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소외 1 (6/31)

   6. 소외 1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 814만 5,060분의 1.

욕조에서 넘어져 사망할 확률 80만 1,923분의 1.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 100만분의 1.

벼락에 맞아 사망할 확률 428만 9,651분의 1.

전문가들은 21세기에 10억 명의 사람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담배를 끊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10억 명 중의 한 명이 자신은 아닐 것이라는, 도박과도 같은 근거 없는 믿음으로 새 담배를 구입해 불을 붙인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

어떤 일에는 필요 이상으로 공포를 느껴 그것에 철저히 대비해 두려 하면서도, 또 다른 어떤 일에는 자신의 미래를 순전히 운에 맡기며 배짱 좋게 낙관적 믿음을 가져 버리는 습성은, 어느 한 명만의 일이 아닌 인간 자체의 오랜 모순이었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오늘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미래로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열다섯 살의 소년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된 자신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가 없으며, 스물세 살의 청년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장년에 이른 자신을 상상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이성이 받아들인 개념을 오히려 상상력이 구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열다섯에서 열여섯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중력을 이기지 못한 살갗이 깊은 주름을 만들어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실체로 느끼지 못한다.

아주 먼, 아주아주 먼 훗날, 거의 백 년이나 천 년 이후의 미래처럼 실감이 나지 않아서, 현재의 모습으로 영원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오늘의 자신을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된다는, 단 하나의 확실한 운명을 모른 척하며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보통 인간의 삶의 내용일지 모른다.

편의상 그것을 보통으로 정의한다면, 이현의 부모는 보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인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현의 아버지는 어촌 출신으로,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성격이 온순해 부모의 속 한 번 썩이는 일이 없었던 우등생이었으며, 명문대학에 입학해 미래에는 집안에 도움이 되는 벌이를 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온화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내면의 열정은 존재할 수 있었다. 온화하다는 것과 주관이 없다는 것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개념임에도, 고집을 내세우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는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열망의 대상 같은 것은 없을 거라는, 그런 편견 역시 빈번히 발생하는 오해였다.

그의 열정은 그림에 있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그동안 그들을 속여 왔던 자신의 행적에 대해 부모에게 자백했을 때까지도 가족 중 누구도 그가 그림에 대해 꿈을 갖고 있었음을 몰랐을 정도로, 그는 철저히 자신의 열정을 숨겨 왔었다.

어쩌면 그의 철저함 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무관심 혹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기만이 그의 열정을 의도치 않은 비밀로 만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기대 대로 손꼽히는 명문대에 합격해 홀로 상경한 그는 부모에게는 사실을 숨긴 채 입학하자마자 휴학계를 제출한 뒤 입시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그림에 매달렸다. 수업 전후로도 학원의 빈 강의실을 찾아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정식으로 실기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어 가는 과정에 몰두한 순간에는 다른 모든 관계성에서 벗어나, 오직 대상과 자기 자신만이 존재하는 듯한 자유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현의 어머니는, 그와 반대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녀의 증조부는 사망 후 5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중형 작품 한 점당 10억 원대의 낙찰가를 유지하는 작가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논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지만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그녀는 그림에 둘러싸여 성장했고, 유전적 힘에 의해서건 환경적 요소에 의해서건 자연히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현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것을 매우 반기는 부모의 지원 아래 예중, 예고를 거쳐 명문 미대의 회화과에 어렵지 않게 입학했다. 이현의 아버지가 원하던 대학의 원하던 학과였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은 만화에 있었다.

그리고 마이너 예술로 취급받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 대해 그녀의 부모는 엄격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현의 아버지와 달리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자신의 열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초등학교 2~3학년 시절부터 한 권 한 권 모아 온 만화책을 욕조에 쏟아붓고 물을 부어 버리면서도 만화를 그녀의 취미로만 못 박아 두려 했었다.

자신들이 염원했던 대학의 회화과에 그녀가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로 불안감을 떨치려 애쓰며, 그녀에게 장차 증조부의 뒤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가 될 것을 강요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굴지의 대학에서 유명 교수들에게 지도를 받고 있으니 철없는 방황이 끝나고 나면 숭고한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게 될 거라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어리석은 기만은 부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었다.

