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2권) (5/14)

05.

툭, 툭.

귓가를 건드리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길쭉한 손가락들이었다. 그리고 그 손에 쥐여 있는 누런색의 직사각형 카드 한 장이 그 뒤를 뒤따랐다. 장 대표가 그 카드의 끝부분으로 협탁 위를 툭툭, 치고 있었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가 오늘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심플하지만, 워낙 장신구 따위는 몸에 걸치지 않는 남자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쪽으로 자꾸만 눈길이 이끌렸다.

이내 장 대표의 손이 협탁 위에 카드를 내려놓았다. 남자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푹 꺼져 있던 매트리스 한쪽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남자는 화대와 직사각형의 카드 한 장을 남기고 룸을 떠났다.

난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나서야 눈을 떴다.

평소대로라면 당장 돈부터 금고에 쑤셔 넣었을 텐데. 지금 심정으론 금고에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침대 한쪽에 뭉쳐 있는 시트를 집어 올려 금고를 털끝 하나 보이지 않게끔 꽁꽁 싸매 놓았다.

“…….”

협탁 위로 천천히 손을 내뻗어 카드를 집어 올렸다. 차가운 온도를 가진 그건 주민 등록증이었다. 처음 야매로 찍어 냈을 땐 사진을 넣는 부분이 다른 곳보다 조금 들뜬 감이 있었는데, 이건 그런 것 없이 매끈하기만 했다. 진짜 신분증과 견주어 보아도 어느 게 진짜인지 구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역시 돈이 좋은 건가. 바람 빠지는 소릴 한 번 내보이곤, 한 바퀴를 뒤집었다. 하단에 있는 사각형의 칸에 꺼먼 지문이 찍혀 있었다. 당연히 내 것일 리는 없는 것이었다.

카드를 움켜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CCTV가 저거 하나일 리 없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주워 들고, 갑갑한 공기가 가득 차 있는 호텔을 나섰다.

빵 쪼가리 하나, 생수 한 병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편의점 알바생에게 담배를 달라 했다. 알바생이 신분증을 요구하길래, 주민 등록증을 내밀었다.

매번 날 미심쩍게 봤던 알바생은 이번만큼은 군말 않고 내게 담배 한 갑을 건넸다.

창가에 무기력하게 앉아 빵을 입에 물었다. 원래도 퍽퍽한 건지, 아님 지금 유달리 내 입 안이 메말라 있는 건지, 아무튼 빵은 제대로 씹히지 않았다.

결국 손에서 먹던 걸 내려놓고 창문 밖을 내다봤다. 날이 별스럽게도 화창했다. 제법 밝은 햇살에 눈이 따가웠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유달리도 얇은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잠이 고팠지만, 그 끔찍한 룸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거긴 철창 없는 감옥과 진배없었다.

“…….”

어젯밤. 나는 옷장 깊은 곳에 남자 몰래 숨겨 두고 있던 지폐를 모두 토해 내고 나서야 그의 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악독스럽고도 집요한 남자였다.

찰랑, 편의점에 풍경이 울리더니 이혜원이 들어왔다. 날 발견한 이혜원은 흠칫, 하더니 이내 못 본 척,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계산을 마친 이혜원 또한 창가로 다가왔다. 그러곤 나와 약간 떨어져 있는 의자에 앉았다. 김밥 포장지를 풀더니,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포장지 위로 내뻗는 손길이 제법 성급해 보였다. 얼른 이걸 먹고 여기서 떠나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속도였다.

콜록, 콜록.

아니나 다를까, 김밥을 먹던 이혜원이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기침에 생수병의 뚜껑을 따 여자 앞으로 밀었다. 여자는 가슴팍을 퍽퍽 두드리며, 생수병을 가져가 뒤로 목을 꺾더니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기침이 점차 멎어 들었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감사합니다.”

“…네.”

그리고 다시 침묵이었다. 여자는 입맛을 잃었는지, 김밥을 그대로 고이 접어 일반 쓰레기통에 통째로 버려 버렸다.

“…저기.”

“네…?”

이혜원이 놀란 눈치로 내 쪽으로 고갤 홱 돌려 왔다. 두 눈이 약간 크게 뜨여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붙인 건 처음이라, 놀란 듯해 보였다.

“이진, 이진석….”

난 뭐라 불러야 할지 호칭이 애매해 뒷말을 흐렸다. 저답지 않게 눈치 빠르게 내 의중을 알아챈 이혜원은 얼른 답해 왔다.

“아, 진석 오빠요?”

“…네, 그분.”

“몸 많이 좋아졌다고 했어요. 며칠간 안색이 파리해서 걱정했는데.”

“…아.”

“그래도 아직 스케줄 하실 그런 건 아닌가 봐요. 저도 몇 번 땜빵 들어가 봤거든요.”

뭐가 기쁜 건지, 그 얘길 하는 여자의 얼굴엔 화색이 피어 있었다. 여잔 내게 싱글 생글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난 멍청하게 탄식하다, 고갤 돌려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여자가 옆에서 날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뭐라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입술만 들썩거리던 여자는, 이내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꺼내 왔다.

“혹시 대학생이에요?”

“…아.”

작게 고갤 주억거리자, 여자가 물었다.

“곧 학교 갈 때 되지 않았어요?”

잠시 대화에 공백이 생겼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면서 지내던 사람이 곧 떠난대요.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요.”

말끝에서 묘한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이혜원 또한 등록금만 벌면 이곳을 떠난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가지 않는 걸까. 무거운 입술을 떼서 조용히 물었다.

“…안 돌아가세요?”

이혜원이 날 돌아봤다. 여자가 느릿하게 눈을 끔뻑거리더니 답했다.

“네.”

음, 조용히 목을 울렸다. 입술을 떼서 무미건조한 어조로 지껄였다.

“저도요.”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라 못 돌아가는 거지만. 창밖으로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떠드는 인간 무리가 지나갔다. 얼굴에 번져 있는 미소가 그들이 퍽 즐거운 상태라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고작 창문 하나. 이 얇은 창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저들에겐 일탈을 주는 이 골프장이 왜 이렇게 내겐 무덤만 같은 건지.

***

이미 늦은 밤이었다. 호텔은 지나치게 조용한 탓에 시계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난 하는 수 없이, 방 안에 일부러 텔레비전을 틀어 놓았다. 텔레비전 따위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소릴 내 주는 게 이것뿐이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텔레비전을 무의미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복도에서 울리는 소리 하나가 이목을 잡아끌어 왔다. 뚜벅뚜벅. 구두 굽 소리가 나고 있었다. 미약하게 땅을 울리는 것에 불과했던 그 소린 점점 더 크기를 붙여 나갔다.

뚝. 내가 있는 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응시하고 있던 난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섰다.

띡. 카드 키가 전자음을 내더니, 어떠한 예고도 하지 않은 장 대표가 들이닥쳤다.

“…….”

멋대로 호텔의 문을 열고 쳐들어오더니, 재킷을 벗어 내 쪽으로 휙 던져 왔다. 난 얼떨결에 손을 뻗어 그걸 잡아챘다.

샤워실로 성큼성큼 다가간 그는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의 손짓은 간결했지만, 궤궤했다. 거침없는 성정이 손짓 하나에도 진득이 배어 있는 자였다. 셔츠를 몸에서 걷어 낸 그가 음, 목을 울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집어 던질 줄 알았는데.”

그의 눈길은 내 뒤쪽에 닿아 있었다. 구태여 그가 보고 있는 게 뭔지 확인해 보지 않아도, 뭘 두고 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뻔할 뻔 자였다.

“…어차피 금고에만 붙어 있는 것도 아닐 것 같아서요.”

장 대표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추켜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생각보다 멍청하진 않아서 다행이네요.”

난 하염없이 발끝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멍청하진 않아서 다행이라니. 이왕이면 불행히 여겨 줬으면 좋겠건만. 그의 시선이 잠시 날 떠났다가, 좀 전까지 내가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가닿았다.

벽면에 넓게 걸려 있는 텔레비전 화면엔 연예인들이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장 대표가 픽, 바람 빠진 숨을 내쉬었다.

“팔자 좋네.”

그렇게 말하는 음성은 늘어진 가닥처럼 마디가 길었다. 그러고 보니, 굴곡진 그의 얼굴에도 오늘따라 피곤이 그늘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난 재킷을 붙든 손에 꽉 힘을 주며 시선을 땅에 붙였다.

…피곤해하는 장 대표라니.

간간이 그가 이런 식으로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 줄 때면 그렇게 어이가 없을 수 없었다. 그 어떤 악귀도 그의 언행록을 읽어 본다면 혀를 내두를 거였다. 그런 주제에 인간인 척하다니. 인간다운 장 대표는 죽은 장 대표뿐이었다.

속으로 악담을 퍼붓고 있는 내게, 장 대표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풀어내며 지껄였다.

“갈 데가 있으니 준비해 둬요.”

그 한마디를 남긴 장 대표는 손목시계를 옷가지 위에 휙 던져 두고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째깍째깍. 그가 남긴 손목시계는 지금이 자정이 다 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시간에 갈 데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손에 쥐고 있는 재킷을 내려다보다가, 빨래 수거함에 처박아 버렸다. 터벅터벅 옷장 쪽으로 걸어가 문짝을 열어 놓고 잠시 망설였다. 손길이 정처 없이 옷 위를 헤맸다.

“……”

뭘 입어야 하는 거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장 대표가 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이 시간대에 갈 데라곤 몇 군데로 추려지긴 했다. 끽 해 봐야 유흥업소나 퇴폐 업소겠지. 바(Bar)라도 가려고 하는 걸까.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이지만, 남자에겐 그런 곳이 어울렸다. 술과 향락이 가득한 곳.

그가 날 왜 그런 곳에 데려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가 가자고 했으니 가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줄이 들어간 셔츠에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장 대표가 데리고 가는 곳과 어울리는 차림새는 아닐 테지만, 어딜 가더라도 이 차림새가 가장 무난할 듯했다.

옷장 문을 닫고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고 있을 때, 장 대표가 샤워 부스에서 가운 차림으로 나왔다.

“……”

그가 알 수 없는 얼굴로 내 차림새를 훑더니, 옷장으로 다가가 환의했다. 남자가 허리춤에 묶고 있는 가운의 끈을 풀어내는 걸 보곤, 흠칫 놀라 재빠르게 고갤 휙 돌렸다.

가벼운 셔츠 차림에 짙은 색 바지를 차려입은 장 대표와 호텔 밖을 나섰다. 로비에 남자 하나가 꺼먼 차에 몸을 기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룸에 금고를 들여다 놓은 그 새끼였다.

그가 얼른 다가와 묵례를 해 보이더니, 빠릿빠릿한 몸짓으로 뒷문을 열었다. 누군가를 보좌하는 게 능숙히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대표님, 예향관으로 갈까요?”

장 대표는 침묵했다. 그의 수하는 그게 익숙한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 난 창문에 시선을 두었다. 예향관. 어딘지 모르긴 몰라도, 그 이름에서도 유곽 티가 줄줄 나는 곳이었다.

차 안이 완전한 고요에 잠겼다. 차가 한적한 산골 거릴 내달렸다. 워낙 변방인지라, 읍내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 구경도 쉽사리 해 볼 수 없다고 들었다. 모두 이혜원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한참 동안 넋 놓고 창문을 응시하고 있던 난 정적을 일깨우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도착했습니다.”

분명 네온사인, 내지는 호롱불이 요사스럽게 켜져 있는 퇴폐 거리에 도착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영 다르게, 도착한 곳은 뜻밖으로 한밤중에도 환한 불이 켜져 있는 곳이었다. 간판은 일본어로 적혀 있어 읽을 순 없지만, 아마도 ‘예향관’이라 적혀 있는 듯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에 얼떨떨해하고 있는 내게 남자의 수하가 문을 열어 줬다. 차에서 내리자, 수하가 목을 살짝 굽혀 경례를 해 왔다.

“즐거운 식사 하고 오십시오.”

남자가 날 앞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엔 술잔을 주고받는 몇몇 사람들 빼곤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퇴폐 업소라 착각했던 곳은 고급 일식집이었던 거였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또 한편으론 혼란스러웠다. 대체 날 여기에 왜 데리고 나온 건지.

“어어, 장 대표.”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수 발걸음을 해 장 대표를 맞아들였다. 남자가 한껏 반가운 척을 해 보이더니, 이내 날 눈짓하며 저 친구는 어떻게 데려온 친구냐 물었다. 남자는 그저 말없이 고상하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다행히도 사장은 그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호탕한 척, 웃으며 트레이를 세팅해 온 직원에게 지시할 뿐이었다.

“여기 대표 안쪽으로 모셔 드려.”

“네,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우릴 룸 안으로 안내했다.

직원이 두 손으로 닫혀 있던 창호지 문을 열고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꽤 큰 내부는 VIP석인 건지, 다른 테이블보다 훨씬 크고 넓은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직원이 하얀 천이 깔려 있는 테이블 위에 식기구들을 세팅했다. 장 대표가 먼저 한 자릴 차지하고 앉더니 내게 맞은편을 눈짓해 보였다.

“앉아요.”

천천히 걸어가 앞자리에 앉았다. 예약을 미리 해 놨던 모양인지, 직원은 주문도 받지 않고 ‘곧 음식을 내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홀연히 사라졌다.

장 대표가 묻지도 않는 말을 지껄였다.

“허기지네요.”

“…….”

“하루 종일 수원 씨 화대 버느라고, 일만 했더니.”

남자는 그딴 말을 지껄이곤 한쪽 입꼬릴 올려 진하게 웃었다.

금방 문이 드르륵, 소릴 내며 열렸다. 트레이를 밀고 온 직원이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장 대표는 잠시 입을 다물었고, 난 손을 안으로 꽈악 그러쥐었다.

화대.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직원에게도 들렸을 거였다.

타닥타닥.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하얀 테이블 위로 접시가 하나둘씩 놓였다. 빛깔이 좋은 스키다시와 회가 접시마다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회 종류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꽤 여러 개였다.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생선도 있었다. 오늘이 아니라면 평생 먹어 보지 못할 종류의 그런, 값비싼 회.

평소였다면 과연, 눈길을 사로잡았을 만한 것들이었다.

직원이 떠나자 남자가 유려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쥐고 회를 한 점 맛봤다.

“날것은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닌데. 이 집은 꽤 괜찮게 해요.”

왜 남자는 자꾸 불필요한 말을 지껄여 대는 걸까. 내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고 제대로 무언갈 배에 채워 넣을 수 있다 생각하는 걸까. 날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CCTV를 설치해 놓은 작자의 면상을 눈앞에 두고?

난 최대한 어조는 빼되, 격식은 차려 답했다.

“전 이미 먹었습니다.”

“뭘 먹었는데요?”

남자가 가벼이 지나가는 어투로 물어 왔다.

“또 빵 쪼가리나 주워 먹었어요?”

남자는 뭐라 답하지 못하고 있는 날 유심히 지켜보며 느긋하게 턱을 움직였다.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로 입 안을 헹궈 내더니, 조용히 날 불렀다. 그의 고요한 음성이 얄팍한 창호지 문을 두드렸다.

“수원 씨.”

접시 테두리를 응시한 채로 답했다. 생각해 보니 빵을 주워 먹은 것도 오늘이 아닌, 이혜원을 만난 어제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통으로 굶었다는 얘기가 되었다.

“…네.”

“그렇게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장 대표가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을 손에서 내려놓더니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순식간에 존재감을 드리워 오는 남자의 몸에 난 조금 몸을 뒤로 물렸다. 남자가 속닥거렸다.

“누가 보면 수원 씨 이름 아닌 줄 알겠어요.”

“…….”

“이렇게 티 내서야 되겠어?”

장 대표가 다시 뒤로 몸을 물리더니, 함께 나온 고급 사케를 작은 술잔에 따랐다. 그가 투명한 액체가 출렁거리는 술잔을 홀짝이며 뜻밖의 질문을 던져 왔다.

“기분 상했죠?”

난 남자의 질문에 아차 싶었다. 불안정한 시선을 들어 올려 남자의 눈을 마주 봤다. 불쾌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남자는 의외로 유쾌한 빛을 얼굴에 띠고 있었다. 오히려 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보다 더 느른히 늘어져 있어 보였다.

“아닙니다.”

