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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75화 (75/130)

75화

힐러인 온별이 달려오려 했지만, 이미 예측했는지 바나나가 온별에게 CC기 중 하나인 공포를 걸었다. 그러자 온별이 주변을 방황하며 제멋대로 뛰어다녔다. 다른 힐러가 재빨리 스킬을 해제해서 바로 풀려 버리긴 했지만.

주하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우선 온별에게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침묵을 걸었다. 그 상태로 다시 한번 살금을 보석 체인으로 끌고 왔다.

[일반] 살금: 하! ㅈ같네

저만 집중적으로 맞는 게 짜증 났는지 살금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리프 길드원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바나나가 피가 조금 남은 녀석을 한 방에 눕혔다.

—나이스!

—딜러 둘이 호흡 잘 맞네.

—근데 쟨 왜 욕질이야? 누군 욕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나.

—지는 안 죽을 것 같았나 보지?

—좀 더 농락하고 죽였어야 했는데.

—분이 안 풀린다.

“나머지도 잡아 보죠.”

—온별부터 죽이자!

—나나 누나 잠깐!! 앞으로 좀만 밀어 봐! 우리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주의의 간절한 외침에 바나나는 아차 했다. 막내들을 구한다고 와 놓고 전투에 정신이 팔렸다. 이게 다 카젤과 함께 손맛을 봤더니 피가 끓어오른 탓이다.

—아, 맞네.

—우리 잊지 말라구우.

—너무해…… 나나 누나.

—시끄럽다. 부활할 준비나 하고 있어.

바나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가 적 본진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잡은 건 안전 구역에 있는 온별이었다. 그러자 탱커인 천상검과 세렌디피티가 백업 가느라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적 본진이 주춤 뒤로 물러나자 드디어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동시에 부활했다.

—살아났다!

—이 자식들 다 죽었어!

—애들 힐은 스노우 너가 하고 탐 좀 하고 와. 앞에는 내가 갈 테니까.

—오케이.

멜로디의 지시에 개인주의와 일시불, Snow가 뒤로 살짝 벗어나 다시 정비했다.

그때, 갑자기 적 인원이 늘어났다. 자진신고 딜러인 키엘, 문정, 블랙체리가 합류하자 앞에서 버티고 있던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의 피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일반] 베르메르: 너희 이제 *됐다

[일반] 블랙체리: 이제부터 시작임

[일반] 문정: 어랏? 무개념 카젤이 요잉네??

[일반] 베르메르: 재수없는 ㅅㄲ

[일반] 키엘: 쟤부터 죽여

새로 합류한 자진신고 딜러들은 카젤을 발견하고 타깃을 변경했다. 주하는 상황을 파악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지구침략의 스킬이 발동했다.

<죽음의 늪>

지구침략의 반경 20m 내에 검붉은 바닥이 깔리더니 그 위에 있던 자진신고 딜러들의 이동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본진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녀석들의 공격이 아니었다. 카젤을 향한 악의와 욕설에 리프 길드원들은 제대로 자극받았다.

—쟤네 지금 뭐라고 했어?

—와, 제정신인가? 미친 거 아냐?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 새끼들이 진짜.

격양된 팀원들과 달리 주하는 오히려 차분했다.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나 예의를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을 찾을 뿐이었다.

“리밋이랑 월차 형 올 때까지 잠깐만 버티자.”

그러나 멜로디가 완강하게 거절했다.

—아니, 버틸 필요 없어. 온별부터 잡아.

“지금 우리 인원이 부족한데?”

자진신고는 죽어 있는 살금을 제외하고 여덟 명이었다. 그동안은 딜러가 두 명뿐이라 버틸 수 있었지만, 세 명이 늘어난 지금에서는 밀릴 게 뻔했다. 개인주의와 일시불, Snow가 아직 재정비를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5:8의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온별을 잡는단 말인가. 머리를 팽팽 굴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개인주의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젤 형, 우리 대장이 왜 악명 높은지 알아요?

“악명? 무슨 악명?”

—잉? 몰랐어요? 꽤 유명한데.

“컨트롤 좋은 거? 아니면 1위 공대 공대장인 거? 그게 왜 악명이야. 유명세가 따르는 거지.”

—허미, 진짜 모르나 보네. 그동안 사사게나 자게 안 보셨나. 그게…….

개인주의가 신기해하며 설명하려던 그때였다. 나긋하지만 그 안에 독을 품은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멜로디였다.

—모르면 지금부터 보면 되지.

—엄마야…….

—미친,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오랜만에 악귀 멜로디 등장하나?

“악귀…… 멜로디?”

—주하야, 일단 다른 녀석들은 무시하고 온별만 잡아. 바나나 너도 온별만 치고.

—후후후, 오케이.

주하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멜로디의 말을 착실하게 들었다.

카젤과 바나나, 그리고 멜로디가 앞으로 나서자 탱커인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가 개인 생존기를 사용하며 버텼다. 그때 온별이 사거리에 닿자 멜로디에게서 검붉은 오라가 피어올랐다.

처음 접한 모습에 깜짝 놀라 쳐다보는데,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에게서 하얀빛이 나오더니 멜로디에게 흡수되었다. 그러자 버프가 하나 생겨났다.

