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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88화 (88/130)

88화

주하도 어느샌가 피가 반이나 닳아 있었다. 팀원들 대부분의 피도 절반 이하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힐러들의 마나를 보니 물약을 마시고도 부족한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점사 당하던 개인주의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대정령 소환>

멜로디에게서 거대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며 거대한 새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멜로디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돈 새는 날개를 활짝 펼쳤다. 황금빛 오라가 퍼져 나가며 파티원들에게 동시에 보호막이 생겨났다.

[대정령 소환: 보호막이 유지되는 동안 모든 마법, 물리 공격에 피해를 받지 않는다. 또한 이동이나 행동에 제약받지 않는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무적기를 부여받은 팀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진으로 달렸다. 적들의 공세에도 리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공격도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게 되자 자진신고와 용병들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일반] 살금: 뭐야 이거? ㅅㅂ 사기 스킬이네?

[일반] 베르메르: 이거 대정령 소환 아니야?

[일반] 온별: 히든 특성인가 본데?

[일반] 그뤠잇: ㅋㅋㅋ 미쳤넼ㅋㅋㅋ

[일반] 너는내점수: 밸런스 조절하는 거 맞아??

어쩔 수 없이 멜로디의 히든 특성이 공개되어 버렸지만, 당사자인 선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히든 특성의 페널티로 인해 보호막의 유지 시간은 짧았다. 그 순간만 모면할 뿐,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버프가 사라질 때쯤이었다.

갑자기 바닥에 황금빛 마법진이 만들어지더니 거대한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 주변을 음표가 날아다니며 웅장한 찬양가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리프 길드원들의 피가 모두 치유되었다.

마법진 정중앙에 있는 유저는 성기사인 Snow였다.

[성스러운 찬가: 파티 또는 공격대원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모두 회복하고, 15초간 틱당 시전자 생명력의 5%에 달하는 피가 회복된다.]

Snow의 궁극기가 멜로디의 보호막이 사라지는 타이밍에 맞춰 발동된 것이다.

쏟아지는 공격에 힐러 두 명이 마나를 다 쓸 정도로 힐량을 채웠으니 궁극기에 불이 들어온 것으로, 보통 필드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었다.

—끝의 끝까지 쥐어짰네.

—난리다, 진짜.

일단 한숨 돌린 팀원들은 모여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동 속도가 느린 클래스가 조금씩 뒤처지면 어김없이 공격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부러 공격을 멈추고 말을 타고 쫓아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각종 CC기와 밀쳐 내기 스킬로 버티긴 했지만, 적들에게서 벗어날 순 없었다.

술래잡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달려드는 서른세 명에게서 열 명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끝은 다가왔다.

Snow의 궁극기로 꽉 채웠던 힐러들의 마나가 또다시 동나고, 파티원들의 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결국 적들이 해산하기 전까지는 살아날 수 없었다.

—오늘이야말로 자진신고 레벨을 떨어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말렸네.

—아, 짜증 나. 용병 부를 줄은 몰랐어.

—이건 길드전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

—길드전은 무슨, 그냥 더러운 싸움판이지.

자진신고 녀석들에게 바라면 안 될 걸 바랐다며 한탄하고 있을 때였다. 쫓아오던 녀석들이 월드 창에서 낄낄거리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월드] 세렌디피티: 이야ㅋㅋㅋ 리프 잘 튀네ㅋㅋㅋㅋㅋ

[월드] 살금: 꽁지 빠지겠닼ㅋㅋ

[월드] 천상검: ㅋㅋㅋㅋ

[월드] 크리넥스: 잉? 리프가 지고 있어?

[월드] 온별: ㅇㅇ ㅈ밥들임ㅋㅋ

[월드] 베르메르: 뒤통수 말고 얼굴 좀 보자 얘들아 ^^

[월드] 살금: ㅋㅋㅋㅋ 뒤통수 ㅈㄴ 예쁘네

어이가 없던 개인주의와 일시불은 곧바로 월드 창에 반박했다.

[월드] 개인주의: 용병 데려와 놓고 겁나 당당하네?

[월드] 일시불: 길드전 매너는 다 버려 놓고 무슨 자신감인지?

[월드] 살금: 매너? 우리가 매너 따질 사이냐?ㅋㅋ

[월드] 온별: 꼬우면 너네도 모아ㅋ

[월드] 베르메르: 도와주세요∼ 하고 부탁해 봐ㅋㅋㅋㅋㅋㅋ

[월드] 천상검: 그 전에 죽겠지만ㅋ

누군가 자진신고의 도발에 마이크로 욕설을 내뱉었다. 주하도 이때만큼은 화를 참을 수 없어 이를 악물었다. 자진신고와 제대로 붙어서 졌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컨트롤은 좋다며 적이지만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월드] 베르메르: 여기까지 살려 줬으면 됐지?

[월드] 살금: 인제 그만 죽자ㅋㅋㅋ

[월드] Cocomon: 헐... 이건 또 무슨 일이래;;

[월드] 양머리: 신고 길드가 용병 부른 듯ㅋㅋ

[월드] Cocomon: Aㅏ......?

[월드] 마지막싶새: 서로 매너 챙길 사이는 아니긴 하지ㅋㅋㅋㅋ

[월드] 암튼맞음: 난 길드전에서 매너를 왜 찾는지 모르겠음ㅋㅋㅋ 서로 싫어서 싸움 건 거 아니야? 그럼 어떡해서든 이기믄 대짘ㅋㅋ

[월드] 살금: 맞말ㅋㅋㅋ

[월드] 온별: 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신나게 웃어 댄 자진신고는 공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더는 버티기 힘들어진 리프는 보이스 채팅에서도 침묵이 이어졌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 있을 때였다.

