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길드] 멜로디: 레이드 열리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준비는 미리 끝내 놓고 할 거 해
[길드] 개인주의: 옛살!
[길드] 바나나: 외계인! 악탑 가자!
[길드] 지구침략: 잠만; 깃발 좀 만들고
[길드] 바나나: 리밋이한테 시켜! 쟤도 부길마자나!
[길드] 리미티드: 저 이미 월차 형이랑 악탑 들어왔어요...ㅋ
[길드] Snow: 벌써?
[길드] 월차연차휴가: ㅇㅇ 전설 무기를 빨리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지!!!
[길드] 여름n모기: 애쓴다ㅋㅋㅋ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
[길드] Snow: 개주야 우리도 바로 ㄱㄱ
[길드] 개인주의: ㅇㅅㅇ ㄱㄱ
레이드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그동안 전설 무기 퀘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팀원들은 곧장 죄악의 탑으로 향했다.
“형, 우리도 출발?”
“횟수 아까운데.”
“응?”
“악탑 맘 잡고 돌면 한 번에 열 시간은 할걸? 중간에 포기하고 나오느니 레이드 끝나고 하는 게 낫지. 어차피 전설 무기는 장기전이니까 급할 필요 없어.”
횟수 한 번에 최소 열 시간은 사용하겠다는 포부에 주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도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지만, 역시 선율 형은 못 따라가겠다.
“거기다 전설 무기 퀘스트를 한다고 해도 당장 오르는 수치도 없어서 무의미해.”
“그럼 우리 뭐 해?”
“샤하스모르 업적 하러 가자. 조금만 더 하면 100% 채울 것 같아. 레이드 전까지 능력치 10 올리는 게 차라리 나을 거야. 게다가 100% 되면 캐릭터 주변에 있는 검은 안개 사라진대.”
“진짜? 그럼 빨리 하러 가자. 답답해 죽을 거 같아.”
샤하스모르 지역은 메인 맵이라 다른 곳보다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그동안 강제적으로 시야를 차단당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갑갑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끔은 모니터 화면을 박박 닦고 싶을 정도였다.
“바로 가?”
“가자. 미니게임 두 개만 하면 돼. 하나는 퍼즐이고 하나는 스도쿠래.”
“으…… 구석구석 뒤져야 하나? 혹시 게시판에 위치 정보 아직 안 올라왔어?”
“하나는 올라왔는데, 하나는 좀 애매해. 그래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그 주변만 살펴보면 될 거야.”
“그나마 다행이네.”
그렇게 목표를 세운 두 사람은 곧장 샤하스모르 지역으로 넘어갔다.
주하는 제 옆에서 검은 고양이를 타고 이동하는 멜로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가 봐도 하얀 고양이를 타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검은색을 고집하는 걸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하긴, 저도 검은 고양이가 어울리는 걸 알면서도 하얀 고양이를 타고 있으니 그게 그거지 뭐. 완벽한 룩을 포기할 만큼 고양이의 의미가 커서 어쩔 수 없다.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커플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수단이니까 말이다.
나중엔 멜로디처럼 카젤 캐릭터도 흰색에 보라색으로 맞춰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년간 검은색과 붉은색을 유지했으니 한 번쯤은 바꿔도 괜찮지 않을까?
한때 선율과 색상으로 싸웠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역시 흰색도 좋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하였다.
주인을 태운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열심히 필드를 달리고 있었다.
***
PM 6:45.
각자 볼일을 끝낸 리프 팀원들이 레이드 던전 앞에 모였다.
이번 레이드는 확장팩의 첫 번째 메인 던전으로, 총 다섯 마리의 보스가 나온다. 전 시즌에서 층수별로 나뉘어 등장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하나의 던전에서 다섯 마리 모두 등장한다고 한다.
마지막 보스를 제외하곤 중간 보스 네 마리는 순서에 상관없이 잡을 수 있었는데, 중간 보스에게 가기 전에는 일반 몹부터 잡아야 했다.
개발자 코멘트에서는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슬로건으로 던전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MMORPG 게임의 한 획을 그었던, 유명한 게임에서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요즘엔 유저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스피디하게 설계하는 게 일반적이라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재미있겠다.”
