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이예담
오늘 수업 6시에 끝나는 거 맞아요? 오후 14:03]
“어……. 내가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있었나? 언제 알려 줬었지.”
과외 시간 조정하면서 했었을지도. 워낙 이것저것 발 걸쳐 둔 일들이 많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은찬은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보다 포기하고는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긴 시간 하얗게 떠 있던 화면이 채워지면서 답장이 송신됐다.
[오후 14:15 그렇긴 한데 왜? 무슨 일 있어?]
“은차니. 누구 연락이길래 그렇게 공을 들이면서 보내냐? 여자?”
“어? 그런 거 아니야. 무슨!”
같은 동아리 부원인 김주한은 수민을 따라 늘 은찬을 ‘은차니’ 하고 부르곤 했다. 툭, 어깨를 치며 물어 오는 주한에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말간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뭐가 그런 게 아니야?”
때마침 동방 문을 열고 들어온 수민이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실실 웃고 있는 주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어 왔다. 김주한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튼 탓에 뒤로 넘어갈 뻔한 제 의자를 간신히 당기면서 씩씩댔다.
“아으, 씨. 전수민. 죽을 뻔했잖아. 은찬이 누구랑 문자하는지 아주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면서 치길래 여자 아닌가 물어보고 있었다.”
“뭐? 여자? 누군데?”
수민이 부릅뜬 눈으로 은찬을 쳐다보았다. 언젠가 여자 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소개해 달라 했던 까닭에 입술이 삐쭉거리고 있었다. 저를 지켜보는 두 쌍의 눈동자에 은찬이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진짜 아니야. 이거 봐.”
[이예담
저녁 같이 먹어요. 그쪽으로 갈게요. 오후 14:16]
“엥……. 예담이네. 에이.”
그새 새로 도착한 문자 내용을 보여 주자 수민은 금방 흥미가 식었는지 동방 구석에 설치된 이동식 침대로 가서 누웠다.
“예담이?”
“있어. 쟤 과외 하던 애. 남자야.”
난 또 뭐라고, 하며 수민이 눈을 감았다.
“아. 가지치기 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얼굴 뒀다 뭐 하냐, 은찬아.”
김주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노트북 화면을 켰다. 공모전 결과를 기다릴 동안 준비할 만한 대외 활동이나 찾겠다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한결 힘이 빠져 있었다.
끼이익.
“어? 선배님들 계셨네요.”
수민이 제대로 닫지 않은 동방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인기척이 났다. 세 사람의 얼굴이 일제히 문을 향해 돌아갔다.
“오. 승원이.”
“안녕하세요.”
“요즘 자주 보네?”
“늦게 들어온 만큼 열심히 하고 싶어서요. 주식 본격적으로 해 보니까 재밌어서 자꾸 기웃대게 돼요.”
“좋은 자세인데…… 그러다 재준이 형처럼 등록금 날리는 수가 있다. 적당히 해.”
김주한이 제 목에 대고 스윽, 손날을 그으며 입꼬리를 내렸다. 서승원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새겨들을게요.”
주한이 언급한 선배는 등록금으로 주식을 매입한 뒤 고스란히 투자금 전체를 날린 것으로 회자되곤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된 불운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여태 은찬이 겪은 바에 의한 서승원에겐 큰 귀감이 되지 못할 사례였다. 비교군으로 잡기엔 환경이 너무나도 달랐던 까닭이다.
“아……. 나도 1학년 땐 저런 열정이 있었지. 서승원, 파이팅.”
수민은 여전히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휘휘 저었다. 서승원의 외모를 보고 감탄하던 것도 한때라, 몇 번 봐서 익숙해졌는지 금세 저 대하듯 하고 있었다.
“세 분이랑 남동현 선배님까지 같이 공모전 참가하셨죠? 그거 준비할 거 엄청 많았다던데.”
“맞아. 우리 마지막엔 잠도 못 자고 준비했어.”
김주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승원은 추가적인 질문을 하는 대신 은찬을 바라보았다. 아……. 은찬이 가만히 있던 입술을 열었다.
“응. 뭐……. 과외 때문에 바빠지기 전까지 취업에 도움 될 만한 건 다 준비해 보려고.”
“아. 전에 하던 과외 끝나셨죠? 재수생.”
“응. 걔 수능 끝났어.”
“그럼 새로운 과외 찾으시겠네요. 제가 소개해 드릴까요? 성격도, 성적도 괜찮은 애라 가르치기 편할 거예요.”
“제안은 정말 고마운데…… 다른 과외 먼저 소개받기로 한 게 있어서.”
은찬은 곧 수능 시험 성적표가 나오면 예전에 이예담이 언급했던 대로 새로운 과외를 소개받을 예정이었다. 친하지도 않은 민선우를 통하느니 아예 당사자인 이예담이 직접 과외를 알아봐 주겠다며 선선히 약속한 바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예담을 통하는 거니까 조건도 꽤 괜찮지 않을까. 서승원이 제안한 과외도 끌리긴 했지만 2개 모두 다 하기엔 체력도 버겁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요? 음……. 뭐든 다 무난한 애라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좋은 선생님 만날 기회였는데 걔도 아쉽게 됐네요.”
“에이, 내가 뭐라고. 더 좋은 사람 해 주면 되지.”
“이를테면 나! 괜찮은 자리면 나 좀 넘겨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주한이 탁, 노트북을 덮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아……. 원래 과외 하셨어요?”
“아니. 과외 경력 없으면 탈락이냐? 어떻게 안 될까? 영어만 아니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승원이 표정 곤란한 거 봐. 영어 아니래도 영어라고 하고 거절해 버려.”
수민이 키들대며 거들었다. 은찬만큼은 아니라도 간간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조차 이번 제안에 무관심한 걸 보니 취업 준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인 듯했다.
이후 금세 화제가 바뀐 통에 시시덕거리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은찬은 예정된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동방에 남은 세 사람과 일별하고, 강의가 끝날 때쯤엔 정문으로 나오라는 이예담의 연락을 받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였다.
정문 근처를 배회하는 수많은 차량들 중에서도 이예담이 끌고 온 차는 단연 독보적으로 돋보였다. 은찬은 단숨에 차고에서 본 적 있는 파란 SUV에 올랐다. 운전석 차창이 워낙 짙게 선팅이 되어 있었지만 그가 타고 있음을 확신하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지금 끝났어요?”
오래 기다렸는지 팔을 교차해 느른하게 핸들에 기대고 있던 이예담이 스르르 상체를 일으켰다.
“응. 오늘 약속 없었어? 나랑 자주 저녁 먹는 거 같아서.”
돈은 원 없이 대 주는 거 같은데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기라도 한 걸까. 20살이 넘었으니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이긴 하나, 생각해 보면 친구와 어울렸단 이야기도 들은 적 없었다.
“원래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가 많지 않기도 하고…… 대부분 아직 방학을 안 해서요. 크리스마스 즈음은 돼야 올 거라.”
“아…….”
“왜요. 친구 없는 내가 귀찮아요?”
이예담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추어 올라간 한쪽 눈썹과 대조되게 깊은 눈매는 살짝 휘어 있었다. 이미 은찬의 입술에서 흘러나올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그런 게 아니라…….”
수능이 끝났는데도 자꾸 볼일이 있는 것처럼 굴어서 그러지. 볼일이 남긴 했지만…….
“관성 같아요. 저녁때면 당연히 선생님 만나야 할 거 같아서. 선생님은 안 그래요?”
“아…… 뭐, 나도 조금은…….”
“정말?”
수긍하는 말에 아이처럼 환한 미소가 번졌다. 늘 은근하게 웃음 짓는 이예담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종류의 미소였다.
“참, 선생님. 내리기 전에 잊지 말고 글로브 박스 안에 있는 거 챙겨요.”
그새 차를 출발한 이예담이 담담하게 말했다. 은찬이 몸을 숙여 글로브 박스를 열자 그간 많이 보아 익숙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두꺼워 보이는 흰색 봉투가 보였다.
“이게 뭐야?”
“그동안 고생했다고 전해 드리는 거예요. 어머니가.”
“아…….”
여태 해 왔던 과외 모두 학생 성적이 괜찮으면 종종 보너스를 받곤 했다. 크게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아마 스케일에서 차이는 날 듯하지만.
“직접 보고 주겠다는 걸 말리느라 혼났네.”
“시간 되실 때 말씀 주시면 맞춘다고 전해 드려. 확실히 네가 뭐든 잘 이해한 덕에 편하게 과외 하고 과외비도 엄청 많이 받았는데……. 오히려 내가 한 번 대접해 드려야 할 것 같아.”
“하하. 편하게 과외 했다고 하면 아마 안 믿을걸요?”
“왜?”
“글쎄. 전에 말했잖아요. 몇 번씩이나 과외 선생 갈아치웠다고. 선생님 꽤나 고생했다고 생각 중일 거예요.”
예담은 태연하게 말하며 핸들을 부드럽게 꺾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언급하는 모양새였지만 함의된 내용은 그냥 흘리기 어려웠다.
“나는 네가 그랬다는 게 안 믿겨. 왜냐면…….”
“알아요. 그런 것치고 지나치게 선생님한테 잘하긴 했죠. 음. 내가 봐도 그래요.”
어느덧 뻥 뚫린 도로에 엑셀레이터를 지그시 밟기 시작한 이예담은 실실 눈웃음을 치며 무심하게 답했다. 은찬은 차체가 서서히 속력을 냄에 따라 힘줄이 툭 불거지는 손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잘했던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다음 말을 떠올린 은찬이 뺨을 발갛게 물들이곤 고개를 돌려 휙휙 빠르게 스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마 히터 바람에 더워진 공기 때문일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 * *
수능이 끝나고 나니 더는 이예담 집에 예전처럼 들락거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예담의 제안처럼 남자 둘이 호텔을 가는 모양새도 이상하다 버티는 은찬으로 인해 만남은 자연스레 옥탑방에서 이루어졌다.
창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눈부신 날이었다. 늘 하듯 한바탕 몸을 접붙이고 나서 은찬은 모로 누워 있었다. 워낙에 침대가 작은 탓에 그렇게 누우면 이예담 품에 안겨 있다시피 하게 되었는데, 이예담은 불편하지도 않은지 자연스레 제 팔을 내어 주곤 했다. 은찬은 물기가 엉겨 붉어진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가 지이잉,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예담은 삽시간에 휑해진 품이 아쉬워 덩달아 상체를 일으키며 팔꿈치에 몸을 기댔다. 살짝 들린 상반신에 바짝 파인 척추로 짙은 음영이 드리웠다. 굴곡진 근육으로 가득 찬 팔뚝을 더욱 기울인 예담이 은찬을 살폈다.
“……공모전.”
은찬은 지쳐 후들거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숨도 쉬지 못한 채 내용을 확인하는 표정은 쉬이 읽어 낼 수 없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휴대폰만 만지작대며 말이 없는 은찬을 바라보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던 찰나.
“이, 입상했대……. 와!”
일순 표정이 얼떨떨해지더니, 잠시간 시간이 지나자 환하게 바뀌었다. 동시에 은찬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민이었다.
“어, 수민아. 지금 확인했어?”
은찬은 예담이 제 곁에 있는 것도 잊고 통화에 집중했다. 수민은 은찬보다 배는 난리 법석을 피우는 중인지, 수화기 너머로도 꺅꺅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익히 그려지는 모습에 예담이 피식 웃으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 그럼 그날 저녁에 보자. 응응.”
은찬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였다. 살짝 고개가 숙어진 얼굴에는 잔웃음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저도 모르게 같은 표정을 짓고 바라보던 예담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웃음기를 지우고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달랐다. 무척이나 일상적인 일과 중, 평소보다 과하게 웃음이 터진 것뿐이었지만 잔상처럼 망막에 남은 모습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마른침을 삼켜 넘기는 예담의 기다란 눈매가 무언가를 예감한 듯, 살포시 떨려왔다.
“선생님. 다시 한번 웃어 볼래요?”
“뭐?”
내가 무슨 자기가 키우는 애완견이라도 되는 줄 아나. 예담의 말에 은찬이 이맛살을 잔뜩 구겼다. 과한 자극에 붉어졌던 눈꼬리가 새초롬히 올라갔다.
“한 번만요. 응?”
쓸데없이 잘 빚어 놓은 이목구비는 감정에 호소하는 전달력까지 강했다. 그 강렬한 호소력에 눌린 은찬이 억지로 입꼬리를 주욱 끌어 올렸다.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 주자 싶어, 억지웃음일지언정 눈매까지 확실히 접었다.
“됐어? 공모전 입상 기념으로 오늘만 특별히 해 준다.”
“아…….”
예담이 커다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뿌연 연기가 걷히면서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답이 내려졌다. 그간 애매하게 느껴지던 흐릿한 감정이 비로소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겠네.”
“어? 뭐야. 못 들었어.”
“그냥…… 좀.”
“좀, 뭐? 갑자기 왜 그래.”
석연치 않은 반응에 은찬이 크게 뜬 눈으로 이예담을 분주히 훑었다. 공모전 결과에 들떠서 너무 제 생각만 했는지, 좀체 그답지 않은 행동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예담은 한참 동안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아내며 말을 고르는 듯했다.
“답이 안 내려지던 문제가 있었는데 갑자기 풀려서.”
예담은 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내려 은찬의 양 뺨을 감싸 쥐었다. 갑작스레 얼굴을 감싼 뜨거운 손바닥에 당황한 은찬이 움찔 몸을 떨었다. 예담은 그런 그를 달래듯 천천히, 느릿하게 엄지를 움직여 발긋한 뺨을 살살 쓸었다.
“야.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이야기해. 이상한 짓까지 시켜 놓고는.”
“음. 그게…… 알려 주기에 오늘은 적합한 날이 아닌 거 같아요. 공모전, 잘된 거죠? 축하해요. 기념으로 저녁 맛있는 거 먹어요.”
어렵게 깨달은 제 감정을 아무렇게나 쏟아 낼 수는 없었다. 톡, 톡, 가벼이 뺨을 두드린 손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멀어져 갔다.
코끝으로 은은하게 느껴지던 싸한 향도 덩달아 서서히 휘발되는 바람에, 은찬은 발칵 치밀던 짜증을 잊고 멍하니 이예담을 바라보았다. 고민이 깨끗하게 지워진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그날 이후 이예담은 뻔질나게 은찬의 집을 드나들었다. 매번 방문 때마다 조그만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간식거리를 잔뜩 사 오더니, 기껏 좁은 옥탑방까지 행차하고선 몸을 섞지 않고 돌아가는 일도 허다했다.
말 그대로 그냥 얼굴 보러 잠깐 들렀다는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훌쩍 제 볼일을 보러 간다든지, 실컷 자취방 바닥에 눌어붙어 공부하는 은찬을 바라보다 시간이 되면 떠난다든지 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런 나날이 연거푸 되풀이되자 은찬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약속 없이 제 자취방에 불쑥 나타나는 이예담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잦은 문자의 텀이 길어지는 순간마다 제집을 향해 오느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기분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아니, 괜찮았다. 좋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꼬리마저 호선을 그리며 휘우듬히 올라가곤 했다.
* * *
“큼, 음…….”
끼이익, 거대한 대문이 열리자 은찬은 혹여 외투에 묻었을지 모를 먼지를 털어 내고 목을 재차 가다듬었다. 과외 첫날만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닐진대 내딛는 걸음걸이마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웠다. 어른을 만나는 자리는 늘 긴장되곤 했다. 이미 다 끝난 마당일지라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어서 와요. 아주 예쁘게 잘생겼네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기계적으로 준비한 인사를 쏟아 낸 은찬은 저와 마주친 얼굴에 잠시간 멍해졌다. 기다란 눈매, 높은 콧날하며 날렵하고 탄탄한 체형까지. 유독 튀는 이예담이 그 외형을 어디서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우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중년의 여인이 온화하게 웃으며 머뭇거리는 은찬을 다이닝룸으로 이끌었다.
“어쩌다 보니 수능이 끝나고서야 얼굴을 보네요. 그간 과외할 때 종종 인사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니에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얻어먹곤 하던 저녁상도 분에 넘치게 많은 찬으로 가득했는데, 작정하고 준비해서인지 오늘 이예담 집 식탁은 그 커다란 면적 모두를 음식으로 덮고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진수성찬에 압도된 은찬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삐걱대며 대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예담이 말없이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내 정신 좀 봐. 신선로 준비해 뒀나 확인해야겠다. 잠시만요.”
이예담의 모친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한 말소리가 벽 너머로 작게 들려왔다. 모친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예담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마치 어머니한테 나 달라고 온 거 같지 않아요?”
“뭐?”
“선생님한테 나 장가보내 달라고 허락받으러 온 거 같다고. 상견례처럼.”
소곤소곤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그의 입술 선 만큼이나 또렷한 발음이라 한 어절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들렸다. 은찬이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미쳤어?”
은찬은 이예담보다 한결 작은 목소리로, 거의 입 모양만 움직이며 되받아쳤다.
“하하.”
이예담은 뭐가 그리 좋은지,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괘념치 않고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꽤나 길게 이어지는 웃음소리였다.
“어머. 얘가 웬일이야.”
그새 돌아온 이예담의 모친이 은찬을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곤 탄성을 터뜨렸다. 이예담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닮은 얼굴이 짓는 생경한 표정에 은찬의 눈길이 분주해졌다.
“어째 별말 없이 과외가 잘 이루어진다 했더니……. 정말 형처럼 따랐나 보네.”
대체 이예담이 뭐라고 말했길래. 은찬은 찜찜한 마음을 한구석으로 밀어 놓고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이예담 옆으로 다시 자리하는 그녀의 행동을 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 참. 집은 네가 말한 대로 구해 놨어. 한국에 남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대라 회……, 아니, 할아버지가 허락하실 거 같아 다행이지. 이번에는 심기 거스를 짓 하지 마.”
한국대? 은찬이 숟가락을 놓으며 이예담을 쳐다보았다. 수능 시험 성적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 벌써부터 대학을 언급하는 걸 보니 가채점 결과가 꽤나 좋았던 듯했다. 제 후배로 들어오기라도 한다는 걸까. 그렇게 많이 만나면서도 부담이 될까 언급한 적 없던 화제였다.
“음…… 뭐. 알겠어요.”
예담이 적당히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예담의 모친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올려 둔 태블릿으로 주의를 돌렸다. 제 어머니를 향해 짧게 눈길을 보낸 예담은 곧이어 은찬에게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거기, 선생님 지금 사는 집에서 안 멀어요. 정문 쪽에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구해 달라고 했거든요.”
낡은 빌라들과 신축 원룸이 혼재한 후문 인근과는 달리 정문 앞은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 주를 이루었다. 아마 그 오피스텔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매물이 이예담이 언급한 곳일 터였다.
그 넓고 좋은 집에서 예쁘고 늘씬한 여자들과 뒹구는 이예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토록 죽고 못 살던 ‘진짜’ 여성기가 있는 ‘진짜’ 여자들……. 이제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그동안 참아 왔던 성욕을 죄 터트릴 게 분명했다.
“그래……. 좋겠다.”
