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01
유온은 편하게 선 채로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햇살로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았다. 성당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온의 눈엔 아무리 작은 성당이라도 저마다 다른 특징이 있었다. 십자가를 둘러싼 신상부터, 그리로 뻗어 가는 길과 양편의 기도하는 단, 아치까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려 했으나 색유리가 끼워진 창의 모습은 휴대폰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았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큼의 반짝임이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휴대폰을 집어넣고, 대신 질릴 때까지 실컷 구경했다.
그 후엔 오르간과 양쪽 벽에 있는 대리석 조각상 같은 걸 더 구경하다가 성당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섰다. 축축한 공기 사이를 관광객과 현지인이 적당히 섞여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곳에 있을 비서와 경호원을 잠시 생각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식사할 시간이었다. 휴대폰으로 이정윤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입구 옆쪽에 서서 기다리자, 곧 이정윤과 성한영이 나타났다.
유온은 그들 뒤로 보이는 눈 덮인 산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길을 다닐 때, 어딘가에서 나올 때 어디서든 보이는 풍경이지만 아무리 보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 유온이 있는 곳은 스위스의 호수에 둘러싸인 한 도시, 로잔이었다.
“다 보셨어요? 유온 씨, 제가 이 근처에 맛있다는 집 찾아 놨는데 어때요? 이탈리안이래요.”
여행지의 음식이 아무리 입에 맞고 맛있어도 세 끼를 내리 며칠 동안 먹으면 약간 질린다. 해서 식당은 이정윤을 비롯한 비서실과 경호팀까지 머리를 맞대어 다양한 나라의 음식으로 정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고민한 결과 끝에 나온 식당은 지난 며칠 동안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이정윤은 늘 그렇듯 재잘거리고 성한영은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윤서경은 자리에 없다. 이번에 유온은 혼자서 여행을 왔다.
물론 아주 혼자 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기에 수행하는 팀 전체가 같이 왔다. 사실 윤서경이 움직일 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따라 다니진 않는다. 이번엔 유온이 처음으로 혼자서 가는 여행이었고, 여행지도 한국에서 멀어서 특히 신경을 쓴 것이었다.
그래도 첫 심부름 가는 아이를 카메라가 따라가며 촬영하던 프로그램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정윤이 말한 식당은 호수의 둘레에 있었다. 노천에 꾸며 놓은 자리에는 딱 점심을 먹을 시간인 만큼 사람이 거의 찼다. 그 안에서 용케 빈자리를 확인한 이정윤이 두 사람을 이끌었다. 메뉴판을 유심히 보던 유온은 오일 파스타를 하나 골랐다.
자신이 간 식당들이 유독 그랬는지, 스위스 식당이 원래 양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오는 식사는 언제나 유온이 혼자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할 정도였다.
한참 열심히 먹다가 배가 불러져서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만년설에 덮인 알프스가 레만호 둘레를 거대한 조각상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따라온 일행은 유온이 혼자 돌아다니는 동안 떨어진 곳에서 살피다가 식사 시간이 되거나,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꼬이거나 하면 바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유적을 돌아보거나 틈만 나면 호숫가에 앉아 호수를 구경하는 동안에는 혼자였다. 그렇게 여행하기를 오늘로 나흘째. 유온은 약간 외로웠다.
혼자서 여행을 가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윤서경의 말에 신기하고 설렜던 건 사실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첫날 낮에 주위를 둘러볼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날 밤 혼자 침대에 눕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낮에 관광을 할 땐 워낙 주위 풍경이 아름다워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이걸 윤서경과 보았다면, 맛있는 식사를 해도 윤서경이 같이 먹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직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게 자유가 아니라 쓸쓸함인 듯했다. 아마…… 어릴 적부터 내내 혼자였고, 혼자만의 시간에도 안도와 편안함이 아니라 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아래층에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향한 부러움이 지층처럼 몸속에 쌓여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식사를 한 뒤 다시 혼자 남은 유온은 따뜻한 음료 한 잔을 들고 호숫가에 앉아서 멍하니 그 광대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이 검푸른 호수는 느리게 일렁거렸고, 언제까지고 녹지 않을 만년설은 산을 오래된 문양처럼 덮고 있었다.
물기 섞인 바람이 불었다. 쌀쌀한 공기에도 오래도록 호수를 구경하다가 느릿느릿 일어섰다. 이정윤에게 이만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두 사람이 나타났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고요…….”
“아, 피곤하실 때 됐죠. 스파 서비스 불러 둘까요?”
유온은 작게 고개를 흔들곤 호텔로 돌아갔다. 역사가 오래된 고급 호텔로, 얼마 전 부경에서 거액에 매입하여 일부 리모델링을 거친 곳이었다.
이 여행이 싫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걷고, 유적이 아니어도 신기한 게 있으면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갔다. 호수와 산, 언덕이 많은 길, 골목골목의 이국적인 집과 가게, 대각선으로 이어진 계단, 꽃을 파는 가게까지도 하나하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처음 가는 길을 가더라도 데리러 올 사람들이 있으니 길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씻고 나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유온은 반가움에 확 밝아진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스위스가 오전일 때 한 번, 저녁일 때 한 번 걸려오는 전화였다.
