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 1화 (1/16)

1. Prologue

헉헉헉-

밭은 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새까만 어둠을 달리는 사내의 턱 끝에선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입고 있는 셔츠도 온통 젖어 들었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쾅, 콰광- 먼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폭음은 연차적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이미 아비규환이었지만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당장 급한 건 자신의 몸 상태였다.

제길, 하필이면!

절박하게 뛰어가는 사내의 메마른 입술 끝에서 거친 욕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몸에서 열이 났다. 스물일곱 평생 단 한 번도 없던 열이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터져버린 거다. 사내는 어둠을 달리다가 멀리 동떨어진 건물로 재빠르게 방향을 바꾸었다.

시끄러운 곳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허름하고 낡은 창고였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당장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퍽-

낡아서 잘 열리지도 않는 문을 힘껏 발로 찼다. 부서지진 않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너덜거리는 문은 그럭저럭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문을 세차게 닫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창고는 비어있었다. 하긴, 밖이 저 지경으로 난리가 났는데 태평하게 이런 곳에 앉아있을 놈은 없을 테다.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밖에서는 또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어지러운 소음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사내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어두운 창고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건초와 농기구, 그 밖에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있는 창고가 일단은 안전하다고 판단한 사내는 건초 사이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달빛이 흐리게나마 들어오는 창문 아래였다.

창문은 문과 마찬가지로 낡고 오래되어 뿌옇게 흐린 데다가 크게 금이 가 있기까지 했다. 자칫 잘못하면 밖에서 울리는 소음에 유리가 깨져 와르르 쏟아질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창가 아래로 굳이 몸을 숨긴 것은 여차하면 창문을 깨고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주머니를 뒤집어 꺼낸 약들을 알아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의 떨리는 손바닥 위에는 여러 가지 약들이 있었다. 전부 억제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흐릿한 달빛만으로는 뭐가 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몸에서 주체할 수 없는 열이 나면서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 사내는 끝내 약의 구분을 포기하고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 삼켰다. 그러나 몸 상태는 쉽사리 나아지질 않는다. 도리어 몸을 타고 흐르는 열기는 시시각각 거세지기만 했다.

“하, 제기랄!”

그의 입가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억제제가 맞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몰라 다른 타입의 억제제를 종류별로 가지고 다녔었지만, 분하게도 들어맞는 약이 없다. 더운 숨이 급해졌다.

기실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베타였다. 평생 베타인 줄만 알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던 해, 그는 열성 오메가로 발현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주위에 알려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오메가 중에서도 열성이라는 사실만이 그나마 다행일 뿐이었다.

오메가로 발현했다고 해도 베타로 지냈을 때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의 페로몬은 미미했다. 한 달에 한 번 알약 하나를 삼키면 누구도 그가 오메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많은 알파 사이에서 지냈어도 알파 페로몬에 영향을 받았던 적조차 없었다. 당연히 히트사이클 또한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그랬다.

차라리 이대로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그렇질 못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대단히 중요하고 위험스러운 순간에 히트사이클이 터진 거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여러 종류의 억제제를 항상 가지고 다녔건만, 막상 예고치 않게 히트사이클이 찾아오니 애석하게도 전부 듣질 않는다. 마지막 한 알까지 탈탈 털어먹은 사내는, 기어이 몸을 태울 것 같은 열기에 낮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웅크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상상도 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현재 사내가 처한 상황도 지독히 운이 나쁜데 거기에 더해 히트사이클이 터졌고, 거기에 또 더해 지니고 있던 다양한 종류의 억제제 중 단 한 개도 맞는 게 없기까지 하다. 이런 개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사내는 이를 갈았다. 그래 봤자 이런 악질적인 상황을 깨끗이 무시한 몸은 견디기 어려운 열기만 흘려댈 뿐이었다.

점점 더 견딜 수가 없어졌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눈앞이 흐려 제대로 보이는 것조차 없어질 지경이었다. 바지 앞섶은 터질 것처럼 부풀었고, 내의는 벌써부터 질질 흐르는 프리컴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사내는 눈에 보일 정도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성급히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소음이 끊이질 않는 난장판 속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알파 놈 중 하나가 냄새를 맡고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설핏 떠오르기도 했지만, 온몸을 휘감는 열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바지와 브리프를 한 번에 내려 허벅지에 걸친 채 바짝 선 제 좆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서늘하면서도 거친 손바닥으로 감싸는 것만으로도 당장 쌀 것 같았다. 욕설을 마구잡이로 내뱉으면서도 사내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아, 으흣, 흣-!”

