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18)

4, 돌아와서 말하기

이유온이 죽은 건 병원에 실려 오고 고작 며칠 만이었다. 그가 위독한 상황이어도 윤서경이 내내 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죽음은 하필 그 순간에 찾아왔다. 병원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윤서경은 회의 도중에 뛰쳐나왔다.

숨이 끊어지던 순간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어떤 정신으로 서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걸 마치고 돌아온 집은 햇살과 고요로 가득했다. 반짝이며 떠도는 먼지를 윤서경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집 안 곳곳의 꽃병은 비어 있었다. 가사 도우미가 매일 물을 갈아 주었겠지만, 절화는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니 시들기 전에 버려진 듯했다.

천천히 움직인 윤서경의 발길이 이유온이 사용하던 방으로 향했다. 닫힌 문을 열자 깨끗한 방이 나왔다. 필요한 가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책 몇 권이 전부인 책상 위에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벌써 한참 전에 전원이 꺼져 버린, 이유온의 휴대폰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했다. 회선을 해지해야 할 것이다. 이제 사용할 사람이 없으니. 윤서경은 케이스도 없는 휴대폰을 집어 우선 충전을 했다.

얼마 후 희부연 빛과 함께 전원이 켜졌다. 화면 잠금은 없었고, 외면의 사용감과 어플 두어 개만 빼면 이제 막 산 휴대폰이 아닐까 싶을 만큼 깨끗했다.

그때 휴대폰이 깜빡거렸다. 무음으로 해 두었는지 소리도 진동도 없이 착신 화면만 떠올랐다. 발신인은 ‘린 플라워’였다.

‘……네.’

―어머, 이유온 님 휴대폰 아닌가요?

‘맞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스스로 느끼기에도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린 플라워라는 꽃집인데요, 주문하신 물건을 아직 수령하지 않으셔서요.

‘어디에 있는 곳입니까? 찾으러 가죠.’

―죄송하지만 고가품이어서 본인이 오셔야…….

‘남편입니다. 이유온 씨는…….’

윤서경은 잠시 이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유온의 부고를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짧은 망설임 후 사실을 전달하자 전화 너머에선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에 사무적으로 대꾸한 후 집을 나섰다.

꽃집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윤서경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점원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유온이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니 더더욱 놀랐다. 그가 윤서경과 결혼한 사람이라는 걸 이들은 몰랐던 듯했다.

‘주문하신 건 이 꽃다발이에요.’

점원이 큰 꽃다발을 내밀었다. 꽃과 색을 맞춘 포장지가 바스락거렸다. 개량종으로 보이긴 했으나 튤립이었다. 옅은 청보라색에서 선명한 분홍색으로 번지는 얇은 꽃잎과 비단 같은 질감이 아름다웠다.

‘저, 이건…….’

잠시 꽃다발을 보고 있는데 점원이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품종인데요, 지나가는 이야기로 잠깐 말씀드린 건데 꼭 구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도 구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 드린다고 했다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겨우 주문했거든요. 구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원래 굉장히 조용하던 분이었는데 그때 정말 좋아하셔서…….’

점원의 눈가가 빨개졌다. 윤서경은 꽃다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꽃은 딱 윤서경의 나이만큼 있었다.

‘신혼여행지가 몰디브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꼭 구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 품종 이름이 몰디브 선셋이거든요.’

‘…….’

튤립은 그 이름 그대로, 신혼여행 첫날 해변을 걸으며 보았던 산호섬의 석양 색이었다. 신혼여행이라는 말에서 그제야 윤서경은 이 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았다. 결혼기념일이었다.

‘……연락 고맙습니다.’

수많은 말 중에서 윤서경은 그 한 마디만 겨우 하고 꽃을 든 채 가게에서 나왔다. 튤립은 금세 시든다. 꽃이 시들지 않도록 하는 후처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윤서경은 꽃을 보존했다. 약품을 머금어 시들지 않게 된 튤립은 묘하게 그 색이 바랜 것 같기도, 생기가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다. 이유온이 사용하던 휴대폰도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유온을 집 밖으로 치우고 싶었고, 그 가족들이 거슬려 참을 수 없었는데 정말로 그가 사라지자 주위가 온통 어두워진 것 같았다. 낮은 밤 같았고 밤은 그보다 더 어두웠다. 어디를 가나 채도가 낮은 세계였다.

