 얼굴을 푹 묻었다. 그러고 2분 정도나 있었을까. 자명종이 짜랑짜랑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5시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손을 뻗어 윗부분을 꾸욱 누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옷장으로 향했다. 자물쇠를 일일이 풀어내고는 옷장 안에서 보따리를 꺼내 가방에 넣었다.
코까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급한 대로 목장갑을 껴 손에 난 흉들을 덮었다. 벽에 붙어 있는 거울로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꼴이 속된 말로 뭐 같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이 미처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 얼굴과 몸을 온통 감싸 맨 채로 집을 나섰다. 휘잉, 날카로운 새벽바람이 온몸으로 들이닥쳤다. 귀를 그대로 베어 낼 듯 매서운 기세였다.
“…….”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와 오히려 날 앞으로 떠밀고 있는데, 난 마치 맞바람을 견디고 있는 사람처럼 더디게 나아갔다.
거의 1년 만에 그 집으로 돌아간다. 비탈길에 세워져 다 쓰러져 가던 판잣집. 그저 눈앞에 그려만 봤을 뿐인데도 가슴이 아프게 널뛰었다. 둥둥. 누군가가 가슴을 큰 북처럼 두드려 대고 있는 듯했다. 이 불안감은 대체 어떤 예감에서 오는 걸까.
난 목에 바짝 힘을 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떠나온 마을을 뒤돌아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이라곤 붙여 놓은 적도, 붙일 곳도 없었다지만, 그래도 내 몸 하나는 거뜬히 숨겨 주었던 곳이었다.
주문을 외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돌아오면 되는 일이다. 엄마 행방만 알아내고 다시 돌아오면 되는 일이니까. 불안해하지 말자. 쓸데없는 걱정만큼 일을 그르치게 하는 건 없으니까.
부둣가로 구불구불하게 난 길가를 따라 걸었다. 저 멀리 수평선이 내다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늘은 어두침침하기만 했다. 일출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먹물 같은 바다를 향해 부지런히 발을 굴렀다.
타박타박. 언 땅을 연신 발로 깨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아치형의 터미널 입구로 들어갔다. 긴 통로를 빠져나오자, 눈앞에 새벽 바다가 펼쳐졌다.
여긴 부둣가 특유의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 그 위를 부유하고 있는 남루한 배 몇 척들. 피로를 얼굴에 덕지덕지 묻힌 채로 돌아다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그저 정적의 공간일 뿐이었다.
터벅터벅. 타야 할 배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떠 있는 배가 열 척도 되지 않다 보니 금방 찾아냈다. 그러나 난 쉬이 배에 탑승하지 못하고 앞에서만 미적대고 있었다. 출렁대는 배 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람이 물어 왔다.
“탈 거요?”
얼굴을 보니 이미 한 계절 전에 본 적 있었던 남자였다. 날 이 섬으로 데려다주었던 그 선장. 난 손에 꽉 붙들고 있던 표를 그에게 건넸다.
“…네.”
그가 표를 받아 들고는, 거기에 적혀 있는 정보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러곤 내게 도로 건네 왔다.
“얼른 타쇼, 곧 출발하니까.”
표를 받곤 배 위로 올라탔다. 몸을 웅크리고 객실로 들어가 좌석에 앉았다. 승객이라고 해 봐야 몇 없었다. 일을 찾으러 떠나는 것 같은 승객과 나, 둘 뿐이었다.
배가 우우웅, 하는 소릴 내더니 부둣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육지로 도달하려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렸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면 좋으련만. 난 한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체감상 섬에서 꽤 멀어졌을 즈음에야, 창문으로 섬을 돌아보았다. 벌써 주먹만 한 크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저곳에서 보냈던 몇 개월이 모두 꿈 같았다.
이제 점이 되어 가는 섬을 응시하며 다시 한번 속으로 질문을 던져 봤다.
돌아올 수 있을까.
내 안에선 금세 파문이 일었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했다. 꼭 돌아올 거라고, 차가운 머리로 심란한 속내를 정비했다.
“…….”
미련 가득한 눈길을 섬에서 떼어 저 멀리에 있는 수평선으로 옮겼다. 이제 해가 뜰 모양인지, 붉은빛이 하늘을 서서히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여섯 시간쯤 흘렀을까.
해가 하루 중에 가장 높이 떠올라 있을 때. 속이 너무 울렁거려 이러다간 딱 죽겠다 싶을 때. 배가 육지에 도달했다.
