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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114화 (114/130)

114화

“애들 다 도착했다는데? 들어가자.”

“후…….”

주하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축하한다고 했으니까 걱정할 만한 일은 없겠지. 미리 불안해하지 말자.

주하는 가볍게 심호흡하고 차에서 내려 선율을 따라 예약된 방으로 들어갔다.

“앗! 대장님!”

“우와! 대장님, 여전히 블링블링하시네요.”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가! 카젤 형은요?”

“그래, 카젤은?”

“뒤에 있나?”

저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에 주하는 선율의 등 뒤에서 옆으로 살짝 이동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는 길드원들이 보였다.

“와, 미친!”

“실물 카젤 형이다!”

“미남 카젤이 왔네.”

“어서 와.”

“안녕하세요.”

주하는 반사적으로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저를 반기는 길드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은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이들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형! 요기요기! 요기 앞에 앉으시면 돼요!”

“두 분 자리 딱 마련했습니다!”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두 남학생은 개인주의와 일시불로 추정되었다. 주하는 자리에 앉으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개주랑 시불이?”

“넵! 제가 개주임다!”

“아…… 카젤 형님, 그런 얼굴로 개주랑 시불이라고 하니까 뭔가 막…… 제가 못 할 짓 한 것 같고 그러네요.”

“나 왜?”

“욕 안 할 것 같은 사람한테 억지로 시킨 기분이랄까요……? 형님 되게 청량하게 생기셨어요.”

누구는 시원시원하게 생겼다고 그러고, 누구는 청량하게 생겼다고 그러고. 대체 내가 어떻게 생겼다는 걸까? 차라리 잘생겼으면 잘생겼다고, 못생겼다면 못생겼다고 말해 주는 게 나은데. 저렇게 표현하면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주하가 의아해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모르고 있나 본데?”

“저러면 왠지 알려 주기 싫단 말이지.”

“오호라.”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의뭉스럽게 굴었다.

어떻게 매번 같은 반응일까. 경험상 제가 궁금해할수록 더더욱 놀려 대기 바빴으므로 이럴 땐 파고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소개 좀 해 줘요.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

“앗! 그럼 제가 빠르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개인주의가 한 손을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랑 시불이는 아실 테고. 이쪽이 눈 누나! 그 옆이 바나나 누나입니다. 저번에 만났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분들이죠.”

갈색 단발머리가 Snow, 검은 긴 머리를 한 사람이 바나나였다. 주하는 그제야 흐릿했던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Snow는 작고 귀여운 느낌이라면 바나나는 샤프한 느낌의 ‘누님’이었다. 어째서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다. 외양에 나름의 자부심 있다던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주친 시선에서 주하는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긴 뭘 만나. 그건 우리의 꿈일 뿐이었어.”

“그러게. 우리 오늘 처음 만나는 거지?”

“윽, 죄송해요…….”

주하는 눈썹을 잔뜩 늘어뜨리며 침울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몇 번을 사과해도 여전히 뒤끝 있는 모습에 괜히 선율 형 친구들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나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만들어 주마.”

“기대해, 주하야.”

“자자, 누나들. 회포 푸는 건 조금 있다가 하시고요. 소개부터 다 할게엽.”

의미심장하게 웃는 두 사람을 말린 건 개인주의였다. 주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짝 엎드려 있어야 할 판이었다.

개인주의는 씨익 웃으며 소개를 계속 이어 갔다.

“바나나 누나 옆에 있는 훈남이 외계인 형이고요, 그 옆에 못생긴 사람이 모기 형입니다.”

“반가워, 주하야.”

“개주야? 내 소개는 왜 그래?”

“현실적으로 소개하는 중인데요?”

“너 이 자식…….”

“으앗! 형! 더 못생겨져요! 인상 풀어요!”

개인주의가 기겁하며 손을 마구 흔들자 여름n모기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 하고 웃어 버렸다.

주하는 지구침략과 눈으로 인사를 하곤 막내들에게 당하고 있는 여름n모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눈이 쭉 찢어져 언뜻 사납게 보이는 얼굴이지만, 못생기진 않았다. 그냥 개인주의가 놀리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형 옆에 포메라니안 같은 분이 리미티드 형이고, 그 옆에 말라뮤트 같은 분이 월차 형입니다.”

주하는 제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와 선율 형의 사이를 알고 있는 리미티드가 이 녀석이었을 줄이야. 느낌이 포메라니안보다는 새끼 레트리버였다. 순하게 생겨서 귀여운 모습이다. 그때, 리미티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주하는 미약하게 품고 있던 걱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야, 김개주. 우리는 왜 강아지야?”

