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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126화 (126/130)

126화

무슨 공략일지 궁리해 보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하더니 팀원들 모두가 죽어 버렸다. 아쉽지만 요행은 한 번뿐이었다.

“영상 좀 확인하자.”

다시 정비하는 동안 선율은 녹화해 둔 영상을 틀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영상을 판독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 기믹은 아니었다. 죽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하나씩 뜯어봐야 했다.

주하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녹화한 영상을 살폈다. 선율의 시점과 달리 좀 더 넓은 범위의 화면이 재생되었다. 원거리 딜러 특성상 힐러보다 뒤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영상을 원하는 구간까지 끌어온 주하는 집중해서 화면을 응시했다. 검은 눈을 가진 마귀와 파란 눈을 가진 마귀가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팀원들에게 제각각 디버프가 생기는 게 보였다. 누구는 하나, 누구는 두 개, 누구는 아예 없기도 했다. 디버프 아이콘은 마귀를 지칭하는 듯이 파란색과 검은색이었다.

“디버프가 마귀 색깔이랑 연관 있는 거 같은데?”

“검은색은 검은 마귀, 파란색은 파란 마귀.”

“응, 그런데 디버프가 ‘반대로’였거든? 뭘 반대로 해야 하지?”

팀원들이 모두 죽은, 영상의 마지막까지 본 주하는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러곤 느린 배속으로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몇 번을 그렇게 돌려 보는데도 공통점이 없었다. 살아남은 두 명은 검은색 디버프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디버프가 없었다.

대체 뭘 반대로 했던 걸까. 모두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리미티드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 지금 영상 돌려 보고 있는데요. 애매한 거 발견했어요.

—오! 뭐 발견했어? 뭔데?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스킬 쓰면서 이동하다가 시선이 살짝 뒤로 돌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번쩍했고, 저는 살았거든요? 전 디버프 없었어요.

“시선이…… 뒤로?”

리미티드의 말을 곱씹어 보는데, 선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뭔가를 알아낸 걸까? 주하가 선율을 쳐다보았다.

“검은색 마귀는 뭔지 알겠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율이 곧바로 설명을 이어 갔다.

“검은색 마귀는 쳐다보는 방향이네. 버프가 있던 사람들이 살았던 건 보스를 쳐다봤기 때문이야. 버프가 없는 사람들은 보스를 바라보면 안 돼.”

—아, 메두사 같은 거구나.

—그럼 디버프가 있으면 그냥 바라보고, 없으면 뒤돌면 돼요?

“맞아.”

리미티드의 질문에 선율이 긍정했다. 원활하게 공략을 알아내는 것이 꽤 기분이 좋았는지 바나나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오오, 좋아. 바로 확인해 보자.

“기다려 봐. 파란색도 확인해야 해.”

—파란색은 왜? 그건 아직 이르지 않아? 공략법도 모르는데.

“아니. 파란색 디버프가 없는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는 게 공략이야.”

선율의 대답에 보이스 채팅방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검은색만 알아낸 게 아니었던가? 파란색 디버프가 왜? 하고 고민하던 팀원들은 순간 번뜩하고 깨달았다.

—……어?

—오?

—그러고 보니?

주하도 뒤늦게 탄식했다. 이걸 놓치고 있었다니. 확실히 파란색 디버프가 없던 세 사람은 모두 살아 있지 않았던가. 저를 포함해 두 사람도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게 공략법이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그걸 알아낸 선율 형이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했다.

그렇다면…… 파란색 디버프가 뭔지만 알아내면 되는 건가? 주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씩 차근차근 확인할 거니까 잘 들어. 검은색 디버프만 걸린 사람은 보스 쳐다보고, 디버프 없는 사람은 뒤로 돌아. 그리고 두 개 걸린 사람들은 정면 보고 이것저것 다 해 봐. 파란색 디버프만 걸린 사람들은 뒤돌아서 해 보고.”

—오메, 정신없는 거…….

“아마 검은색은 확실할 거야. 마귀들 눈이 큰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으니까.”

—파란색이 문제네.

—근데 이것저것이면 뭘 해야 해요?

—시불아, 우리는 오롯이 하나다. 알지?

—아, 맞다. 춤추는 거지!

일시불과 개인주의의 한결같은 공략법에 팀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만 하면 ‘춤’을 들먹이니 공략에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저 잘 따라오기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다 좋으니까 뭐든 해 봐.”

—이번엔 춤이 확실합니다!

—확실합니다!

—어어, 어. 제발 그러길 빈다.

바나나의 심드렁한 대답에도 막내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한 우물만 파다 보면 언젠가 볕 들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바로 시작한다, 외계인 형.”

—응, 간다.

지구침략의 출발로 공대는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이젠 익숙해진 기믹들을 지나고 드디어 마귀가 나타났다. 팀원들은 마귀를 보자마자 본인 디버프를 확인하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엔 주하에게 디버프 두 개가 달렸다. 그렇다면 정면을 쳐다보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데, 뭘 할까 고민하던 주하는 감정 표현인 /정중을 사용했다. 앞 기믹이랑 연관 있지 않을까 해서.