“서경 씨.”
―잘 놀고 있어요?
“네. 오늘은 성당 보고 왔어요……. 성당이 많더라구요.”
―아, 그렇죠. 나도 유명한 곳 한두 군데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더군요. 뭐 필요한 건 없습니까?
“네. 풍경도 예쁘고,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좋아요. 다.”
그럼 다행이라고 웃는 윤서경의 목소리에 유온은 휴대폰을 꼭 쥐었다. 입술이 몇 번, 말을 해도 좋을지 고민하며 달싹거린다. 그러다 결국 입을 열었다.
“전부 너무 좋아요. 볼 것도 많고, 음식도 맛있고, 그런데…….”
―그런데?
“……서경 씨가 보고 싶어요.”
―…….
결국 털어놓았다.
모든 게 다 좋았다. 하지만 윤서경이 보고 싶었다.
스스로도 이게 그에게 의존해서인지, 그저 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의 마음은 그랬다. 예쁜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유온의 말에 잠시 조용해졌던 윤서경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털어놓고 나자 괜히 쑥스럽기도 하고, 편한 것도 같은 마음에 유온은 뺨을 긁적이며 오늘 있었던 일로 한참 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잘 자라고, 다정한 인사를 나눈 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유온은 지난 며칠보다 더 따끈따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시간 후 윤서경은 제네바 국제공항에 서 있었다.
이유온에게 여행을 권하기까지 그는 깊은 고민과 갈등을 반복했다. 둘이 함께라면 벌써 몇 번이나 다녀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를 혼자 보내는 것이었다.
그의 세계는 제법 넓어졌고 교류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제 슬슬 다른 활동을 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유온과 의사, 상담사와 함께 상의한 결과는 혼자서 하는 여행이었다.
여행 장소는 한참 고민한 끝에 스위스로 정했다. 자연 경관과 관광 유적이 적당히 섞여 있을 것, 치안이 좋을 것, 부경의 호텔이 있을 것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과였다.
이정윤에게서 유온이 길에서 이상한 놈에게 팔찌 따위를 강매당하지도,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빼앗기지도, 껄떡거리는 알파 놈을 만나지도 않으면서 나름 즐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안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재미있게 놀면서도 한편 쓸쓸했던 모양이다.
‘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세상이 무너져도 가야지. 이정윤에게 유온의 일정만 확인한 뒤, 놀라게 해 주고 싶어서 몰래 스위스로 왔다. 기차로 로잔에 도착해 호텔로 갈 때까지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이 되기까지 했다.
스위트룸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이 호텔은 리모델링을 했다 해도 오래된 곳이라 바깥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폰이 없었다. 유온의 발소리가 타박타박 다가왔다. 밖에서 먼저 신원을 밝히지 않는 게 이상했던지, 그는 바로 문을 열지 않고 서성였다.
“나예요.”
그 말을 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밖으로 열리는 문에 윤서경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유온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아……. 어, 어떻게, 왜 여기 계세요?”
“보고 싶다면서요.”
“…….”
벌어진 입이 수많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화면을 멈춰 놓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유온이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와 달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와서 싫습니까?”
“아니. 아니요, 아뇨!”
재빨리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한 그가 얼굴을 붉히더니 중얼거렸다.
“바쁘신데, 괜히…….”
언제쯤 알아줄까. 아무리 바빠도 그의 말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걸.
“조절이 가능한 일정이라서 온 겁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전혀 아니었지만 유온이 부담을 가질까 걱정되어 그렇게 말했다.
“…….”
유온이 가만히 윤서경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눈동자에 수많은 감정이 어른거렸다. 윤서경이 와서 기쁘고, 한편으로 바쁠 텐데, 이 시간을 빼느라 나중에 더 고생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고, 괜한 말을 했다 싶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좋고. 윤서경에게는 알기 쉬운 표정이었다.
“멀리서 왔는데 반겨 주지 않을 겁니까?”
“…….”
그제야 유온은 표정을 풀더니, 웃는 얼굴로 다가와 윤서경의 품에 안겼다.
* * *
로잔에서 파리까지는 기차를 탔다. 원래 유온 혼자서도 제네바에서 하루, 로잔에서 사흘을 보내고 파리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윤서경이 왔지만 스케줄을 바꾸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유온은 윤서경이 로잔 관광을 하지 않아도 될지 생각하는 기색이었지만, 이곳 호텔을 매입할 때 많이 와 봤다고 하자 그제야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파리는 기차로 다섯 시간 거리였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초록색 풍경을 한참 보고 있던 유온이 파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입을 열었다.
“서경 씨, 우리…….”
“네. 하고 싶은 거 있습니까?”
그러자 유온은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약간 머쓱한 기색으로 말했다.
“놀이공원 갈까요……?”
“놀이공원?”
파리에는 대규모 테마파크가 있었다.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그곳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놀이공원일까.
