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4)

03.

하루하루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꼽듯 쉬이 넘어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일이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엎어져 있던 침대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갓 태어난 사슴 새끼처럼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무릎을 벌벌 떨었다. 헐벗고 있는 하체를 타고 정액이 주륵 흘러나왔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훌쩍 열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후덥지근한 열기와 시큼털털한 냄새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였다.

창가에 힘없이 걸터앉는다. 난장판이 된 침대 위, 그보다 더 엉망이 된 내 몸. 모두 장 대표가 새벽에 남기고 간 흔적이었다. 며칠째 들리지 않기에 방심한 채로 잠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수마처럼 날 덮쳐 온 잠에 엉거주춤 백기를 든 채로 잠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내 귀에다 대고 읊조려 왔었다.

‘…다리 벌려 봐.’

처음엔 그저 악몽인 줄로만 알았다. 꿈결로 착각하고 있음에도 난 뭔가에 이끌린 듯 다릴 스물스물 벌렸었다. 내 뒤에 붙어 있는 인영은 성에 차지 않는지, 내 구멍을 넓게 벌리더니 바로 안을 박아 왔었다.

‘으윽!’

뒤가 벌어지는 고통에 눈이 팍 뜨였다. 어둑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자가 내 뒤에 올라타 있었다. 그가 개처럼 내 뒤에 달라붙어 숨을 뿜어냈다.

‘하아.’

덜 풀린 구멍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흐응, 아, 아파요, 아파요, 대표님.’

‘두 개는 넣어 줘야 만족하면서 감히 아프다고 지껄여요?’

장 대표는 그리 말하며 티셔츠를 끝자락부터 돌돌 말아 올려 내 가슴을 움켜잡았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데도, 장 대표는 살을 그러쥐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었다.

창가에 무기력하게 앉아 끔찍했던 새벽을 곱씹다가, 금고 위를 눈짓했다. 화대가 거기 놓여 있었다. 손을 뻗어 지폐의 개수를 세어 보곤, 오직 나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금고의 문을 열어 안에다 넣어 두었다.

그러곤 샤워실로 향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티는 어느새 쇄골이 보일 만큼 목이 다 늘어나 있었다. 장 대표가 목을 물어뜯으며 무지막지한 힘으로 늘려 놓은 탓이었다.

팔을 엑스 자로 교차해 티를 벗어 냈다. 남자가 남겨 놓은 울혈들이 몸 전체에 그득했다. 눈에 닿는 족족, 내 몸은 원래의 피부색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멍이 들어 있었다. 장 대표가 남긴 흔적들이 유독 집요하게 굴던 그를 상기시켰다. 피부에 엉겨 붙는 써늘한 공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물을 틀어 놓고 한 손으론 차가운 벽을 잡았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곤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안을 후볐다.

“으윽!”

쓰라림이 혹렬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정액이 후두둑 소릴 내며 타일 위로 쏟아졌다. 탈력감에 척추가 조금 저릿했다. 몸을 닦으며 다시 룸으로 나왔다. 룸이 한눈에 들어왔다. 뒷정리를 할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 나왔다.

“…하아.”

가장 먼저 침대로 다가가 바닥에 떨어져 메말라 있는 자국들을 지워 냈다. 청소는 투숙객들이라면 누구나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 서비스였다. 근데 내 방엔 직원이 청소하러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문턱에서 음식만을 내게 전달할 뿐이었다.

바닥을 닦아 낸 휴지들을 모두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가득 쌓인 휴지를 체념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꼴을 남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 여겨야 되는 건가.

이번엔 침대로 다가가 시트를 걷어 냈다. 하얀 시트 곳곳엔 이미 메말라 버린 정액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기분 탓인지, 시트에서 장 대표의 체향이 나는 듯했다. 담배 냄새가 미약하게 섞인, 은은하지만 후유증이 긴.

“…….”

매트리스에서 시트를 벗겨 내고, 이불과 함께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하얀 시트가 풀썩, 소릴 내며 땅 위로 떨어졌다. 그걸 무감각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별안간 기시감이 피어올랐다.

장 대표가 창밖으로 던졌던 그 남잔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팔다리가 부러졌을 뿐. 왜 뒷말이 나오지 않은가 궁금했는데. 장 대표가 섭섭지 않을 만큼 보상을 해 줬기 때문이라 들었다.

“개새끼….”

가슴팍을 씨근덕대며 숨을 뱉다가, 금고를 다시 열어 안에 있는 지갑에 일정한 양의 지폐를 넣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지금 입기엔 조금 두터운 감이 있는 옷이었지만, 귀 부근에 남은 자국을 가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양쪽 귀엔 마치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잇자국이 나 있었다. 후드 집업 안에 지갑을 숨기고, 호텔 밖을 나서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

어깨로 문을 밀자, 편의점 문 상단에 달린 풍경이 여릿한 소릴 내며 울렸다.

“어서 오세요.”

나는 바로 한 켠에 딸려 있는 ATM 기계로 향했다.

현금 투입구에 지폐를 간추려서 넣어 주십시오.

하루엔 보낼 수 있는 한도가 있어, 이틀에 나누어서 보내야 했다. 오늘치로 가져온 돈들을 지갑에서 빼 투입구에 추려 넣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는 란에는 ‘서수원’을 입력했다. 그러곤 기억하고 있는 주민 등록 번호를 꾸역꾸역 써넣었다. 곧 화면 위에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진열대를 한 바퀴 돌며, 의미 없는 눈길로 음식들을 훑었다. 나온 김에 끼니를 채울 무언가를 사갈 참이었다. 솔직히 말해, 근래엔 물도 당기지 않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끼니는 거르지 않고 계속 챙겼다. 장 대표가 던진 말이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엉덩이와 가슴둘레도 얄팍해지는 날엔 뒷구멍으로 밥을 먹어야 할 겁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재는 그의 마음에 들어 있었다. 물론 그의 취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라, 조금이라도 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몸 관리가 필요했다.

결국 손에 집어 올린 건 빵 쪼가리와 우유 한 팩이었다. 이제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알바생 앞엔 사람들이 계산을 하기 위해 한 줄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줄에 서 있는 여자가 시선을 붙들어 왔다. 낯이 익은 듯, 낯선 여자였다. 자신을 견습생이라 소개했던 이혜원이었다.

“…아, 어디 있지.”

뒤에 기다리는 인간들을 줄줄이 소시지처럼 매단 이혜원은 계속해서 제 가방과 주머니 안을 뒤적거렸다. 눈치를 보니 지갑을 어디에 놓고 왔거나, 못 찾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짜증의 기색이 스쳤다. 시선이 흘깃 카운터로 가닿았다. 위에 놓인 거라곤 컵라면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제일 작은 사이즈의.

“…같이 계산해 주세요.”

여자가 조용한 내 목소리에 뒤를 홱, 돌아보았다. 난 시선을 회피하며 카운터 위에 빵과 우유를 올려놓았다. 물품들을 일일이 바코드 찍은 알바생이 내게 일정한 금액을 요구했다.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자, 잔돈이 돌아왔다. 카운터에서 내 것만을 집어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뒤처져 있던 이혜원이 얼른 옆으로 따라붙어 왔다. 그러곤 내게 작게 속닥거렸다.

“…감사합니다.”

이혜원은 내가 제게 선행을 베풀었다 착각하는 듯했다. 난 그저 기다리는 게 싫었을 뿐이었는데. 숙소로 향하는 동안, 여자와 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B동에 머무르세요?”

“…….”

골프장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들은 모두 B동에 머물렀다. 이혜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니, 날 골탕 먹이려고 던져 온 질문이 아니라면 그저 이 어색한 침묵이 싫어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게 분명했다.

난 이혜원에게 답하지 못했다. 호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라고 답하면 여자는 물어 올 게 뻔했다. ‘왜요?’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B동까지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A동과 B동이 나뉘는 골목 어귀에서 이혜원이 살풋 미소 지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무표정한 눈으로 이혜원의 등을 바라보다가, 자존심만큼이나 얄팍해진 지갑을 품에 안고 호텔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다가 불현듯 흠칫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홱홱 돌아봤다. 방금 뭔가 시선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문득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장 대표가 어금니로 뚫을 것처럼 물어뜯어 놓았던 자국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듯했다. 후드가 벗겨질까, 손으로 머릴 꽉 감싸 쥔 채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레 느낀 시선은 그저 기분 탓이었다고 생각하면서.

***

띠리리, 띠리리.

편의점에 다녀온 사이, 텅 빈 룸 안엔 벨이 울리고 있었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로, 서둘러 다가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 룸으로 갑자기 올 전화는 몇 가지로 추려졌다. 그 중 대부분은 바로 장 대표 호출로 온 전화였다.

- 420호 호출입니다.

바로 지금처럼.

“네, 알겠습니다.”

얼른 준비한 후에 가겠다고 말하자, 전화가 끊겼다. 서 있던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옷장으로 다가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기다리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남자 때문에 허둥지둥 준비를 서둘렀다. 어찌나 감이 좋은지, 밖에 있을 때면 귀신같이 전화를 걸어 호출을 해 대곤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4층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트레이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홀 직원이 얼굴을 드러냈다. 난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목과 귀 부근을 가렸다. 직원이 내게 트레이를 맡겼다.

“이거 그대로 갖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옆을 지나가던 직원이 내 목 쪽을 힐긋, 하는 게 느껴졌다. 손으로 가린다고 가렸지만, 그런다고 가려질 흔적들이 아니었다. 남에게 보일 일이 그리 많지 않긴 했지만, 이럴 때마다 퍽 난감했다. 난감하다기보단, 수치스럽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억 소리 나는 술병과 음식들이 올려져 있는 트레이를 들고 복도를 지나쳐, 420호 문을 노크했다.

“룸서비스입니다.”

안에서 박진경이 “응, 들어와.”라고 하는 게 들려왔다. 후우, 묵직한 한숨을 내쉬곤 카드 키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에는 사람 셋이 한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며 마작을 치고 있었다. 작은 패들이 그들 사이에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가장 왼편에 앉은 김미란이 패를 넘기며 아는 척을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아가, 오랜만.”

그다음 박진경이 치1)를 외치며 말을 덧붙였다.

“목은 어째 가면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 가니.”

“…….”

죄인처럼 고갤 숙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김미란이 버린 패를 가져오며 담배를 문 잇새로 뇌까렸다.

“…론2).”

밤새 나를 범했던 남자, 장 대표였다. 패를 완성시킨 그가 허공에 후우, 숨을 내뱉었다. 연기가 구름처럼 한 데 모였다가, 금세 안개처럼 흩어졌다. 짐승 같은 남자가 나른한 얼굴로 지껄였다.

“거기 서서 뭐 합니까.”

난 멍청히 되물었다.

“…예?”

장 대표가 길게 찢어진 눈으로 자신의 손에 붙들린 잔을 내게 눈짓했다.

“술 따르지 않고.”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오만한 씹새끼.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으려 입 안의 살을 꽉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왔는지, 혀끝에서 텁텁한 쇠 맛이 났다. 느긋하게 의자에 기댄 남자가 술잔을 종처럼 가볍게 흔들었다.

“얼른.”

술병을 두 손으로 집어 올렸다. 철렁, 호박색의 액체가 병 안에서 묵직하게 출렁거렸다. 위스키의 뚜껑을 똑, 소리 나게 따고 남자가 들고 있는 술잔에 대고 기울였다. 꼴꼴, 호박색의 액체가 그의 크리스털 잔을 착실히 채워 나갔다.

적당량을 따라 붓자, 남자가 잔을 들더니 목을 축였다. 병을 다시 품으로 가져와 발걸음을 뒤로 물리려고 할 때. 싸늘한 명령이 떨어졌다.

“앉아요.”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한 걸음도 더 이상 내딛지 못하고 제자리에 우뚝 서고야 말았다. 앉으라고? 테이블 앞엔 의자가 세 개뿐이었다. 앉을 곳이 없단 얘기였다.

“의자를 가져오겠습니다.”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합니까.”

장 대표는 테이블 한쪽을 팔로 모두 쓸어 냈다. 쨍그랑, 소릴 내며 마작 패들이 테이블 아래로 우르르 쏟아졌다. 장 대표가 깨끗해진 자신의 오른편을 눈짓했다. 천천히 다가가, 그가 시키는 대로 테이블 위에 앉았다.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니, 실로 그의 애완견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남자가 술을 권유했다.

“한 잔 할 겁니까?”

“괜찮습니다.”

패들이 몇 개 사라졌음에도 게임은 계속됐다. 그들은 승부보단, 이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박진경이 패를 뒤집으며 장 대표에게 물었다.

“저번 주에 중앙 물산 김 사장 왔다 갔지?”

“…….”

“그 양반 돈 좀 벌었나 봐, 씀씀이 헤프다 소문났더라고.”

질문을 받은 장 대표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는 말없이 담배나 맛깔나게 피워 댔다. 문득 종아리 뒷부분에 손길이 느껴져 몸을 조금 흠칫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장 대표였다. 그의 손이 테이블을 덮은 흰 천에 은밀히 숨어 종아리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뱀처럼 스물스물 위로 타고 올라가더니, 오목하게 들어간 오금을 은밀하게 만져 왔다. 위스키처럼 지독한 남자가 날 보며 진하게 웃었다.

“…….”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더불어 등골에 자꾸만 오싹한 기운이 차올랐다. 허벅지 안쪽 부근이 자꾸만 간지러웠다. 바지를 내려 안을 득득 긁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장 대표가 이런 나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듯,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조소했다.

난 불안감에 휩싸여 여성 회원들 쪽을 힐긋 했다. 다행히 두 여자들은 이쪽보단 자신들의 대화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장 대표는 저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도 날 깔아뭉갤 위인이었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김미란이 문신으로 짙게 새겨 넣은 눈썹을 찌푸리며 묻는다.

“…그 능구렁이 같은 양반?”

“어, 그 색골 있잖아. 밤에 대여섯 끼고 논다더라.”

휘유, 김미란이 휘파람을 불었다. 직접 겪어 본 적 없어 김 사장이 어느 정도로 색골인 진 알 수 없었으나, 입에는 더러운 걸레를 처물고 하체는 난폭하게 굴리는 장 대표에 비할 바는 아닐 거였다.

“어쨌든. 재미 보는 건 장 대표뿐이지, 뭐.”

