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ake Off1)
■ 오래된 미래 ■
신발을 신고 있는데 바깥쪽에서 현관문이 열렸다.
“…….”
손잡이를 쥐고 선 채 나를 보고 멈칫하는 남자. 타이밍이 나빴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는.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던 남자이기도 했다.
“어디 갔다 와?”
컨버스의 끈을 조인 뒤 허리를 일으키며 그에게 물었다. 그를 대하는 태도가 건조해진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냥… 산책.”
라면 박스 하나를 납작하게 포개 놓은 것만 한 비좁은 현관에서 서로 어깨를 틀어 자리를 맞바꾸면서 우리는 서먹한 대화를 겨우 이어 갔다. 전날 밤에도 다섯 시간가량 토론을 가장한 싸움을 해 댄 뒤였고,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외출해 있었다.
“과외 가?”
운동화를 벗고 주방으로 올라서면서 그가 의례적인 어투로 물었다.
그해 봄부터 언니의 친구 집에서 그 집 아들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생활고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기 위해 받아들인 일이었지만, 1년 가까이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아이와의 시간 자체를 즐기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 시기쯤 거의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고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가진, 시시각각 형태를 달리하는 뜨거운 에너지로 가득한 가능성을 곁에서 격려하며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
보수를 받고 그림을 봐주고 있으니 미술 과외라 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개성적인 부분은 안 좋은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으니 고치라고 지시한 적도, 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하이라이트를 넣어야 하고 어디에 반사광을 넣어야 한다며 테크닉을 가르친 적도 없었다.
아이는 이미 그 나이대에 습득 가능한 기술 이상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직 터득하지 못한 기술에 대해서도 지도해 줄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스스로 깨우치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갔다 올게. 밥 챙겨 먹고 있어.”
점퍼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곧장 이불 속으로 들어가 돌아눕는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 현관을 나섰다. 코트의 깃을 더 꼭 여며야 할 정도로 바깥 공기는 써늘했지만, 40도의 폭염 속에서 숨을 쉬듯 호흡은 갑갑하기만 했었다.
■ ■ ■
아이는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스케치북과 연습장을 가지고 왔다. 일주일 치의 스케치와 채색화들이다.
유화 화가와 만화가인 부모님 덕분에 주변에 다양한 미술 재료들이 넘쳐나다 보니, 아이는 표현하고 싶은 느낌에 가장 어울리는 재료를 선택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센스가 탁월하게 발달해 있었다. 크레파스, 포스터 물감, 아크릴 물감, 유화 물감에 마커와 색연필, 볼펜까지 등장하는 그림들은 일주일마다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타고난 재능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아이는 광적일 정도의 연습 벌레였다. 아이에게는 연습이라기보다는 놀이였지만.
그 주의 테마는 옆모습이었다. 얼핏 서른 장이 넘어 보이는 연습장 한 권 전체가 사람의 옆모습 드로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 주에는 옆모습에 꽂혀 있었던 거다.
어떤 것이 특별하게 시야에 들어온 순간, 아이는 그것을 자기 눈에 보이는 그대로 종이 위에 옮기고 싶어 했다. 성에 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또 그렸다. 그 과정에서 테크닉은 자연히 개발되었다.
정밀한 복제력이 요구되는 극사실주의 작품이든, 생략하고 탈락시키고 단순화하는 추상화든, 탄탄한 묘사력은 모든 미술 영역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태생적으로 그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수줍음이 있고 말수는 적지만, 잘 웃고 활달하고, 가끔씩 열한 살답게 장난기도 있으면서 근본적으로는 밝고 온순한, 아주 평범한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에게서 광적일 정도의 집요한 집착과 몰입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 재능이 가진 가능성에 설레곤 했었다.
화가로서 아주 중요한 소양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화폭에 옮겨 오고 싶다는 열망. 그것을 구현하지 못하면 잠도 잘 수 없고 밥도 삼킬 수가 없는, 내 것을 빼앗긴 것만 같은, 질투와도 같이 일어나는 열병.