성기를 문지르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허리를 둥글게 웅크린 채 자위하며 뱉어내는 숨결은 뜨거웠다. 탁탁, 살을 치대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울렸다. 그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도 함께 높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머릿속은 열탕으로 변해 자글자글 끓어 넘칠 지경이었다. 다른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사내는 억눌린 신음과 함께 금세 사정하고 말았다. 뜨겁게 터져 나온 정액은 손바닥을 온통 축축하게 젖게 했다. 그런데도 턱까지 차오른 숨은 도무지 가라앉질 않는다.

한번 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욕구가 가라앉기는커녕 외려 더 터질 것만 같아진다. 억울하게도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당장 원하는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자위 따위로 충족될 만한 욕구가 아니다.

물 같은 애액이 흘러넘치고 있는 엉덩이 안쪽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질근질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면, 지금 간절히 바라는 건 사내의 성기였다. 살면서 한 번도 사내와 붙어 먹어본 적이 없었건만, 우습게도 히트사이클에 잠식당한 몸뚱이는 알지도 못하는 사내의 좆을 원하고 있었다.

베타인 척 평생을 살아왔어도 결국 오메가는 오메가였나 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사내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현실을 깨닫자 처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더욱 처참한 것은 멋대로 열을 내며 흥분하는 제 몸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거였나. 히트사이클이라는 것이? 이래서 억제제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오메가들이 저 스스로 알파 놈들에게 몸을 내던지는 건가?

생각하니 욕설이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자신 또한 밖에서 소란스럽게 구는 알파 놈 중 하나가 자신의 페로몬을 맡고 쫓아 들어오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정말이지 거지 같은 몸뚱이였다. 짜증과 분을 터뜨리면서도 사내는 엉덩이에 제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제 발로 문을 열고 아비규환 속으로 기어나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가라앉혀야만 했다.

아득해지는 머리로 생각하던 사내는 몸서리를 치며 엉덩이를 벌렸다. 성적인 용도로 뒤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끙끙거리며 엉거주춤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좁아터진 뒷구멍이었지만 미끌미끌하게 젖어 있던 터라 아프거나 힘겹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손가락 개수를 늘려도 흡족해질 수가 없었다. 더운 숨을 흘리며 사내는 거친 바닥에 열이 오른 뺨을 비볐다. 위로 치켜든 엉덩이를 손가락을 넣어 들쑤시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래 봤자 해소되지 못한 정욕은 머리까지 엉망으로 짓이겨놓을 따름이었다.

“누가…… 제발…….”

눈앞이 새까맣게 점멸하는 순간이었다.

“와, 보자 보자 하니, 정말 꼴리게 만드네.”

어디선가 느릿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내는 흠칫 놀란 눈을 들었다. 유령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었다.

급작스러운 히트사이클 덕분에 평소보다 신경이 무뎌져 있긴 했지만, 분명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라니! 심히 놀라고 당황할 만한 일이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사색이 된 사내는 뒤를 쑤시던 손을 빼지도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넓은 창고는 2층의 구조였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2층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발코니 형 다락이었다. 어두컴컴해서 알아차리지도 못한 2층 난간에 누군가가 양팔을 얹은 채 허리를 굽혀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계속해. 더 보고 싶으니까.”

느긋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동시에 훅 끼쳐오는 알파 페로몬은 사내의 몸을 가늘게 떨리게 했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인기척과 더불어 갑작스레 코끝을 자극하는 페로몬은 그를 당황하다 못해 공황에 잠기게 할 정도다.

“아… 알파……?”

“이제 알았어? 아무리 페로몬을 개방하고 있지 않았다고는 해도 그렇지, 히트사이클까지 터진 오메가가 알파를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제대로 된 오메가 맞아?”

2층 난간에 기대있던 남자가 어이없다는 투로 웃었다. 그러나 사내는 그를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강렬한 알파 페로몬을 감지해 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거대한 충격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말이다.

억제제를 늘 복용해왔기에 자신의 페로몬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알파 페로몬 또한 느끼지 못했었다. 간혹 옅게나마 맡을 수 있다고는 해도 제 몸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방해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 정도로 눈앞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페로몬을 내뿜는 알파도 없었다. 그런 알파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대체 뭘까. 이토록 강렬하게 뇌를 파고드는 냄새라니. 손끝 하나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온몸을 짓누르는 향이라니…….

