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4)

04.

장 대표가 며칠간 잠잠했다. 정말로 외지로 나간 모양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왕이면 그날따라 재수 없어 어디에서 뻑치기라도 당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망상하곤 했다.

난 그가 없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며 보냈다. 강박 관념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채널을 이리저리 틀며 뉴스를 찾아다녔다. 혹여나 눈에 띄는 어떤 사건이 있을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들여다보았다.

여느 때처럼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꿔 틀고 있는데, 프런트에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420호에서 날 부르고 있다고 했다. 손에서 수화기를 놓고 나갈 채비를 했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지 꼴리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람을 처불러 대니. 룸 안에 혼자 있을 때도 도무지 편하게 쉬려야 쉴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반대편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함께 열리며 이혜원이 내렸다. 예전 같았으면 반가운 기색을 해 보였을 텐데, 이미 한 번 민망해 봤던 기억이 있는 이혜원은 가벼이 묵례를 하곤 트레이를 밀며 420호로 향할 뿐이었다.

복도를 빠져나가는 찰나, 꺾는 곳에서 그만 트레이의 휠이 벽에 걸리고 말았다. 이혜원이 낑낑대며 벽에 박힌 휠을 빼려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트레이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제가 밀겠습니다.”

이혜원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괜찮습니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자, 벽에 박혀 있던 휠이 빠져나왔다. 뒤로 물러나 있던 이혜원이 감사합니다, 가볍게 묵례를 해 보였다.

“이거 그냥 갖고 들어가면 되죠?”

“…아, 네.”

이혜원은 아직 신입이라, 룸까지 들어가게 시키지는 않았다. 이혜원에게 그럼 내가 갖고 들어가겠다, 고 말한 뒤 술병이 올라가 있는 트레이를 밀며 420호 앞으로 다가갔다.

“룸서비스입니다.”

똑똑, 문을 노크하곤 안에서 응답이 오길 기다렸다. 시선이 느껴져 복도 쪽을 응시했다. 그때까지도 날 지켜보고 있던 이혜원이 흠칫 놀라며 등을 홱 돌렸다.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이혜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트레이를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420호 안엔 장 대표와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의 남자들이 테이블을 몇 개 두고 포커를 함께 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두 눈이 바쁘게 장 대표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장 대표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내게, 김 사장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예쁜이 왔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에게 묵례했다.

“…안녕하세요.”

김 사장이 내게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권유해 왔다. 난 그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끔 가벼이 그 술잔을 거절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홀짝이며 내 다리 사이를 훑었다. 술잔을 지나가는 직원의 트레이 위에 올려놓은 그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걸어는 다니네.”

“…….”

“그날 신음 소리 듣고 장 대표가 예쁜이 사지라도 하나 뽑아내고 있는 줄 알았잖아.”

처음 보는 남자 하나가 두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되물었다. 장 대표?

“장 대표 요즘 남창 끼고 산다는 소문 돌던데.”

그게 쟤야? 그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크읏, 수상쩍은 비웃음으로 답을 갈음한 김 사장이 자신의 빈 잔을 들어 올리며 내게 말했다.

“이리 와서 술 좀 따라 봐.”

“…….”

모든 눈동자들이 내게로 꽂혀 왔다. 얼른, 이리 와 보라니까. 그가 제자리에 서 있는 내 팔목을 잡고 억세게 잡아끌었다. 난 힘없이 그에게 딸려 갔다. 김 사장의 손길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힘껏 뿌리친다면 뿌리칠 수 있는 힘의 세기였으나, 그가 갖고 있는 돈의 힘이 무서웠다.

그가 어지러운 테이블을 팔로 모두 쓸어 냈다. 유리잔들이 바닥에 나뒹굴어 깨졌다. 김 사장이 빈 테이블 위에 날 억지로 앉혔다.

별수 없이 병을 들어 올려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의 잔이 누런색 액체로 채워졌다. 김 사장이 그걸 들어 올리더니, 목을 꺾어 단숨에 그걸 들이켰다.

“…크.”

그가 역겨운 숨을 뱉어 냈다. 예쁜이가 따라 주니 술맛이 더욱 좋은 것 같다고, 그렇게 지껄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얀 천 아래로 손을 숨겨 내 오금을 은근히 더듬거려 왔다. 그는 장 대표가 그의 앞에서 내게 하던 짓과 똑같은 짓을 행하고 있었다.

텅 빈 눈동자로 흉칙하기 짝이 없는 김 사장의 얼굴을 응시했다. 검지 손가락만 한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올려 그대로 그의 목에 박아 넣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 사장의 좆같은 치근거림은 며칠간 계속됐다. 그는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같이 날 불러냈다. 장소는 라운지, 클럽하우스, 그늘막 등으로 다양했지만, 날 불러 놓고 한다는 짓거리들은 거의 비슷했다.

오금과 팔뚝 같은 신체 부위를 더듬어 온다거나, 날 두고 성적인 조롱을 한다거나, 내게 무리한 것들을 요구해 왔다. 이를테면 노래해 봐, 춤춰 봐, 웃어 봐, 다릴 좀 더 벌리고 앉아 봐.

목석처럼 앉아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노라면, 날 두고 갤러리들은 웃음을 깔깔 터뜨려 댔다.

어제 김 사장이 날 불러낸 곳은 그늘막이라 불리는 휴게소였다. 일반 식당 안에서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려 대는 까닭에 밤새 시달려야 했다. 눈이 회까닥 돈 김 사장은 보는 눈이 스무 개가 넘는 장소에서 제 바지를 내리곤, 위스키 병을 제 자지처럼 사타구니 중간에 꽂고 오줌을 싸듯 병을 흔들어 댔었다.

병 입구를 통해 빠져나온 술 줄기가 구렁이처럼 요동치며 내 얼굴과 몸을 흠뻑 적셨다. 주변에서 아하하하, 미친 듯이 웃어 제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기다며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는 놈이며, 테이블 위를 탕탕 내리치는 놈 하며, 모두 더러운 한통속이었다.

“…….”

술독에 온몸을 푹 담갔다 나온 사람처럼, 내게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알코올이 속눈썹에 매달려 있다 방울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코올 방울이 만든 자욱을 짧은 손톱으로 까득, 긁었다.

입 안에서 혀를 굴려 봤다. …좆같은 새끼. 정말이지, 그는 좆같았다. 개새끼 장 대표와는 또 결이 달랐다.

장 대표가 나로 하여금 분노와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면, 김 사장은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오물통에 목까지 담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의 기름 낀 두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구토감이 절로 치밀어 올랐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난 김 사장의 역겨운 기름기가 역병이라도 되는 마냥 몸에 남은 그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해 몸을 벅벅 씻었다.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그제야 좀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피 칠갑한 인영이 어디선가 나타나 어둠 속에서 날 조용히 목도했다. 핏발 선 두 눈동자가 모두 날 향했다. 난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아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품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불편한 자세로 쪽잠을 청했다. 수마가 느긋하게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그대로 날 시트 위로 쓰러트렸다.

***

낮이 되자 띠리리, 또 지긋지긋한 전화가 울렸다. 새우잠을 자고 있다가, 귀를 울려 대는 벨 소리에 잠에서 깨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머릴 털어 냈다. 불순물을 떨어내는 키처럼 머릴 흔들다, 벨 소리가 뚝 끊기고 난 이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침대에서 네 발로 기어 나와 협탁에 달라붙었다. 조용해진 전화길 붙들고 다시 전화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혼자 불안에 떨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벨 소리는 다시금 울렸다. 얼른 전화기를 집어 귀에다 붙였다.

“…여보세요?”

수화기로 음성이 흘러나왔다.

- 잘 잤어?