기분이 상했다니.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런 것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이 불쾌한 감정을, 누린내 풀풀 나는 감정을 어떻게 ‘기분 상했다’는 표현으로 그렇게 쉽게 갈음할 수 있는 건지. 남자가 흐음, 소릴 내며 턱을 기울였다.

“개 키우는 사람들도.”

그러곤 갑자기 꺼낸다는 게 ‘개 키우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난 잠자코 있었다.

“개가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게 걱정돼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런다던데.”

“…….”

“그래도 개는 불평 한마디 안 한대요.”

마치 남의 집 개는 그런다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으로 책망하는 말투였다.

“개 주인들은 하고, 난 하지 않으면. 내 쪽이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미친 소릴 해 대는 남자를 눈앞에 두고 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눈을 반쯤 덮고 있는 눈꺼풀이 덜덜 떨렸다. 며칠간 제대로 챙겨 먹은 게 거의 없는 탓인 듯했다. 혹은 그 때문이 아닐 수도.

남자가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하고 있는 날 앞에 두고 픽 웃더니 직원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장 대표는 필요하신 게 있냐고 묻는 직원에게 위스키를 주문했다.

곧 위스키가 도착했다. 남자가 위스키의 뚜껑을 돌려 따서 사케 잔보다 길쭉한 잔에 액체를 콸콸 쏟아부었다.

“그딴 얼굴을 하고.”

장 대표가 깨끗하게 빈 술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누런색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손등과 뺨에도 묻은 듯했다. 남자가 테이블 양쪽을 부여잡은 채로, 상체를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펼쳤다.

“사람을 두들겨 패 놓질 않나.”

입 안이 바싹, 바싹 말랐다. 방 안의 공기가 지독하게 건조한 탓이었다.

“그딴 얼굴을 하고.”

“…….”

“뒤에서 개새끼, 씨발 새끼 찾아 대며 죽어 버렸으면, 하고 저주나 퍼붓고 앉아 있질 않나.”

“…….”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주제에 불쾌해도, 불쾌하다 티도 안 내고.”

말을 끊은 남자는 한동안 날 말없이 응시해 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건지. 긴장감에 온몸의 혈관이 펄떡펄떡거리며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날뛰었다. 난 입도 한 번 제대로 벌릴 수 없었다. 벌린 입으로 날뛰는 심장이 튀어 나갈까 봐.

장 대표가 마침내 입술을 달싹였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과거도 묘연한 게, 사람을 참 궁금하게 만드네.”

흥미로 번뜩이는 남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는 허벅지 위에 놓아두었던 손가락들을 안으로 말았다. 바지를 쥐어 잡아 보고자 했으나, 면이 피부에 딱 달라붙어 있는 탓에 쉽지 않았다. 정처를 잃은 손가락들이 잠시 허공을 헤맸다.

손을 아래로 내려 맨바닥을 득득 긁어 봤다. 이내 손에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공을 부여잡듯 손을 그러쥐었다. 손톱 밑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 들어갔다.

“…대표님 말씀대로.”

장 대표가 위스키병을 기울이다 말고 내게 눈을 맞췄다. 잠시 뜸을 들이자, 그가 턱을 약간 위로 쳐들었다. 몸짓은 늘 그렇듯 느긋했고, 술병을 기울이는 손짓도 평소처럼 여유롭기만 했다. 그러나 날 향해 있는 눈길만은 냉혹하리만치 매서운 것이었다.

“대표님이 제게 화대를 주시고 있는데.”

장 대표가 조용히 내가 뱉어 놓은 단어를 발음해 봤다.

“화대.”

추켜 올라가 있던 그의 짙은 눈썹이 일자로 누웠다. 내가 뱉은 단어가 제법 그의 마음에 든 듯했다. 술잔에 대고 병의 밑바닥까지 툭, 툭 털어 낸 장 대표가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두 눈에 서치라이트를 켠 상태로 눈빛으로 물어 왔다. ‘그 뒤에 잘라 먹은 말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뒷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불쾌하다 할 수 있겠나요.”

장 대표가 픽 바람 빠진 소릴 내며 웃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불쾌하긴 했단 말이네요.”

꺼먼 눈동자에 호쾌한 빛이 일순 비쳤다. 장 대표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봤더라면, 그를 유쾌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유쾌한 사람? 미간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불쾌하기가 시궁창에서 나는 역한 냄새보다 더한 놈인데.

“…….”

난 구태여 부정은 하지 않았다. 감히 네까짓 게 내게 불쾌하다 운운해? 그렇게 괄괄 날뛸 거라 예상했던 장 대표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러니까요.”

남자가 웬일로 내 말에 동조하며 사케병을 집어 올렸다. 그러더니 내 잔에 사케를 따라 부었다.

“서수원 씨 입장에서도 나한테 협조하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이 자리에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서수원 씨만 손해 보는 건데.”

“…….”

“왜 개들이 주인 앞에서 납작 엎드려 손이나 핥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답하지 않고 있자, 남자가 시원스럽게 뻗은 어깨 끝을 가벼이 들썩이며 지껄였다.

“떨어질 게 있으니까 그렇겠죠.”

아무래도 남자의 사전엔 대가 없는 애정이란 없는 듯했다.

“난 수원 씨도 개들처럼 좀 똑똑하게 굴었으면 좋겠는데.”

장 대표의 개 취급엔 막힘이 없었다. 그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덧이었다.

“누가 알아요. 예쁘게 굴면 더 얹어 줄지.”

장 대표가 한 잔 넘치게 따른 술잔을 손등으로 내 앞으로 밀어 왔다. 난 한동안 출렁거리는 투명한 액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대로 저 잔을 남자의 얼굴에 뿌려버리고 이 자릴 뜨는 상상을 해 봤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망상은 아쉽게도 현실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닥쳐 올 후환이 무서워서였다. 손 하나 꿈쩍하지 못하고 있다가, 조용히 지껄였다.

“위스키로 마시겠습니다.”

장 대표의 두 눈이 재밌다는 듯 빛났다. 그의 말대로 이 자리에서 배를 굶고 있어 봐야 손해 보는 쪽은 온전히 나뿐이니까, 나는 예쁘게만 굴면 더 얹어주겠다는 남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 또한 정적의 공간, 그 자체였다. 남자의 수하는 여전히 능수능란하게 차를 몰았다. 또한, 엄청난 양의 술을 몸에 쏟아부은 장 대표는 약간 벌겋게 달아오른 광대 부근을 제외하면 평소의 모습과 별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

난 창밖에 두 눈을 박고 있었다. 밖엔 온통 어둑하고 한적하기만 한 시골의 풍경뿐이었다. 별 거 없는 바깥을 보고 있는데도 자꾸만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두근두근, 내달리는 차의 속도에 맞춰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어차피 마셔야 할 거, 한입에 털어버리자 넘긴 쓰디쓴 술이 가슴을 담금질했다. 두근두근, 곧 벌어질 일들이 너무 분명하니까 쉽게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입 안을 꽉 깨물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한입에 털어 넣은 술처럼 남자와의 정사도 받아들이자, 굳게 마음 먹었다.

배려심 따윈 없는 장 대표는 룸에 들어서자마자, 안에 있는 전등이란 전등은 모두 밝게 켰다. 그러곤 금고로 다가가, 금고를 꽁꽁 싸매고 있는 시트를 치워 냈다. 입꼬리로 씨익 웃어 보인 장 대표는 너비가 긴 소파에 앉아 담배를 입에 꼬나물며 내게 명령했다.

“옷부터 벗어요.”

“샤워부터 하겠습니다.”

장 대표가 라이터 휠을 휙휙, 돌려 담배 끝에 불을 붙이더니 후우, 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한 거 아니잖아요.”

남자의 말에 아랫입술을 꽉 물고 넓디넓은 창문을 등지고 섰다. 허벅지 옆에 툭 놔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셔츠 가장 위 단추에 가져다 댔다.

룸 안에 쥐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후우, 숨을 내뱉는 소리로써 정적을 둘로 갈라 낸 장 대표의 시선이 온몸에 화살처럼 박혀 왔다.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셔츠의 단추를 하나, 하나 풀어냈다. 손길이 혹여라도 엇갈리지 않을까, 손끝에 온 힘을 집중했다.

셔츠를 몸에서 걷어 낸 다음엔, 하의 차례였다. 그새 허리가 얄팍해져 어쩔 수 없이 착용해야 했던 벨트 또한 풀어냈다. 지익, 꼼꼼히 맞물려 있던 바지 지퍼를 내리고 드로어즈와 함께 무릎 밑으로 끌어 내렸다. 일련의 과정을 행하고 있는 내 모습에 혀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떫었다. 바지 구멍에서 두 발을 빼낼 땐 굴욕적인 맛까지 느껴졌다.

완벽한 나신의 상태로 돌아간 나는, 그가 시킨 대로 가죽 소파에 몸을 묻고 앉았다.

“다리 벌려 봐요.”

장 대표가 시킨 대로 다릴 벌려 보았다. 내 다리 가운데를 지켜보던 그는 고상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잘 안 보이는데.”

잠시 손가락질을 중단하고,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곧바로 새 주문을 해 왔다.

“팔걸이에 다리 한쪽씩 올려놔요.”

난 남자의 말에 잠자코 그를 응시하다,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다릴 들어 올리자, 허벅지에 끈끈이처럼 들러붙어 있던 가죽 소파가 쫘악, 소릴 내며 떨어졌다. 끈덕지게 피부에 달라붙어 오는 게, 꼭 장 대표의 시선처럼 기분 나빴다.

팔걸이 한쪽에 허벅지를 걸치자, 허벅지 안쪽이 장 대표에게 고스란히 내보였다. 난 자연스럽게 나머지 팔걸이에 다리 한쪽을 마저 걸치면 내가 어떤 모양을 할지 상상하게 되었다.

…실로 끔찍했다. 난 조금 머뭇머뭇대다가, 이내 양손으로 허벅지 밑을 받쳐 다른 한쪽에 올려놓았다.

다리 사이가 벌어지자, 구멍의 아가리도 저절로 쫙 벌어졌다. 살갗에 닿아 오는 차가운 공기에 허벅지 안쪽에 닭살이 돋아났다.

“이제 보지 안 축축하게 만들어 놔요.”

장 대표가 보기 좋은 비율을 갖추고 있는 입술 새로 비죽, 웃음을 내보냈다. 익히 알고 있는 남자의 비웃음이었다.

“넣고 흔들기 쉽게끔.”

구멍 안으로 검지 하나를 밀어 넣었다. 잘 벌어져 있는 탓에 손톱까진 들어갔지만, 그 이상이 문제였다. 윤활제가 없는 안은 완강하게 침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젤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냥 손가락을 입으로 빨면 될 걸.”

여기서 세 발짝만 움직이면 되는 곳에 젤이 있음에도 남자는 그것조차 내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난 별수 없이, 구멍에 들어가지 않았던 중지를 입에 넣곤 혀를 굴려 그걸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끄덩거리는 손가락으로 안을 후볐다. 손길에 맞춰 구멍의 주름이 탄력 있게 오므렸다, 펴졌다 하는 게 느껴졌다.

장 대표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그러곤 바지를 입은 채로 퍽퍽 엉덩이 부근을 때려 왔다. 그에 난 구멍 안에 손가락을 넣고 있던 난 봉변을 당해야 했다. 손가락이 안을 깊숙이 찔러 와 크흣, 하는 신음 소릴 안으로 삼켰다.

남자가 내 어깨 위에 있는 가죽 소파에 담뱃불을 비벼 끄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취기가 돌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자제력이 조금 없네요.”

마치 평소엔 자신이 신사적으로 굴었던 것마냥 지껄이고 있었다. 장 대표는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냈다. 그러곤 바지는 지퍼만을 내려 능지처참당하는 놈처럼 다릴 벌려 놓은 내게 몸을 묻어 왔다.

“…하아.”

장 대표는 단박에 뿌리까지 안으로 넣어 왔다. 손가락 하나 정도는 거뜬하게 받아 냈던 구멍 안이 장 대표의 좆으로 꽉 틀어 막혔다. 코르크 마개처럼 안을 막은 장 대표의 좆이 안을 쑤셔 오기 시작했다.

“흐읏, 학!”

“…후우, 후.”

자제력을 잃었단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그는 평소보다 더 흉포하게 허릴 흔들었다. 리듬 따윈 없는 무자비한 허리 짓에 나는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으흣, 하아, 흑!”

“하아, 하…!”

장 대표가 내 둔부를 젖가슴처럼 주물럭대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매섭게 쳐 왔다. 철썩, 하는 소리가 룸 안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흐읏!”

“…허억, 헉. 엉덩이, 흔들어.”

그의 어깨에 팔을 얹은 채로 난 최선을 다해 허릴 움직였다. 그러나 다릴 기이할 만큼 넓은 각도로 벌리고 있는 탓에 허릴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장 대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때렸던 부위를 한 번 더 때려 왔다.

“더 흔들어, 더.”

장 대표는 그렇게 지껄이며 허릴 한층 더 빠르게 움직여 왔다. 그의 치골이 그가 힘을 주고 움직일 때마다 삽으로 파 놓은 듯 움푹 패여 들어갔다.

나 또한 종아리 안쪽에 힘을 꽉 주고 미친 듯이 엉덩이를 움직였다. 구멍이 안을 전동 드릴처럼 쑤셔 대는 그의 좆질에 맞추기 위해 재빠르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장 대표가 감탄 어린 어조로 지껄였다.

“어떻게, 구멍이 이렇게, 좁고 축축하지?”

“…음흐, 흐읏!”

“서수원 씨 보지에, 허억, 박아 댈, 생각하니까, 헉, 클라이언트 앞에 두고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벌떡 세울 뻔했어요. 헉, 하마터면, 그 새끼 입에 넣고, 박을 뻔한 거, 간신히 참았잖습니까.”

장 대표가 이내 농담으로 한 소린데도, 입 밖으로 내니 좆같기 그지없다고 했다. 억지로 숨소리를 억누르며 말을 내뱉는 탓에, 빠르고 거칠게 내뱉어지는 숨소리가 목 부근에 닿아 왔다. 그가 낮게 웃었다.

“허억, 면상 한번, 좆같이 생긴 새끼인데,”

난 목을 뒤로 꺾고 꺼억, 꺼억 하는 소리만 냈다. 말 그대로 두 눈이 회까닥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가 뒤로 홱 꺾인 내 목에 이를 세워 왔다.

“왜, 수원 씨도, 알잖아요. 그 김 사장.”

난 장 대표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 중심축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술을 마신 탓에 배뇨감이 드는 듯했다. 난 얼른 좆의 기둥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론 장 대표의 가슴팍을 밀어 냈다.

“흐윽, 대, 대, 표님, 그만.”

그러나 그의 돌덩이 같은 몸은 한 발짝도 물러서 주는 법이 없었다. 장 대표는 씨익, 씩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몸을 밀어 내는 내 손을 너무나 손쉽게 부여잡아 버렸다.

“그, 그만, 정말 오줌 쌀 것 같아요.”

좆이 중간 길이 틀어 막힌 물 호스처럼 손안에서 날뛰었다. 난 그에게 잡혀 있는 손목을 버둥거리며 애원했다.

“대표님, 잠시만, 잠시만 멈춰 주세요, 흑, 흐으윽!”

그는 계속해서 좆질에 미친놈처럼 행위에 몰두했다. 잘 쪼개진 복근이 그와 함께 숨 쉬는 듯 조여졌다, 풀어졌다, 를 반복했다. 깊숙한 곳을 망치로 찍어 내리듯 쾅 때려 왔다.

그 순간, 몸 안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던 무언가가 요도를 통해 펑, 하고 터져 나갔다.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뿜어져 나간 그것은 내 하체뿐만 아니라, 장 대표의 바지 또한 넓게 적셨다.

당연히 오줌일 거라 생각했던 액체 줄기엔 이상하게도 색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허연 액체에 불과한 그걸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난 발작했다. 몸은 계속해서 버들거리며 잘게 떨렸다. 고지에 올라 느꼈던 맹렬한 극치감이 강한 잔상을 남긴 거였다.

“…으흑, 흐으읏.”

수치감에 이마에 선 핏줄이 다 파들거릴 지경이었다. 이미 볼 장 다 봤다 생각했는데, 정말 오줌을 싸 버리다니.

그렇게 애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는 척하지 않았던 장 대표는 그제야 허리 짓을 뚝 멈췄다. 움직임을 멈춘 그는 손을 내려 내 하체를 쓸어 올리더니, 그걸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서 멀건 액체가 방울져 뚝뚝 떨어졌다. 가죽 소파가 엉망으로 젖어 들어갔다.