“그냥 한번 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요. 지금까지 다닌 곳보다 사람이 많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이제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자신도 곁에 붙어 있고.
파리에 도착해 그날은 호텔에서 쉬었다. 윤서경이 씻고 나오자, 유온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서 방에 비치된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호텔 1층 쇼핑가의 브랜드 카탈로그였다.
쇼핑에 관심이 없는데 오늘따라 어쩐 일로 상품 카탈로그를 본다. 심심하기라도 했나.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자니, 유온이 고개를 홱 들었다.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서경 씨…….”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유온이 정말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저 이거 갖고 싶어요…….”
이유온이 뭔가 갖고 싶다는 말을 하다니.
이 정도면 기념일로 지정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물욕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 곳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윤서경이 사다 안겨 주는 물건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지금 심지어 뭔가를 사 달라고 말한 것이다. 윤서경은 마치 갓 태어나 누워 있는 것밖에 못하던 아기가 성장해 혼자 힘으로 발딱 일어나는 걸 본 기분이었다.
“어느 거요?”
그렇다고 지금 유온을 끌어안고 칭찬을 해댈 수도 없었다. 그러면 부담을 느끼고 다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를 칭찬하는 건 적당한 조절이 필요했다. 윤서경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카탈로그를 보았다.
이유온이 프랑스어는 전혀 못 하는 게 다행이었다. 커플용으로 나온 시계는 전 세계 3세트 한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격은 안 쓰여 있었지만, 보면 이유온이 언제 사 달라고 했냐는 듯 카탈로그를 저 멀리 치워 버렸을 게 분명했다. 윤서경은 우선 이한영에게 메시지부터 보냈다. 가격은 문제가 아니지만 이미 팔렸으면 곤란해진다.
다행히 시계는 한 세트가 남아 있었다. 이 호텔에는 없고, 다른 지점에서 가지고 있는 듯했다. 호텔로 가지고 오도록 말하고 유온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여기 지점에 없어서 다른 곳에서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네? 아, 지금 바로 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서울보다 파리에 더 가까운 지점이라 여기서 받는 게 나을 겁니다. 더 갖고 싶은 건 없어요?”
유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구경하고 있는데 그 시계가 너무 예뻤어요. 서경 씨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고마워요.”
“사, 사 주는 건 서경 씨인데요.”
“당신이 골라 줬으니까요. 그리고 내 돈이 당신 돈입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윤서경에게 중요한 건 그 물건을 유온이 골랐다는 사실이었다. 부부이니 자신의 재산이 그의 재산인 것도 맞고.
“어쨌든, 오늘은 일찍 잘까요.”
유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윤서경의 품으로 들어왔다. 아직 침대로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안겨 드는 것도 사랑스러운 버릇이었다. 윤서경은 유온을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 * *
유온은 탈것보다는 곳곳에 돌아다니는 마스코트 캐릭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어쨌든 즐거워 보이긴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슬슬 해가 지려 할 때쯤 유온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진 듯했다. 이만 돌아갈지 물으려 했을 때 유온은 가만히 놀이 기구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어릴 때 어머니가 놀이공원에 저를 두고 가려고 한 적이 있어요. 세 살이었나.”
“…….”
“그때 형들이 그러지 말라고 해서 집에 돌아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건 고맙긴 해요.”
글쎄, 고마운 일일지. 유온이 세 살쯤이었다면 이유건과 이유연도 아직 어린 나이였다. 성민희처럼 진심으로 유온을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의 몇 안 되는 가족에 대한 좋은 기억이다. 그걸 굳이 지적해 망가뜨리고 싶지 않으니 이유온에게 그런 말을 할 마음은 없다.
안 좋은 기억이 모두 흐릿해지면 그때는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좋은 기억만 남곤 한다. 그렇게 좋은 것만 남아서 나중에 어쩌다 유온이 가족을 떠올릴 때면 고통이 아닌 담담함을 느끼기를 바랐다.
유온이 손을 뻗더니 윤서경의 손을 잡았다.
“서경 씨는 절 두고 가지 않을 거니까…… 그냥 말해 봤어요.”
“…….”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차분하게 반짝였다. 오직 자신에게만 보여 주는 눈이었다. 잠시 홀린 듯 그 눈을 보던 윤서경은 그의 손을 힘주어 마주 잡았다.
그를 두고 가지 않는 건 당연한 말이었다. 오히려, 유온이 자신을 두고 가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한 번 겪었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온을 보았을 때 조금씩 어두워지려 하던 주위로 일제히 불빛이 점등되었다. 일대의 모든 상점과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유온은 그의 뒤쪽 아케이드의 지붕 위치에 서 있었다. 그래서 불이 켜지자 마치 그를 중심으로 주위가 밝아진 것 같았다.
그가 없는 세계는 달도 없는 밤처럼 새카맣게 어두웠다. 지금은 그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환하다. 윤서경은 물끄러미 유온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그에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당황한 유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자의 행복으로 즐거운 사람들은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만 돌아갈까요?”
유온도 가만히 윤서경을 보다가 끄덕였다.