이유온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 간 뒤 그가 어떤 병을 선고받았던 건지 알았다. 그의 가족들은 그걸 빌미로 하여 부경을 통째 삼키려 들었다. 당연히 그 수작을 받아 줄 수는 없었다.

단지, 그의 병증은 전적으로 윤서경의 책임이 맞았다. 만일 그쪽에서 병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더라면 윤서경에게도 거액일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을 것이다. 이혼……. 차라리 이혼을 요구하는 편이 나았다.

알파와 오메가는 사랑하는 상대를 얻지 못하면 그 고통을 여러 형태로 표출했다. 이유온이 걸린 건 바로 그런 표출 방식의 하나였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해치는 슬픈 병. 누군가는 그를 들어서 상사병이라고도 말했다.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심각한 병이긴 했지만.

사랑하는 상대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히 함께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병은 발병한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좀먹는다. 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다. 치료 방법, 쓸 수 있는 수단, 남은 수명, 연명 치료, 모든 게 쓸데없는 일이다.

격렬한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이상 작용은 온몸에 독을 퍼뜨리고 이내 뇌까지 침범하여 합병증을 일으킨다. 그렇게 살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몸이 뇌의 활동을 멈추거나 장기 기능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린다.

결혼한 사람이 그 병에 걸리는 건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배우자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언론과 대중은 멋대로 수군거렸고 이유온의 가족들은 책임을 지라며 날뛰었다.

윤서경이 같은 병에 걸릴 때까지 그것은 이어졌다.

그때, 이유온이 방에 와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했을 때 한 마디라도 제대로 물어보았다면 모든 게 달라졌겠지. 치료제는 없다. 온몸에 기계를 연결한 채 억지로 숨을 붙여 놓는 것밖에는. 하지만 치료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원인을 제거하면 되었다. 고통의 원인, 사랑받지 못하는 슬픔을.

이유온에게 무슨 일인지 묻고 태도를 바꾸었다면 그는…….

의사는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상태는 돌이킬 수 없이 나빴고 하루하루 숨을 유지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만, 상대에게 사랑의 파편이나마 받는다면 거기서부터 회복해 갈 수 있다고.

그에 이유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 같다.

연명 치료도 의미가 없다며 거절했다.

이유온이 죽고 얼마 후 윤서경은 격렬한 두통을 느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욕설이 튀어나오다 이내 그조차 사라지고 아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두통이었다. 머릿속이 새카매지고 머리를 말뚝으로 쪼아 대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갔다. 진단 결과는 이유온에게 내려졌던 것과 같은 병이었다.

윤서경은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자신이 똑같이 겪으면서 이유온이 어떤 고통 속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새벽녘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그는 이유온이 사용하던 침대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그가 없는 세계. 깊은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이대로 눈을 감았다 뜨면 밤이 끝날까…….

유온 씨.

들을 사람이 없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다정한 호칭으로.

그날이, 이유온을 잃은 윤서경의 마지막이었다.

이제 윤서경은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또다시 입체 화면 앞에 서 있었다. 툭, 발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자신이 신혼여행지에서 빼고 다신 끼지 않았던 결혼반지였다. 이 반지를 보는 것도 화가 치밀었었다. 결혼했으니 왼손을 비우고 다닐 순 없어 어쩔 수 없이 웨딩 밴드를 했다.

예물이었던 물건은 모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았다. 이유온은 반지에 대해 딱 한 번 물었다. 혹시 잊고 갔던 거냐고. 하지만 차가운 대답에 말없이 제 손을 만지작거렸고, 이후 다시는 끼지 않았다.

다시 이유온의 집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가족이 우르르 집으로 들어왔다. 검은 옷으로 보아, 장례식 뒤였다.

‘아, 진짜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나 먼저 씻을게요.’

이유연이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욕실로 향했다. 가족 누구의 얼굴에도 애통함은 없었다. 욕실 문을 열려던 이유연은 뭔가 잠시 생각하다 몸을 슥 돌리더니 말했다.

‘근데, 나 윤 대표님이랑 결혼할 수 있겠지?’

‘조금 기다려 봐.’

‘왜? 그냥 처음부터 대표님이 상대를 잘못 골라서 결혼한 거라고 하면 되잖아. 마침 이유온도 그 병으로 죽었고. 흠……, 이유온이 졸라서 결혼을 하긴 했는데 사실 윤서경이 결혼을 원한 건 이유연이었다. 어때? 드라마 같지?’