“사령관 커플은 강아지니까요.”

말라뮤트를 닮은, 덩치 크고 서늘하게 생긴 월차연차휴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커플 드립 지겹지도 않냐.”

“요즘 대세는 브로맨스입니다! 트렌드를 못 따라가는 월차 형은 늙은이예요!”

“그럼 너랑 시불이도 커플이냐?”

“으웩!!”

“아…… 형님. 제가 다른 사람은 다 돼도 개주 새끼는 안 돼요.”

“야! 너만 그러냐? 나도 그렇거든?!”

“시끄럽고. 카젤아, 안녕? 이 자식들 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해요, 아주.”

“월차 형, 안녕하세요.”

“어야.”

생긴 것과 달리 월차연차휴가는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그러곤 리미티드의 어깨에 팔을 얹고 주하를 향해 악수를 권했다. 주하가 손을 내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리미티드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뭐야, 리밋이 네가 왜 손을 잡아?”

“저랑은 악수 안 했잖아요.”

“자주 보는 녀석이랑 악수를 왜 해.”

“이 기회에 하는 거죠.”

이상한 논리에 월차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리미티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선율만 만족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팀원들을 모두 소개한 개인주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소개받지 못한 인원들이 어이없게 쳐다보자 음흉하게 웃었다.

“그 이외 기타 등등은 길드원들입니다. 모르셔도 돼요.”

“야! 김똘띠! 이 자식아!”

일반 길드원들은 개인주의에게 마구 야유를 퍼부었다. 오늘 모임은 레이드 팀원들뿐만 아니라 길드원 전원이 온 터라 인원이 꽤 됐다.

“장난 그만 치고 제대로 소개해.”

“에? 예?”

“김개주야, 잠깐 누나랑 면담 좀 할까?”

“괜찮습니다! 마저 소개하겠슴다!”

개인주의는 옆에 있는 Snow에게 혼나고 나서야 모두를 차례차례 소개해 주었다.

주하는 그동안 레이드 팀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가끔 던전도 같이 가고, 채집도 하고, 최근엔 자진신고와의 전쟁 때문에 길드원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며 드디어 소개가 끝나자 다들 술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모임엔 역시 술이지!”

“다들 반갑습니다.”

“신나게 마시자!”

길드원들은 왁자지껄하게 인사하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현실 친구에다가 지인들이라 어색함은 없었다.

“주하야, 이번엔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시면 안 된다?”

Snow는 주하에게 잔을 내밀며 놀리듯 말을 걸었다. 주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주하가 민망해하며 잔을 내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달라붙었다.

“누나, 그만 좀 놀려. 살다 보면 필름이 끊길 수도 있지.”

“맞다, 맞아! 누나들도 끊겨 봤을 거 아니에요.”

월차연차휴가와 개인주의가 주하를 두둔하고 나서자 바나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잊을 만한 얼굴은 아닐 텐데? 그리고 난 다 기억하는데? 월차 넌 예전에 술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계단 올라가다가 정강이 아작 났잖아.”

“아, 누나! 그게 언제 적인데!”

“그리고 개주 넌 길에서 피자 한 판 만들…….”

“카젤 형! 왜 우리 누나들 기억하지 못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셨나요!”

태세 변환 한번 빠르네. 바나나에게 붙은 개인주의를, 주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왠지 오늘 모두의 흑역사를 보고 듣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네요.”

주하가 미래를 예견하자 바나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기대해, 내가 오늘 썰 다 푼다.”

“아악! 나나 누나!”

분위기는 개판 5분 전이었지만, 다들 익숙한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먼저 건배를 외치자 찡찡대던 개인주의도, 열심히 놀리고 있던 바나나도 술잔을 부딪치며 웃어 댔다.

가볍게 원샷으로 잔을 비운 바나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개주 이야기부터 해 볼까?”

“아이고, 우리 나나 누나 술잔이 비었네! 어떻게 채워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요! 제가 누나 옆에서 열심히 따라드리겠습니다! 자요, 자! 더 드세요!!”

바나나는 필사적으로 방어하려는 개인주의를 보며 흡족해했다. 역시 막내들 놀리는 게 최고라며 개인주의가 따라주는 술을 능청스럽게 받았다. 흑역사를 푸는 건 아주 조금 미뤄도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주당답게 개인주의가 따라 준 술도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길드원들을 쭉 훑고는 가장 궁금했던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근데 자진신고 그 자식들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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