아주 마음껏 놀아 보라지. 음부에 닿는 촉감도 모르고 흥분을 유도하는 법조차 몰라 알려 달라던 어리숙한 모습이 아닌, 능숙해진 손길로 상대를 애무하고 적실 것이다. 뻣뻣하고 재미없는 제 몸과 달리 곡선으로 이루어진 여체 곳곳을 탐하고 난 뒤, 제게 했던 것처럼 입술을 부드러이 포개고 껴안을 것이다. 모두 저를 통해 알게 된 거면서…….
〈하하. 선생님. 누가 연애하자고 했어요?〉
그러곤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여자에겐…… 연애하자 할지 몰랐다. 거기까지 상상을 마친 은찬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왜 이렇게 부아가 치미는지 알 수 없었다.
“꼭 남 이야기하듯 하네. 남 얘기 아닌데.”
달갑지 않은 가정을 끊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찬은 흠칫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맞은편에 자리한 이예담이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 얘기가 아니라니 무슨 말일까.
“흣……!”
갑작스레 종아리를 타고 간지러운 감각이 번졌다. 움찔, 몸을 떠는 은찬의 반응을 확인한 상대는 발끝만으로도 농도 짙은 색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밀하게 몸을 타고 오르는 찌릿함에 질 벽이 욱신거리며 쪼그라들었다.
“흐읏…….”
이 미친놈! 이런 자리에서. 이예담은 제 모친과 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아랑곳 않고 맞은편에서 기다란 다리를 쭉 뻗어 오고 있었다. 처음엔 종아리 부근만 간질이던 발끝은 은찬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아 내자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향해 가기 시작했다.
은찬이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예담을 노려보았다. 예담이 ‘뭐?’ 하며 소리 없이 입술 모양만 벙긋했다. 옆에서 식사를 이어 가는 제 어머니를 상관 않는 담담한 눈빛은 이미 은찬의 진정한 속내를 알고 있다는 듯 칠흑같이 짙었다.
“황태채를 좋아하나 봐. 여기 은찬 학생 앞으로 황태채 무침 좀 더 가져다줘요.”
“네, 사모님.”
아래에서 오는 자극을 참아 내려 되는 대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관되게 한 반찬으로만 손이 가고 있었다. 은찬은 이예담 모친의 말에 깜짝 놀라며 정신을 다잡았다.
“……감사합……니다.”
은찬이 깊게 숨을 들이켜며 애써 웃었다. 농밀한 시선을 외면하며 억지로 허벅지를 붙이자 사타구니 사이에 들어왔던 발끝이 남성기를 뭉근하게 주물렀다. 하, 흣……. 밭은 호흡을 고르며 힘들게 아랫배를 조였다. 그러자 보지 구멍 역시 쫀득하게 수축하며 주르륵, 입구에 고였던 물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애액이 둔덕을 막은 팬티에서 그치지 않고 바지로 고스란히 스며들며 맞닿은 천을 함빡 적셨다.
……그랬다.
은찬은 예담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었다.
물 많은 보지를 막아 주는 평범한 팬티 대신 음탕한 기대감으로 입고 온 팬티는 민감한 부위를 감싸 주어야 할 부분이 길게 트여 있었다. 질구가 위치한 곳의 천이 아예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 얌전히 허벅지를 오므리고 있으면 천이 겹쳐져 조붓한 구멍을 가리지만 사타구니를 벌리거나 강제로 틈새를 비집고 쑤시면 일말의 저항 없이 금세 천이 젖혀져 붉은 속살을 내비치게끔 했다.
특히나 일반적인 음부에는 없는 음낭이 보짓살 위에 놓여 있는 은찬이기에 팬티 천이 받는 무게감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고로 지금 슬금슬금 사타구니를 타고 기어오르는 발끝이 아주 약하게만 자극을 주어도, 언제든 겹쳐진 천이 벌어져 간신히 위를 향해 포개 놓은 자지가 쏟아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따로 증명할 필요 없이 고작 걸쭉한 보짓물이 쏟아지는 것만으로도 천 쪼가리는 힘없이 쫙 벌어지고 있었다.
“흐응. 선생님이 황태채를 좋아했구나.”
몰랐던 사실이네. 예담이 중얼거리며 눈을 마주쳐 왔다. 시선이 맞닿자마자 곧장 발끝이 태연하게 달뜬 고간을 뭉그러뜨렸다. 보지 않아도 훤히 알고 있다는 것처럼 정확히 갈라진 틈새를 겨냥하고 있었다.
“흐으…… 응…….”
은찬은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아 가며 눈앞의 식사에 집중하려 했다. 붉어진 양 뺨을 식히려 물컵을 몇 번씩이나 비워 내는 사이, 이예담 모친은 정갈하게 식사를 마쳤다. 꼭 이예담의 어머니다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식사였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들고 가요. 나는 일이 있어서 길게는 못 있겠네. 식사하면서도 내내 태블릿만 봐서 미안해요. 정말 고마웠어요.”
“아……. 아닙니다. 저야말로, 초…….”
이 순간조차 이예담은 끈덕지게 음부를 건드리고 있었다. 제가 입고 오라고 건넨 속옷을 입었는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초대해 주셔서…… 감사, 했어요…….”
“얼굴처럼 말도 예쁘게 하네. 다음에 또 좋은 일로 만나요. 그럼 난 가 볼게요. 예담이 있다가 선생님 잘 배웅해 드리고.”
모친이 자리를 떠나자 그녀의 뒤를 따라 사용인도 자연스럽게 다이닝룸을 비웠다. 아마도 편하게 식사하라는 의미 같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은찬이 퍽! 다리를 최대한으로 멀리 뻗어 이예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야……. 힘이 장난 아닌데요.”
“넌 더 맞아도 싸! 미쳤어?”
“안 미쳤어요.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여기서 우리 떡 쳤던 거 기억 안 나요? 밥 먹으면서 꼴려 죽는 줄 알았네.”
이예담이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핥으며 탁, 탁, 아랫도리를 훑어 올리는 손짓을 했다. 동그랗게 손가락을 모아 구멍 모양을 만들고는 실제 제 성기를 쥐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었다.
“으…… 그…… 너…….”
답이 없었다. 더 상대해 봐야 휘말리기만 할 뿐이다. 아직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퇴근하지 않았는데 큰소리를 낼 순 없었다. 은찬은 크게 숨을 내쉬며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아. 말을 말자. 그런데 너, 한국대로 원서 쓸 거야?”
“아. 되면?”
“……확실하지도 않은데 집부터 구했다고?”
“어차피 나와 살긴 할 거니까요. 집에 있는 거 숨 막혀서.”
이 넓은 집에 사는데 뭐가 부족해서 숨이 막힌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은찬이 수긍 대신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예담이 옅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럼 둘이 만나기도 더 편해질 거고…….”
“어?”
이예담은…… 대학 진학 후에도 계속해서 이 만남을 이어 가려는 생각인 걸까? 왜? 굳이? 입학만 해도, 아니, 입학 전 오티에만 참석해도 저 좋다는 여자가 한 트럭일 텐데.
“싫어요? 계속 선생님 집에서 만나고 싶어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흐음. 거기도 나쁘진 않은데 침대가 조금 불편한데. 아니면 침대를 새로 구입하는 쪽으로 생각할까요.”
당연한 듯 입학 이후의 일을 언급하는 이예담에게 은찬은 서서히 동조되어 갔다. 그런가……. 정문이면 인문관에서 가까우니까 그쪽 수업 끝나고 가기 편하긴 하겠네. 이렇게 자주 만나다 갑자기 뚝 연락을 끊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중얼거리며 자꾸만 그렇게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은찬은 무의식적으로 접시 위의 황태채를 찢으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 동안 상념에 몰두하다 눈앞의 황태채를 몽땅 다 찢고 나서야 지나치게 조용해진 사위를 느꼈다. 아……. 뒤늦게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맞은편에 있던 이예담이 보이지 않았다. 그새 자리를 비우기라도 한 걸까.
“이예담? 어디 갔…… 흐익!”
아까부터 발끝으로 달구던 부위가 한층 더한 압박감에 짓눌렸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이예담이 식탁 아래로 내려와 거침없이 아래를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너어…… 너, 흣! 으응! 미쳤, 응!”
반항할 새도 없이 익숙한 손길이 바지 버클을 풀고서 지익, 잇따라 파스너까지 내렸다. 폭이 좁은 골반을 따라 의자와 맞닿는 경계선까지 죽 바지를 내리더니 이내 낯익은 팬티를 확인하고는 탁한 숨이 터졌다.
“하아…….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선생님 같은데. 정말 이걸 입고 왔네요?”
예담은 속옷을 건네주었던 당시 질색하던 은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미색의 얇은 팬티는 입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살갗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었다.
“뭘 했다고 보지를 이렇게 적셨어요. 바지까지 다 젖었잖아. 하여간…….”
예담은 찐득한 점액질이 용암처럼 흐른 보지 구멍으로 시선을 주었다. 투욱, 손끝으로 오동통한 보짓살을 내리치자 질척한 애액이 손톱에 묻어나며 실처럼 가늘게 늘어지고, 하얀 양말을 신은 발끝이 홱 곱아들며 발등이 덜덜 떨려 왔다.
“……네가, 네가, 흐으, 아까부터 건드렸잖아.”
“아. 내 잘못이구나. 내가 선생님 안달 나게 만들어 놓고 책임을 안 지고 있었네. 나쁜 놈이네. 그죠?”
“자, 흐으, 장난하지 말고, 응…….”
“사죄의 의미로 보지라도 빨아 줄까요. 할 줄 아는 게 보빨밖에 없어서 어쩌지.”
“으응……! 흐으, 읏……!”
허벅지를 슬슬 쓰다듬는 손길에 따라 자꾸만 은찬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흐으응……. 이렇게 느닷없이 식탁 아래로 들어올 줄은 몰랐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이 집에서 무언가를 할 거라 기대하긴 했었다. 그건 굳이 원하지 않는다면 쓰레기통에 처넣고 끝내도 됐을, 밑이 트인 팬티를 입고 온 것만으로도 가늠되었을 속내였다.
그의 모친을 보며 새삼스레 떠올린 콧날이 미끈거리는 천 위를 비비적댔다. 은찬은 갈등하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더니 엉덩이를 들어 예담이 바지를 편히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자꾸만 내려가는 맨투맨 끝자락을 슬그머니 쥐어 올려 그의 시야를 확보해 주는 행동은 덤이었다.
은찬이 사타구니를 쫙 벌렸다. 스르륵 벌어지는 허벅지에 입매를 휜 예담이 물컹거리는 혀끝으로 천에 덮인 보짓살을 살살 쓰다듬었다. 챱챱, 챱챱챱. 수면 위를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쳐 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감질나는 자극에 은찬의 아랫배 근육이 단단히 수축하면서 옅은 복근이 일자로 잡혔다.
예담은 눈을 치켜떠 은찬과 시선을 마주쳤다. 뒤이어 파인 배꼽을 세운 혀로 푹, 후벼 팠다. 마치 보지 구멍을 쑤시듯이.
“아으으응……! 읏, 간…… 흐으, 간지러어…….”
금세 복근이 사라지면서 말랑한 뱃살이 되돌아왔다. 예담이 낮게 웃으며 칭찬하듯 뽀얀 뱃살을 혀로 튕겼다. 촉, 촉, 토옥. 장난처럼 부드러운 살점 여기저기를 핥자 팬티 속에 휜 채 갇힌 자지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푸들거렸다. 그는 잘 뻗은 턱 선에 툭툭 부딪히는 귀두를 느끼고서도 뜨거워진 살덩이는 훌쩍 건너뛰었다.
더 아래를 목표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헥! 응……! 아! 거, 거기는……! 응!”
쭙, 쭈웁, 츄룹. 젖은 살을 치는 상스러운 소리가 다이닝룸에 울려 퍼졌다.
예담은 넓적하게 편 혀를 아무렇게나 쳐 대며 잔뜩 젖어 달라붙은 천을 헤집었다. 가뜩이나 얇은 천은 애액에 절자 보짓살에 찰싹 밀착되는 바람에 생보지를 빠는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천과 살점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눌린 혀가 젖은 부위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힉! 아응, 응! 아아아……!”
털 한 올 없는 부드러운 살점은 두 덩이로 갈라져 간혹 쓸리고 밀릴 때마다 빨간 속살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참 마구잡이로 보지를 쪽쪽 빨던 예담이 밀착된 천을 혀로 걷어 내고 뚫린 중앙으로 보짓살을 몰았다. 그러곤 봉긋 튀어나온 두덩을 볼이 팰 정도로 한가득 힘주어 격렬하게 빨아 댔다. 하, 으응……. 은찬은 살포시 눈을 내리뜨면서 그 야한 광경을 관찰하였다.
멀끔하게 잘생긴 얼굴이 제 보지를 핥아 대며 번들거리는 애액에 젖어 들고 있었다. 아……. 그걸 인식하자 자궁이 저릿할 만큼 황홀한 쾌감이 치솟았다. 질 안이 절절 들끓기 시작했다.
치미는 고양감에 작은 얼굴 가득 발긋한 홍조가 일었다. 마치 자의로 이예담을 제 아래 무릎 꿇린 듯한 느낌이었다.
“흐으…….”
예담이 통통하게 살 오른 둔덕을 바짝 빨아올렸다. 자궁구가 시큰거리는 느낌에 은찬의 눈이 질끈 감기면서 고개가 절로 뒤로 넘어갔다. 젖혀진 목울대가 움찔움찔 떨리고, 하얀 목울대 중간에 도드라진 목젖 역시 경련하듯 떨려 왔다.
예담은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기다란 눈을 치켜뜬 채 계속해서 부드러운 속살을 짓뭉갰다. 단단히 심을 세운 혀로 촉촉한 점막 여기저기를 쉴 새 없이 쳐 대자, 혀끝으로 끈적한 물이 핏핏 튀어 올랐다.
고무줄 대신 끈으로 매듭지어진 팬티가 팽팽하게 조여들기 시작했다. 위쪽에 욱여넣은 남성기가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과히 부푼 탓이었다.
“하으으……. 으응……. 아, 아, 웃…….”
얇은 천에 음낭이 짓눌리며 천 겉면으로 주름진 고환 표피가 고스란히 투과되었다. 맨들맨들한 천 위로 드러난 쪼글쪼글한 피붓결이 눈으로도 느껴질 만큼 여실히 내비친 것이다.
“으음…….”
팬티가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지자 보짓살 역시 자연스레 죄여 왔다. 조여든 팬티에 의해 음부 살이 눌려 기다랗고 얇은 세로줄이 생겨나고, 짓눌려 빨개진 살갗 양옆으로 폭신한 살점이 볼록 튀어나와 파르르 흔들렸다. 팬티의 트인 부분이 조여들며 양 음부 살을 당기자 태생적으로 갈라진 기다란 틈새는 더더욱 벌어졌다. 마치 손가락으로 각각의 보짓살을 잡아당겨 벌리고 있는 것처럼 내밀한 살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새빨갛고 번들거리는 조갯살이 녹진녹진 녹아내리면서 찐득한 애액을 흥건하게 게워 냈다. 닿으면 화상이라도 입힐 듯 홧홧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혀만 대고 있어도 알아서 보짓살이 벌어졌다. 예담은 보지 속 미끌미끌한 질 벽을 문지르던 긴 혀를 빼내 고개를 들었다. 끈적거리는 물이 번드르르하게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식탁 아래 바닥에 뚝, 뚝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아……. 씨발. 진짜, 어떻게 이런…….”
“흐, 으응…….”
예담이 흐트러진 숨을 내쉬면서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뜻하지 않게 자극이 멈추자 은찬은 발목을 예담의 목덜미에 걸어 교차시켰다. 그러곤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탄탄하고 넓은 등판이 순응하듯 스르르 기울며 뜨거운 입술이 재차 보지를 뒤덮었다.
“으응……. 아…… 조금만…… 더어, 응…….”
안달 난 은찬의 요구에 예담은 고개를 숙여 다시금 습한 구멍 안으로 붉은 혀를 쑤셔 박았다. 그것도 모자란 발목이 더더욱 그를 당기자, 날카로운 콧날이 불거진 음핵을 짓누르면서 오싹한 쾌감이 음부를 때렸다. 눌린 보지가 발작하듯 꿈틀거렸다.
“흑! 아……! 아앙!”
은찬이 파드득 튀어 오르자 말캉해진 보지 속 점막이 예담의 입가에 부딪혔다 떨어져 나갔다. 흐으…… 아……. 예담이 다시 제 입술을 벗어난 보지에 혀를 밀어 넣곤 연약한 살점을 빠르게 비볐다. 속살을 질퍽이며 쳐댈 때마다 시큼하고 야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후, 씹…….”
예담은 은찬의 보지에 얼굴을 박은 채 다급하게 바지 버클을 풀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으로 바지를 내리고 속옷까지 휙 젖히자 이미 한참 전부터 뜨거워진 살덩이가 불툭이며 튀어 나왔다.
손을 뻗어 열기에 적셔진 커다란 살기둥을 감아쥐었다. 프리컴이 한바탕 흘러내린 살덩어리는 손바닥에 감싸이자 한결 더 뜨거워짐과 동시에 부피감을 늘렸다. 후으……. 움켜쥔 손아귀를 거칠게 흔들면 흔들수록 좆이 질척해지고, 이와 달리 입 안은 바싹 말라 왔다.
걷어 낸 셔츠 자락 덕에 설핏 보이는 장골로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불툭였다. 진하고 또렷하게 이어진 핏줄은 성긴 음모가 나타난 부분에서야 감추어졌는데, 털이 무성한 성기 뿌리와는 달리 맨들맨들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좆 기둥에는 여전히 드러나 있어 억센 손길이 이어질 때마다 검붉은 표피와 함께 굵다란 핏대가 역동적으로 움찔거렸다.
점점 더 치미는 갈증에 예담이 입술에 주는 압력을 높여 보지 안에 고인 물을 쭉쭉 빨아 삼켰다. 흐윽……! 은찬이 의자 쿠션을 쥐어뜯으며 풍만한 엉덩이를 씰룩였다. 당장이라도 할딱할딱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아, 아, 응……. 이예담……. 흣, 아아…….”
곧은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애액이 셔츠 깃을 축축하게 적시길 한참. 예담은 여전히 보지에 묻은 얼굴을 들지 않은 채로 턱 끝에 맺힌 야한 물을 손끝으로 훔쳐 냈다. 반대편 손으로는 제 자지를 거칠게 훑어 내리는 짓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응……. 으응…….”
물기 어린 손가락이 느릿하게 회음부를 더듬기 시작했다. 얇은 살갗은 손가락이 쓰다듬는 방향을 따라 쏠리면서 주름을 주욱 늘어뜨렸다. 예담은 손가락을 더, 더 밑을 향해 내리며 회음을 비스듬히 끌어당겼다.
트인 천이 쫙 벌어지며 손가락이 향하는 길목을 터 주었다. 마침내 더는 밀릴 곳이 없을 만큼 내려갔을 때, 예담은 뻐끔거리는 아랫구멍으로 검지와 중지를 요란하게 들이박았다.