* * *
“시계는 방에 가져다 뒀다고 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윤서경이 말했다. 유온은 안전벨트를 매다 말고 그를 보았다.
“벌써요?”
“네. 그렇게 멀지 않은 지역에 있어서요.”
찰칵, 하고 벨트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야간 개장으로 관람객은 한창 돌아다닐 시각이라 주차장이 한적했다. 걸어 들어오면서도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유온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비쳐 흐리게 음영이 져 있었다.
윤서경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잠겼던 안전벨트가 그의 손가락 아래에서 풀어졌다. 의아한 표정을 하는 유온을 그는 몸을 숙여 팔로 허리를 감곤 그대로 끌어당겼다. 유온은 순식간에 윤서경의 허벅지 위에 앉혀져 잔뜩 당황했다.
“서, 서경 씨, 잠깐만요, 이, 이, 이런 데서…….”
그는 윤서경의 어깨를 밀며 꾸물꾸물 뒤로 도망쳤다. 보통 두 사람은 집에서, 기껏해야 주방에서 점잖게 관계를 맺었다. 물론 차에서 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윤서경은 흘끗 차 밖을 보았다. 주차장에서도 테마파크의 밝은 불빛이 잘 보였다.
차는 선팅이 강하게 되어 안에서 뭘 해도 보일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테마파크 주차장이라니, 이유온이 진심으로 고개를 젓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윤서경은 말없이 그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유온은 멍하니 있다가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가 깜빡거리자 그제야 벨트를 맸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얼마쯤 갔을 때 윤서경은 핸들을 꽉 쥐었다. 차 안을 스멀스멀 익숙한 향기가 채우고 있었다. 유온은 귀와 목덜미까지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향이 제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향도 한창 내뿜어지는 중이었다.
윤서경은 액셀을 꾹 밟으며 옆으로 핸들을 틀었다. 고개를 숙인 유온은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넓은 도로를 빠져나간 차는 이내 어둑하고 조용한 길로 들어섰다.
차를 세우자 그제야 불온한 기운을 알아차렸는지 유온이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간신히 가로등이 있었으나 일대 어디를 보아도 집이고 차고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외길이라 어느 쪽에서든 차가 오면 바로 눈에 띌 것이다.
가로등 바로 아래에 차를 세워 시야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만족할 만큼 잘 보이진 않았다. 윤서경은 실내등을 켠 뒤 유온을 보았다. 한 손만 운전대에 얹은 채로 가만히 보고 있자, 유온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몸을 앞으로 뻗었다. 가까워진 그를 낚아채듯 안아 다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익숙한 체향이 차 안을 밀도 높게 채우고 있었다. 바지 위에서 허벅지 사이를 더듬다가 밀부로 손을 가져가자 유온은 움찔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실내등의 주홍색 불빛에 붉어진 뺨 위의 솜털이 보였다. 윤서경은 그 뺨에 입을 맞추며 유온의 허리며 엉덩이를 더듬다가 옷을 내렸다.
서늘한 기운에 유온이 몸을 잠시 굳혔다. 속옷까지 벗겨 아래를 드러내자 달콤한 체향이 한층 짙어졌다. 손가락으로 만져 보니 밀부가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귓가에 대고 숨을 내쉬자 유온이 움츠러들며 윤서경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목덜미를 빨며 젖었지만 좁은 아래를 어루만졌다. 딱딱한 손가락 끝이 입구 주위를 지분거리자 그곳은 한층 젖어 들며 향기를 퍼뜨려댔다. 뜨겁고 축축한 구멍 입구가 벌써 손가락을 빨아들이려 하는 것 같았다. 윤서경은 한 손으로 꼬리뼈를 짚고, 다른 쪽 손가락을 조금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촘촘하게 조여진 점막이 손가락을 감쌌다.
그러자 유온은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려 윤서경의 바지 앞섶을 풀었다. 이미 일어선 성기가 툭 튕겨지듯 옷 사이로 빠져나왔다. 유온은 섹스할 때 수동적인 편이었지만 가끔 이렇게 대담하게 굴 때가 있었다. 얼마나 하는지 볼 생각으로 목덜미에 입만 맞추며 계속해서 아래를 만졌다.
하지만 유온은 두 손으로 한 번 성기를 감싸고 문지르나 싶더니,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윤서경의 손을 밀어냈다.
“……호텔로 돌아갈까요?”
아무리 외진 곳이라 해도 언제 차가 지나갈지 모른다. 아무래도 싫은가 하고 묻자, 유온은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꾸물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
자그마한 머리가 윤서경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윤서경이 의자를 뒤로 많이 빼놓는다곤 하지만, 이 좁은 공간에 잘도 들어가 있었다. 유온은 윤서경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 성기 뿌리를 감싸고 끝을 입에 물었다. 씁쓸한 맛에 얼굴을 조금 찡그리면서도 입을 물리진 않았다. 좁고 습한 입 안이 조금씩 더 성기를 삼켰다.