…씨발. 이 능글거리는 목소리는 김 사장의 것이었다. 대답을 않고 있자, 남자는 낄낄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 …저기 말이야, 여기 420호인데. 얼른 와서 분위기 좀 돋워 봐. 자지 달린 놈들만 모아 놨더니, 영 재미없고 칙칙하네.”

그의 음흉하고 능청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 좆같은 새끼야.’라는 말이 입술까지 마중 나왔다. 실제로도 입술을 열어 목에 묵은 가래처럼 쌓여 있는 욕지거릴 뱉어 버리려고 했다.

“…이!”

그러다 일순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던 장 대표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협탁에 상체를 기댄 채로 머릴 부여잡았다. 그러곤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김 사장은 장 대표의 고객이다, 김 사장은 장 대표의 고객이다.

김 사장이 장 대표의 고객이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장 대표는 수틀리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인물이다. 만약 제 고객의 빈정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된다면, 내게 불이익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용히 체념을 담은 한숨을 내뱉곤, 수화기에 대고 읊조렸다.

“…곧 가겠습니다.”

무기력하게 손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샤워를 하고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와중에도 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김질했다.

김 사장은 장 대표의 고객이다, 김 사장은 장 대표의 고객이다.

문제의 420호는 문밖에서부터 소란스러웠다.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놓으며 노크하길 망설이고 있을 때, 문이 먼저 안쪽으로 벌컥 열렸다. 활짝 열린 문 뒤엔 이진석이 서 있었다. 그가 매끈한 얼굴로 웃더니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미안, 수원 씨. 당장 데리고 들어오라 하시더라고.”

그가 내 어깰 손바닥으로 가벼이 감싸더니 날 룸 안쪽으로 이끌었다. 인간들과 술병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룸 안. 중심에 놓여 있는 의자에서 최대한 몸을 크게 부풀리고 앉아 있던 김 사장이 내게 손짓했다.

“어어, 왔어? 얼른 와서 여기 앉아.”

이진석이 내 등을 가벼이 툭, 떠밀었다.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김 사장이 내 손목을 휘어잡아 끌어당겼다. 그는 날 너비가 넓은 의자 손잡이 위에 앉혔다. 마치 제가 따온 트로피를 유리장 같은 곳에 진열해 놓는 것처럼.

“가만 보자. 우리 예쁜이 술잔이 없네, 이거.”

빈 술잔을 찾던 그는 쓰레기들이 가득한 테이블 위에서 술잔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뒤섞여 역겨운 색을 내고 있는 그걸 김 사장은 목을 꺾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빈 잔을 탁탁, 털더니 내게 그걸 넘겨 왔다.

“자, 한 잔 받아.”

“…괜찮습니다.”

근무 중에 음주와 흡연은 금지되어 있다고 이미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한 건지. 그는 매번 권유해 왔다. 장 대표가 쓰던 상스러운 단어를 조용히 입 안에 담아 봤다. ‘빡통’.

술잔을 기울인 그는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 왔다. 처음엔 유니폼에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를 만져 보는 척하며 은근슬쩍 더듬더니, 이젠 대놓고 가슴팍을 손에 쥐고 주물럭거렸다. 뺨 안쪽 살을 콱 물었다.

룸에 모여 있는 놈들은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고가 브랜드의 벨트를 간간이 추켜올리며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해 댔다.

보통 김 사장이 시답잖은 말을 지껄이면, 다른 놈들이 맞장구치거나 킬킬대며 웃는 식의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이 룸 안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난 당연 최하위층이었다. 김 사장이 내게 잔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술잔이 비었잖아.”

술병을 집어 올려 그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꿀꺽, 꿀꺽 술을 마신 그가 지갑을 뒤적대더니 지폐를 한 뭉텅이 꺼내 내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빳빳한 지폐의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이 가슴팍 부분을 할퀴었다.

“우리 예쁜이 팁.”

지폐를 쑤셔 넣은 이후에도 그의 손길은 가슴팍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주머니 안쪽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왔다. 징그러운 손끝이 유륜 부분을 더듬었다. 생리적으로 반응한 유두가 부풀어 오르자, 김 사장이 날 보며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허연 이로 씨이익 웃었다.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터치가 과했다. 불쾌해하고 있는데, 어느 한 놈이 아부하듯 말을 지껄였다.

“이야, 김 사장 씀씀이 좋네! 오늘 밤엔 봉사 좀 제대로 해야겠어?”

김 사장은 내 어깰 제 팔로 감싸며 으스댔다.

“뭐가 아쉬워서 남자 놈 뒷구멍을 뚫어, 뚫길? 더럽게 말이야. 장 대표 좆 드나들던 통로에 내 거 넣을 생각 하니 생각만 해도 이거 완전 아니올시다, 야.”

뭐가 그리 처 웃긴 건지, 또 한바탕 웃어 제끼고 난리였다. 이성을 잃은 그들을 앞에 두고 난 외딴 섬처럼 황망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 모서리를 응시한 채로 회한 어린 사념에 빠졌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난 그저 캐디일 뿐인데, 룸살롱 도우미로 고용된 게 아닌데 말이야. 장 대표 말대로 내 얼굴에 남창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내 얼굴에 주홍 글씨처럼 적혀 있는 걸까.

명치 부근이 돌연 칼 심에 베인 듯 따끔하게 아렸다. 아마도 지폐 모서리에 긁힌 자리에 뻘건 생채기가 남은 듯했다.

김 사장이 테이블이 뒤집어져라 웃으며 테이블 밑으로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어 왔다. 늘 오금 쪽만 더듬거리던 손길이 사타구니로까지 올라오자 흠칫 놀란 난 그의 손을 무의식적으로 손등으로 쳐 냈다.

찰싹! 하는 소리가 룸 안에 울렸다. 순식간에 룸은 찬물을 끼얹어 놓은 듯 조용해졌다. 내게 거부당한 김 사장의 손등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창놈 새끼가!”

모욕당했다는 생각에 삽시간에 분노한 김 사장이 자릴 박차고 일어나 손바닥을 높게 쳐올렸다. 수가 틀리자 냅다 폭력을 내지르려는 그의 모습은 꼭 누군가를 연상케 했다. 폭력 앞에 놓인 난 무기력하게 눈을 꽉 내리감았다. 곧이어 철썩, 타격감이 광대 부근에 와 닿았다.

얻어맞은 뺨 안이 얼얼했다. 힘껏 내리쳤음에도, 가벼이 휘둘렀던 장 대표의 악력보단 조금 약했다. 김 사장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코 높이까지 멱살이 추켜올라간 탓에 호흡하기가 조금 버거웠다.

“불쌍해서 조금 예뻐해 주려 했더니.”

이진석이 분위기를 수습하려 그의 허릴 가벼이 감싸 안았다.

“김 사장님, 아직 수원 씨가 뭘 잘 몰라서 그래요.”

김 사장은 어디에 손을 대는 거냐며, 이진석의 뺨도 후려쳤다. 고개가 홱 돌아갈 만큼 세게 얻어맞은 이진석은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정말 죄송하다고, 다른 직원을 불러다 주겠다고 말했다.

이진석이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웃으며 내게 술을 부탁했다.

“수원 씨는 나가서 술 좀 더 갖다 줄래요?”

화끈거리는 열감을 뺨에 단 채로 제자리에 서 있던 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쨌거나 이 소란을 만들어 놓은 건 난데, 나 혼자 도피하듯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진석이 발걸음을 움직여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대고 소근거렸다.

“얼른요. 이 이상 분란 만들지 말고.”

그렇게 말하는 이진석의 음성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내게서 떨어져, 다시 김 사장의 옆에 달라붙는 그는 평소대로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방금 내게 속닥거렸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와인 창고에서 느릿느릿 술병을 챙겨 420호로 돌아왔다. 차마 제자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420호 앞에 서는데.

