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3.2패치가 나오기 하루 전날.
팀원들과 던전을 돌고 있던 주하는 벌꿀오소리에게 재미난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ㅋㅋㅋ 나 오늘 길드 나옴
[귓속말] 카젤: 오.. 드디어?
[귓속말] 벌꿀오소리: 원래는 카젤님 나간 날 한바탕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괘씸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오늘까지 꾹 참고 방금 터트리고 나옴ㅋㅋㅋㅋㅋㅋ
[귓속말] 카젤: 진짜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ㅇ 파찾 열어 봐요 재밌는 거 볼 수 있을걸?
주하는 당장 파티 찾기 창을 열었다. 던전이나 레이드 고정팀을 모으는 홍보 글이 가득한 가운데, 최상단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자진신고 ★전섭 2위★ 고정 팀에서 극딜러 마법사 1분 모십니다. (개인 랭킹 30위↑ / 영던 풀템 20강↑ / 요리사 환영) 작성자: 천상검]
바로 내일 10인 토벌전이 나오는데 랭킹 30위 안에 있는 마법사를, 그것도 영던 풀템 20강에 요리사인 유저를 구한다니. 사람을 구하겠다는 건지, 구하지 않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홍보 글이었다.
그 와중에 전섭 2위인 걸 자랑하듯 내걸고 있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 사람 구하려는 글 맞음;?
[귓속말] 벌꿀오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30위 안에 있는 마법사 랭커 중에 요리사는 나밖에 없음ㅋㅋㅋㅋ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천상검이 질질 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카젤님이랑 같이 레이드 못 하겠다고 했다면서요ㅋㅋㅋ 나도 똑같이 해줬지롱ㅋㅋ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어보기에 다 알려 줬더니 벌꿀오소리는 제가 당한 그대로 천상검에게 돌려준 듯했다. 저 때문에 화난 것도 있었지만, 그동안 귀찮게 달라붙었던 게 어지간히도 싫었는지 제대로 한 방 먹이고 나온 것이다.
그나마 토벌전 레이드는 순위가 매겨지지 않아서 그들에겐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저를 쉽게 내칠 수 있었던 이유는 벌꿀오소리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문 기술도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귓속말] 카젤: 잘 나왔어요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ㅇ 겁나 붙잡는 거 단칼에 쳐 냄
[귓속말] 카젤: 어떻게?
[귓속말] 벌꿀오소리: 내가 카젤님 어떻게 나간 건지 꼬치꼬치 캐물었거든? 이때 나도 카젤님 살짝 뒷다마함ㅋㅋㅋ 그래야 실토할 것 같아서. 이건 미안요;;
[귓속말] 카젤: ㄱㅊ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ㅇ 아무튼 그러니까 진짜로 말해 주대? 처음부터 내보낼 생각이었다고. 언제부터 계획했는지까지 싹 읊는데 진짜 욕 튀어 나갈 뻔-_-
[귓속말] 카젤: 오호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렇게 내쫓았는데 바로 리프 길드 갈 줄은 몰랐다며 또 열심히 씹어 대길래 내가 그때부터 본성을 드러냈지!
[귓속말] 카젤: 벌꿀님 본성을? 와... 천상검이 살짝 불쌍해지...
[귓속말] 벌꿀오소리: 뭐?!
[귓속말] 카젤: ㅋㅋㅋ;; ㅈㅅ 실언이었음. 그래서?
[귓속말] 벌꿀오소리: ㅡㅡ+ 암튼 그래서 뼈까지 살살 발라 먹을 정도로 몰아쳤지. 그딴 식으로 사람 내쫓는 거 듣도 보도 못 했다고, 그리고 나도 공대 많이 다녀봤지만, 공대원이 제안하는 공략법을 공대장이 가로채려는 건 첨 본다고. 본인이 눈치 없어서 기믹도 제대로 못 보면서 욕심만 많다고 했지. 대답도 못 하던데?
[귓속말] 카젤: 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리고 리프 길드랑 싸운 일도 쪽팔려서 죽을 뻔했다고 말했음ㅋㅋㅋ 그때 님이랑 나랑 지역 창에 글도 못 썼잖아
[귓속말] 카젤: 부끄러워서 어디다 하소연도 못 했죠.... 후....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래 놓고 편 안 들었다고 ㅈㄹ하면 어쩌라는 건데 ㅋㅋㅋ 게다가 카젤님한테만 그런 것도 웃겨. 뭐라는 줄 앎? 내가 여자라서 이해해 줬다고 하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음 여리니까 싸우기 싫어하는 거 안다곸ㅋㅋㅋㅋㅋ
[귓속말] 카젤: 헐? 파이트 넘치는 분한테 그런 망발을?;; 아이디만 봐도 딱 알지 않나?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러니까! 어디서 별 그지 같은 것만 배워와서는 여자니까<< 이 말만 해 대는데. 진심 PK 신청할 뻔
[귓속말] 카젤: 평소에도 그랬어요? 길드 창에선 그런 거 못 봤는데?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ㅇ 예전부터 파티 말이나 귓말로 계속 그랬는데 무시했지ㅋ 저건 아메바다, 아메바. 이러면서 셀프 최면 검ㅋㅋㅋㅋㅋ
[귓속말] 카젤: ㅡㅡ 미련한 걸로 따지면 님도 나 못지않네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 싹 다 쏟아 내고 ㅂㅂㅇ하려는데 가면 안 된다고 미친 듯이 붙잡더라... 자기가 잘하겠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지금까지 지낸 정을 봐서라도 봐 달라고 하던데ㅋㅋㅋ
[귓속말] 카젤: ;;;
[귓속말] 벌꿀오소리: 응 지금까지 지낸 정 때문에 가차 없이 버렸지. ㅆㄹㄱ랑은 상종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으니까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거침없다고 해야 할지.