사내는 떨리는 몸을 웅크렸다. 지금까지 느꼈던 욕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알파를 알아차린 순간 치솟는 정욕은 두렵기까지 했다.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손끝이 벌벌 떨렸다. 아랫배가 꽉 조여지며 열기가 번져 전신을 태울 것만 같았다.

“계속하라니까? 아니면, 내가 계속하게 만들어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는 것처럼 알파 페로몬이 서서히 짙어졌다. 어깨를 짓누르고 숨통을 조이는 묵직한 향이었다. 사내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털썩 바닥에 몸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 흐윽-. 그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절여질 정도로 쏟아지는 페로몬에 손도 대지 않은 성기 끝에서 왈칵 정액이 쏟아졌다. 눈이 뒤집힌다. 엉덩이 뒤에서는 애액이 줄줄 흘러 허벅지를 타고 내리고 있었다. 딱 미칠 것만 같았다. 사내의 입술 끝에서 흐느끼는 신음이 흘렀다.

“반응도 좋고, 제법이야.”

“하, 하아…….”

“이런 곳에서 발정 난 오메가를 마주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난간 위에서 정욕에 젖어 몸을 비트는 사내를 목도한 알파가 중얼거렸다. 그리곤 훌쩍 2층의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덕분에 쿵, 육중한 소리가 울리고 먼지가 뿌옇게 흩날렸다.

헉헉거리며 더운 숨을 흘리던 사내는 흐릿한 눈을 들었다. 알파의 얼굴은 어두워서 보이질 않았으나 그가 신고 있는 신발만큼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군화였다. 반짝이는 군화 위로 그가 일으켰던 먼지가 가라앉고 있었다.

흠뻑 적신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바닥에 널브러져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내의 앞으로 느릿하게 앞으로 다가온 알파가 한쪽 무릎을 꿇고 사내를 굽어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발정 난 오메가에겐 어울리지 않는 장소 같지?”

흐릿한 달빛에 알파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듯 반짝이는 금발. 흥분에 정신이 흐트러져있던 사내의 표정이 짧은 순간 굳는다. 악재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라, 내 얼굴을 아는 표정이네?”

“흣…….”

알파가 질문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금 무거운 페로몬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뜻밖의 얼굴을 마주한 탓에 잠시 잠깐 정신을 차렸던 사내가 재차 무너지며 몸을 떨었다. 두 번이나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성기가 바짝 선다. 알파는 그런 사내의 턱을 쥐고 들어 올렸다.

“근데 네 얼굴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잖아.”

불공평하기도 하지. 시커멓게 얼룩진 사내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던 그가 투덜거렸다. 그러나 곧, 알파는 사내의 뺨을 문질러봤자 금세 깨끗해지진 않을 것을 알아차리곤 더러워진 손가락을 제 바지에 슥 닦아내고 만다.

“얼굴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조금 더 바싹 얼굴을 들이댄 알파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쑤셔줘?”

악마의 유혹처럼 다디단 한마디였다. 꿀꺽, 마른침이 갈증이 일어나는 목구멍 아래로 넘어간다. 벌벌 떨리던 몸이 훅 달아올랐다. 사내에겐 그의 유혹을 거절할 여유가 없었다. 달아오른 제 몸을 어떻게 해주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비록 눈앞의 알파가 자신이 아는 그 남자라고 해도.

사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과 동시에 무릎까지 내려놓은 사내의 바지와 브리프를 당겨 완전히 벗겨낸 알파는 그의 탄탄한 허벅지를 손등으로 슥 문지르며 위로 올렸다.

이미 흠뻑 젖은 엉덩이에 손등이 닿은 순간, 커다란 손이 사내의 둥근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헉, 사내의 벌어진 입가에서 숨을 넘기는 소리가 흩어졌다.

“어쩌나. 난 짐승처럼 거친 플레이를 좋아하는데.”

“그래도…… 괜찮으니까…….”

얼른 쑤셔줘. 사내는 가까스로 뒷말을 삼켰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듯 알파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하긴, 히트사이클이지? 히트사이클인 오메가에게서 겨우 이 정도의 페로몬밖에 느껴지질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긴 하지만, 덕분에 더 꼴린 것도 사실이거든.”