다시 한번 화두에 오른 남자는 두 여성 고객이 자신을 두고 뭐라 대화를 나누든, 개의치 않아 했다. 그가 내게 빈 잔을 들어 보였다. 나는 술병을 다시 올려 술을 따랐다. 그는 내게 시선을 맞춘 채로, 목을 꺾어 술로 목을 축였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내 허벅지를 주물럭대고 있었다.

안주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상당히 더러웠다. 그의 손이 허벅지를 가로질러, 사타구니 안쪽을 깊숙이 파고 들어온다. 그의 손끝이 내 바지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당장이라도 버튼을 풀어 바지를 끌어 내릴 것만 같았다.

“…….”

“…….”

나와 남자 사이에 여자 둘은 모르는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나는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 그의 팔목을 부여잡았다. 아주 미약한 힘으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작은 반항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을까, 남자의 얼굴을 살폈는데. 다행히 남자의 얼굴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얼굴엔 여느 때처럼 견고한 무표정만 씌워져 있을 뿐이었다.

돌연 박진경의 시선이 내게 붙잡힌 장 대표의 팔목에 닿아 왔다. 그녀는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듯,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술을 휘었다.

“장 대표, 애들이 서운해하던데.”

“그렇습니까.”

“왜 안 불러 주냐고 원성이 자자해.”

장 대표는 말없이 비소했다. 평소처럼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박진경은 그게 시답잖았던 모양인지, 이번엔 화살의 끝을 내게로 겨냥해 왔다.

“아가, 요 근래에 장 대표 너 때문에 꽤 귀찮았어.”

…귀찮은 일?

의아한 눈으로 장 대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만 짓고 있어 별 소득은 없었다. 귀찮은 일이라니, 대체 뭘 말하는 거지. 뒤통수에서 박진경이 말을 이었다.

“예쁨 받으려면 잘 모셔야 돼.”

장 대표가 술잔을 꺾으며 대신 답했다.

“술 따라 주는 작태 보니까 아무래도 헛돈 쓴 것 같네요.”

남자는 단숨에 술잔을 비워 냈다. 그러곤 그만 의자에서 자릴 털고 일어섰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그에 전리품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나도 덩달아 일어나야 했다.

***

남자의 뒤를 따라 호텔로 향하는 내내 난 사색에 잠겨 있었다. 박진경이 말한 귀찮은 일이라는 게 대체 뭘까. 아무리 고심해 본다 한들, 뭔가 명확하게 확 드러나는 바가 없었다. 고민은 공기처럼 내 주변을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이딴 얼굴로 그 새끼 팼습니까?”

엘리베이터 한 켠에 서 있던 장 대표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중얼거린다.

“…네?”

되묻자, 남자의 미간에 잔물결이 일었다. 남자는 본인의 미간을 엄지로 문지르다가, 이번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 주겠다는 듯이 말을 반복했다.

“이런 청승맞아 보이는 얼굴로 사람 팼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가 바로 덧붙인다.

“서수원 씨 고소해 버리기 전에 책임지라고 지랄을 떨던데요. 덕분에 그 입 처막느라 애 좀 먹였습니다.”

“……!”

남자의 말 한마디에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환하게 되살아났다. 산에 묻어 뒀던 돈이 없어져, 그 돈을 훔쳐 간 놈을 추적해 응징했던 일. 이상하게 조용하다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그 일 이후로 놈과 마주친 적이 없으니 점점 당시의 기억이 흐려지던 참이었다.

“왜 때렸습니까.”

값을 냈으니, 나도 이유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놈이 제 돈을 훔쳐 갔습니다.”

장 대표의 시선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으음, 그는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목을 울렸다. 그러곤 물어왔다.

“그걸 어떻게 확신했는데요?”

“산으로 갈 때마다 혹시 몰라 숙소 쪽을 확인해 봤었습니다. 돈을 묻으러 가는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단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봤었습니다. 녀석이 사는 방 창문에서 그림자가 비쳤었어요.”

흔들리는 커튼 뒤로 바삐 움직였던 그림자가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장 대표가 짙은 눈으로 말을 잇는 날 응시해 왔다.

“없어진 당일. 그놈 신발장에 놓여 있던 신발에 축축한 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삼일 전에나 비가 왔었는데, 그때까지 흙이 마르지 않으려면 산 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자가 음률 없는 목소리로 동조했다.

“음, 그럼 확실하네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장 대표가 먼저 복도를 벗어나, 내가 묵고 있는 룸으로 들어섰다. 남자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신발장 앞에서 문짝 같은 남자의 등에 가로막혀 제자리에 서야 했다.

내 앞을 막은 남자의 두 눈동자는 한군데로 모여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엔 빵과 우유가 검은 봉지에서 쏟아져 나온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의 호출에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거였다.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왠지 뒷덜미가 홧홧하게 달아올라 얼른 치우려고 하는데.

장 대표가 별안간 저벅저벅 그쪽으로 걸어가더니, 빵을 잘근잘근 짓밟았다. 그는 마치 담배를 비벼 끄듯, 구두 굽으로 바닥을 문질러 댔다. 애꿎은 빵이 그의 발밑에서 묵사발이 되었다.

“왜 이딴 걸 먹습니까?”

장 대표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날 돌아봐 왔다.

“돈은 섭섭지 않게 준 것 같은데.”

“…….”

“쌓아 뒀다가 다 어디에 쓰는 거예요.”

그러더니 아, 하고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감탄사를 내보였다.

“숨겨 둔 기둥서방이라도 있어요?”

“…….”

“완전 나쁜 새끼네, 그거.”

그의 무자비한 발길질은 우유 팩에도 가해졌다. 그의 구둣발에 걷어차인 불쌍한 우유 팩은 옆구리가 터진 채로 허연 국물을 질질 흘렸다.

“애인은 개새끼한테 걸려선 술이나 따르고 있는데.”

장 대표가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뒷부분을 툭툭 쳐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 개새낀 서수원 씨한테 곧 보지도 혼자 쳐 보라 그럴 거고.”

그가 라이터의 휠을 돌려,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담배나 피우면서 말입니다.”

후우, 장 대표가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내게 최후의 통첩을 내렸다.

“다 벗고 내 무릎 위로 올라와요.”

나체의 상태가 되어, 멀끔한 모습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는 장 대표에게 다가갔다.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이 맞닿은 둔부로 여실히 느껴졌다.

후우, 그가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내뿜었다. 난 한쪽 무릎을 세우곤, 젤을 듬뿍 넣어 놓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눅눅하게 풀린 구멍은 내 손가락을 밀어 낼 듯, 은근하게 빨아들이며 야금야금 조였다.

“…아!”

흐음, 낮게 목을 울린 장 대표가 두 손으로 내 유두를 주물럭거려 왔다. 남자가 손톱으로 젖꼭지를 연신 긁자, 말랑거리던 게 금세 꼿꼿하게 섰다. 얼른 더 만져 달라는 듯이,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불그스름한 게 빨다 보면 젖도 나올 것 같네.”

남자가 뺨을 내리치기라도 한 듯, 광대 부근이 화악 달아올랐다. 내 몸엔 전체적으로 색소랄 게 없었다. 피부만큼이나 유두 또한 색소가 옅어, 보통 성인 남자들과는 달리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젖꼭지, 누구한테 빨려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스스로 빨아 본 적은요.”

“…없습니다.”

“그럼 지금 빨아 봐요.”

…그게 무슨. 장 대표는 부연 설명 대신 내 목덜미를 잡고 꽉 눌러 왔다. 그에 정장 바지에 감싸인 그의 허벅지 위로 아무렇게나 늘어진 내 음모가 눈에 보였다. 음모 또한 색소가 옅어 짙은 정장 바지 색과 약간 괴리감이 있었다. 장 대표가 노는 손으론 내 음모를 헤집어 왔다. 머리칼을 잡던 손길과는 조금 달랐다. 돌돌 꼬며 제 손으로 가지고 놀다가, 다시금 재촉해 왔다.

“빨라고.”

…씨발. 속으로 욕을 삼키며 장 대표가 시키는 대로 혀를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리 혀를 길게 빼 본들, 가슴팍으론 혀가 닿지 않았다.

그에 장 대표가 손수 나서서 내 가슴 밑을 손바닥으로 밀어 올렸다. 어느새 눈앞에 온 그걸 보며 난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그러곤 그가 시키는 대로 유두에 혀끝을 갖다 댔다. 중간까진 미처 닿지 못하고, 부드러운 유륜만이 혀끝에 걸려 왔다. 내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유륜 부분을 보는데, 낯이 다 화끈거렸다. 입 안에 고여 있는 침을 황급히 삼켰다.

“뒤도 쑤셔요.”

구멍에 넣고 있던 손가락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혀로는 가슴을 빨고, 손가락으론 구멍을 쑤셨다. 그것도 장 대표가 보는 앞에서. 그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매초마다 곱씹게 됐다. 몸으로 쏟아지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아아.”

“…….”

“흐응, 하아, 흣.”

“…….”

“…아, 아파.”

장 대표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어때요, 보지 느낌이. 좁고 축축해요?”

네, 네, 그리 말하며 고갤 끄덕거렸다. 몸에서 불이 나는 듯했다. 구멍이 간지러웠다. 긁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그 부분이 어딘 건지 알 수 없었다.

두피에 고통이 느껴졌다. 목이 뒤로 홱 꺾인 채로, 아, 소릴 내며 눈을 떴다.

“건방지게 눈 감지 마요.”

눈을 뜬 채로 그에게 중얼거렸다.

“하아, 흥, 좁고, 축, 축합니다.”

지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 대표가 정장 바지의 지퍼만 내린 상태로 손에 자신의 좆을 잡고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빠르고 거친 손짓이었다. 내가 그의 좆을 잡고 흔들었던 건, 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보기 좋게 그을린 광대 부근을 붉게 물들이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

“하아.”

구멍의 어느 부근을 누르자 허리가 비틀렸다.

“…흐응!”

발가락들이 안으로 곱아들고, 둔부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의 허벅지를 둔부로 문지르며 구멍 안을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그럼에도 쉬이 사정에 이를 수 없었다. 괴로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을 때. 장 대표가 억눌린 신음 새로 명령했다.

“…씨발, 엎드려.”

그의 위에서 비적거리며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 장 대표에게 목덜미가 잡혀 그대로 바닥으로 찍혀 내렸다. 그 상태로 그에게 구멍을 내주어야 했다.

“…하아, 흐, 흐윽!”

“흐, 흐음….”

“…아흣, 흐읏, 흑!”

“하아!”

얼굴은 러그에 처박힌 채로, 엉덩이만 뒤로 바짝 세워 올라가 남자에게 사정당했다.

투두둑. 차가운 액체가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에 꽉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손등 위에 투명한 액체 몇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장 대표의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인 것 같았다.

어지러이 흔들리는 시야로 장 대표의 굵은 핏줄이 서 있는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 껴 있는 반지도. 여자가 있는 거겠지. 얼굴도 모르는 이에 대한 죄책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결국 다시 눈을 감은 채로 신음을 내질러야 했다.

***

샤워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팔로 몸을 감싼 채로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씻고 나와서 정장까지 갖춰 입은 남자가 지갑을 꺼내려고 하기에 얼른 더듬더듬 말했다.

“오늘치는 안 주셔도 됩니다.”

쉬어 버린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장 대표가 손짓을 멈춘 채로 날 돌아보았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저 대신 해결해 주셨다고 해서요.”

장 대표의 눈동자가 점점 차갑게 가라앉았다. 뭔가 실수했나 싶어, 난 몸을 움츠렸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면 좋아하는 티는 안 내더라도, 적어도 싫어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그가 낮은 음역대로 음산하게 지껄였다.

“오늘 그 짓거리가 그럼 화대였습니까?”

“…그, 그게 아니라.”

화대라니. 내가 장 대표에게 화대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대며 변명하려고 했으나, 이미 장 대표는 본인의 의심을 확신으로 굳힌 이후였다.

“…어쩐지 고분고분하다 했습니다. 대체 얼마나 받아 챙기려고 이러는 건가 했더니.”

그가 손을 들더니, 자신의 짙은 눈썹을 매만졌다.

“…이게 어디서 날 창놈 취급해.”

등골이 써늘하도록 낮게 지껄인 장 대표가 들고 있던 지갑을 금고 쪽으로 집어 던졌다. 얼른 몸을 웅크렸다. 지갑이 금고를 맞곤,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보지에 좆 넣고 흔들어 줬더니 서수원 씨랑 나랑 동급 같고 그래요?”

그가 화살처럼 날카롭게 벼린 말 한마디를 내게 던져 왔다.

“건방 떨지 말죠.”

쾅, 장 대표가 저벅저벅 걸어 룸을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엔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장 대표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군말 없이 남자의 불편한 요구에 응했던 건 확실히 그 때문이었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으나, 그에 반해 난 내 이름 하나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그러니 나로선 몸을 굴리는 게 최선이었다.

“…….”

그걸 왜 내가 본인에게 화대를 건넨 거라고 받아들인 건지. 역시 장 대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끼였다. 나 같은 평범한 남자에게 발정 난 새끼처럼 들러붙는 것만 봐도 제정신은 아닌 듯했는데. 하긴, 그렇게 제멋대로일 만도 했다. 성격은 전적으로 유전과 환경이 만드는 거니까. 어릴 때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을 테니, 다른 이들의 떠받듦을 받는 게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맨발로 지갑이 떨어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발바닥이 대리석과 맞부딪치며 철썩철썩, 소릴 냈다.

지갑은 아가릴 쫙 벌린 채로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상체를 숙여 그걸 바닥에서 주워 들었다. 몇 개의 카드와 지폐들로 빽빽이 들어찬 지갑은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꿀꺽, 입 안에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이 많은 돈을 보고도 탐심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당장이라도 지폐를 모두 꺼내 뒷주머니에 얼른 쑤셔 넣고 싶었다. 그러곤 이곳에서 도망쳐 나가는 거지. 남자가 자릴 비운 지금이야말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절호의 타이밍인데….

지갑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붙든 팔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안에는 남자의 신분증이, 카드가, 수표가 그득했다. 남자는 대가 없인 내게 돈을 건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자가 날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을 쉬이 지워 낼 수가 없었다.

“…하.”

낮은 한숨과 함께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금고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누르곤 그 안에 지갑을 넣어 놓았다. 철문을 손등으로 툭 치자, 금고의 철문이 탕 소릴 내며 닫힌다.