“…이런 미친.”

그가 입술 새로 낮게 탄식했다. 난 뭐라 말을 잊지 못했다. 수치심에 눈가가 뜨거웠다. 속으로 남자에 대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이 개, 개새끼가!”

분명 속으로만 퍼부으려고 했던 건데. 그만 입 밖으로 튀어 나가 버리고 만 욕지거리에 난 몸을 흠칫, 안으로 말았다. 머리와 몸이 뜨거워진 탓에 취기가 뒤늦게 올라와 행동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되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제정신을 차린 난 얼른 입술을 들썩거렸다.

“…죄, 죄송,…윽.”

순간 상악과 하악이 비틀릴 정도로 턱이 아프게 잡혔다. 이내 말을 뱉던 입술이 틀어 막혔다. 장 대표가 내게 입술을 맞대고, 혀로 난폭하게 입 안을 헤집고 있었다. 그가 까끌거리는 혀로 위 천장을 제멋대로 훑더니, 치열을 훔쳐 왔다.

몸으론 온짓거릴 다 요구받았으나, 그가 입술을 맞대 오는 건 처음이었다. 소스라치게 당황한 난 손을 툭 떨어트려 놓고 있다가, 이내 숨이 막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난 이리저리 고갤 비틀어 그의 입술을 피했다. 그러나 장 대표는 날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내 코와 입을 동시에 입에다 가둬 넣고 혀로 거칠게 쓸어 왔다. 가히 키스라기보단 추행에 가까운 행위였다.

***

몸 위로 손길이 뱀처럼 스르르 기어 다녔다. 손끝은 내 피부를 태울 것처럼 뜨거운 체온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쓸고 지나간 부분엔 왠지 써늘한 감각만이 연달아 남았다.

그 괴이하고도 의심스러운 손길은 상당히 느릿했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눈앞에 먹잇감을 두고 움직임을 부러 천천히 늦추고 있는 것처럼.

난 쓰러지듯 들었던 잠에서 깨어난 것뿐인데, 정신 차려 보니 이 상태였다. 장 대표가 등 뒤에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내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난 두 눈을 꽉 감은 채로 남자의 손길을 애써 모른 척했다.

밤새 시달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 이상 행위를 했다간 앞으로 사흘간은 족히 침대 생활을 면치 못할 거였다.

후우, 장 대표가 목덜미로 내뱉는 숨결에 익숙한 향이 섞여 들어왔다. 단단하게 바짝 서서 꼭 둔기 같은 성기가 허벅지 사이를 파고 들어와 안쪽을 느긋하게 문질렀다.

왠지 모를 이질감을 주는 손길이 척추를 느릿하게 쓸었다. 손끝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우둘투둘한 닭살이 피어올랐다. 어찌나 야릇한지, 소름이 다 끼쳤다. 손가락이 결국은 둔부 사이를 파고 들어오더니 구멍을 찔러 왔다. 굵직하고 긴 손가락이 밤새 몸 안에 잠복해 있던 정액을 떡처럼 찧어 대며 질퍽질퍽한 소릴 냈다.

유연하게 풀어진 구멍이 장 대표의 손가락을 탄력 있게 조였다, 풀었다. 남자가 조임이 만족스러운지 으음, 하는 소릴 냈다.

이윽고 장 대표가 구멍 안을 처박아 왔다.

“……!”

뺨 안쪽을 콱 씹어 신음 소릴 참아 냈다. 어찌나 깊이 파고 들어오는지. 장기가 무겁게 눌리는 느낌에 눈물방울이 절로 눈꼬리 끝에 대롱대롱 맺혔다.

눈을 꽉 감고 있어도 훤한 대낮이란 걸 알 수 있는데, 장 대표는 이 볕 뜨거운 한낮에도 상스러운 짓거릴 해 대고 싶어 안달이 나 허릴 되는 대로 휘둘렀다. 장 대표의 난잡한 허리 짓에 죄 없는 침대가 퍽퍽 소릴 내며 아우성을 쳐 댔다.

“…후우.”

난 오기로 아랫입술을 꽉 물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신음을 막았다. 정작 장 대표는 내가 깨 있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내 허릴 붙잡고 옆치기를 해 대던 장 대표는 이내 자세가 불편했던지, 날 거꾸로 뒤집고 위에 올라타 왔다. 그가 엉덩이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구멍을 찾아내더니 제 귀두를 몇 번 문지르고 안을 찔러 왔다.

“…윽!”

결심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한 방이었다.

“아흐, 흐읏!”

“…으윽!”

철벅철벅, 안에 남은 정액이 장 대표의 귀두에 맞닿아 질척거리는 소릴 냈다.

“…으응, 흑! 흐윽!”

“…하아, 하.”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무릎으로 기어 나갔다. 시트를 스치고 있는 한쪽 무릎이 이상하리만큼 쓰라려 움직임이 조금 더뎠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침대 헤드에 머릴 툭 부딪쳤다. 이 이상 도망칠 곳이라곤 없었다. 장 대표가 내 발목을 한 손으로 붙잡더니 날 다시 제게로 잡아당겼다. 난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그에게로 주욱 끌려갔다.

“그딴 식으로 도망가는 게 상대를 도리어 자극한다는 걸 왜 몰라요.”

흉기가 다시금 몸 안을 찔러 왔다. 꺼억, 꺼억.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소릴 내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어지러운 시야로 기둥처럼 딱 서서 장 대표의 거대한 몸을 받치고 있는 그의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의 팔뚝이 동아줄이라도 된 것마냥 꽉 붙들었다.

“으응, 흐읏!”

“…후우.”

사물들이 어지러이 뒤엉키는 가운데. 장 대표의 반지가 두 눈으로 들어왔다가, 그의 중지 뿌리에 있는 무언가가 시선을 끌었다. 처음 보는 흉이 번개 모양으로 나 있었다. 마치 실 따위로 기워 놓은 것 같은 자국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생겼다가 아문 흉터인 듯,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장 대표 손에 이런 게 있었던가.

“…흐으읏, 흐읏, 흐응!”

남자의 굵직한 팔뚝이 손안에서 활어처럼 펄떡거렸다. 몸 안을 콱콱 쑤셔 오는 것에 정신을 당장이라도 놓을 것만 같았다. 있는 힘껏 장 대표의 팔을 두 팔로 꽉 껴안았다.

장 대표가 내 배 밑으로 손을 넣더니 이내 시트에 문지르고 있던 좆을 제 손에 쥐었다. 남자는 그걸 있는 힘껏 문질러 댔다.

“하아, 하으읏, 응!”

“…또, 또 싸 봐, 어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새벽 내내 저놈의 분수 타령을 해 대며 날 괴롭혀 댔다. 구멍 안에 제 좆을 꽂고는 발정 난 짐승처럼 박아 댔다가, 내 좆을 직접 손에 잡고 흔들며 느릿하게 안을 문질러 오기도 했다.

“또 분수 싸 보라고.”

남자의 손에 좆이 무자비하게 문질러졌다. 표면의 껍질이 까졌는지, 그의 손에 거칠게 마찰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쓰라렸다.

이미 쥐어짤 대로 짜인 성기는 더 이상 내뱉을 게 없다는 듯, 고갤 꺼떡꺼떡거리다 푹 아래로 꺾였다. 내 몸은 사정을 하듯 부르르 떨렸지만, 정작 어떠한 배출도 없었다.

장 대표는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듯 눈썹을 살풋 찌푸리다, 이내 내 둔부를 철썩 쳐 왔다.

“벌려.”

장 대표가 내 뒤에 달라붙어 손으로 좆을 흔들었다. 좆은 곧 걸쭉한 정액을 토정해 냈다. 장 대표가 싸지른 정액은 고스란히 내 구멍으로 쏟아졌다.

“좆물 뱉지 말고 구멍 다물어.”

구멍에 힘을 줘 봤지만, 새어 나가는 정액을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엉덩이에 힘 바짝 주라구요.”

장 대표가 내 둔부를 다시금 철썩 쳐 왔다. 그에 둔부 밑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구멍이 일순 크게 수축했다. 기력을 모두 소진한 몸이 절로 풀썩, 시트 위로 엎어졌다.

대체 얼마나 해 댄 건지. 몸 전체가 다 뻐근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어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장 대표는 내 옆에서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게 틀림없는 내 둔부를 주물럭거리며 놀았다.

일순 배 밑 부분에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금세 사라졌다. 전날에 장 대표가 잔뜩 싸질러 놓은 정액을 긁어내지 않은 탓이 컸다. 이걸 이대로 두었다간 배앓이로 고생을 하게 될 게 뻔했다.

손으로 시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뒤에 누워 있던 장 대표가 처물어 왔다.

“어디 가지?”

“…씻고 오겠습니다.”

다리 후달릴 텐데, 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가 물어 왔다.

“사타구니 안 아파요?”

아프다고 하면 생색낸다고 지랄, 그렇다고 안 아프다 하면 한 판 더 하겠다 할 놈이었다. 대답 없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 장 대표가 선심 쓴다는 듯 지껄였다.

“씻고 와요.”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바닥을 두 발로 딛고 섰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데, 척추에서부터 지통이 찌르르 타고 올라왔다.

뒤에서 쯧쯔,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던 장 대표는 협탁으로 손을 내뻗었다.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수화기에 대고 지껄였다.

“룸서비스 부탁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내디뎌 간신히 샤워 부스에 도달했다.

쏴아아, 물줄기가 가슴께에 맞고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부에 감겨 있던 밤의 흔적들이 비눗기와 함께 씻겨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몸 구석구석을 문지른 뒤, 수도꼭지를 꽉 잠갔다.

철벅철벅. 젖은 발로 세면대로 향했다. 샤워 부스 안이 온통 부연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타월로 물기를 제거하는데.

무릎에 감아 놓은 붕대에서 새붉은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더니, 걸어온 길로 피가 방울져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무릎이 욱신거린다 했더니. 유리 조각에 찢겼던 상처가 그새 벌어진 듯했다.

“…….”

후우,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뒤, 한쪽에 딸려 있는 선반에서 붕대를 꺼냈다. 뚜껑을 닫은 변기 위에 풀썩 주저앉아 붕대를 무릎에 대고 대충 둘둘 말았다.

서툴기 짝이 없는 손길로 매듭까지 꽉 묶었다. 엉성한 매듭을 무릎에 단 채로 샤워기로 뒤처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쏴아아, 강한 물줄기에 새붉은 핏방울들이 씻겨 나갔다.

끼익, 샤워 부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수증기가 가득 차 있던 안에서 나왔음에도 눈앞은 계속해서 뿌옜다. 매캐한 연기가 눈에 닿아 왔다.

룸 안은 그야말로 너구리 굴이었다. 여길 이렇게 만든 범인은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장 대표였다. 그가 나신인 채로 뿌연 연기를 공중에 연거푸 내뱉고 있었다.

하체는 다행히 시트에 가려져 있었는데, 그나마도 시트가 골반에 약간 못 미치게 닿아 있어 상당히 아슬아슬해 보였다.

담배를 빠는 그의 얼굴이 회색 연기에 삭제되었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가 나른한 쾌감에 젖은 얼굴로 내 몸을 위아래로 샅샅이 훑었다. 가운 아래로 드러난 내 다릴 응시하던 그가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며 지껄였다.

“찢어지란 구멍은 안 찢어지고.”

그가 아래에 깔려 있는 시트를 눈짓했다.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샤워 부스로 들어간 뒤에 발견한 것 같았다.

더디게나마 아물고 있던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은 장본인인 주제에. 장 대표는 마치 이 모든 일이 내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처럼 굴었다. 정말이지,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난 그를 외면하며 소파를 힐긋했다. 가죽이 군데군데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무엇이 만들어 놓은 자국들인지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얼굴에 홧홧한 열감이 올랐다.

장 대표가 돌연 픽 비소했다. 남자는 목소리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는 주제에 맘껏 비아냥거렸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리고 말이에요.”

쯧쯔, 남자가 혀를 찼다.

“배변 교육 제대로 못 받았어요?”

“…….”

“내가 안 시켰던가?”

장 대표가 손등을 뒤집어 반지로 툭툭, 침대 헤드 위를 쳤다. 지친 기색을 얼룩처럼 몸에 남겨 왔던 어제와 달리, 현재의 그는 퍽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에 내 기분은 되레 거꾸로 땅에 처박혔다.

수건 하나에 물을 적시고 나와 소파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상처가 조금 더 벌어졌는지, 입에서 억 소리도 안 나게 상처가 아렸다. 수건을 꽉 쥐는 것으로 고통을 참아 내며, 가죽 소파에 묻어 있는 흔적을 문질렀다. 곳곳에 남아 있는 자국을 지워 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이미 물이 들어 버린 건지, 하얀 자국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손에 착 감겨 오는 소파의 재질은 이것의 가격대가 제법 나갈 것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건 또 얼마나 할까. 고단했던 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컴컴했다.

옆얼굴로 장 대표의 시선이 느껴졌다. 궁상맞게 앉아 소파나 처문지르고 있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았다.

띵동. 별안간 벨 소리가 울리더니 문이 똑똑, 노크 되었다. 얼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무릎에 순간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져 소파를 부여잡고 비틀거려야 했다. 장 대표가 멍청하게 굴고 있는 내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 꼴로 어딜.”

그가 샤워 부스로 향하더니 가운을 긴 몸에 느슨히 걸치고 나왔다. 이마 위로 흘러 내려와 약간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 느른하게 늘어져 있는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룸 안에 감돌고 있는 묘한 잔향.

누가 보더라도 좀 전까지 정사를 했다는 흔적을 여기저기 매단 꼴을 하고 있었다. 내 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단코 덜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끈을 성의 없게 허리춤에 묶은 장 대표가 문을 열었다.

문틈은 아주 조금만 열렸고, 그마저도 장 대표가 가리고 있는 탓에 룸서비스를 가져온 직원 쪽에서 내 꼴이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난 일부러 등을 돌리고 앉아 소파만 부지런히 닦는 척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주문하신 서비스 가져왔습니다.”

뒤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식을 주고받고 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마무리되는가 했더니, 장 대표가 이만 물러나려는 직원을 붙들었다.

“팁.”

…장 대표가 팁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속으로 씨발, 욕을 뱉었다. 날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난 이상하게 이 상황이 불쾌했다.

기분 탓인 걸까. 자꾸만 뒤에서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장 대표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곁눈질로 보이는 장 대표는 분명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 지금 날 지켜보고 있는 건 직원이라는 뜻인데.

백번 양보해서 단순히 장 대표의 밤 상대가 궁금해 안을 힐끔힐끔 들여다보고 있는 거라고 치자. 그럼에도 날 향해 있는 시선에서 뭔가 묘한 기시감이 들고 있다는 게 계속 찝찝했다.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잠시 놓고 뒤편으로 고갤 천천히 돌렸다.

장 대표가 등을 내보인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장 대표의 어깨 옆으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적개심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룸에 서비스를 들여와 날 노려보고 있던 직원은 바로 그 새끼였다.

내 돈을 훔쳐 갔던 바로 그 새끼.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때가 지나치게 일렀다.

난 그 새낄 똑바로 주시한 채로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찢겨진 환부가 아우성을 내질러 댔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의 난 그놈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에만 급급했다.

시선이 맞붙은 건 아주 짧은 찰나였다. 그러나 그 새끼의 눈은 그 짧은 새에도 내 몸에 걸쳐져 있는 가운과 흐트러져 있는 룸 안의 풍경을 모두 확인한 이후였다.

그 새끼가 내게서 장 대표로 시선을 옮기더니, 직원들 특유의 역겨운 말투로 지껄여 댔다.

“감사합니다. 추가 서비스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호출해 주십시오. 그럼 편안한 시간 보내십시오.”

그 새끼의 손에 꽂혀 있는 지폐 몇 장이 내 시선을 붙들어 왔다. 장 대표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그 새끼의 만면에 떠 있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싹 달아났다. 그새 가면을 바꿔 끼우기라도 한 듯, 180도 다른 표정을 짓고는 ‘더러워.’라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그 새끼의 얼굴 앞에서 서서히 문이 닫혔다. 곧 뚜벅뚜벅, 신경을 건드리는 발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그 발소린 점점 희미해지다가 종내엔 사라졌다. 그럼에도 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닫힌 문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눈자위가 당장이라도 피가 내뿜을 듯 뜨거웠다. 트레이를 한 손에 쥔 장 대표가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미동도 않고 문만 노려보고 있는 내게 그가 여상히 물었다.