이제 막 열두 살이 되려 하는 아이의 솜씨라기엔 믿기지 않는, 정밀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히 살려 내는 생동감 넘치는 드로잉들을 넘겨 보면서, 나는 아이 앞에서 지나치게 흥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어느 영역에서든 영재가 쏟아지는 시대에 대여섯 살도 아닌 열한 살 아이의 그 정도 소묘 실력은 그다지 소란을 피울 만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서 발견한 것은 테크닉의 완성도만이 아니었다.
복사기처럼 똑같이 베껴 내기만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아이는 그림 속의 대상에,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더할 수 있었다. 고작 열한 살의 나이에. 서투를지언정 그 한 장 한 장의 그림은 그 아이밖에는 그릴 수 없는 ‘자기표현’이었다.
“이현아, 이게 대체 몇 장이야? 팔 안 아팠어?”
걱정스러운 나의 질문에 아이가 웃어 보였다. 우리가 마주 앉은 탁자 위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소리 없이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은, 연습을 많이 한 것을 나에게 보일 수 있어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약간은 어리둥절해 보이기도 했다.
방금 내가 한 질문은, 신나게 뛰어놀다 온 열 살짜리에게 다리 아프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특별한 천재나 수재를 제외하면, 학교 공부는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결과가 따라 주는 게임이었다. 특별한 천재나 수재와 자신을 비교하며 비참해할 필요가 없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나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은 달랐다.
남들보다 재능이 있다는 판단하에 스스로 선택해 들어서는 분야였고, 거기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면 비참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특별한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별것 아니었다는 현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가혹했다.
연습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물론 테크닉은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기술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단지 ‘잘 그린다’는 수준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진짜’들의 영역.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진짜들의 판을 접하는 순간, 자신이 그리고 있던 것은 우주가 아닌 우주의 한 귀퉁이일 뿐이었다는 초라함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내 그림은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고 공감을 끌어낼 수 없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그친 ‘고급 그림일기’일 뿐이었다.
나 역시 입시 미술학원을 거쳐 미대에 진학한 미술학도였지만, 테크닉에 자신만의 스타일까지 갖춘 학생은 비율로도 따지기 어려울 만큼 희귀했다. 10퍼센트니 20퍼센트니… 그런 문제가 아닌, 몇만 명 중의 한 명. 알파보다 좀 더 희귀한 오메가의 비율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양화과의 괴물이라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그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주저하는 듯 망설이는 듯, 그러면서도 한순간 과감하게 자신을 내세우며 정면으로 덤벼드는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림을 통해 타인의 속살을 그대로 마주한 충격에 사로잡혔었다. 모두가 쉬쉬하며 감추려 하는 치부를 과장도 축소도 없이 그대로 드러낸 그림 앞에서 테크닉이나 노련함은 그다음 문제였다.
처음으로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알아보는 것’에 소질이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의 그림 앞에서 같은 미술학도로서 질투를 느끼기보다 그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들뜨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소울메이트라고 그토록 강하게 확신했었는데, 왜,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
아이는 모르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결혼한 대학생이었다.
집안과 주위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여성 알파와 남성 베타의 결혼이었고, 덕분에 부모님과도 거의 의절하다시피 집을 나와 경제적으로 고생을 하며 생활해야 했지만, 나는 우리의 선택과 그의 재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붕 뜬 듯한 열정 뒤에 우리를 기다린 것은 서로의 맨얼굴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의 재능은 특별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스로를 의식하는 면이 있었다. 그림 앞에서 의욕을 보이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침울함으로 보내는 날들이 더 많았다.
무엇에든 의욕적으로 덤벼드는 성격을 타고난 나와 안으로 파고들어 웅크리는 성정을 가진 그는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타인에 대해 그때보다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만, 스물한두 살 무렵엔 자신과 극단의 지점에 있는 대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정한다. 주변의 말대로 우리는 결혼이라는 결합의 현실적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꿈조차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나이였으니까. 가끔 그 꿈에 스스로 짓눌려 버릴 정도로.
아직 완숙하지는 않지만,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화법이 독특하게 마음을 끄는 아이의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처음 그의 그림 앞에 섰던 떨림의 기억이 더 멀리, 먼 과거의 일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뒤따르는 씁쓸한 감상들을 지워 내며 애써 웃는 얼굴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 볼까? 뭐 그리고 싶어?”
우리는 대부분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보면서 그날의 그림 소재를 찾곤 했었다.
“음….”