금고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았다. 적막이 몸을 휘감았다. 머리 안에선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금고 안에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 본다 한들, 빚을 제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랐다. 평생 만져 보지 못한 지폐들이 눈앞에 그득한데도, 무력감만 한층 더 짙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공허하기만 했다.

***

침대 위에서 밤새 뒤척거렸다. 그의 차갑게 식었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한숨도 청하지 못했다. 그는 눈에 보일 때나, 보이지 않을 때나 여러모로 날 괴롭게 하는 남자였다.

편의점에 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호텔 밖을 나서기 전, 로비에 마련된 고객 휴게실에 들러 잠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마우스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는 검색 창에 ‘월중 마을’이라는 단어를 써넣었다. 두 눈이 검색 결과를 주르륵 훑어 내렸다.

“…….”

익숙한 곳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월중 마을. 이곳은 내가 원래 살던 마을이었다. 높은 산을 깎아 구릉지를 만들어 그 위에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세워 놓았다. 마을 전체가 달 중간에 있어 월중이라 부르던 게 지명으로 붙어 버린 거였다.

다행히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없었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전원을 끈 후,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편의점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은 직원 식당의 점심 메뉴가 별로였던지, 평소와 달리 사람이 좀 있었다. 어제 미처 부치지 못했던 돈을 마저 보낸 뒤, 끼니를 때울 음식들을 사서 하나 남은 빈 테이블에 앉았다. 혹시나 장 대표가 보기라도 한다면 또 지랄을 떨어 댈 것 같아, 먹고 들어가려던 심산이었다. 삼각 김밥의 포장지를 뜯고 있는데.

딸랑, 풍경이 울렸다. 두 눈이 무심코 문 쪽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던 이혜원이 날 발견하곤, 반가운 눈치를 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마지못해 가벼이 눈인사를 했다. 그러곤 여자의 시선을 피해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빨리 먹고 일어나기 위해 성급히 음식물을 삼켜 넣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주변에서 내 쪽을 흘깃거려 오는 게 느껴졌다.

‘잘 나가더니 왜 편의점에 와 있대?’

누군가가 킥킥댔다.

‘장 대표가 팽한 거 아니야? 그 남자, 원래 고정 안 두잖아.’

‘깽값 대신 물어 줬다길래 진짜 회까닥한 줄 알았지.’

‘급이 다른데, 무슨.’

식탁 끝을 응시하며 한 입을 더 베어 물었다. 주변에서 날 두고 쑥덕대는데도 화는 나지 않았다. 저들 눈에 내가 걸레 같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우습겠지. 같은 남자에게 뒤를 내주며 돈을 받아 챙긴다는 게. 그렇게 속으로 자조하고 있을 때. 시선으로 음료수가 불쑥 들어왔다.

“드세요.”

눈을 옮겨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또 이혜원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혜원은 괜찮다고 말하는데도, 손수 뚜껑까지 따서 내 앞에 그걸 내려놓았다. 그러곤 내 맞은편에 앉는다.

“자리가 없어서요. 같이 앉을게요.”

악의 없는 웃음이 여자의 입술 끝부터 시작해 얼굴에 번졌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주변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사람들보다, 이 여자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더 불편했다. 음식물이 목에 걸린 듯 속이 갑갑했다. 그에 먹다 만 음식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혜원이 입을 약간 벌리고 당황스러운 눈치를 해 보였다.

“…아.”

“어차피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다 먹어서.”

등으로 이혜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유 모르게 속이 쓰라렸다. 차라리 남들처럼 내 뒤에서 욕을 해 주는 편이 나을 텐데. 이 정신 나간 곳에서 악의 없는 눈으로 날 바라봐 오니, 잠시 잊고 있었던 뭔가를 자꾸 상기하는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인간으로서의 수치감, 모멸감 따위들 말이다.

먹다 남은 음식물일랑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곤 불쾌감을 떨어내듯, 손을 털어 냈다. 편의점에서 나와 옆에 딸려 있는 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번호를 입력해 누르자,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삼촌, 돈 보냈습니다.”

- 받았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지, 후욱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 너 그 말이다. 돈을 더 보내야 할 것 같아.

무척이나 태평한 목소리였다. 어떠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음성으로 지껄여 놓은 말에 난 눈을 조용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방금 뭐라고.

- 며칠 전에 빚쟁이 새끼들 찾아왔었어.

빚쟁이가 찾아왔었다고? 수화기를 쥔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단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내뱉었다.

“이자 안 갚으셨어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전화 부스 벽에 이마를 기대며, 애원하듯 말했다.

“일부는 이자 갚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 후우. 다음 주까진 일단 시간 좀 달라고 했다.

“…또 도박에 손대시는 건 아니죠?”

카악, 퉤. 이번엔 대답 대신 가래침을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했다. 조용히 운을 뗐다.

“이러시면.”

- …….

“이러시면 저 돈 못 보냅니다.”

삼촌은 예상대로 길길이 날뛰었다.

- 지금이야 짭새들이 멍청히 손 놓고 있지. 내가 입만 뻥긋하면 니 인생, 니 엄마 인생 좆 되는 거 알아, 몰라, 이 멍청한 새끼야?

“…….”

- 다음 주까지다. 그때까지 돈 보내 놔.

뚝, 그러곤 전화가 끊겼다. 손에서 수화기를 떨어트렸다. 전화기 선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이리저리 추처럼 움직이는 수화기에선 삐이, 삐이 하는 소리가 났다. 꼭 나 자신에게 무언가의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짓거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처음 장 대표의 무릎 사이로 기어들어 갔을 때까지만 해도, 빚만 갚으면 바로 이곳을 나갈 생각이었다.

장 대표는 소문처럼 씀씀이가 큰 남자였다. 그간 내 손에 붙들어 준 돈만 해도 벌써 몇천이었다. 이곳이 아니라면 몇 년은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손엔 돈이 척척 와서 붙고 있는데, 왜 이리 앞날은 컴컴해 보이기만 하는 건지.

“…….”

수화기를 다시 집어 올려 번호를 꾹꾹 눌렀다. 뚜르르, 이번엔 신호가 제법 오래갔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을지도. 그런 생각이 들어 전화를 그만 끊으려고 할 때. 연결음이 뚝, 끊기더니 수화기를 타고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끝이 허스키하게 갈라지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 대표였다. 속을 후벼 파는 나직한 음성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누구십니까, 라고 물어 왔다. 차마 뭐라 말이 떨어지지 않아 입을 어버버 거리다, 간신히 말을 뱉었다.

“…대표님.”

그러곤 정적이었다. 수화기 위로 남자의 명령이 떨어진다. 내 방으로 올라와.

수화기를 있던 자리에 돌려 놓고, 장 대표에게로 향하며 참 거지 같은 인생이라 회고했다. 손 내밀 곳이 이 개새끼밖에 없다니.

***

장 대표는 커다란 가죽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그 앞에 있는 벽걸이 TV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왔다는 걸 분명 알 텐데도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TV를 눈빛으로 꿰뚫듯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쪽에선 TV 화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난 한 켠에 잠자코 서서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내 그가 리모컨을 들더니, 화면을 껐다. 띠리릭, 하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왜 또 기어들어 왔어요.”

그가 별안간 소파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여 있는 골프채를 매만졌다. 난 그에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골프채를 든 장 대표는 내게로 다가오는 대신, 초록색의 퍼팅 매트 위에 섰다. 그러곤 자세를 취했다.

“나한테 박히려고?”

툭, 장 대표가 친 공이 매트 위를 굴러 홀 안으로 도르륵 빨려 들어갔다. 그가 그제야 고갤 돌려 날 바라봐 왔다.

“서수원 씨는 발정이 날 대로 나서, 금고 모서리로도 뒷보질 쑤셔 줘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남자는 상스럽기 그지없는 말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할 줄 알았다. 폭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내게, 장 대표가 홀 안을 눈짓했다. 난 얼른 그가 있는 데로 다가가, 홀 안에 담겨 있는 골프공을 집어 올렸다. 그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물었다.

“…어디에 둘까요?”

장 대표의 꺼먼 눈동자가 날 조용히 응시했다. 색이 지나치게 짙어, 홍채와 동공의 경계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눈동자가 일순 반질거렸다. 눈동자에 흥미가 가늘게 너울거렸다.

“재밌는 생각 났는데.”

쉬이 휘어지는 법 없는 장 대표의 눈매가 길게 찢어졌다. 그에 왠지 모를 오한이 등줄기를 훑었다.

“다 벗고 소파 위에 다리 벌리고 앉아 봐요.”

목 안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다짐을 하고 온 상태라 옷을 벗는 과정이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입고 있는 남방 단추를 가장 위의 것부터 풀어내기 시작했다. 벗어 낸 옷가지들이 하나둘씩 바닥 위로 풀썩 소릴 내며 떨어졌다.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된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다음 차례로, 장 대표의 소파 위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다릴 벌렸다. 검은 가죽 소파가 쩍쩍 소릴 내며 둔부와 허벅지에 달라붙어 왔다.

화면이 꺼진 TV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나체인 상태로 날 마주 봐 왔다.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관계를 가지며 느끼기 시작했던 그 감정은 이제야 조금 옅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다시 눈을 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내 앞으로 골프공 세 개를 내밀었다.

“받아요.”

그걸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남자가 건넨 건 많이 고급이란 걸 제외하면 그저 평범한 골프공일 뿐이었다. 이걸 갑자기 왜?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는 내게, 장 대표가 그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걸 넣어 보는 겁니다.”

…뭐? 그가 넘긴 골프공을 받아 든 채로 충격에 휩싸였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골프공을 몸 안에 삽입한다고? 들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변태적인 행위였다. 그런 짓을 내게 요구하고 있는 장 대표는 퍽 우아한 말씨로 어조 없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장 대표는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골프채를 손수 닦기 시작했다.

“내 좆도 잘 무는 구멍인데요.”

내게 이딴 짓을 시켜 놓곤 그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난 손안에 붙들린 골프공 세 개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 기어들어 오면서, 이만한 다짐도 해 놓지 않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별안간 손안에 힘을 주었다.

그래, 한 번이면. 한 번이면 되니까.

노는 손을 구멍 쪽으로 가져와, 손가락을 넣고 안을 풀었다. 이때쯤이면 적응이 될 만도 할 텐데. 탄력이 좋은 구멍은 여전히 버거워하며 손가락을 삼켰다. 눈살까지 조금 찌푸린 채로 손가락질에 집중하고 있는데.

장 대표의 질문이 돌연 머리 위로 떨어졌다.

“30분여간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걸 어떻게.”

순간 흠칫 놀라, 그에게 물었다. 뭔가에 몸이 짓눌린 채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입 안에서 터져 나왔다. 장 대표는 되레 기가 찬다는 듯, 되물어 왔다.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써늘한 눈길로 날 똑바로 주시해 왔다.

“딴 새끼 좆 빨다 왔어요?”

“…아닙니다.”

미약하게 고갤 내젓곤, 다시 손톱으로 내벽을 긁어내렸다. 장 대표 또한 더 이상 물어 오지 않았다. 그 또한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 알고 있을 터였다. 그저 경고하고자 한 듯했다. 니가 어딜 가든 이곳에선 그저 내 손바닥 위일 뿐이라고.

“…하아.”

구멍이 흐물흐물하게 늘어졌다. 이만하면 된 것 같아 구멍에서 손가락 두 개를 빼냈다. 손가락을 따라 나온 내벽이 끈적한 젤을 꾸웩꾸웩, 도로 뱉어 내었다. 손에 붙들린 골프공을 내려다보았다. 이젠 이걸 넣을 차례였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었다. 과연 구멍으로 진짜 이게 들어갈까. 계속해서 의구심만 들었다. 장 대표가 손에 쥔 골프채로 매트의 한 부분을 툭, 건드렸다.

“지금부터 난 총 세 개의 공을 저 홀 안에 넣을 거예요.”

골프공들이 무분별하게 쌓여 있는 통에서 골프공이 하나 떨어져 나와 매트 위를 굴렀다. 장 대표가 골프채로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는 골프공을 날렵하게 잡아챘다.

“만약 세 개가 다 들어갈 때까지도 몸 안에 공 세 개를 못 넣을 경우.”

그가 허벅지를 약간 낮추고 퍼팅 자세를 취하며 중얼거렸다.

“각오해야 될 거예요.”

장 대표가 어깨에 스윙을 주며 골프공을 툭, 쳤다. 골프공이 매트 위를 매끄럽게 훑으며 지나가, 컵홀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그가 내 쪽을 바라보며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조소했다. 마치 본인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는 것 같은 비소였다.

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난 뭔가를 결심한 듯, 손에 붙들려 있는 골프공들을 고쳐 쥐었다. 그러곤 골프공 하나를 입구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구멍이 크기를 늘리며 골프공을 삼키기 시작했다. 이내 하얀 골프공이 쏘옥,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우… 흐….”

호텔 안에 민망하기 짝이 없는 내 신음 소리가 울려 퍼져 나갔다.

장 대표가 골프채를 세게 틀어쥐었다. 손등 위로 굵은 핏줄과 하얀 뼈마디들이 드러날 만큼 손에 힘을 꽉 쥐고 있었다. 퍼팅을 치기엔 불필요한 세기의 힘이었다. 장 대표는 허벅지 힘도 좋았지만, 거리에 따라 힘 컨트롤 또한 놀랍도록 잘하는 남자였다. 그 또한 그걸 알고 있을 텐데….

골프채가 매트의 끝부분을 재차 눌렀다. 공이 그에게로 굴러들자, 장 대표는 망설임 없이 그걸 쳤다. 답지 않게 과하게 힘을 주는 그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두 번째 공이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난 뺨 안쪽을 꽉 물며, 남아 있는 두 개 중 하나를 더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흐흑!”

확실히 한 개보단 두 개가 더 버거웠다. 작은 돌기들이 오돌토돌하게 난 차가운 공이 내벽을 억지로 벌리고 짓누르며 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구멍은 골프공을 도로 뱉어 내려 안간힘을 써 댔다. 우물우물거리며 자꾸만 구멍이 입구를 벌려 댔다. 나는 목까지 뒤로 젖히곤 괄약근에 바짝 힘을 주고 버텨 냈다.

“하읏, 으응….”