“헤윽!”
쭙, 추릅. 진득하게 보지를 빨아 대는 혀의 움직임과 더불어 주름진 후장 구멍에 깊숙이 꽂힌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이예담이 제 좆을 잡아 흔드는 박자에 맞추어 철벅, 철벅, 두 구멍을 사납게 들쑤시기 시작한 것이다.
“아……. 으응…… 응, 흐…….”
푹푹푹. 습하고 좁은 내벽으로 손가락이 들락거리면서 빡빡한 내부를 풀어냈다. 보짓물과 타액이 뒤섞인 점액질을 윤활유 삼아 아래를 사납게 헤집을 때마다 은찬의 어깨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은찬은 야릇한 감각에 맞서 입 안 살을 거세게 짓씹다 아랫입술마저 강하게 깨물었다. 연이어 다급히 고개를 도리질했다.
“응, 으응……. 아……. 이제, 이거, 흣…… 꺼내 줘. 못 참겠어…….”
예담은 보지를 흐무러지도록 빨던 고개를 들어 조금 더 위로 시선을 주었다.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 땡땡해진 음낭 위에 더욱 커다랗게 부푼 자지가 천에 압박당한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후으…….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지? 보지 빨아 주다 뒷보지 쑤셔 줬더니 모자라서 자지까지도 만져 달라 하고. 응?”
“흐……. 으응……. 빨리이…….”
예담이 구멍을 쑤시던 손가락을 꺼내 스륵, 골반에 매듭지어진 팬티 리본을 당겨 풀었다. 그러자 물을 흡수해 무거워진 천이 곧장 아래로 떨어지면서 여태껏 갇혀 있던 살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짓뭉개져 있던 음낭 또한 함께였다.
“음…….”
예담은 발기해도 여전히 살굿빛을 띤 살덩이를 움켜쥐었다. 한 손에는 굵다란 제 자지를, 나머지 한 손에는 조금 모자란 듯한 은찬의 자지를 쥐자 양손이 모두 찼다. 늘 하듯이 잡고 흔들어 주리라 예상한 은찬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얌전히 그다음을 기다렸다.
“흐읍……!”
여태껏 음부를 휘저어 대던 입술이 망설임 없이 귀두를 물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입 동굴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살기둥을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난생처음 어딘가에 갇혀선 쭉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놀란 은찬이 숨도 쉬지 못하고 허벅지를 벌벌 떨기 시작했다.
“히익……! 아! 아!”
허리가 절로 허공으로 떴다. 손바닥으로 성기를 감싸 쥐고 흔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음…… 웁…….”
섹스 도중 가벼이 은찬의 귀두 끝에 뽀뽀하듯 입술을 내린 적은 있었지만 예담이 본격적으로 그의 좆을 머금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자 좆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 만도 했건만 입에 담자마자 그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되레 소스라치는 은찬의 반응에 탄력을 받아 더욱더 열심히 빨아 주게 됐다.
“아……으. 거기, 이상, 흐으……해애, 응……!”
아주 따스하고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자지에 들러붙어 좆을 흔들어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남성기로는 첫경험인지라 별것 아닌 자극에도 은찬은 자지러졌다. 앞 구멍도, 뒷구멍도, 좆 기둥조차도…… 모두 이예담이 처음이었다.
뜨거운 혀가 선단을 뭉근하게 비비고 내려가자 단숨에 아랫배로 열기가 몰렸다. 스스로가 느껴질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프리컴이 귀두 끝에서 줄줄 새어 나왔다. 은찬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며 본능적으로 이예담의 입 안에 추삽질을 했다. 푸욱, 푹 그의 입을 구멍 삼아 태어나 처음으로 좆질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읍……. 후…….”
살짝 허리를 뒤로 물렀다 안으로 쑤셔 박을 때면 미끈하고 뜨거운 동굴이 쫀득하게 들러붙는 게, 끔찍하리만큼 아찔했다. 요령 없이 본능에만 의지한 허리 짓이 이어질 때마다 극렬하게 자극받은 선단에서 질금질금 쿠퍼액을 뿜어 댔다.
“하으, 응, 하아아……. 더어, 흣…….”
제 입을 구멍 대하듯 들쑤시는 은찬의 행위에 예담은 어쩐지 묘한 흥분이 치밀었다. 이 말랑말랑한 살굿빛 좆이 다른 곳을 들락거리는 꼴을 보느니 기꺼이 자신을 자위기구처럼 내어 줄 수 있었다.
“아흐으……! 아, 아……!”
쭈우웁. 예담이 입 안 점막을 흡착하며 자지에 세차게 압박을 가했다. 좆질할 때 자신의 성기에 들러붙던 빨간 점막을 상상하며 제 입술을 잔뜩 조였다.
“아…… 힉…….”
갈 것 같았다. 몇 번의 삽입에 어느새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팽팽하게 땅겨 오면서 사정의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황홀경에 다다른 은찬이 몽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흐으, 흐으……. 가만히 앉아 받기만 하는데도 숨이 차올라 호흡이 모자랐다.
예담이 쭙 내린 고개를 끌어 올리고 귀두를 뜨끈한 점막으로 휘감았다. 그러곤 요도구에 혀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뾰족하게 세운 혀로 귀두의 갈라진 부분을 따라 아래위로 슬슬 쓸다 불시에 쿡, 쿡 조그만 구멍도 범할 것처럼 찔러 댄 것이다.
“흐으……! 응! 아, 무슨……! 거기를…….”
진작 차오른 쿠퍼액 때문에 요도 구멍은 반질반질한 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뜨거운 살덩어리가 그런 구멍을 푹푹 쳐 댈 때마다 고인 프리컴이 혀에 엉기면서 짜고 쌉싸름한 맛이 자꾸만 넘어왔다. 하지만 쑤셔지는 요도구 안이 흐물흐물해지는 감각이 혀를 녹일 듯 생생해, 예담은 계속해서 요도 구멍을 쳐 대는 짓을 멈출 수 없었다.
아. 씨발. 벌름거리는 조그만 구멍을 빠듯이 쑤시다 보니 근질거리는 제 좆도 쑤셔 주고 싶었다. 함몰된 젖꼭지를 세워 요도구를 쑤셔 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상상만으로도 뇌가 다 저릿할 지경이라 손아귀 안에 쥔 성기 혈관이 한층 더 불거졌다. 한껏 자극받은 예담은 은찬의 자지를 빨면서 제 자지를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하으……! 아, 아, 아!”
검붉은 살덩이가 쩌걱쩌걱, 음란한 마찰음을 만들어 내면서 예담의 고갯짓이 점점 더 격해져 갔다. 귀두 끝이 목구멍에 닿을 만큼 깊숙하게 얼굴을 내리자 생경한 자극에 잠시 얼어 있던 자지는 금세 번지는 성감에 입 안 점막을 이리저리 쳐 대며 꿈틀거렸다.
“큽……. 으음…….”
자지가 요동치며 입천장을 쳐 대는데도 예담은 태연하게 살덩이를 빨았다. 그저 제 입 안에 머금은 살덩이에도 쾌감을 맛보여 주고 싶어 더더욱 입술을 세게 조이고, 기둥을 오르내리는 피치를 미친 듯이 올릴 따름이었다.
“아! 아! 아응! 아아……!”
간드러지는 신음을 보아하니 조금만 더 빨면 곧 사정할 것 같았다. 절정을 예감한 예담은 은찬이 오롯이 남성기로만 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가락을 빠르게 접붙였다. 나란히 뻗은 검지와 중지를 한 몸처럼 그러모으더니 푸욱, 예고 없이 빠끔대는 후장 구멍에 쑤셔 넣었다.
“흐익!”
발끝이 구부러지면서 허리가 덜컹 튕겨 올랐다. 동시에 예담이 쭙쭙, 난폭하게 자지 선단을 빨며 혼절할 만큼의 자극을 주었다.
이제 은찬의 자지를 받쳐 주는 손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철썩철썩, 입술과 음낭이 맞닿을 때까지 깊이 성기를 빨아 주면서 예담은 기다란 손가락을 다시 뒷구멍 속으로 찔러 넣었다. 한껏 흥분한 내벽 점막은 침입하는 이물질에 기다렸다는 듯이 안을 후끈하게 조여 왔다.
푹! 내부에 자리한 손가락으로 과격하게 전립선을 뭉그러뜨렸다. 그러곤 입 안 가득 찬 좆 껍질을 벗겨 낼 듯 귀두를 맹렬히 빨았다.
“힉! 헤으윽!”
지나친 자극과 함께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시리도록 저릿한 전율이 쏘아졌다. 꼬리뼈를 타고 오른 찌르르한 감각은 곧 사지로 뻗어 나가 전신을 쾌감으로 뒤덮었다. 번개처럼 내리치는 감각에 예담을 끌어당기던 발끝이 놀라 버둥거리며 취했던 자세가 허무하게 풀어졌다.
“아…… 아…… 아……!”
사정감을 인지할 새도 없었다. 눈앞이 어찔했다. 은찬은 정신없이 몸을 떨며 입 동굴 속으로 정액을 사출했다. 마구 뒤흔들리는 자지를 끄떡없이 입에 문 이예담 때문에 은찬의 좆 끝에서 뿜어진 백탁액은 모조리 그의 입 안에 머물렀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질펀한 좆물에 맞추어 은찬의 허리와 좆 대가리가 덜컹덜컹 요동쳤다.
“아…… 아으…….”
탈력감에 풀어진 다리가 바닥에 닿으면서 전신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추욱 늘어졌다. 갑작스레 입 안으로 쏟아진 비린 정액에 일시적으로 행위를 멈췄던 예담은 곧 목구멍 뒤로 은찬의 체액을 삼켜 넘겼다. 그러곤 언제 망설였냐는 것처럼 다시 쭉쭉 빨았다.
“아, 아으…… 이예담, 응……! 배, 뱉어! 흑……!”
쭙쭙쭙, 예담은 팽팽해진 귀두를 놓지 않고 빨대 빨듯 빨아 당겼다. 여리고 부드러운 살점이 흡착하는 대로 목구멍 속으로 딸려 들어갔다. 튕기는 몸 선을 따라 보짓살 사이에 고여 있던 애액이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다.
“흐익! 으응, 아, 어떡…… 흐응! 안, 읏…… 대! 응……!”
절정이 끝나고 잔잔한 여운이 남아야 하는데, 그 자리로 또다시 절정과 같은 쾌락이 들이쳤다. 입술로 강한 압력을 주며 귀두를 조여 댈 때마다 좁다란 구멍 안에 자지를 쑤셔 넣은 듯 환락 같은 쾌감이 뭉텅이로 와르르 쏟아졌다. 은찬은 사출을 끝내고도 한동안 부르르 떨며 숨을 할딱거릴 수밖에 없었다.
“흐……으웃……. 더, 흐으, 럽…… 더럽잖, 으응, 아…….”
“하아……. 맛있기만 한데. 왜요.”
예담은 입꼬리를 휘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핥았다. 끝나지 않은 절정감이 계속해서 뒷보지로 고여 든 탓에 손가락을 넣어 두었던 구멍이 쫀득하게 조여들며 그를 자극했다.
예담은 체액으로 범벅된 얼굴을 들고 검지와 중지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벌려 좁은 구멍을 넓혔다. 옆으로 주욱 늘어난 구멍 속, 흥건하게 젖은 빨간 점막이 개폐하는 리듬에 맞추어 굼실거리고 있었다. 저 질척하고 뜨끈한 점막에 귀두가 감싸이는 감촉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색정적인 색상을 띤 구멍을 바라보는 예담의 아래턱에 불끈 힘이 들어가면서 목울대가 가파르게 움직였다.
“큿…….”
“으응…….”
감각을 되새기자 달아오른 자지가 단박에 절정에 치달았다. 예담이 성기를 쥔 왼손을 콱 조이면서 자지를 더, 더 급박하게 훑어 내렸다. 으읏……. 낮고 거친 신음을 토해 내며 커다란 손아귀 안으로 울컥울컥 뜨거운 물을 쏟아냈다.
“후우…….”
한참을 쏘아 대던 정액이 멎자, 예담은 자짓물이 덕지덕지 묻어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보지도 아닌, 항문이 벌름거리는 걸 반찬 삼아 사정하다니. 거기다 지금 제 꼴은 어떤가. 식탁 아래 기어 들어간 채 남자의 가랑이 사이에서 막 자위를 마친 참이었다.
“미치겠네. 하하…….”
혼자 실소하며 웃던 예담은 그새 호흡을 진정시킨 은찬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마주했다. 이내 몸을 일으키면서 그가 앉아 있는 의자 쿠션 외측을 짚었다.
“…….”
“…….”
상체가 기울며 마침내 시선이 평행하게 마주했다. 예담은 일말의 주저 없이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뜨겁게 맞물려 오는 입술이 달았다.
* * *
[……식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하아…….”
은찬은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노트북 덮개를 덮었다.
마침내 제일 지루했던 과목의 기말 리포트를 완성했다. 주제 선정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아닌 단계가 없어 내내 골머리를 앓으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이틀간의 유배 생활도 끝끝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으으으……. 어깨야…….”
뻐근한 어깨를 돌려 기지개를 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한참 지난 점심시간 때문인지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열람실 중앙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다음 강의까지 그리 여유롭게 시간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점심 식사는 건너뛰어야 할 듯했다.
책상 위에 어질러져 있던 제 물건을 하나씩 가방 안에 담다 구석으로 밀어 둔, 미처 마시지 않은 음료가 눈에 들어왔다. 할 일이 있는지 도서관에 잠시 들렀던 서승원이 주고 간 거였다.
저거라도 마시면 배가 좀 차겠지. 가방을 어깨에 걸친 은찬은 이제는 차게 식은 라떼를 쭉 들이켜며 열람실 문을 열었다.
“……이번에 KBB 건설 들어간다더라.”
“당연한 거 아냐? 아버지 임원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잖아.”
“그러면 민선우는 나중에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부럽다.”
“오너가는 아니니까 한정되어 있긴 하겠지.”
“그래도 좋겠네. 누군 이번 방학 때 좆 빠지게 굴러야 하는데…….”
“야야. 경영대잖아. 비교할 걸 비교해라. 걔네가 이런 식으로 입사하는 거 보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수학 3개만 더 맞았어도 경영대 가는 거였는데. 쉽진 않지만 그러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았겠어?”
여느 때처럼 로비를 등지고 계단을 향하던 중,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은찬은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인즉슨, 일전에 수민이 언급했던 건설 회사에 민선우가 입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여타 선배들이 그랬듯 힘겹기보다는 조금 쉬운 방법으로.
“좋겠네…….”
부럽긴 했다. 무엇이든 손쉽게 풀리는 인생이. 하지만 어쩌다 보니 우연히 같은 학교에 진학해서 같은 학과로 엮였을 뿐, 그런 유의 사람들과는 살아가면서 마주칠 일 따위 흔치 않은 게 일반적이었다. 고로 부러워하는 것조차 일반적이진 않다.
은찬은 금세 부러움을 훌훌 털어 내고 손에 쥐고 있던 테이크아웃 컵을 휴지통 안으로 던져 넣었다. 저와 상관없는 남 때문에 울적해지는 것만큼 미련스러운 일도 없었다.
“KBB 건설이라…….”
전 세계에서 수주를 받는 굴지의 회사인 만큼 입사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할 듯했다. 동종 업계에서 연봉도 제일 높다던데. 내년 상반기 인턴 지원할 때 거기나 써 볼까, 중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금세 도착한 1층에서 입구 문을 밀자마자 찬 공기가 들이닥쳤다.
“아, 추워.”
호흡과 동시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은찬은 그새 빨개진 귓바퀴를 손바닥으로 감싼 다음, 어깨를 움츠리고선 빠르게 강의동으로 뛰어갔다. 어느덧 완연한 겨울이었다.
* * *
점심 식사를 건너뛰고 출발한 탓에 강의실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조금 더 있다 나올 걸 그랬나……. 은찬은 패딩 점퍼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구석으로 향했다.
[이예담
전에 말했던 영화 내일 개봉하던데. 같이 보러 가요. 오후 12:52]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하니 1시간은 더 전에 보내온 문자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이틀 내내 도서관에 박혀 있던 차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마침 내일 수업이라 해 봤자 오전에 있는 2시간짜리 가벼운 교양 하나가 다였고, 수강하는 모든 과목이 종강을 앞두고 있었다.
수능을 준비하던 때에는 이예담네 집을, 끝난 직후에는 은찬의 자취방을 주 무대로 만나던 두 사람은 최근 들어서는 전시회며 서점이며, 심지어는 어떤 예술가가 그렸다는 벽화가 있는 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만남을 거듭해 오고 있었다. 마치 데이트라도 하는 모양새의 만남을 반복하고 있었던 터라 이번 제안 역시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와 만난다면 보나 마나 하루를 통째로 날릴 게 뻔했다. 영화를 본 뒤 홀라당 인사만 하고 헤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남들은 바쁘게 취업을 위한 스펙을 하나하나 쌓아 가고 있는 와중인지라 조금 망설여졌다.
“음…….”
고민하는 사이 하나둘 학생들이 모이면서 강의실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곧 수업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너 공연 봤어?”
“어어. 아직 감상문은 안 썼어.”
“하아. 안 끌려……. 난 버티고 버티다 강남 예술 회관에서 하는 걸로 예약했어. 인증 사진만 얼른 찍고 와야지.”
“아……. 나도 그럴까? 아니면 너희 둘 사진에 나 합성 좀 해 줄래?”
“합성? 장당 30만 원. 지금 웬만한 자리는 예약이 꽉 찼는데…….”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무심코 듣고 있던 은찬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멍하게 뜨고 있던 눈매를 마구 구겼다.
놓치고 있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공연 감상문이 남아 있었다. 다음 강의 시간까지가 기한인지라 제출 시한을 놓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공연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티켓까지 함께 내야 하는 조건에 있었다.
그러잖아도 다음 주에 수능 시험 성적표가 배부되면 새로운 과외가 잡힐 테고, 이어지는 종강과 함께 준비할 일도 많아질 텐데……. 산더미처럼 떠오르는 각종 과업에 짧은 한숨을 내쉬던 그는 곧 내일쯤 공연에 다녀오는 게 제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후 13:59 영화 말고…… 혹시 오케스트라 공연도 괜찮아?]
은찬은 입술을 짓이긴 채 빠른 속도로 문자를 완성해 송신했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공연에 굳이 이예담과 함께 갈 필요는 없었지만…… 어차피 이예담은 할 것도 없을 테니까, 하며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혼잣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평소보다 일찍 끝난 강의에 은찬은 이예담에게 따로 언질을 주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조금 기다릴 생각이었다.
“역시 아직 안 왔나…….”
늘 어디서든 가시거리에 은찬이 들어올 때면 조수석 창문을 내려서든, 제가 운전석에서 내려서든 인사해 오던 이예담이었는데 주차장에 들어서도 딱히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우두커니 주차장 입구를 바라보던 은찬은 곧 주차장 옆 흡연 구역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뿌연 연기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잖아.”
