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월드] 멜로디: 장난이니까 안 해도 됨
[월드] Cocomon: ㄹㅇ여???ㅠㅠ
[월드] Cocomon: 두 번 장난했다간 심장 남아나지 않겠음;;
[월드] 렌지: 휴... 귓말 안 와서 달달 떨고 있었는데ㅠㅠ
[월드] 밀가루: ㅠㅠ;;;
[월드] 내일의집: 10년감수해따;;;
주하는 자진신고가 모두 대도시에 있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유저들이 제보하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을 사지로 모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게임을 접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유저들에게 선율 형의 인성을 굳이 내보일 필요는 없지.
[월드] 비틱의황제: 어? 자진 애들 우르르 몰려간다
[월드] 응애하네: 오! 이번엔 팀전인가?
[월드] 비틱의황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ㅋㅋㅋㅋ 던전 들어가는데???
[월드] 뿌엉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월드] 응애하네: 리프 어뜨카냐ㅋㅋ 버림받았넼ㅋㅋㅋ
[월드] 개인주의: 우리 버리고 어디가아아아 도라와!!! ( ˃̣̣̥᷄⌓˂̣̣̥᷅ )
[월드] 일시불: 가지마아아아ㅠㅠㅠㅠㅠㅠ
던전에 들어간 자진신고를 애타게 찾는 척하며 팀원들은 평판 작업을 하러 떠났다. 녀석들이 없는 필드를 마음껏 쓸 수 있는 황금 시간대이기 때문이었다.
주하도 멜로디와 함께 샤하스모르 지역으로 이동해 평판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주하야.
“응.”
주하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몹을 끌어오다가 바로 옆에서 풀이 리젠되는 걸 발견했다. 빨리 잡고 채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적당히 대답하는데.
—나 방금 애인한테 혼난 기분이었어.
멜로디의 폭탄 발언에 마우스가 쭉 미끄러졌다.
“아, 진짜. 형!”
—기분 묘하더라.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처음부터 잘해 줬어야 했는데…… 확실히 내가 생각이 짧았어.
“반성하는 포인트가 잘못, 아니, 진지하게 헛소리할 거면 말을 하지 마, 그냥.”
—진심인데?
목소리에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서 진심은 무슨. 주하는 화면 속 멜로디를 노려보며 달아오른 눈 밑을 쓸어냈다. 하여튼 방심할 수가 없어.
—나, 그래도 네 말은 잘 듣잖아.
“내가 말하기 전에 착하게 살자.”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나도 얌전해.
“어련하시겠어요.”
잔뜩 지친 목소리로 대답하자 선율 형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고 보니 블랙 멜로디로 쫓아다니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가? 본인 괴롭힌 유저들은 죄다 게임 접게 했다던데. 골드로 끝낸 거면 얌전하긴 얌전했네.
주하는 검붉은 오라로 뒤덮였던 멜로디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군의 공격력을 훔쳐 가는 스킬은 정말이지……. 개주랑 시불이의 비명이 여전히 들리는 듯했다.
이거, 남 걱정할 게 아니라 날 걱정해야 할 판인데?
“아무튼, 형. 나는 건드리지 마.”
—지금 나 경계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잘해 주는데, 서운하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공격력은 건들지 말라고.”
—……아?
일시불과 개인주의가 당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경계해야 함이 마땅했다. 그러나 선율 형은 생각지도 못했던지 얼이 빠진 듯 말을 잃었다.
‘젠장, 모르고 있던 거 같은데 괜히 알려 줬나?’
눈살을 찌푸리며 후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허리까지 접어 가며 웃고 있을 게 뻔했다. 이게 그렇게 웃을 일인가? 착잡한 심정으로 웃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웃어 대던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몰아쉬었다. 진정하려는 듯 몇 번 숨을 고르고 나서야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네…….
“그건 모르겠고, 안 훔쳐 가겠다고 약속해.”
—아, 진짜.
작게 탄식하는 그에게 주하는 뚱하게 대답했다.
“왜 또, 뭐.”
—아니, 게임에 진심인 우리 주하가…… 너무 좋아서.
“나는 게임에 진심인 형이, 좀, 그래.”
결국 선율 형은 또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젠 해탈의 경지에 올라 예쁘게도 웃는구나, 하고 감상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PC방에서 저래도 되나? 문득 언젠가 PC방에서 신나게 웃어 대던 사람이 떠올라 주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계속 웃기만 할 거면 보이스 채팅에서 나간다고 하자 드디어 진정되었다.
“내 공격력 훔쳐 가지만 마.”
—으……응, 흡. 그으래.