“왜 그래요?”

장 대표가 소파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그러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가죽 소파 위에 풀썩 몸을 묻었다. 허연 자국이 얼룩덜룩하게 남아 있는 데도 정말 그 위에서 식사라도 할 참인지, 그가 음식을 덮고 있는 덮개를 열어 젖혔다. 역하게만 느껴지는 음식 냄새가 코로 훅 끼쳐 왔다.

“도깨비라도 본 얼굴인데.”

잇따라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평소에도 그 얼굴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스테인리스에 금속 식기들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 장 대표가 트레이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올려 누르스름한 빛깔의 연어 스테이크를 듬성듬성 조각냈다. 난 능숙하게 칼을 두르는 그의 손에 의미 없는 시선을 두며 운을 떼었다.

“방금 그 직원이.”

장 대표가 나직이 내가 하는 말을 곱씹었다.

“그 직원이.”

장 대표가 먹기 좋게 잘린 연어 고기를 제 입 안에 머금고 턱을 움직였다. 그의 날렵한 턱이 들썩거리며 음식물을 잘게 부쉈다.

“제 돈을 훔쳐 갔었던 그자입니다.”

그가 연어 한 조각을 더 입 안에 넣었다. 맛이 제법 만족스러운지, 한쪽 눈썹을 날렵하게 치켜올리곤 ‘음.’ 하는 감탄사를 낮게 내뱉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지나치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탓에 난 조금 당황했다. 분노까진 하지 않아도 적어도 불쾌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와인 잔에 담겨 있는 물로 목을 축이더니, 내 예상을 깨부수는 말을 지껄여 댔다.

“그건 나도 알아요.”

…이미 안다고?

난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나가는 장 대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걸 알면서도 저 새끼에게 팁을 줬다는 건가, 지금?

‘서수원 씨 고소해 버리기 전에 책임지라고 지랄을 떨던데요. 덕분에 그 입 처막느라 애 좀 먹였습니다.’

그 때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돈지랄이야 차고 넘치는 게 수표 쪼가리라 적선하듯 던져줬다지만, 저 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일말의 불편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답지 않은 태도에 당황한 내가 굳어 있는 사이, 접시를 모두 비워낸 장 대표가 손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앉아 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난 이만 나가 볼게요.”

그가 가운의 리본을 끌러 내며 자신의 옷이 걸려 있는 옷장 쪽으로 향했다.

“그러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서수원 씨도.”

셔츠와 바지만을 걸쳐 입은 그가 재킷을 한쪽 팔에 걸쳐 재킷 안에서 그의 휴대폰이 진동을 작게 울렸다.

지잉, 윙.

일정한 주기를 지닌 채로 떨리는 휴대폰의 화면을 그가 엄지로 밀며 받았다. 휴대폰으로 한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새벽녘에 들었던 그 곰처럼 커다란 남자의 음성이었다.

- 대표님, 어제 알아보라고 하셨던 것 말입니다.

“잠시만.”

문 쪽으로 향하던 장 대표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그가 휴대폰을 한 손에 쥔 채로 내게 지껄여 댔다.

“신제품 때문에 며칠간 바쁠 예정입니다. 그간 편히 쉬고 있어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그가 곧 열린 문 뒤로 사라졌다. 쾅, 문이 닫히며 난 파열음이 룸을 흔들고 흩어졌다. 나는 남자가 비우고 간 접시와 덩그러니 남아 한숨을 푹 쉬었다.

“……”

등 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진원지는 금고에 붙어 있는 카메라였다. 룸에 저런 걸 들여놓곤 편히 쉬고 있으라니, 양심도 없는 새끼. 나는 마른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엷은 피부를 양껏 괴롭히던 양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텅 빈 룸 안에서조차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 있어야하는 건 너무나 많은 신체적, 감정적 소모를 내게 안겨주었다. 딱 내 몸 크기만 한 관짝에 여유 공간 없이 갇힌 기분이었다. 게다가 바깥에서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나있어 나는 반대쪽에서 누가, 언제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갑갑해. 누군가가 내 목을 닭목처럼 제 손 안에 쥐고 비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숨이 막힐 듯 답답해 목을 감싸고 있는 옷 부분을 주욱 끌어내렸다.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까 싶은데. 어차피 이 룸 밖을 나서도 남들의 시선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쑥덕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젠 더 이상은 지겨웠다.

“……”

나는 바람을 쐬기 위해 창가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소파를 지나쳐, 침대를 지나 창문에 가 달라붙었다. 이 쪽이라면 카메라에서도 사각지대일 것 같았다.

투명한 창문 안에서 창백하다 못해 파르랗게 얼굴이 뜬 남자의 얼굴이 날 마주 봤다. 그는 초점이라곤 없는 눈동자로 한동안 날 지켜보았다. 난 그 시선을 피해 레버로 손을 뻗어 창문을 열어 젖혔다.

“……”

창틈 사이로 약간 찬바람이 곁들어 왔다. 여지껏 반팔 차림이었던 나는 팔로 몸을 껴안았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곤 눈을 약간 크게 떴다. 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두 눈에 가득히 담기고 있었다.

푸르기만 했던 골프장의 잔디밭이 어느덧 듬성듬성 갈물이 든 풀로 덮여 있었다.

어느덧 가을의 초입이었다. 한결 차가워진 바람과 벌겋게 물든 잡풀들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돌연 심장이 벌끈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방관자처럼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던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매섭도록 내게 뛰어들어 왔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 버린 거지. 분명 이렇게까지 오래 있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길어 봐야 한 계절, 수술비에만 보탤 돈을 벌면 나가려던 참이었다.

벌써 두 번째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고 하는 지금. 이젠 정말로 떠나야 할 듯싶었다. 아무도 날 찾지 못하는 곳으로 말이다.

뚝, 뚝. 창문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이윽고 때 이른 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시간은 날 한편에 세워 둔 채로 척척, 잘도 흘러갔다. 그동안 골프장엔 참 많은 인사들이 오고 갔다. 직원들 또한 소수지만 자유로이 유입되었다가, 떠나기를 반복했다.

신제품 출시 때문에 바쁠 거라 말했던 장 대표는 새벽에나 날 찾아와 내 몸을 취했다. 여전히 그는 고압적인 언사를 사용했고, 변태적인 행위를 즐겼으며, 그 행위가 끝난 뒤엔 내게 약속한 화대를 지급했다. 이곳에선 이게 일상이었다.

특별한 점이라곤 한 치도 없는. 분명 그러한데, 말초 신경이 이상하리만큼 곤두섰다.

룸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도, 문득, 문득 치달아 오르는 한기에 뒤를 팩 돌아보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금고 한 켠에 달려 있는 렌즈가 신경에 거슬려 왔다.

장 대표가 왜 구태여 내게 저 금고에 렌즈가 붙어 있단 사실을 말해 놓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짓할 생각은 마라. 내게 그 문장을 세뇌시키려고 했던 거라면, 그는 단연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한 거였다.

그가 저 눈을 통해 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감히 숨조차 편히 내쉴 수 없게 됐다. 모든 세포가 그를 향해 반응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날 이후로. 남자가 그리 말한 이유로, 증세가 유독 심해졌다.

‘끝내주게 궁금하네요, 서수원 씨. 대체 어디서 뭐 하다 이제야 내 손 안으로 굴러들어 온 건지.’

한번 팽팽히 당겨진 신경 줄은 쉬이 놓이는 법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장 대표는 그저 유흥거리로 즐기고 있을 뿐일 텐데. 나로선 지은 죄가 있으니 가벼이 스치는 바람에도 칼날에 피부가 베인 듯 화들짝 놀라, 냉큼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입 안에 욱여넣는 음식들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은 지 오래됐고, 잠도 거의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눈 감았다 뜨면, 그가 내 앞에 제 얼굴을 붙이고 서 있을까 봐 두려워서.

그 와중에도 피 칠갑한 중년 남자는 틈틈이 나타나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맴돌았다

모두가 잠에 들어 있을 시간. 이불을 걷어 내고 침대에서 빠져나와 휴게실이 있는 1층으로 향했다.

투두둑, 투두둑.

상단에 작게 난 창가에 한층 더 굵기가 굵어진 빗방울이 산발적으로 와 부딪혔다. 벌겋게 물든 나뭇잎들을 모두 탈락시키는 게 목표인지, 벌써 며칠째 내리고 있었다.

난 VIP 휴게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유일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백색의 빛을 온통 얼굴로 맞으며, 마우스로 화면을 이리저리 클릭해 봤다.

미리 봐 뒀던 섬이 화면 가득히 펼쳐졌다. 남해 끝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 들어가는 배도 딱 한 대로, 그것도 하루에 단 두 번만 뜨는 섬이었다.

“……”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내 허벅지 옆에 툭, 내려놓았다.

배 표도 그리 비싸지 않은데다가, 이런 곳이라면 월세도 확연히 낮을 거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엔 일단 있는 돈을 다달이 배분해 삼촌에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챙길 짐이랄 것도 없으니, 금고에 있는 돈만 싹 긁어모아 당장이라도 떠나면 되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장 대표였다.

원래 남자와의 거래는 그가 골프장을 떠나는 겨울까지 지속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때 장 대표는 분명 내게 도망갈 길을 열어 주는 건 물론,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지급해 준다 했었다. 물론 장 대표에겐 그럴 재력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도망갈 길을 그가 열어 준다면, 결국엔 그가 내가 어디로 갈지 알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너무나도 위험했다. 난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 조용히 인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인간이니까.

컴퓨터의 전원을 끈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룸으로 올라갔다.

“……!”

룸으로 향하는 복도. 얼핏 잡음이 귓가에 스치는 걸 느꼈다. 그러나 이내 철저히 무시하곤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룸이란 걸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걸음 속도를 점차 천천히 늦췄다. 난 차마 문을 열어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흐읏, 학!”

“…후우, 후.”

안에서 두 사람의 것으로 들리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꿀꺽, 목을 울렸다.

…그가 내가 머무는 룸 안에서 다른 이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만약 그런 거라면, 구태여 내 룸으로 기어들어 와 그 짓거릴 하고 있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였다. 가령, 내게 보여 주기 위함이라든가.

그렇다면 난 그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해 줘야 했다. 난 손으로 잡고 있는 카드를 천천히 단말기에 가져다 댔다. 이윽고 띠익, 도어 록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문손잡일 잡고 손바닥으로 감싸 잡아당겼다. 약간 열린 문틈 사이로, 신음 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려왔다. 발을 안쪽으로 들여놓으면 들여놓을수록, 그 신음 소리 또한 점점 더 크기를 높여댔다.

“흐으응, 하아!”

“…후우.”

“…하아, 흐응!”

“…후우, 후.”

억눌려 있는 듯하다가 이따금씩 높게 올라가는 남자의 신음 소리 사이로, 낮고 거칠게 단말마로 내뱉은 신음 소리가 언뜻언뜻 섞여 들어갔다. 전자는 낯설었으나, 후자는 분명 장 대표의 것이 맞았다.

절대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말초 신경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제 벽 하나만 돌면 다른 이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장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난잡할 텐데, 왠지 모를 기대감이 느껴졌다. 혀로 메마른 입술을 축축하게 적셨다.

장 대표는 나와 그 짓거릴 한 이후로, 어떤 이와도 관계를 맺지 않아 왔다. 그 사실은 나로 하여금 무척이나 기이한 기분이 들게 했다. 색마 새끼라면 상대를 불문하고 아무나와 붙어먹어야 하는데. 왜 유독 나한테만 발정 난 수캐처럼 들러붙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어쨌든 간에, 만약 장 대표가 지금 나 아닌 다른 이와 붙어먹고 있는 거라면 그의 정력을 남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럼 자연스레 그가 날 찾는 빈도도 줄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으며 벽 하나를 돌았다.

한창 정사에 빠져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장 대표는 잇새에 담배를 물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화면을 보며 바지춤을 내리고 제 좆을 문지르고 있었다. 너무 상스럽고 천박해 보여 하마터면 입 밖으로 쌍욕이 튀어 나갈 뻔했다. 하얗게 질린 채로 가만히 서 있던 나는 천천히 그가 바라보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

훤하게 불이 켜진 룸 안이 그대로 텔레비전 화면에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화면 속엔 장 대표가 너른 등을 내보이는 채로 소파에 달라붙어 흉포하게 허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흐읏!”

“…허억, 헉. 엉덩이, 흔들어.”

그의 허벅지 옆에서 허옇고 길게 뻗은 다리가 덜렁거렸다. 그리고 그 다리 중간에 놓인 무릎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걸 확인한 난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대체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내 기대감을 단숨에 날려 버린 장 대표가 내 팔을 휙 잡아채 왔다. 그러곤 그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날 앉혀 놨다.

장 대표가 내 목에 입술을 묻으며 지껄였다.

“잘 잤어요?”

“네.”

“끼니는요.”

“먹었습니다.”

장 대표가 시선을 비스듬히 눕히더니 잘했네, 라며 가벼이 칭찬했다. 그가 날 보며 한쪽 입꼬릴 끌어 올리더니, 좆을 더 빠르게 훑어 내렸다. 그의 흉칙한 성기에서 프리컴이 새어 나왔다. 그가 눈을 조금 감더니, 느른한 숨을 내쉬었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처럼 날이 서 있는 평소와 달리, 지금의 그는 경계심을 제법 느슨히 늦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시선을 비껴 테이블을 두 눈에 담았다. 호박색 액체가 반쯤 줄어들어 있는 위스키병과 빈 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하얀 가루처럼 보이는 것들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미 익히 봐 온 바가 있어 저게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바로 마약이었다.

다시 시선을 옮겨 장 대표를 응시했다. 묘하게 초점이 없었고,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연신, 혀로 아랫입술을 핥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을 한 듯했다.

마약에 취한 상태로, 나와 찍은 섹스 비디오를 틀어 놓고, 제 좆을 흔들고 있었던 건가. 미친 사람, 변태 새끼, 정신병자.

“…대표님.”

장 대표가 비식거리고 웃었다.

“신제품인데 약발이 괜찮네.”

장 대표가 턱의 각도를 비틀더니, 단숨에 내 입술을 빨아 왔다. 코 아래에 붙어 있는 두 살덩이가 그의 혀에 마구잡이로 짓눌렸다. 장 대표는 내가 주기적으로 호흡을 해 줘야 숨을 연명해 나갈 수 있는 인간이란 걸 잊은 놈처럼 아주 약간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달라붙어 왔다.

난 그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가벼이 밀어 냈다. 장 대표는 생각보다 쉬이 물러나 줬다. 그가 보는 앞에서 바지를 끌어 내린 후, 정장 바지 사이로 좆을 내밀고 있는 남자의 위에 올라탔다.

장 대표의 요도를 타고 흘러나온 프리컴을 입구에 묻히고, 삽입하기 위해 허릴 들썩거렸다. 장 대표는 그 짧은 새도 참아 주지 않고, 허리를 쳐올려 안에 삽입을 해 왔다.

장 대표의 좆이 빠듯하게 안을 채워 왔다.

“하으읏, 아!”

“…하아, 하아.”

“…흐응, 흐응!”

“…흐.”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귓전을 시끄럽게 울려 댔다. 당장이라도 화면을 팍 꺼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장 대표에게 넌지시,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대표님, 약 하세요?”

“가끔 중독되지 않을 만큼.”

장 대표가 내 엉덩이를 양쪽에 쥐고 터뜨릴 듯 움켜쥐었다. 약에 취해 힘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듯, 말 그대로 터뜨려 버릴 것만 같은 세기의 악력이었다. 약을 빨고 헤롱거렸던 이들에 비하면 비교적 정상으로만 보이는 하는 장 대표가 물어 왔다.

“왜요, 해 보고 싶어서?”

난 그의 가슴팍을 덮고 있는 셔츠 춤을 손에 쥐며 고갤 미약하게 내저었다.

“…하아, 다음, 다음에요.”

장 대표가 내 티를 말아 올리더니, 이내 젖꼭지를 찾아냈다. 그의 두 손바닥이 내 걸 거침없이 쓸어 왔다. 그의 손길에 감도가 올라간 젖꼭지가 손톱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역시 영상은 실제의 것에 한참 미치지….”

그의 말이 영상 안에서 나온 끔찍한 소리에 잘렸다.