[죽음 정령(버프): 지구침략, 여름n모기의 공격력을 일시적으로 가져온다. 남은 시간 15초]

탱커 두 명의 공격력을 가져온 멜로디는 스탠스를 변경해 공격형 불 정령을 꺼냈다. 그러곤 온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외계인 형, 가속 깃발 꽂아.

—그래.

—주하야, 정신 차리고 딜해.

“어? 어, 어어.”

멍하니 있던 주하도 그제야 온별에게 스킬을 퍼부었다. 그런데 온별의 피가 순식간에 쭉 닳는 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빠질 리가 없는데? 눈 깜짝할세라 다급히 딜 미터기를 확인했다. 그러자 바나나와 자신을 제치고 온별에게 가한 대미지 1위를 멜로디가 차지하고 있었다.

[일반] 온별: ㅁㅊ? 머야 이거?

[일반] 베르메르: ???

[일반] 찬상검: ????

힐러는…… 모기 딜이 아니었던가?

힐러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러운 그때, 상대편 다른 힐러가 깜짝 놀라 온별에게 힐을 시전하려 했다. 그 순간 가까이에 있던 지구침략이 스턴을 걸었다.

[일반] 윤느님: ㅅㅂ 기절

[일반] 온별: 아

결국 온별은 살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작 4초도 되지 않은 그 짧은 시간에.

—다음 블랙체리.

—블랙체리, 옛설!

신이 난 바나나의 목소리에 주하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블랙체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셋이 딜을 넣자 블랙체리의 피가 순식간에 반 이상이 닳았다. 남은 힐러가 힐을 넣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다급히 뒤로 도망가려는 녀석을 보석 체인으로 끌고 오자 막타를 멜로디가 먹어 버렸다.

그제야 지구침략과 여름n모기에게서 가져온 공격 버프가 사라졌다. 하지만 멜로디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베르메르.

—다음 정거장은 베르메르, 베르메르입니다!

이번엔 바나나가 앞으로 훅 치고 달려 나갔다. 그때, 재정비를 마친 개인주의와 일시불도 합류했다.

—나나 누나 혼자 재미 보지 마!!

—나도!! 나도 죽일 거야아아!

—광역 기절 건다.

무심한 음성과 함께 적 본진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마법진에서 순식간에 나무 덩굴이 올라오더니 자진신고 녀석들의 온몸을 꽁꽁 감싸 버렸다.

발도 묶이고 기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들을 리프 딜러들이 신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멜로디가 지시한 베르메르, 두 번째는 키엘. 세 번째로 문정을 치는 동안 마법진이 사라지며 나무 덩굴도 바스러졌다. 마법진이 유지된 시간은 총 5초였다.

한 사람당 딜러 세 명과 탱커 두 명이 붙어 때리니 2초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게 딜러를 모두 죽이자 남은 건 탱커 둘과 힐러 한 명이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본 주하는 그저 눈을 깜박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남아 있는 자진신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천상검과 세렌디피티, 윤느님까지 모두 리프 길드원들의 손에 쓰러졌다.

—하, 역시 이 맛이지.

—대장이랑 함께하는 필드 쟁은 맛집이야.

—속이 뻥 뚫리네, 그냥.

—난 아직 다 안 뚫렸는데? 한 번 죽인 걸로는 만족 못 해.

—맞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진짜 가만 안 둬.

팀원들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주하는 입을 꾹 다문 채 멜로디를 응시했다. 검붉은 오라가 일렁이던 멜로디는 제 시선을 느꼈는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불 정령도 쓱 집어넣었다.

—주하가 많이 놀란 거 같은데?

—아, 맞다! 카젤아, 깜짝 놀랐어?

“……이게, 뭐예요? 선율 형은 정령사 아닌가?”

—좀 독특한 정령사지.

“독특한 정령사?”

주하가 의아해하자 멜로디가 별것 아니라는 듯 설명을 이어 갔다.

—내 스킬에는 히든 특성이 많이 붙어 있거든. 그것도, 힐보다는 딜에 집중돼 있어.

“몇, 개나 있는데?”

—여섯 개. 힐 스킬이 두 개 있고, 딜이 네 개 있어. 그중 마지막에 쓴 CC기에는 히든 특성이 두 개 붙었지.

“히든 스킬이 여섯 개? 그게 가능…… 아니, 그보다. 히든 특성이 중첩 가능하다고?”

—사람들이 왜 히든 특성을 숨기려고 하겠어. 지금 클래스별 랭킹 1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랑 비슷할걸? 우리 애들이 팀 1위 하면서도 왜 클래스 1위는 못 하는데.

—으윽, 대장님 가슴 아픈 소리를.

—더러운 히든 특성.

꿍얼대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멜로디는 계속 말했다.

—힐은 괜찮은 게 붙어서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내 딜 스킬에 붙은 히든 특성이야.

“문제? 문제가 있어?”

—스킬 네 개 중 세 개가 PVE28)에서 사용 못 하게 바뀌었거든.

“어?”

—사냥용이 아니라, 싸움용이야.

스킬이 좋아지는 대신 제한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까 온별을 잡을 때 힐러면서도 딜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 거였다. 주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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