‘너무 드라마 같아. 상황 좀 봐야겠으니까 너는 괜한 짓 말고 기다려.’

이유건의 대답에 이유연은 칫, 하고 입을 비쭉였다. 윤서경은 가슴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결국 한 사람을 죽이고도 이들 중 누구 하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유온이 그렇게 죽은 걸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빌미가 될 일이었으니.

‘근데 하필 그 병으로 죽네. 아, 이럴 때 보면 걔는 진짜 착해.’

‘유연아.’

이유온의 모친이 타이르듯 불렀다. 크게 책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왜에. 솔직히 우리 다 걔 죽기만 기다렸는데.’

재미있다는 듯 웃은 이유연이 욕실로 들어갔다. 남은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이유온의 죽음을 가지고 부경과 윤서경을 어떻게 압박하느냐에 대해서였다.

이유온은 이런 곳에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태연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가족들 사이에.

데리러…… 와 주세요. 완성되지도 못했던 그 메시지.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에게 의지가 되었더라면, 그는 그 메시지를 전송했을까. 데리러 와 달라고 자신에게 말했을까.

창밖은 어둡고 추웠다. 눈을 깜빡이자 그 어둠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가로등의 침울한 불빛 속에 희끗한 눈송이가 점점이 날리기 시작했다.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는 길, 텅 비어 있는 교차로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얇은 옷을 입은 채 맨발인 이유온이었다.

멀리서 그를 본 윤서경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걸음이 조급했다. 추운 듯 어깨를 움츠린 채 고개를 숙인 이유온이 눈을 내리깔았다. 눈물이 고이듯 눈가가 젖어 갔으나 이유온은 울지 않으려 하는 듯이 고개를 잘게 저었다.

희고 가느다란 목덜미 위로 눈이 떨어졌다. 그것 때문에 점점 그의 몸이 식어 가는 것 같았다. 간신히 가까이 다가간 윤서경이 손을 뻗어 깡마른 팔을 잡으려 한 순간, 정신이 들었다.

익숙한 호텔 천장이 보였다. 눈을 떴으나 아직 꿈의 여진이 남아 머리가 멍했다. 작은 숨소리가 들려 퍼뜩 시선을 내리자 이유온이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창밖은 눈 내리는 밤이었다.

윤서경은 벌떡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챙겨 입었다. 침대 위에 이유온이 있다. 그러나 저 추운 거리 어딘가에 이유온의 다른 한 조각이 맨발로 서 있었다.

그대로 호텔을 뛰쳐나갔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숨을 내뱉자 새하얀 입김이 찬 공기를 부옇게 물들였다.

눈은 주위의 소음을 녹이며 떨어져 지상에 조금씩 쌓였다. 얇게 덮인 눈으로 미끄러워지기 시작한 거리를 윤서경은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교차로, 번화가, 골목길, 어디를 가도 그가 찾는,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눈이 윤서경의 옷과 머리를 조금씩 적셨다. 코트 위로 떨어진 눈은 추위 때문에 엷게 쌓여갔다. 숨까지 가빠진 채 윤서경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검푸른 하늘을 수놓듯 하얀 눈이 사락사락 흩날리고 있었다. 먼지처럼, 또는 빛을 잃은 별처럼.

한참을 그 눈 속에 서 있던 윤서경은 불현듯 생각난 듯이 시계를 확인했다. 급하게 옷을 입는다는 게 습관적으로 시계까지 챙겼다. 시곗바늘을 본 순간 윤서경은 몸을 돌려 호텔로 향했다. 로비를 지나 방으로 올라가는 발길은 초조하면서도 조금 비틀거렸다.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유온을 보았다. 그는 맨발이었고 조금 추워 보였다. 윤서경이 눈 내리는 거리를 무작정 다니는 동안 이유온이 이곳에 혼자 있었다. 나갔던 것을 후회했다. 또 그를 혼자 두고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이유온.

조금 전까지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이자, 몇 년에 걸쳐 사랑하며 한 번도 얻지 못했고, 자신이 헤매던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혼자였던 사람.

윤서경은 기나긴 표류에서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미안합니다, 이유온 씨.” 

“서경 씨……?”

“미안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가 너무 늦게 말했습니다.

시계의 초침이 멈췄던 숨을 내뱉듯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