“그, 그만, 정말 오줌 쌀 것 같아요.”

정신을 잃은 채로 내는 신음 소리에 눈가가 다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뜨끈하고도 축축한 숨을 하아, 하아 뱉으며 헐떡거렸다. 이윽고 고지를 눈앞에 두고 높게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저렇게 할 수 있겠어요?”

난 취한 그를 눈앞에 두고 고저 없이 중얼거렸다.

“…대표님도 해 주시면요.”

장 대표가 날 응시하며 비식거리고 웃었다.

“이거 이젠 완전 되바라졌네.”

그의 위에서 계속해서 허릴 움직이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술잔을 다시금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 주변에 놓여 있는 하얀 가루들을 눈에 새기듯 담아 놓았다.

***

장 대표는 내 구멍 안에 제 성기를 삽입한 채로 잠에 빠져 있었다. 난 그걸 빼내기 위해,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허리를 이리저리 쥐어짜며 비틀었다. 엉덩이도 좌우로 흔들어 댔다. 구멍이 움칠움칠 떨리며 좆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코르크 마개처럼 안을 꽉 막고 있던 좆이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갔다. 이내 인상 한번 험상궂게 생긴 좆이 퉁, 하고 튕겨 나왔다.

밤새 벌려져 있던 구멍이 후유증에 벌름벌름거렸다. 난 혹사당했던 다릴 벌벌 떨며 최대한 숨을 죽여 매트리스에서 일어났다. 웬일인지, 허리까지 덮여 있던 시트가 하체를 타고 스르르 내려갔다.

벗겨진 시트로 장 대표의 무식한 좆이 엿보였다. 그가 잠자고 있는 틈에도 그의 좆은 반쯤 발기 되어 있었다. 정말 크기로 보나, 굵기로 보나 사람 기 빨리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난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려 장 대표의 얼굴 앞에서 손바닥을 흔들었다.

“…….”

난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해 그가 자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내 그가 아직 잠에 빠져 있음을 확신하곤, 몰래 옷을 챙겨 입었다.

나지막이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고 있는 그를 룸 안에 홀로 남겨 두고 조용히 룸 안을 빠져나왔다.

밤새 벌어져 있던 탓에 아직 아가릴 덜 다문 구멍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안에 있는 내벽을 바깥으로 토해 내고 있는 듯했다.

휴게실로 들어와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눈매를 가늘게 좁혀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톱 밑 부분을 잘근잘근 씹었다.

여객선 터미널로 향하는 교통편을 찾다가, 내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해 있음을 알아차렸다.

…골프장으로 처음 들어왔던 그날.

마을버스에서 내려 이진석의 차를 타고도 안으로 꽤 들어왔어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거리가 제법 된다고 느끼긴 했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걸어서 족히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혹시 몰라 다른 정류장도 찾아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이 근방에 있는 몇 안 되는 정류장이라곤 모두 읍내로 나가는 버스들만이 정차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지 산간도 이런 오지 산간이 없었다. 차가 없으면 이곳을 벗어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지경. 그러니 그날에 이진석이 직접 날 데리러 왔던 거겠지.

“…….”

이 근방에 있는 콜택시 회사라곤 단 세 곳뿐이었다. 난 모든 콜택시 회사의 번호를 쪽지에 하나하나 적어 넣었다.

번호들이 휘갈겨 쓰인 쪽지를 한 손에 움켜쥐고 전화 부스로 향했다. 텅 비어 있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쪽지를 주섬주섬 펴 다이얼에 번호를 입력했다.

뚜루루, 뚜루루 하는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상대방이 전활 받길 기다리며 부스의 투명한 벽에 등을 기대고 바깥을 살폈다. 휘이잉, 써늘해진 갈바람이 회오리 모양으로 회전하며 낙엽을 헤집고 도망갔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낙엽들을 바라보며 넋을 빼고 있을 때.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편안함을 드리는 해피 콜택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정신이 퍼뜩 돌아와 얼른 허릴 곧추세웠다.

“저기…. 차편을 하나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 네, 성함이요.

“…서수원입니다.”

- 출발하고자 하시는 위치가 어디십니까?

“로열 골프장입니다.”

-네,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로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났다.

- 고객님, 죄송하지만 문의해 주신 지역은 거리가 너무 멀어 서비스하고 있지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첫 번째 전화는 그렇게 맥없이 끊었다. 마음속으로 첫 줄에 적혀 있는 번호에 엑스 표를 친 후, 두 번째 번호를 다이얼에 입력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연결음이 들리고 곧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 네, 말씀하세요.

“로열 골프장입니다. 차편을 예약하려고요.”

- 금방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담배를 입에 하나 물고 필터를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이윽고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원 또한 첫 번째 콜택시 회사와 비슷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여기까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웃돈을 더 얹어 주겠다고까지 말했지만, 자사 정책상 그런 건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제 마지막 회사였다. 남자 하나가 성의 없이 전화를 받았다.

- 네, 말씀하세요.

“로열 골프장인데, 혹시 차편 있을까요?”

- 거기까진 운행 안 해요.

남자는 그 한 마딜 남기곤 전화를 뚝, 끊었다. 너무나도 허탈하게 끊긴 전화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난 결국 소득 없이 전화 부스에서 나와야만 했다. 남은 담배 연기를 빨아 마시고, 다시 내쉬며 룸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 몰라, 쪽지는 갈기갈기 찢어 호텔 뒤편에 있는 소각장에 버려 버렸다. 그 위로 다 피운 꽁초까지 내던져 버렸다.

룸의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장 대표가 큰 침대를 빈틈없이 뒤덮은 채로 내게 등을 내보이며 자고 있었다. 장 대표를 숨죽여 응시했다.

정적이 안개처럼 룸 안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그의 호흡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는 마치 수면을 위해 마약을 섭취한 자처럼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후우, 후우.

그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어깻죽지가 가벼이 부풀어 올랐다, 풀썩 꺼졌다. 일자로 깊게 팬 척추 기립근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갈색으로 그을린 등엔 작고 큰 생채기가 제법 나 있었다. 그 와중엔 내가 쾌감을 못 이겨 박아 넣었던 손톱자국이 어깨에 남아 있었다. 꽤 깊게 박아 넣었는지, 자흔이 제법 깊어 보였다.

그걸 제외하고도 그간 그의 몸을 스쳐 갔던 지난날들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었다. 뭐 하는 놈인진 몰라도 풍기는 분위기에서나,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나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고 일하는 자는 아닐 거라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약을 제조하는 업자였다니.

난 그의 옆에 서서 전화를 들어 올렸다. 호출 버튼을 누르자, 프런트에서 즉각 전활 받았다.

-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여기.”

시선을 뒤로 흘깃했다. 장 대표가 혹여 깨진 않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그는 정말이지,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죽은 듯 잠에 심취해 있었다.

“여기 룸서비스를 시키려고 하는데요.”

- 네, 오늘 룸서비스 메뉴는….”

직원이 준비된 메뉴들을 줄줄이 읊어 댔다. 구미를 전혀 당기지 못하는 음식들이 연달아 나열되는 가운데. 솔깃하게 들리는 메뉴 하나가 있었다.

바로 C 세트였다. 해물 크림 리조또에 빵과 파스타가 나오는.

숙취에 시달릴 때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느끼한 파스타를 먹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속이 벌러덩 뒤집힐 것만 같았다.

“C 세트로 가져다주세요.”

- 음료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그냥 물 주세요.”

- 네, 원하시는 시간은 따로 있으십니까?

장 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일어날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 시간 있다가 들어와 주세요.”

잠에 흠뻑 빠져 있는 그를 중심에 두고 부러 작은 소음들을 내며 사부작, 사부작 몸을 움직였다.

수건 하나에 물을 묻혀 이미 먼지 한 톨 없는 룸 안 구석구석을 훔쳐 냈다. 하얀 얼룩이 얼룩덜룩 묻어 있는 소파도 마른 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았다. 혹여나 싶었지만, 역시나 자국들은 닦이지 않았다.

장 대표는 내가 한 켠에 놓여 있는 세탁기로 옷을 돌릴 때까지 손끝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나서 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올 때야 손끝을 흠칫, 떨었다. 난 그걸 확인하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룸서비스 왔습니다.”

그러다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제자리에서 뚝, 멈췄다. 남자라면 열 중에 여덟은 갖고 있을, 그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반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너무나도 내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고 조금 열자, 문 너머에 서 있던 그 새끼의 얼굴이 보였다.

그 새끼의 눈길은 나를 비꼈다.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장 대표에게로 향했다가, 다시 내게로 옮겨 왔다. 그 새끼가 조용히 트레이를 내게 건넸다.

손길엔 성의가 없었고, 눈길엔 적개심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그 새끼의 얼굴 앞에서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는 다시 룸 안으로 돌아왔다.

막 잠에서 깬 장 대표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두 눈으로 룸 안을 이리저리 둘러 봤다. 그러다 한편에 목석처럼 서 있는 날 발견했는지, 그가 지껄였다.

“…뭐야.”

그러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었나. 난 테이블로 다가가 두 손 무겁게 가져온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대표님. 룸서비스 시켜 놨어요.”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가운을 옷걸이에서 빼 나체 상태인 장 대표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장 대표는 날 응시하며 잠시 느지막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평소보다 늘쩍지근하게 풀어져 있는 두 눈동자가 내 얼굴에 곳곳이 닿아 왔다.

장 대표가 이내 허릴 감싸고 있는 시트를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엷은 시트가 그의 하체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갔다.

짙은 음모에 감싸여 있는 육중한 좆이 공중에 노출되었다. 저게 발기가 되지 않은 상태라 하면 열에 아홉은 거짓말 말라며 손사래를 칠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 학을 뗄 거였다.

장 대표는 남이 보는 앞에서 제 좆을 드러내고 있는 주제에, 태평하기만 한 손길로 천천히 가운을 껴입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워하는 건 내 쪽이었다.

“뒷덜미는 왜 붉힙니까.”

장 대표의 고간을 보고 자연스레 어젯밤 일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내 몸을 매섭게 파고 들어왔던 감각이 일순 일깨워져, 잠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픽, 비소를 내보인 그가 맨발로 저벅저벅 걸어 테이블로 향했다. 그의 정적에 감싸인 두 눈이 조용히 음식에 가닿았다.

“앉아요.”

조용히 그의 맞은편에 앉아 포크를 집어 들었다. 장 대표가 포크로 파스타를 집어 들더니, 입 안에 넣고 턱을 움직였다. 그의 턱 운동이 점점 느려졌다. 잘난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몇 줄 들어가더니, 그가 물로 입 안을 헹궈 냈다.

예상대로 속이 불쾌한 듯했다. 난 속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포크로 면을 둘둘 말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런 음식은 안 먹고 자라 온 탓에 약간 낯설었지만, 그닥 나쁘지 않았다.

장 대표가 상아색 빛깔의 크림색 파스타를 먹고 있는 내게 물었다.

“맛있습니까?”

“네, 맛있습니다.”

그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조금 치켜올렸다.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던 남자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안 처먹었으니 음식이 당길 때도 됐지.”

이미 입맛이 떨어졌는지, 장 대표는 티슈로 제 입가를 멀끔히 닦아 냈다. 그러곤 물이 담겨 있는 와인 잔 끄트머리에 손가락을 대곤 그걸 핑그르르 돌렸다.

“역시 뭐든 굶겨야 말을 듣는 법입니다.”

난 그가 뭐라 지껄이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함께 나온 피클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에 바빴다. 섬에 들어가면 이런 것들은 맛보고 싶어도 맛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입 안에 넣어 배를 채워야겠다는 계획이었다.

“내 말이 맞아요?”

“네, 맞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은 남자는 기꺼워했다. 비틀려 올라간 그의 입꼬리 새로 허연 어금니가 슬쩍 내보였다.

난 스푼으로 해물 리조또를 한 입 떠먹으며 장 대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장 대표의 잘난 면상 위로 그의 잘 빠진 가죽 지갑이 중첩되었다.

나도 희미하게나마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그에 되레 장 대표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조금 제동이 걸린 상태라지만. 어떻게든 길은 있을 거였다. 그 망할 놈의 돈만 내 손에 쥐고 있다면 말이다.

“…대표님.”

제 발기한 성기 마냥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장 대표가 날 턱짓하며 물었다.

“왜요.”

“저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

“…부탁?”

남자는 의외의 단어를 들었다는 듯, 눈썹을 가파르게 휘었다. 구겨진 짙은 눈썹과 좁아진 미간이 그를 한층 더 악랄해 보이게 만들었다. 매섭기만 한 그의 표정에 난 허벅지 위를 짧은 손톱으로 득득 긁어 댔다. 괜한 말을 해서 남자의 더러운 성미를 건드는 건 아닐까.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장 대표가 나지막이 날 재촉했다.

“서수원 씨가 내게 부탁할 게 뭐가 있을까요.”

난 그의 독촉에 하는 수 없이 검지로 룸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두 눈을 꽉 내려 감으며 말을 힘겹게 이어나갔다.

“…저 소파가 더러워져서요. 분명 호텔 측에서 물어내라고 할 텐데.”

“그런데요.”

“저걸 새 걸로 바꿔 달라고,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최고급 질의 가죽 소파. 못해도 몇 백은 나갈 거였다. 황당한 부탁을 받은 남자는 느긋이 턱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난 뭐라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그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역시 괜한 말을 꺼냈다.

나 같아도 다짜고짜 저렇게 비싼 걸 사 달라 요청하면 어이가 없을 거였다. 하물며 이 작자는 인성 수준이 썩어 빠진 널빤지만도 못한 놈이었으니. 뺨을 후려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

“…….”

난 다시금 포크를 손에 집어 들었다. 남자는 손등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짚고 시선을 비스듬히 눕혀 날 응시해 왔다. 키워 주는 주인으로부터 먹이를 제공 받은 애완견이 된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착실히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어 댔다. 값비싼 음식들을 최대한으로 몸에 흡수시킬 생각이었다.

비웃거나 분노할 거라 예상했던 장 대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난 당연히 남자가 내 부탁을 일축한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제 볼일만 보고 룸을 빠져나가기 일쑤였던 장 대표가 웬일인지, 그 전날만은 룸 안에서 하루 종일 뭉그적대고 있었다. 그에 경계 모드를 풀로 가동하고 있어야 했던 난 그가 없는 오늘에야 모처럼 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을 살짝 열고 복도를 살폈다. 복도가 텅 비어 있음을 확인한 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로비까지 내려오기에 성공했다. 휴게실로 안으로 들어와 문을 살짝 닫은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차편을 찾아내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서 놀렸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결과는 얻어 내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미 연락을 취해 봤던 그 세 회사 의외에 더 이상의 콜택시 회사는 없는 듯했다.

소득이 없으니, 룸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난 룸 안에 들어와서도 뾰족한 수를 찾아내려 발버둥쳤다. 입에 엄지를 문 채로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대며 룸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곳의 직원들은 대부분 자차를 타거나 골프장에서 운용하는 차를 이용하곤 했다. 내겐 자차가 없는 데다, 그렇다고 골프장 차를 탈 수 있을 만한 상황인 것도 아니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뭔가의 묘책이 필요했다.

묘안을 뱉어 내지 않는 머릴 탓하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가 룸을 노크해 오는 바람에 혼자만의 시간을 그만 방해받아 버렸다. 난 바로 문을 여는 대신, 노크 소리가 울렸던 문을 잠시 노려보았다. 이제껏 이 룸을 노크하고 들어온 이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좋은 기억을 받은 적이 없어 파블로프의 개가 종에 반응하듯, 노크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다.

“누구세요?”

복도 밖에서 몇 번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 대표님 심부름 왔습니다.”

난 이맛살을 찌푸렸다. 심부름? 이번엔 또 뭐에 감시 카메라를 달아 보내셨을지 기대되네, 그렇게 빈정대며 문을 열었다.

장 대표의 수하가 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 문밖엔 그놈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놈 뒤에 그놈만 한 덩치 둘이 더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놈이 내게 매섭게 추켜 올라간 눈꼬릴 애써 끌어 내리며 인사해 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대표님이 뭘 좀 옮기라고 하셔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난 잠시 주춤거렸다. 이 셋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곰처럼 거대하지만 어딘가 날렵하다는 느낌을 주는 떡대. 약속이라도 한 듯 갖춰 입고 있는 까만 정장. 안위가 심히 걱정됐지만, 싫다고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되는 상황도 아니기에 뒷걸음질 쳐 뒤로 물러났다.