객실을 나서기 전에 모자를 한층 더 푹 가려 썼다. 혹시라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근처 허름한 옷가게에서 갈색의 면장갑만 사고 나와선 버스 터미널로 걸어서 이동했다. 집까지는 또 버스가 한나절 걸렸다. 늦어도 내일 밤까지는 돌아와야 내일모레 작업장에 무탈하게 나갈 수 있으니까. 서둘러야 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전면 유리 상단에 행선지로 고향의 지명이 적혀 있는 걸 확인했다. 그걸 보곤 정말 뼈저리게 실감했다. 내가 태어나서 줄곧 자라 왔던 곳. 이제 정말 그곳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추를 달아 놓은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 발짝씩 떼어 버스에 올라탔다.
의자에 앉아서는 창문에 커튼부터 쳐 햇볕을 막았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새벽이었는데, 그새 한낮이 되어 있었다.
버스 기사가 일일이 인원을 확인하곤, 운전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벨트 매 주세요.”
부웅, 버스가 차체를 떨더니 이내 출발하기 시작했다. 어젯밤부터 가슴에 묵혀 두고 있었던 한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 후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라 의자 헤드에 뒤통수를 깊이 묻고는 눈을 감았다.
“…….”
극도로 긴장한 탓인 걸까. 버스에서는 고개를 까닥대며 꾸벅꾸벅, 졸았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알아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 것 같은데, 문제는 맘 편히 잠들지도 못해 계속 졸기만 했다는 점이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선잠을 깨웠다.
“승객 여러분, 곧 도착지에 정차하겠습니다. 빠트린 물건이 없는지….”
잠기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눈을 팍 뜨고는 커튼을 걷고 창문 밖을 홰홰 돌아봤다. 누렇게 때가 낀 낡은 터미널을 중심으로 작은 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곳.
“…아.”
진짜 고향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서 있었다.
짠맛이 나던 바람 냄새 대신 피톤치드 향이 콧속 깊숙이 들어와 폐 안을 채웠다. 난 홀린 듯 서 있다가, 지나가던 택시를 발견하곤 얼른 손을 흔들어 잡아 불렀다.
택시가 날 조금 지나쳐서 멈춰 섰다. 얼른 다가가 뒷좌석에 올라타자, 기사 아저씨가 룸 미러로 날 바라봐 왔다. 난 모자의 챙을 손으로 더 깊게 눌렀다. 그러곤 바깥을 바라보는 척, 시선을 피해 창문으로 들러붙었다. 여기라면 저 룸 미러에서 사각지대였다.
“제일 병원이요.”
택시 기사가 차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호사 말로는 이미 이송한 이후라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두 눈으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창밖으로 바깥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미 망막 안쪽에 새겨져 있었던 과거의 모습들과 겹쳤다.
택시가 삼십 분가량을 달려 읍내에 있는 종합 병원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치른 뒤, 차에서 내려 앞에 있는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잿빛이 섞인 하얀 페인트 색이 발려진 병원. 마을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지만, 군데군데 갈라져 있는 틈에서 그 연식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모자를 깊이 눌러쓴 뒤, 입구로 들어섰다.
“…….”
하얀 벽에 잿빛을 띠는 바닥. 코를 약하게 스치는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던 것들 그대로였다.
이 안에서 혹시라도 날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눈에 띈다면 그만한 낭패가 없었다. 난 땅만 보고 걸으며 프런트를 빠르게 통과했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향했다. 두 달 정도는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곳이니 구태여 묻지 않아도 호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여기에서 중환자실에 한 달 정도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차도가 있어 옮기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주먹만 한 호흡기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로 누워만 있었다.
“…….”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둔 채로, 썰렁한 느낌을 주는 긴 복도를 따라 빠르게 내걸었다. 엄마가 누워 있었던 병실 문이 차츰 가까워졌다.
드디어 병실 앞이었다. 낯익은 문 앞에 서서 상단에 붙어 있는 이름들을 훑어 내렸다.
없다. 엄마의 이름이 없다.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곳엔 다른 이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난 흠칫 놀라서 얼른 뒤로 물러섰다. 고갤 푹 숙이고 있자, 나오던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날 흘깃하곤 사라졌다.
난 주저하다가, 열린 문틈으로 안을 빠르게 훑어봤다. 엄마가 누워 있던 자리. 그 자리엔 처음 보는 남자가 대신 누워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는 거였다.
복도에 있는 모든 병실들 앞에 붙어 있는 이름 태그들을 확인해 봤다. 역시 없었다. 그 바로 밑층, 계단을 타고 내려가 더 밑층도 살펴보다가 결국 병원에 있는 모든 호실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발걸음을 멈춰 섰다.