유온이 윤서경의 것을 삼키려면 작은 입을 한껏 벌려야 했다. 힘겹게 귀두를 머금은 얼굴이 벌써 찌푸려졌다가,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유온은 겨우겨우 조금씩 더 성기를 입에 넣곤 구역질이 올라오는지 홱 빼내며 입을 다물고 침을 몇 번 삼켰다.
열이 담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던 윤서경은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유온은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뜨다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고는 다시 성기를 입에 넣었다.
성기의 모양대로 뺨이 볼록하게 솟았다가, 그대로 입 안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유온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술 끝에 머금는 것조차 버겁게 큰 것을 안으로 삼켰다. 윤서경은 그에게 좀처럼 이런 것을 시키지 않았고, 유온도 부끄러워하기에 아직도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툰 행동이 윤서경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극이었다. 유온이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흥분이 가중되는데 어설프게 고개를 움직여 어떻게든 목구멍까지 집어넣으려 하고 있으니 숨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윤서경은 유온의 뒤통수를 움켜쥐고 성기를 목 안쪽까지 처넣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했다.
유온 역시 입 안의 물건을 삼키려 애쓰고 있었다. 이를 꽉 물고 있던 윤서경의 인내심은 유온이 성기를 목까지 문 채 침을 삼키고, 그 순간 눈물이 툭 흘러내리는 걸 본 순간 날아갔다. 그는 유온의 뒤통수를 제 몸 쪽으로 거세게 눌러 붙이며 목구멍을 헤집었다. 유온에게서 앓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우, 으…….”
입술 사이가 아닌 목이 울리는 소리로 흘러나온 신음은 가늘고 높았다. 괴로운 게 아닐까 싶도록 들리는 신음이었으나 그걸 듣고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목 안으로 성기를 힘주어 밀쳐 넣은 순간 가느다란 이성이 돌아와 허리의 힘을 빼며 유온을 놓았다. 그러자 유온은 의아한 듯 한쪽 눈을 뜨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 성기를 빼내곤 혀 위에 얹었다가 다시 핥고 빨기 시작했다.
몰아쳤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설픈 구음에도 사정감은 빠르게 차올랐다. 배가 뻐근해진 순간 윤서경은 유온의 머리를 몸에 꽉 붙였다.
“으, 으응, 읍…….”
유온은 입 안으로 쏟아지는 정액을 열심히 삼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레가 들린 듯 도망쳐 성기를 뱉어내며 콜록거렸고, 덕분에 채 그 목으로 넘어가지 못한 정액은 희고 작은 얼굴에 전부 쏟아졌다.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도 질척거리는 액체가 주룩 흘렀다. 턱을 타고 흐른 정액이 툭툭 유온의 허벅지와 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을 색색거린 유온이 힘이 빠진 듯 머리를 윤서경의 무릎에 기댔다. 윤서경은 그대로 유온의 몸을 끌어 올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나 닦으려다 말고 멈칫한 채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긴 속눈썹, 눈썹, 이마를 가리는 머리카락, 동그란 뺨과 입술에 온통 흰 정액이 흩어져 있었다.
입 안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 정액이 남아 혀 위에 희부옇게 고인 채였다.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윤서경은 작은 소리로, 전부 삼키라고 속삭였다. 유온이 입을 다물더니 입술을 우물거리며 힘겹게 입 안의 것을 삼켰다. 목울대가 두 번 오르내렸다.
감겨 있던 눈이 가늘게 뜨이며 윤서경을 보았다. 온통 자신의 정액으로 엉망이 된 얼굴은 묘한 감정을 자극했다. 윤서경은 말라 가는 정액을 손으로 만지곤 그 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눈꺼풀 위를 혀로 누르자 유온이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 감긴 눈을 혀로 몇 번 핥고 이마며 뺨에 묻은 것도 천천히 닦아 냈다.
손은 아래로 내려가 아직 허벅지에 걸려 있는 바지를 쥐었다. 유온이 상체를 기대며 허벅지를 세워 옷을 벗기기 편하도록 자세를 바꾸었다. 위쪽으로 올라온 엉덩이가 핸들에 얼핏 닿았고, 유온이 그에 곧바로 신음하며 윤서경에게 더 바짝 붙으려 했다.
바지를 벗겨 떨어뜨린 윤서경은 손으로 유온의 몸이 닿았던 핸들 아래쪽을 만져 보았다. 미끌미끌한 액체로 젖어 있었다. 그걸 몰랐을 리 없는 유온은 윤서경이 핸들을 만지자 고개를 흘끗 돌렸다가 다시 윤서경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장 이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좁고 촘촘하고 뜨겁고,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젖은 안으로. 아직 너무 비좁고 빡빡했으나……, 유온의 다리 사이에 손을 넣은 윤서경은 눈매를 좁혔다. 아래를 만졌던 것도 아닌데 허벅지 사이로 애액이 흐를 만큼 젖어 있었다. 그럼 입으로 하는 동안 적셨다는 뜻이었다.