문이 평소와 다르게 약간 열려 있었다. 앞에 가이드를 세워 둘 정도로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던 곳인데 말이다. 심지어 떠들썩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룸 안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디뎠다. 춥, 추웁, 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물기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인간들은 온데간데없고, 김 사장만이 내게서 등을 돌린 채로 룸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바지와 속옷이 골반 근처에 걸려 있어 역겨운 엉덩이 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인기척을 눈치챈 김 사장이 내게 한 손을 뻗어 왔다. 난 그에게 다가가며 병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춥, 추우웁, 하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지금 보니 그의 앞에 누군가가 꿇어앉아 있었다.

알몸이 된 이진석이 그에게 들러붙어 축 늘어진 김 사장의 음낭을 빨고 있었다. 뺨 양쪽이 푹 팰 정도로 힘을 주어 빨아들이자, 김 사장은 오줌 싼 개처럼 몸을 경련했다.

“흐으억.”

역겨운 신음 소릴 뱉은 김 사장이 골반에 걸쳐 있는 하의들을 한 번에 끌어 내렸다. 이진석이 러그에 얼굴을 처박고 엉덩일 추켜올리자, 불그스름한 내벽이 내다보이는 구멍이 시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수도꼭지처럼 휘어 있는 성기를 몇 번 손으로 훑다가, 이진석의 구멍에 찔러 제 자지를 찔러 넣었다.

구역질이 식도를 타고 위로 올라왔다. 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룸을 빠져나와 벽을 부여잡고 우웩, 웩. 토했다. 먹은 게 거의 없으니 멀건 위액만 연신 게워 내다, 벽에 머릴 대고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으허어억, 억, 어억, 룸 안에서 이진석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도망치지 못한 채 그 소릴 전부 듣고 있었다.

난 한참 동안이나 벽에 정수릴 박은 채로 패닉에 빠져 있다, 이내 도망치듯 복도를 빠져나왔다. 다리에 자꾸만 힘이 풀렸다. 날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히려고만 하는 두 다릴 억지로 이끌어 도망치듯 복도를 빠져나왔다.

바지춤을 내린 김 사장이 날 뒤쫓아 올까, 뒤 한 번 돌아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달음박질쳤다. 허억, 허억,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심장 박동이 자꾸만 제 박자에서 비껴 나가 거세졌다.

도망쳐서 도달한 곳이라고 해 봐야 호텔이었다. 언제든 장 대표가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는 그곳 말이다.

***

날이 바뀌자 또 벨 소리가 울렸다. 난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놈처럼 천장을 응시하고 있다가, 시트에 얼굴을 팍 파묻었다.

이번엔 정말이지,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 넌덜머리 나는 짓거릴 장 대표로도 부족해 딴 새끼와도 해야 한다니…. 차라리 접시 물에 코를 박고 뒤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몸을 반 바퀴 돌려, 텅 빈 천장을 마주했다. 가슴팍이 따끔거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선 주머니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 들었다. 김 사장이 어제 꽂아 놓은 지폐들이 그대로 안에 들어 있었다. 지폐를 쥔 손을 시트 위로 툭 떨어트렸다.

김 사장은 분명 남자들끼리 하는 성교를 즐기지 않는다 했었다. 그자의 말만 듣고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을 조금 늦추고 있었다. 다릴 더듬어 와도, 가슴팍을 매만져 와도 손에 붙들려 오는 돈이 자꾸만 날 타협하게 했다.

“…….”

그래, 이 새낀 적어도 장 대표처럼 그 짓거릴 하진 않으니 오히려 나은 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안일하고도 멍청한 생각이었다. 저자도 장 대표와 똑같은 부류의 놈일 뿐인데. 양쪽 다 개새끼인 데다가, 남의 뒷구멍에 쑤실 줄이나 아는 변태 새끼들인 건 매한가지인데.

심지어 장 대표가 얼굴을 보이지 않은 지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정말 내가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이뤄진 걸지도 모르지.

…근데, 그럼 난 이제 돈을 어디서 벌어야 한다. 손아귀에 힘을 주자, 손바닥 안에 있는 지폐들이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띠리리, 잠시 끊겼던 벨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시트를 걷고 스르르 일어났다. 바닥에 발을 내렸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로 또다시 타협했다.

그래, 둘 다 똑같은 새끼인데. 장 대표에겐 벌려 주고, 저 새끼한텐 못 벌려 줄 건 또 무어란 말인가. 게다가 자꾸만 김 사장 밑에 깔려 있던 이진석의 얼굴이 머릿속에 상기됐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 짓거릴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유령처럼 일어나 협탁으로 다가갔다. 시끄럽게 울려 대고 있는 전화를 받아, 사무실에 당장 가겠다고 답했다. 밤새 입어 찝찝한 유니폼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420호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김 사장과 어울려 놀던 놈들이 반대편에서 왔다. 난 벽에 등을 대고 붙어 고갤 숙였다. 그 상태로 그들이 먼저 복도를 지나칠 수 있게끔 잠시 기다렸다.

남자 하나가 제 부은 뺨을 손등으로 눌렀다.

“저 개새끼 하는 짓거리 마음에 안 들어 죽겠네, 아주. 농담 조금 했다고 얼굴에 대고 술잔을 던져?”

그는 분을 삭이듯 억눌린 목소리로 말하다, 칵, 퉤 침을 뱉었다. 혈액이 비치는 가래침이 복도 위로 튀었다.

“돈 좀 벌었다더니 기고만장해선 날뛰는 거지, 뭐. 그냥 적당히 비위 맞춰 줘, 우리야 공짜 술에 공짜 골프 치니 얻어가는 거잖아.”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던데, 딱 그 꼴이네. 장 대표 앞에선 깨갱깨갱하는 새끼가, 재수 없게.”

두 사람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곁을 지나쳤다. 둘 다 김 사장에게 아부하던 새끼들이었다. 뚜벅뚜벅, 멀어지는 구두 굽 소릴 가만히 서서 듣고 있다 등을 돌려 룸으로 다가갔다.

똑똑, 노크를 하고 기다리자, 얼마 안 가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안에 있으면 안 될 인물이었다. 최대한 목소릴 낮춰 물었다.

“…이혜원 씨.”

바로 이혜원이었다.

“여긴 왜 왔어요?”

내 잔뜩 굳은 얼굴에 놀란 이혜원이 마찬가지로 작게 속닥거렸다.

“진석 오빠가 땜빵으로 들어오라 해서요.”

…이진석이 땜빵으로 들어오라 했다고? 김 사장 밑에 꿇어앉아 그의 음낭을 입에 물고 빨던 어제의 이진석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두 눈을 꽉 감았다. 설마 아직 못 일어나고 있는 건가.

“얼른 안 들어오고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

룸 안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룸 안이 오늘따라 엉망이었다. 술병이 여기저기 뒹굴고 다녔고, 바닥엔 유리 파편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뒤따라 들어오던 이혜원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놓인 유리 파편을 하나둘 집어 올렸다.

“여기 와서 술 한잔 같이해.”

군말 않고 다가가 술잔을 받아들였다. 김 사장은 날 한쪽 의자 손잡이에 앉힌 후, 이혜원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너도 이리 와.”

갑작스레 팔목이 당겨진 이혜원의 얼굴 위로 일순 당황스러운 낯빛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괜찮습니다. 근무 중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어서요.”

이혜원이 애써 웃으며 거절했다. 억지로 끌어 올리고 있는 입꼬리 부근이 잘게 떨렸다. ‘근무 중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객들이 무례한 부탁을 해 올 땐 그렇게 거절하라고 캐디 지침에 적혀 있었다.

김 사장은 막무가내로 이혜원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손목이 잡힌 채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직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그녀의 시선을 하나둘 피했다.