마음에 정해 둔 게 있었는지 뜸을 들이던 아이가 씨익 웃으면서 나를 가리켰다.
“나?”
의외의 답변에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아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는 함께 그림을 그린 지 약 10여 개월 만에 아이의 모델이 되었다.
식물로 가득한 베란다를 배경으로 그 집 특유의 유난히 포근해 보이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캔버스도 아닌 8절 스케치북에 내 모습을 담아내는 우리 작은 예술가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잠시나마 평화 속에서 다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리고 고작 열한 살 아이가 단 10분의 휴식조차 없이 두 시간을 내리 그려 낸 그림을 받아 들었을 때….
고민에 대한 답을 주는 것만이 양질의 위로가 아님을 알았다. 현재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주는 이해와 동조의 말들만이 위로가 아님을.
채색까지 하기엔 작업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만큼 그림은 정밀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요소들로 자신이 전하고 싶은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의 특기 중 하나였다.
유화 물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거친 끌로 베어 낸 것 같은 질감을 살린 과감한 터치, 얼핏 따뜻해 보이는 색감들로 끌어내는 어두운 분위기, 혹은 어두워 보이는 분위기 속에 심어 놓은 따뜻한 희망.
그림 속의 나는 괴리와 분열로 고통받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고통의 두께와 날카로움에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그림은 당시의 나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기에 위로가 있었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림으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또래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 상대가 밝게 웃는 모습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그린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상황을 포장하고, 축소하고, 어깨를 다독이며 ‘다 잘될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낙관을 주입하는 위로가 아니었다.
나의 변화와 감정, 표정 하나하나를, 이렇게 주의 깊게 봐 주고 있었구나. 그리고 걱정해 주고 있었구나.
위로의 시작은 관심과 공감이었음을, 오래 잊고 살았던 기분이었다.
나에 대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을 왜곡해서 바라보려 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숨기거나 감정을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 자체가 위로였다.
그림으로 말하는 아이.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나를 그린 아이의 그림을 받아 들었을 때, 그들의 언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 자신이 그림에 대해 가진 재능의 한계는 이미 알고 있었고, 거기에 미련은 없었다. 대신 나에게는 다른 역할이 주어져 있었고,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을 그가 캔버스 앞에서 다시 그림으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고마워, 우리 아티스트.”
아티스트라는 말이 재미있었는지 아이는 웃으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잘 웃고 장난기도 적당히 있었지만, 말수는 참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아이에게 더 편한 언어는 따로 있었을 테니까.
그로부터 약 3개월 뒤, 남편과 나는 홍콩으로 떠났다. 나는 그의 재능만을 믿고, 그는 나의 열정만을 믿고. 결혼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 연고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겁도 없이.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았고, 의욕과 열정만으로 길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던 날들이었다.
■ ■ ■
선생님은 손에 쥔 음료의 캔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야기를 이어 가는 내내 시선은 눈앞의 강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흐르는 강물 위에 지나간 시간을 겹쳐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홍콩에서도 결국 잘 안 됐지. 난 갤러리에 일자리를 얻어서 밤낮으로 일만 해 댔고, 처음엔 좀 자극을 받아서 창작욕이 생기나 싶었던 그 사람은 얼마 못 가 또 방황하기 시작했고… 서로 상대에게 자신을 강요하다… 둘 다 너덜너덜해진 다음에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어. 그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난 홍콩에 남았고.”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일까. 선생님의 목소리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진을 빼는 다툼 끝에 자아에 선명히 남게 되었을 상처에 대한 가라앉지 않은 격양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덤덤했다. 그러나 강물의 흐름을 응시하는 시선에서 드러나는 긁힌 듯한 자국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모처럼 같은 시간에 퇴근해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내린 뒤 선생님은 강변으로의 산책을 제안했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음료를 하나씩 골라 한강으로 향했다.
아파트에서 한강의 산책로까지는 작은 터널 하나만 지나면 금방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라, 해 진 뒤의 강변은 넉넉히 시원했다.
10분 정도 느긋하게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은 우리는 운 좋게 비어 있는 벤치를 하나 발견했고, 그곳에서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하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단지 ‘결혼의 실패’라고만은 할 수 없는 복잡한 가치들이 얽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분은 선생님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의 대상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이해자이며 함께 꿈을 꾸었던 파트너이기도 했을 테니까.