맞은편에 있는 TV로 온몸을 붉게 물들이고 허벅지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벌어진 구멍으론 하얀색 골프공이 언뜻 모습을 조금 내비치고 있었다. 밑으로 알을 낳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역겹기까지 했다.

장 대표 또한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호선을 그리고 있던 장 대표의 입매가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심연처럼 어둡기만 해,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에게도 이런 내 모습은 분명 역겨울 거였다. 성인 남자가 뒷구멍에 골프공을 쑤셔 넣은 채로 다릴 덜덜 떨고 있는 모양이라니. 별안간 죄스러워졌다.

장 대표가 잇새로 낮게 으르렁거리며 경고해 왔다.

“잘 물고 있어요.”

“…흐으윽.”

“하나라도 떨어트리면 서수원 씨 예쁘장한 주둥이에 물려 버릴 테니까.”

별안간 구멍이 움찔움찔 떨렸다. 일순 내벽이 꽉 조이더니, 다시 입구를 넓히기 시작했다.

“…흐읏!”

흐음, 장 대표가 목을 긁으며 신음 소릴 한숨처럼 뱉었다.

그가 골프공 하나를 더 꺼내더니, 잠시 모든 행동을 멈춘 채로 날 응시해 왔다. 이제 마지막 공 차례다. 저걸 홀에 넣을 때까지, 구멍에 공을 넣지 못하면…. 꿀꺽, 목을 울렸다. 장 대표는 분명 내게 각오하라고 했었다. 그는 자신의 쾌감을 위해서라면, 내 목도 졸라 올 남자였다. 나는 나머지 하나를 성급하게 안으로 들이밀었다. 질척한 골프공들이 저희들끼리 뒤엉켜 몸 안에서 질퍽하게 나뒹굴어 댔다.

“으읏, 흥.”

이젠 진짜 한계였다. 구멍으로 공이 튀어나오려고 하길래, 얼른 손바닥으로 아가릴 쩍 벌린 구멍을 틀어막았다. 무척이나 필사적이었다. 장 대표가 늪처럼 축축하고 음습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손 떼요.”

“…으흣.”

그의 말에 입구에서 손을 떼곤 소파를 꽉 움켜잡았다.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고갤 뒤로 꺾은 채로, 하체를 잘게 바르르 떨었다. 구멍에 힘을 주느라 엉덩이 근육이 파들파들 떨렸다.

아주 작은 자극만 주어져도 곧바로 공을 뱉어 낼 것 같았다. 그와 별개로 구멍 안이 미친 듯이 가려웠다. 골프공은 입구에 오밀조밀 모여 저희들끼리 뒤엉켜 있을 뿐, 깊숙한 곳까진 닿지 않았다. 불현듯 장 대표의 정장 바지 가운데 춤으로 눈길이 모였다. 이 와중에도 변태 사이코의 성기는 불룩하게 발기되어 있었다.

“…으응!”

그때였다. 골프공 하나가 기어코 구멍의 입구를 벌리며 툭! 튀어 나갔다.

“…아, 안 돼….”

뒤늦게 구멍에 힘을 줘 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오히려 공은 힘을 준 탓에 더 빠르게 튀어 나갔다. 젤로 미끈하게 젖은 골프공이 데굴데굴 굴러, 장 대표가 서 있는 매트를 향해 갔다. 장 대표가 골프채로 그 공을 낚아채더니, 홀로 집어넣었다.

“내가 분명 흘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에서 나온 세 번째 공이 그의 세 번째 공이 되었다. 마지막 공을 넣기에 성공한 장 대표가 방금 막 내 몸에서 빠져나간 공을 홀 안에서 집어 들어 내게 느릿느릿 다가왔다. 손안의 공을 매만지던 그가 차갑게 빈정댔다.

“축축하기도 하지.”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남자 때문에 난 소파에서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얼마 못 가, 소파 헤드에 등이 닿았다. 바짝 다가온 장 대표는 골프채 앞머리로 내 허벅지 안쪽을 꽉꽉 눌러 왔다. 골프공 두 개를 몸 안에 담은 채로 발버둥 치며 몸을 비틀자, 그는 망설임 없이 내 발목을 움켜잡아 왔다.

그가 사타구니 옆의 오목한 부분을 짓누르자, 골프공 하나가 더 툭, 튀어나왔다. 그 공 또한 데굴 구르더니 그의 발에 툭, 맞고 멈춰 섰다. 그가 방금 떨어진 공 또한 주워 들으며 낮게 탄식했다.

“이것 봐라.”

“…….”

“…내가 똑똑히 말했잖아요.”

잘 물고 있으라고. 그리 말한 장 대표는 내 턱을 손으로 단단히 붙들더니 명령했다.

“입 벌려요.”

입을 크게 내 벌렸다. 그는 예고했던 대로, 내가 구멍에서 뱉어 낸 공 두 개를 내 입 안으로 넣어 왔다. 혀 위로 끈적거리는 공 두 개가 올라왔다. 혀끝에서 끔찍한 맛이 났다. 질척거리는 데다가, 인위적인 장미 향이 나는 액체가 입 안에 맴돌았다.

뺨 양쪽이 불룩하게 솟았다. 장 대표가 내 양 뺨을 손가락으로 꽉 누르며 지껄였다.

“이건 무슨 다람쥐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곤 아직 골프공이 하나 남은 있는 구멍 안으로 중지를 쑤욱 넣어 왔다. 그의 손가락은 굉장히 길어서, 끝까지 밀어 넣으면 아주 깊은 곳까지 닿았다. 장 대표의 손가락이 구멍 여기저길 찔러 봤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손길이었다. 골프공이 그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결국 그에게 잡혔다. 남자가 쾌재의 미소를 입가에 덧그렸다.

“여기 있네.”

그가 손가락 끝으로 몸 안에 있는 골프공을 돌돌 굴렸다. 몸 안에서 공이 도르륵 도르륵 굴러 댔다. 난 허릴 비틀며 까무러쳤다.

“…아흣, 아아!”

나는 발작하듯 몸을 떨어 댔다. 장 대표는 쯧, 혀를 차며 내 허벅지를 자신의 무릎으로 꽉 눌러 왔다.

구멍 안에 손가락 한 개가 순식간에 더 들어왔다. 장 대표는 구멍 안에 총 두 개의 손가락을 빽빽이 넣은 채로 안을 뒤흔들었다.

“…하아, 하아, 흐읏, 하앙!”

난 그의 손목을 두 손으로 붙든 채로 허릴 미친 듯이 떨었다. 구멍 안에 하나 남은 골프공이 그의 손길에 이리저리 팍팍 튀며 내벽 안에서 뛰어놀았다. 찰박찰박, 물기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흐읏, 흐으응, 대, 대표님.”

장 대표가 자릴 고쳐 잡는다. 그러곤 내 둔부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고 있는 쪽의 셔츠 소매를 다시금 걷어 올렸다. 마치 뭔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준비 자세를 가다듬고 있는 사람 같았다. 하나를 더 넣어 오려고 하는 거다. 난 그를 말리기 위해, 그의 단단한 허벅지를 두 다리로 감쌌다. 그러나 그는 망설임 없이 내 안에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보지 파 주니까 좋아 미치겠어요?”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아, 그의 허벅지를 두 다리로 꽉 감쌌다. 허벅지 안쪽으로 뜨겁고 단단한 게 느껴졌다. 급한 대로 감싼 것뿐인데, 위치가 장 대표의 좆이 놓인 곳인 듯했다. 그가 상체를 낮춰 내 귀를 씹어 대며 다시금 물었다.

“좋아 미치겠냐고.”

“…네, 네, 흐으윽.”

그가 협박처럼 물어 오는 통에, 난 미친 듯이 고갤 끄덕여야 했다. 몸 안에서 용암 불이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뭔가가 팍,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어디요?”

장 대표가 여기저기를 들쑤시더니, 이내 한 포인트를 손으로 꽉 짓누르며 음산하게 물었다.

“여기?”

“…….”

“여기 귀두로 파 주면 껌뻑 죽잖아, 너.”

난 화살에 날개를 맞은 새처럼 퍼드득 어깻죽지를 떨다가, 미친 듯이 고갤 끄덕거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에 전등이 들어왔다, 꺼졌다, 하길 반복했다. 눈가와 코끝이 뜨거웠다. 이미 총기를 잃은 난 계속해서 같은 단어만 중얼거렸다.

“대표님, 대표님…”

“…….”

“가, 갈 것, 같아요….”

척추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자꾸만 요도에 힘이 몰렸다. 눈앞에 있는 장 대표를 치워 내고,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에 오줌을 누고 싶었다.

눈앞이 희뿌옇다 했더니,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슴이 동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입에서 침이 흐르듯, 그저 그렇게 생리적으로 눈에서도 액체가 나오는 것뿐이었다.

“저번처럼 또 내 셔츠 물들이려고요?”

“아니요, 흑, 아닙니다.”

난 사정하지 않기 위해,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는 좆을 붙들어야 했다. 음경을 손으로 꽉 잡고 엄지로 요도 구멍을 틀어막았다. 장 대표가 그런 나를 내려다보더니 구멍 안을 박고 있던 손가락의 개수를 늘렸다.

손가락 세 개와 골프공 하나가 내벽을 마구 짓누르고 쑤셔 댔다. 장 대표의 자비 없는 손길에 밀려, 골프공이 자꾸만 몸 깊숙한 곳으로 더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아아!”

사정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봤지만, 엉덩이 밑에서부터 치달아 오르는 극치감을 버텨 낼 힘이 없었다. 난 장 대표의 허벅지에 비하면 얄팍하기 그지없는 허벅지로 그의 다릴 꽉 조이며 사정했다. 눈앞을 그대로 하얗게 날려 버리는 오르가즘에 몸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다.

장 대표의 굵은 허벅지가 온통 내 정액으로 흥건했다. 검게 물든 그의 정장 바지를 바라보며 난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속눈썹에 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후두둑, 검은 소파 위로 떨어졌다.

“…안, 안 하려고 했는데.”

흐느낌은 점점 소리가 커져 갔다. 장 대표가 행위 전에 미리 옷만 벗었어도. 아니, 나를 사정까지 그가 몰아가지만 않았어도, 그의 정장 바지를 젖게 할 일 따윈 없었을 텐데. 씨발 새끼.

“…죄, 죄송합니다….”

장 대표는 한동안 말없이 날 내려다봤다. 별안간 지퍼를 지익, 내리더니 프리컴으로 흥건히 젖은 좆을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내 얼굴에 문질러 왔다.

“수원 씨.”

그는 평소보다 약간 느긋한 음성으로 날 불러 왔다.

“보는 사람 기분 씹스럽게 왜 울고 그래요.”

“…흑.”

“앞은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질질 싸기나 하고.”

“…….”

그의 두껍고 색이 짙은 귀두가 코밑을 스쳤다. 체향 짙은 수컷 냄새가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와 폐부를 짓눌렀다.

“이 정도면 화대는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불쾌감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한 그는 의외로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니, 기분 탓인지 오히려 조금 좋아 보였다. 장 대표는 제 귀두로 내 눈가와 뺨, 그리고 내 유두를 문질러 왔다. 그의 귀두가 작고 동그랗게 솟은 유두를 짓이겨 댔다.

“바지값 안 받을 테니 가슴 모아 봐요.”

한동안 했던 운동 때문에 약간의 볼륨이 있는 것 빼면, 밋밋하기 그지없는 가슴을 손으로 끌어모았다. 장 대표는 약간 모인 내 가슴팍에 제 좆을 맞대곤 엉덩이를 유연하게 흔들어 왔다. 그의 귀두가 명치를 연신 빠르게 훑자, 피부가 따가울 만큼 달아올랐다.

그의 밑에 무릎을 꿇은 채로 가슴팍을 긁는 좆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천천히 턱을 올렸다. 하아, 헉,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는 장 대표가 보였다.

“흐음, 하아….”

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시선이 쾌감을 짙게 묻힌 채, 올곧이 날 응시했다.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낀 나는 얼른 시선을 다시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장 대표가 내 머리채를 확 잡더니, 내 얼굴을 제게로 향하게 했다.

“아…!”

날렵한 각도로 떨어지는 뺨이 씰룩거리더니, 그의 보기 좋은 입술 사이로 은색 실이 떨어졌다. 난 무방비한 상태로 그가 뱉은 침을 얼굴에 맞아야 했다.

장 대표가 다시 한번 타액을 내뱉었다. 투욱, 이번엔 눈에 직격타로 맞았다. 시야를 가리는 하얗고 끈적한 타액에 눈살이 절로 확, 찌푸려졌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데, 장 대표에게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눈을 가늘게 치떴다.

그가 뭐가 웃긴 지 낮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눈 꼬리가 접히고, 매번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이따금씩 한쪽만 비틀리는 게 전부였던 입매는 제법 부드럽게 휘어졌다.

“…….”

돌연 목덜미에 비죽 소름이 돋아났다. 이기죽거릴 줄이나 아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도 즐거울 땐 소리 내어 웃을 줄 아는 인간이란 사실에 불현듯 소름 끼쳤다.

…미친 새끼. 속으로 그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 남을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변태 새끼, 이상 성욕자, 도착증 환자, 사이코패스 새끼.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속눈썹 끝에 대롱대롱 달려 있던 침방울이 이번엔 턱으로 툭 옮겨 갔다. 장 대표의 어둑한 두 눈이 자신이 뱉어 놓은 침의 궤적을 조용히 추적했다. 이내 타액은 내 맨다리 위로 투욱, 떨어졌다. 종잇장처럼 메마른 눈으로 번들거리는 허벅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장 대표가 내 턱을 쥔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내게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꼴이 왜 이렇게 더러워졌어요.”

지금 내 얼굴에 묻어 있는 거라곤 장 대표의 정액, 타액이 전부였다. 만약에, 만약 내가 이 방에서 칼로 배를 가르고 죽는다면 어떨까. 자신의 흔적을 내 몸에 듬뿍 남겨 놓은 장 대표가 가장 먼저 용의자로 내몰리겠지. 생각해 보니 퍽,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그나마 봐 줄 만한 게 얼굴뿐인데.”

그에게 붙잡혀 있는 턱을 뒤로 내빼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씻고 오겠습니다.”