“흐읏, 제발, 어, 어서…… 어떻게 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진 사내가 그의 바지를 붙들었다. 사내를 내려보는 알파의 어두운 눈이 한층 날카로워진다.

“엉덩이 이쪽으로 돌리고 벌려.”

나른한 목소리에는 무섭도록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상대를 압도시키는 힘. 그것은 비단 최우성 알파라는 그의 성질뿐만이 아니라, 그의 타고난 성향과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몸을 돌린 사내는 엉덩이만 치켜든 채로 이를 씹었다. 그러나 치욕스러웠던 것도 잠시, 엉덩이 사이에 와 닿는 묵직한 감각에 눈앞이 아찔해지고 말았다.

“제대로 붙들어. 너, 오늘 걸레가 될지도 모르니까.”

* * *

사내의 벌어진 입은 좀처럼 다물어지질 못했다. 덥고 습한 숨이 연방 흘렀고, 턱을 따라 침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바닥에 이마를 비비며 사내는 끊임없는 교성을 흘렸다.

환장할 것 같았다. 지금껏 다른 남자와 붙어먹어 본 적 없는 몸뚱이라는 것이 무색하도록 그의 엉덩이는 흐물흐물 녹아 알파의 거대한 좆을 받아먹고 있었다. 몇 번이나 사정했는지 셀 수조차 없다. 제 엉덩이에 좆을 때려 박고 있는 알파 또한 수차례 사정한 탓에 하반신은 이미 진창이었다.

철퍽철퍽 젖은 살갗이 맞물리는 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음탕했다. 소란스러운 밖의 상황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누구도 들어온 적이 없었던 내벽에 알파의 성기에 딱 맞는 길이라도 생겨버린 것만 같았다.

“으으읏, 윽…… 더… 더 깊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사내는 애원했다. 알파가 잠시나마 움직임을 멈추려고 하면 안달이 나서 허리를 흔들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끊임없이 질질 흘려대는 제 성기를 손으로 붙들고 문지르며 사내는 약이라도 먹은 창부처럼 보채고 또 보챘다.

“대단해, 진짜. 히트사이클 중인 오메가가 꼴리게 한다는 소리는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 아아, 아-!”

“제어가 안 되게 하네.”

사내의 엉덩이를 함부로 쑤시고 있는 알파 또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정욕에 취한 눈동자가 무섭도록 번득였다. 그러나 그 눈빛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더 흥분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퍽, 퍽, 소리가 나도록 알파가 내벽을 후려칠 때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발가락이 곱아지기도 했다. 벌어진 입에선 끅끅거리는 소리만 흘렀다.

한 손에 다 쥐어지지도 않을 만큼 커다란 성기를 뿌리 끝까지 처넣고도 부족하다는 듯, 알파는 밀어 넣고 또 밀어 넣길 반복했다. 그때마다 사내는 자지러지며 더해달라고 매달렸다.

미친 거다. 이미 헐어버린 제 젖꼭지를 사납게 빠는 알파의 금빛 머리칼을 헤집으며 사내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알파의 성기를 먹고 싶어 죽겠다는 듯 구멍을 조여댄다.

“너, 그렇게 오물거리며 씹는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이미 뾰족하게 모양이 잡혀버린 젖꼭지 위로 혀를 굴리던 알파가 미간을 찡그렸다. 배우기는커녕 이런 식의 섹스는 처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한마디 말을 뱉어내는 것도 아까웠다.

“그만 지껄이고…. 박기나 해…….”

거친 숨을 내뱉던 사내가 재촉했다. 그의 탄탄한 허벅지를 꽉 움켜쥔 알파는 나직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너, 앞으로 내 옆에 있어라.”

“흑, 흐읏……. 더, 더…….”

“네가 발정 날 때마다 원 없이 쑤셔줄 테니까.”

밤새 떨어지지도 않고 박아대고 있는 알파는 지친 기색도 없었다. 사내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들리지도 않는다. 온 신경은 제 뒷구멍을 쑤셔대는 알파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격렬한 자극이 견딜 수 없이 좋았다. 연이어 쏟아지는 쾌감에 머릿속이 혼미할 정도다.