부모의 바람과 달리, 그녀는 바로 그 학과에서 만난 동기와 함께 만화 동아리를 개설하고, 학업보다 동아리 활동에 더 집중했다. 이미 중학생 때 만화 동인에 가입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개인지를 발간해 온 동기가 동아리의 회장을, 그녀는 부회장을 맡았다.

명문 미대 출신이라는 스펙이 앞으로 만화가로서의 활동에 도움이 될 거라던 동기는, 당시 이미 만화가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하고 독립한 상태였으므로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생활비와 재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학 앞의 입시 미술 학원에서 중등부 강사로 일해 가면서 학업과 동아리 활동까지 병행하는 동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스스로의 꿈에 온전히 충실하지 못한 유약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대폭 늘렸고, 공모전을 진지하게 준비했다. 플롯을 보강하고, 캐릭터의 입체감을 위해 책과 영화를 연구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었던 그녀는 회장을 대신해 동아리의 실질적 업무들을 처리했고, 회장이 일하는 미술 학원에도 자주 드나들면서 주임이나 원장 등과도 친분을 쌓아 가끔씩 보조 강사로 일하면서 추가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학원생들 사이에서 ‘그리는 줄리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매일 10시간 이상씩 학원에 틀어박혀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려 대는 사람. 그를 보기 위해 등록하는 새로운 학원생들이 늘었다며, 부원장이 농담으로 얘기할 만큼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그것을 이용해 젊음을 즐겨 보려는 의욕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않은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 자신의 발목에 매달린 거추장스러운 모래주머니 같은 그 대학의 그 학과를 위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려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버리려 하는 것을 다른 한 사람은 간절히 원한다는 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반대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강요된 삶 너머의 대상을 갈구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기도 했다.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녀는 그의 그림을 봐주었고, 그는 그녀의 만화에 대해 솔직한 평을 들려주었다. 대부분 동아리 회장까지 세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이 점차 두 사람만의 시간이 되어 갔고, 서로의 열정만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 미래까지 원하도록 종용한 것은, 젊은 혈기의 충동이 아니었다.

뜻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줄 동료이자, 아름다운 밤엔 어깨에 기대고 싶은 연인이자, 남은 삶 속에 영원히 함께할 반려로,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없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그는, 아무리 해도 비린내가 빠지지 않는 손으로 새벽부터 어업을 나가는 가난한 부모에 대한 죄책감으로 본래의 대학으로 돌아가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공부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녀 역시, 잦아들 것 같지 않은 부모와의 갈등과 익숙하지 않은 생활고에 지쳐 미리 정해져 있었던 안전한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을지 모른다. 만화를 더욱 열망했을 뿐이지 회화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었더라면 그런 결정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로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는 일 없이, 결심을 흩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삶은 유한하며, 내가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끝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아직 어린 나이에 서로를 배우자로 택한 그들은, 많든 적든 가진 것 전부를 포기해야 했고,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누군가의 희망 역시 외면해야 했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 귀찮았던 짐을 집어던지듯 홀가분하게 한 일은 물론 아니었다. 부모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였으니까.

부유했던 그녀의 집에서도, 생활고가 자연스러운 일상인 그의 집에서도, 그렇게 처지가 다른 두 집안에서 그 결혼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만큼은 일치성을 보인 것에 대해, 두 사람은 늘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었다.

이현이 태어나기 전의 일들이었다.

어머니가 주말이면 가족들과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1년에 서너 번씩 길고 짧은 해외여행을 즐기며 동서양의 뛰어난 작품들을 실물로 감상하는 생활을 했었다는 것도, 아버지가 서울로 오기 전까지 자신의 형과 함께 방을 쓰면서도 높은 성적을 올리고, 1년 내내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게 돼 버린 흠이 난 생선을 반찬으로 먹어 왔다는 것도, 이현에게는 그저 자라면서 조금씩 전해 들은 ‘옛날이야기’였다.

양가의 조부모를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거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결핍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옛날이야기’의 내용이 어떻든, 그런 이야기를 해 줄 때의 부모에게서 이현은 후회나 원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늘 이현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주는 부모였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표현하며 어렸던 이현을 질투하게 하곤 했었다.

