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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83화 (83/130)

83화

—그야 당연히 운동? 게임 할 때도 체력은 필요하니까.

아, 난 또 뭐라고. 주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잔뜩 분위기 잡아 놓고 운동 이야기라니. 이러다 심장 남아나지 않겠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로든.

주하는 축축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는 이미 부팅을 끝내서 화면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라나탈을 실행해 두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고는 대충 대꾸했다.

“천천히 알아봐야지.”

—아니, 천천히 말고. 지금.

“지금? 왜?”

—나랑 같이하자고.

“……형이랑?”

—응, 수영할 줄 알아? 모르면 가르쳐 줄게.

자고로 제가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이라도 남이 재촉하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공부가 그렇고, 다이어트가 그렇고, 금연이나 금주도 그렇지 않던가.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긴 했어도 적당히 넘기려던 주하는 뜬금없는 선율의 제안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야. 네 체력 좀 키워야 할 것 같아서.

“내 체력이 왜? 나 정도면 평범하지.”

—글쎄? 맨날 나보다 먼저 피곤해하잖아.

“……매일매일 열다섯 시간 이상 게임 하면 누구나 피곤해하지 않을까?”

—난 괜찮던데.

“그거야 형이 평범의 범위를 넘어선 거고.”

차라리 만나서 게임 하자고 그러면 승낙했을 텐데, 하필 운동이라니. 분명 운동을 빙자해서 괴롭힐 게 뻔했다. 선율 형은 수영 만렙이고 저는 쪼렙이지 않던가. 주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형이랑 운동 안 해.”

—왜? 나 수영 강사 자격증도 있어. 잘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응, 안 해.”

단호하게 거절하는데도 선율 형은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하게 될걸?”이라며 속삭였다. 그럴 일은 절대 없어서 주하는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다.

“근데, 언제 접속해?”

—음, 한 10분 뒤?

“나 먼저 접속해 있을게, 천천히 와.”

너무 대놓고 피했는지, 선율 형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보석술사가 회피기도 있었던가?

“만능이지.”

—……말이나 못 하면.

주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게임에 접속했다.

<길드원 카젤 님이 접속했습니다.>

[길드] 개인주의: 형 어서 와용 ㅇㅅㅇ

[길드] 바나나: 카젤이 어서 와

[길드] 일시불: 형님 ㅎㅇ

[길드] 지구침략: 주하야 어서 와 ^^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길드원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주하의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그럼, 끊는다.”

—금방 갈게.

알겠다며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길드] 카젤: ㅎㅇㅎㅇ 좋은 아침이요ㅋㅋ

[길드] Snow: 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아침

[길드] 개인주의: 크으! 카젤 형 아침부터 게릴라전 있었던 거 어케 알고ㅋㅋㅋㅋ

[길드] 카젤: 어? 지금도 싸우는 중?

[길드] 개인주의: 아뇨ㅋㅋㅋ 이미 끝냈져!!!

[길드] 카젤: 좀 일찍 들어올걸ㅋㅋ

[길드] 바나나: 어허 어디서 남의 킬 수를 넘봐?

[길드] 개인주의: ㅁㅈㅁㅈ 지금 다들 카젤 형 따라잡겠다고 난리인 거 안 보이나여?!

주하는 길드 정보창을 열어 현재 상황을 확인했다.

[리프 / 전쟁 중(자진신고)]

순위 아이디 Kill Death Assist

1 카젤 142 5 91

2 리미티드 123 8 82

3 월차연차휴가 119 7 109

4 바나나 108 8 69

5 일시불 102 4 95

6 개인주의 100 11 58

7 멜로디 76 1 113

.

.

.

다행히도 자신이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리미티드가 바짝 쫓아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길드] 카젤: ㅋㅋㅋ 다시 텨야지

[길드] 일시불: 안대에에ㅔㅔㅔ!!

[길드] 월차연차휴가: 하... 사령관 이름이 울고이따 ㅠ

[길드] 리미티드: ...제보가 다 저쪽으로만 가나?

[길드] 지구침략: 그것도 그런데ㅋㅋ 카젤이 멜로디가 상대하는 애들까지 쏙쏙 빼먹는다고 하던대?ㅋㅋㅋ

[길드] 바나나: 진짜????

[길드] 카젤: ㅋㅋㅋ 맛있더라고요

[길드] 여름n모기: ㅋㅋㅋㅋ

[길드] 일시불: 대장님 카젤 형이랑 붙어다니다가 봉변당함ㅋㅋ

[길드] 지구침략: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멜로디라고 해도 최상위권 딜러가 작정하고 막타를 치려고 하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력을 빼앗는 스킬이 있긴 하지만, 카젤과 약속을 한 터라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멜로디는 카젤에게 상당량의 킬 수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괴물 같은 능력을 발휘하여 76 킬 수를 달성했다.

[길드] 지구침략: 그런데 반전이 있음

[길드] 일시불: 반전이요 ㅇㅅㅇ?

[길드] 지구침략: ㅇㅇ

[길드] 여름n모기: 먼데요?

[길드] 지구침략: 어느 순간부터 멜로디 킬 수가 안 올라가더라고. 지금 76에서 계속 멈춰있는 거 알지?

[길드] Snow: ㅇㅇ

[길드] 지구침략: 물어보니까 그러더라. 카젤한테 죽으면 더 빡쳐하니까 자기는 안 죽인다고ㅋㅋㅋㅋ

[길드] 월차연차휴가: 앜ㅋㅋㅋㅋㅋㅋㅋ

[길드] Snow: ㅋㅋㅋㅋ 그건 맞지

[길드] 여름n모기: 대장답다고 해야 하나;

[길드]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장님 진짴ㅋㅋㅋ

[길드] 바나나: 오+_+ 좋은 생각인데?