맨 앞에 서 있던 놈이 뒤에 있던 두 사람들에게 눈짓하자, 뒤에 있던 놈들 둘이 구두를 벗곤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활짝 열어 도어 스토퍼를 걸어 놓더니, 내 옆을 스쳐 성큼성큼 룸 중앙 쪽으로 향했다. 어찌나 날 못 본 취급을 해 대는지, 순간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 같은 심경이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싶던 놈들은 소파로 손을 내뻗었다.

놈들은 그 커다란 소파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도 문질러 닦아 하얀 얼룩들은 지워졌지만, 그 대신 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진 소파가 그들의 손에 실려 나갔다. 난 얼떨떨한 얼굴로 거대한 소파를 번쩍 들어 올린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쪽에 서서 놈들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던 장 대표의 수하가 변명하듯 지껄였다.

“저흰 그냥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더 수상해 보이는 건 알고 있는 건지. 난 고갤 끄덕거리며 대충 답했다.

“네.”

놈이 내 대답에서 석연치 않음을 느꼈는지, 곰 발바닥 같은 손을 재킷 안 쪽으로 밀어 넣어 안을 뒤적거렸다. 그러곤 뭔가를 찾아냈는지, 재킷에서 손을 빼 들었다. 그에 난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을 물리고 말았다.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칼이나 망치가 들려 있어야 할 법했던 손엔 지갑이 들려 있었다. 놈은 얼른 지갑 안을 뒤적거려 명함을 꺼내더니, 재킷 단추를 여미곤 내게 그걸 건네 왔다. 놈의 허리는 약간 굽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명치 부근을 덮고 있었다. 상당히 예의를 차리고 있는 모습에 난 무척이나 낯설어하며 명함을 받아들였다.

난 예의상 시선을 내려 명함을 성의 없이 훑었다. 명함은 장 대표의 취향인지, 퍽 심플하게 제작되어 있었다. 난 명함에서 시선을 떼어 놈을 두 눈에 담았다.

“건실한 곳입니다.”

글쎄, 이미 아닌 거 안다니까.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는 놈의 뒤로 두 장정들이 갖고 나갔던 소파를 들고 지나갔다. 장정들은 그 흔한 쿵,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대리석 위에 새 소파를 안정감 있게 내려놓았다. 기가 질린 듯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장 대표 수하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깨쳤다.

“그럼”

놈이 화들짝 놀란 내게 빙그레 웃어보였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십시오.”

놈은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해 보였다. 나 또한 반사적으로 함께 고갤 조아렸다. 왜 저렇게까지 예의를 차리는 거지, 의문이 일고 있던 참인데. 문을 통해 복도로 나간 놈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더니 명령하듯 룸 안의 장정들에게 지껄였다.

“가자.”

장정들이 일사불란하게 놈의 뒤를 따라나섰다. 마지막에 들렸던 놈의 써늘한 목소리에 난 잠시 몸서리를 치다, 이내 문을 닫고 룸 안으로 돌아왔다.

새 소파는 기름칠이라도 해 놓은 듯 때깔 좋게 영발했다. 난 소파를 손끝으로만 만지작거리다 이내 그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넋을 빼놓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앉아서 소파만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걸 진짜로 사 줄 줄이야. 장 대표는 생각보다 돈이 남다 못해 썩어 들어가는 듯했다. 장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을 조용히 곱씹었다.

그는 분명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예쁘게만 굴면 더 얹어 줄지도 모른다고. 그는 내게 이걸 보냄으로써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장 대표가 ‘예쁜 짓’이라 칭한 행위 한 번에 몇 천만 원을 호가할 소파가 손에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이 개 같은 진창에서 오래 버티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장 대표, 혹은 장 대표와 같은 자한테 평생 붙잡혀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빨대를 꽂아 빨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빨아 먹을 참이었다. 남자로부터 평생 놀고먹을 돈은 받아 내지 못하겠지만, 받아 낼 수 있을 만큼은 받아 내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난 뭔가를 결심하듯, 신줏단지를 문지르듯 소파를 매만지던 손을 점점 안으로 그러쥐었다.

***

샤워를 하고, 옷장을 열어 깨끗한 옷을 꺼내 입었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과 몸이 단정한지 체크했다. 캐디로서 필드로 나서기 전에 하던 준비와 동일했다.

스니커즈를 신고 룸 밖으로 나왔다. 발걸음이 천천히 향한 곳은 필드가 아닌, 장 대표가 머무는 펜트하우스였다. 주먹을 꽉 쥐고 노크를 하려던 찰나, 문이 먼저 안쪽으로 벌컥 열렸다. 당황한 난 열린 문에 대고 작게 말했다.

“…대표님.”

문 너머에 있던 상대방은 날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건너편에 서 있는 건 장 대표가 아닌, 장 대표의 수하였다. 수하의 듬직한 어깨 너머로 장 대표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본인의 수하 뒤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장 대표와 그의 수하. 두 사람 모두 재킷까지 챙겨 입고 있었다. 모양새를 보아 하니 막 밖을 나가려던 참인 것 같았다.

“…아.”

둘의 시선이 모두 내게 닿았다. 타이밍이 이렇게까지 안 좋을 일인가. 면구스러워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 눈구멍으로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 대표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수하에게 지시했다.

“곧 나갈 테니까 차 시동 켜 놓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장 대표의 수하가 그에게 묵례를 해 보이더니, 빠르고 절제된 몸짓으로 룸을 벗어났다. 룸은 삽시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장 대표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손깍지를 낀 채로 날 조용히 응시해 왔다.

난 시선을 바닥에 붙인 채로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벗겨 먹을 대로 벗겨 먹겠다 마음먹어 놓곤 또 이렇게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찾아온 걸 보니까 용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장 대표가 느긋하게 팔을 교차해 팔짱을 꼈다. 그의 손목에 감겨 있는 은색 시계가 시선을 붙들어 왔다. 시계는 번쩍거리며 우아하게 빛났다. 난 꿀꺽, 메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대표님.”

“네, 서수원 씨.”

“그런….”

장 대표는 계속 하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 시계는 많이 비싼가요?”

남자는 잠시 말이 잃었다. 그가 시선을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갖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아요?”

장 대표의 싸늘하기만 한 눈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들만 떨어트려 놓는 입술. 이 얼굴을 앞에 두고 어떻게 갖고 싶어 돌아 버릴 지경이라는 얘길 꺼내 놓을 수 있을까.

“서수원 씨가 이런 시계는 뭐에 쓰려고요?”

“그냥. 갖고 있으면 좋으니까요.”

“…맨입으로?”

그는 수지타산만 맞는다면 정말 내게 그 시계를 채워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했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이 비루한 몸뚱어리 하나뿐인데 말이다. 그에게 시선을 맞추고 조용히 입술에서 말을 떨어트렸다.

“전 드릴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그가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천천히 내 얼굴을 훑어봤다. 고작해야 삼십 초 남짓한 시간이라지만, 내겐 억만 년의 시간과 맞먹는 순간이었다.

지잉, 윙. 장 대표의 휴대폰이 견고하던 적막을 깨트렸다. 장 대표가 내게 시선을 맞춘 채로 길쭉한 손가락들을 휴대폰 쪽으로 천천히 내뻗었다. 그가 전활 받았다.

“어, 말해.”

수화기를 타고 그의 수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표님.

나지막하게 부른 한 단어. 장 대표의 충실한 부하인 그로서는 최선을 다한 채근이었을 거였다. 그러나 장 대표는 그의 부름을 단박에 묵살했다.

“시동 꺼 놔.”

‘늦을 것 같으니까.’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장 대표는 손에서 휴대폰을 놓고, 내 턱을 순식간에 잡아채 왔다. 어둑한 동굴 같은 그의 입이 돌연 내 입술을 먹어 삼켜 왔다.

방바닥을 구르는 휴대폰에서 장 대표를 애타게 부르는 수하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 …대, 대표님?

길고 매끄러운 혀가 우둘투둘한 입천장을 연신 핥아 댔다. 혀엔 난폭한 데다 집요한 구석까지 있었다. 마음에 드는 부위가 있다 싶으면 그 부분만 지속적으로 파고들어 대는 거였다. 기어코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딱 장 대표, 본인과 같은 혀와 입맞춤이었다.

혼을 쏙 빼놓는 입맞춤에 오금이 다 저릿저릿했다. 당장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렸다. 장 대표의 어깨를 어색하게 움켜잡은 채로 몸을 휘청거리자, 장 대표가 내 팔을 제 목에 감게 했다.

그러곤 내 다리 사이로 자신의 굵직한 허벅지를 밀어넣어 왔다. 남자의 몸과 내 몸이 한 덩어리처럼 엉켜 들었다. 우습지만 좀 전의 것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는 자세였다.

장 대표는 내 고간을 터뜨리기라도 할 사람처럼 허벅지로 그 부분을 꽉꽉 눌러 대기 시작했다. 그에게 입술이 막혀 있는 채로 하아, 신음을 뱉었다. 들뜬 신음인지, 아님 고통에서 나온 신음인지 구분이 쉬이 가지 않았다.

“흣, 흐으, 흑….”

호흡이 슬슬 딸려 왔다. 위기감을 덥썩 느낀 난 시위하듯 장 대표의 목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을 바짝 주었다. 이, 이만 놔줘! 다리를 마구 굴러도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종전엔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퍽 쳐 대기까지에 이르렀다.

그가 불쾌한 듯 매끈한 이마에 미세한 주름을 잡더니, 그제야 입술을 떼 줬다. 떨어진 입술 새로 막혀 있던 숨이 파악, 튀어 나왔다.

“…헉, 허억!”

난 숨을 헉헉 몰아 내쉬었다. 부족했던 산소를 채워 넣으려 가슴팍이 가파르게 들썩들썩거렸다. 바람을 한가득 불어 넣은 풍선처럼 크게 부풀었다가, 단박에 푸우우, 꺼지길 반복했다.

찬 얼음을 입 안에 가득 넣었을 때처럼 머리가 띵했다. 딱 죽을 것만 같았던 상황이었다. 장 대표가 조금만 더 고집을 부려 댔더라면 정말 그리됐을 거였고.

“…후, 후우, 후.”

장 대표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괴로워하는 날 가만히 응시했다. 그가 조용히 눈으로 웃었다. 눈동자가 농밀한 빛을 내며 검측측하게 가라앉았다. 이 와중에도 그는 착실히 흥분하고 있는 듯했다. 성욕에 좌뇌, 우뇌를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에게 당신 방금 시체 치울 뻔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내 우악스러운 손길에 잡혔던 그의 고급 정장은 군데군데에 구겨진 자국을 달고 있었다. 특히 목 쪽은 가히 엉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말없이 그의 꺼먼 정장 재킷을 노려보고 있을 때.

지잉, 윙.

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속절없이 울려 댔다. 지잉, 윙. 오늘따라 유독 구슬프게 들리는 게 꼭 장 대표 수하의 애타고 있는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장 대표가 상체를 낮춰 휴대폰을 바닥에서 집어 들더니, 내 쪽으로 걸음을 저벅저벅 옮겨 왔다. 난 그의 걸음에 맞춰 뒷걸음을 치다가 식탁까지 내몰렸다.

“왜 뒷걸음 치고 그래요? 뭐 좀 해 보려고 찾아온 거 아니었나.”

장 대표의 얼굴 앞에 거울을 갖다 대어 주고 싶었다. 당신 얼굴 좀 보라지, 그런 표정을 하고 달려들면 백이면 백, 뒤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날 게 분명하다고. 남자가 번들거리는 입술로 웃었다.

“내 직원 몸 달아 있는 거 안 보여요? 서수원 씨 때문에 내가 방금 얼마짜리 계약을 날렸는데.”

그에게 선약이 있단 걸 알았으면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진 않았을 거였다.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수하에게로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얘길 함부로 내뱉었다간 내 목숨이 위험해질 거였다. 장 대표는 내 목을 졸라 죽이고도 남을 양반이었다.

난 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어 내렸다. 팔에 걸쳐 있는 셔츠를 벗어 내곤, 바지의 버클을 풀어 아래로 끌어 내렸다. 난 금세 속옷 차림이 되었다. 장 대표가 날 제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려 댔다. 그의 손길에 룸에서 미리 풀어 놓은 구멍 안에서 젤이 울컥거리며 새어 나왔다.

“이젠 뒤로도 싸요?”

“…젤, 젤입니다.”

아, 그가 낮게 목을 울렸다.

“대낮부터 다리 벌리러 왔어요?”

“…네.”

“뭐에 꼴려서. 포르노라도 보다 왔나?”

“아니요, 아닙니다.”

그러곤 내 허벅지 안쪽에 팔을 넣더니, 내 다리 한쪽을 제 허리에 감게 만들었다. 다리 한쪽에 의지해 몸을 지탱해야 하는 나는 잠시 휘청거리다, 허릴 단단히 감아 오는 그의 팔뚝에 의해 중심을 잡았다.

“수원 씨 한참 그런 거 볼 나이 아니에요?”

“…그렇게 어리진 않습니다.”

“그렇게 어리진 않아?”

장 대표가 내 말을 되풀이하더니 차게 비웃었다. 제 눈에 어려 보이는 내 안에 넣으려고 벨트를 풀어 대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참 양심도 없는 새끼였다. 지익 지퍼를 내리더니 그새 크게 발기한 고간을 밖으로 내놓았다. 제 주인처럼 고갤 빳빳이 들고 있는 그걸 바라보다 난 반사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가 고갤 꺾어 날렵한 턱선을 자랑하더니, 내게 입을 맞추며 내 엉덩이 골에 자신의 좆을 비벼 대기 시작했다.

“…후우, 후”

“흐응, 흑!”

얇은 옷감을 그대로 뚫어 낼 듯, 구멍이 있을 부근을 좆으로 콱콱 찍어 댔다. 구멍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벌렁벌렁거렸다. 구멍에서 새어 나와 속옷을 뒤부터 적시고 있던 끈적한 액체가 그의 좆질에 엉덩이 전체에 펴 발렸다.

그의 귀두가 입구를 감질 맛나게 긁어 댔다. 발가락이 비비 꼬일 만큼 속 안이 간지러웠다. 차라리 남자의 좆이 속옷을 뚫고 안으로 들어와 배 속을 긁어 줬으면 하는 심경이었다. 난 실제로도 그의 허리 짓을 도와 서툴게나마 허릴 움직여 댔다.

장 대표가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크게 벌리더니, 그 사이를 귀두로 콱콱 쑤셔 왔다.

“안이 간지러워서 미치겠지?”

“…흐윽, 흐으응.”

그러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온몸이 성감대나 다를 바 없는 내 귀에 대고 거친 숨 사이로 지껄여 댔다.

“어서 쑤셔 달라 해 봐요. 구멍 안에 있는 살이 모두 튀어나올 때까지 해 줄 테니까.”

난 두 눈을 꽉 감고 이곳으로 오기 전 몇 번이나 입으로 되뇌어 봤던 그 말을 입에 올렸다.

“…아, 안을 쑤셔 주세요.”

장 대표가 두 눈을 번쩍 빛냈다. 그는 성급한 손길로 내 속옷을 옆으로 젖히더니, 구멍으로 자신의 좆을 밀어 넣어 왔다.

“…아아!”

난 그를 마주 본 채로 새된 비명을 내질러 댔다. 선 채로 박히는 건 처음이었다. 낯선 자세로 아래가 뚫리자, 그동안엔 미처 닿지 못했었던 부근에 귀두가 가 닿았다.

마주 보고 서 있는 탓에 뻣뻣하게 선 그의 좆이 꼭 등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난 배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배가 그의 좆을 품었다가, 다시 낳기를 반복했다. 장 대표의 칙칙하기만 한 색의 넥타이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가 내 시선이 그쪽에 가 있음을 눈치챘는지, 제 넥타이로 손을 뻗어 꽂혀 있는 그 핀을 뽑아내 내 유두에 꽂아 왔다. 난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몸을 바르작거리며 떨어 댔다.

“아파요?”

“으흥, 흐응, 흑!”

“아픈 거 확실해? 하아, 서수원 씨는, 좋아 죽겠다는, 후우, 말을 그런 식으로 하잖아.”

장 대표가 내게 삽입을 해 올 때마다 그의 하체와 내 하체가 맞부딪혀 팡팡 소리가 났다. 그 소리 사이로 장 대표가 은근히 물어 왔다. 위와 아래쪽, 어느 쪽이 더 아프냐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난 그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했다.