주의를 기울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몸을 기울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 익숙한 건 음성뿐이었다. 이예담은 평소 제게 들려주던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색과 달리, 냉랭한 기운이 묻어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약속했던 건 내년 계약 연장이었어. 그 이후는 나한테도 월권이야. 덕분에 입사까지는 원활했잖아?”
뭐지. 대체 누구랑 통화하길래.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릴 리 없었고, 이예담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도무지 통화 내용을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계속 듣고 있는 것도 실례겠지. 은찬이 몸을 돌리려던 순간.
“아. 언제 왔어요? 통화하는 거 때문에 말 못 붙이고 있던 거구나.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요.”
이예담은 은찬을 발견하자마자 별안간 전화를 끊었다. 툭, 기다란 연초를 떨어뜨리고 발로 짓이기곤 금세 기색을 바꾸었다. 다정하게 손을 뻗어 와 은찬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들어 주는 손길과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은찬은 금세 제가 하고 있던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을 기다리며 예열되고 있는 차에 함께 오를 따름이었다.
“교수도 센스가 없네. 마지막 과제가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이라니. 그죠?”
“그러게…….”
왠지 그 큰 저택에 사는 이예담은 고상하게 오케스트라 공연을 즐길 것 같았는데 취향은 비단 저와 다를 바 없나 보다. 은찬은 살포시 고개를 끄덕이며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던 티켓을 꺼내 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떤 공연이든 얘가 이렇게 구석진 자리에서 관람해 본 적이 있을까.
“근데…… 늦게 예약해서 박스석밖에 안 남았더라고. 여기가 공연 잘 안 보이는 자리라는데 괜찮아?”
금세 목소리를 낮추며 눈동자를 굴리는 은찬을 보며 예담이 잔잔하게 웃었다. 그러곤 박스석이면 오히려 좋죠, 하며 기어를 변속시켰다. 우우우우웅, 평소 자주 끌던 차보다 한층 더 높고 큰 차체가 우렁찬 배기음을 내뿜으며 달릴 준비를 했다.
끝물에 가깝게 공연을 예매한 탓에 은찬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공연장을 예약한 참이었다. 그마저도 자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박스석’과 관련한 주의 문구에 따라 남는 표를 구입했다. 하나 도착한 공연장에서 찾아간 좌석은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분리되어 전용 공간으로 지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장 귀퉁이에 있는 박스마다 출입문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어차피 연주회라 안 보여도 큰 상관은 없지만…… 딴짓 하기에 정말 좋다는 건 확실하네요.”
예담이 눈썹을 느른하게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
아이러니하게도 그랬다.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두 사람이 자리한 2층 박스석으로는 그 누구도 더는 출입하지 않았고, 공연장 중앙으로만 비치는 조명 때문에 주변은 캄캄했다. 둘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모를 만큼이라 우연찮게 그들이 자리한 좌석은 은밀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지금 저 눈 뜨고 있는 거 같아요?”
“어? 잘 안 보이…….”
예담의 질문에 얼굴을 숙여 다가간 은찬은 곧 눈을 마주친 그가 쪽, 기습적으로 가벼이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바람에 놀라 끅,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 예담은 멈추기는커녕 은찬의 목덜미를 감싸고 눈 밑이며, 뺨이며, 입술이 닿는 대로 연신 쪽쪽거리며 뽀뽀를 해 대는 바람에 그는 한동안 딸꾹질을 멈출 수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뽀뽀 세례를 멈추고 각각의 좌석에 몸을 기댄 두 사람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아 공연장을 응시하며 귀를 기울였다. 지휘자의 인사와 함께 웅장하게 시작된 공연은 은은한 선율로 이어졌다.
“…….”
초반엔 리포트에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연주에 집중하던 은찬은 점차 여리게 변주되는 음악에 따라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일까. 연주자들의 모습이 점차 흐려진다고 생각하다 눈을 떴을 땐 고개가 이예담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가 제 어깨를 은찬의 좌석 쪽으로 더 가져와 기대게끔 한 것이었다.
“아……. 미안.”
“졸리면 좀 더 자요.”
이예담은 성급히 일어나려던 은찬의 뺨을 다시 붙잡아 제 어깨에 기댔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은찬은 잠시간 버둥거리며 몸을 바로 하려다 제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커다란 손에 몸을 맡겼다. 바르작대던 몸짓이 멎어 들면서 다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예담은 어느 순간부터 색색, 고른 숨을 내쉬는 제 옆자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침대에서 잠든 얼굴을 가만가만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상을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현란한 조명에 드리운 빛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콧날과 살짝 벌어진 통통한 입술, 그리고 작은 얼굴에 이어진 여린 목선이 시선을 끌었다. 드러난 가느다란 목덜미를 따라 내려가면, 엊그제 제가 만들어 놓은 난잡한 울혈들이 보드랍고 하얀 몸 곳곳에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예담은 은찬의 목덜미를 느릿하게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몸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만남도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 깨달은 제 마음을 밝히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었다. 대뜸 꺼냈다간 은찬의 성격상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처음 느끼는 감정에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서 저지른 언행들이 하나둘 제 눈에 밟혔던 까닭이다.
이대로 서서히 그의 일상에 스며들며 최소한 그도 자신의 마음을 온연히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비록 과제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그의 제안으로 함께 공연을 보러온 걸로 봐서는 전망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
“으응…….”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며 은찬을 응시하던 사이,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지면서 은찬 또한 눈을 떴다. 말간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기면서 기다란 속눈썹이 밀려 올라갔다.
“어……. 음? 공연 다 끝난 거지?”
은찬이 황급히 고개를 들자 어깨로 느껴지던 달가운 무게가 삽시간에 흔적을 지웠다. 예담은 가벼워졌지만 어쩐지 아쉬워진 어깨를 바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것을 본다는 것처럼 얼굴에는 한가득 다정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네. 뭐…… 앞부분은 다 들었잖아요. 많이 지루했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좀 피곤했나 봐. 으, 매번 피곤해하는 거 같긴 한데…….”
“하하. 나는 백수고 선생님은 아니니까 백수 스케줄에 맞춰서 놀려니 피곤한 게 당연하죠.”
예담은 민망함에 입술을 달싹이는 은찬에게 타박대신 웃음을 내보였다. 덕분에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신 은찬은 괜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문질렀다. 아무래도 아직 남은 잠기운 때문인지 이예담이 조금…… 괜찮아 보였다. 안구를 비롯해 갑자기 빠르게 뛰는 심장까지도, 모두 잠에 취한 신경이 깨지 못해 일어나는 일일 터였다.
은찬은 공연장을 벗어나기 직전, 벽면 한편을 수놓은 커다란 공연 포스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손가락에 걸린 차 키를 빙글빙글 돌리며 걷던 예담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그를 멈춰 세웠다.
“저기, 잠깐만. 여기 왔다는 거 사진으로 남겨야 해서.”
휴대폰의 카메라를 전면으로 돌린 은찬은 자신의 얼굴이 나오도록 포스터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었다. 잘 나오지 않을까 몇 번 추가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사이, 장난스레 다가온 예담이 은찬과 함께 휴대폰 화면 속 사진에 담겼다.
“뭐……야.”
“같이 왔으니까. 사진 나중에 보내 주세요.”
“어…….”
당황해 입술을 핥아 내며 확인한 사진은 어째 각을 잡고 사진을 찍은 저보다 난입한 이예담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목구비의 차이인가……. 은찬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선 제 얼굴이 아닌 이예담의 얼굴을 뚫어져라 훑었다.
“오늘은 과제 때문에 못 봤으니까 다음번에는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했던 영화 봐요. ‘투모로우 솔져’인가? 맞죠.”
“언제 시간이 될 줄 알고 대뜸 같이 보재…….”
“시간이야 많죠. 몰라요? 백수.”
이예담이 눈을 찡긋하며 잔잔하게 웃었다. 너야 그렇지만……. 은찬은 덧붙이려던 말을 삼켜 넘기며 이예담의 말에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그 미소를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지 이예담은 연이어 또 다른 질문을 해 왔다.
“영화 보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건요?”
“응?”
“매번 재미있는 영화 개봉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잖아요? 다음번엔 영화 보고 또…… 남는 게 시간이니까 다른 것도 해요. 우리.”
“아…….”
은찬이 그 제안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망설였다. 아무래도…… 돌려 말하기보다는 곧이곧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난 언제까지고 그렇게 놀 순 없어서. 알잖아.”
“……취업 준비 때문에? 선생님 가고 싶은 회사가 어딘데요.”
“지금은 딱히 어디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제일 괜찮은 곳부터 차근차근 도전해 볼 거야. 아무튼 거기다 이제 과외 새로 시작하면 바빠질 테니까. 너도 알잖아. 고3 과외하면 자주 만나야 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
예담은 은찬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서서히 얼굴에 드리웠던 웃음기를 지웠다.
새로운 과외. 저처럼 누군가를 만나 밀실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터였다. 혹시라도 그 새끼가 저처럼 유은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가 과연 거절할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전에 다음 과외 주선해 주겠다고 했던 거, 그거는 어떻게 될 거 같아?”
“과외 주선?”
“저번에 네가 다음 과외 주선해 준다고 했어서……. 너 성적도 괜찮게 나온 거 같고…….”
우물쭈물 말을 꺼내는 은찬을 바라보며 예담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혀를 꺼내 입술을 축이며 제가 할 말을 골랐다.
“선생님. 꼭 수단을 과외로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요. 재단에 장학생으로 추천받는 방법도 있는데. 학비 외에 생활비 주는 경우도 있어요. KBB 건설이라고 알아요?”
KBB 건설이 매해 추후 입사를 조건으로 걸어 특정 대학 몇 곳에서 장학생을 선정하는 관례는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알 정도로 유명하긴 했다. 워낙 파격적인 조건이었던 까닭이었다. 굳이 그런 수혜에 관심을 가질 필요 없는 이예담까지 알고 있는 게 의외이긴 했지만.
“아……. 거기 당연히 알지. 그렇지만 난 학점이 딱히 좋지도 않고 교수님 추천서 받을 만큼 학교생활 열심히 한 것도 아니라…….”
“꼭 교수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다면요? 어쨌든 조건만 된다면 장학생도 괜찮다는 거네요.”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는 과외가 제일 낫다는 거야. 내 힘으로 돈 버는 거고 계속해 오던 거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장학생……. 되면 좋지. 그걸 말이라고. 따로 과외하러 갈 필요도 없는 데다가 등록금에 생활비 보장해 주는 건 둘째 치고 그 대단한 KBB 건설 입사까지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주절주절 거절하는 뉘앙스의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이예담에게 그게 그렇게 쉽게 선정되는 게 아니라고 면박 놓기가 뭐해 꺼낸 변명들이었다. 하여간 이럴 때 보면 이예담은 정말 뭣 모르는 도련님같이 느껴졌다.
“아무튼 다음 주쯤에 수능 성적표 나오지? 나중에 너 성적 나오고 나면 그걸로 PR 좀 해야겠다. 꼭 너를 통해서 구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
자꾸만 다른 방향을 권하는 이예담을 보니 꼭 과외를 주선해 주기로 했던 약속을 곤란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서승원이 그때 꺼냈던 이야기는 아직 유효할까. 자신감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미 한차례 구직난에 시달린 적 있는 은찬으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선생님이 알아서 과외 구할 거라고요?”
“어어. 요즘 암만 과외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고 해도 아예 안 구해지지는 않을 거야.”
“후, 그러니까 그 과외를 왜…… 아니, 됐어요. 내 성적 나오면 그 부분은 알아서 할 테니까 선생님이 따로 과외 알아볼 생각은 하지 말아요. 알겠죠.”
어딘가 미심쩍긴 했지만 은찬은 곧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예담이 여태 허튼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괜히 서승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나 듣느니,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마침내 수능 성적표를 배부하는 날이 되었다. 먼저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이예담으로부터는 어째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은찬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른 채 마지막 기말시험에 임했다. 조교와 함께 강의실로 들어온 교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쥐었다.
“자. 마지막 시험입니다. 다들 한 학기간 수고 많았어요. 시험 잘 치르고, 내년에 또 보지는 맙시다.”
말 그대로 마지막 시험이라 최선을 다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강의실 내엔 은찬 외에 몇 명 남아 있지 않았다. 은찬은 짐을 챙기면서 꺼 두었던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강의실을 나서자 제가 나온 강의실 외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제각각의 강의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쫑이다!”
“어우. 드디어 종강이구나.”
종강. 한 학기의 마무리를 의미하는 단어이자 속박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앓던 이 빠진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여느 대학생들 사이에서 찜찜한 표정을 한 은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의미였지만.
“왜 연락이…… 안 오지.”
이렇게까지 먼저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예상했던 만큼의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 아닐까. 저번에 말하는 걸로 봐서는 무척 잘 본 것 같았는데……. 가채점했던 것과 다른 결과라도 나왔을까 마음이 쓰였다.
강의동을 빠져나오니 계절에 어울리는 우중충한 빛깔을 한 하늘이 은찬을 맞이했다. 은찬은 꼭 제 마음 같은 날씨 아래에서 연락 없는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화면은 잠잠하고 어둡기만 했다.
“진짜 뭐지……. 먼저 물어보긴 좀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찬의 손가락은 통화버튼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나절 정도 연락이 없던 참이었지만 최근 이예담과 틈만 나면 연락을 해 오던 그로서는 고작 그 정도 텀도 무척이나 길게 느껴져 참을 수 없었다.
허탈하게도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상대방은 전화를 받았다.
“이예담?”
- 아, 응. 말해요.
“저……기. 뭐해?”
- 음. 그냥. 집안 행사 왔어요. 선생님은요.
“아. 나는…….”
태연한 목소리에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서서히 힘이 빠지려던 찰나. 이예담이 슬그머니 기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 성적표 나온 거 때문에 연락한 거구나.
“아……. 꼭 그것 때문은 아닌데. 오늘 연락이 없어서…….”
- 선생님. ……과외, 꼭 해야 되겠어요?
“어? 갑자기 왜 그래?”
은찬은 불안감을 애써 잠재우며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귓바퀴를 바짝 액정에 가져다 댔다.
- 생각보다 성적이 좋지가 않아서.
“어…… 가채점 해 보지 않았어? 좀 다르게 나온 거야……?”
- 가채점 해 본 거 아니었어요. 그냥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
- 그러니까 이걸 통해서 과외 한다는 생각 말고 다른 방안도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야. 넌……. 지금 내 과외가 문제야? 당장 너……. 하…….”
제 말이 그렇게 부담이 되었을까. 더 공부한 1년을 날린 것과 같은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일거리를 먼저 걱정하는 이예담의 반응에 한숨이 푹푹 흘러나왔다.
“이예담. 너 괜찮아?”
- 뭐가요.
“성적…….”
- 재수 해 봐서 그런가. 생각보다 괜찮아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은찬은 가까운 벤치로 가 앉으며 눈두덩을 거칠게 문질렀다. 당장 제 밥줄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이예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 아무튼 선생님, 전에 이야기했던 쪽으로 생각해 봐요. 재단 장학금 쪽이면 굳이 추천서 없어도 가능할 거 같거든요.
“아니…… 그딴 거보다 네 인생이 더 문제잖아. 하…….”
창창한 스무 살, 이제 곧 스물하나를 앞두고 있는데 또다시 공부를 할 순 없을 테고 전에 그의 모친이 언급한 것처럼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해도 계속 만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판이한 미래가 펼쳐질 터였다. 심란했다. 그런 건…… 싫었다.
“아…….”
급작스러운 상실감이 몰려왔다. 은찬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을 붉힌 채로 제 입술을 마구 짓씹었다. 이대로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아 통화가 어렵겠다 생각하던 시점에 맞추어 때마침 이예담도 주변에서 재촉하는지, 수화기 건너 사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몇 마디 더 이어지지 않은 통화가 그렇게 끊겼다.
* * *
“하아…….”
테이블에 뺨을 기댄 은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수능 성적표 배부 이후 거의 자지 못해 몽롱한 상태였으나 피로감보다는 걱정이 컸다. 도무지 집에 가만히 있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아, 종강에도 불구하고 동방까지 나와 시간을 죽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지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이 진동하면서 은찬의 뺨도 함께 떨려 왔다. 은찬은 휴대폰을 뒤집어 재빨리 화면을 확인했다.
“아…….”
이예담으로부터 온 연락이 아니었다.
[전수민
전에 승원이가 말한 과외 아직 남아 있나 봐. 내가 먼저 물어본 건 아님! 얘기하다 말 나와서 알려 주는 거야.(이모티콘) 오후 12:52]
어제쯤 수민이 이예담에 대해 물어 왔었다.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는 소식에 같은 학교로 진학하지 않을까 못내 궁금한 눈치였는데,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은찬의 표정을 읽어 낸 그녀는 한동안 안타까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예담이는 예담이고…… 넌 어떡해? 그쪽 통해서 과외 하기로 했던 거 아니야?〉
〈아……. 뭐,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 수능 잘못 본 애한테 그런 얘기 꺼내기도 그렇고. 어떻게든 되겠지 뭐.〉
대강 둘러대고 대화를 마무리한 참이었다. 지금은 왜인지 자신의 생계와 연관된 과외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제 앞가림이나 해야 할 텐데 자꾸만 이예담이 떠올라 일상생활이 되지 않는다. 손톱으로 득득 테이블 모서리를 긁으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던 찰나, 닫아 두었던 동방 문이 열렸다.
“선배님, 여기 계셨네요.”
“어? 서승원?”
은찬은 늘어뜨렸던 몸을 급히 일으켰다. 까치집이 지어졌을 뒷머리도 어색하게 매만지며 쓸어내렸다.
“저 아직 종강 안 한 과목이 오늘 끝나서요. 덕분에 선배님 만나서 쓸쓸하진 않네요.”
“아……. 되게 늦게 끝나네, 그거.”
“그러게요. 한 번 교수님 사정으로 휴강했다고 일정이 다 밀렸어요.”
털썩, 승원이 은찬 맞은편 의자에 착석했다. 그러곤 상반신을 기울여왔다.
“수민 선배한테 들었어요. 다시 과외 자리 찾으신다고.”
“그게…… 그렇게 되긴 했는데…….”
“전에 말씀드렸던 애, 아직 마음 맞는 선생님 못 찾은 걸로 아는데 시범 과외 해 보시는 건 어때요?”
“저…… 승원아, 고맙긴 한데……. 내가 이번에 과외 맡았던 애 성적이 썩 좋게 나온 거 같지는 않아. 그래서 네가 소개시켜 주는 애한테 괜히 민폐만 끼치게 될까 봐…….”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이예담 때문에 흔쾌히 수락할 수 없었다. 함께 위기에 처했는데 저 혼자만 쏙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며칠 뒤엔 이 순간을 곱씹으며 후회할지 몰라도…… 지금은 내키지 않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이전 과외까지는 대학 잘 보내셨잖아요.”
“그때까진 그러긴 했는데…….”
“그럼 이번엔 학생 역량 문제 아닐까요. 선생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학생이 못 받아먹으면 말짱 꽝이잖아요. 종종 그런 애들 있어요. 해도 안 되는 애들. 그러니까 그건…….”