“몰랐어요…. 결혼하셨던 것도… 헤어지신 것도.”
손안에서 캔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흩트렸다.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우리가 같이 그림 그리는 데에 그런 정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너희 부모님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시는 분들이 아니잖아. 꼬맹이한테 그런 얘기 굳이 안 하셨겠지.”
그리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결혼한 걸 몰랐으니 이혼한 걸 모르는 건 당연하고.”
부모님 얘기가 가져온 무게감을 덜어 내려는 듯 선생님은 그렇게 덧붙이며 나를 향해 가볍게 웃었지만, 나는 마주 웃지 못했다. 누군가에게서 부모님의 얘기를 들은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은 나에 대해서보다 선생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 간절했고, 확신이 있었거든. 지금이야 스물한 살짜리가 삶에 대해 가지는 확신이라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 건지 알고 있지만… 어쩌겠어. 그건 시간이 지난 뒤의 얘기고, 미래의 후회를 미리 계산해서 현재의 욕망을 능숙하게 억제할 수 있는 인간만 있다면, 아마 세계 인구는 지금의 절반밖에 안 될걸?”
선생님은 말을 이어 갔다.
“한 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 그땐 더 심했거든. 어렸으니까. 결혼은 보류하고 연애만 해도 충분하지 않냐고 주변에선 다들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연애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감정이었어. 어떻게든 더 완전하게 그와 결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더 원했고….”
선생님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강물을 좇던 시선을 거두어 무릎 위를 내려다본 선생님은 캔을 쥔 손에 강한 힘을 주며 덧붙였다.
“만약 그가 오메가였다면 임신을 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과거의 그런 열정이 부끄럽고 덧없다는 듯이. 사춘기 시절의 설익은 감정을 추억하며 웃어 버리듯이.
팬텀 내에서 생활하는 동안 멤버들 간의 대화 내용이나 은근한 분위기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선생님은 여성 알파였다. 상대가 오메가라면 제1의 성별과 무관하게 임신을 하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알파인 남성과 짝을 이뤄야만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알파 남성과도 100퍼센트 임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선생님과 그분의 결혼을 반대한 것은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모래와 형이 떠올랐다.
“그래서 결혼한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아. 어떤 결말로 끝이 났건, 그때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걸 아니까. 당시에 결혼이 목숨만큼 간절했던 건 사실이고, 만약 그때 결혼을 못 했더라면 아마 내 성격상 그걸 계속 후회했겠지.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고. 결혼해서, 좋은 화가와 아트 딜러 커플로, 최고의 파트너로, 인생의 소울메이트로 살아갈 수 있다고… 1퍼센트의 모자람도 없이 확신했었어. 그때는. 그렇게 분명한 확신이 온 정신을 점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결정을 보류할 수 있겠어.”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상대에게 강하게 이끌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한 아직 어린 커플. 어머니, 아버지와도 비슷한 스토리였다. 그 결말은 서로 달랐지만.
더 이상 뒤가 없을 때까지 부딪친 뒤 서로에게 질리고 지쳐 당사자들 스스로 끝을 낸 선생님 커플과 처음 서로를 통해 꿈꾸었던 그대로의 이상적 관계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들이닥친 사고로 인해 본인들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것을 폭력적으로 빼앗겨 버린 어머니, 아버지.
어떤 커플의 결말이 더 비극적인 것인지,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고된 작업이더라. 인간을 왜 하나의 소우주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 복잡해. 근데 가끔은 거기에 논리나 이유도 없어. 이해가 힘들 수밖에 없는 거지. 당사자도 그 이유를 모르는데 타인인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상대도 나에게 마찬가지고.”
결혼은커녕 아직 연애도, 누구를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얘기였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워 보이는 상대의 의중을 읽을 수 없는 갑갑함이라면 희미하게나마 알 것도 같았다.
“그림을 그리는 게 세끼 밥처럼 당연하고, 그리지 않는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이… 그림 때문에 점점 망가져 가는 걸 지켜보면서… 그것도 사랑의 일종 같더라. 가끔 방식이 어긋난 사랑은 서로를 좀먹기도 하잖아? 그 사람과 내가 했던 사랑처럼. 그림에 대한 그 사람의 사랑도 확대되거나 발전하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자신을 좀먹다 결국엔 그림을 놔 버리게 되는… 그런 결말을 맞은 거지.”