[길드] 개인주의: 아니...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으면 공유를 해 주셨어야져 ㅠㅠ

[길드]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리미티드: ㅋㅋ

주하는 며칠간 이어진 싸움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엔 선율 형과 막타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힐러한테 질 수 없다는 딜러의 자존심, 그리고 자진신고를 제대로 밟아 주겠다는 다짐까지 더해져 살벌하게 경쟁했다.

그렇게 킬 수에 집착하며 싸우고 있을 때였다. 베르메르와 살금이 제게 죽고 욕설을 내뱉는 것을 본 선율 형이 마구 웃어 댔다. 그러더니 앞으로 네가 다 죽이라며 완전히 손을 떼 버린 것이 아닌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자 “쟤들이 너한테 죽으면 더 짜증 내길래”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이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선율 형이 아군이라서 다행이라고.

<길드원 멜로디 님이 접속했습니다.>

그때, 예정보다 더 일찍 선율 형이 나타났다.

[길드] 개인주의: 오셨슴까 대장님!!

[길드] 일시불: 대장님 ^^777

[길드] 카젤: ㅋㅋㅋ 형 ㅎㅇ

[길드] 바나나: 왔냐?

[길드] 월차연차휴가: 대장님 ㅎㅇㅎㅇ

[길드] 지구침략: 어서 와

[길드] 멜로디: ㅎㅇ

인사를 받은 선율 형은 곧장 제게 파티 초대를 걸었다. 수락 버튼을 누르자 파티가 결성되었다. 어디부터 순찰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개인주의가 이상한 다짐을 하고 있었다.

[길드] 개인주의: 저 앞으로... 카젤 형은 논외로 치려고여!

[길드] 카젤: ㅇㅇ? 머가?

[길드] 개인주의: 그 자식들이 형님한테 죽으면 더 기분 나빠 한다면서여ㅋㅋㅋ 앞으로 카젤 형이랑 있을 땐 죄다 몰아 줘야징

[길드] 월차연차휴가: 그렇다면 나도 밀어 줄 수바께!

[길드] 리미티드: 나도ㅇㅇ 내가 잡는 것보다 너한테 죽고 짜증 내는 모습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아ㅋ

[길드] 카젤: ㅋㅋㅋㅋㅋ 그럼 맛있게 먹겠음 ^^

[길드]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여름n모기: 어케 정상적인 애들이 없냐;;;

[길드] 일시불: 모기 형님은 재미없을 거 같아여? •ㅅ•?

[길드] 개인주의: 이렇게 배신 때리나효???

[길드] 여름n모기: ...난 내가 정상이라고 말한 적 없어 ^^;;

[길드] Snow: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일시불: 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멜로디: ㅋㅋㅋ

결국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었다.

길드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지도를 둘러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멜로디 캐릭터가 제 옆에 서 있었다. 하얀 고양이가 검은 고양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귀여워 보였다. 주하는 슬그머니 미소를 그렸다.

[파티] 카젤: 어디부터 갈까?

[파티] 멜로디: 그 전에 할 게 있어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지금 아드룬 몇 개 있지?

아드룬은 아이템 강화에 사용되는 재료였다. 주하는 창고로 달려가 개수를 확인했다.

[파티] 카젤: 20개 있네

[파티] 카젤: 근데 왜?

고작 20개로는 아이템 강화를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강화 수치가 오를 때마다 필요 재료도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현재 무기 강화가 멈춰져 있는 곳은 19단계였다. 20강을 시도하려면 최소 22개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자진신고 녀석들을 쫓아다니다 보니 던전을 자주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죄악의 탑 보상은 이틀은 더 기다려야 했다.

개수는 왜 묻는지 의아해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선율 형이 거래를 걸었다. 별 의심 없이 수락을 누르자 목록 창에 무언가가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티] 카젤: ?????? 형?

그것은 거래가 가능한 아드룬이었다. 그것도 99개 묶음으로 총 6개.

아드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거래가 불가능한 ‘획득 시 귀속’이 있고, 하나는 거래가 가능한 ‘자유 거래’가 있었다. 던전이나 랭킹 보상, 일일 퀘스트에서 주는 것들은 전부 획귀였고, 자유 거래로 나오는 건 오직 주간 퀘스트에서 보상으로 주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거래되는 아드룬 재료는 매물도 거의 없을뿐더러 상당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가장 싼 게 개당 8천 골드였으니 만 골드를 넘는 것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럼에도 없어서 구매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파티] 카젤: 이게 다 뭐야?

[파티] 멜로디: 뭐긴 틈틈이 사서 모아 둔 재료지ㅋㅋ

[파티] 카젤: 근데 이걸... 왜?

[파티] 멜로디: 네 덕분에 세이브한 재료야. 원래는 이거 다 써도 지금 강화 단계까지 못 올렸거든ㅋ

[파티] 카젤: ...;;;;; 그래도 그렇지, 있는 재료로 강화 다 올리지 그랬어? 남겨 두면 아깝잖아

[파티] 멜로디: 라흐니스 광역 공격에 버틸 만큼은 강화해 놨으니까 당장은 괜찮아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그보다 더 재밌는 걸 해야지

[파티] 카젤: 재미있는 거?

[파티] 멜로디: ㅇㅇ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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