이혜원은 질질 끌려오다 테이블에 허벅지를 퍽 부딪혔다. 화장을 지운다면 훨씬 더 어려 보일 얼굴이 고통과 수치스러움에 일그러졌다. 난 목울대를 꿀꺽 울리곤, 손에 붙들려 있는 술잔을 비워 냈다.

알코올이 식도를 뜨겁게 태우며 몸 안을 일자로 훑고 내려갔다. 손등으로 입가를 스윽 닦아 내곤 조용히 김 사장을 불렀다.

“사장님.”

자식뻘에게 손을 내뻗고 있던 김 사장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술 한 잔 더 주세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내 의중을 눈치챈 걸까,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데. 약간 놀랐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김 사장이 내 허릴 잡아 끌어 댔다.

“싫다, 싫다 튕기더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네.”

그는 기껍다는 듯 웃어 젖힌 후, 눈을 빛내며 내 술잔에 술병을 들이부었다. 술잔에 입술을 대고 목을 꺾으며, 제자리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이혜원에게 문을 눈짓했다. 제자리에서 멈칫멈칫, 거리던 이혜원은 몇 번이나 날 돌아보다 이내 룸을 떠났다.

김 사장의 기분에 맞춰 주려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배 안으로 들어간 알코올이 내장들과 뒤엉켜 춤추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양껏 마셨다. 입 밖으로 간간이 내뱉는 문장들이 저희들끼리 뒤엉켰다. 혀가 꼬인 탓이었다. 시야가 점점 불분명해지더니, 곧 눈앞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

문득 배 부근이 갑갑하다고 느꼈다. 술기운에 머리가 아파 눈은 채 뜨지도 못한 채로 손과 발을 휘둘러봤다. 그러나 별 소득은 얻지 못했다. 아주 무거운 것에 짓눌려 있는 듯, 몸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몸 위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감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몸 위에 올라타 있는 듯했다. 장 대표인가, 속으로 짐작했다. 이 이상 방해해 봤자 기운만 뺏길 뿐이니 하체에 힘을 풀고 산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그러다 가슴팍이 세게 주물러졌다. 난 고통에 눈을 팍 떴다.

“…아!”

가장 먼저 조우한 건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어둠 속에서 희붐한 빛을 내고 있는 안광과 맞부닥뜨렸다. 어릿어릿한 시야를 바로 잡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전기 충격기를 달아 놓은 듯, 머리가 뒤흔들려 괴한의 몸이 여러 개로 보였다.

“…너 누, 누구야.”

그러다가 몸이 긴장으로 수축했다. 그는 장 대표가 아니었다. 제법 큰 몸인 건 맞았으나, 장 대표의 것보단 체구가 작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불분명한 발음으로 지껄였다. 입에서 역겨운 술 냄새가 풍겨 왔다.

“드럽게 저항하네.”

…내 위에 올라타 있는 건 장 대표가 아닌, 김 사장이었다.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상체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김 사장은 너무나도 쉽게 내 팔목을 시트 위로 눌렀다.

손끝으로 협탁 위를 더듬거렸다. 손에 잡힌 램프로 김 사장의 머릴 내리쳤다. 그가 악, 소릴 내며 제 머릴 움켜잡았다.

“…이 씨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상황이 아니었다면, 장 대표 같은 새끼한테 걸리지만 않았다면, 아니, 그 직원 씹새끼가 내 돈만 훔쳐 가지 않았다면, 애초에 살던 곳에서 도망쳐 나와야 할 짓을 벌이지 않았다면.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러나 후회를 해 봐도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아아악, 미친 듯이 소릴 내질렀다. 싫어, 개새끼야, 싫어! 난 남창이 아니라고!

김 사장이 마구 도리질 치며 소릴 질러 대는 내 얼굴을 베개로 틀어막았다.

“…읍, 으읍!”

그의 손이 내 허벅지를 더듬는다 싶더니, 하의가 순식간에 벗겨 나갔다. 장 대표의 것보다 굵기는 더 굵지만 길이는 짧은 손가락이 구멍 사이로 기어들어 왔다. 면역력 없는 손길에 온몸에 소름이 아스스 돋아 왔다. 난 미친 듯이 발을 굴러 댔다.

“…으, 흐으윽! 아아악!”

관자놀이에 핏줄이 퍼뜩 설 정도로 안간힘을 써 댔다. 사지를 있는 힘껏 파들짝파들짝 휘둘러 보기도 하고, 시트를 퍽퍽 내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너무 열세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본다 한들 그의 밑에 깔려 있는 한, 힘을 십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내 허벅지 안쪽을 주물럭거리며 지껄였다.

“허옇고 반들반들하니 따먹는 맛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는데, 손에 피부가 찹찹 달라붙네. 역시 장 대표 보는 눈 좋아.”

“…읍, 흐윽!”

“그땐 좋아 뒤지려고 하더니 말이야.”

김 사장이 말하는 그때란, 관제실에서 장 대표와 내가 관계를 맺었던 그날 밤을 말하는 거였다. 문밖에서 관계하는 소릴 몰래 엿듣고 있었던 건 역시 김 사장이 맞았다.

…이 발정 난 돼지 새끼! 분노에 휩싸여 그의 목을 졸라 보려 팔을 있는 힘껏 길게 내뻗었다. 그러나 역시 역부족이었다. 손끝은 그에게로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맴돌다, 김 사장의 손길에 의해 다시 시트 위로 처박혔다. 그는 내 양손을 한데 묶어 고정시켜 놓곤 다른 한 손으론 제 허리춤을 매만졌다.

어둠 속에서 철컹, 금속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몸을 꿈지럭거리더니 금방 하의를 모두 끌러 냈다. 끝부분이 괴이하게 구부러진 자지가 퉁 하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대표가 잘 뚫어 주긴 했나 봐.”

“…아아, 흑, 대표님….”

나는 최후의 보루로 자리에 있지도 않은 장 대표를 찾아댔다. 김 사장의 눈이 희번뜩한 빛깔을 낸 건 그 때였다.

“그 건방진 어린놈의 씨발 새끼.”

“…흑, 흐윽.”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범새끼보단 내 좆이 테크닉적인 면에선 훨씬 좋다고, 이 어리석은 새끼야.”

난 미친놈처럼 발작하며 반항해 댔다. 광대로 주먹이 내리꽂혔다. 퍽, 소리가 나더니 뺨이 반대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번개가 내려친 듯 가해진 얼얼한 충격에 눈앞이 번쩍거렸다.

“이 씨발! 무릎 위에서 눈웃음치며 술까지 처받아 놓고 왜 이제 와서 앙탈이야, 어?”

김 사장은 크음 헛기침을 뱉곤 다시 내 상체를 덮어 왔다. 나는 어둠 속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은 협탁 위, 램프가 희붐하게 불을 뿜고 있었다. 나는 그 쪽으로 길게 팔을 늘어트렸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아,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손끝에 힘을 모았다. 얼른 램프를 집어 들어선 김 사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아악!”

퍽, 위에서 골이 빠개지는 소리가 났다. 김 사장이 제 머릴 움켜 쥐더니 육중한 몸이 침대 옆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그 길로 달음박질쳤다. 나오는 동안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도 했지만, 간신히 종아리에 힘을 주곤 룸의 문을 열었다. 도어락이 열리는 짧은 순간조차, 내겐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띠리릭.

드디어 도어 락이 풀렸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자, 복도에 켜져 있던 불이 내 눈으로 훅 끼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 밖에 서있던 사람이 내 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장 대표였다!

“대, 대표님…!”

토끼 눈이 되어 밖으로 손을 내뻗는데, 뒤에서 손 하나가 다가와 내 머리채를 잡았다.

“이런 개씨발년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김 사장이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머리채를 잡곤 내 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히고, 나는 다시 침대까지 질질 끌려 들어갔다.