방식이 어긋나 상대와 자신을 모두 좀먹는 사랑. 그러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그 대상에게 부딪쳐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사랑.
그 끝이 이별이라고 해서 그런 경험을 꼭 실패라고만 정의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 답을 내릴 수는 없어도, 그 정도의 격렬한 감정이 누구나 다 겪어 보는 흔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서로 천천히 알아 가며 교감하는 연애를 중요시할 것 같다며, 인우 형과의 관계를 충고했던 대표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연애와 사랑을 하는 사람인지, 아직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막연히,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순간적인 호기심이나 충동에 아주 간단히 자신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도저히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격렬한 감정 앞에서 부딪침의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을 것 같았다.
“홍콩에서, 또 서울로 돌아와서… 많은 작가들을 지켜보는 동안 점점 확고해진 생각은…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계속해서 키워 나갈 수 있는 정신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 사람은 분명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그걸 끊임없이 의심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좌절하면서 무너져 갔지.”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그려 나가겠다는 절실하고 집요하고 일관된 방향성. 그게 있어야만 어떤 지점을 뚫고 나가서 빛을 발할 수 있는데… 나는 열한 살 서이현에게서 분명히 그런 에너지를 봤었거든.”
선생님의 얼굴도 천천히 나를 향했다.
“그리지 않고도 밥 먹고 숨 쉬고, 그래, 그런 거 다 할 수 있지. 죽진 않아. 내가 말하는 게 그런 게 아닌 거 알잖아, 이현아. 그냥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고유의 개성을 가진 유일한 서이현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 너에게 그림이 필요한지 아닌지. 거기에 대해서만 솔직하게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거야. 너만큼은. 더 늦기 전에.”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
아마도 자기 앞에서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가슴을 박제하고, 입을 막고, 눈을 감아 버렸으니까. 더는 말할 것이 없었다. 아니,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숨기고 싶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압박해 들어오며 나에게 무언가를 결정하도록 요구한 것은, 이상하게도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을 포함한 더 큰 무언가였다. 아직은 와닿지 않는 개념이지만, 말하자면 인생 같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온건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엄중한 경고처럼, 흐르는 강물의 바닥에 천천히 가라앉아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무겁게 가슴에 남았다. 더 늦기 전에.
■ ■ ■
매콤한 가오리 회무침과 탱글탱글 윤기 흐르는 족발, 참치 김밥과 감자전. 조화로운 메뉴는 아니었지만, 우리 셋이 함께하는 오랜만의 호화로운 밥상으로는 충분했다. 술을 곁들인 밥상.
돈과 술에 대한 사랑이 팬텀 멤버들의 공통점이라고, 유니 누나와 주한이 형은 반 장난처럼 얘기하곤 했다. 취기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야기 자리에 술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운을 떼기 쉬워진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당신 뭔데 자꾸 이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거냐면서 시작부터 몰아붙이는데… 사람들 모여들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 사람도 당연히 가만히 안 있었지. 싸움 날 뻔했다니까. 아니, 주먹만 오고 가지 않았지 완전 싸움이었지.”
모래는 형을 향해 살짝 비난의 빛이 담긴 시선을 보낸 뒤 소주를 마셨다.
버스정류장 옆 계단 입구에 며칠째 같은 남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모래도 형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특별한 볼일도 없어 보이는 남자가 버스정류장과 계단 사이를 오가면서 서성거리는 일이 계속 이어지자 형은 의심이 됐던 거다. 뭐 하는 놈인데 여기서 기웃거리냐면서 경찰에 넘기겠다고 시비를 붙였고, 알고 보니 남자는 여자친구와의 다툼 뒤에 용서를 빌기 위해 며칠째 꾸준히 찾아오고 있는 동네 주민의 남자친구였다.
바로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서이한이 진짜 경찰서라도 끌고 갈 기세로 덤비니까 그분도 완전 당황해가지고… 결국엔 여자친구분이 와서 남자친구 맞다고 한 뒤에야 끝났다니까.”