설마 웃다가 울기까지 하는 건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만 좋으면 됐지. 주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판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잠에서 깨어난 주하가 요즘 들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물가물한 눈으로 화면을 보자 한 시간 전에 온 메시지 알람이 떠 있었다.
[선율 형: 일어났어?]
[선율 형: 오늘도 아직인가 보네ㅋㅋ]
[선율 형: 일어나는 대로 전화해]
“……잠도 없나, 이 형은.”
온종일 게임에서 붙어 있다 보니 메시지 대부분은 다 이런 내용이었다. 항상 저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제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메시지를 보내 놓는다. 전날에도, 그 전날에도 어김없이 내용은 비슷했다.
게다가 형이 시킨 대로 일어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누르다 보니 메시지에 제가 대답한 내용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주하는 화면을 쭉쭉 밀며 같은 패턴으로 이어진 채팅방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 꼭 제가 문자로 대화하기 귀찮아하는 꼰대같이 보이지 않는가. 분명 하나라도 대답한 게 있을 법한데…….
주하는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다는 듯이 집요하게 메시지 화면을 쭉쭉 밀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다른 내용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제야 정신없던 손가락이 우뚝 멈춰 버렸다.
[선율 형: 왜 전화 안 받아?]
[선율 형: 얘기 좀 하자. 전화 좀 받아]
[선율 형: 강주하]
[선율 형: 너...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선율 형: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보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잔뜩 안달 난 메시지는 ‘그날’의 흔적이었다.
자진신고에서 강퇴당하고 일부러 잠수 타던 날, 선율 형이 그렇게까지 애타 본 적이 없다며 나중에 메시지 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었던가.
결국 핸드폰을 수리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당시에 개인 메시지 알림이 300+가 넘는 건 처음 봐서 무척 당황했었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했을 때도. 한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내렸다.
선율 형이 저를 간절히 찾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해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다시 봐도 여전히 애틋하기만 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형이 이상한 건가.”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매번 제가 오해하는 거라며 스스로 탓하기는 했지만, 과연 상대방이 오해하도록 행동한 사람은 문제가 없는 걸까?
주하는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없지, 당연히 없지.”
위험한 생각을 할 뻔한 자신을 거세게 후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즘 들어 계속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생각도 오락가락하는데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영 기분이 이상했다.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져 놓았다.
가볍게 샤워를 마친 주하는 젖은 머리를 문지르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뒤늦게 기지개도 켜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 맞다.”
다급히 침대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자 선율 형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해 놓고 전화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여보세요.”
—그래, 여보, 세요.
“…….”
전화 받을 때 첫인사를 바꿔야 할까? 주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매번 저렇게 놀려 대니 오해하지 않고 배겨? 로미멜과 줄로디라고 놀렸던 유저들한테도 돈을 돌려주지 말 걸 그랬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말려든 것 같으니까.
—뭐 해?
“방금 씻고 나왔어.”
—메시지는 아까 확인한 거 같던데.
“그랬나?”
모른 척 시치미를 떼자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울린다고 해야 하나? 메아리치는 소리에 주하는 핸드폰을 귀에 바짝 갔다 댔다.
“지금 어디야? 소리 울리는 거 같은데.”
—아……. 수건 놔두고 와서 잠깐 수영장에 들어왔어.
“수영장?”
—응.
“수영도 해? 헬스장 다닌다더니?”
다른 운동도 한다는 말에 주하가 경악하자 선율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운동 안 하는 강주하 군?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운동이 있답니다. 그중에서 수영은 제 취미고요, 헬스는 기본 운동이죠.
“아 예, 그러시구나.”
—너는 떨떠름하게 대답하면 안 되죠. 말만 운동해야지, 해야지 하고 손가락 운동만 하시잖아요.
“그, 렇긴 하죠?”
—근육이 손가락에만 붙어 있겠네. 얼굴 미남이 아니라 손가락 미남일 줄이야.
“둘 중 하나만 미남이면 됐죠, 뭐.”
—하하. 아…… 주하야.
어느새 수영장에서 나왔는지 울리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저를 부르는, 달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은 나긋한 음성에 주하는 불퉁하게 내밀었던 입술을 쏙 집어넣었다. 가까이 대고 있던 핸드폰도 슬쩍 떼어 냈다.
간질거리는 게 아니라 소름이 돋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해 온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작정한 거지?
“……왜?”
목소리가 살짝 떨렸던가? 티가 난 건지 선율 형이 목울대를 울리며 웃었다.
—왜 그렇게 떨어?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네.
“…….”
—별건 아니고, 즐거운 게임 라이프를 위해 네가 해야 할 게 있어.
“해야 할 거? ……그게 뭔데?”
지금도 충분히 즐거운데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또 이상한 소리를 할까 싶어 경계하는데, 의외로 상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