장 대표는 웬일로 내 턱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그의 앞에서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켰다. 같은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던 탓인지, 발목이 시큰거리며 저렸다. 저릿저릿한 오른 다릴 목발 삼아 휘청대며 네 벽이 불투명한 유리로 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타일 위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상단에 꽂혀 있는 샤워기에서 쏴아, 물이 쏟아져 나왔다. 장 대표가 일반 사람들보다 체온이 조금 높은 탓일까, 물의 온도가 조금 낮았다. 물줄기를 몸에 그대로 맞으며,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데.

돌연 주변에서 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이 걷히는 소리와도 유사했다. 감고 있던 눈을 떠 주변을 둘러봤다. 불투명하던 샤워실의 유리들이 그새 투명해져 있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장 대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천천히 옆에 내려놓았다. 오직 VIP 호텔에만 비치되어 있는 저 리모컨은 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가 저 리모컨으로 벽을 투명하게 만든 듯했다.

“…….”

장 대표는 소파에 몸을 깊게 묻고 날 관망했다. 그는 언뜻 보면 검은 가죽 소파와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큰 소파를 자신의 뒷배경으로 삼은 장 대표는 영화나 미술품 따위를 구경하는 관람객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입술을 움직여 발음해 봤다. 메마른 입 안에서 서걱거리는 혀가 굴렀다. 관음증 환자. 한번 시선을 의식하자, 몸 곳곳에 닿아 오는 그의 눈길이 아플 만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 대표의 집요한 시선이 손목이며, 발목이며 가리지 않고 붙들어 왔다. 장 대표에게서 몸을 돌리자니 엉덩이 부근이 그에게 그대로 노출됐고, 그렇다고 그를 마주 보고 있자니 사타구니 쪽이 문제였다.

나는 결국 옆으로 서는 것을 택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그의 시선 따윈 느껴지지 않는 척,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수도꼭지를 끄고 선반으로 손을 내뻗었다. 원래 비누만으로 샤워하던 나로선 당최 뭐라 적혀 있는지 알 수 없는 통들이 가득했다. 그중 아무거나 집어 들어 손에 듬뿍 짠 뒤 몸을 문질렀다.

장 대표가 제 좆을 비벼 놓은 명치 부근과 가슴께가 쓰라렸다. 원래 납작하게 누워 있던 유두는 요 근래 그에게 길들어 조그마한 자극에도 크게 몸을 부풀리곤 했다. 구멍 쪽도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가 불친절하게 쑤셔 놓은 구멍이 뒤늦게 쓰라림을 토로했다.

“…….”

대리석 바닥 위로 드리워지고 있던 장 대표의 커다란 그림자가 일순 몸을 길게 뻗었다. 그가 소파에서 일어난 거였다. 그에 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190에 달하는 거구이다 보니, 아주 작은 움직임만 보여도 쉬이 이목을 잡아 끌었다.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었던 그는, 내가 벗어 놓은 속옷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속옷으로 제 좆을 감싸 샤워하는 날 바라보면서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딴 손으론 제 좆을 문질렀다. 그의 정장 바지에 빗금처럼 주름이 잡혔다. 허벅지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는 듯했다.

난 최대한 느릿느릿 샤워를 했다. 이곳에서 나가 그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이도 싫었다. 이 샤워 부스가 꼭 그에게서 나를 지켜 주고 있는 방패인 것만 같았다.

장 대표는 기어코 내 속옷에 대고 한 발을 더 뽑아냈다. 미친놈,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그는 제 손을 내 옷에 슥슥 문질러 닦고는, 그걸 걸레짝마냥 휙 바닥으로 내던졌다.

광대 부근을 열감으로 붉힌 장 대표가 입 모양으로 명령했다. 나와, 라고. 그리 말하는 그의 눈썹 한쪽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슬슬 성이 나려고 하는 듯했다. 그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은 남자였다.

“…….”

타일 벽 한쪽에 걸려 있는 꺼먼 샤워 가운을 몸에 걸쳤다. 장 대표의 몸에 맞춘 것인지, 내게는 품이 컸다. 팔 길이도 상당히 길었다. 사서 입는 옷마다 약간 길이가 짧아 손목과 발목을 드러내야 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난 큰 가운으로 몸에 칭칭 휘감은 채로 그가 있는 소파 쪽으로 어색하게 다가갔다.

자위를 마친 남자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느른한 사정의 감각을 느끼며 증기 기관차처럼 하얀 연기를 연신 내뿜는 장 대표의 입술을 응시했다. 남자가 후우, 길게 연기를 뿜으며 물었다.

“피워 보고 싶어요?”

“…피워 본 적 없습니다.”

장 대표가 낮추고 있던 상체를 세우더니, 소파 헤드를 팔로 감쌌다. 장 대표의 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이어진 근육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가 웃는 낯짝으로 내게 지껄였다.

“한 모금 줘 볼 테니까,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와 봐요.”

어서, 라고 덧붙이며 그가 자신의 허벅지를 눈짓했다. …당연히 거부하고 싶었다. 난 주인의 무릎 위에 앉아 애정을 갈구하는 애완견 따위가 아니었다. 가운의 허벅지 부근을 꽉 움켜쥐고 있는데, 장 대표가 작살로 꿰뚫을 듯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가 칼칼해진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올라와 보라니까요.”

그건 명백히 권유를 가장하고 있는 명령이었다. 장 대표는 존댓말도 상스러운 욕처럼 내뱉을 줄 아는 남자였다. 속으로 체념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 망설였다가는, 그는 내 손목을 잡고 제 품으로 날 억지로라도 끌어당길 거였다.

그의 허벅지를 둔부로 깔고 앉았다. 남자의 너른 품은 날 거뜬히 흡수했다. 그의 거대한 체구는 180에 웃도는 날 그의 손에 붙들린 장난감처럼 느껴지게 했다.

뻣뻣하게 그의 위에 올라탄 난 TV의 불 꺼진 화면을 주시했다.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창백한 남자가 날 바라봐 왔다. 같은 남자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퍽 한심해 보였다.

“자.”

장 대표가 후우, 연기를 뿜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 입술로 가져왔다. 필터를 잇새로 어색하게 물었다. 그가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빨아, 라고. 난 티 나지 않게 표정을 굳혔다. 빨아. 그가 발음하는 그 단어의 어감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들숨을 훅 빨아들였다. 담배의 매캐한 연기가 매운 음식이 역류하듯, 코를 치고 위로 올라왔다. 켁, 콜록. 목을 잡고 숨을 힘겹게 내뱉었다. 남자는 한심하기 짝이 없단 얼굴로 쯧쯔, 혀를 찼다.

“좆도 못 빨고, 담배도 못 빨고.”

발작하는 사람처럼 뱉어 내던 기침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일 때쯤, 대표가 내 입술 앞으로 새 담배를 붙여 왔다

“폐에 숨을 담아 놓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내보이다,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필터를 쑤욱 빨기엔 성공했으나, 그 쓴맛을 견디지 못해 금방 공중으로 연기를 흩뿌렸다.

혀끝에 씁쓰름한 맛이 느껴졌다. 떨떠름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장 대표가 라이터 휠을 드르륵 돌리며 내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남긴 울혈들이 막 붓기 시작했는지, 손끝이 스치는 곳마다 쓰라림이 느껴졌다.

그가 어느 부분을 압력을 주고 눌러 왔다. 그새 멍이 들었는지, 고통이 꽤 컸다. 아아,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목을 움츠리자, 가운 틈이 조금 벌어졌다. 장 대표는 그 틈을 노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탱탱하게 부을 대로 부어 있는 젖꼭지를 주시하던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창놈 새끼.”

가운 안으로 그의 뜨거운 손이 침범해 왔다. 그는 거침없이 내 몸을 겁탈하며, 내 몸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화대를 지급했으니, 내 몸뚱어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당연하다는 듯 구는 그에게 난 완전히 몸을 내놓았다.

필터를 다시 한 모금 빨았다. 시큼털털한 연기가 입 안에서 공중제비를 돌더니, 이내 작게 모은 입술 새로 후우, 빠져나갔다. 장 대표가 목뒤에 코를 묻어 왔다. 후우, 하아. 그가 내뱉는 거친 숨에 소름이 끼쳤다.

씻고 오라더니. 결국 이거였나.

난 잘 다듬어진 재료처럼 그의 손길 아래에 놓여, 요리 당했다. 그는 풀어 놓은 구멍에 제 좆을 묻고는 허릴 움직였다. 여느 때처럼 제 성욕만을 채우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는 거친 행위였다. 내 하체는 그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내 밋밋한 가슴은 그의 손에서 풍만한 유방처럼 비틀렸다.

“…대표님.”

장 대표의 음심으로 탁해진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살살, 허윽, 살살 해 주세요, 아파요.”

장 대표는 내 말에 불붙은 경주마처럼 되레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었다. 천장이 어지러이 비틀렸다. 머릴 복잡하게 채우고 있던 잡생각들이 재빠르게 뒤로 달아났다. 그와 있는 이곳엔 오로지 쾌감과 고통만이 존재했다.

이리저리 뒤흔들리고 있는 손을 입으로 가져와 담배를 빨았다. 미숙하기 짝이 없는 솜씨로 빚어낸 연기가 시야를 가릴 만큼 부풀어 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

문득 눈이 부셨다.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던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커튼에 부딪혀 부스러진 햇살이 얼굴을 어스름하게 밝히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침대 옆 협탁 위엔 장 대표가 놓고 간 화대가 놓여 있었다. 오늘은 지폐뿐만 아니라, 담배 세 개비와 지포 라이터도 놓여 있었다. 시트로 벌거벗은 상체를 감싸고 일어나, 그것들에 손을 내뻗었다.

처음엔 이따위 걸 왜 사람들은 그렇게 안달을 하면서까지 피우려는 걸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맛을 봤다가 마지막 개비부턴 점점 씁쓰름한 목 넘김을 좋아하게 됐다.

담배 쩐 내가 나는 몸을 옷으로 휘감고, 편의점에 내려갔다. ATM 기계 앞에 서서 삼촌이 보낸 계좌로 돈을 부쳤다.

입맛은 없었다. 처음 보는 편의점 알바생 뒤로 늘어서 있는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장 대표가 피우던 건 뭐더라, 두 눈으로 진열대를 훑어 내렸다. 그러다 그가 즐겨 피우는 브랜드의 담배를 발견했다. 역시나 값이 비쌌다.

그것 대신에 이름을 몇 번 들은 적 있는 담배명을 알바생에게 말하며 오천 원권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뫼비우스 하나 주세요.”

알바생이 후드 집업으로 가려 놓은 내 얼굴을 유심히 뜯어봤다.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난 그의 눈길을 이리저리 피했다. 몸 구석구석에 장 대표가 남겨 놓은 흔적을 꼭 그가 눈치챌 것만 같았다.

원래 있던 놈이라면 종종 담배 심부름을 하러 왔던 내 얼굴을 단박에 알아봤을 텐데. 초짜라 이곳의 생리를 잘 모르는 것 같은 알바생이 이내 아무리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내게 신분증을 요구해 왔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한 번만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신분증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위조 신분증은 장 대표가 담배 빵을 냈고, 원래 내 건…. 폐기 처분한 지 오래였다. 굳이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난, 알바생에게서 다시 현금을 돌려받으려고 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여자 하나가 끼어든 건.

“뫼비우스랑 말보루 하나 주세요.”

이혜원이 내 앞으로 끼어들더니, 알바생이 건넨 지폐 한 장을 내게 떠넘기곤 카드를 그에게 내밀었다. 담배 두 갑을 모두 계산한 이혜원이 불쑥 내게 영문으로 뫼비우스라 적힌 담배를 내밀었다. 괜찮다고 몇 차례나 말했지만, 이혜원은 “이건 뒷맛이 떫어서 별로예요.”라고 말하며 흡연실의 문을 열고 쏘옥 들어갔다.

흡연실 의자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이혜원이 제 품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내게 물어 왔다.

“혹시 라이터 있으세요?”

“……”

품에서 장 대표의 지포 라이터를 꺼내 이혜원에게 건넸다. 지포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던 이혜원은 서툴게 그걸 틱틱, 만졌다. 그녀로선 처음 만져 보는 형식의 라이터인 듯했다.

그녀에게서 라이터를 가져와, 장 대표가 했던 것처럼 뚜껑을 홱, 뒤집어 깠다. 불이 화르륵 소릴 내며 매섭게 몸을 키웠다.

담배의 껍질을 까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필터를 주욱, 주욱 빨던 날 보던 이혜원이 불쑥 질문을 던져 왔다.

“원래 안 피우시던 분이죠?”

“……”

“…저도 여기 와서 배웠는데.”

이혜원이 재를 떨어내며 웃었다. 담배를 피우며 픽 웃는 앳된 얼굴이 얼핏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난 조용히 필터를 입에 물었다.

***

늦게까지 침대 위를 뒹굴어 다녔다. 구석에 쌓여 있는 집 먼지처럼 침대 한구석에서 몸을 말고 있다가, 문득 담배의 시큼한 목 넘김을 상기해 냈다. 장 대표가 주고 간 지포 라이터를 손에 쥐고 의미 없이 칙, 칙, 휠을 손톱으로 긁어 불을 켰다.

허기가 졌다. 음식물 생각보단 텅 빈 배 안을 시큼한 담배 연기로 채우고 싶었다.

지폐 몇 장을 챙겨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알바생은 아예 바뀐 모양인지, 생판 모르는 남자가 프런트를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그의 앞에 직원증을 내밀어 봤다.

“…이거는 지금 사진도 없고, 주민 번호도 안 적혀 있어서요.”

이번엔 사진이 박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 당했다.

“…….”

별수 없이 직원증을 돌려받고 빵 쪼가릴 사와 테이블 한쪽에 앉는데, 편의점으로 이혜원이 들어왔다.

이렇게 이혜원과 종종 맞닥뜨렸다. 내 행동반경이라고 해 봤자 호텔과 편의점을 오가는 게 전부였는데, 이혜원은 그중 하나인 편의점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딴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쉽게도 이 골프장 통틀어 편의점이라곤 이곳 딱 하나였다.

이혜원은 언제라도 날 발견하면 기쁜 기색으로 달려와 말을 붙여 댔다. 자신은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상경해 대학교를 다녔지만, 학비가 쪼들려 이곳에 왔다고 했다. 심드렁한 날 앞에 두고도 이혜원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나불거렸다. 꼭 하루 종일 다른 이와 대화 따윈 나눠 보지 못한 사람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이혜원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이혜원이 같은 브랜드의 빵을 제 손에 들고 내게 흔들어 보였다.