“요즘에 미친놈이 한둘이야? 여자친구라는 말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 혼자 여자친구라고 착각하고 스토킹하는 놈일 수도 있는 거잖아. 어쨌든… 그 덕에 두 사람 화해도 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된 거지, 뭐.”
자신의 실수가 민망하긴 했는지, 형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애꿎은 소주만 연거푸 들이켤 뿐 나를 잘 보지 못했다.
평소 형은 절대 그런 식으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불안한 상황이 형에게서 다른 모습을 끌어낸 것이다. 언제든 지금의 생활이 파괴될 수 있는 위협 속에서 매일 잠들고 눈을 뜨면서… 이렇게 웃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예민해져 있으니까 그런 거지. 바늘도 식칼로 보이는 건 이해해.”
모래가 형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가볍게 지나가듯 한 말이었지만, 지금의 형과 모래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바늘조차도 식칼로 보이는 생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고,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생활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이번엔 오해였지만, 다음에는 어떨까. 아니, 이번 해프닝도 정말 오해였을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아직 소주에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네 번째 잔을 단숨에 비워 냈다. 취기에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을 죄는 알코올의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발리는 안 가?”
새 소주병을 따던 형이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뭔 리?”
“발리. 안 갈 거냐고.”
“갑자기 뭐야.”
이번엔 회무침을 집던 모래가 의아한 표정으로 젓가락질을 멈췄다.
“나 괜찮으니까 발리로 가.”
“얘가 왜 이래.”
형이 소주병을, 모래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마음의 준비를 마칠 수 있다며 결정을 미루고 있었지만, 상황은 내가 좋을 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일상은 지극히 연약한 유리 바닥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힘에 의해 파괴될지 모르는, 보장되지 않은 평화인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선 언제 다시 끌려가게 될지 모르잖아.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며칠 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모래와 형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이 커플은 아니었지만,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에게 지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를 끊어 내는 것이 연인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결말은 아니었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그분처럼, 서로가 너덜너덜해지는 마지막 지점까지 우리 관계를 몰아갈 수는 없었다. 그건 정말 원치 않았다.
“서핑 캠프, 좋은 조건이더라. 그런 기회 흔치 않잖아.”
“야, 그건 그냥 알아보기만 한 거야. 지금 당장 어딜 가. 보증금도 묶여 있는데.”
연습장의 낙서를 보고 이런 소리 하는 거였냐며, 모래가 긴장을 풀고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해결하려면 못 할 것도 없는 문제잖아, 그 정도는.”
“…….”
모래의 젓가락이 또 한 번 멈췄다. 내가 두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린 건 처음이었다.
“나… 그림, 다시 그리게 될지도 몰라.”
모래와 형의 눈이 커졌다. 발리로 가라는 말보다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될지 모른다는 말에 더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정한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더라도 더 이상 서이현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발을 이곳에 묶어둘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마음을 정했다. 나의 첫발은 일단은 거기서부터였다.
■ ■ ■
다시 그림을 그릴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두 사람은 예상보다도 더 기뻐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나를 두고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는지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대표님 집에서 <소외>를 마주한 것, 내가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가 다시 그림을 그려 보기를 권한 것, 홍콩 출장에 대한 제안까지. 두 사람이 안심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했지만… 과호흡을 일으켰던 것과 그 뒤의 잠자리는 이야기에서 제외시켰다.
긴 설득 끝에 내린 결론은 미적지근했다.
그림을 다시 시도해 볼 것인지. 발리로 떠날 것인지. 각자 생각해 본 뒤, 홍콩 출장 이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한 것까지가 오늘의 수확이었다.
소주의 취기는 맥주나 와인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마실 때는 제법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자리를 정리하려고 일어난 순간 눈앞이 어질하더니 취기가 확 돌았다. 모래와 형도 제법 취했었는지 미닫이문 너머는 조용했다.
술기운 때문일까. 배 위에, 혹은 서핑 보드 위에 있는 것처럼, 바닥이 일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부엌 창으로 새어 든 빛마저 천장과 벽의 경계에서 굴곡져 흔들리는 듯 보였다. 금방 잠이 들 것 같았는데 이사하기 전날처럼 속이 어수선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뒤섞여 마음이 좀처럼 지면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들뜸에 한참을 뒤척이다,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해요. 저…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일단 홍콩에 다녀온 뒤에 결정해도 될까요.]