“걔는, 역량이 떨어져서 잘못 본 게 아니야.”
일순 은찬은 저도 모르게 경직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정정했다. 대뜸 끼어든 은찬에 승원이 말을 멈추자 동방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설핏 어색해졌다.
“미안……. 내가 좀 예민했어. 다 내 잘못 같아서 아까부터 자책하던 중이었거든. 미안해.”
은찬은 난감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서승원은 잠시 뾰족한 입꼬리를 혀로 핥더니 다시 특유의 유들유들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수 있죠, 하며 되레 저에게 공감해 주는 서승원 때문에 은찬은 사뭇 민망해져선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미안. 괜찮으면 밥이나 먹으러 갈까?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좋아요. 밥 얘기 들으니까 배고파지는데요.”
* * *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버스 정류장이었다. 요즘 통 방문을 하지 않아서인지 조금 낯설기까지 했다. 은찬은 잔뜩 껴입은 패딩 속으로 목을 움츠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이예담이 정말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대화 내용을 상기하면 상기할수록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평소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니 위로와 함께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같이 고민해 줄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한국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방향으로. 가능하다면…….
“하아, 하아…….”
한 걸음, 한 걸음, 가파른 언덕을 따라 발을 뻗을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살을 엘 듯한 추위에 하얀 입김이 흩어질 때마다 은찬은 걸음을 서둘렀다. 그가 했듯 약속을 하지 않고 방문한 터라 까딱 간발의 차로 만나지 못할까 걱정되었던 까닭이었다.
종종걸음이 효과를 보았는지 이제 눈앞에 보이는 담벼락만 끼고 돌면 그의 집 높다란 출입문 앞이었다. 마침내 담벼락에 도달한 은찬이 한 걸음 더 내디디려 할 때였다.
“후우…….”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퍼지는 희뿌연 연기가 코끝에 스몄다. 기시감을 느낀 은찬이 반갑게 입술을 열어 예담을 부르려다 멈칫했다. 벽 너머로 혼자가 아닌 듯, 여러 명의 음성이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 1월 되면 자연스럽게 끝나는 거네?”
“아……. 뭐, 아마도?”
“너랑 잘될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을 텐데 좀 불쌍하다. 어떻게 보면 너 시간 버는 데 쓰인 거잖아.”
“불쌍하긴. 애초에 말했다며. 연애할 거 아니라고. 얘 성격상 여지는 줬겠냐? 제멋대로 착각한 게 문제지. 처음부터 아예 못 박아 뒀다는데 뭐.”
“연애라니. 단어 선정도 진짜……. 소름 돋아. 이예담.”
“그렇게 말해야 제대로 알아들으니까.”
마지막에 들려온 목소리는 이예담이었다. 확실했다. 일전에 그의 집을 연락 없이 방문했을 때에도 출입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듯, 금세 나타난 전적이 있었다.
기시감이 드는 내용의 대화가 이어지자 어느샌가 말아 쥔 주먹이 옅게 떨렸다. 잠자코 대화를 경청하면서부터 깨물기 시작한 아랫입술이 새하얗게 질릴 때쯤, 연애 타령하던 이야기가 끝났다. 대화 주제는 서서히 은찬이 추측하지도 못할 제삼자의 일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
더는 힘들게 여기서 버티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은찬은 뒤돌아 걸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하중을 버티고 선 발바닥에 단단히 힘을 주고 세차게 아스팔트 바닥을 박찼다. 각기 다른 음성으로 들려오던 세 명분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내달리는 다리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조롱하듯 들려오던 목소리 대신 아프도록 급박하게 뛰는 심장 소리와 흐트러진 호흡 소리만이 귀청을 가득 메웠다. 스스로가 놀랄 만큼 과한 반응을 하고 있었으나 이를 자각할 겨를도 없었다.
한참 후에야 은찬은 간신히 숨을 고르며 메마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정해. 이럴 일까지는 아니잖아…….”
다시 돌아온 버스 정류장에서 스르르 주저앉았다. 말과는 달리 눈시울에 뜨끈한 열감이 번지면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은찬은 연신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치미는 눈물을 참아 내려 애썼다.
사람이 착각할 만큼 쓸데없이 다정하고 지나치게 상냥했던 이예담의 태도가 문제였다. 그딴 식으로 여지를 주니까…… 오해하지. 그러지 않았으면 진작 눈치채고 알아서 떨어져 나갔을걸.
그간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다 보니 정말 녀석과 사귀는 사이라도 되는 줄 안 건가. 바보같이. 이예담이 뭐가 아쉬워서 저를.
착각을 아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끝이 분명했고,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유효기간 따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손안에 쥐었다 생각한 것이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경험을 해 본 게 한두 번도 아니면서.
“망상 한 번 길었네…….”
은찬은 자조하는 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물기 어린 눈동자 가득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비치고 있었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 * *
새로 준비한 어학 시험 결과가 나왔다. 공을 들인 보람이 있는 결과였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은찬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나직이 자축했다.
“잘했어. 하던 대로만 하면 돼.”
부러 입 밖으로 말을 꺼내 되뇌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취업 준비 덕에 KBB 건설에 무사히 입사하게 되는 결말까지 상상해 보았다. 입학 후 줄곧 꿈꾸던 미래였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조한 기분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진짜 싫다.”
무엇을 상상하고 떠올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뇌리에 남는 건 벽 너머로 들려오던 냉정한 음성뿐이었다.
당시엔 그저 예상치 못한 배신감에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몸을 섞고, 시간을 보냈으면 누구라도 정은 들 거라고. 그런데……. 굳이 이예담을 외국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더불어 떠올릴 때마다 쿵, 내려앉는 심장을 자각하자 조금씩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단순한 배신감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그런 불길한 예감.
아니다. 아니어야만 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이예담을.
은찬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제 뺨을 톡톡 손바닥으로 두드리고는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념에 빠지는 걸 보니 더, 더 바빠질 필요성이 있었다.
[서승원]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응시하며 망설이던 손가락이 결심한 듯 화면의 이름을 눌렀다. 긴 통화 대기음이 흐르고, 초조해진 은찬이 아랫입술을 피가 날 지경으로 치대길 한참. 통화를 끊을지 고민하던 마지막 순간, 서승원이 전화를 받았다.
- 네, 선배님. 전화 온 걸 이제야 봤어요.
“아. 많이 바빠?”
- 아뇨. 안 바빠요. 무슨 일 있으세요?
“승원아. 이런 말 좀 그렇긴 한데 전에 물어봤던 과외……. 아직 자리 있을까?”
* * *
“선생님. 집에 있었네요. 요즘 얼굴 보기 너무 힘들어서.”
며칠간 이예담을 피해 다닌 것이 무색하게 결국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사르르, 근사한 미소를 띤 이예담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던 은찬보다 더 빨리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운전석 차창을 내린 채 반색하는 그는 정차가 금지되어있는 구역인 걸 아랑곳 않고 급히 안전벨트를 끄르고 있었다. 곧 내릴 기세였다.
“내리지 마. 내가 탈게.”
“아, 그럴래요?”
이예담은 지나치게 밝았다. 얼굴만 보아서는 시험을 망친 당사자는 은찬이고, 그는 이 일에 전혀 관계없는 제삼자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은찬이 조용히 한숨을 내뱉으며 차에 올랐다. 예담은 핸들에 한쪽 팔꿈치를 걸친 채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요 며칠 못 본 만큼 보려고요. 뭐가 그렇게 바빠요.”
“내가 바쁜 게 하루 이틀이야? 할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너랑 다르잖아.”
예담은 은찬이 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치댔다.
“선생님. 과외 필요하다 하지 않았어요? 원서만 넣어 놓고 다시 과외 할까요, 우리. 나랑 다시 하면 되잖아요. 말 나온 김에 오늘부터 다시 준비해도 될 거 같은데.”
저런 말을 어찌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할까. 이예담은 정말 수능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걸까? 왜? 또 연애는 아니라 못 박아 놓고 즐길 걸 즐기면 되니까?
“너 혹시…….”
차라리 그날 일을 물어보려던 은찬은 곧 입을 다물었다. 바보도 아니고 쉽게 인정할 리 없었다. 급급한 변명만 듣게 되겠지. 대꾸하려던 마음을 접고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
말이 없어진 은찬의 목덜미에 이예담이 입술을 내렸다. 응? 그렇게 해요, 하며 응석 부리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익히 아는 상냥한 저음이 목덜미를 감싸자 아랫배가 바짝 조여 왔다. 서서히 숨결마저 뜨거워지면서 또다시 그에게 휘말리려 하고 있었다.
예담은 움찔, 움츠러드는 은찬의 어깨를 느끼곤 더욱 짙게 몸을 붙여 왔다. 며칠간 보지 못해서인지 사소한 반응 하나에도 금세 불이 붙었다. 이대로 사람이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일을 치를지도 몰랐다.
“후으…….”
어느새 예담의 잇새에서 나온 말캉한 덩어리가 은찬의 목선을 타고 지분거리고 있었다. 읏……. 혀가 장악하는 길을 따라 살갗에 솜털이 서고, 야릇한 숨이 잇따라 터졌다. 이렇게 쉽게 몸을 내어 주니 쉽게 본 거였다.
“아니야. 예담아. 내가 양심이 있지. 어떻게 또 그래.”
은찬이 몸에 닿아 오는 입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날 제가 들은 이야기를 들먹이려던 충동을 간신히 참아 내곤 애써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요? 갑자기.”
“그새 잊었어?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왔잖아. 내가 무슨 염치로.”
억지로 끌어 올려 고정한 입매가 파르르 떨려 왔다. 은찬은 티 나지 않게 몸을 세워 이예담과의 거리를 벌렸다.
“선생님. 그때 말한 성적은…….”
“미안해. 암만 이런저런 핑계를 댔어도 매번 그런 식으로 과외 시간을 보냈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은찬이 자책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왼쪽 뺨에 닿아 오는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 외면했다. 도저히 더는 그와 눈을 마주친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식?”
“네가 잘하는…… 그거. 좆……질. 암만 감정 없이 욕구 푸는 게 목적이라 해도 과하니까 공부에 해가 된 거 같다. 미안해, 내가 몇 살이라도 더 먹었으면 알아서 절제했어야 했는데…….”
“……선생님은 그게 다였어요? 그럼 나만, …….”
지이잉. 때마침 은찬의 휴대폰이 진동음을 울려 댔다. 이 순간을 타개시킬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소음이었다.
[서승원]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은찬이 금세 좌석에 기댔던 몸을 바로 했다. 예담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눈썹을 치켜뜨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뭐 하는 거예요?”
“가 봐야겠다. 후배가 소개시켜 줬거든. 새로운 과외.”
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방을 고쳐 메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예담이 운전석에서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악력을 절제했지만 다급한 움직임만으로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불거져 움찔거리고 있었다.
“무슨 과외. 말도 없이? 갑자기 왜 이래요.”
“이번엔 그…… 아니다. 잘할 거야. 넌. 일단 이거 놔줘.”
이제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시험을 망친 데에 더해 가뜩이나 희망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관계까지. 이예담과 함께하는 건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은찬은 뜨거워진 눈매에 애써 힘을 주며 습해지는 기운을 내리눌렀다.
탁, 갑작스레 쳐 내는 손길에 힘을 주지 않은 이예담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은찬은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곧장 차 문을 잡아당겨 그의 차에서 내렸다. 공교롭게도 맞은편에서 택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 가요. 잠깐만!”
택시에 승차하자마자 저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이예담의 모습이 차량 백미러를 통해 비쳤다. 가만히 그 광경을 응시하던 은찬이 냉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빨리 출발해 주세요.”
* * *
“응. 수민아.”
- 오늘도 예담이가 네 얘기 물어보던데……. 대체 어디 갔냐고 해서 둘러대긴 했어.
“하아. 말했잖아. 걔랑 더는 엮이기 싫다고.”
- 그럼…….
“네가 이예담이랑 연락하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나는……. 무슨 일 있었는지 설명하면 너도 이해될 텐데 내용이 조금 그래. 설명 없이 미안. 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 이젠.”
- 근데 걔가 너무 급해 보여서 그…… 아니야. 아니야. 이제 예담이 이야기 아예 안 꺼낼게. 오늘 과외는 어땠어?
수화기 너머의 수민이 황급히 말을 돌리며 은찬을 달랬다. 은찬은 이내 구겼던 이맛살을 펴고 부러 밝게 대답했다.
“쌍둥이라 좀 헷갈리더라. 한 명은 아이스하키 선수라 아예 공부랑 담쌓고 지내는데, 내가 가르치는 애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그 집에 들어갈 때면 이름을 못 불러. 잘못 인사할까 봐. 그리고…….”
그날 이후 이예담의 연락처는 휴대폰에서 차단한 지 오래였다. 간혹 휴대폰으로 연락이 들어오는 저장되지 않은 휴대폰 번호 역시 때마다 쳐 내고 있었고, 주변인이라고 해 봤자 수민과 민선우가 전부인 까닭에 그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쉽지 않은 건 마음 정리였다. 매일같이 붙어먹던 짓을 하루아침에 끊으려 하니 잘될 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꾸 생각나고, 떠올리면 가슴이 갑갑해지는 건…… 깊어진 마음 때문이 아닐 것이다.
“……나 이제 집에 다 왔어. 응응. 곧바로 나가야 해서, 나중에 또 연락할게.”
은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현관문에 열쇠를 꽂았다. 문고리를 돌리자 예전에 제가 살던 자취방보다 조금 더 넓어진 현관이 나타났다.
“아빠 아직 안 오셨네.”
지나치게 조용한 사위에 운동화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곧 지방에서의 일을 정리한다던 아버지는 연말에 맞추어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때마침 자꾸만 찾아오는 이예담을 피해 다니기도 신물이 났던 은찬은 곧바로 필요한 짐만 챙겨 아버지가 계약한 집으로 들어왔다.
이전에 머무르던 자취방에 비하면 상당히 외곽에 속하는 탓에 과외에 오고 가는 시간이 한참 더 걸리게 되긴 했지만, 말없이 찾아오는 이예담과 좁은 자취방 여기저기 묻어나는 그와의 기억을 피하는 데에 이보다 더 적절한 공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예담은 아직까지 종종 수민에게 연락을 취하는 듯했지만 그것도 곧 멎을 일이었다. 1월에 끝낸다고 했었으니까.
은찬은 새로 시작한 과외에 맞추어 잔뜩 준비한 문제집과 파일들을 거실 구석에 놓아두었다. 잠깐 앉을 새 없이 곧장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다음 약속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왔어?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데.”
“어차피 근처였어요. 타세요.”
은찬은 몇 번 타 본 승원의 차에 조심스레 올랐다. 그들은 다음 주면 유럽으로 출국한다는 서승원의 스케줄에 맞추어 약속을 잡은 참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과외를 하게 되었으니 가기 전에 꼭 제대로 된 밥 한 끼는 대접하고 싶었다.
익숙하게 차를 운전하는 서승원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예담이 떠올랐다. 기실 버스보다 더 자주 그의 차를 타곤 했던 탓이었다. 은찬은 애써 화제를 던져 쓸데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하준이랑 하진이 말이야. 쌍둥이니까 부럽더라. 평생의 친구가 있는 느낌? 아, 너는 강도영, 김강혁이 그런 느낌인가? 늘 붙어 다니잖아.”
“요즘 걔네랑 자주 안 만나요. 강도영 여친 생겼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어서.”
서승원이 그답지 않게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아. 도영이 여자 친구 생겼어? 인기 많을 거 같더니 금방 생기는구나.”
“음. 선배님은 관심 없으세요? 누구 만나는 거.”
“글쎄. 딱히 그런 감정을 잘 몰라서.”
은찬의 말에 서승원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골랐다.
“아음……. 자꾸 생각나고, 신경 쓰이고, 잘해 주고 싶으면 좋아하는 거죠.”
그러면서 지그시 눈을 맞춰 왔다. 한층 어두워진 눈동자 속에 은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 그게 기준이라면 경험한 적 있긴 한데……. 그래도 좋아하는 거랑은 다른 감정 같아.”
달라야만 했다. 급격히 밀려오는 허탈함에 힘 빠진 웃음을 내뱉은 은찬이 고개를 젖혀 헤드레스트에 뒷머리를 기댔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서승원에게 말을 덧붙이는 대신 소리 없는 미소만을 되돌려주자, 그새 신호가 바뀌었는지 서승원은 금세 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 내일도 아침 일찍 공사에 참여할 거 같아서 여기 숙소에서 자고 갈게.
“아, 그러세요.”
- 문단속 잘하고. 내일 밤에 보자.
“내가 무슨 어린앤가. 아빠도요.”
- 아빠 눈엔 우리 아들은 한참 어린애지.
은찬은 아버지의 말에 킥킥대며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을 지우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대화를 나눴던 기억과 함께 상대방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던 탓이다.
그날 이 휴대폰도 받았는데.
“…….”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은찬은 곧 고개를 흔들어 자꾸만 떠오르는 잔상을 지웠다.
“참. 하준이 부모님이 과외비 입금했다고 하셨지.”
예전에 이예담 과외를 할 때에 비하면 적어진 금액이긴 했으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고3 과외비를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넉넉한 금액이었다. 취업 준비와 병행하는 게 버겁긴 하겠지만 기왕에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수능까지 책임질 생각이었다. 은찬은 은행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과외용으로 터놓은 계좌를 조회했다. 이내 잇새에서 탄성이 터졌다.
“이게…… 뭐야?”
오랜만에 확인한 계좌는 한평생 본 적 없는 잔고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과외 학생 부모님이 숫자를 잘못 입력해서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한 손길로 입출금 내역을 조회하자 나타난 상세한 내용에 더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어디예요 타행입금 1,000,000원]
[무슨일있나걱정돼요 타행입금 1,000,000원]
[이야기좀해요 타행입금 1,000,000원]
[전화라도받아요 타행입금 1,000,000원]
[지금집앞이에요 타행입금 1,000,000원]
[나올때까지있을게요 타행입금 1,000,000원]
[……]
[……]
“아……. 이예담. 미친 거 아니야……?”
계좌로 연락해 올 줄이야. 그것도 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금액으로. 대체 이걸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신경 쓰게 만들려는 의도였다면 제대로 성공한 셈이었다.
“어……?”
그때였다. 조회된 화면이 자동으로 새로 고쳐지면서 제일 윗줄의 내용이 바뀌었다.
[확인하면연락좀줘요 타행입금 1,000,000원]
“……진짜……. 대체 얼마나 더 하려고 이러는 거야?”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다시 몇 번이나 바뀌는 화면에 따라 은찬의 콧날에 드리운 빛이 다채롭게 변화했다. 은찬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새로운 입금 내역이 쌓이는 광경을 바라보다 이내 애플리케이션을 닫았다. 검게 변한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영영 연락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않는 걸까. 아니면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이예담에게는 소액인 금액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머릿속으로 별별 가정이 다 떠올랐다.