없다. 간호사의 말이 맞는 듯했다. 엄마는 여기에 없다.
이제 확인할 곳이라곤 정말 단 한 군데밖에 남지 않았다.
…그 판잣집.
병원 앞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 탔다.
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하고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어지러이 날뛰던 심박 수가 차츰 본래의 템포를 되찾았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대면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상태가 안정됐다.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을 시야에 담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멀리서 익숙한 회색 계단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세워 주세요.”
값을 치르고 뒷좌석에서 내렸다. 택시는 바로 제 갈 길을 떠났다. 앞을 가리던 차체가 사라지자, 동네로 들어가는 회색빛 계단이 눈에 더 잘 보였다.
검은 기운이 드리우고 있는 하늘 아래. 계단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게 쌓여 있었다. 꼭 깎아지른 절벽 같았다.
세로 폭이 신발 크기보다도 좁은 데다가 가파르기까지 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차츰차츰 위로 붕 떴다.
중간쯤 되자, 익숙한 집들이 눈에 보였다. 군데군데 깨져 있는 지붕. 더러운 벽. 전깃줄을 이어 만든 빨랫줄. 시선에 닿는 모든 남루한 살림살이들이 어제 본 듯 친숙했다.
산비탈을 따라 낡은 집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 달이 잘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해서 월중 마을이라 불리던 곳. 이 울적한 곳에서 쭉 살았다. 암울한 색채를 띠는 내 과거가 이곳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전에 이 계단을 오르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계단은 오르고 있을 때조차도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제 마지막 계단만 남았다.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집 행렬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집을 응시했다. 판잣집은 여전히 망치질 한 방이면 풀썩 쓰러질 것 같은 행색을 하고 있었다.
허름한 벽은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꼭 곰팡이 슨 백설기 같았다. 게다가 갈색 지붕은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아 입김만 불어도 훅 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뎌 다가갔다. 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우편함을 흘깃했다.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우편물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
떨리는 손으로 칠이 다 벗겨져 갈색 속살을 드러낸 철문을 밀었다. 끼익. 철문이 소름 끼치는 소릴 내며 열렸다. 약간 높은 문간을 넘어 안으로 한 발짝을 들여놓았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건지. 집 안엔 싸늘한 공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온기 하나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집 안 이곳저곳에 시선을 붙여 보았다.
중간에 놓여 있던 평상은 반쪽으로 댕강 잘려 무너져 있었고, 아주 예전에 빨랫감들을 널어놓았던 건조대는 넘어져 있었다. 이렇듯 비좁은 마당은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창고로 쓰이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엔 그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카맣게 그을린 것 같은 자국이 거기에 나 있었다.
“…….”
…저 자리는 그러니까.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자리였다. 새붉었던 액체가 시간이 흐르자 저렇게 시커멓게 변색된 듯했다. 피가 굳은 모양이 언뜻 아버지의 몸 형태를 그려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더 이상 그 자국을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날 일어났던 그 일을. 난 외면하듯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그 끔찍했던 장면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덧그려졌다.
묻어 두려고 했지만, 송곳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 날 찔러 대곤 하던 과거의 일들. 그것들이 감은 눈꺼풀 안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짧은 복기는 아주 긴 여운을 남겼다. 눈가가 뜨겁다 했더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난 손등으로 얼굴을 대충 쓱쓱 문지르고는 애써 발걸음을 떼었다.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를 올랐다.
방바닥엔 꺼먼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 있었다. 텔레비전을 받치고 있는 거실 장의 서랍이 죄다 열려 있었다. 내용물들이 그 주변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안방 안도 들여다보았다. 엄마의 화장대 또한 엉망으로 뒤집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뭐가 없어졌는지 확인했다. 엄마의 몇 안 되는 귀중품들이 없어져 있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들렀다 간 모양새였다. 근데 단순 도둑질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들이 있었다.
이 허름한 동네 안에서도 이 집은 눈에 띌 만큼 비루했다. 이 집에서 멀쩡한 거라곤 거짓말 조금 더 보태 공기뿐이었다. 강도도 들어와선 제 주머니를 털어 놓고 나갈 그런 집이었다. 그런데 이런 집에 굳이 도둑 새끼가?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가슴에 엄마의 통장이 품어져 있었는데. 통장의 행방을 찾아 과거를 더듬다가, 순간 얼굴 하나가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삼촌.”