“이 개같은 걸레 새끼가, 장 대표한테는 잘 대주면서 박아 주겠다니까 좆을 가려?”

김 사장이 팔뚝에 불끈 힘을 주곤 내 얼굴을 마구 눌러 댔다. 곰 발바닥 같은 두툼한 손바닥에 코와 입이 꽈악 짓눌려 숨쉬기가 버거웠다. 짧은 손톱을 세워 얼굴을 찍어 누르고 있는 그의 손을 득득 긁어 댔다.

그는 내 상체를 무릎으로 눌러 가뿐하게 내 몸을 제압하곤, 몸을 곧추세웠다. 허벅지 사이에 딱딱하고 굵직한 게 와 닿았다. 다른 신체보다 뜨끈한 체온을 가진 그건 분명 자지였다.

“…제, 제발, 시, 싫어!”

흐느끼면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 장 대표를 외쳐댔다.

“흐윽, 대표님…, 대표니임….”

…씨발 새끼, 씨발 새끼야. 김 사장이 내 구멍 입구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더니, 이내 내 다리 중간에 자리 잡았다. 격한 저항에 진이 빠질 대로 빠졌다.

“처우니까 더 박을 맛 나네.”

발을 구르며 마지막 발악을 해 대자, 김 사장이 쯧 혀를 차며 내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꽉 눌렀다. 김 사장이 캘캘, 새되게 웃으며 퉁퉁 부은 자지를 내 엉덩이 밑으로 붙여 왔다.

“…….”

손을 툭, 시트 위로 떨어트렸다. 눈을 꽉 감자,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들이 한꺼번에 후드드득 소릴 내며 시트 위로 떨어졌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체념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드는 생각이라곤 왜 진작 죽지 않았을까, 란 후회뿐이었다.

잇새를 꽉 물고 곧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고 있는데.

돌연 얼굴 위에서 뭔가 뻑, 단단한 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흠칫 놀란 난, 얼른 감고 있던 눈을 추켜 떴다.

김 사장의 거대한 몸이 밑동 잘린 통나무처럼 내 몸 위로 쓰러지고 있었다. 퍼억, 그의 육중한 몸이 내 몸을 덮쳐 왔다. 김 사장의 몸 뒤로 술병을 손에 쥐고 있는 장 대표의 얼굴이 들어왔다.

난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김 사장의 몸을 손바닥으로 힘껏 밀어 냈다. 두꺼운 몸이 한 바퀼 굴러 매트리스 끄트머리에 걸쳤다. 김 사장이 끄으윽, 하는 신음을 뱉었다. 그의 머리 주변에서 피가 서서히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

창가로 스며들어 온 달빛이 장 대표의 얼굴 위로 짙은 음영을 만들어 냈다. 그의 손이 룸의 키 카드를 김 사장의 얼굴로 내던졌다. 난리를 치고 있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장 대표가 테이블로 손을 내뻗었다.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듯한 테이블 위엔 안줏거리들과 술병들, 카드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이 룸 안에서 홀로 태평한 그는 테이블 위에서 위스키병의 목을 손으로 감싸 집어 들었다. 뚜드득 뚜껑을 돌려 따더니, 뚜껑일랑 바닥으로 휙 던져 버리고 술병 입구에 입술을 대고 액체를 양껏 취했다.

꿀꺽꿀꺽, 장 대표가 목울대를 울릴 때마다 그의 굵직한 목 가운데에 있는 아담스 애플이 크게 요동쳤다. 장 대표의 얼굴이 점점 뿌옇게 흐려진다 싶더니, 이내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대, 대표님….”

잔뜩 상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장 대표를 향해 애원을 담은 눈길을 보냈다. 흐릿한 시야로 장 대표의 서늘하기만 한 얼굴이 날 마주 봐 왔다. 나는 비틀비틀거리며, 온 힘을 다해 몸의 중심을 잡고 장 대표 근처로 가는 것에 성공했다. 몸이 제멋대로 파들파들 떨렸다. 등 뒤에서 간간이 김 사장의 신음이 들려올 때마다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심장이 터질 듯 펌핑질을 해 댔다.

마침내 장 대표의 곁에 도달했다.

“…흐으, 흑.”

그의 구두 주변에 산발적으로 흐트러져 있던 유리 파편이 무릎을 찍어 왔다. 무릎에서 피가 원형을 그리며 번져 나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와 뜨끈한 핏자국 위로 뚝뚝 떨어졌다.

“…헉, 허어억.”

내 무릎을 발견한 장 대표는 쯧쯔, 혀를 차며 테이블 위에서 사과 한 알과 과도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가 칼을 부여잡더니 돌연 사과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껍질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둘둘 말려 나왔다.

…미친 새끼. 이 상황에 사과를 깎아 안주라도 삼을 요량인 듯했다.

“대표님.”

장 대표는 금방 사과를 둘러싸고 있는 뻘건 껍질을 모두 까 냈다. 혼잣말로 잘 드네, 와 같은 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사과를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사과가 옆을 데구루루 굴러갔다.

장 대표가 손에 과도를 쥔 채로 상체를 낮췄다.

“왜 울고 있어요.”

…왜 울고 있냐고? 방금 그 상황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모두 지켜봐 놓고도, 남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리 물었다.

“어차피 상관없잖습니까.”

“…….”

“서수원 씨는 몸 대 준 대가로 그저 돈이나 받아 챙기면 그만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가 입술을 올리며 픽 웃었다. 메말라 버석버석거리는 미소가 잠시 그의 입가에 머물렀다가, 금세 떠났다.

“매번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해 놓곤.”

“…….”

“구멍에 꽂고 흔들어 주면 눈 까뒤집고 좋아했으면서.”

장 대표가 내 머리챌 휘어잡더니, 고개를 뒤로 잡아당겼다. 난 강제로 얼굴을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쳐야 했다. 두피가 그대로 뜯겨 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장 대표가 숨 한 번 쉬지 않고 한숨에 말을 끊어 냈다. 아주 조용하게, 음울한 기운을 가득 담아서.

“행동거지 잘하라 그랬잖아요.”

“…….”

“그새를 못 참고 남자 품을 찾아?”

그가 음률 없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누가 술 따르라고 시켰어요.”

장 대표의 깎아 놓은 듯 날렵한 턱 끝이 김 사장을 가리켰다.

“…저 새끼가?”

그를 따라 김 사장을 조용히 눈에 담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가 머리채를 잡아당겨 대는 통에 두피 전체가 욱신거렸다. 장 대표의 잇새에서 으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대답 안 해?”

장 대표가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김 사장의 가슴팍으로 손을 뻗어 주머니를 더듬더니 담뱃갑 하나를 꺼냈다. 입에 담배를 물곤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었잖아요. 누가 무릎 위에서 술집 작부처럼 술 따르라고 했냐고.”

“…저, 저 새끼가.”

“음, 저 새끼가.”

조용히 말을 뇌까린 장 대표는 날 반대편으로 밀어 버렸다. 난 중심을 잃고 튕겨 나가, 바닥을 내 굴렀다. 장 대표는 사과를 깎았던 과도를 고쳐 잡곤 뚜벅뚜벅 김 사장이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대체 지금 뭐 하려는 거지?

장 대표의 날카로운 칼날 끝이 봉분처럼 엎어져 있는 김 사장의 몸뚱어리로 향했다. 장 대표는 칼날을 눕혀 김 사장의 허벅지 부근을 천천히 쓸었다. 칼날 끝이 장 대표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와 동시에 섬뜩하게 번뜩였다.

장 대표의 음성이 조용히 적막을 찢었다.

“수원 씨.”

“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말이에요. 사람이 그렇게까지 충성심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여전히 칼끝은 김 사장의 몸 위를 느긋하게 누비고 다녔다. 장 대표는 마치 괜찮은 위치를 찾는 사람처럼, 기절한 몸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이 새끼가 왜 수원 씨 건드렸는지 알아요?”