이현에게 어머니는 거실의 탁자나 작업실로 쓰던 작은 방의 책상 앞에 앉아, 라디오를 틀어 두고 만화를 그리는 모습으로 대표되었다. 그것이 어머니였다.

일주일에 30시간만 근무하는 근처의 휴대폰 공장에 출근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전업 화가를 목표로 유화 작업에 몰두하던 아버지가 이현이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쓰던 작업실은 어린 이현의 눈에 그들만의 비밀기지처럼 보였고, 자신을 향한 그들의 따뜻한 애정과 무관하게, 그 공간만큼은 자신을 배제한 오로지 두 사람만의 교감을 위한 공간으로 느껴졌었다.

이현은 떼를 쓰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였지만, 부모가 함께 작업실에 있는 것만은 아주 싫어해서, 낮에는 어머니가, 퇴근 후에는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작업실을 사용했다.

아직 이현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굳어진 규칙으로, 당시에는 부모 모두 이현의 질투가 귀여워 가끔씩 일부러 작업실에 숨어 이현을 울리기도 했었다.

이현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자신이 보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고, 그렇게 부모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 자아를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자리 잡고 싶어 하는 일도 줄어들었지만, 주변의 모두가 여전히 애인 같은 부부라며 부러워할 때마다 이현의 마음은 무거워지곤 했었다.

그러나 어느 가정에나 존재하는 흔한 깊이의 결함이었고, 이현 자신도 부모의 낙천적이고 온화한 성격이나 의지를 존중해 주는 교육방침 등에 또래 친구들에 비해 깊이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었다.

낡은 빌라의 베란다에 만들어진 작은 정글의 초록빛 싱그러움.

어머니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온종일 낮게 흐르는 오래된 팝송들.

책장 앞에서 소파 앞까지, 느리게 옷자락을 끄는 하루 치의 햇빛.

어머니의 일러스트로 만들어진 포스터와 유화 물감 냄새.

막을 내리는 일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열여섯 살 여름, 대형 갤러리가 주최하는 콘테스트에서 이현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현의 외조부모는 세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이현의 어머니가 만화가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고 가출하다시피,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온 뒤 약 17년 만의 만남이었다.

나이 제한이 없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제한이 없고, 소재나 작풍에도 제한이 없는 파격적인 성격 때문에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회였지만, 주최하는 갤러리가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갤러리였기에 그 영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논란과는 무관하게, 해당 대회에서 수상한 작가들은 아마추어나 신인이라면 단숨에 화제의 작가가 되어 전시회를 제안받거나 전업 화가로 계약할 기회를 얻었고, 기성 작가라면 크게는 네다섯 배까지 몸값이 뛰기도 했다.

당시 7회를 맞이했던 콘테스트는 권위를 갖춘 쟁쟁한 심사위원들을 유치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국 이민 2세대의 한국인 동양화가 ‘수키 김(Sukhee Kim)’이 특히 이현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 인상적인 심사평을 남긴 데다 후에 그녀가 개인적으로 이현의 작품을 구입하기까지 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물론 열여섯이라는 이현의 어린 나이도 미술계의 이목을 모으는 데에 한몫했다. 7회까지의 대회 전체를 통틀어 이현은 최연소 입상자였고, 추상화 계열의 작풍으로 입상한 유일한 청소년이기도 했다.

미술계가 대중적 관심에서는 한참 밀려나 있는 영역이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진 이슈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여러 매체에서 사진을 포함한 인터뷰를 싣자는 제법 집요한 요청이 들어온다며 갤러리로부터 자주 연락을 받았었다.

이현과의 상의 끝에 부모는 대회를 주최한 갤러리 측에 작가의 본명과 신상명세를 비밀로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약 한 달 뒤 홍콩의 한 출판사에서 세계적인 소설가의 홍콩판 신작 표지로 이현의 그림을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모든 업무를 갤러리를 통해 처리하도록 조치한 덕에, 이현은 언론의 희생양이 되는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여하튼 조부모의 저녁 식사 초대는 이현의 수상이 발표된 직후였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아주 드물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언성을 높였던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의 긴 설득에 어렵게 식사 초대에 응하기는 했지만, 이현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안으려 하는 부모의 행동에 거칠게 이현의 손을 당겨 자신의 뒤로 감춰 버리던 어머니는 아직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어머니는 처음이었다.