혹시 해외에 가게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자는 의도였다면 어떡하지. 그렇게 된다면 정말 더는 만나지 못할 텐데. 그런 가정을 하게 되자 슬그머니 그날 제가 알게 된 상황을 모른 체하고 다시 연락하는 방향 또한 모색하게 됐다. 마침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적당한 핑계도 있었다.
“아냐. 정신 차려. 봐서 뭐 해…….”
피곤했다. 피곤한 와중에도 머릿속을 비집고 잡다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하는 짓을 봐서는 당장 이 집에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고작 잠깐 놀다 치울 인연인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 이러면 꼭…… 저한테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헛된 기대만 하게 되는데.
“에휴. 그만하고 과외 준비나 하자.”
은찬은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내버려 둔 노트북으로 손을 뻗었다. 전원을 켜고 작년에 만들어 두었던 자료를 확인하다 보니 이예담이 몇 번이고 물어 왔던 문제가 단박에 눈에 띄었다. 간신히 생각을 돌리려 애써 봐도 또다시 제자리걸음이다.
“……안 해. 안 해.”
은찬은 툭, 노트북 덮개를 덮어 침대 맡에 던지고는 눈을 감았다. 추웠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이불을 끌어 올려도 창틈으로 스멀스멀 넘어오는 한기가 거셌다.
익숙한 온기가 필요했다. 안정감을 가져다줄 다정한 몸이 그리웠다. 익히 아는 뜨거운 체온을 그리자 몸이 알아서 박동하기 시작했다.
* * *
“선생님.”
“네……가 여긴, 어떻게…….”
난데없이 나타난 이예담이 천연스레 침대 위로 무릎을 올렸다. 빳빳하게 선 가지 같은 성기가 탄탄한 복근에 붙은 채로 잘게 흔들리며 위용을 뽐냈다. 전라의 상태로 성큼 다가서는 몸이 위압적이었다.
“읏, 야……! 어떻게 왔냐, 고……. 힉!”
이예담은 소리 없이 웃으며 은찬의 종아리 바깥쪽 매트리스를 짚었다. 그러곤 곧장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완만하게 굴곡진 가슴 아래를 쓸어내렸다. 단단한 손끝이 예민한 살갗을 간질이자 금세 가느다란 허리가 들썩이며 튀어 올랐다.
“하으, 읏! 아, 가, 갑자기 이러면, 으응……!”
은찬이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뻗어 매트리스 위를 짚어 내자 그에 맞추어 뒤에서 굵직한 팔뚝이 쑤욱 하나 더 나타나며 은찬의 몸을 감싸 안았다. 두툼하고 탄탄한 허벅지가 하반신을 죄어 오고, 은찬의 양다리는 곧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하윽! 뭐, 야……?”
“뭐긴.”
쪽, 뒷덜미로 부드럽게 입술이 맞닿으면서 뜨끈한 숨결이 쏟아졌다. 익히 알고 있는 감각에 놀란 은찬이 몸을 움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제 앞에서 빙긋 웃는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로 고요히 웃고 있었다.
“은찬아. 네가 불러들였잖아.”
“마, 말도…… 으응, 안 돼…….”
이예담이 둘이었다. 임하준과 그의 쌍둥이 형제처럼.
“대체 이게 무슨…… 으, 웃……!”
입술을 떨어뜨리고 나서 침대 헤드에 느른하게 기대 있던 이예담은 여유롭게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그러곤 팔을 쭉 뻗어 은찬의 하얀 가슴살을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하으응……! 보드랍게 함몰되어 있던 젖꼭지가 갑작스러운 자극으로 인해 점차 모양을 잡아 갔다.
뒤의 이예담은 말랑거리는 은찬의 가슴 몽우리 근처를 손가락을 모아 꽈악 오므렸다가 넓게 펴며 쭈욱 늘렸다. 부드러운 가슴살이 단단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그러모아졌다 팽팽히 펼쳐질 때마다 정점 주변이 후끈후끈, 근지러워지고, 반복되는 희롱에 일자로 파인 함몰 유두가 조금씩 뭉쳐 갔다. 은밀히 쌓여 가는 쾌감에 은찬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말이…… 말이 되는 소릴 해! 으읏!”
이예담은 가슴 아래에 양 손날을 대더니 곧장 밀어 올렸다. 커다란 손으로 부드러운 가슴살을 끌어모아선 반죽하듯 덥석 주무르며 짙어진 숨결을 내쉬었다.
“후으……. 아. 느낌 좋아.”
그는 손아귀 가득 찬 연한 살을 모으고 검지를 들어 톡, 톡 유두를 후볐다. 게으른 젖꼭지는 따듯한 공기에 취한 채 아직도 말랑말랑하게 일자로 파묻혀 있었다. 가볍게 정점에 준 자극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뒤에 있던 이예담은 손가락을 펴선 우악스럽게 함몰된 젖꼭지를 비틀었다.
“아으응! 흣! 아아, 그, 만……!”
“그만하긴. 젖은 좋다고 서는데.”
끈질기게 주어지는 자극에 그저 움푹 파인 보드라운 살점만 느껴지던 가슴 정점에 연분홍빛 동그란 돌기가 단단히 섰다. 피가 몰려 화끈하게 달아오른 열감도 함께였다.
이예담은 통통한 젖꼭지를 힘을 주어 짓누르며 나오지 않은 모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젖구멍이 비틀릴 때까지 강하게 쥐어짜도 알이 커 음탕한 돌기에서는 좀처럼 젖물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아…… 흑! 우웅!”
가슴살 주변만 집요히 매만지는 이예담을 지켜보던 또 다른 이예담이 단숨에 다가와 고개를 숙여 묵직해진 유두에 입술을 내렸다. 힉……! 뜨겁고 축축한 것이 젖꼭지를 감싸는 느낌이 아찔했다. 은찬이 당혹감에 바르작대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뒤에서 단단히 저를 틀어쥔 이예담 때문에 몸을 비트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쫍, 쪼옵, 촙. 뒤의 이예담이 모아 준 가슴살에 앞의 이예담이 입술을 내린 채 뻐근할 정도로 강한 압력을 주며 유두를 빨았다. 가슴살이 뜨끈한 입 안으로 쭉쭉 빨려 들어갈 때마다 하얀 가슴에 여러 줄기로 비치는 옅은 핏줄이 한층 진해져 갔다. 말캉한 가슴살이 꼴딱꼴딱 목 뒤로 넘어가는 이예담의 타액에 맞추어 출렁출렁 요동쳤다.
“아, 으…… 이상, …… 흐으, 해…….”
몇 번 더 쭉쭉 젖꼭지를 빨아 대며 애꿎은 가슴살을 음험하게 희롱한 이예담은 물이 나오지 않는 젖구멍에서 미련을 지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혀를 쑤셔 댔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야릇한 감각에 은찬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구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앞의 이예담이 고개를 들어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고 큰 유두를 그러잡았다. 앞으로 거세게 쭉 잡아당겼다.
“히이! 아, 아파아! 힉……!”
은찬의 허리가 튕기면서 앞으로 딸려 나갔다. 하나 가슴이 쭉 뽑히듯 딸려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뒤에 있던 이예담이 가슴살 외곽을 바짝 끌어당기고 있던 탓이었다.
결국 은찬은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한 어정쩡한 위치에서 늘어진 젖통으로 쏘아지는 저릿한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으응…… 응, 아!”
반대 방향에서 쏟아지는 자극에 혹사당한 연한 분홍빛 유두와 유륜은 평소보다 더욱더 크게 부풀어 발발 떨렸다. 꼭 과실이 탱글탱글하게 농익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모양새였다. 쾌감에 젖어 들어 푸욱 익은 포도알 같은 젖꼭지를 손가락 대신 다시금 입술이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으, 흐으으……. 하으…….”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까슬한 혀가 젖꼭지의 미세한 돌기들을 마구 핥을 때마다 전류가 통하듯 찌릿찌릿한 감각이 가슴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치…… 젖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절절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통각과 닮은 묘한 감각이 아찔한 전율로 변모하고, 잔뜩 수축한 근육들이 최대한으로 조여들었다. 그러다 한껏 긴장했던 근육이 단번에 느슨히 이완되면서 마침내 퓻! 무언가 톡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아아아아! 으! 흐으으……! 아응!”
언젠가 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젖꼭지에서 모유가 발사되는 신호였다.
묽고 점성이 없는 희멀건 물이 퓻퓻 터지며 기습적으로 새기 시작했다. 사정감과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기묘한 쾌감이 터지는 유즙과 함께 폭발하듯 펑펑 솟구쳤다. 넘치도록 흐르는 모유에 고개를 박은 이예담의 입가를 타고 하얀 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하아. 내가 여기서 젖 나오면 기분 좋을 거 같다고 말했었죠. 그럴 것 같았어. 하으…….”
“아……. 아깝게. 씹.”
뒤에서 부지런히 가슴을 주무르던 이예담이 앞에서 젖을 빠는 이예담을 향해 낮게 뇌까렸다. 줄줄 새고 있는 모유를 바라보던 눈가를 가늘게 좁힌 채 턱짓했다.
“젖 좀 더 짜 봐.”
“아, 흐으, 더, 더는 안 돼애……!”
은찬이 허리를 비틀며 있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젖소가 된 것 같았다. 마치 젖소의 젖을 짜는 것처럼 손가락에 힘을 모아 죽죽 가슴살을 모으고 반죽하자, 이를 신호로 여긴 앞의 이예담이 더더욱 격렬히 젖통을 자극하며 모유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이 입술을 이용해 젖꼭지를 빨다가도 잘근잘근 반듯한 이로 돌기를 거칠게 깨물고 씹어 댔다. 하응, 으으응…… 두 남자가 주는 압력에 의해 젖꼭지에서 뭉근한 느낌이 강렬하게 차올랐다. 그럴 때마다 은찬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밭은 숨을 토해냈다.
은찬의 가슴 끝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하얀 물이 허리를 거쳐 골반을 둥그렇게 스쳐 지났다. 줄줄줄, 한참 동안 마르지 않고 짜여 나오던 물은 가슴 몽우리를 거듭 쥐어짤수록 점차 진하게 바뀌기 시작해,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숫제 점성마저 생겨났다. 뒤에 자리한 남자의 허벅지와 맞대어진 부위에 끈적해진 유즙이 고여 들었다.
“아앙…… 앙!”
참을 수 없다는 듯, 뒤의 이예담이 은찬의 오른쪽 가슴을 끌어당기며 제 얼굴을 내렸다. 바짝 들이민 입술로 게걸스럽게 하얀 즙을 쭉쭉 빨았다. 반대쪽 젖가슴은 여전히 또 다른 이예담에 의해 까득 깨물리고 있었다.
“하으으…… 아, 아아…….”
두 남자에게 양 젖통을 희롱당하는 은찬이 몸을 떨며 환희에 차올랐다. 난데없이 가슴에서 모유가 뿜어지는데도 어찔한 쾌감만이 뇌를 적셨다. 가슴을 빨기 좋게 내민 채 두 다리로 침대 시트를 북북 밀어내며 자지러졌다.
“와. 보짓물 봐 봐. 좋아 죽네.”
이젠 젖이 도는 젖구멍에서뿐만 아니라 보지 구멍에서도 찐득하고 반투명한 점액질이 질질 쏟아졌다. 흥분해 발랑거리는 질구 위로 축 처졌던 음낭이 탱탱하게 차오르고, 좆 기둥은 바짝 일어선 채 부드러운 뱃가죽을 퉁퉁 때렸다. 한동안 전혀 빼 주지 않았던 까닭에 매우 둔중한 움직임이었다.
은찬이 뒤의 남자에게 가슴을 빨리며 소스라치는 동안 잠시 쉬고 있던 앞의 이예담이 발기한 채 느릿느릿 허공을 가르는 은찬의 자지를 움켜쥐었다. 그러곤 비릿하게 웃으며 기둥을 무성의하게 흔들었다.
“좆으로 딸치는 것보다 보지 쑤셔 주는 게 더 좋죠?”
“흐읏…….”
“솔직히 말해요. 보지 벌렁이는 꼴을 보면 나 없는 동안 한두 번 쑤신 게 아닌데. 응?”
“아니, 흣…… 아니야아…….”
“아니긴. 이래도?”
푹! 자지를 쥐지 않은 반대편 손이 검지와 중지를 질척하게 젖은 질구 안으로 쑤셔 박았다. 투실투실 살찐 보지를 가르며 물을 한가득 머금은 살점을 건드리자 픽픽, 물줄기가 튀어 올랐다. 앙증맞은 음순이 문을 닫듯 손가락 위로 포개지면서 보지 구멍이 꽉 조여 왔다.
“히윽! 아……! 아웃! 흑!”
“좋지? 응? 보지가 손가락을 안 놔주는데.”
“흐으으…….”
“대답. 안 해? 좋냐고, 후으, 물었는데. 그만할까?”
“흐으응, 아, 아응. 조, 흐으, 좋아아. 거기…… 보지이, 쑤셔 주는 거……. 힉!”
“하아……. 그래야지.”
은찬은 열에 취한 목소리로 결국 쾌감을 인정했다. 더, 더, 쑤셔지고 싶은 욕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찔걱, 찔걱. 젖은 살점이 마찰하며 음탕한 소리가 울릴 때마다 무자비하게 들이치는 손길이 점점 더 속도를 높여갔다. 매섭게 손가락을 박아 넣고 빼낼 때마다 쫀득한 속살 사이에서 흐른 뜨거운 물이 도톰한 둔덕을 빠르게 적셔 나갔다.
마침내 한참 안을 후벼 파던 이물질을 아예 밖으로 빼내자, 기다랗고 단단한 손가락을 타고 흐른 애액이 핏대가 도드라진 손등을 흠뻑 적셨다. 벌겋게 익은 육벽이 쿵, 쿵, 박동하며 들썩거리고, 벌어진 은찬의 양 허벅지 안쪽 근육이 파르르 떨려 왔다.
“보짓물이……. 씨발. 한강이네. 이대로 자지 두 개는 그냥 먹어 치울 기세네요.”
“흐으, 마, 말도 안…… 으응, 안 대애…….”
“돼. 보지에 자지 두 개 박고 싶어서 계속 상상해 온 거잖아. 응? 하는 김에 뒷보지도 쑤셔 주고. 안 그래요?”
“아, 그런 적…… 후응, 없어어…….”
똑같이 생긴 쌍둥이 이예담이라니, 두 개의 자지가 제 보지들을 꿰뚫어 주길 바라다니, 정말 그런 적…… 으으응…….
미끈거리는 점막을 문질러 대는 손길에 뜨겁도록 아래가 조여들었다. 이 상황의 출처를 유추할 정신이 없었다. 오롯이 과도한 성감에 무너져 내릴 따름이었다.
“씹. 보지 구멍 벌름거리는 거 나도 보여 줘요. 얼마나 헐렁한지 보게.”
한참 모유를 빨아 대는 데 정신이 팔렸던 뒤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모양 좋은 입술 표면을 타고 허연 물이 번들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록, 잠시간 방치당한 유두 끄트머리에서 질척한 유즙이 방울져 흘렀지만 함빡 젖은 젖꼭지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의 관심은 오물거리는 구멍을 향해 쏠린 상태였다.
“아, 안 돼……! 아흣……!”
앞의 이예담이 죽 찢어 벌린 보지에 뒤에서 뻗어 온 손이 더해져 구멍이 사방으로 한껏 더 넓게 벌어졌다. 단단한 손이 넷이나 달려들어 연약한 보짓살을 함부로 팽팽하게 펼쳐 대고 있었다. 졸지에 바깥으로 드러난 빨간 속살이 경련하듯 굼실거렸다. 뒤에 있던 이예담이 혈액이 몰려 새붉어진 음핵을 부러 엄지로 파팟 빠르게 비벼 대기 시작했다.
“아아응, 흐응……! 응!”
은찬은 축축해진 몸을 비비 꼬며 교성을 터트렸다. 침대 시트를 밀어내던 발끝이 곱아든 채 하얗게 질려가고,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젖은 클리토리스와 구멍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여전히 보지에 개구기를 끼운 것처럼 질구를 찢을 듯 벌린 손가락은 유지되고 있었다. 음란한 구멍 속 야릇한 선홍빛 물결을 지켜보던 앞의 남자가 최대치로 벌어진 구멍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뾰족한 혀를 날름 내밀었다.
“흐…… 으…….”
혀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선정적일 만큼 새빨간 보지 속살이 빨리기를 기대하며 발씬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앞의 이예담이 내민 혀를 넓게 폈다. 후우……. 습한 숨결을 뜨겁게 내뱉어 조갯살을 파르르 떨리게끔 만들더니, 이윽고 비벼져 부은 보지를 혓바닥으로 넓게 쓸어 올렸다. 힉! 은찬의 고개가 꺼떡 뒤로 넘어갔다.
“하으으……!”
“아……. 보지 좀 빨아 줬다고 좋아 죽네.”
하하. 뒤의 이예담이 내뱉는 말에 보지를 빨던 이예담이 낮게 웃음 지었다. 음성이 퍼지면서 보짓살로 전달되는 옅은 진동에 간지러움이 일어 몸이 절로 배배 꼬였다. 견디지 못한 은찬이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며 그의 입술에 보지를 찰싹 접붙였다.
보드랍고 통통한 음부 살이 이예담의 입가를 짓누르자 갈라진 기다란 틈은 더더욱 적나라하게 벌어졌다. 하……. 가만히 입술을 대고만 있어도 옴찔거리는 뜨끈한 보짓살의 움직임에 이예담은 곧 제 콧날에 맞닿은 음핵을 부러 꾸욱 누르며 쫍쫍, 야들야들한 보지를 빨았다. 흐응……. 여전히 꺾어진 고개를 바로 하지 못한 은찬이 연신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윽, 흣, 흐읏……!”
심을 세운 살덩어리가 연약한 점막 안을 푹푹 쑤실 때마다 유린당하는 보짓살이 격하게 좁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안달 난 보지 구멍과 뒷보지 구멍 두 개가 동시에 파르르 입구를 벌름거렸는데, 최대치로 확장시키는 것도, 촘촘하게 조이는 것도 모두 한 박자에 맞추어 진행되니 각 구멍 사이에 낀 여린 회음만 고달파졌다.
끈적한 점액질에 뒤범벅된 얇은 살결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애처로이 떨렸다. 회음 중간에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려 있던 보짓물 한 방울이 수축하는 살결로 인해 또록,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침대 시트를 적셨다.
처음엔 일방적으로 딸려 나가기만 하던 보짓살은 강하게 안을 자극하는 두툼한 혀에 맞추어 차츰 자지를 빨아 삼키듯 구멍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보짓물과 타액으로 흠뻑 젖어 든 살점이 나풀거리자 쭉 뻗은 혀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갔다. 아아앙……. 보지도, 이예담의 혀도 서로 빨겠다고 앞다투어 끈적끈적한 살덩이를 날름거렸다.
“아……. 보지에 혀 잘릴 뻔했네. 보지 단속 좀 해야겠어요.”
“더는 못 벌렁거리게 자지로 막아 주는 건 어때.”