배가 뜨끈해지는 것 같았다. 윤서경은 그대로 유온을 안아서 몸에 꽉 붙여 안았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유온의 엉덩이 골에 미끄러지듯 눌렸다. 곧바로 손가락을 구멍에 대고 더듬자 유온이 작게 신음했다.
미끌미끌한 아래는 입을 벌리듯 꾸물대며 윤서경의 손가락을 집어삼켰다. 질질 흐를 정도로 나온 애액 때문에 두 손가락을 바로 넣어도 삽입이 어렵지 않았다. 러트라도 온 것처럼 마음이 조급했다.
“아으, 으……, 응……!”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신음을 듣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윤서경은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급하게 유온의 아래를 풀었다. 야외에 있다는 긴장 때문인지 가느다란 몸은 평소보다 뻣뻣했다.
“괜찮아요, 정말 아무도 안 올 겁니다.”
“으, 그래도……, 앗, 아……!”
굵직한 손가락 네 개가 다 들어가자 유온은 압박감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있는 틈을 따라 새로 흐른 애액이 쏟아졌다. 윤서경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입으로 하면서 이렇게 적실 줄은 몰랐네요.”
“아……! 아, 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윤서경은 다음 말을 하는 대신 유온의 귀에 입 맞췄다. 러트에 이성이 날아갔을 때를 제외하면 좀처럼 그에게 난폭하게 행동하는 일도, 음담을 하는 일도 자제했다. 섹스에도 이제 막 적응했을 뿐인 어린애 같은 유온을 놀라게 할 순 없었다. 그가 섹스를 결코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기를 바랐다.
손가락을 깊이 밀어 넣을 때마다 유온은 할딱거리다가 윤서경의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부드러운 피부가 얇게 맺힌 땀으로 젖어 가고 있었다. 미끄러워진 피부를 손으로 더듬으며 손가락을 넓혀 아래를 더 벌리고는 손을 빼냈다. 뜨거운 애액이 길게 선을 그리며 따라왔다.
곧바로 유온의 몸을 조금 들어 구멍에 성기 끝을 가져다 댔다. 유온은 오늘의 행위가 다소 급하리라는 걸 알았는지, 놀라지 않고 좁은 운전석 안에서 어설프게 다리를 벌렸다. 푹 젖어 말랑말랑해진 아래와 그 행동에 더 참지 못하고 윤서경은 성기 끝을 밀어 넣었다.
“아……!”
안은 언제나 그렇듯 조밀하고 빠듯했다. 힘들게 집어넣은 귀두를 젖은 점막이 와락 감싸 꿈틀거리며 안으로 빨아들이려 했다. 숨을 고른 윤서경이 유온의 허리를 잡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완력으로 그 몸을 콱 잡아 내려앉혔다. 유온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와 차 안을 울렸다.
“흐아, 으, 응……, 아, 아파, 너무, 너무…….”
“……그렇게 아파?”
유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갑자기……, 꽉 차서…….”
“하……, 윽, 조이지 마.”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못 하겠다는 뜻인 듯했다. 안은 마구 조여들며 윤서경의 성기를 문 채 거세게 압박하고 있었다. 물결치듯 꿈틀대는 내벽의 촉감이 쾌감의 근원인 곳을 고루 빨아댔다. 안쪽은 그간의 관계 때문에 완벽하게 서로의 모양에 들어맞았다.
“유온아…….”
유온이 고개를 조금 들었다가 대답하듯 끄덕였다. 아직 그에게 말을 낮추는 건 섹스할 때뿐이었다. 그리고 유온은 그렇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윤서경은 허리를 약간 세우며 아래에서 위쪽으로 몸을 치대듯 쳐올렸다. 유온의 상체가 휘청거리며 뒤로 기울어졌다가 돌아왔다.
작지 않은 차체인데도 윤서경의 몸 위에 유온이 올라타 있자 당장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얼른 손을 뻗어 유온의 머리를 감싼 윤서경은 밀려드는 쾌감에 눈을 가늘게 뜬 유온을 잡아 안고 자세를 바꾸었다.
침대 위처럼 움직이는 게 자유롭지 않았다. 윤서경의 커다란 체구로는 더욱 그랬다. 다소 힘겹게 자세를 바꾸어 유온을 운전석에 눕히곤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안에 성기를 품은 채 자세가 바뀌자 유온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윤서경은 꽉 감겨 버린 눈을 혀끝으로 핥아 뜨게 했다.
실내등의 부족한 광량 아래에서 눈이 마주쳤다. 황홀한 체향을 온통 피워 대고 있는 유온의 눈은 검고 축축했다. 이대로 눈동자에도 키스하고 싶을 정도였다. 눈동자 대신 순하게 처진 눈매에 입을 맞춘 윤서경은 유온의 두 허벅지를 붙들었다.
새하얀 허벅지는 이전보다 살이 붙어 좀 더 부드러워졌다. 손으로 꽉 움켜쥐면 연한 살이 손가락 사이로 둥그런 굴곡을 만들었다. 이따금 손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 위에 멍이 남곤 했다. 윤서경은 더운 숨을 내뱉었다. 오늘도 손자국대로 멍이 들 것 같았다.