며칠 뒤 그녀는 조용히 이현의 침실로 찾아와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교류하며 지내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며, 그건 어디까지나 너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해 줬다.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조부모라고는 해도 이현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 것 같았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유쾌한 추억을 언급하듯 했던 어머니지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때로는 증오하고,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디선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현의 수상 사실을 알아내고는 속물적인 이유로 자신들에게 연락해 왔을 거라고 비난하면서도, 또한 부모이기에 어쩔 수 없이 17년 만의 만남과 그 눈물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 이현은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현의 수상을 시작으로, 그해 하반기는 이현의 가족에게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들이 결실이 되어 돌아오는 듯한 시기였다.

어머니의 부모는 단지 손자인 이현이 보이는 미술적 재능 때문에 세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어머니의 기억보다 많이 늙어 있었고, 예전에는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부질없는 허상이었음을, 행복한 삶을 완성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체면치레일 뿐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그 결정권이 부모에게 있지 않았다. 부모의 마음을 받아 줄 것인지 아닌지, 그녀가 선택할 일이었고, 모두 조금씩 조심스럽게 노력해 나가고 있었다.

그해 가을, 약 10년간 연재해 왔던, 그녀의 작가 인생에 있어 가장 긴 장편 작품이 완결을 맺었다. 자극적인 소재나 짧은 형식의 웹툰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근래의 만화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긴 연재 시기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결말을 맺었다는 평을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그녀의 작품이 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상들을 여러 번 수상했던 그녀이지만,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상이었다. 수상의 결과가 작품에 대한 열정이나 완성도의 증명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오랜 투쟁을 지켜봐 주고 인정해 주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상식은 크리스마스를 2주 정도 앞둔 12월의 둘째 주 월요일이었다.

근무시간 조정이 자유롭지 않아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이현의 아버지는, 대신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작은 계획을 준비했다.

그녀가 부모의 노력을 받아들여 주고 싶으면서도 긴 시간 동안 품어 왔던 애증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녀가 부모에게 어서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회화가 아닌 만화의 수상에 과연 부모가 기뻐할지 확신할 수 없어 연락을 망설이는 심정까지도.

우선 그는 그녀 몰래 그녀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 수상 소식을 알렸다. 그의 예상대로 그들은 전화상으로도 충분히 전해질 정도로 기뻐했다. 아니, 거의 흥분해 있었다.

그는 시상식이 있는 날 저녁, 모두 함께 그녀를 축하해 주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제안에 감사해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의 전시회 문제로 두 사람은 유럽에서 짧게 체류 중이었지만, 곧장 여행사에 연락해 귀국행 티켓의 날짜를 조정했고, 적지 않은 수수료를 부담하면서 남은 일정의 호텔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겨우 만화 따위’로 상을 받은 딸을 축하해 주고 싶다는 목적만으로. 기꺼이.

이현의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이 모든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모의 부와 명예가 좀 더 간단히 손에 쥐여 줄 수 있는 많은 가치들을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타인이 이미 계획해 놓은 제시된 삶에 간단히 올라타는 대신, 스스로에 대해 알아 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택했다.

열정으로 반짝거리는 20대 초반의 소녀였던 그녀는 어느덧 마흔을 코앞에 바라보며 중년의 길로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과거를 후회하는 나이 든 부모와 든든한 동료이자 달콤한 연인이자 열렬한 팬이었던 남편, 부모의 영향을 받아 풍부한 재능을 보이는 사랑스러운 아들로부터 축하와 지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에 이용하는 것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식당을 예약했다. 그가 하교 후에 이현을 데리고 고속터미널 쪽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하기로 했고, 그녀는 시상식이 끝난 뒤 그쪽으로 바로 오기로 약속을 정했다. 호텔 뷔페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며, 그녀는 대게와 베이징덕으로 배를 채우겠다고 그날 아침까지도 들뜬 얼굴로 농담을 했었다. 자신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가 베를린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로.

