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상한 나라
아직 6월 초였지만 벌써부터 한낮에는 30도 가까이 오르는 기온 탓에, 토요일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프랜차이즈 카페 내부는 서늘할 정도로 에어컨이 강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나는 반소매 아래 드러난 맨살을 쓸며 노트북 앞으로 좀 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생기 없이 푸석하게 엉클어진 덤불을 배경으로 회색 바위에 걸터앉아, 눈 주변을 번지듯 검게 화장하고, 강렬한 시선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남자.
이런 분위기의 사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대비가 분명한 흑백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진은 컬러였다.
모순적으로, 그렇기에 더더욱 배경의 황량함이 강조되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컬러를 가지고도 사진 속 배경은 충분히 어둡고, 거칠고, 황폐했으니까.
팬텀의 지하 수장고에서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 그대로, 사진 속에서 스웨터의 네크라인을 턱 끝까지 끌어 올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혹은 노려보는 주한이 형은 모델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 형의 포즈와 표정,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연출해 내는 분위기는, 이미 프로 모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Old Future.
오래된 미래.
유니 누나와 주한이 형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그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 것처럼 취미 수준으로 가볍게 운영하는 단순한 의류 쇼핑몰은 아니었다.
팬텀 일이 바쁜 만큼 업데이트가 자주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상품 판매 카테고리 외에도 직접 찍은 사진이나 두 사람이 찍힌 사진들, 그리고 여행과 일상의 순간, 거기에서 파생된 단상을 기록하고 서술한 짧은 글도 함께 게재되어 있었다.
홍콩에서도 내가 특별히 더 좋아하는 올드타운은, 관광 명소인 빅토리아 피크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서로 면한 노호, 소호, 포호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세련되고 힙한 ‘핫플레이스’인 동시에 가장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홍콩의 풍경이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냉장 보관하지 않은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매달아 놓은 재래시장의 정육점,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는 현지인들로 북적거리는 홍콩식 포장마차 다이파이동,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외벽을 따라 대나무를 받쳐 놓은 50년 이상 된 좁은 건물들이 미슐랭 선정 레스토랑이나 가장 전위적인 작품들을 취급하는 첨단의 갤러리들과 등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은, 변함이 없으면서도 늘 새롭다.
순수한 에너지나 열정 같은 자신의 본질은 지켜 가면서,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오랜 친구와의 만남처럼, 그곳에는 늘 기분 좋은 자극이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다채로운 색깔들이 거리에서 충돌하며 만들어 내는 뜻밖의 조화로움, 강렬하게 후각을 사로잡는 이국적인 냄새, 광둥어 억양에 섞여 들려오는 세계 각국의 언어들.
가장 국제적인 앞선 감각과 개성 넘치는 토착적인 지역성을 기반으로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홍콩만의 새로움은, 이미 이 도시를 여러 번 방문했던 여행자에게서도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낸다.
흡연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1년에 한 갑을 채 피우지 않는 나와 권주한이지만, 소호의 펍에서 한잔하고 난 뒤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담배와 라이터를 사게 된다. 조금은 방탕하게, 또는 너그럽게, 일상의 자신을 유지하던 긴장을 허물고 주변을 바라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장 홍콩스러운 동시에, 가장 국제적일 수 있다는 것.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포용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주제에 대해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는 점에서, 홍콩은 나에게 언제든 다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다. 그것이 비록 3박 4일간의 빡센 출장 여행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