“이거 오늘 처음 먹어 보는데 달달하니 맛있는 것 같아요.”

“…네.”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대충 대답한 뒤, 빵 쪼가릴 입에 물었다. 누가 봐도 이 대화에 관심 없단 티를 줄줄 내고 있는데, 불행히도 여잔 눈치가 없었다.

“요즘 사무실에서 제 스케줄 많이 잡아 놔서 거의 매일 홀 도는 것 같아요.”

여자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소릴 내더니 목소릴 낮췄다.

“저 어제 뉴스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랑 홀 돌았어요.”

이 골프장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위 몇 프로만 이 골프장의 회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정계, 재계, 관계,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한 데 모이는 교차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여자가 입을 손으로 가리더니 혼자 쿡쿡 웃었다.

“그 사람 헛스윙 엄청 날리더라고요.”

그 흔한 추임새 하나 넣어 주지 않고 빵만 소리 없이 우적거렸다. 오늘따라 빵에선 종이 씹는 맛이 났다.

“근데 왜 요즘 스케줄 안 들어가세요?”

“…….”

“장 대표님 스케줄만 잡혀 있으시던데.”

여자의 입에서 나온 장 대표란 단어에, 순간 손끝이 움찔거렸다. 여자는 입 안에 빵을 한가득 물고 우물거렸다. 여자 쪽을 곁눈질했다. 이혜원이 이다음에 뭐라 말할지 알 수 없으니, 괜히 긴장이 됐다.

“그분 좀 무섭지 않아요?”

좀 무섭지 않냐고? 이혜원은 한참 모르고 있었다. 장 대표는 좀 무서운 놈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제 심기에 거슬리면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멱살을 잡아채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는 놈이었다.

이혜원이 주변을 한 번 살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눈치챈 여자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저 김 사장님 룸 정리하려고 들어갔었는데, 거기에 장 대표님도 같이 있으셨거든요. 그때 그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뵀었어요.”

먹고 있던 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입 안에 있는 음식물을 씹는 것도 그만두었다. 뭔갈 입에 담고 있을 때 장 대표의 얘길 듣는 건 끔찍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그런 눈을 삼백안이라고 부르던가?”

이혜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뭔가 소름 돋아서….”

“…….”

“그러니까, 김 사장님 눈빛도 좀 불쾌하고 싫은데.”

이혜원은 눈동자를 빠르게 도르륵 굴렸다. 여자는 말하는 중간, 중간 주변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누군가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었겠지. 나 또한 그랬으니까. 장 대표가 얼마나 무서운 남자인지, 밤마다 날 붙잡고 무슨 짓거릴 해 대는지, 누가 좀 알아줬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그분 눈은 진짜 닭살이 비죽 돋아서…. 물론 제 쪽에 눈길을 준다거나 하시진 않았지만요. 그래도….”

“저기.”

“…….”

“죄송한데 불편합니다.”

“아….”

이혜원이 나지막한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곤 곧바로 사과해 왔다.

“죄송해요.”

테이블 위에 있던 빵 쪼가리와 비닐을 쓸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릴 떠났다. 뒤에 남은 여자가 내 등을 응시해 오는 게 느껴졌다.

이 골프장 직원들에겐 이미 어울리는 무리가 모두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폐쇄적인 성향이 강해, 새로운 누군가를 쉬이 받아들이는 법도 없었다. 그러니 저 여자도 혼자 다니는 내게 말을 붙여 온 것일 게 분명했다. 외로운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금방 알아보는 법이니까.

얼른 학교로 돌아갈 시즌이 되어 여자가 본인이 살던 곳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이곳엔 일말의 정도 붙이지 말고, 말이다.

***

프런트에 있는 직원에게 얼굴이 박혀 있는 직원증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직원이 그건 사무실 쪽에 문의해 봐야 한다고 안내했다.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고릴 잡고 당기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안쪽으로 열렸다. 그 문으로 이진석이 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진석이 날 보며 반가운 체를 했다.

“박진경 고객님이 수원 씨 얼굴에 흉 졌다고 해서 걱정했었어요. 다 나아서 다행이에요.”

이진석은 혹여나 상품에 흠집 날까 염려하고 있었단 말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그가 빙그레 웃더니 가벼이 질문을 던져 왔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예고 없이 그와 맞부딪혀 버리는 바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발끝을 적셨다.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뭐, 뭐 받을 게 있어서요.”

“받을 거?”

이진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게 뭐냐고 물어 왔다. 그에게 구태여 말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되레 숨기려 들면 오히려 수상해 보일 거였다. 그에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말을 뱉었다.

“신분증이 없어져서요.”

“아아, 신분증이.”

이진석이 어조 없는 말투로 뒷말을 되풀이했다.

“얼굴이 있는 직원증을 받을 수 있냐고 프런트에 말해 봤더니, 사무실 가서 받으라 하더라구요.”

“뭐 하러 그렇게 귀찮게 그래요.”

그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웃었다. 미끈한 그의 이마가 번들거렸다.

“장 대표님한테 말씀드리면 될 것 갖다가.”

“…네?”

또 그놈의 장 대표.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세 글자를 자주 듣는 건지. 재수 없어 하던 찰나, 이진석이 말을 덧붙였다.

“근사하게 하나 파 주실 텐데.”

“…그게 무슨.”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선 그를 응시했다. 이진석이 쿡쿡 웃었다.

“서수원 씨 민증 사짜가 만든 거라는 거, 그거 좀만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았을걸요?”

가벼이 흘리는 말투였지만, 다분히 확신에 차 있는 목소리였다. 난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가 확인해 보자 하면 금방 들통날 게 뻔했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이진석을 봤을 때부터 뭔가 불안하다, 싶었다. 난 최대한 불안한 티를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불안하게 떨리는 초점만은 숨기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얼른 그가 문 앞에서 몸을 비켜주길 바랐다. 아님 내가 떠나는 게 나을지도.

“…….”

…그게 그렇게나 티가 나는 신분증이었던 걸까. 만드는 새끼가 본인은 경력자라고 뻗대는 통에 시가보다 이만 원이나 더 냈어야 했는데. 뒤늦게 치미는 분노감에 뺨 안쪽의 피부를 꽉 씹고 있는데.

“부탁하기 어려운 거면 내가 하나 맡아 줄까요?”

“…아.”

“아는 사람 중에 괜찮게 하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뭐라 답변을 주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서 있는 곳만 땅으로 꺼져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민 등록증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어디서든 써먹을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근데 왜 신분증을 위조해서 쓰는 거냐 물어보면 둘러댈 핑계가 없었다.

눈치 빠른 이진석은 이런 내 심경도 정확히 간파했다.

“신분증 왜 위조했냐고 추궁할까 봐 그래요?”

이진석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여기에선 진짜 제 이름 달고 다니는 사람이 더 드물걸요.”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이진석은 그 특유의 빙글거리는 말투로,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말을 읊조렸다.

“고객들만 본인 신분 노출될까 봐 신경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곤 그가 목소릴 낮춰,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 내며 덧붙였다.

“생각해 봐요, 매음굴에서 실명 사용하는 거 봤어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진석은 다시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풀며 웃었다. 역시나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꼭 여우 같았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말이다. 조용히 말을 뇌까렸다.

“…그럼.”

“…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진석은 내 말에 의외라는 듯, 눈을 약간 크게 떴다가 이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왔다.

“그래요, 그럼. 계좌 알려 줄 테니까 그쪽으로 돈 쏴 줘요.”

이진석이 옆을 스쳐 자릴 벗어났다. 휘적휘적, 긴 다릴 뻗어 나가는 그의 등을 응시했다.

면밀히 따지자면, 그를 신뢰하는 건 아니었다. 난 이곳에 있는 누구든 신뢰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결론 내렸을 뿐이었다.

그가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를 다시 한번 입 안에서 발음해 봤다. 매음굴. 그래, 추접하고 난잡한 이곳은 매음굴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이진석이 소개해 준 놈과 연락이 닿았다. 그가 쪽지에 써서 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신분증에 써넣을 이름과 주소를 알려 줬다.

- 이름은 서수원, 나이는….

놈은 내 말을 혼잣말처럼 되풀이했다. 귀에 대고 있는 수화기로 언뜻 볼펜 소리가 났다. 어딘가에 받아 적고 있는 것 같던 그는 곧 내게 이틀 정도가 소요될 거라 지껄였다. 수화기에 대고 비용은 얼마를 보내 주면 되냐고 물었다. 놈은 이진석이 이미 값을 치렀다고 말했다. 그러곤 신분증이 완성되면 이진석 편으로 넘기겠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었다.

눈살을 약간 찌푸린 채로 고민에 빠졌다.

“…….”

이진석이 나 대신 값을 치렀다고? 대체 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는 없는 법인데. 찝찝함을 느끼고 있는 대신,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라운지로 나아갔다. 이진석에게 건넬 대가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이다.

이진석은 홀 한쪽에 서서 그를 찾아온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는 반드러운 얼굴로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말솜씨로 사람을 굴리는 게 특징인 그는 당연히 이곳의 탑이라 부를 만했다.

넋을 잃고 이진석을 바라보다, 그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때야 정신을 퍼뜩 차렸다. 난 약간 빠른 속도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이진석을 돌려 세워야 했지만, 뭐라 그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뭇거리며 그를 불렀다.

“…저, 저기.”

대상이 불분명한 호칭에 이진석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단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난 한참을 머뭇거리다, 좀 전보다 더 크게 이진석을 불렀다.

“저기.”

이진석이 그제야 내 쪽을 돌아봤다.

“어, 수원 씨.”

놀란 이진석은 두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그는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조금 놀란 듯 해 보였다. 그에 나는 변명처럼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뭐라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다른 친구들처럼 그냥 형이라 부르면 될 텐데요.”

가벼이 웃어 보인 그는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연락해 봤어요?”

“…아, 네. 덕분에요.”

머쓱함에 애꿎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매만지다, 더듬더듬 본론을 꺼냈다.

“저 대신 값을 치러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이진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 끝을 들썩여 보았다.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아닙니다, 그래도 대가는 정당히 치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봉투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진석이 그 봉투를 흘깃하다, 약간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겐 정말 푼돈일 거였다. 안 받아도 그만, 받아도 그만인. 그러나 내겐 마음의 빚으로 남을 거였다.

“정말 괜찮은데.”

그렇게 지껄이던 그는 불현듯 매끈한 선을 이루는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내게 머물러 있던 그의 시선이 내 머리 위에 있는 위층으로 가닿았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 위로 아주 잠깐 새 묘한 빛이 떠올랐다.

이진석이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내 뒤쪽에 대고 묵례를 해 보였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갤 숙여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진짜 괜찮으니까, 말이나 좀 잘 전해 줘요.”

그가 내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곤 다시 등을 돌려 빠르게 제 갈 길을 갔다. 늘씬한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갤 홱 돌렸다. 이진석의 시선이 닿았던 곳을 눈에 담았다.

누군가를 발견한 난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봉투를 붙들고 있는 손을 황급히, 그러나 요란하지는 않게 등 뒤로 숨긴다.

장 대표가 카페테리아에 마련된 파라솔 밑에 앉아 날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입술을 놀리고 있던 김미란이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이다가, 장 대표의 시선을 따라 내게로 눈길을 돌려 왔다. 날 발견한 김미란이 내 쪽으로 손을 가벼이 흔들어 왔다. 난 얼른 허릴 꺾어 인사하곤, 도망치듯 자릴 벗어났다.

***

손으로 날짜를 하나씩 꼽으며, 얼른 신분증이 손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장 대표로부터 호출이 왔다. 하우스 캐디3)들을 두고, 장 대표는 꼭 그의 모든 스케줄에 내가 함께해야 하는 놈처럼 굴었다.

느지막이 몸을 씻고 유니폼을 챙겨 입은 후, 장 대표가 있을 실외 연습장으로 향해 나아갔다. 타석 수가 30개가 넘는 넓은 내부에서도 남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워낙 눈에 띄었다. 길쭉한 몸에, 문짝처럼 넓은 광배근, 힘을 줄 때마다 두께를 더하는 팔뚝은 가히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12번 석에 서 있던 장 대표의 뒤로 다가가 잠자코 그의 부름을 기다렸다. 그가 골프공을 힘껏 때리자, 하얀 공이 길쭉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초록색 그물망을 두드렸다.

한참 스윙을 휘두르던 그가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골프공 바스켓을 턱짓했다.

“건드릴 마음 들게끔 예쁘게 닦아 놔요.”

그냥 닦아 놓으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저자는 그런 단순한 말을 저렇게까지 상스럽게 하는 걸까. 오늘도 변함없이 호색한 같은 그에게 조용히 뇌까렸다.

“…골프공 말씀하시는 거라면 자동으로 세척해 주는 기계가 있습니다.”

어렵사리 꺼내놓은 말에 장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픽, 비소했다.

“세 개는 너무 적었죠?”

그의 말에 일순 구멍 안이 움찔거렸다. 잠시 눈앞을 스쳐 간 장면에 목덜미가 화르륵 붉게 달아올랐다. 아랫입술을 윗니로 꽉 물자, 장 대표가 고상한 말씨로 빈정댔다.

“기분 좆같아 보이네요.”

시선을 내리깐 채로 그가 우아하게 내뱉는 언어 쓰레기들을 고스란히 얼굴에 맞았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안 웃어?”

네가 감히? 그런 어조였다. 고압적이다 못해 듣는 사람을 압사시킬 것만 같은 말투. 그의 눈썹 한쪽이 삐뚜름하게 추켜 올라갔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가 오늘따라 싸늘히 굳어 있었다. 지금의 그는 기분이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난 군말 없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골프공 바스켓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골프채 헤드에 맞고 잔디밭을 굴러 더러워진 골프공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손을 내뻗어 개중 하나를 집어 올렸다. 깨끗한 타월로 골프공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다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불현듯 장 대표가 왜 이딴 일을 시킨 건지 알 것만 같았다. 손가락 끝에 닿아 오는 차가운 감각. 작은 돌기들.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이 작은 공이 구멍을 파고 들어와선 내벽을 짓누르다 못해, 안에서 휙휙 돌아갔었다. 그 생경한 느낌은 처음엔 불쾌감을 그리고 종내엔 새로운 종류의 쾌감을 내게 선사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온몸이 활활 불타올라 이대로 가다간 연기로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던 그때. 그때를 상기하는 지금은 온몸의 피가 오히려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

장 대표는 들고 있던 채를 골프 백에 찔러 넣고, 장갑을 벗으며 간이 의자로 돌아왔다. 그는 간이 의자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뭔가를 들어 올려 그걸 들여다보았다. 그의 손에 붙들려 있는 건 누르스름한 카드였다. 공을 손에 쥔 채로 그를 곁눈질했다.