그녀의 부모가 먼저 레스토랑에 도착해 착석을 하고 있으면, 세 식구는 아래층의 로비에서 만나 함께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다. 예약된 좌석으로 안내받으면, 방금 막 베를린에서 도착한 부모가 그녀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꽃다발을 건네준다는 소박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의 기상 문제로 비행기 이륙 허가가 지연되었고, 이현의 조부모가 인천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들은 일단 시내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상식이 예상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강남의 호텔까지 이동하려면 이현의 조부모가 그녀보다 더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현의 어머니는 이미 택시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성수역에서 2호선 열차가 고장을 일으킨 바람에 2호선 전체가 지연되고 있다는 뉴스에, 평소 잘 타지 않는 택시를 선택했다.

이현의 아버지는 계획을 변경했다. 공항에 도착한 이현의 조부모가 이현의 어머니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장소로 레스토랑을 바꾸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 세 식구가 단골인 태국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그녀는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그곳은 이현이 수상했을 때 세 사람이 축하했던 곳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3호 터널을 통과해서 갈까요, 아니면 서울역 앞으로 갈까요?

목적지를 변경하자 기사는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단순히 갑갑한 터널이 싫어 서울역이라고 답했다.

서울역 앞 통일로에서 삼각지 방면으로 향하던 택시가 신호 대기선을 통과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신호가 바뀌었다. 앞차가 이전 신호에서 꾸물거리지만 않았어도 대기에 걸리지 않았을 거라며 기사가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너그러운 기분이었다.

라디오에서는 Wham의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가 흐르고 있었다. 따스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던 때 이후로 약 한 달 동안, 제법 큰 액수의 상금을 어디에 쓸지 계속 고민해 왔었는데, 오늘 객석에 앉아 수상을 기다리는 동안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현의 겨울방학 동안 세 식구가 함께 유럽으로 떠나는 미술관 투어.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과 아들에게 제안할 생각이었다. 놀라고 기뻐할 두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니 이미 실물을 본 것처럼 웃음이 났다.

어어? 저게 뭐야? 왜 저래?

기사의 당황한 목소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한강대로에서 이쪽 통일로 쪽으로 신호를 받은 차량들이 완만한 각도로 곡선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차량의 행렬을 향해 세종대로 쪽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파란색 1톤 트럭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굉음이었다.

단순히 큰 소리인 것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공사 현장이나 스포츠 경기의 응원석에서 발생하는 커다란 소음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폭력과 불행의 냄새가 진하게 섞여 있었다.

택시 기사도 그녀도, 파란 트럭이 중형 승용차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을 그대로 목격하고 있었다. 의도적인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 질주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기사의 입에서도 연달아 비명이 터졌다.

오른쪽 뒷문을 가격당한 은색 승용차는 방향을 바꿔 뒤로 밀리면서 자신을 덮친 트럭과 함께 그녀가 탄 택시의 뒷좌석으로 덤벼들었다. 택시 기사는 중상을 입었고, 그녀는 즉사했다.

기사의 고함에 그녀가 전방을 주시했을 때부터, 모두 30초 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 ■ ■

눈을 뜬 곳은 낯선 장소였다.

한 실장님 댁에서 내가 쓰고 있는 방이 아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베개나 몸을 덮고 있는 침구가 전부 청결하고 포근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눈을 떴음에도 일단 위협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위에 눌리다 막 깨어난 직후처럼 일시적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기억상실로 특정 구간의 기억이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기묘한 감각에, 공기를 풍부하게 머금은 깃털 같은 이불 속에서 손가락, 발가락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침대는 양쪽으로 공간을 둔 채 머리 쪽이 벽에 고정되어 있었고, 침대 왼쪽으로 커튼이 쳐진 창문이 있었다. 커튼이 있으니 그 너머에 창문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방음이 뛰어난 창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빗소리는 거의 없었다. 단지 공기가 달랐다. 허공에 떠도는 미묘한 물기. 바닷가에서 지낸 약 5년 동안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발달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 대표님 댁에서 ‘올드 퓨처’의 촬영을 돕고 있었지.

한참 만에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리고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는 동안에도 계속 울고 있었던 건지,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거실에서 마주쳤던 그림과 그 그림을 매개로 끌려 나온 봉인돼 있었던 기형적 아픔들에까지 기억이 이어져 새롭게 눈물이 흐른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관자놀이 옆으로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눈물이 지난 자리가 아파 왔다. 그것을 자각하자 다시 또 새롭게 눈물이 흘렀다.