“흐으…… 으, 그럼…… 응, 후응…….”
뒤에서 은찬을 껴안고 있던 또 다른 이예담이 그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두 눈이 마주치자, 단박에 살짝 벌어진 입술을 집어삼키며 뜨거운 혀가 은찬의 입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응…… 으응……. 후흡!”
몸집만큼 두툼한 혀는 아랫입 대신 윗입을 난잡하게 헤집기로 작정했는지 여린 점막을 거침없이 찌르며 파고들었다. 숨이 모자라 헥헥거리는 호흡에도 상관 않고 혀뿌리를 비비고 치아를 들쑤시며 입 안 전체를 격렬히 탐했다.
입술과 보지를 모두 내어 준 은찬은 그들이 하는 대로 휩쓸리며 파들파들 사지를 떨었다. 음부와 혀가 빨리면 빨릴수록 꼿꼿이 선 남성기가 몸집을 부풀린 채 휘청거려 타악, 타악 말랑한 뱃살 주변을 쳐 댔다. 반들거리는 선액이 아랫배에 흥건하게 묻어났다.
“우, 우응! 으으응!”
손발이 제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칭칭 몸을 동여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온몸의 수분이 입술을, 보지를 뽑을 듯 맹렬히 빨아 대는 두 남자로 인해 바짝 말라 갔다.
그저 끙끙 앓는 소리만 흘려 대는 은찬을 치켜뜬 눈으로 올려다보던 앞의 이예담이 보지에 묻었던 얼굴을 떼어 냈다. 벌어진 틈새에서 흐른 보짓물이 입술과 연결되어 지이익, 길게 늘어지다 공중에서 뚝, 끊겼다. 이예담은 숙였던 상체를 바로 하고, 제 복근에 올라붙은 불그죽죽한 살기둥을 주욱 쓸어내리며 붉은 혀로 입맛을 다셨다.
탁, 탁, 손날이 음모에 닿을 때까지 기다란 좆을 아래위로 쓸었다. 질펀한 체액으로 점철된 손바닥에 감싸일 때마다 좆 기둥을 둘러싼 오돌토돌한 핏줄이 불끈거렸다. 마침내 선액이 살덩어리 전체에 적당히 펴 발라지자, 큼지막한 귀두에 살짝 모자랄 만큼 벌어진 구멍으로 제 것을 가져다 댔다.
“으응……. 흐으…….”
입술을 맞물린 터라 접합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예민한 점막으로 느껴지는 감촉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주 뜨끈하고 두툼한 살덩어리가 구멍을 꿰뚫고 싶어 툭, 툭 압력을 가해 오고 있었다. 아……. 쫀득거리는 점막에 선단을 비벼 오는 몸짓에 은찬은 사타구니를 쫘악 내벌리며 자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벌름거리던 구멍이 박기 좋게 확장되면서 굵다란 좆 대가리가 밀려들어 갔다. 부드럽게 밀려나는 점막으로 좆 기둥을 두른 요철이 선명하게 느껴져 단박에 보지 속살에서 아찔한 소름이 솟구쳤다.
“흐으읏, 응…….”
“후으…….”
자지를 쑤셔 박은 이예담이 삽입에 바르작대는 골반을 움켜쥐었다. 몸을 고정하고선 허리를 느릿하게 밀어 올리자, 절로 은찬의 허리가 둥글게 휘었다.
“으으으응……!”
“선생님. 그동안 내 자지 씹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요. 하아아……. 이렇게, 후, 맛있게 먹는데……. 응?”
녹진해진 구멍 가득 커다란 살덩어리가 들이치니 쾌감에 시야가 흐려졌다. 으응, 응……. 삽입의 기쁨에 요사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은찬의 뒤에 자리한 남자가 갈급하게 빨아 대던 혀를 놓아주고 고개를 들었다. 음욕이 도사린 눈동자 표면으로 음란한 교합이 비추고 있었다.
“후으……. 보지 더 벌려. 같이 넣게.”
“그럴래?”
앞의 이예담이 선뜻 동의하며 당장이라도 보지 구멍을 죽 찢어 낼 것처럼 억지로 검지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이미 넘치게 커다란 살덩이에 헤집어진 점막이 힘겹게 벌어지며 기다란 손가락마저 집어삼켰다.
“아, 안 돼…… 보지, 응, 보지이…… 찢어, 흐으, 찢어져!”
격하게 고개를 도리질했지만 두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는 저항 같았다. 오히려 애원하는 목소리가 욕망을 부채질해, 회음을 비비던 자지로 한결 더한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미끈거리는 선액이 잔뜩 도포된 성기가 여린 회음살을 거칠게 문지르며 기회를 엿봤다.
앞에 있던 이예담이 별안간 보지에 쑤셔 넣지 않은 팔을 뻗어 은찬을 껴안았다. 그러곤 마른 등을 껴안은 채로 서서히 침대 매트리스에 몸을 기댔다. 보지 구멍 속에 좆과 손가락이 쑤욱 박힌 채로 별안간 은찬은 그의 몸 위에 포개진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하아…….”
은찬을 껴안고서 매트리스에 기댄 이예담 때문에 그의 엉덩이는 살짝 하늘을 향해 쳐들린 상태였다. 벌어진 무릎은 이예담 허벅지 사이 매트리스 공간을 찍고 있었고, 꼬물대는 발끝 또한 제 나름대로 침대를 받쳤다. 은찬은 졸지에 탄탄한 가슴팍에 기대진 발긋한 뺨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들려 애썼다.
그 파닥거리는 움직임에 부드럽게 출렁이는 엉덩이 사이, 벌름거리는 후장 구멍과 손가락에 걸려 길쭉하게 벌어진 질구가 나란히 빠끔거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척추를 관통하는 찌릿한 전율을 안겨다 주는, 그야말로 박음직스러운 절경이었다.
“하. 씹……. 꼴려.”
뒤에 있던 이예담이 무릎걸음으로 몸을 옮기곤 제 사타구니와 뽀얀 엉덩이 사이 간격을 맞추었다. 아래에서 은찬을 받친 이예담보다 더욱 바깥의 매트리스에 무릎을 대고 올라타다시피 한 것이다. 그러고는 꿈틀거리는 뒷구멍이 아닌, 이미 다른 좆이 가득 들어찬 구멍을 겨냥해 좆 대가리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 아……! 아으응! 너, 흐으, 너무 커서어…… 아아! 안, 돼! 마, 망가져어!”
은찬이 요란하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거렸다. 녹진녹진 풀린 구멍에 걸려 있는 손가락이 좁아터진 보지 구멍을 비집어 벌리며 이물질을 맞이했다. 검지를 살살 돌려 가면서 벌건 귀두에 공간을 내주었지만, 좀처럼 완연히 진입하지 못하자 슬슬 질 벽을 긁어내기까지 하며 갈라진 틈을 길게 넓혔다.
그새 안에 고인 보짓물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면서 새로운 성기의 진입에 윤활유 역할을 해 주었다. 충분히 쏟아진 찐득한 보짓물에 검지가 매끄럽게 빠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에서 찔러 오는 자지가 퍼뜩 틈새를 들쑤셨다.
“아, 아으으……!”
뒤에서 뻗어 온 팔이 들썩이는 가슴을 감으며 남은 좆 기둥을 단번에 푹! 밀어 넣었다. 쩌억! 말랑말랑한 엉덩잇살이 납작하게 찌그러지며 성기가 기어이 꾸역꾸역 자취를 감추었다. 접합부에 남은 건 오로지 욱여넣지 않은 음낭과 이슬 같은 체액이 맺힌 거칠한 음모뿐이었다.
“아흑, 흐! 아프, 응! 흐으, 으……끄!”
눈앞에 일순 번쩍이는 빛줄기가 튀었다. 은찬이 도리질하며 허리를 비틀었다.
“후아……. 보지 안…… 진짜 좁고 뜨거워.”
“하……. 좆 터지겠네. 씨발.”
지나친 압박감에 두 남자 모두 얼굴을 잔뜩 구겼지만, 그만두겠다는 말 대신 세력 다툼 하듯 경쟁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좁은 질 벽을 철퍽철퍽 긁어 대며 부딪히는 성기들이 몸싸움하듯 사납게 요동쳤다. 그럴 때마다 보지 내부가 퍼붓는 애액으로 함빡 젖어 들었다.
찰싸악! 사납게 찔러 드는 성기에 자지만큼 커다란 고환이 보지 아래를 휘갈겼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함께 아찔한 전율이 조갯살을 타고 퍼지고, 음부 입구에 자리한 클리토리스로 피가 몰려 터질 듯 공알이 화끈거렸다.
“흐윽……!”
분명히 조붓한 보지에 거대한 자지를 두 개나 쑤셔 넣으면…… 아파야 했다.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나 끔찍한 통각을 감지하기 전, 아래에서 나타난 손바닥이 부풀어 오른 음핵을 꾸욱 짓누르고선 느릿느릿 뭉개기 시작하자 그런 생각은 금세 휘발되었다.
둥글리는 손길에 따라 아랫배가 뭉치고 숨이 버거워졌다. 무심한 손길 하나에 무너진 은찬이 힘이 빠진 허벅지를 달달 떨었다.
한계까지 팽팽히 벌어졌던 구멍이 본능적으로 다시 오므라들며 조여들었다. 흥분한 보짓살이 한결 더 쫀득하게 안을 죄자 은근하게 돌기를 짓치던 손바닥이 금세 기세를 달리했다. 보이지 않을 만큼 재빠르게 잘잘 손목을 털며 클리토리스를 비볐다.
“흐아, 아으으, 응, 으읏! 아아아!”
잠시도 손을 떼지 않은 상태로 물기 어린 점막을 격하게 비비자 뭉개진 음핵에서 벅찬 열기가 피어올랐다. 은찬은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는 손길에 화답하듯 스스로 사타구니를 활짝 벌리곤 더더욱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쭉 뻗은 발등으로 가느다란 혈관이 마구 섰다.
“아아응! 흐으응! 아! 조금만 더어! 으흣!”
“아프다더니……. 선생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게게 풀린 눈으로 졸라 대는 은찬의 모습에 아래에 자리한 남자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골반을 움켜쥔 손가락 뼈마디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갔다. 연이어 허리를 매섭게 쳐올렸다.
“아, 아, 아……! 으응, 흐으으!”
뒤에 자리한 이예담이 미리 들어가 있던 제 자지를 빠르게 꺼냈다. 온전히 귀두를 꺼내면 다시 진입하기 요원한 터라 매번 굵다란 선단은 벌겋게 익은 구멍 끄트머리에 꼭 걸쳐져 있었다. 그로 인해 빠듯한 질 안은 터질 듯 홧홧했는데, 역치를 넘어선 열감을 견디지 못한 은찬은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려 대곤 했다.
“후으, 후…….”
몇 번 아래에 있는 이예담의 허리 짓을 감내하던 또 다른 이예담이 이에 질세라 단단하고 뜨거운 것을 마구잡이로 처넣었다. 비벼지는 질 벽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조여들었다. 떨리는 꼬리뼈를 타고 치솟는 쾌감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좆 기둥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딸려 다니던 점막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관성처럼 수축하며 자지를 씹듯 우물거리자, 자극당한 두 성기는 외려 희열감에 젖어 보지를 찢어발길 기세로 내부를 동시에 두드렸다. 얇은 뱃가죽 위로 둥그런 선단 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튀어나왔다.
“아……! 흐으, 아, 안 대…… 응! 헤엑!”
살짝 왼쪽으로 휜 좆 대가리는 두 명의 이예담에게 동일하게 적용돼, 은찬을 마주한 이예담과 그를 뒤에서 껴안는 이예담의 좆이 각기 다른 방향의 빈 질 벽 끄트머리를 겨냥한 채 사납게 긁어 대는 꼴이었다. 미끈거리는 성기가 더욱 매끈한 속살을 문지르자 제멋대로 날뛰는 살덩이가 쳐 대는 점막 곳곳이 감당하기 힘든 쾌감으로 물들었다.
“하, 씹……. 좋지. 후으, 느끼고 있잖아요.”
“흐으, 으으, 아, 조아아…… 으, 응, 조, 흐으, 조아…….”
안 된다고 했다가, 좋다고 했다가. 정신이 없었다. 두 성기가 빠듯하게 들이치는 추삽질에는 몰아치는 쾌감으로 인해 조금의 쉴 틈조차 존재하지 않는 탓에 도통 제대로 된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찬은 모든 이지를 잃어버린 채로 그저 백치처럼 좋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아, 후우, 후……. 미치겠다.”
“큿…….”
진한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질겅질겅 씹어 댄 유륜이 타액과 유즙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팅팅 불어 터진 유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의 이예담이 근육질의 팔을 뻗어 은찬의 양 젖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폭신한 가슴살이 손바닥에 짓뭉개지자 젖구멍에서 흘러나오던 모유가 한층 더 빠르게 줄줄 흘러내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을 적셨다.
“하으응……. 우, 유…… 자꾸 나와서어……. 으응…….”
아주 오랫동안 가슴 속에 고여 있던 탓인지 오돌토돌한 돌기에서 울컥울컥 유즙이 쏘아질 때마다 은찬의 허리가 움찔거렸다. 끝 모르고 쾌감을 느끼던 은찬의 보지가 덩달아 쾌락에 절어 안을 옴쭉 조이자, 질척하고 습한 내부가 단숨에 두 성기를 감싸 안고 주물렀다. 쫀득하게 감겨 오는 점막과 더불어 뜨겁고 거친 두 성기가 맞닿아 비벼지며 한층 더한 쾌락을 이끌었다.
“큿…….”
“우읏…….”
조금의 틈도 없이 자지에 내리치는 과도한 자극에 두 명의 이예담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은찬을 앞뒤로 감싼 몸이 바짝 수축하면서 잔떨림이 시작되었다.
뒤의 이예담이 은찬의 귓바퀴에 홧홧한 숨을 쏟아 내는 동시에 질 안에 뜨끈한 정액이 퍼져 나가자, 아래에 자리한 이예담은 은찬의 골반을 움켜쥔 손에 부서져라 힘을 주며 두툼한 허벅지를 떨었다. 양측에서 쏘아 내는 자짓물로 자궁이 빠듯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후으…….”
“씹…….”
질척한 씨물이 세차게 분사되며 뻐근하게 벌어진 보지 안을 가득 메웠다. 예민한 곳에 폭우처럼 투둑, 투둑 쏘아진 정액에 은찬의 발가락이 쫙 벌어진 채 벌벌 떨려 왔다. 찌익, 찍, 질세라 보지에서 배출된 묽은 물이 여러 줄기로 갈라지며 아래에 있는 이예담 몸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으, 응, 흐, 흐읍…….”
제가 점성 없는 물을 지렸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은찬이 숨을 할딱이며 몸을 떨었다. 졸지에 오줌 줄기 같은 액체를 맞게 된 이예담이 피식거리며 제 입가에 튄 물을 혀로 핥았다. 제멋대로 떨려 오며 사정하는 보지가 기꺼웠는지, 영 더러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선생님. 보지에서 나와서 그런지 분수도 시큼하네요. 딱 보지 맛이야.”
“하아…….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앞보지, 뒷보지 다 채워 줘야겠어요.”
“흐으, 아니이, 으으응!”
“보지 분수까지 싸 놓고 내숭 떨지 말고…….”
뒤에 있던 이예담이 한층 수그러든 자지를 천천히 뽑아냈다. 쩌어억, 빠져나가는 성기에 들러붙은 붉은 점막이 딸려 나갈 것처럼 차지게 기둥을 쫓았다. 서서히 비는 공간을 따라 탁한 정액이 스멀스멀 밖으로 비어져 나와 묽은 물로 질퍽거리는 접합부를 허옇게 점철시켰다.
입구에 다다라서야 겨우 떨어져 나간 점막이 즈즈즉,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이예담은 꺼낸 귀두에 묻어난 찐득한 백탁액을 엄지로 문질거렸다. 그러다 그대로 여운에 떨고 있는 후장 주름에 바르기 시작했다. 삽입을 예고하는 손길이었다.
“둘 다 넣으면 더 좋지 않겠어요? 늘 한쪽 보지만 넣어 줘서 아쉬웠잖아.”
“아, 그런 적 없……, 학……!”
조물거리는 주름 결을 따라 부드럽게 문지르는 손가락 끝이 축축했다.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통통한 주름을 매만지며 애태우던 이예담은 구멍 어귀가 후끈하게 달아오르자 돌연 손끝을 세웠다.
“하응, 읏……!”
그러곤 단단한 손끝으로 구멍을 거세게 문지르며 내밀한 곳을 향해 쑤셔 넣었다. 말캉하고 폭신한 내장은 손가락이 지분댈 때마다 녹진하게 풀리면서 끝내는 미끌미끌, 기름진 느낌마저 들게 했다. 흐으응……! 적셔진 항문에서 야릇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기다랗고 단단한 것에 내부가 마구잡이로 자극당하자, 은찬은 둔근에 바짝 힘을 주어 주름진 구멍을 조였다. 엉덩잇살을 씰룩이는 은찬의 목울대에서 끼잉끼잉, 강아지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 씹. 손가락 잘라 먹을 거예요?”
이예담이 인상을 구기며 구멍에서 손가락을 꺼냈다. 어찌나 거세게 조여드는지 손가락이 온전히 빠지는 마지막에는 퐁, 어딘가에 끼어 있다 간신히 빠져나가는 소리마저 들렸다.
와락 조여드는 구멍은 곧 사이에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좁아 들어선 촘촘한 주름으로 무장했다. 바들바들, 엉덩이 양옆이 팰 정도로 힘을 준 탓에 보지 역시 덩달아 수축하며 여태 담긴 자지를 조였다. 조여드는 보지 구멍이 옴쭉 경련하듯 떨렸다.
“하으……. 아, 아으으…….”
점막이 부지런히 꿈틀거리자 벌어진 보지 틈새에서 유백색 액체가 질금질금 새어 나왔다. 두 남자가 금방 싸지른 씨물이었다.
“아, 아…… 아…….”
“아……. 미친…….”
보지는 질 벽을 가득 메웠던 자지 중 하나가 빠져나가자 못 견디겠다는 듯 내내 나머지 자지 하나를 주물러 대고 있었는데, 아랫구멍을 간질이던 손길이 떨어져 나가자 그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제멋대로 쿵쿵 맥동하는 보지에 은찬은 제 아래에 있는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 대며 몸을 떨었다.
“너무 엉겨 있지 마요. 질투 나게.”
뒤에 있던 이예담이 엎어지다시피 한 허리를 들어 올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직도 유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가슴이 파르르 뒤흔들리며 함께 끌어 올려졌다. 유두는 계속해서 젖만 돌 뿐, 외부적인 자극은 주지 않아서인지 언제 포도알처럼 큰 돌기를 발발거렸냐는 듯 새침하게 함몰된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일자로 폭 패인 함몰 유두로 뜨끈하고 허연 즙이 고여 든 상태였다.
“착하지…….”