장 대표는 고갤 약간 기울인 채로 카드의 모서리로 제 허벅지를 툭, 툭 때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불쑥 내게 질문을 던져 왔다.

“신분증은 어디에다 쓰려고 했습니까.”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난 화들짝 놀라 입을 약간 아, 하고 벌렸다.

“그걸 어떻게.”

“이진석이 직접 나한테 갖다주던데요.”

신분증에 담배 빵을 내놓는 바람에 날 곤란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가 긴 다리를 꼬며, 눈썹을 가벼이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그러곤 대답을 재촉했다.

“어디에 쓰려고 손수 부탁까지 하셨을까.”

“…맥주를 사려고 했습니다.”

장 대표가 담뱃갑을 들어 올리더니, 제 입술 사이에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얇고 하얀 막대를 보자마자, 목을 괴롭히던 씁쓸함이 떠올라 목울대가 절로 꿀꺽, 울렸다.

벽에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는 금연 구역이란 네 글자가 그의 눈에도 분명 보일 텐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태연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내 이름 대고 룸서비스 시키지 않고요?”

“…….”

“그 정도로 빡통은 아닐 텐데.”

빡통. 남창으로 불리다 못해 이젠 빈 깡통 취급이었다. 그의 손에 붙들려 점점 크기를 줄여 나가고 있는 담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요.”

장 대표는 음? 소릴 내며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눈썹 한쪽을 추켜올렸다. 그러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채로 내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애완견을 부를 때나 하는 손짓을 사용했다.

들고 있던 골프공을 도로 바스켓에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제 앞에 서 있는 내 얼굴에 대고 연기를 후우욱, 내뱉었다. 그의 널따란 손이 내 다리 사이를 슬금슬금 파고 들어왔다. 주변의 이목이 신경 쓰여 몸을 약간 뒤로 물리자, 그가 단박에 둔부를 움켜 잡아 왔다.

“확실히 맛있긴 해요.

그가 되물었다.

“그렇죠?”

뭐가 맛있다고 하는 걸까. 대상이 불분명해 뭐라 답하지 못하고, 그의 두 눈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가 한쪽 입꼬릴 비틀었다. 웃는 그의 앞에서 난 좌절했다. 예상대로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게 맞는 듯했다.

“그보다….”

“…….”

“신분증 없으면 담배를 못 사요?”

그가 다 피운 담배의 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신분증에 대고 치이익, 눌렀다. 얼굴에 또 담배 빵이 났다. 시커멓게 타들어 간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씹새끼.

장 대표가 날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돌연 헛소리를 지껄였다.

“한쪽에만 보조개가 있네.”

그가 엄지로 내 뺨 중간을 꽉 눌러 왔다. 그의 손길에 눌려 어금니가 뿌리째 잇몸에서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신분증 새로 만들어 줘요?”

“…….”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며 대답을 강요했다. 난 바들거리고 떨며 애써 답했다.

“…네.”

장 대표의 손아귀에서 한결 힘이 빠져나갔다. 그가 내 뺨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속닥였다.

“그럼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죠.”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신분증 두 개를 박살 내 놓은 남자가 태연하고도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하긴, 서수원 씨가 도움 요청할 데가 나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

“안 그래요?”

“…맞습니다.”

그가 내 입술 새로 제 엄지를 물려 왔다.

“이름은 뭐로 적어 줘요?”

그토록 바라던 담배 대신, 그의 엄지를 잇새에 문 채로 불분명한 발음으로 답했다.

“서수원으로요.”

“나이는.”

“올해 스물세 살….”

“주소지는 뭐로 박아 줘요.”

“경기도 XX시, XX동.”

그가 내 허릴 가벼이 감싸고 제게로 날 당겼다. 난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얼른 주변을 살폈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고, 그에 연습장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서 있던 남자가 장 대표와 내 쪽을 흘깃해 왔다. 김 사장이었다. 그가 옆에 놓여 있는 술잔으로 제 목을 천천히 축였다.

잠깐 한눈팔고 있던 사이, 장 대표가 그런 날 혼내기라도 하듯 바지 위로 구멍을 꾹 눌러 왔다.

“이 구멍은 뭐로 박아 주고요.”

난 그에게 붙들린 채로 제자리에서 퍼뜩, 공처럼 튀어 올랐다.

“대표님, 쳐다봅니다.”

“누가.”

장 대표가 김 사장을 눈짓했다.

“저 새끼가?”

장 대표와 김 사장은 어제까지도 함께 라운딩을 돌았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상당히 복잡한 데다, 단어도 맥락상 어울리지 않게 쓰는 경우가 많아 느낌상 그들이 일반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언뜻 듣기론 김 사장은 장 대표의 클라이언트였다. 그것도 아주 큰 수익을 안겨다 주고 있는. 그럼에도 인성이 동네 개의 것보다 못한 장 대표는 제 고객에게 서슴지 않고 저 새끼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저 새끼한테 서수원 씨 내 허벅지 위에서 다리 벌리고 보지 치는 거 보여 줄까요?”

조용히 고개를 내둘렀다. 장 대표가 만족스럽다는 빛을 눈동자에 내비쳤다. 그가 늦은 밤처럼 이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담배가 그렇게 피우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

“호텔로 돌아가서 입에 하나 물려 주겠습니다.”

장 대표가 내 둔부를 넓은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뒤에도 하나 물려 주고.”

그의 말에 조용히 시선을 깔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알지 못했다. 뒤에도 하나 물려 준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장 대표의 두 눈이 검측측하게 가라앉았다. 당장이라도 내 위에 올라타 일을 치르고야 말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가 자신의 욕망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한시라도 바삐 골프 백을 챙겨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의자에 기대어 있는 골프 백에 손을 내뻗는데, 몸이 제멋대로 휙 뒤로 돌아갔다. 내 팔목을 잡아챈 장 대표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날 끌어 댔다. 난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가야만 했다.

내 손목을 단단히 붙들어 맨 장 대표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한 켠에 있는 계단을 올랐다. 억 소리 나게 비싼 골프 백을 뒤에 남겨 둔 채로 말이다.

검은 바지 안에 둘러싸인 그의 긴 다리가 멈춘 곳은 관제실 문 앞이었다. 장 대표가 문고릴 잡고 밀자, 문이 끼익 신음 소릴 내며 열렸다. 문틈 사이로 어둑한 관제실의 내부가 엿보였다. 장 대표의 명령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들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여기에서요?”

정말 여기에서 일을 치를 셈이냐, 물었다.

참을성이라곤 없는 안하무인인 데다가, 변태이기까지 한 그는 제 눈썹을 살풋 찌푸려 언짢은 기색을 표했다. 그가 내 팔뚝을 움켜잡더니, 관제실 안쪽으로 내 몸을 밀어 넣었다.

난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의자 등받이를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가슴팍 높이에 있는 창문으로 연습장의 드넓은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띄엄띄엄 타석을 차지하고 있는 고객들도 눈에 띄었다.

팅, 대포처럼 쏘아 올린 하얀 골프공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초록색 그물망에 맞았다. 넋을 놓고 그 장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곧 닥쳐올 미래를 예감하며, 눈을 꾹 내리감았다. 뚜벅뚜벅, 그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장 대표가 내 뒤에 달라붙어 내 가슴을 한 손으로 부여잡곤 목뒤에 제 코와 입술을 깊게 묻었다.

이미 울긋불긋 멍이 든 자릴 그가 입 안으로 흡착기처럼 빨아들였다.

“…아아!”

입 안에서 달뜬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몸은 이미 그가 주는 고통 어린 쾌감에 익숙해져, 금세 달아올랐다.

장 대표가 한 손으론 제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굵은 허벅지 위로 그의 큰 좆이 부피감을 자랑하며 부풀어 올랐다.

그가 내 뒤통수를 잡아다 제 허리춤 사이로 내 얼굴을 눌렀다. 그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벨트를 풀어 내렸다. 정적 속에서 철컹, 금속 소리가 들렸다.

그의 좆을 입으로 물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좆을 빨 동안 담배를 피워 댔다. 뺨이 움푹 패일 정도로 그의 걸 빨았다. 음모가 턱에 쓸려 오는데도, 개의치 않고 먹어 댔다.

검붉은 성기가 입 안에서 불끈거리며 힘줄을 돋웠다. 혀로 울퉁불퉁한 힘줄을 밀어 올리자, 장 대표가 신음을 뱉었다.

“…하아.”

그가 제 앞에 무릎을 꿇은 내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왔다. 그의 손이 거침없이 구멍 안을 헤집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내벽 안을 더듬었다. 물기 없이 메마른 내벽은 그의 손길을 억세게 뱉어 냈다.

내벽을 들쑤시는 그의 손가락에 잠시 신음을 내뱉다, 갓처럼 생긴 그의 귀두를 빨았다. 그는 둔부를 잡고 양손으로 벌렸다. 그러곤 안을 들여다봤다.

장 대표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 뒤로 가져왔다. 어둠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담뱃불을 보곤, 흠칫 놀라 몸을 말았다. 난 허리가 거의 반 접힌 자세로 그를 올려다봤다.

“대, 대표님.”

“움직이지 마요, 다치니까.”

“…불 떨어질 것 같아요.”

개의치 않고 구멍에 담배를 넣으려는 그의 팔뚝을 꽉 부여잡았다. 행동을 제지당한 그가 물었다. 왜요.

“내가 서수원 씨 몸에 담배 빵이라도 낼 것 같아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번이나 내 얼굴을 검게 태운 전적이 있는 그가 못 견디게 못 미더웠다. 장 대표는 겁을 집어먹은 내 얼굴을 보며 요요히 웃었다. 그는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이 좆같은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씹새끼, 웃는 얼굴에 침을 뱉어 주고 싶었다. 물론 분노는 속으로 다스려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의 앞에 놓여 비굴하게 몸을 떨고 있는 것뿐이니까.

“얌전히만 있으면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서수원 씨는 입 다물고 얼른 빨기나 합시다.”

장 대표가 내 뒤통수를 잡고 눌렀다. 그의 좆 뿌리가 목 안까지 잠겨 왔다. 그의 좆으로 목을 꽉 채운 채로 내 둔부를 잡아 벌리는 그의 손길을 느꼈다.

곧 장 대표의 손가락보다 가늘고 짧은 무언가가 구멍 안으로 꽂혀 들어왔다. 하얀 연기가 살랑거리며 여린 피부에 와 닿았다.

구멍이 벌름거리며 필터를 오물조물 씹었다. 장 대표가 낮게 탄식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뒤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뚝을 움켜잡았다.

“…대표님.”

장 대표의 차가운 음성이 귓가로 꽂혀 왔다.

“더럽게 보채 대네.”

잠자코 내 둔부 사이를 응시하던 그가 구멍 안에서 담배를 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여기 필터 씹어 먹은 거 보여요?”

그의 말대로 필터가 안쪽으로 우그러들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갤 숙이며 조용히 답했다.

“…네.”

쯧, 혀를 찬 장 대표가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는 성인 남자를 품에 안고 있음에도 태평하기만 한 표정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선반 위에 날 올려놓았다.

장 대표가 손끝으로 타들어 간 재를 툭툭 털어 내자, 담배는 확연히 길이가 짧아졌다. 장 대표가 그 단초를 내 구멍에 끼웠다. 난 겁에 질린 눈으로 둔부 사이에 끼어 있는 그걸 내려다보았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자, 구멍이 절로 벌름벌름거렸다. 장 대표의 느른히 웃고 있던 얼굴이 구멍 사이에서 피어나오는 연기에 삭제되었다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나타난 그의 얼굴엔 어둑한 그림자가 져 있었다. 음습해 보이는 얼굴에 난 눈을 내리깔며 유리창에 뺨을 댔다. 차가운 유리창 표면이 뺨을 식히는 게 내심 좋았다.

“…….”

그러다 일순 이상한 기분이 들어, 감고 있던 눈을 치떴다. 시선의 주인공은 아래층에 있던 김 사장이었다. 그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유리창은 제법 위에 달려, 그의 각도에서 보이는 거라곤 내 얼굴과 목이 전부였다. 심지어 발가벗은 하체와는 달리, 상체는 그대로 입고 있는 중이라 방심했다.

날 올려다보던 김 사장이 특유의 능글거리는 얼굴로 웃었다. 어스름한 곳에서 그의 하얀 치아들이 번뜩였다. 그는 마치 내가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저소했다.

난 어깨를 움츠렸다. 얼른 창문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데, 장 대표가 내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눌러 왔다. 등이 다시 차가운 창가에 붙었다.

“값으로는 뭘 줬어요?”

“…네?”

“값으론 뭘 줬냐고.”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는 그의 손을 떼어 내려 도리질을 하며 안간힘을 썼다.

“아무것도요.”

그러나 장 대표의 몸은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허벌 남창한테 몸을 대 줬어요?”

장 대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넌 그 새끼랑 붙어먹어도 밑에 깔릴 것 같은데.”

“…정말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아닙니다. 고장 난 오디오처럼 되풀이했다. 얼른 창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이가 쳐다보고 있단 사실을 깨닫자, 더 이상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대표님, 자릴 옮기고 싶습니다.”

“왜요.”

장 대표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쉬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기엔 아까 그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저 새끼한테 서수원 씨 내 허벅지 위에서 다리 벌리고 보지 치는 거 보여 줄까요?’

그는 실제로도 실행에 옮길 새끼였다. 짧은 찰나 머릴 굴리던 난 어쭙잖은 핑계를 댔다.

“창가라 그런지 춥습니다.”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지금 엄살 부리는 겁니까?”

시선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그는 고작 춥다는 이유로 하고 있던 행위를 멈춰 줄 남자가 아니었다. 구멍 안에서 쏘옥 빠져나갔다. 그가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하얀 시멘트 벽에 대고 지이익, 비볐다.