귓가에서 삼촌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난 미친 듯이 발을 굴러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 어딘가에선 삼촌의 행방을 쫓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집 안에선 그 무엇도 찾아낼 수 없었다. 난 홀린 듯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림자가 어쩐지 길게 늘어진다 했더니. 어느새 사람의 얼굴처럼 둥근 달이 떠올라 있었다. 하늘과 지붕이 맞닿아 있는 달동네는 지상의 그 어떤 곳보다 밤을 빠르게 맞았다.
오늘따라 기이하게 큰 달을 바라보던 내 눈에 우편함이 빨려 들어왔다. 오랫동안 사람이 없었던 집이 으레 그렇듯, 우편물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우편물을 죄다 빼서 마당으로 들어왔다. 마루 위에 펼쳐 놓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
그러나 모두 쓸데없는 것들뿐이었다. 고지서나 전기 공급 제한 예고서와 같은…. 우편물들을 헤집던 나는 이내 손에서 그것들을 놓고 다시금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모골이 송연해져 내딛던 발걸음을 뚝 멈췄다. 난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다시 천천히 뒤를 돌았다. 도로 마루로 홀린 듯 돌아갔다.
우편물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무언가가 시선을 이끌어 갔다. 아까는 뭔갈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미쳐 있어서 무심코 지나쳤었다.
저걸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뇌에 문제가 생겨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분명 섬이었다.
봉투의 생김새는 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보내는 이, 받는 이가 모두 적혀 있지 않던 그 봉투와는 달리, 이번엔 받는 이에 내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서여원.
그에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에도 난 불안감을 떨쳐 내려 애썼다. 이건 사실상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봉투였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며 차갑게 식어 있는 손길을 그 봉투로 내뻗었다. 꿀꺽. 메마른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갔다.
“…….”
봉투를 들어 올렸다.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건지 보기보다 제법 묵직했다. 손등 위에 퍼드덕 닭살이 돋아났다. 부정해 보려 했으나 예전에 느껴 봤던 그 무게감과 동일했다.
난 봉투의 윗부분에 손을 뻗었다. 봉투는 한 번 뜯겼다가 다시 붙었는지, 별 노력 없이도 쉽게 열 수 있었다. 난 눈을 딱 감고 봉투를 거꾸로 뒤집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발등 위로 퍽 소릴 내며 떨어졌다. 그다음 차례로 뭔가 사르륵 소릴 내며 바닥 위로 흩어졌다.
난 발등에 급작스럽게 가해진 충격에 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발등을 부여잡은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시야로 들어온 건 내 손바닥 밑에 깔려 있는 사진이었다. 뒤집혀 있어 뭐가 찍혀 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 난 천천히 그걸 뒤집었다.
“…이게.”
지어지다가 만 건물이 직사각형의 엷은 종잇장 안에 담겨 있었다. 난 손을 뻗어 조금 멀리 있는 사진을 가져왔다.
이번엔 약간 거리를 두고서 찍힌 사진이었다. 임시로 지어 둔 철근 건물 위에서 온몸을 천으로 감싼 채로 철근을 나르는 사람이 찍혀 있었다. 아주 작게 찍혀 있었지만 난 그 사람을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그건 바로 나였다.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입을 약간 벌린 채로 넋을 놓고 있던 나는 흩어져 있는 사진들을 모두 모아다가 살펴봤다.
내가 가게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 전화 부스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 그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수십 장이나 되는 사진들엔 모두 내가 찍혀 있었다.
게다가 한 사진엔 내 손에 목장갑까지 끼워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건 바로 어제 찍은 사진이라는 건데.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뭐지. 벌벌 떨리는 손은 이윽고 사진들을 손아귀에서 놓쳤다. 난 고갤 천천히 움직여 내 발등을 후려쳤던 묵직한 그걸 바라보았다.
불안정하게 떨리는 시선 끝엔 중간 부분이 한 번 꼬인 은색의 그것이 놓여 있었다.
난 이제 완전히 사고가 정지된 상태가 되었다. 온몸이 벌벌 떨리고 입 안에선 어금니가 부딪치는지 딱딱 소리가 들렸다. 사실 이미 손으로 만져 봤을 때부터 그게 무엇인지 알았을지도 몰랐다. 그저 외면하고, 또 외면했을 뿐.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 댔다. 위이잉. 도망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해. 힘이라곤 전혀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힘을 딱 주고 땅에서 일어난 순간.
끼익. 등 뒤에서 철문이 날카로운 신음 소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