[월드]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 아 ㄹㅇ?? 너희들이 먼저 매너 따위 필요 없다고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월드] 모기물린곳십자가: 똥매너들 ㅎㅇ!

[월드] 응꼬에모양깍지: 똥 별명은 쟤들이 가져가야 할 거 가튼뎅?

[월드] 항문의영광: 아... 길마님 그 아이디로 월드창 쓰지 말라니깐;

[월드] 벌꿀오소리: 아이씨... 둘 다 쓰지 마!!!!

갑자기 월드 창에서 벌꿀오소리와 별똥 길드원들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리프 길드원들의 도주로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 뒤에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 벌꿀오소리: 까꿍!

[일반] 응꼬에모양깍지: 똥유저들 앗녕!

[일반] 항문의영광: 안농 >ㅅ<

[일반] 모기물린곳십자가: 리프님들 우리 ㅊㅊㅊㅊ

리프 길드원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자 별똥 길드원들은 그 뒤를 가로막고 쫓아오는 적들에게 CC기를 걸었다.

자진신고와 용병들은 그 자리에서 단체로 잠에 빠졌다. 그사이 별똥 길드원들에게 파티 초대를 한 리프는 공격대에 합류하는 그들을 보며 여전히 얼떨떨해했다.

[공격대] 벌꿀오소리: 하잇!

[공격대] 항문의영광: 캬! 리프랑 팀도 해 보네ㅋㅋㅋㅋ

[공격대] 응꼬에모양깍지: 자 그럼∼ 향기로운 힐 들어갑니다아

[공격대] 벌꿀오소리: 길마님 냄새나니까 ㄷㅊ고 힐합시다;

[공격대] 응꼬에모양깍지: 너모해ㅠㅠ...

파티에 들어온 열 명의 별똥 길드원들은 피가 없는 리프 길드원들에게 힐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시 한번 적들에게 CC기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격대] 카젤: ...벌꿀님?

[공격대] 벌꿀오소리: ㅇㅇㅋㅋ 카젤님 오랜만ㅋㅋ

[공격대] 카젤: 어케 된 거예요;

[공격대] 벌꿀오소리: 어케 되긴? 보면 모름? 도와주러와찌ㅋㅋ

[공격대] 개인주의: 와... 나 방금 별똥분들 공격대에 들어오는 거 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렸엉...

[공격대] 응꼬에모양깍지: ㅇ.< 찡긋

[공격대] 월차연차휴가: 타이밍 ㅈㄹㄸ

[공격대] 응꼬에모양깍지: >.ㅇ 찡긋

[공격대] 벌꿀오소리: 길마님 얌전히 좀 있어바

[공격대] 응꼬에모양깍지: ㅠㅠ맨날 갈구기만 해...

[공격대] 바나나: 와...... 벌꿀님한테 반할 것 같아...

[공격대]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ㅋ 나나님은 반하셔도 됨ㅋㅋㅋ

[공격대]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격대] 벌꿀오소리: 근데 그 전에 저 ㅆㄹㄱ부터 치웁시다 썩은 내가 진동하네 ㅅㅂ

적당히 정비를 마친 리프 길드는 마나 물약을 들이켜며 별똥 길드와 합류했다. 그러자 때마침 자진신고와 용병들의 CC기가 풀렸다.

[일반] 항문의영광: 와 이ㅅㄲ들 33명이자나???

[일반] 모기물린곳십자가: ㅎㄷㄷㄷ 이걸 버팀?

[일반] 벌꿀오소리: 누가 ㅈ밥인지 모르겠넼ㅋㅋ

일부러 일반 채팅으로 바꾼 별똥 길드원들은 자진신고를 살살 약 올리기 시작했다.

[일반] 천상검: 벌꿀님... 뭐하는 거예요?

[일반] 벌꿀오소리: 뭐긴? 정의 구현이랄까?

[일반] 살금: 하! 참나

[일반]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혀는 리프가 차야짘ㅋㅋㅋ 님이 왜 참??? 제정신 아니네???

벌꿀오소리는 거대한 불이 일렁이는 화염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처음 보는 무기에 화려한 스킬 이펙트가 붙자 월차연차휴가가 소리 질렀다.

—저거!! 이번 라흐니스 마법사 무기잖아!

—어? 그러네. 별똥에서 마법사 지팡이 나왔구나.

—벌꿀님 19강인데? 대미지 어마어마하겠다.

1티어 중에서도 원탑으로 꼽히는 마법사는 보통 팀 내에서 메인 딜러로 통한다. 그런 마법사에게 19강 최고 무기라니. 보지 않아도 그 위력이 짐작되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우리에겐 25강 깡패님이 계신다고! 카젤 형, 출동!

“그래.”

주하도 웃으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강화 이펙트로 무기가 번쩍번쩍 빛이 났다.

—에잇! 보조나 해야겠다.

월차연차휴가는 아픈 배를 쓰다듬으며 자진신고 본진으로 달려들어 갔다. 어떤 스킬을 쓸지 알고 있던 적들이 월차연차휴가를 밀어 버렸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번엔 순간이동으로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빙판으로 녀석들을 한데 모아 놓은 월차연차휴가는 넉백 대신 녀석들의 발을 얼음으로 묶어 두었다. 그러자 그 위로 거대한 운석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벌꿀오소리의 메테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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