뒤에 자리한 이예담은 귓가로 떨어지는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몰캉한 가슴살을 쥐어 제게 기대게 했다. 그 잠깐의 자극에도 쭈룩, 함몰된 젖구멍에서 짙은 모유가 흘러나왔다. 허…….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린 이예담이 연분홍빛 유륜을 잡아 눌렀다. 보드라운 살점이 찌그러지면서 찌익! 물총의 방아쇠를 당긴 듯 세차게 우유 줄기가 짜내어졌다.
“후아, 아……! 으응, 흣!”
너른 품 안에 안긴 은찬이 가슴을 뒤흔들며 소스라쳤다. 가슴이 쭉 짜여져 모유가 물처럼 뿜어져 나올 때마다 경험한 적 없는 극도의 희열감이 샘솟았다. 더, 더 자극당하고 싶었다.
“하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기대 있던 가슴팍이 옅게 진동했다. 아아……. 안달 나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은찬은 급한 대로 아직 질구로 빡빡하게 꽂혀 있는 성기를 내려다보며 탄탄한 복근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뒤이어 손에 체중을 실어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아래에 있는 이예담의 자지로 자위하듯 요분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엉덩이를 들었다 내릴 때마다 찰싹이는 볼기가 납작하게 짜부라졌다 다시 봉긋한 살덩이로 되돌아가고, 입술 모양으로 주름진 선홍빛 대음순이 밀려났다 들어가며 보글보글한 잔거품을 만들어 냈다. 이미 한 차례 싸지른 두 명분의 좆물과 보짓물이 섞여 살덩이를 맛있게 삼켜 내면서 쭉쭉 빨았다.
손에 쥐고 누르기만 하면 쉽게 즙이 짜여 나오는 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지는 커다란 방망이 같은 좆이 들이치고 연한 살결을 눌러 댈 때마다 쪼르르, 안에 품고 있던 보지즙을 한가득 뿜어냈다.
갓 짜여 뜨끈뜨끈한 보지즙에 진탕이 된 보짓살이 쾌감으로 벌벌 떨릴 때마다 극한의 흥분으로 볼록 돋아난 음핵도 함께 파르르 떨렸다. 물러진 빨간 속살에서 한가득 물을 쏟아 내는 은찬의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우으, 으으응…… 좋아, 응…….”
은찬은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엉덩이로 방아를 찧어 댔다. 흥건한 물기로 뒤범벅된 보지가 쑥쑥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할 때마다 짙어지는 쾌감에 질질, 싸 내듯 하는 보짓물 덕택에 추삽질 박자는 점차 더 빨라졌다. 이에 따라 짜릿한 감각을 느낀 이예담이 미간을 구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씨발……. 내 좆을 무슨, 딜도처럼 쓰네…….”
“하, 아아앙…….”
잠시간 인상을 쓴 채 적셔진 좆에서 쏘아지는 쾌락에 전율하던 그는 팔꿈치를 젖은 매트리스에 기대 세우고 단박에 일어났다. 굵은 팔뚝이 근육의 결을 따라 갈라지고, 한차례 보지 분수를 맞아 상기된 가슴이 움찔 떨리면서 이어진 복근도 함께 수축했다. 아직 그대로 질구 속에 박혀 있는 자지가 그 움직임에 따라 살짝 아래로 빠져나가자, 이를 놓칠세라 따라붙은 보지 점막이 꿈틀대며 꽈악 조여들었다.
“크읏…….”
심한 압박감에 이예담의 턱 근육이 잔뜩 불거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끼인 자지는 물에 진탕 젖은 데다가 정액마저 곳곳에 두르고 있어 본래의 색과 형태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씨발. 이러다가 정말 좆을 잘라먹기라도 하겠다고 중얼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은 이예담이 뒤에 있던 또 다른 이예담에게 턱짓하며 제안했다.
“이번엔 네가 아래로 가.”
“뭐…… 좋아.”
뒤에 있던 이예담은 순순히 은찬의 가슴을 움켜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애매하게 보지 구멍과 이어져 있던 검붉은 성기는 앞에 있는 이예담이 벌려진 사타구니 사이에 제대로 자리를 잡자마자 곧장 요동치며 내벽을 긁고 들이쳤다. 질구의 한계치를 넘어서 담기는 질량에 울컥울컥, 시럽처럼 찐득한 정액이 뭉텅이 져 밀려 나왔다.
흡착하듯 달라붙는 보짓살과 미끈거리는 정액에 급작스레 성감이 치밀었다.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큿……. 헐렁해져서 이젠 안 조일 줄 알았는데. 조임이, 후으……. 크으…….”
쇳소리 같은 신음이 터졌다. 짓씹듯 말을 뱉어 내고선 힐난하듯 엄지와 검지로 퉁, 가볍게 솟아난 음핵을 튕겼다. 아아앙! 음핵에 묻어난 보짓물이 사방팔방 튀어 나가면서 예민해진 클리토리스로 찌릿한 번개처럼 날카로운 쾌감이 톡톡 튀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음핵으로 뻗은 은찬이 과도한 쾌감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듯 샐쭉 콩알을 가리며 도리질했다.
“그래? 그렇게 명기면 같이 찔러 주면 끝내주겠다. 그치…….”
읏차. 은찬을 받친 이예담이 무릎을 세워 그의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었다. 으응……. 조그만 자극에도 움찔거리는 허벅지가 힘없이 벌어지면서 살덩이를 씹고 있는 보지가 움찔거렸다. 아래에서 뻗어 온 손이 여태 음핵 위를 가리고 있는 손등을 지그시 짓눌렀다.
“아아아, 흐읏! 너, 너무…… 세! 아아, 으응! 그, 그마안!”
졸지에 손가락으로 재차 음핵을 압박해 버린 은찬이 파닥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예담은 손등을 덮은 손을 빠르게 흔들면서 음부를 뒤흔들었다. 끈적한 애액으로 뒤덮인 속살이 쩌덕쩌덕, 쓸리면서 빨간 속살끼리 진득하게 비벼졌다. 통통하게 살 오른 둔덕이 강하고 빠르게 살점을 짓이기는 손길을 따라 뭉개지며 자작한 쾌감이 들끓기 시작했다.
“아, 아, …… 어떡, 흐으응! 으, 흑!”
하필이면 은찬의 약지와 소지 사이에 콩알 같은 음핵이 끼인 채였다. 갑작스럽게 손등이 덮이는 바람에 새끼손가락 끝이 살짝 굽혀져 있었는데, 격하게 손을 흔들다 보니 딱딱한 손톱이 자꾸만 클리토리스를 찔러 부푼 공알이 사정없이 짜부라지기까지 했다. 뇌를 뒤흔드는 자극에 은찬이 격하게 허리를 뒤틀며 파닥거렸다.
아래에 자리한 이예담은 이에 끄떡없이 한 손으로 여전히 보짓살 전체를 느긋하게 유린하면서, 남은 한 손으로는 묵직한 제 자지를 감아쥐었다. 그러곤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쿡쿡, 촘촘히 주름진 구멍을 겁탈할 듯 찔러 댔다.
“아, 응, 자, 잠깐, 아, 앗…… 너무, 흣.”
말과는 달리 얼른 들어오라는 듯 구멍이 오물거렸다. 허리에 힘을 주어 고간을 튕겨 올리자 입구를 찔러 대던 자지가 쑤욱 귀두를 집어넣었다. 허기진 구멍이 좆 대가리를 게걸스럽게 쭉쭉 빨자 곧 기둥이 출렁이는 엉덩이 사이로 쏘옥 빨려 들어갔다.
“으으응……. 이예담…….”
“하아. 씨발. 좋아…….”
쿵! 한 번에 살덩어리를 처박으며 극점을 짓찧자 온 속살이 들썩거렸다. 엉덩이뼈에 맞닿는 장골에 은찬이 소스라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체액에 젖어 든 이불보가 엉망으로 구겨져 쭈욱 흡수했던 물기를 질금질금 내뱉었다.
종전부터 보지 안을 가득 메운 성기 덕분에 계속해서 발발하는 쾌락에 또 다른 감각이 불을 붙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기분 좋은 곳이 거칠게 후벼 파이자 오싹한 쾌감이 단숨에 정수리까지 쏘아져 전신을 뒤흔들었다. 전립선에서 쏘아지는 날카로운 전율과 지스팟에서 번지는 뭉근한 열감이 한데 엉겨 발발한 감각이었다.
두 이예담은 각각 온전한 구멍을 차지한 채 보다 더 매끄러운 좆질을 이어 갔다. 아래에 있는 이예담이 후장을 박아 댈 때마다 자지러지는 은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의 이예담이 체중을 실어 푹 익은 보지로 거칠게 허리를 내려찍었다.
“아흐윽! 응! 웃!”
짓쳐 오는 단단한 선단에 번들거리는 살점에서 퓻, 물 덩이가 튀어 올랐다. 으깨진 보지에서 한껏 물을 짜낸 은찬이 어깻죽지를 가늘게 떨며 간드러지는 신음을 흘렸다.
찌걱, 찌걱. 보지 안을 가득 메운 정액이 자지에 쓸리면서 질어지는 소리가 났다. 마찰을 거듭할수록 눅눅해진 체액은 질 벽과 좆 기둥에 들러붙어 점도를 높여 갔고, 이는 자지가 치고 빠질 때마다 점막이 끈적하게 달라붙게 만드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달아오른 질 벽을 헤집고 나갈 때마다 삐져나오는 찰진 점막이 버거운 듯 이예담이 질끈 눈을 감았다.
“하아…….”
거칠게 사선으로 박아 오는 성기가 질 벽을 때리자, 얇은 육벽을 사이에 둔 내벽으로도 그 자극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위아래에서 치대는 묵직한 살덩이에 보지와 뒷보지를 가르는 육벽이 파들파들 떨려 오며 얇게 펴져 갔다.
마침내 한 겹의 얇은 거죽 하나만 사이에 둔 것처럼 요동치는 서로의 자지가 고스란히 느껴질 지경이 되었을 때, 참기 힘들다는 듯 아래에 자리한 이예담이 한쪽 눈매를 찡그리며 슬쩍 자지를 빼냈다. 이미 부푼 귀두에선 금방이라도 정액을 쏘아 낼 것처럼 요도구가 경련하고 있었다.
“못 참겠어? 그럼 나 먼저 한다…….”
위의 이예담이 은찬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제멋대로 허리를 흔들었다. 퍽, 푹, 쯔윽! 요란하게 살 쳐 대는 소리가 울리면서 끝 모르는 허리 짓이 이어졌다. 은찬은 초점을 잃어 탁해진 눈으로 정신없이 휩쓸리기만 할 따름이었다.
“후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치미는 사정감을 잠재운 아래의 이예담이 재차 자지를 밀어 넣었다. 방금 전까지 찢어발길 듯 쑤셔 댔으면서도 또 다른 황홀감을 선사하는 뒷보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허리 짓이 빨라지면서 탁한 숨이 쏟아져 내렸다.
“좋아? 응? 좋아요? 난, 후으, 좋아서…… 죽을 거 같은데.”
내벽이 꿈틀거리며 자지를 죄어 오는 느낌이 좋았는지, 아래에서 박아 오는 이예담이 연신 물어 오며 은찬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으…… 흐, 흐응, 흥!”
“물어봐야 알겠어? 구멍 조이는 맛보면 알잖아. 씹…….”
두 개의 자지를 보지 안에 박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위에 자리를 잡게 된 이예담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러곤 더욱더 빠르게 제가 자리한 질 벽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리 흔드는 것만 봐도…… 하아. 환장하고 있는 거죠. 나처럼? 응?”
“으응, 응……! 아, 아응, 조으…… 힉, 좋아, 흣……!”
은찬은 본능적으로 좆질하는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와 허리를 흔들었다. 세 사람이 함께 움직이니 방 안이 온통 철썩철썩, 떡메 치는 듯한 음란한 소리로 가득 차고, 으슬으슬하던 한기를 대신해 자리한 뜨겁고 습한 공기로 온 숨통이 조여 올 지경이었다.
퍽! 퍽! 구멍에 걸쳐진 자지가 음모를 비비며 격하게 들이칠 때마다 은찬의 아랫배 가죽이 불룩 솟아올랐다. 방금 전 보지 안을 짓쳤던 때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뭉툭한 좆 대가리 두 개가 사이좋게 뱃가죽을 푹푹 두드려 댔다.
점막을 녹여내 떡이라도 만들 것처럼 격하게 짓찧는 자지에 따라 불룩, 귀두의 삿갓 모양이 드러나며 제가 있는 위치를 알렸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아래를 짓찧어 대는 움직임에 이러다 곧 뱃가죽이 뚫려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한계였다.
“아, 흐으, 응……! 자, 으, 잠까안…… 배, 흐으, 배가, 으흑!”
은찬이 몸을 움찔움찔 떨 때마다 흔들리는 젖꼭지에서 울컥울컥 흘러나온 유즙 덕에 나신과 침대가 모두 엉망이었다. 쪼로로록, 계속해서 쏟아지는 모유로 뒤덮인 하얀 몸이 난잡스러웠다.
“배가 뭐……. 선생님. 말을 해야 들어주지.”
쥐어 짜여 손자국이 남은 젖가슴으로 앞의 이예담이 손을 뻗었다. 일자로 변한 함몰 유두를 손톱으로 갉작갉작 긁어 대며 젖꼭지를 자극했다. 서서히 다시 차오르는 양감과 함께 한층 더 많은 양의 젖이 기세 좋게 뿜어지면서 젖비린내가 났다.
뽀얗던 몸이 달아올라 탐스럽게 발긋해지고, 그 몸 위로 더더욱 뽀얀 젖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이를 뒤덮고 있었다. 마치 우유가 가득 찬 욕조 속에 몸을 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하얀 모유로 번들거렸다. 마찬가지로 적셔진 남성기는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빳빳이 서서 선액과 유즙을 함께 흘려 내고 있었다.
앞에 있던 이예담이 꺼떡이는 은찬의 자지를 움켜쥐며 눈이 마주친 또 다른 남자와 시선을 교환했다. 약속했다는 듯이 동시에 구멍 속 열점을 쳐올렸다.
“끄윽……!”
무자비하게 짓이겨지는 두 극점과 더불어 자지 표피가 인정사정없이 쓸렸다. 귀두가 갈라지고 파인 부분을 엄지로 함부로 비비고, 얇게 기둥을 두른 살갗을 손날에 음낭이 닿을 때까지 길게 쓸어내렸다. 탁, 타악, 털이 없어 보드라운 음낭이 손날에 내리쳐질 때마다 알이 흔들리며 저들끼리 부딪쳐 댔다.
내내 흘려 댔던 선액으로 인해 번들거리던 살굿빛 살갗은 커다란 손바닥이 쥐고 흔들자 점차 새붉게 변해 갔다. 미끈미끈한 성기를 잡아 흔드는 동시에 이예담과 이예담이 다시 한번 허리를 짓쳤다.
“아으윽! 응!”
삽입과 함께 이어진 격렬한 용두질에 마침내 절정이 찾아들었다. 쌓아 두었던 자짓물이 요도구에서 후드득 뿜어져 나오면서 보지와 뒷보지 점막이 허겁지겁 담긴 성기를 주물렀다. 짓쳐지는 얇은 육벽이 찢어질 듯 파들대며 두 성기의 진동과 무게를 공유시켰다.
“아…… 웃, 진짜, 미치겠네.”
“씨발……. 무슨, 보지가……. 큿!”
커다란 음낭들도 딱딱하게 굳어 가면서 은찬의 각 구멍에 뜨거운 자짓물을 콸콸 쏟아 내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몸이 더욱 홧홧한 것으로 빠듯이 채워지면서 발발하는 끝 모르는 열기에 은찬이 앙증맞은 혀를 빼꼼 내민 채 자지러졌다.
“으으응…… 히이, 히이이…….”
은찬이 몸을 덜덜 떨며 신음하자, 투두둑, 덩어리져 쏟아지는 정액을 또다시 고스란히 받아 내게 된 위의 이예담이 제 복근에 묻어난 점액질을 더듬으며 수려한 얼굴에 웃음기를 드리웠다.
“하하……. 또 내가 맞았네.”
“으음. 후……. 그것도 맛볼 거야?”
“글쎄. 보짓물이면 모를까 좆물에는, 후으, 그다지 흥미가 안 생기는데…….”
은찬의 몸을 틀어쥔 채 정액을 쏘아 대는 둘의 대화가 혼미해진 정신에 엉겨 웅웅, 울려 대다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하나 사정감은 이와 달리 무섭도록 선명해지고 있었다. 질퍽하게 젖어 흔들리는 선단에서 계속해서 유백색의 체액이 쏟아졌다.
마침내 침대뿐 아니라 바닥까지 체액으로 적나라하게 점철되었을 때…….
* * *
“하윽!”
은찬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갑자기 들이친 시야 안에는 뒤에서 저를 끌어당기던 이예담도, 제 앞을 감싸 안던 이예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뭐야…….”
달아올랐던 나신 대신 온전하게 몸 위로 갖추어 입은 파자마가 눈에 들어왔다. 널브러진 몸과 옷이 거하게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은찬은 다급히 팬티 속에 손을 넣어 미끈거리는 제 보지 구멍을 확인했다. 물기를 한가득 머금어 습윤한 속살이 길게 벌어지면서 다물렸던 입구를 드러냈다. 두 개의 성기를 받아들였다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구멍은 여전히 빠듯하기만 했다.
아랫도리 확인이 끝나자 더듬더듬 손을 올려 젖물이 잔뜩 쏟아졌던 가슴을 확인했다. 농익은 포도알 같았던 젖꼭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옴폭 파인 채 말랑말랑하게 풀려 있었다. 가슴 몽우리 안에서 몽글몽글하게 느껴지던 이상야릇한 감각도, 가슴께를 뚝뚝 적시던 젖물도 존재하지 않아 그저 건조할 따름이었다.
“꿈이었구나. 하…….”
하지만 꿈결 속에서 느껴졌던 쾌감은 현실과 맞닿아 있었는지, 자는 동안 지린 체액이 팬티를 넘어 바지까지 담뿍 적신 느낌이 선연했다. 잔뜩 힘을 주었던 몸에 남아 있는 뻐근함과 간헐적인 떨림까지도.
쌍둥이, 이예담, 온기……. 스르르 잠에 들기 전 떠올랐던 모든 단어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꿈이었다.
자존심도 없는지 꿈속의 이예담은 둘이나 나온 것도 모자라 얼굴까지 또렷했다. 간혹 힐끔힐끔 훔쳐보았던 근육이 잘 조각된 복근과 떡 벌어진 어깨, 탄탄하게 갈라진 허벅지 사이 자리 잡은 흉흉한 성기까지 모두 실제처럼 느껴졌다. 여운을 남긴 지독한 쾌감까지 모조리, 다.
“미쳤다. 진짜…….”
새로 맡은 과외 때문에 이예담이 둘이나 나온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보지 속에 성기 두 개를 쑤셔 넣을 생각을 했을까.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던데, 정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서 둘이나 꿈꿨던 걸까.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냥…… 욕구 불만이라 그런 거야.”
은찬은 척척하게 적셔진 침대 시트를 질끈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오랜만의 몽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