파란색 디버프가 걸린 다른 팀원들도 각자 무언가를 했다. 바나나는 점프를 연타했고, 월차연차휴가는 바닥에 앉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란색 디버프가 걸린 이들은 모두 죽어 버렸다. 이들이 한 공략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 외는 모두 성공했다.

디버프가 없는 이들은 뒤돌아 서 있기만 해도 살아남았고, 검은색 디버프만 있는 사람은 정면만 보고 있어도 살았다. 총 네 가지 유형에서 세 개는 맞힌 것이다. 그러나 기뻐할 겨를은 없었다. 곧바로 다음 디버프가 생겨났으므로.

이번에 파란색 디버프가 생긴 건, 월차연차휴가와 Snow였다.

—아, 왜 우리는 안 생기는 건데!

—모함이다!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투덜거리자 월차연차휴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춤, 이 형님이 한번 해 보지.

—크으! 믿음의 개주시불이라구요!

—가즈아! 월차 형님! 춤으로 세계를 제패해 보죠!

—내가 또 한 춤 하잖아.

—네? 에? 잘…… 못 들었습니다?

—노래방에서 봤을 땐 그다지……?

—이 자식들이?

세 사람은 아웅다웅하면서도 착실하게 공략에 집중했다. 그리고 월차연차휴가는 막내들에게 약속한 것과 같이 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기믹이 발동되는 이펙트가 터지고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만세 하는 감정 표현을 사용한 Snow는 역시나 누워 버렸고, 개인주의와 일시불 대신 춤을 춘 월차연차휴가는…….

—어?

생존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다.

—와? 미친!!

—헐? 이게 된다고?

—진짜 이런 기믹이 나오는 게 말이 돼?

—이건가?! 이날을 위해 지금껏 구박을 버텨 냈던 건가아아아!! 으하하하하하하!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포효하듯 크게 웃었다. 정작 공략을 알아낸 월차연차휴가는 본인도 어이가 없었는지 멍해 있다가 다시 이어지는 기믹에 반응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정답을 찾았지만, 마냥 기쁘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왜 하필이면 춤이야.

—막내들 콧대가 하늘을 찌르네, 찔러.

—개발자 슨생님들, 이거 맞아요? 정말? 아닌 거 같은데…… 제발 아니라고 해 줘요.

—존버의 승리다!

—으헤헤헤헤헤!!

혼란한 와중에 개인주의와 일시불만 신났다. 그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니 팀원들은 앞으로 뭐가 나오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미니 게임이 있을 수도 있겠지. 리듬 게임이나 디펜스 게임, 또는 횡스크롤 게임 같은 것들이. 앞으로도 레이드의 패턴은 점점 다양해질 것이다.

어쨌든 빠르게 공략을 넘길 수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리프는 전멸한 후 곧바로 정비에 들어갔다.

—드디어 30%까지 볼 수 있는 건가.

—너무 스무스해서 이해가 가진 않지만…….

아직도 마지막 보스에서의 공략이 의아하긴 하지만, 당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는 게 라나탈이라는 게임이었으니까.

주하는 오늘부터 아이돌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이런 건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왜 더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일단 30%까지 빠르게 가죠. 별똥이 언제 쫓아올지 몰라요.”

—오케이. 빨리 가자.

—넵!

리프는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마귀 패턴을 넘기고 드디어 30%가 됐을 때였다. 아스모덴이 크게 포효하더니 붉게 물들었다. 보스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광폭화 패턴이었다.

광폭화에 들어서자마자 만찬장에 붉은 화염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파티원 전체에 지속적인 대미지가 들어오는 동시에 디버프 하나가 생겼다. 주하는 마우스를 올려 디버프 정보를 확인했다.

<디버프: 생명력이 20% 이상일 때 귀공자 아스모덴의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증가한다.>

“디버프가 무슨…….”

선율도 디버프를 확인했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유저들의 피가 20% 이상이면 아스모덴이 강해진다니. 보스를 쉽게 잡으려면 무조건 팀원들의 피를 20% 아래로 유지해야 했다.

—와, 쫄깃쫄깃한데?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죽을 것 같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피를 유지해야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미션이었다.

—지구침략은 어떻게 해?

—탱커는 그래도 꽉 채워야 할 것 같은데.

공략을 위해 파티원들의 피를 관리해야 하지만 탱커까지 20%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기본 대미지를 버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탱커 한 명분의 보스 공격력 증가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파티 힐은 내가 관리할 테니까 스노우는 탱커만 봐.”

—어, 알았어.

“지속 대미지 계속 들어오니까 딜러들은 다른 공격에 절대 맞으면 안 돼.”

—알겠습니다! 대장님!

—당연하죵!

—다른 공격이 들어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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