“…모르겠습니다.”

“요즘에 돈맛 좀 보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졌나 봐요. 내 뒤에서 은근히 도끼를 갈고 있더라고요? 내 발등 찍을 도끼를.”

장 대표가 손잡이 부분으로 김 사장의 동맥 부근을 꽉 눌렀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장 대표를 응시했다. 아주 짧은 찰나,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마, 정말 설마 찌를까? 그에게 스스로 네 발로 기어들어 갔던 그날을 상기해 냈다. 장 대표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창문으로 사람을 밀었던 그날. 그 엄청난 짓거릴 벌인 데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성가셔서. 넋 놓고 앉아 그를 응시하던 난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어 그에게로 개처럼 네 발로 기어갔다.

“…대표님.”

“왜 자꾸 부릅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유리 파편들이 박힌 무릎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난 마치 지나간 궤적마다 점액질로 길을 만드는 달팽이처럼 피를 흘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멈춰 서서 장 대표의 허벅지에 팔을 내뻗었다.

“…하지 마세요.”

장 대표가 삭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나치게 새카만 그의 삼백안이 김 사장의 몸을 느릿하게 훑어 올리다가, 이내 내게로 옮겨 왔다.

“왜요. 서수원 씨도 이 새끼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요.”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장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에 치여 죽거나, 차를 끌고 가다 산사태가 일어나 매몰되어 죽거나, 재수 없게 하수구 통에 빠져 죽거나. 마찬가지로 김 사장도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새카만 정장 바지에 감싸인 그의 허벅지에 손을 내뻗었다. 덜덜 떨리는 손길로 그의 탄탄하고 굵은 허벅지를 감싸 안고, 얼굴을 푹 파묻었다.

“대, 대표님, 안 돼요.”

장 대표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날 내려다보았다. 의중을 전혀 읽어 낼 수 얼굴. 마주 보고 있노라면 오싹 모골이 송연해져 몸을 웅크리게 되곤 했다.

그를 올려다보며 서툰 손짓으로 장 대표의 벨트를 풀어냈다. 자꾸만 엇나가는 손길로 몇 번이고 벨트의 후크를 풀려 애썼다. 장 대표는 필사적으로 구는 날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진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져 나갔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해 놓고.”

“…….”

“왜 내 좆으로 손을 뻗는 겁니까?”

그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차갑고 버석거리기만 한 손길이었다. 그러나 난 그의 손길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된 마냥, 그 안에 뺨을 부벼 댔다. 장 대표가 제 중심으로 내 얼굴을 끌어당겼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낮은 음색이 귓가를 쑤셔 왔다.

“결국엔 그냥 그런 척한 거지? 창부 같아 보이기 싫어서.”

“…네, 네.”

“서수원 씨 내 좆에만 안달 난 걸레인 거 맞죠?”

“…네, 맞습니다.”

황망한 눈동자를 한 채로 고갤 끄덕였다.

장 대표의 묵직하게 부풀어 오른 성기가 광대와 코를 동시에 짓눌러 왔다. 그에게서만 나는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익숙함. 그건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새에, 이미 피부 깊숙한 곳까지 침습해 있던 감각이었다.

…실로 절망스러웠다.

돌연 김 사장의 육중한 몸이 매트리스에서 펄쩍, 튀어 올랐다. 겁에 질린 눈으로 침대 위를 응시했다. 그가 그으윽, 하는 신음을 뱉으며 용을 쓰더니, 마침내 몸을 한 바퀴 뒤집었다. 거대한 몸이 쓰러지는 충격에 매트리스가 해일이 인 바다처럼 격렬하게 출렁거렸다.

김 사장은 제 머릴 부여잡곤 괴이한 신음 소릴 내뱉었다. 꺽꺽.

흠칫 놀라 장 대표의 허벅지를 감싼 팔에 꽈악 힘을 주었다. 김 사장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기이하게 몸을 비틀다, 이내 꽥, 쓰러졌다.

룸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진원지는 내 무릎이 아닌, 침대였다. 그새 엄청난 양의 피가 김 사장의 머리에서 흘러나와 시트를 새붉게 적시고 있었다.

머릴 온통 피로 적신 채로 쓰러져 있는 남자. 난 순간 후두엽을 후려쳐 오는 기시감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장 대표의 어깰 부여잡았다.

“…저 사람,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장 대표가 비식거리고 웃었다.

“미친 소리.”

“…저러다 죽.”

차마 뒷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죽는다. 스스로 내뱉은 그 단어에 몸이 흠칫, 멈췄다. 오한이 들어 양팔로 몸을 감싸고 있는데. 뒤통수로 남자의 냉정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냥 기절한 것뿐인데.”

천천히 고갤 돌렸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장 대표와 마주했다.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작자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진짜 김 사장이 죽어도 본인은 상관치 않는다는 것만 같았다.

난 문득 남자가 무서웠다. 난 실제로도 그에게서 조금 뒷걸음질 쳤다. 물론 장 대표는 그런 날 봐주지 않고, 내 팔목을 잡아당김으로써 제 앞으로 다시 날 데려다 놓았다.

날 겁탈하려던 김 사장에게서 도망쳐 온 곳이라는 게, 고작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장 대표 가랑이 밑이라니. 몸을 섞은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도무지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물론 김 사장보다 이쪽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건 이미 진작에 파악한 이후고.

“…….”

곱씹어 보니 그에게로 처음 기어 왔던 그날과 상황만 다를 뿐 레퍼토리가 비슷했다. 그날도 장 대표는 궁지에 몰린 날 손쉽게 잡아들였다. 그는 거미처럼 숨죽여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난 바람에 쫓겨 날아든 먹이처럼 남자의 거미줄에 걸려 버렸다.

문득 기분 나쁜 오한이 들었다. 손등에까지 닭살이 돋아 난 짧은 손톱으로 그걸 벅벅 긁어 냈다.

장 대표가 거미 다리처럼 길쭉한 손가락으로 내 뺨을 감싸 와, 제 하체에 내 얼굴을 문질렀다. 난 하던 짓거릴 멈추고 남자의 손에 얼굴을 내맡겼다. 손등을 긁던 손이 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남자의 뜨거운 샅이 눈물로 차갑게 식어 있는 뺨을 달궜다.

“울기까지야.”

울기까지 할 거 있었냐고. 그리 빈정대던 장 대표의 날카롭게 찢어진 눈꼬리가 가늘게 휘었다. 제 하체에 문대 우스꽝스러워진 내 얼굴이 퍽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가 끝이 거친 엄지로 내 뺨을 거세게 문댔다. 보조개를 그대로 지워 낼 것만 같은 힘의 세기였다.

“그렇게 걱정되면 얼른 사정하게 해 보든가.”

“…….”

“성공하면 저자를 치료할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남자는 개새끼였으나, 여태껏 한 약속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입을 크게 벌려 장 대표의 좆을 입에 물었다. 남자의 귀두에 혀를 대고 재주껏 놀리자, 조용한 룸 안에 남자가 목울대를 꿀꺽,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이것밖에 못 해요?”

남자의 말에 허겁지겁 좆을 뿌리까지 삼켰다. 귀두가 목젖을 꽉 눌러 왔다. 얼굴이 머리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참아 보려 했지만,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참을 수 없었다.

푸하! 남자의 좆을 입에서 퉤 뱉고 목을 움켜잡았다. 켁켁, 마른기침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날 내려다보았다.

“어쩜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

“…….”

“서수원 씨는 내 좆에만 안달 나 있는 걸레라고 했는데. 글쎄, 난 잘 모르겠네.”