담뱃불을 끈 장 대표는 돌연 내게서 몸을 뒤로 물렸다. 몸 위로 드리워졌던 커다란 그림자가 사라졌다. 장 대표는 내게서 등을 돌려 한쪽에 놓인 철제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난 창가에서 내려와, 하체를 벗은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두 눈이 공중으로 드러난 내 하체로 와 닿았다. 더 이상 수치심도 들지 않았다.

장 대표가 그의 앞에선 내 사타구니에 손을 뻗어 왔다. 그의 손이 고간과 함께 음모를 추행했다.

“어느 성인이 이곳에 솜털이나 나 있습니까.”

결을 느껴 보는 듯, 그가 손끝으로 음모를 쓸었다,

“이러니 편의점에서 담배를 못 샀죠.”

“…….”

“풋내나 나고 말입니다.”

말없이 다가가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장 대표가 내 등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맡았습니까?”

무얼 맡았냐고 묻는 걸까. 의아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두 눈동자가 대형 고양잇과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그 새끼가 네 자지에 코를 묻었냐고.”

“아니, 아니요.”

“또 누가 여길 만졌습니까.”

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아니란 걸 믿어 줄는지. 그의 취조는 실로 끈질겼다. 마지막으로 체념 섞인 말을 뱉었다.

“없었습니다.”

흐음, 목을 울린 그는 이내 내 둔부를 잡아 들어 올려 내 몸을 자신에게 메다꽂았다.

“…흐으윽!”

난 그의 좆을 구멍에 꽂고 발작 난 사람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가 내게 더 깊숙이 삽입하기 위해 내 엉덩일 움켜잡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다릴 더 넓게 벌렸다.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허릴 움직였다.

“엉덩이 흔들어 봐요.”

그의 어깰 부여잡고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굵은 좆이 구멍 안으로 몸을 숨겼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흐읏, 하읏, 흥!”

“…후우, 어때.”

“아아, 아으읏!”

“귀두가 내장에 닿은 것 같아요?”

장 대표의 것이 뿌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숨이 턱, 막혔다. 공처럼 부풀어 올라 배가 당장이라도 팍, 터질 것 같았다. 장 대표가 구멍의 크기를 넓히려 천천히 휘젓다가, 이내 푹푹 안을 찔렀다.

점점 사정기가 몰려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장 대표는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았다. 그는 안을 퍽퍽 쑤시다가 내가 다릴 비비 꼬고 있음을 기민하게 눈치채곤, 내 좆을 잡아 요도를 엄지로 눌러 왔다.

“…헉, 누구 맘대로, 사정하려고, 합니까.”

“으응, 흐으응, 흐읏!”

“가고, 싶어요?”

“흑, …네.”

“가고 싶다고, 매달려 봐요.”

그의 어깨에 매달린 채로 흔들리다, 어느 한 부근을 콱 찔러 오는 좆에 자극당해 입까지 내 벌리고 멍청하게 침만 흘렸다.

뒤흔들리는 시야로 닫혀 있는 관제실의 문이 들어왔다.

“…가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써늘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닫힌 문 아래로 곁들어 오고 있는 빛 위로 그림자가 늘어졌다.

“…헉!.”

누군가 문밖에 서 있는 듯했다. 난 몸을 움츠린 채로 도망치기 위해 결합부에 박혀 있던 장 대표의 좆을 몸 안에서 반쯤 빼냈다.

장 대표는 아주 기민하게, 내가 잠시 딴 데 한눈판 걸 금세 눈치챘다. 그는 화가 난 듯 가슴팍을 씨근덕대다가, 날 철제 의자에 엎어 놓고 몰아세워 왔다. 끼익, 끼익, 그의 허리 짓에 밀린 의자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흣, 으, 으윽, 헉!”

새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멍에서 그의 좆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가, 다시 무서운 속도로 안에 쑤셔 박혔다.

“…주, 죽을, 것 같아요….”

꼿꼿이 선 채로 파들거리던 좆이 결국 움찔거리며 정액을 쏟아 냈다. 허연 정액들이 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움찔움찔 구멍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좆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내벽을 느끼며 그는 씨이발, 욕을 뱉었다. 사정을 위해 장 대표는 허리 짓에 스퍼트를 한층 더 올렸다.

곧 구멍에서 뜨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의자에 뺨을 댄 채로 팔을 늘어뜨렸다. 장 대표는 사정의 후희를 느끼며 남은 정액을 구멍 안에 모두 쏟아 냈다.

그가 좆의 뿌릴 잡더니 구멍에서 좆을 빼냈다. 힘껏 물고 있던 좆을 뱉어 낸 구멍이 바르르 떨렸다.

장 대표는 정액을 내 바지에 문질러 닦곤, 손바닥으로 머릴 쓸어 올려 이마 위로 흘러 내려온 머리칼을 정리했다. 철컹, 그가 벨트를 맸다.

“대표님….”

장 대표가 낮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물어 왔다.

“왜요.”

차마 밖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단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에게 손을 내뻗었다.

“담배….”

아직 안 주셨잖아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는 어이없다는 숨을 내뱉었다.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요?”

“…….”

“룸으로 돌아가 한 판 더 하려던 참이었는데.”

장 대표가 안쪽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내게 던졌다. 엎어져 있던 난 상체를 들어 올려 철제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의 정액이 울컥, 울컥 밖으로 쏟아졌다.

절망감에 잠시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가, 그가 건넨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장 대표의 허리 옆으로 보이는 문을 다시 응시했다. 빛 위로 드리워지던 그림자는 금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선을 장 대표에게로 옮겼다.

담배 피우는 날 응시하고 있던 장 대표의 두 눈과 마주쳤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그는, 돌연 내게로 상체를 낮추더니 제 혀로 내 뺨을 눌러 왔다.

뺨 위를 유영하던 혀는 마침내 보조개가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 남자는 뱀 같은 눈을 한 채로 뱀처럼 뾰족한 혀로 움푹 패여 있는 볼우물을 쿡쿡 쑤셔 왔다.

…그가 내 구멍에 대고 해 댔던 좆질처럼.

장 대표는 말 한마디를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룸으로 돌아가면 한 판 더 할 거라던 그는 실제로도 내가 묵고 있는 룸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두 판을 연속 달렸다.

그는 돼지 발정제를 맞은 말처럼 날뛰었다. 정액이 출렁출렁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구멍을 밤새도록 좆으로 들이받았다. 그의 전두엽엔 단 두 가지 명령어만 입력되어 있는 듯했다.

삽입 그리고 사정.

쑤셔지는 구멍 안에선 척척, 하는 물기 젖은 소리가 났다. 흐물흐물해진 구멍 덕분에 제법 수월하게 안을 드나들 수 있었던 장 대표가 돌연 구멍을 손으로 잡고 좌우로 벌렸다. 정액들이 후드득 쏟아져 나와 시트를 적셨다.

잘 고정되어 있던 머리는 그가 난폭하게 하체를 휘두르는 동안 흐트러져 그의 이마 위로 몇 가닥 흘러 내려왔다. 앞머리로 살짝 가려진 그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날 노려보았다.

“…왜 이렇게 질질 싸요.”

그러곤 남자가 눈매를 휘어 웃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치열이 드러났다.

“오줌 마려웠습니까?”

장 대표가 내 구멍 안에 손을 넣더니 내벽을 득득 긁어냈다. 배려심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손길이었다. 조심성 없이 내벽을 마구 헤집는 통에 그의 손톱에 긁힌 주름들이 열을 뒤틀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내장 깊숙한 곳까지 싸 뒀던 정액이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 시트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정액을 보며 장 대표가 기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이 뻑뻑해야 더 느낌이 잘 살 거 아닙니까. 서수원 씨나, 나나.”

“…아, 흑!”

장 대표가 다시 제 것을 묻어 왔다. 윤활제 역할을 해 주던 정액이 없자, 내벽이 한결 더 빠듯하게 그의 걸 받아들였다. 그 또한 퍽 고통스러운지, 이마에 진하게 인상을 썼다.

“…후우, 후.”

“으흣, 흥!”

그러곤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안을 밀어붙여 왔다.

참으로 지독한 남자였다. 그가 수월하게 허리 짓을 할 수 있도록 베개를 품 안에 안고 침대 위에 납작 엎드렸다. 장 대표의 손이 불쑥 나타나 내 배 아래에 있던 베개를 어디론가 휙 던져 버렸다.

난 베개 대신 시트를 한 움큼 손에 부여잡았다.

“음, 으흐, 흑!”

장 대표는 내게서 시트마저 빼앗아 갔다. 남자의 매정한 손길은 돌돌 뭉친 시트를 침대 밑으로 밀어 버렸다.

빈 침대 위에선 의지할 것이 없었다. 안을 깊숙이 찔러 오는 삽입에 펄쩍 뛰어올라 난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목선에서부터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의 형태는 위협적이었지만, 아름다웠다.

이미 그의 허리 짓을 도와야 내가 덜 고통스럽다는 걸 깨달은 이후였다. 그에 엉덩이를 스스로 흔들었다. 물론 장 대표의 드센 허리 짓에 비하면 미약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등에 짧은 손톱을 박아 넣으며 고지가 눈앞에 있음을 즉감했다.

“흐으윽!”

“…하아!”

장 대표와 난 동시에 침대 위로 무너져 내렸다. 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꼿꼿하게 서 있던 자지가 공중에서 고갤 몇 번 꺼떡거리다가 푹 죽었다. 정액을 하도 뱉어 놓은 탓인지, 이번엔 사정조차 하지 않았다.

사정 없는 오르가즘이란 게 가능하던가.

나와 달리 내 구멍 안에 정액을 울컥거리며 싸 놓은 장 대표가 흐물거리는 내 자지를 몇 번 만지작거려 왔다. 그는 좆에서 풋내가 난다고 비웃으며 제 손안에서 짓이겼다. 장난감을 만지듯 그걸 갖고 놀던 그의 손길이 점차 느릿해져 갔다.

곧이어 귓가로 편안하게 늘어지는 그의 숨결이 와 닿았다.

설마 잠든 건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소름이 돋았다. 그가 몸 안에 좆을 처박고 귓가로 억눌린 신음을 흘릴 때보다 더. 규칙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푹 꺼지는 그의 가슴을 등으로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

정적이 장 대표와 나의 몸을 감싸 안았다. 애써 외면해 보려고 했던 무언의 감각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조용히 눈을 추켜 올렸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 서서 얼굴에 온통 피 칠갑을 한 채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퀭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이따금 내가 극심한 피곤에 시달릴 때면 나타나 날 괴롭히곤 하는 자였다. 처음에 봤을 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젠 제법 무뎌졌다.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도 이미 깊이 깨우친 이후였다.

그러나 날 원망하듯 응시하는 저자의 눈동자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몸을 조금 움츠렸다. 장 대표가 내 얼굴을 제 손바닥으로 눌러 왔다. 슬금슬금 도망쳐 보고자 했지만, 그의 큰 손이 뒤 목을 홱 채 왔다. 육식동물이 먹이를 잡아채듯 날렵한 손길이었다.

분명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새 깬 건가. 정말 이만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그의 손길에 목이 짓눌린 채로 눈을 꾹 감았다.

피 칠갑을 한 자는 눈을 감은 이후에도 잔상처럼 남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띠리리, 벨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침대에서 시트를 걷어 내다 말고 샤워 부스를 힐긋 했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에선 여전히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게 전화 걸어 올 유일한 사람, 장 대표가 저 안에서 씻고 있었다.

띠리리, 한 번 끊겼던 벨 소리가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난 머뭇거리며 다가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아닌 장 대표를 찾고 있는 전화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화기에 대고 조심스레 물었다.

“…여보세요?”

- 아아.

상대방이 목을 가다듬었다. 컬컬하게 갈라지는 끝 음이 어쩐지 귀에 익었다.

- 목소리 때문에 알지 모르겠는데, 나 김 사장.

“…안녕하십니까.”

- 장 대표 거기 있나? 그럴 양반이 아닌데, 언질도 없이 회동에 늦네. 지금 인사들 다 와 있는데.

“…네, 여기 계신데.”

…대표님 현재 씻고 계십니다, 입 안에서 대답이 맴돌았다. 천치가 아닌 이상 이 새벽에 장 대표와 함께 룸 안에 있단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이 룸 안에서 씻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대놓고 그와 내가 몸 섞는 사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지금 잠시 볼일을 보고 계셔서요. 하는 일 끝나시면 연락드리라고….

전해 드릴까요? 라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 볼일?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온 상대방이 킬킬 웃었다. 기분 나쁜 쇳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 거기서 장 대표가 볼일이랄 게 있나.

“…….”

그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 음성이었다.

- 아래에서 수원 씨 구멍이라도 빨아 주고 있느라 바쁘려나?

수화기를 쥔 든 손에 꽈악 힘을 줬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수화기 위에서 꿀꺽, 남자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동시에 샤워 부스 안에서 물이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곧 장 대표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운으로 몸을 감싼 그가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게 두 눈을 모아 왔다.

“누구 전화입니까.”

“김 사장님 전화입니다, 대표님을 바꿔 달라고 하셔서.”

수화기에 대고 대표님 바꿔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장 대표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장 대표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그가 수화기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아직 출발 전입니다.”

장 대표의 표정이 점점 싸늘히 굳어 갔다. 그가 제 수려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더니 읊조렸다.

“그걸 내가 왜 당신에게 보고해야 하지.”

한마디를 남긴 장 대표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한쪽에 죄인처럼 서 있던 내 이름을 불러 왔다.

“서수원 씨.”

“듣고 있습니다.”

그가 가운의 매듭을 풀어내며 한쪽에 있는 드레스 룸으로 다가갔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드레스 룸은 반은 내 옷, 반은 그의 옷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그가 옷장을 열어 안에서 수트 한 벌을 들어내며 말했다.

“며칠간 외지에 나가 있을 예정입니다.”

“…예.”

“언제 돌아올진 몰라요. 어쩌면 오늘 저녁에 바로 돌아올지도 모르지. 그러니 항상 행동거지 조심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 답하자,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내 얼굴을 지켜보다가 금고 쪽을 힐긋 했다. 그가 물어 왔다.

“잘 쓰고 있습니까?”

“…네.”

조용히 고갤 끄덕거렸다. 음, 그가 낮게 목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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