꼭 지금 결정을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충동이었다. 알딸딸한 정도의 가벼운 취기가 부추긴 행동으로 절반 정도는 주정이었다. ―라고 우기고 싶었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그에게서 답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액정에 떠오른 ‘대표님’이라는 저장명에 나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미닫이문 너머는 여전히 고요했다. 진동하는 핸드폰을 꽉 쥔 채 이불을 걷고 일어나 소리를 죽이며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다행히 전화는 끊어지지 않고 끈기 있게 울려 대고 있었다. 액정 속에서 나를 호출하는 ‘대표님’의 전화가 까마득한 미래에서 발신된 신호처럼 느껴졌다. 평상에 앉아 전화를 연결했다.
“네.”
[…자고 있었어요? 메시지 보낸 게 1, 2분 전인데. 아니죠?]
잠긴 목소리에 그가 멈칫하며 물었다.
“네, 아니에요.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느라….”
[원래 지내던 집에 간다고 했던가?]
“…네.”
오늘 모래와 형의 집에 간다는 것을 그에게 말한 적도 없고, 그가 듣는 자리에서 얘기한 적도 없었지만, 선생님과 그가 이야기하던 중에 어쩌다 말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그는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몇 가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미술을 전공했는가 아닌가, 오메가인가 아닌가. 유니 누나와 주한이 형의 말에 의하면, 내가 없는 곳에서는 나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한다고 했었다. 정작 내 앞에서는 무감한 시선뿐이었지만.
“밖이신가 봐요.”
이곳의 적막함과 달리 전화기 너머는 떠들썩했다. 슬리퍼를 신은 발을 바닥에 문지르면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높고 유쾌한 목소리 사이로 그의 호흡에 집중하려 애썼다.
[아, 초대를 받아서. 다 영업의 일환이죠, 뭐.]
지루하다는 목소리였다. 스페인식 주점에서 와인을 마셨던 날도 삐딱하게 의자에 기대앉은 그는 그 자리에 별 흥미가 없어 보였었다. 하지만 인우 형의 말대로라면 그 자리에 온 것은 순전히 그의 의지였다. 인우 형은 그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전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던 그의 행동들에 대해 이제 와서 새로운 주석을 다는 자신이 문득 우스웠다. 게다가 그 해석의 방향이 답지 않게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그날 그는 단지 재미없는 뒤풀이 자리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굳이 인우 형을 따라 팬텀으로 되돌아올 필요는 없었을….
생각을 멈추고, 소리가 나지 않게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됐든 의미 없는 추측과 계산이었다.
“피곤하시겠어요.”
[…….]
모임의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지, 그의 목소리 뒤쪽으로 들리던 소음이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차단된 공간으로 이동을 마친 듯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찰칵하는 소리와 깊은 호흡이 이어졌다. 그걸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계속 원했던 작가를 곧 영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버틸 만합니다.]
들이마신 호흡을 길게 뱉어 내면서, 그가 말했다.
아, 나를 말하는 거구나. 잠깐의 간격을 두고서야 자각할 수 있었다. 계속 원했었다는 어감이 귀를 간지럽게 했다.
“아직 확실히 정한 건 아니에요…. 결정은 나중에….”
[서이현 씨는 꼭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고, 내 그림을 봤다 해도 고작 한 점뿐인데. 이것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같은 ‘그림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감일까. 혹은 그 본인이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던 안목에 대한 확신일까.
고개를 들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불빛이 다시 또 바다 위의 오징어잡이 배처럼 일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떠들썩하고 유쾌해 보이는 모임에서 빠져나와 그는 나와의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문득 지금 내가 있는 곳에 그가, 그가 있는 곳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그의 향수 냄새가 되살아날 듯 말 듯 후각의 기억을 간질이며 장난을 쳐 왔다. 손바닥에 배어난 땀을 반바지 위에 문지르고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싶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그릴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솔직한 발언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앞에서.
그는 사탕발림 같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확신했다.
[걱정 마요. 그리고 싶은 얘기가 또 생길 테니까.]
강한 확신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부드러웠다.
그의 말이 사실이 되기를, 이만큼 바랐던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