허벅지 안쪽에서 오금 아래까지 밀치듯 누르자 유온의 두 발이 차 천장에 거의 닿을 듯했다. 한쪽 신발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른 한쪽도 반쯤 벗겨져 달랑거렸다. 윤서경은 유온의 발목에 입 맞추고 몇 번 깨물다가 다시 힘을 주어 성기를 밀어 넣었다.
“흐윽……!”
허리와 다리를 높게 든 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자 성기는 단번에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성기를 받아들이는 길 거의 끝이었고, 사정하면 곧바로 아기집으로 정액이 흘러들 몸속의 비밀한 곳이었다. 고환이 유온의 살에 짓눌릴 정도로, 뿌리 끝까지 성기를 파묻은 윤서경 또한 신음을 흘렸다. 눈앞이 번뜩였다. 어떻게 하면 더 낱낱이 눈앞의 오메가를 삼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다리를 눌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유온은 한쪽 팔을 들어 헤드레스트를 움켜쥐다가, 안전벨트를 붙들었다가 허둥거리다 결국 손을 뻗어 윤서경의 어깨에 올렸다.
윤서경은 멋대로 그것을 계속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무릎을 의자에 붙여 몸을 지탱한 채 거칠게 제 것을 밀어붙였다. 당장 유온의 입에서 야한 신음이 쏟아졌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곤조곤하면서 어떻게 조금만 만지면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퍽, 퍽, 두 번 정도 안을 때리자 유온이 입술을 깨물더니 하체를 약간 움직였다. 저도 모르게 한 건지, 조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으나 윤서경의 이성을 날리기엔 충분했다. 그는 유온의 다리를 붙들고 빠르게 몸을 때렸다. 습해진 차 안의 공기를 음탕한 소리가 꽉 채웠다.
“아아, 아……, 서경 씨, 자, 잠깐, 너무…….”
사납고 빠른 삽입에 유온이 벌벌 떨었다. 어깨를 잡고 있던 두 손은 위로 뻗어와 윤서경의 목을 끌어안았다가, 등을 붙들었다가 했다. 밖에서 보면 분명 차체가 흔들릴 것이다. 유온은 그 사실을 모르는 채 그저 밀려드는 쾌감에 떨며 신음만 하고 있었다. 등과 목에 휘감긴 손이 몇 번씩 손톱을 세워 옷 위에서 윤서경의 몸을 긁었다.
옷을 벗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유온이 남겨 놓은 손톱자국은 묘하게 달콤한 아픔을 남기기에.
“아윽, 아, 아, 아……! 아!”
쏟아지는 신음에 조금씩 갈라지는 목소리가 섞였다. 윤서경은 유온의 다리를 더 높게 끌어당겨 들었다. 허리가 들리면서 삽입은 더욱 깊어졌다. 맞물린 연결부에서 넘칠 듯 나온 애액이 유온의 허리를 타고 흘렀다. 두 발이 맥없이 흔들리다가 몇 번쯤 천장을 스쳤다.
“아, 안 돼, 아……, 흐, 윽, 안 돼…….”
“그만할까?”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묻자, 유온은 흠칫하더니 윤서경을 원망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 얼굴을 보며 한 번 더 세차게 성기를 박아 넣었다. 유온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더욱 새빨갛게 물들었다. 크게 뜨인 눈, 더욱 빠르게 꿈틀거리는 내벽, 힘이 들어가는 아랫배와 떨리는 몸까지, 절정이 가까운 듯했다. 윤서경은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층 포악하고 빠른 허리 짓이었다. 짓치듯 사나운 움직임에 유온은 속절없이 비명 섞인 신음만 터뜨리다가 어느 순간 확 굳어졌다.
“……흐윽…….”
유온의 앞과 뒤에서 동시에 말간 액체가 쏟아졌다. 안쪽을 적시는 액체는 그대로 윤서경의 성기에 휘감겼다. 절정을 감당하는 내내 유온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목에 감았던 두 팔이 툭툭 떨어졌다. 그 얼굴을 윤서경은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집요할 정도로 바라보았다. 몽롱해진 얼굴로 할딱거리는 유온을 보며 몸을 조금 뒤로 물렸을 때였다. 유온이 떨리는 손을 뻗더니 윤서경의 팔을 쥐었다.
“서경 씨, 이대로…….”
성기를 아예 빼내려 한 줄 아는 듯했다. 이대로?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이, 이대로……, 안에다, 해 주세요…….”
이대로 계속 해 주세요, 그 정도 말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더 강렬했다. 윤서경은 피식 웃었다. 나름대로 진정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윤서경은 유온이 방금 절정을 맞아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걸 알면서도 다시 다리를 움켜쥐었다.
“흐윽……! 아, 아……! 아, 아, 앗!”
거친 움직임에 유온은 몸을 버둥거렸다. 의자가 삐걱거릴 정도로 난폭했다. 벽처럼 커다란 몸에 눌린 유온은 이내 버둥거리는 것도 못 하게 되어 맥없이 윤서경의 아래에서 흔들려야 했다.