그가 욕심 사납게 허리를 흔들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에 고여 있는 정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눈앞은 어지럽게 흔들렸고, 사내의 성기는 손도 대지 않았건만 계속해서 질질 뭔가를 흘리고 있었다. 벗은 몸이, 바닥이 온통 축축했다. 사내는 고개를 흔들며 흐느꼈다.

“자지러지네? 그렇게 좋아?”

“좋아, 좋으니까…… 흐읏, 멈추지 말고, 계속, 아, 아앗-!”

사내가 제정신을 잃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내려보던 알파가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 잡아 벌린 허벅지를 짓누르는 손아귀에 한층 강한 힘이 서린다. 사내를 집어삼킬 것처럼 허리를 짓치는 알파의 몸이 무섭도록 날이 서기도 했다. 그를 흐려진 눈으로 담던 사내는 퍽, 내부를 쳐올리는 몸짓에 허리를 비틀었다.

“젠장, 뭐가 이렇게 좋은 거지?”

처음 예고했던 그대로 짐승처럼 거칠게 사내를 몰아세우던 알파는 사내의 목덜미를 자국이 날 정도로 빨며 중얼거렸다. 쪽쪽 살갗을 빠는 소리는 젖은 구멍을 쳐대는 소리보다 더 음탕했다.

“아, 진짜! 환장하겠네!”

와락 사내의 골반을 틀어쥔 알파가 반듯한 이마를 찡그리며 이를 씹었다. 그의 사정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내는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어 알파의 허리를 감쌌다. 내벽을 잔뜩 수축하며 그의 성기를 조이기도 했다.

자신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행동에 알파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목을 울리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안쪽 깊숙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운 열감이 전해졌다.

“아…… 하읏-!”

정액이 배 속을 적시는 감각이 선연하다. 아랫배가 꽉 조이며 오싹한 전율이 흐르기도 했다. 사내는 숨넘어갈 것 같은 신음을 흘리다가 저도 모르게 와락 알파의 등을 끌어안고 말았다.

알파는 이미 수차례 성기를 빼지도 않은 그대로 사정했었지만, 자신의 내벽이 예민하게 달아올라 있던 탓인지 이번엔 오싹할 정도로 느껴진다. 사내는 떨리는 몸을 어쩌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는 알파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더운 숨을 헐떡였다.

그때였다. 몸에서 빠지지도 않은 성기가 박힌 그대로 점점 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목덜미를 이로 잘게 씹고 있던 알파가 작게 한탄했다.

“이런-!”

살짝 당황해 욕설을 내뱉는 알파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귓가에 닿는다. 당황하기는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노팅……?

“아윽-!”

가뜩이나 빠듯할 정도로 차 있는 성기가 부피를 더해가자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의 성기를 조이고 있던 내벽이 자칫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숨기지도 못한 채 사내는 알파에게 매달려야만 했다.

알파만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던가. 개들이 그렇듯, 싸지른 정액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성기를 부풀리는 행위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간헐적으로 내뱉으며 사내는 알파를 황망하게 노려봤다.

“너무 원망하지는 마. 네가 사람을 지나치게 흥분시킨 탓이니까.”

그런 시선을 알아차린 알파가 난처하게 웃었다.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야. 변명하듯 중얼거리는 그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대체 얼마나 더 이대로 있어야 하는 걸까. 노팅이라는 것은 대체 언제 끝이 날까.

지독한 쾌감 뒤에 이어진 갑작스러운 고통에 사지가 벌벌 떨렸다. 식은땀이 턱을 타고 떨어지기까지 한다. 뭐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차마 말을 뱉을 수도 없었다.

“조금만 참아. 나도 계획에 없던 일이라 당황한 건 마찬가지거든.”

크게 뜨고 있는 눈 밑에서 눈물이 줄줄 떨어졌다. 시커멓게 더러워져 있던 얼굴 위로 지저분하게 얼룩이 생기자, 숨을 헐떡이던 알파는 손을 들어 사내의 젖은 얼굴을 닦았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그의 손바닥에 억지로 닦여지며 하얀 피부를 부분적으로 드러낸다. 그 모양새를 바라보는 알파의 동공 위로 기이한 빛이 흘렀다.

“이러고 있으려니 네 얼굴이 더 궁금해지네.”

사내의 젖은 뺨을 손바닥으로 쓸며 알파는 아쉬워했다. 그러나 사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배 속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울먹일 따름이었다.

악재는 악재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팅까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던 사내는 기어이 까무룩 뒤로 넘어가면서도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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