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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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고성하의 죽음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유력한 후보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자살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땐 온갖 미디어에서 고성하의 이야기만 쏟아 낼 정도였다.

고 의원은 서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시체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타 버린 후였다고 한다. 주변에는 그가 피운 번개탄이 있었고, 그것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

그의 비서는 고 의원이 술을 많이 마신 뒤 귀가를 했으며,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일이 잘 안 풀린다며 한탄을 했다고 했다. 경찰은 그 증언을 토대로 자살에 초점을 맞추어 수사를 진행했고, 책상 서랍에서 유서를 발견했다. 거기엔 코앞에 다가온 대선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유서가 발견된 즉시 수사는 종결되었다. 고성하가 스스로 번개탄을 피웠고, 서재 카펫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크게 번진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나는 멍청하게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고성하는 국민에게 사랑받았던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죽은 지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저택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왔을 때도, 아주머니와 여사님들이 울면서 고 의원을 부를 때도,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인 양 멍할 뿐이었다.

어젯밤, 남자는 술에 취한 고 의원을 끌고 나갔다. 당장 나를 잡아 오라는 고 의원의 뒷목을 내리치는 게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이불 속에서 울던 나는 날이 밝고서야 겨우 교복을 껴입었다. 혹여 고 의원을 마주칠까 봐 긴장한 내게 이 여사님이 학교에서 먹으라며 과일 도시락을 챙겨 주었고, 고 의원이 붙여 준 기사의 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모든 게 평소와 다름없었다.

강간당할 뻔했던 끔찍한 밤을 겪고도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신물을 느끼며 아무도 몰래 샤프로 허벅지를 찌르려고 할 때, 이 여사님께 전화를 받았다.

[서을 양, 지금 저택에 불이……. 의원님이…….]

화재 당시 아주머니는 외출 중이었고, 집에 있던 여사님들은 빨리 대피해서 모두 무사했다.

경찰 조사에서 그들은 고 의원이 집에 있는 걸 몰랐다고 대답했는데, 늦은 새벽 대문 앞 CCTV에 고 의원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저택 사람들은 고 의원은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으며, 그럴 때마다 굳이 관리인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거나 서재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 역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화재 당시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질문이 오지는 않았다. 그저 아는 대로만 말했다. 수학 수업을 듣는 도중 화재 소식을 전해 들었고, 급히 현장에 왔다고.

남자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저택 사람 모두가 그랬다. 심지어 아주머니까지 남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나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아마 남자가 고성하의 뒤를 봐주는 깡패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리라. 남자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곧 고성하의 지저분한 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관리인들의 입단속도 철저히 했을 거다. CCTV를 확인한 경찰들마저 남자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화면에 없기 때문일 테고.

“직업 특성상 새벽에 드나들 일이 많거든.”

과연 담벼락 문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들 남자와 내가 얽혔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다. 그러니 나만 입을 다물면, 새벽에 남자가 저택에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죽여 줄까?”

문득 사진 속 고 의원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움직이는 환각이 보였다. 그가 나를 노려본다. 곱게 접은 눈매를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나를 공격한다.

─네가 나를 죽였어. 네년이 대호와 작당해 나를 죽인 거야.

환청마저 들렸다. 다급히 귀를 틀어막았지만, 목소리는 쉬이 떠나가지 않았다.

─네가 나를 죽인 거야.

─네가 내 죽음을 사주했잖아.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경찰 앞에서 입도 벙긋하지 않는 망할 년.

아니야. 난 죽음을 사주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고 의원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이다. 단 한 번도 실현하려고 한 적은 없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어떻게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절단 내. 어떻게 그래.

남자도 그렇다. 아직은 그가 고 의원을 죽였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정말로 고 의원이 자살을 시도하다 불이 났을 수도 있잖아.

죽여 준다고 한 것도 그냥 하는 말이었을 거다. 그는 늘 내게 장난을 걸었고,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가볍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죽일 줄은 몰랐…….

“죽여 줄게, 애기야.”

“아…….”

몰랐나?

비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보……! 여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귓구멍에 아주머니의 높은 울음소리가 화살처럼 꽂혔다. 그 날카로움에 내내 먹먹하던 귀가 뻥 뚫리며 주변 소음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고 의원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뭔가 이상해. 대체 왜 고 의원님 같은 분이 자살을…….”

그래. 사실대로 말하면 그 순간 남자가 고 의원을 정말 죽여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 이딴 더러운 짓 그만 당하게,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고성하 말이야. 죽여 줄까?”

“고성하는 내일 밤이나 되어야 올 거야.”

“놀아 주는 대가로 숨겨 주기로 했잖아. 제대로 숨겨 주려면 옆에서 지켜 줘야지.”

오직 남자만이 나를 고 의원에게서 벗어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로소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나는 남자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나는 살인에 가담했다.

남자가 고 의원을 죽였다면, 나는 공범자다.

늦은 새벽 도착한 고채원은 아주머니의 품에서 그대로 기절했다. 파리에서 서울까지 오는 내내 울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 내야 했다.

그러고도 진정이 되지 않아 허벅지를 엉망으로 쥐어뜯었지만 지금만큼은 고통이 현실을 잊게 만들지는 못했다.

우리가 늘 가던 성당에서 고 의원의 장례 미사가 열렸다.

자살한 신도에게는 장례 미사를 열어 주지 않는 성당 측에서도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었다. 고채원과 아주머니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전국적인 고 의원의 추모 분위기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자살이라니……. 아무래도 이상해.”

뉴스에서 한 번쯤 본 기억이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고 의원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비로소 그의 위치가 실감이 났다. 내 몸을 탐하는 더러운 개새끼라고만 생각했던 고 의원은 나라를 쥐고 흔드는 저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곧, 그의 죽음에 수많은 관심이 쏠려 있고, 모두가 고 의원의 자살에 의문을 품고 진상을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지만 남자가 고 의원을 죽였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나는 혹여 모든 게 들통날까 봐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남자는 깡패다. 깡패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별일 아닐지 모르나, 중요한 건 그가 고 의원의 심복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남자가 고 의원을 죽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겠지.

─왜? 고성하의 개새끼가 왜 주인을 물어?

그리고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아내면 화살은 내게로 돌아올 거다.

─말도 안 돼. 그렇게 독실하고 인자하신 분이 강간하려 했다니. 그럴 리가 없어.

─저 여자애가 뭔갈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긴 걸 보니 천박하게 생겼네. 쉽게 생겼네.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얹혀산다더니 몸이라도 팔았나 보지?

─의원님뿐만 아니라 깡패 새끼한테도 몸을 팔았나 봐. 그러니 개새끼가 눈이 돌아서 주인을 물지.

─더러워. 천박해. 싸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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