주하는 던전이 어떻게 나왔을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보스만 잡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클래식한 레이드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레이드 던전 앞은 수많은 유저들로 바글바글했다.
[공격대] 개인주의: 오메;; 저만 렉 걸립니까?;;
[공격대] 일시불: 난 괜찮은데?
[공격대] Snow: 렉 걸려도 던전 들어가면 괜찮아지니까 좀만 참아ㅋㅋ
[공격대] 개인주의: 컴퓨터를 새로 사야 하나 바여 ㅠㅠ
[공격대] 바나나: 얼마나 됐는데?
[공격대] 개인주의: 라나탈 나왔을 때 샀으니까... 한 4년? ㅇㅅㅇ?
[공격대] 지구침략: 바꿀 때 됐네 ㅎㅎ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그래픽 카드가 두 번은 업그레이드됐겠다... 슬슬 하나 사;
[공격대] 개인주의: ㅠㅠㅠㅠㅠㅠ 요즘 너모 비싸요; 레이드는 아직 괜춘하니까 좀 더 버텨 보려구여...
개인주의가 뚝뚝 끊기는 화면에 슬퍼하고 있을 때, 드디어 7시가 되었다. 서버 전체에 레이드 던전이 열렸다는 시스템 알람이 울리자, 리프를 포함한 유저들이 너도나도 던전으로 진입했다.
기나긴 로딩이 끝나고 맵이 나타났다. 던전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가져온 터라 크기가 상당했다.
[공격대] 일시불: 우앙... 엄청 넓어 보이는데여?
[공격대] 바나나: ㅇㅇ 보스만 5마리니까
[공격대] 여름n모기: 맵이 완전 마계 느낌이네;;
[공격대] 지구침략: 이번 레이드는 전부 악마형이잖아 ㅎㅎ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중간 보스들은 순서 없다고 했나?
[공격대] 리미티드: ㅇㅇ 순서는 없고 4마리 다 잡으면 보스한테 가는 통로가 생긴대요
[공격대] Snow: 진정한 레이드 던전의 냄새가 향기롭군하 쓰읍... 하-
[공격대] 일시불: ㅋㅋ??;; 눈누나 ㅂㅌ같아여ㅠㅠ;;
[공격대] Snow: 넌 이 향기가 느껴지지 않니?
[공격대] 일시불: ㅠㅠㅠㅠㅠ 실제로 냄새가 난다면 악취이지 않을까여...? 맵 여기저기에 썩어서 부패한 동물들이 보이는데?
악마가 사는 마계를 콘셉트로 만들어진 맵은 상당히 다크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둡고,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을 주려고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동물 사체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식인 식물을 비롯해, 무너진 건물 벽 사이에 검붉은 이끼가 가득했고, 피가 흐르는 강에선 기포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일시불 말대로 만약 실존하는 곳이라면 비릿한 피 냄새와 썩은 내가 진동할 것이다.
[공격대] Snow: 그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자나!+ㅂ+ 오랜만에 레이드다운 레이드를 하게 돼서 기쁘다는 뜻이지!
[공격대] 일시불: ㅇㅇ;;; 거럼요; 알됴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 근데 개주 이놈은 아직도 로딩 중인가? 왜케 조용해
[공격대] 여름n모기: 로딩 중인듯 ㅋㅋㅋ
지금쯤이면 시끄럽게 나타났어야 할 개인주의가 조용했다. 공격대 창에서도 캐릭터가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공격대] 개인주의: 허억허억!!! ㅁㅊ!!!
[공격대] 개인주의: 로딩 겁나 길어!!!ㅠㅠㅠ
[공격대] 개인주의: 컴터 터지는 줄 알았어여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ㅋㅋ 재접 함 하고 와라
[공격대] 개인주의: ㅇㅇ;;
개인주의는 컴퓨터도 느려진 것 같다며 아예 재부팅까지 하고 왔다. 그렇게 다시 모였을 때, 선율이 보이스 채팅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집중해서 할 테니까 자리 비우지 마.”
[공격대] 개인주의: 예압! 재성합니다!