그의 거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커다란 소파 위에 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열여섯 살에 대형 갤러리 주최의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던 그림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친구들이 부러워했을 정도로 부족함 없이 나를 사랑해 주었고, 좋은 성적을 바라거나 미래의 직업을 미리 정해 두고 강요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모든 것은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었다. 내가 원하면 부모님은 조언을 해 주었지만, 결정은 내가 해야 했다. 수행평가의 주제 선정부터 예중 시험을 볼 것인지, 일반 중학교로 진학할 것인지까지.

부모나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을 동력으로 또래 집단에서의 공감대를 높여 가던 주변 친구들과 달리, 나는 반항할 대상이 없었다.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대상에게 어떤 반항을 하겠는가.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용돈을 줄이고, 불량하다는 이유로 유행하는 옷을 사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해 푸념하는 친구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으로서의 깊은 공감은 어려웠다.

대신,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서로가 1순위였다. 두 분 사이에는 강력한 결속력이 있었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열정은 이미 예전에 퇴색하고, 대신 자녀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 의식으로 살아가는 부부들과는 상황이 달랐다.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모님의 인생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나의 인생뿐이다.

그것이 부모님의 교육으로 내가 자연히 터득한 삶의 맨얼굴이었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는 그 누구도 대신 책임져 줄 수 없으며, 부모를 탓하거나 원망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부모가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시간을 되돌려 줄 수는 없다. 나 대신 시험을 봐 줄 수도 없고, 나 대신 그림을 그려 줄 수도 없다.

또래와도 부모님과도 완벽한 유대를 가질 수 없었던 나의 선택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나의 언어였다.

테크닉과 컬러는 나의 단어였다.

다룰 수 있는 기술과 컬러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표현이 풍부해지고 정교해지는, 나의 단어고, 문법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그림에 대해 절대 조언하지 않았고, 가끔 기술적인 질문을 할 때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콘테스트에 출품했을 때쯤의 내 그림은 특정한 화가나 화풍, 또는 미술계 유행에 영향받지 않은 상태였다.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근본이 없는 그림이었다. 나의 수상을 부정적으로 봤던 일부 언론에서는 ‘정통성’이 위협받고 있는 현대미술의 위기를 언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목표로 그림을 그려 왔던 게 아니었으니 상관없었다. 청소년 대상의 미술대회에도 참가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내가 그 콘테스트에 출품을 결정했던 것도, 나이나 유명세, 화풍에 관계없이 오직 작품 자체의 가치로만 심사하는 실험적인 대회였기 때문이었다.

상을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림이 나의 언어였으니, 그 언어로 세상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소외감의 반대 개념은 아마도 유대감일 것이다. 각각의 개체들이 유사성을 바탕으로 서로에게서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고,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는 유대.

그 단계를 넘어서면, 유대감은 내가 아닌 상대에게로 확장된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깊이 연관되어, 마침내 나의 일이 너의 일로 이어지고, 너의 일이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서로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줄 수 있는 상태는 유대감으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일 것이다.

샴쌍둥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듯 밀착된 작품 속의 두 사람은,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산만한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중앙의 두 사람을 묶어 주는 안정감과 결속력이 단단한 만큼, 그들을 둘러싼 배경이 가지는 동력은 불안정하고 기괴하다.

문학과 달리 미술에서는 반어적 표현이 쉽지 않다. 작가는 유대감으로 결속된 두 사람을 작품의 중심으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소외를 호소하고 있다. 작가의 어린 나이를 고려할 때, 대범한 선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팝아트적 상상력이 더해진 표현 방식 역시 다소 거칠지언정, 신인 작가 특유의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고독과 달리, 소외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상대에게서 거부되고 배척될 때 발생하는 감정이 소외이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아름답고 따스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품었던 동경과 질투, 그리고 소외의 감정이 떠오를 것이다. 또한, 스스로 은폐했었던 그 못난 감정이 나만의 치부가 아니었음을 위로받으며, 작가의 ‘소외’와 ‘유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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