벌꿀오소리가 보여 주는 사이다에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너무 만만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저 누군가와 문제가 생기는 게 싫어서 피했을 뿐이었는데.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 맞다! 님한테 줄 선물 있음
[귓속말] 카젤: ㅇㅇ? 무슨 선물?
[귓속말] 벌꿀오소리: 방금 우편으로 보냈으니까 나중에 확인 ㄱㄱ
주하는 던전 하나를 후다닥 완료하고 곧바로 대도시로 향했다. 우편이 여러 개 들어왔다는 알람을 확인하며 우체통을 여는데,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허……?”
벌꿀오소리가 우체통을 꽉 채울 정도로 보낸 것들은 풀과 광석, 그리고 목재를 비롯한 각종 채집물들이었다. 제가 자진신고 길드에 두고 왔던 그 재료가 맞았다.
[귓속말] 카젤: 헐??? 이걸 다 갖고 나옴?
[귓속말] 벌꿀오소리: ㅇㅇ 님이 다 캔 거잖음ㅋㅋㅋ
[귓속말] 카젤: ㄷㄷㄷ 뭐라고 안 해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뭘 뭐라고 해ㅋㅋㅋㅋ 지들이 채집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나도 요리 재료 받았던 것들 싹 놔두고 나옴
그동안 열심히 모았던 재료들이 다시 제게로 돌아올 줄은 몰라서 주하는 멍하니 우편물만 바라보았다. 지금은 시세가 더 뛰어서 70만 골드는 족히 될 것이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팔아서 아이템 강화하든가, 아니면 리프 길드 사람들한테 주든가 해요. 그러고 보니 그쪽 팀 사람들은 어떰?
[귓속말] 카젤: 여기... 사람들 실력 좋아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ㅋㅋㅋㅋ 아닠ㅋㅋ 실력 좋은 건 이미 알고 있다고! 잘 지내는 건지 묻는 거잖아요 --^ 정신 안 차림?
[귓속말] 카젤: ㅈㅅ;;;; 엄청 잘 지냄. 다들 잘해 줘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됐다 그럼ㅋㅋ
벌꿀오소리는 여전했다. 항상 당당하고 뒤끝 없는 평소 모습 그대로.
자진신고에 들어간 게 마냥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벌꿀오소리와 친해진 것 하나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레이드도 레이드지만 역시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귓속말] 카젤: 그러고 보니 벌꿀님 갈 길드는 어디예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듣고 웃지 마셈;
[귓속말] 카젤: ㅇㅇ?
[귓속말] 벌꿀오소리: ......별똥 길드임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제길;; 웃지 말라니까;;
주하는 저도 모르게 현실에서까지 미친 듯이 웃어댔다.
별똥 길드. 지난 시즌 전섭 4위를 한 길드로 컨트롤도 좋고 사람들이 재미있기로 유명한데, 그에 걸맞게 길드 명도 상당히 독특했다. 아니, 독특하다 못해 굳이 저렇게 지었어야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길드 풀네임은, ‘응꼬에 마요네즈 뚜껑 끼웠다’였다. 그래서 별명이 별똥이었다. 그 별똥이 어떤 별똥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길드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웃거나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랭커 길드에 가서 다행이긴 한데…… 하필 별똥 길드라니.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네ㅋㅋ 벌꿀님이 별똥 길드에? 정말로? ㄹㅇ?
[귓속말] 벌꿀오소리: -_-...... 길드 명만 그렇지 사람들은 괜찮음;
[귓속말] 카젤: ㅋㅋ 암요 암요 잘 알죠ㅋㅋ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ㅡㅡ; 그만 좀 웃지?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죄송ㅋㅋㅋ 근데 그건 좀 무리한 부탁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아오씨ㅋㅋㅋ 여기 두 자리가 났어야 했는데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카젤: ;;;;;;
벌꿀오소리의 섬뜩한 말에 주하는 조용히 웃음을 갈무리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선율 형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귓속말] 벌꿀오소리: 암튼 여기도 퍼클 노리고 있으니까 뒤통수 조심하셈ㅋㅋㅋ
[귓속말] 카젤: ㅋㅋ ㅇㅋㅇㅋ
[귓속말] 벌꿀오소리: 그럼 평판작이나 하러 가 보겠음ㅋㅋ 별똥에서 부르네--;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 수고해요
[귓속말] 벌꿀오소리: ㅅㄱ;;
어쨌든 걱정하던 벌꿀오소리도 길드에 들어갔고, 채집물도 돌아왔으니 완벽한 마무리가 된 셈이었다. 주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편물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길드] 개인주의: 카젤 형 대체 뭔 일이길래 그렇게 웃었어요?ㅋㅋㅋㅋㅋㅋ 나도 좀 같이 알자!
[길드] 바나나: 맞아ㅋㅋㅋ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웃어 대더만ㅋㅋ
주하는 그제야 마이크를 켜 둔 채로 신나게 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쉬는 타임이라 다들 자리에 없을 줄 알았는데, 다 듣고 있었구나. 살짝 민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