“…대, 대표님, 넘어질 것 같아요.”

쯧쯔, 혀를 찬 장 대표가 골반에 걸쳐 있던 내 속옷을 단숨에 벗겨 냈다. 그에 안에 들어간 채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던 자지가 퉁, 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픽, 비웃듯 웃고는 내 엉덩이 밑을 단단히 받치곤 날 땅에서 들어 올렸다. 180이 넘는 성인 남성 하나를 안아 올리고도 그는 휘청거리는 법 하나 없이 허리 짓을 해 댔다. 참 놀라운 정력이라 속으로 빈정대며, 그의 재킷을 손으로 꽉 쥐었다. 재킷이 손안에서 엉망으로 구겨졌다.

장 대표가 넥타이핀이 꽂힌 내 젖꼭지를 슬슬 어루만지더니, 손바닥으로 철썩 가슴팍을 쳐 댔다. 유륜은 물론 가슴팍 전체가 뜨끈한 열감을 토해 댔다.

장 대표가 내 안 깊숙이에 좆을 넣은 채로 안을 크게 휘저어 댔다. 어느 포인트에 귀두가 스치자, 난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쾌감을 맛봤다. 가벼이 누른 것만으로도 사정에 이를 뻔한 난 그의 목에 코를 묻고 신음을 내뱉었다.

“…아아, 거기.”

씩씩대는 숨을 내뱉던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왜요?”

“…으흑, 흑, 흐윽! 흑!”

“허억, 여기, 여기 쑤셔 주면, 좋지?”

장 대표는 이미 그곳을 찌르면 내가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정신이 없어 답을 못 하고 있자, 장 대표가 애먼 곳을 콱 쑤셔 왔다. 난 도리도리,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거긴 쑤셔봤자 아프기만 한 곳이었다. 그리고 장 대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진 않을 거였다.

“말로 안 하면 안 쑤셔 줄 거예요.”

난 허릴 들썩들썩거렸다. 손으로 자지를 흔들어 사정을 돕고 싶었지만, 두 손이 모두 장 대표의 목을 감고 있는 상태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흑, 아, 아까 거기.”

“진짜 이건, 발정 난 강아지 새끼도 아니고.”

장 대표가 내 허벅지를 고쳐 쥐더니, 이내 원하던 부근을 콱 쑤셔 왔다. 난 꼬챙이에 찔린 활어처럼 몸을 파다닥 떨어 댔다.

“아흣, 하악, 흑, 흐윽!”

“…하아, 흐윽, 흐.”

“흑, 아아, 흑.”

그만해 달라고 해야 할지, 아님 더 밀어붙여 달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 판단이 어떻든지 간에 어차피 남자는 제멋대로 할 새끼였고, 그는 당연 물러서는 대신 허리 힘과 허벅지 힘을 십분 발휘해 안을 들쑤셔 왔다.

난 아주 손쉽게 고지에 올라갔다. 멀건 정액이 울컥울컥, 그의 잘빠진 복근으로 튀더니 그의 중심으로까지 흘러내렸다.

장 대표는 내가 사정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안을 계속해서 두드려 왔다. 사정의 여운으로 안을 조였다, 풀었다를 빠르게 하고 있는 구멍을 제멋대로 늘리며 좆질에 미친놈처럼 허리를 흔들어 댔다.

끈질기게 안을 자극당하는 통에 안에 있는 주머니 하나가 지속적으로 터질 듯 말 듯 굴었다. 난 무언가가 곧 분출될 것임을 느끼고 뒤늦게 요도를 틀어 막아 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아흐흑!”

요도로 하얀 오줌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미 내 정액으로 배와 좆 부근을 뜨끈히 적신 장 대표가 날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러곤 자신의 좆을 손으로 잡고 내 구멍에서 빠져나갔다.

짧지만 굵게 터졌던 처음과는 달리, 이번 거는 줄기는 가늘지만 마치 오줌처럼 꽤 오래 새어 나왔다. 난 졸졸 새어 나오는 그걸 막아 보려 안짱다리처럼 다릴 안으로 굽혀 보기도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날 지켜만 보고 있던 장 대표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좆을 액체가 떨어지고 있는 내 좆 밑으로 갖다 댔다. 그의 좆이 하얀 오줌을 비처럼 맞았다.

번들거리는 그의 좆을 보며 난 기겁을 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바로 뒤에 소파가 있는 탓에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장 대표는 내 몸에서 나온 액체를 맞으며 자신의 좆을 흔들어 댔다. 이내 그 또한 크음, 하는 신음을 내며 사정했다.

똑똑, 마지막 방울이 그의 손등과 좆 기둥을 함께 두드렸다. 난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은 물론 몸까지 붉게 붉힌 채로 땅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몸 안에서 터진 하얀 액체가 허벅지는 물론 발 주변을 온통 적시고 있었다.

“흐윽!”

난 장 대표에게 밀려 소파 위로 쓰러졌다. 그가 내 턱을 아프게 틀어쥐곤 또 그놈의 입맞춤을 해 대기 시작했다. 여전히 배려 없고, 무식하기만 한 입맞춤이었다. 그가 사디스트란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야말로 그가 본인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내 몸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음, 흐음.”

“…후우.”

난 서툴게 그의 입술을 받아 내며 신음을 내뱉었다. 신음을 참으려 습관처럼 내 아랫입술을 물으려던 게 그만 그의 아랫입술을 이로 살짝 물어 상처를 내고 말았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쇠 맛에 난 혀로 피가 나고 있는 아랫입술을 슬쩍 핥았다.

입술을 침략시킬 듯 공격적으로 집어삼키던 장 대표가 갑작스레 뒤로 물러났다. 그가 제 손등을 입가로 훔쳐 내며 날 내려다봤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서툴기 짝이 없던 혀 놀림이었다. 저렇게까지 싫어할 줄 알았다면, 무모하게 그의 입술에 혀를 대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였다. 내 낯을 활활 태워 버릴 것처럼 노려보는 그에게 난 불규칙한 호흡 사이로 작게 중얼거렸다.

“…대표님.”

“…….”

“수, 숨은 쉬게 해 주세요.”

장 대표가 내 턱을 손으로 움켜쥐어 자신에게로 들어 올렸다. 제멋대로 내 얼굴의 각도를 이리저리 비틀어 대더니, 대뜸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서수원 씨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네?”

장 대표는 실제로도 낯선 걸 보고 있다는 표정으로 날 대했다. 내 눈, 코, 입을 차례로 쓸고 지나가는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의 굴곡 진 얼굴 위로 기묘한 빛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불쾌한지 모르겠네.”

입술 새로 나직이 뱉은 말은 차라리 혼잣말에 가까웠다. 뭔가 심기에 거슬린다는 듯, 얼굴을 묘하게 구긴 장 대표는 다른 손으로 내 다리 사이를 파고 들어왔다. 거리낌 없는 손이 축축한 허벅지 안쪽을 멋대로 훑어 올리더니, 손등에 묻은 물기를 내 배 위에 대고 탁탁 털었다. 방금 막 씻고 나오기라도 한 사람의 것처럼 젖어 있는 장 대표의 손에서 투둑, 투둑 물기가 떨어졌다.

내 배를 적신 액체 방울들을 본 장 대표는 낮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훤칠한 이마 위로 흘러 내려온 머리칼을 손등으로 쓸어 올리곤 재킷 안쪽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 좀 피워야겠네요.”

라이터로 담배 끝에 화악, 불을 붙였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담배 연기를 맛깔나게 들이켜고 내뱉더니, 손등으로 내 궁둥이를 툭툭 쳐 자신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는 나를 일깨웠다. 그가 생긴 것만큼이나 상스럽게 휘두르는 손짓에 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장 대표는 그런 날 나무라듯 지껄였다.

“안 뒤집고 뭐 합니까.”

…무슨 세신사도 아니고. 뒤를 툭툭 치면 사람이 몸을 홱 뒤집을 거라 생각하는 남자에게 난 기가 찼다. 그럼에도 착실히 몸을 뒤집어 손바닥으로 소파를 짚고 몸을 지탱했다. 잊지 않고 허리도 요량껏 낮추고 엉덩일 될 수 있는 한 높게 추켜올렸다. 수치스러움이 극대화되는 자세였으나, 이것만큼 그가 쉽게 진입할 수 있게끔 하는 자세도 없었다.

변죽이 들끓듯 하는 장 대표는 또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바닥으로 날 소파로 찍어 눌렀다. 그는 그 위압적인 손길 한 번으로 손쉽게 내 몸을 가느다란 풀대처럼 꺾었다. 난 소파 위로 풀썩 쓰러져, 가슴팍에서부터 무릎까지를 모두 소파에 붙였다.

“어디서 마음대로 엉덩이를 쳐들어요, 쳐들기를.”

그 상태로 그에게 꿰뚫렸다. 장 대표는 널찍한 손바닥으로 내 둔부를 철썩철썩 때려 가며 좆질했다. 난 거센 태풍에 밀린 파도처럼 출렁출렁거리며 꼭 멀미 같은 쾌감을 느꼈다. 그가 뭉텅이째로 선사하고 있는 쾌감 덩어리들을 착실히 주워 받아먹고 있으면서도, 이 관계에서 쾌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게 지독한 경멸을 느끼고 있었다.

포인트를 매번 정확히 짚어 내는 장 대표가 안을 후벼 댈 땐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로 황홀했다. 반면에, 그가 빠져나가 텅 빈 속 안은 어째 거북스럽기만 했다.

내 쾌감 회로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그가 차라리 더 심하게 굴어 줬으면 싶었다. 내 사고회로마저 완전히 망가뜨려 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난 팔을 뒤로 해, 남자의 둔부 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바짝 성나 허리에 달라붙어 있는 남자의 둔부가 손에 잡혀 왔다. 근육 조각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잘 발달된 그의 엉덩이는 그가 허리 짓을 할 때마다 부드럽게 유영하며 탄력성을 뽐냈다.

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움켜잡고 내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으흐윽!”

“흐윽, 하아….”

“으흐, 흐응, 흑! 흐읏.”

남자의 좆이 구멍 안을 꽉 채워 왔다. 억지로 삽입하다 못해, 안에서 구부러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불구불하게 똬리를 틀어 앉은 것 같은 장 대표의 좆은 꼭 구렁이 뱀 같았다.

그가 넓은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어 왔다. 눈과 코, 입이 동시에 틀어막혔다. 남자는 내 얼굴을 손잡이처럼 잡고 안을 더 강하게 치대 왔다. 그의 하체 밑에 깔린 내 허벅지에선 이미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마도 꽤 근육통을 앓으리라.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허벅지가 불쌍해졌다.

입술 새로 남자의 중지 하나가 들어왔다. 장 대표가 보기 좋게 그을린 길쭉한 손가락으로 내 입 안 점막을 후벼 댔다. 강하게 들어왔다가, 다시 쑥 빠져나가는 게 꼭 좆질하는 것만 같았다.

난 장 대표를 옆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쥐여 있는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가 아름다운 얼굴을 감쌌다가, 사라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가 또한 날 향해 있는 상태였다. 표백한 듯 허예 보이기만 하던 흰 자가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며,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혀를 움직여 그의 손가락을 핥아 댔다. 지문이 있을 법한 곳에 혀끝을 대고 살살 문질렀다가, 고갤 옆으로 숙여 기둥을 길게 핥아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목구멍까지 닿을 것처럼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내 혀 또한 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장 대표가 입술 새로 내민 내 혀를 가만히 바라보다, 감각이 사라진 내 발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어 넣어 왔다.

그러곤 내 고갤 붙잡고 코를 붙여 왔다. 남자의 입술이 다시금 내 입술을 삼켜 왔다. 그에게선 알싸한 담배 향이 났다. 참으로 묘한 향이었다. 처음엔 독하디독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지니 얼른 다시 입에 붙들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한참 내 입술을 핥던 장 대표가 이내 입술을 떼어 냈다. 그린 듯이 아름다운 입술로 웃으며 그가 지껄였다.

“후우, 서수원 씨. 하아, 숨 쉬어야지.”

그가 담배가 끼워져 있는 발을 손으로 잡곤 툭툭, 쳐서 재를 털어 냈다.

그렇게 장장 다섯 시간을 생식기를 맞댄 채로 섹스했다. 장 대표는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생수병을 따 간간이 목을 축이며, 남은 물로는 자신의 좆을 씻어 정액을 훔쳐 냈다. 그러곤 다시 삽입이었다.

***

날밤을 까며 내게 정력을 낭비해 대던 장 대표는 그날 새벽, 노크 소리에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얼굴 전체에 불꽃 같은 시선이 꽂히고 있음에도 난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잠든 척만 하고 있었다.

이내 장 대표의 무게로 인해 푹 꺼져 있던 옆 매트리스가 다시 쑤욱 차올랐다. 슥슥, 슬리퍼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샤워를 마친 뒤, 그가 옷을 차려입고 문 쪽으로 향했다. 열린 문 너머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기다렸습니다.”

담담하기만 한 수하의 목소리엔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장 대표는 그에게 어조 없는 목소리로 지껄였다.

“이쯤 됐음 퇴근했어야지.”

뻔뻔한 놈의 뒤로 문이 콰앙, 소릴 내며 닫혔다. 난 어둠 속에서 눈을 조용히 떴다. 놈이 잔뜩 헤집어 놓은 탓에 구멍이 후끈후끈거렸다. 진짜 안에서 살이 튀어나온 걸지도.

후유증이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심했다. 정자세로는 제대로 눕지도 못해 새우처럼 옆으로 누웠다. 정적이 찾아오자, 너무나도 쉽게 다시 혼자만의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이곳에서 나갈 차편을 구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곳이라곤 딱히 없다. 이곳에선 고객들은 물론 직원들과도 그 어떠한 개인적인 교류도 맺어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나마 머릿속에 떠올려 본 사람이라곤 이진석뿐이었다. 난 손을 휘휘 저어 금세 머릿속의 그를 떨쳐 냈다. 이진석은 안 됐다. 신분증을 부탁하자마자 장 대표에게로 말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이상 이진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창백한 손을 들어 올려 머릴 부여잡았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고작 차편을 구하지 못해 이곳에서 못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마치 커다란 장벽 따위가 날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섬뜩한 불안감에 초조해하자 손안이 축축해지고 갈비뼈 부근에 한기가 돌았다. 이렇게 몸이고 정신이고 유달리 나약해져 있을 때면 꼭 그 남자가 찾아온다. 싸한 기분이 들어 천천히 뒤를 쳐다 보자, 아니나 다를까. 또 환영이 보였다. 피 칠갑을 한 자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제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불보를 손으로 꽈악 잡았다. 불을 켜고 싶었지만, 그러면 저것의 형체가 더 분명해질 게 분명했다. 나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렇게 봐 놓고도 지겹지 않은지.

새벽 내내 어디론가 꺼져 있던 장 대표가 날 420호로 불러냈다. 그는 새 정장을 갖춰 입은 채로 소파에 다릴 꼰 채로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테이블엔 그 말고 다른 이들이 있었단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들 두 명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그 테이블 위를 치우고 있었다.

룸 안으로 들어온 날 확인한 장 대표가 마치 개를 부르듯 내게 손을 까닥거렸다.

“이리로 와 봐요.”

난 불편한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손등으로 턱을 괴고 내 걸음걸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픽 비소를 터뜨렸다. 난 조용히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저 악마도 혀를 내둘러 버릴 새끼.

장 대표가 손가락으로 탁, 탁 소릴 내더니 지나가는 직원 하나를 불렀다. 허릴 빳빳하게 세우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던 직원 하나가 그의 손짓에 바짝 굳어 다가왔다.

장 대표는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트레이를 턱짓했다.

“이 앞에 놔 줘요.”

직원이 잘 교육받은 손짓으로 트레이를 집어 올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의 낯익은 시선이 잠시 내게 닿았다가, 금방 떨어졌다. 난 그걸 못 본 척하며, 직원이 내려놓은 트레이를 무감동한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트레이 위엔 스테인리스로 된 푸드 커버로 덮인 접시가 있었다.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진 짐작도 가지 않는 데다가 일말의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

“안 열어 보고 뭐 합니까.”

남자의 말에 푸드 커버로 손을 뻗어 접시에서 들어 올렸다.