“그런 건 누구한테, 배웠어?”
“아, 아……. 뭘…….”
“안에 해 달라는 말. 누가 가르쳐 준 거냐고.”
말하며 윤서경은 유온의 배를 꾹 눌렀다. 안에 성기를 가득 문 채 배를 눌리는 감각이 이상했는지 유온이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그냥, 그냥 아는…….”
“정말?”
“……흐, 윽, 서경, 씨한테, 서경 씨가…….”
가르쳐 줬잖아요, 뒤의 말은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런 걸 가르쳤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마른 몸이 주체할 수 없는 쾌감으로 떨렸다. 신음에는 이내 울음이 섞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윤서경이 손끝으로 닦고, 눈가에 입을 맞췄다. 간신히 윤서경이 안에 사정할 때까지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으, 흑……, 흐윽…….”
몸속에 정액이 쏟아지는 동안에도 유온은 계속 흐느꼈다. 사정하고 조금 정신이 돌아온 윤서경은 유온을 안고 조심스럽게 다시 자세를 바꾸어 앉았다. 유온은 윤서경의 몸 위에 똑바로 누운 채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직 단단한 성기를 천천히 꺼내자 벌어진 구멍에서 왈칵 정액이 쏟아졌다. 그 느낌에 몸을 떤 유온은 훌쩍거리며 윤서경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그러다 뒤늦게 그도 정신이 드는지 퍼뜩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굴이 조금 창백해진다. 차 안에서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이었다. 사방에 흩어진 정액과 애액을 대체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제 몸 안에 아직 잔뜩 들어 있는 정액도.
윤서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뜨겁게 부어오른 유온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서경 씨……!”
“어차피 지저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어요.”
“…….”
맞는 말 같았는지 그가 입을 다물었다. 윤서경은 손가락이 깊게 들어올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를 안은 채 몸속의 정액을 긁어냈다. 흘러나온 정액은 윤서경의 바지와 의자, 바닥으로 두서없이 쏟아졌다. 손수건으로 유온의 하체를 닦은 윤서경은 다행히도 깨끗한 바지를 다시 입히곤 유온을 옆자리에 앉혔다.
유온의 시선은 바닥과 윤서경의 바지에서 떠나지 않았다. 입술은 웃듯이 약간 벌어지고, 눈매는 가늘어진 얼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이 차를 누군가가 청소할 텐데 보이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방에서 섹스하는 것도 가사 도우미가 청소하는데……, 그러나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했다가 그때부터 괜히 유온이 신경 쓰기 시작하면 좋을 게 없었다.
“차는 내가 청소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 아니에요, 제가…….”
“당신이 하겠다고 하면 직원을 부르고요.”
“…….”
유온은 입을 다물었다. 시동을 걸자 헤드라이트가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으슥한 길을 비췄다. 차를 청소하는 것이라고 해 봐야 곳곳에 뿌려진 액체를 닦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가는 길에 환기를 좀 하면 된다. 윤서경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차를 출발시켰고, 유온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잠시 조용하다가 짧지만 격렬했던 섹스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픽 잠들었다.
* * *
호텔에 도착한 건 새벽에 가까운 늦은 시각이었다. 비몽사몽한 유온을 데리고 방으로 올라왔고, 그는 멍하니 있다가 몸을 씻긴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생각하니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라 간단하게 먹을 걸 가지고 오도록 했다. 유온은 음식을 봤을 땐 입맛이 별로 없는 기색이었으나 막상 먹기 시작하자 금방 그릇을 비웠다.
식사한 트레이를 현관 밖으로 내놓은 뒤 윤서경은 직원이 두고 간 시계를 가지고 나왔다. 상자를 열어 본 유온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을 정도로 그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정말 모처럼 눈에 차는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뭘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갖고 싶다고 말한 걸 보면.
“마음에 들어요?”
“네,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얼굴이 발개진 채 그렇게 말한 유온은 윤서경의 손목에 먼저 시계를 채워 주고, 자신의 손목에도 찼다. 찰칵 하고 잠금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윤서경 역시 시계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절대 멈출 일이 없는 시계이기에.
시계는 유온의 가느다란 손목에 딱 맞게 어울렸다. 얼마 전까지도 그는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말조차 쉽게 믿지 않았다. 이제 뭔가가 갖고 싶다고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윤서경은 새삼, 감동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거의 지구의 반 바퀴를 날아왔다. 어쩔 수 없었다. 이유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어떻게 가만히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유온이 휴대폰으로 자신의 손목을 한 번, 그리고 윤서경의 손목을 한 번 찍었다. 사진첩에 저장된 두 장의 사진을 보며 기분이 좋은 듯 웃는다. 윤서경은 그런 유온의 머리를 끌어안고 머리카락 위에 입을 맞췄다.
나는 이 세상에 어디든 당신을 찾아서 갈 곳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게 갈 수만 있는 곳이라면.
그 말은 그저 입 안으로 중얼거리며 윤서경은 자신이 돌아온 자리를 온 힘을 다 해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