장 대표는 눈을 살풋 찌푸리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수원 씨. 나 사업하는 사람이에요. 매번 이런 식이면 나로선 손실을 안 따지려야 안 따질 수가 없습니다.”

“…자, 잘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하체에 곧바로 다시 붙었다. 입술 밖으로 혀를 꺼내 남자의 튼실한 귀두에서부터 굵직한 기둥을 훑고 내려갔다. 남자가 코로 긴 숨을 내쉬었다. 삼백안이 잠시 느긋이 감기는 그의 눈꺼풀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났다.

“잘할 수 있다면서.”

잘해 본 게 고작 이거냐. 남자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나지막이 물었다. 날 내려다보는 두 눈은 분명 쾌락에 젖어 있는 자의 것인데, 개새끼는 아닌 척 날 몰아세웠다.

열심히 장 대표의 좆을 빨아 대던 난 순간적으로 이진석이 김 사장의 음낭을 빨아 주던 일을 기억해 냈다. 고갤 꺾어 기둥 밑에 달린 남자의 음낭을 입 안에 물었다. 별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남자는 음낭 또한 남들 것보다 커 입 안에 모두 담기엔 무리가 있었다. 양 뺨이 불룩해질 만큼 부푼 남자의 음낭을 입에 물고, 열심히 혀를 놀렸다.

러그를 짓밟고 서 있는 장 대표의 검은색 구두가 들썩거렸다. 금세 자제력을 잃은 장 대표는 기둥으로 내 코를 비벼 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귀두로 내 보조개 부근을 쿡쿡 찔러 대기까지 했다.

“…으음.”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김 사장을 곁에 두고 자지를 빨리고 있는 주제에, 장 대표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일주일간 어딜 그렇게 나가나 했는데.”

대답 없이 장 대표를 올려다봤다. 시야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시간에 저 작자 고환을 빨아 주고 있었나 보죠?”

그가 날 바닥에서 번쩍 들어 올리더니 테이블 위에 앉혀 놓았다. 유리 조각에 찢긴 무릎에서 피가 울컥 튀어 올랐다. 무자비한 장 대표는 그게 거슬리는지, 손바닥으로 환부를 꽉 눌러 왔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 나왔다. 장 대표는 쯧, 혀를 차더니 제 넥타이를 잡아당겨 내 무릎에 그걸 대 왔다.

난 그가 내 무릎 주변에 넥타이를 묶어 올 동안, 장 대표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김 사장을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는 미약하게나마 벌벌 떨고 있었는데. 지금의 그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곧이어 장 대표의 굵직한 손가락이 구멍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난 윽, 소릴 내며 목을 뒤로 꺾었다.

“여기로 저자도 드나들었어요?”

난 남자의 손짓에 뒤흔들리며 마구 도리질 쳤다.

“…아, 아니요.”

“근데 왜 이렇게 벌름거려요.”

장 대표는 내 어딜 만져야 내가 몸을 떠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남자가 정확히 짚은 포인트에 난 허릴 비틀어 댔다.

“…으흑!”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습니까.”

남자가 날 잠자코 바라보다 이내 눈을 빛냈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는데.”

난 불안감에 남자의 손을 구멍에 꽂은 채로 몸을 수축시켰다. 내벽이 좁아지며 남자의 손가락을 조이는 게 느껴졌다. 진하게 웃어 보인 장 대표는 믿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 왔다.

“내 고환을 서수원 씨 보지에 넣어 보는 거예요.”

“그,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요, 서원 씨 이미 골프공이랑도 씹질해 본 창부잖아요.”

그것도 무려 세 개나. 남자가 덧붙였다.

“내 건 고작해야 두 개일 뿐인데.”

장 대표가 제 음낭을 주물럭거리며 내 구멍에 그걸 맞춰 왔다.

“저, 정말 찢어질지도 모릅니다.”

음, 그가 목을 울렸다. 그러곤 그답지 않은 너그러운 어조로 물어 왔다.

“그게 걱정이에요?”

“네.”

난 그가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찢어지면 서수원 씨 입에다 넣어 주겠습니다.”

…씨발 새끼.

두 눈으로 김 사장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굉장히 위급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꽉 감고 다릴 그에게 벌렸다. 장 대표가 제 음낭을 입구에 짜 맞추더니, 이윽고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아주 좁은 통에 내용물이 가득 차 있는 주머니 따윌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느낌이었다.

“…흐으윽!”

좁고 깊숙한 모양을 하고 있는 내벽은 음낭이 삽입되기엔 적절한 모양이 아니었다. 구멍을 옆으로 늘리려고 하는 음낭에 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장 대표에게 잡혀 공중에 떠 있는 다릴 마구 휘저었다.

장 대표 또한 고통스러운지,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늘 어떻게든 매끄럽게 몸을 움직여 제 몸을 파묻어 오던 남자였는데, 이번만큼은 그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아, 아… 하으응!”

그는 이내 계획을 수정했다. 한 번에 쑤셔 넣는 건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음낭의 한쪽을 넣어 온 후, 그다음 한쪽을 안에 넣어 왔다.

장 대표의 음낭이 구멍에서 넘쳤다. 몸 안에 새로운 장기가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런 류의 장기. 장 대표는 이내 적응을 마쳤는지, 허릴 움직여 대기 시작했다.

“하아, 후우.”

“흐읏, 하아, 흥!”

장 대표는 음낭으로 내 구멍 안을 쑤셔 대며, 손으로는 자신의 자지를 빠른 손으로 훑어 내렸다. 마치 날 반찬 삼아 자위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롭게 굴던 구멍은 이내 안을 늘려오는 음낭에 짜 맞춰져 그걸 탄력 있게 받아 냈다. 그의 좆이 내장을 푹푹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면, 음낭은 내장 전체를 통째로 밀어 올리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굵직한 귀두로 내 허벅지의 오목한 안쪽을 쑤셨다. 빛 한 번 보지 못한 듯 허여멀건한 허벅지 위에 올라간 남자의 검붉은 좆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윽고 진득한 정액이 팍 터져 나왔다. 장 대표 또한 제 걸 손으로 어루만지며 내 허벅지에 대고 사정했다.

“…하!”

이미 피비린내에 마비가 될 대로 된 콧속으로 날것에서 나는 내가 아주 강하게 뚫고 들어왔다.

“…하아, 씨발.”

내 허벅지에 대고 정액을 분출한 장 대표는 진하게 웃었다. 그는 새로운 놀이에 눈을 떠 즐거운 것만 같았다. 난 눈을 팔목으로 가리며 절망을 간신히 속으로 삼켰다.

남자가 이내 내게서 몸을 비키더니,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가 수화기에 대고 뭐라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420호. 들어와서 처리해.”

장 대표가 허벅지에 싸질러 놓은 정액이 눈에 들어왔다. 끈적거리는 액체가 만들어 놓은 하얗고 긴 줄들. 왠지 거미줄을 닮아 있는 것만 같아 소름 끼쳤다. 퍼뜩 몸이 절로 떨렸다.

***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혼자 남아 있는 방 안에 띠리리, 신경을 건드리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이젠 환청까지 듣는 수준이 되어서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손에 붙들었다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제발 환청이길 바라며 수화길 집어 드는데. 기대를 저버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 왔다.

- 준비해.

남자의 한마디만을 남기고 전화는 뚝, 끊겼다. 삐삐, 소리가 나오고 있는 수화기를 내려다보며 버릇처럼 욕지거릴 뇌까렸다.

“…개새끼. 죽어 버렸음 좋겠어.”

그렇게 저주를 퍼붓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깨끗이 씻었다. 비누로 머릴 감고, 몸을 훑어 내렸다.

샤워 부스 밖에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장 대표가 온 듯했다. 서둘러서 몸에 남은 비눗기를 제거하곤, 가운을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남자는 기다리게 하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다.