역겨운 파스타라도 담겨 있나 했는데. 안에 담겨 있던 건 고급스러운 인장이 박힌 시계 케이스였다. 난 천천히 그걸로 손을 뻗어 케이스를 엄지로 밀었다. 케이스가 똑 소릴 내며 열리고, 모습을 감추고 있던 시계가 자태를 뽐내며 드러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값 깨나 나갈 것 같은 놈이었다. 난 감히 손끝조차 대 보지 못하곤 다시 케이스를 닫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장 대표가 심드렁하게 지껄였다.

“그리 반기는 표정은 아닌데.”

마치 갓 포경 수술을 한 놈의 것만 같았던 내 걸음걸이를 볼 때보다 더 재미없단 얼굴로 날 응시했다.

“드디어 돈맛 좀 아는 건가, 했더니.”

장 대표가 쯧쯔, 혀를 찼다. 그가 느릿한 손짓으로 담뱃갑을 툭툭 치더니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뱃불을 붙이는 대신 필터를 잘근 물며 날 가만히 응시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그의 기묘한 눈동자에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발을 조금 뒤로 물리는데. 그만 뒤를 지나가고 있던 직원에게 부딪쳐 버리고 말았다.

와장창, 쟁반 위에 올려져 있던 술병들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낯익은 눈동자의 직원, 그러니까 이혜원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치마 유니폼은 타이트한 데다 짧기까지 해 쭈그려 앉을 수는 없게 만든, 그런 복장이었다. 불편한 데다 실용적이지도 않은 복장을 입은 이혜원이 엉거주춤 허릴 숙인 채로 유리 조각으로 손을 내뻗었다.

난 얼른 손을 뻗어 이혜원의 손등을 가벼이 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치울게요.”

“…아, 아닙니다.”

“괜찮으니까, 밀대 좀 가져와 주시죠.”

이혜원은 조금 주춤대다가, 얼른 룸 밖으로 향했다. 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큰 유리 조각부터 손에 집어 들었다. 머리 위로 싸늘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어디서 무릎을 꿇고 기어 다녀요, 기어 다니길.”

아랫입술을 꾹 물곤, 굽히고 있던 무릎을 천천히 폈다. 위 공기가 싸늘했다.

“수원 씨, 그거 손에서 놓고 이리 와 봐요.”

고갤 숙이고 죄지은 놈처럼 그의 앞에 섰다. 장 대표가 돌연 비죽 웃었다.

“서수원 씨도 치마 입혀 줘요?”

장 대표가 내 허벅지를 더듬거리더니 이내 길이는 이쯤 오면 좋겠는데,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가 음험한 음성으로 물었다.

“잘 아는 사이인가 보네?”

예쁘던데, 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이혜원 얘길 하고 있는 듯했다. 난 시선을 아래로 끌어 내리며 조용히 답했다.

“…아니요.”

거짓으로라도 잘 아는 사이라 답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말하면 쓰나.”

장 대표는 과장된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이런 내가 너무나도 무심해 본인이 다 안타깝다는 얼굴이었다.

“후임이었다면서요. 종종 같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장 대표의 말에 난 눈을 질끈 감았다.

“잘 챙겨 줘야죠.”

그렇죠? 그가 물었다. 난 나지막이 “네.”라고 답했다. 허벅지 춤에 닿아 있던 장 대표의 손이 반 바퀴를 돌아 내 엉덩이에 가 닿았다. 그가 착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내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거렸다.

끼익, 소리에 장 대표의 두 눈이 막 열린 문에 닿았다. 그가 이혜원에게 입술을 올려 웃어 줬다. 근사했으나, 곁에 있는 이의 오금이 저리는 그런 미소였다.

장 대표의 여유로운 입술을 타고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일행은.”

장 대표가 ‘일행’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며 내 손목을 꽈악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그의 손길이 빠져나간 자리엔 욱신거리는 둔통이 남았다. 난 다른 손으로 남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붙들어 잡았다. 남자에게 수도 없이 손목과 발목을 붙잡혀 댔었던 지난 과거로 미루어 보건대, 이 손목엔 분명 멍이 들 거였다.

“조금 바빠서 말이에요.”

손목에 순간적으로 가해졌었던 위력은 위협적이었으나, 남자의 목소리엔 고압적인 느낌이 평소보다 빠져 있었다. 장 대표가 상냥하게 세 치 혀를 굴려 댔다. 마치 본인이 선량한 시민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대신 치워 주겠습니까?”

그러나 제아무리 무해하게 군다 한들, 독사는 독사일 뿐. 이혜원은 남자에게 독액이라도 맞은 것처럼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두 다릴 벌벌 떨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만 서 있다가 간신히 답했다.

“네.”

남자가 내 팔목을 꽉 쥐어 잡았다. 그러곤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날 잡아당겨 댔다. 줏대라곤 없는 몸이 홱 반쯤 돌아갔다. 얼른 시계를 집어 들곤, 반강제로 그를 따라나섰다. 장 대표는 구둣발로 거침없이 유리 조각들을 밟고 지나갔다.

으드득, 그의 검은 가죽 구두 밑에서 죄 없는 유리 조각들이 더 작은 파편으로 부서졌다. 난 스니커즈의 얇은 밑창으로 그가 부숴 놓은 유리 가루들을 밟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뒤통수에 직원들의 시선이 따갑게 박혀 왔다. 별안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롭게 피부밑을 파고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쿡쿡, 온몸이 바늘에 찔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장 대표는 날 엘리베이터로 던져 넣었다.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손잡일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장 대표가 뒤따라 들어와 펜트하우스의 층수를 누르곤 여유롭게 팔짱을 꼈다. 길게 찢어진 남자의 두 눈이 내 표정을 나무랐다. 꺼먼 두 눈은 유독 파르라니 하얀 흰자와 색 대비를 이루어 한층 더 검게만 보였다.

“표정이 왜 그따위예요?”

남자의 고저 없는 음성이 승강기의 벽을 가늘게 진동시켰다. 순간적으로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어 척추가 다 오싹거렸다. 손등엔 우둘투둘하게 닭살까지 돋아났다.

이렇게 좁은 공간 안에서 울리는 그의 음색을 싫어했다. 그의 목소리엔 특유의 낮은 울림이 있어 살갗뿐만 아니라 그 안쪽 진피층까지 깊숙이 눌러 왔다. 남자에게 잡혔던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가리며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섰다. 곧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난 기껏 서수원 씨 생각해서 선물도 사 왔는데요.”

“…….”

“그러고 보니.”

장 대표의 날 선 눈매가 내 행색을 느긋이 훑었다. 예리한 시선이 발끝에서 시작해 허리, 가슴팍을 차례로 타고 올라왔다. 시선이 가슴팍에서 유독 길게 머무른다 했더니. 남자의 비율 좋은 입술이 삐뚜름한 조소를 그려 냈다. 남자가 독을 발라 놓은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들도 전부 다 내 돈으로 사 준 거잖아요.”

남자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기껏 돈까지 들여 놨는데, 감사 따윈 할 줄 모르는 나 때문에 그는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도 포장지가 예쁘니까 뜯는 맛은 나겠네.”

사람을 두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초콜릿 취급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포장을 벗겨 내 한입에 와작 씹어 먹을 수 있는 그런 편리한 불량 식품. 혹은 단순 유흥거리.

더 이상 그의 말에 동요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장 대표가 입 밖으로 내뱉는 건 모두 오물일 뿐이니까. 나는 부디 그를 한껏 비꼬고 있는 속내가 드러나질 않길 바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멍청한 줄로만 알았더니. 예쁘다는 말은 또 잘 알아들어?”

…너 지껄여라. 주머니만 털어 내고 도망가면 이 남자완 두 번 다신 같은 공기도 나눠 마시지 않을 거였다. 나중에 뒤졌다고 소식 들려올 때면, 그때서야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들고 찾아와 불을 붙여 주는 척하며 봉분을 홀라당 태워 줄 거였다.

안하무인인 그가 최소한 죽어서는 편하게 살지 못했으면 했다. 장 대표가 입술 끝을 예민하게 들어 올리며 웃었다. 난 그를 따라 웃었다.

개새끼의 매끈한 얼굴 위에서 미소가 금세 삭제되었다. 이 작자는 따라 웃으면 꼭 이 지랄이었다. 마치 못 볼 꼴이라도 본 마냥.

“…….”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고는 별안간 날 엘리베이터 벽으로 밀어붙였다. 등이 벽을 맞고 퉁, 튕겨 나오는 그 짧은 새를 못 참고 남자가 뒷덜미를 낚아채 왔다. 맹수처럼 아가릴 크게 벌리더니 날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메마른 입술을 물어뜯고, 숨통을 끊어 놓을 듯 둥글게 튀어나온 목젖을 잘근잘근 씹었다.

장 대표의 가슴팍에 은은히 묻어 있는 향수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 왔다. 이건 고객들을 위한 그의 애티튜드였다. …당장 오늘 새벽까지도 관계를 맺었었다. 내가 불편하게나마 휴식을 취할 동안, 장 대표는 밖에서 일을 보고 와야 했다. 이제 룸에 들어가면 남자는 저 셔츠를 벗고 샤워를 한 뒤, 내게 자신의 단단한 피부를 맞대 올 거였다. 위에서 찍어 누르든지, 아님 아래서 찍어 올리든지 하는 방식으로.

***

마침표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날에도 어김없이 아침은 왔다.

협탁 위에 올려져 있는 시계는 금고 안에 넣고, 정해 두었던 액수의 현금들을 챙겨 나왔다.

편의점 안은 휑했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의 성의 없는 목소릴 귀에서 튕겨 내며 안쪽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원래 목적지였던 ATM 기계로 곧장 향하는 대신, 그 주변을 조금 배회했다. 매장 안은 한산했고, 몇몇 있는 사람들도 저희들끼리 이야길 나누느라 바빴다.

머리 바로 위에 달린 사각지대 거울을 흘깃했다. 카운터 안에 앉아 있는 알바생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해 댔다. 지겨워 죽겠다는 얼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모두가 내 쪽에 관심 따윈 일말이라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난 그제야 품 안에 챙겨 온 지폐들을 잘 추슬러서 ATM 기계에 넣었다.

난 누가 훔쳐볼까, 아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행했다. 돈을 흡착기처럼 빨아들인 기계가 얼굴 위로 ‘전송 완료.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문구를 띄웠다. 난 그걸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았다.

“…….”

지독히 허무했다. 손안에 쥐여 있던 부피감을 너무나도 쉽게 잃어버렸다. 돈뭉치는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돈이 애먼 곳으로 빠져나간 것도 아닌데. 이로써 애비가 진 빚이 어느 정도는 깎여 나갔을 텐데. 그럼에도 난 허탈함을 숨기지 못했다. 돈뭉치를 품고 왔던 가슴팍으로 써늘한 바람이 드나드는 듯했다.

잠시 껌뻑거리던 화면은 금세 시작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럼에도 쉽게 자릴 떠나지 못하고 고장 난 듯 서 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정신을 차렸다.

“저기요.”

난 얼른 자릴 비켜섰다. 등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이상하다는 듯 날 지켜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겨 흡연실로 향했다. 의자 위에 풀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창문을 넘어온 햇살이 정수리와 목뒤로 부서져 내렸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머리엔 정신이 없었고, 몸엔 기운이랄 게 없었다. 품을 뒤져 담배 한 개빌 입에 물었다. 후우, 후우. 담배 연기를 힘껏 입 안으로 들이켜 대며 텅 빈 안을 채우려 노력했다.

주변의 소음이 웅웅, 귀를 울려 왔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음역대가 높은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 왔다.

“안녕하세요.”

처음엔 내게 하는 말이 아닌 줄로만 알았다. 알고 지내는 직원이야 거의 없는 상태인 데다가, 그나마 말을 붙여 오는 이혜원한테는 어제 그 꼴을….

“요즘엔 잘 안 오시더니.”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가 이번엔 제법 명확하게 귀 안으로 꽂혀 들어왔다. 분명 낯익은 음성이었다.

난 천천히 고갤 들어 올렸다. 대체 언제부터였던 건지. 이혜원이 오후의 따뜻한 기운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여자의 갈색빛 나는 머리칼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난 잠시 당황해 말을 잃고 여자를 응시했다. 앞에 담배꽁초가 불씨가 덜 꺼져 있는 상태인 걸로 봐선 나보다 더 먼저 와 있었던 듯했다. 얼이 빠져 있던 탓에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피할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어제 그 꼴을 봤었으니. 그러나 여자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게 말을 붙여 왔다.

“다신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본의 아니게 마주쳤던 내 몰골은 비참하기만 했었다. 한숨도 잠들지 못했던 밤은 내게 파리한 안색과 어두운 눈 그늘막을 모두 안겨 주었다. 내 몰골은 말 그대로 산송장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 묻혀도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할 짓 없는 누군가가 흙만 덮어 준다면 그게 바로 무덤이었다.

그런 몰골을 한 날 눈앞에 두고도 모르는 척, 여자는 태연히 굴었다. 그러곤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어제 얘기도 꺼냈다.

“어젠 감사했어요.”

이혜원이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내게 다시금 웃어 보였다. 제 입술을 손등으로 가리더니, 작게 소곤거렸다.

“사실 너무 곤란했었거든요.”

“…….”

“고작해야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치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혜원은 여전히 수다스러웠고, 눈치도 없었다. 딱 평소처럼만 굴었다. 그러나 난 별안간 그런 이혜원이 낯설었다. 분명 문밖에서 분명 들었을 텐데. 장 대표, 그 작자가 하는 소리를.

‘서수원 씨도 치마 입혀 줘요?’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그려지던 장 대표의 얼굴이 차츰 흐려졌다. 그의 피부와 머리칼이 별안간 세 톤 정도 밝아지더니, 이혜원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난 순간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떴다. 날이 지나치게 훤했다.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서우신 분인 건 맞는데요. 팁을 워낙 잘 챙겨 주셔서.”

“…….”

“직원들도 장 대표님 있다고 하면 서로 못 들어가서 안달인 것 같지 않아요?”

여자의 두 눈이 순간 힐긋, 손목에 와 닿았다. 난 반사적으로 이미 손등까지 덮고 있는 남방 소매를 더 끌어 내렸다. 소매 안쪽으로 시계처럼 한 바퀴를 둘러싸고 있는 멍 자욱과 울혈이 잔뜩 찍혀 있는 손목이 숨어들었다.

모두 망할 그 개새끼가 낸 거였다. 남자는 억센 손길로 붙잡았던 오른쪽 손목을 밤새 괴롭혔다. 짐승의 이빨 같은 어금니로 밤새 오른쪽 손목을 물어뜯어 댔다. 그러면서 지껄인다는 말이, ‘이것도 어디 가려 보지 그래요. 어쩔 수 없이 시계 차고 돌아다녀야겠네.’

정신 차려 보니 이미 필터까지 모두 피워 버린 이후였다. 꽁초를 재떨이에 비볐다. 불씨가 꺼지는 담배 끝에서 쉬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붉은빛이 들어왔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담배 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여자가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저기.”

“…….”

“어제 시계 받으신 거 있잖아요.”

욱신욱신. 장 대표에게 붙잡혔던 손목 부근이, 그 얇은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는 하얀 뼈가 욱신거리며 아우성을 내질러 댔다. 여자가 약간 짙은 빛을 내는 입술을 들썩거렸다.

“그거 진짜 비싼 거 아니에요?”

난 여자의 말을 바로 해석해 낼 수 없었다.

“거의 소형차 한 대 값이라던데.”

이혜원이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늘 안으로 들어오자, 빛에 반사되어 거의 색이 날아갔던 여자의 눈동자 색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여자가 가까이 붙어 왔음에도, 난 그저 입술을 조금 벌린 채로 정지해 있을 뿐이었다.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한 감각이 머릴 관통했다.

여자는 색이 조금 짙어진 눈동자로 악의 없이 웃었다. 장 대표의 돈이 치덕치덕 발린 내 옷차림을 훑어보는 여자의 시선에도 악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법한 탐욕이 잠시 눈에 비쳤을 뿐.

그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혜원의 입술과 눈빛을 통해 흘러나온 것들이 예상치 못해 뜻밖이어서. 아랫입술이 바짝 메말랐다. 알고 있는 게 당연한 건데. 이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 바닥의 생리를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건데.

…모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건지.

껌뻑, 껌뻑. 위태롭게 죽을 듯, 말 듯 목숨을 연명해 나가던 불씨가 사그라드는 소릴 냈다. 쉬이익.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