[공격대] 일시불: 넹넹
[공격대] 지구침략: ㅇㅇ
[공격대] 바나나: 그럼 출발해 보자!!
중간 보스를 잡으러 가는 길목엔 정예 몹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레이드는 보통 보스가 힘들고 가는 길목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는 걱정 없이 무리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공격대] 지구침략: 뭐야; 왜 이렇게 아파;
[공격대] 여름n모기: ㄷㄷㄷ 겁나 아픈데;;;?
여섯 마리를 각각 세 마리씩 나누어 탱킹하는데, 탱커들의 피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곧장 탱커들과 힐러들의 손이 빨라졌다.
“이감이나 매즈 먹히는지 확인해 봐.”
선율의 지시에 딜러들이 이감과 CC기를 걸어 봤지만, 역시나 정예 몹이라 그런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공격대] 바나나: 하나도 안대!!
[공격대] 개인주의: 다 면역 떠요;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워후... 끽하면 죽겠는데?
“탱커들 무빙은? 도망 다닐 수 있어?”
[공격대] 지구침략: 안대; 우리보다 이속 빨라
[공격대] 여름n모기: 깡으로 버텨야 해?;;
[공격대] Snow: 일단 생존기 아끼지 말고 써바
“딜러들 징표 순서대로 점사해서 빨리 잡아 봐.”
광역 스킬을 사용하던 딜러들이 일제히 점사하기 시작했다. 첫 타깃은 상대적으로 몸이 약한 클래스인 혈기사, 지구침략에게 붙은 몹이었다.
피 통은 높았지만, 다행히도 최상위권 딜러들의 폭딜이 들어가니 살살 녹기 시작했다. 그동안 탱커들과 힐러들은 생존을 위해 스킬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보스 몹도 아니고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녀석들의 대미지가 이렇게나 세다니. 가볍게 생각했던 리프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공격대] 일시불: 이거 보니까... 웬만한 애들은 중간 보스 얼굴도 못 볼 거 가튼데? 입구컷ㅋㅋㅋㅋ;;;;
[공격대] 개인주의: ㅇ_ㅇ;; 우리 탱커 형들 피가 이렇게 빠질 정도면 다른 팀은 답 없지
[공격대] 바나나: 벌꿀이한테 귓말 왔는데 거기도 지금 한 무리 겨우겨우 잡았대;
[공격대] Snow: 허...
한마디로 던전 그 자체가 트라이 구간이었다. 단순히 보스를 잡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가는 길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딱 봐도 레이드 던전을 빨리 깨지 못하도록 머리를 쓴 것 같았다.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쉽지 않은데?
[공격대] 개인주의: (ꐦ°᷄▿°᷅) 오히려 더 불타오르네요!!!
[공격대] 일시불: 도핑 다 해야 할득;;
[공격대] 카젤: ㅇㅇ 거기다 물약도 먹고 깃발도 사용해야 할 거 같은데?
[공격대] 바나나: 강화 물약을 물처럼 마셔야 하네;; 아오;;
[공격대] 지구침략: 그나마 무리가 적은 게 다행인가?
리프는 한 무리를 잡고 나서 영약과 요리를 먹는 등 재정비를 했다.
이번 확장팩 도핑 재료들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값이 뛰어올랐다. 그걸 쉬지 않고 사용하면 이번 레이드에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골드가 투입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리프 길드는 자급자족을 한다는 것이었다.
[공격대] Snow: 과거의 나... 채집 열심히 한 걸 칭찬한다;;
[공격대] 카젤: 미래의 나에게는 더 열심히 하라고 해야겠네요...ㅋ
[공격대] 바나나: ...ㅋ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ㅠㅋ
[공격대] 개인주의: 왜 눈에서 비가 내리지...
[공격대] 일시불: ㅎ,, ㅎ,,,,, ㅎㅎ
“도핑 다 했으면 바로 출발하자. 생존기 쿨타임 돌아왔지?”
팀원들의 눈물 젖은 현실은 선율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레이드 진행이었다.
[공격대] 지구침략: ㅇㅇ
[공격대] 여름n모기: 가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