장 대표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빨아 대고 있었다. 늘 그렇듯 오늘도 값비싼 러그를, 또 그만큼이나 값비싼 구두로 짓밟고 있었다. 저자는 직원들이 저걸 빨기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려 대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겠지. 구태여 알고 있을 필요도 없긴 하지만.

“…오셨어요.”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권태에 젖어 있던 남자의 두 눈이 내 다리 사이로 와 닿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운 자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엿보이는 내 다리를 훔쳐보고 있는 거였다. 건조하던 두 눈이 금세 흥미로움에 번들거렸다. 색마 새끼. 그렇게도 남자의 몸이 좋은 건지.

소파 위의 남자가 상체를 곧추세웠다. 다릴 벌리면 제 아래로 들어오라는 거였고, 저렇게 상체를 세우면 제 위에 올라오란 뜻이었다.

가운의 다리를 벌리곤 남자의 위에 올라탔다. 하얀 가운 아래로, 그만큼이나 하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남자의 손이 붕대가 감겨 있는 내 무릎을 어루만졌다. 왠지 겁탈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워 낼 수가 없었다.

“대표님.”

숨을 헐떡대며 장 대표를 불렀다. 장 대표가 둔부를 움켜잡았다.

“김 사장은 어떻게 됐나요?”

그날, 김 사장은 장 대표가 불러들인 사람들이 끌고 나갔다. 난 장 대표의 몸에 가려진 채로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김 사장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에 대한 거라곤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

장 대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그의 얼굴에 난 흠칫 놀라 몸을 수축시켰다. 그 와중에도 쾌감을 느낀 건지, 장 대표는 느릿하게 신음을 뱉었다.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김 사장이 보복할까요?”

장 대표가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는 듯, 고갤 약간 기울이더니 물어 왔다.

“흐음, 그건 왜 묻는데요.”

“가만히 있진 않을 거라 생각해서요.”

그리고 이번엔 남자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날 죽여 주기라도 할까 봐?”

장 대표가 말하는 ‘죽인다’는 표현은 뭇 사람들이 그 표현을 사용할 때와는 다른 무게가 있었다. 나 또한 그가 사용하는 그 단어의 무게감을 마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아주 무겁게 고갤 내저었다.

“…아니요.”

장 대표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 픽 웃었다. 그러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할 땐 언제고.”

난 남자를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그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속으로 삼키거나, 혼잣말로 했을 뿐 당연지사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은 실수로라도 한 적이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랬을 리 없었다.

남자가 날 뚫어져라 바라 봤다. 난 그가 농담처럼, 진심을 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재생됐다.

‘…개새끼. 죽어 버렸음 좋겠어.’

몸이 파들짝 뛰어올랐다. 난 고장 난 로봇처럼, 땅에 두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그걸 이 남자가 어떻게. 남자는 픽, 웃었다. 마치 멍청한 내가 우스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사람 같았다.

“저게 뭐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럼.”

장 대표가 내 뒤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의 시선 끝엔 금고가 놓여 있었다. …금고? 금고가 뭐 어쨌다는 거지? 뭔가를 예지한 심장이 점점 빠르게 널뛰기 시작했다.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날 보며 조용히 웃었다.

“설마 내가 상이라도 내린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머릿속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메아리쳤다.

‘일주일간 어딜 그렇게 나가나 했는데.’

어딜 그렇게 나가나 했는데. 장 대표는 그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걸 말하고 있는 놈처럼. 장 대표의 어깰 쥐고 있는 손끝이 떨렸다. 몸에 돌고 있는 모든 피가 차갑게 식은 것만 같았다.

하얗게 질려 있는 내 귀에 대고, 장 대표가 음산하게 뇌까렸다.

“김 사장이 준 돈은 어디에 뒀습니까.”

…우매한 난 그제야 눈치챘다. 내가 걸려 있는 거미줄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몽니 궂다는 것을.

“…수원 씨.”

띠리리. 돌연 룸 안의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신경을 건드리는 높은음에 팔뚝 위에 소름이 비죽 돋았다. 남자의 목소리가 벨 소리를 뚫고 귀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왔다.

“어디 있느냐 물었는데요.”

소름 끼치도록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신체의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비단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시선이, 향이, 존재감이 두려울 정도로 내게 힘을 발휘해 왔다. 그의 모든 것에 난 완전히 압도당했다. 밧줄로 온몸이 꽉 묶인 사람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남자의 두 눈이 돈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검은 눈동자가 휙 돌아갔다. 형형하게 빛나는 흰 자가 번뜩거렸다.

“평소처럼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 가진 않았는데.”

침대 아래. 남자의 입술 새로 흘러나온 단어에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분명 시야에 잡히지 않을 만큼 깊숙이 넣어 놨는데. 내가 품속에 돈을 숨겨, 그걸 침대 아래로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

과거를 상기했다. 이자에게 화대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날 아침. 이유를 알 수 없게 패악을 부리고 떠난 장 대표는 그 이후로 한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었다.

돈을 더 입금해 달라는 삼촌의 전화를 받고 다시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분명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내 쪽에선 텔레비전 화면이 보이는 각도가 아니었다. 그가 뭘 보고 있었는지는 궁금치도 않아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날 분명, 그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30분여간 어디에 있었습니까.’

고개는 그대로 둔 채로, 눈동자를 굴려 남자를 응시했다. 이자. …그때도 설마 날 지켜보고 있던 건가.

띠리리, 벨 소리가 경고음처럼 울렸다. 남자는 벨 소리 따윈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전화기 쪽으론 눈짓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날 응시했다. 그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말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룸 안을 곳곳 뒤져 볼까요? 나한테 박히면서 말이에요.”

“…….”

“말하다 보니 제법 꼴리는데.”

벨 소리와 남자의 음성. 모든 소음들이 개죽처럼 저희들끼리 뒤죽박죽 섞여 머리를 광광 울려 댔다.

써늘하게 말한 남자가 내 골반을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구멍 안을 꽉 채운 남자의 좆은 그의 표정과 어조와는 백팔십도 다르게 뜨거웠다.

창백해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왜.”

차가운 금속 덩어리에 두 눈을 모았다.

“대체 왜 저딴 걸.”

…기분 탓인 건지, 손잡이 부근에서 뭔가가 반짝거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날갯죽지를 한껏 움츠렸다. 장 대표의 위에 올라타 있는 내 얼굴을, 비명을 내지르는 내 얼굴을 렌즈가 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여간 소름이 끼치는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달음박질쳐 도망가고 싶었지만, 골반을 쥐어짤 듯 붙들고 있는 남자 손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장 대표가 내 뒷덜미를 덥석 집어 올렸다. 인간보단 동물을 취급하고 있는 것에 가까운 손길이었다.

그가 소파 위에 툭 떨어트려 놓고 있던 내 손을 뒤집어 왔다. 장 대표가 내 손을 짐승의 눈으로 관찰했다. 지나치게 매끈거려 기이한 느낌을 주는 내 손가락을 바라보다, 그가 뱀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었다.

“지문 하나 없는데.”

그의 유려한 눈매 속에 담긴 꺼먼 눈동자가 반질거렸다. 꼭 잘 익은 올리브 열매 같았다. 당장이라도 끝이 날카로운 꼬치로 찔러 돼지들에게 먹이로 주고 싶을 만큼.

아랫입술을 어금니로 깨물고 남자를 노려봤다. 물기 없이 메마른 눈동자가 시큰거렸다. 장 대표는 금세 표정을 싹 바꿔 나직이 지껄였다.

“도망가면 내가 잡을 방법이 없잖아요?”

남자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협탁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전화가 울릴 땐 통화 버튼이 빨간색으로 번쩍거렸는데, 지금은 아무런 불빛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벨 소린 애초에 울리고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띠리리, 여전히 귓가에 벨 소리가 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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