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불타는 천사의 로브(정령사)
체력: 80 / 지능: 250
능력치 2개 랜덤 부여
획득/포기>
<불타는 루비의 로브(보석술사)
체력: 100 / 지능: 230
능력치 2개 랜덤 부여
획득/포기>
—아니, 저 듀오 것만 나오기 있나!
—어떻게 멜로디랑 카젤 님 아이템이 딱 맞춰서 나오네.
—카젤 님, 첫 득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아이템 중 무기를 제외하고 가장 좋은 부위는 가슴이었다. 딜량 상승이 눈에 보이는 방어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첫 공략에 로브를 먹다니 운이 좋았다. 주하는 오랜만에 바꾸는 로브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던전 끝나면 바로 강화부터 해야겠다.’
주하는 보석술사 로브를 입찰하고, 정령사 로브는 포기를 눌렀다. 가방에 아이템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음 상자도 열었다.
이번 부위는 하의였다. 혹시나 또 제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암살자와 성기사 전용 아이템이 나왔다. 파티원들의 클래스가 아닌 다른 클래스의 아이템이었다. 던전 아이템은 획득 시 귀속이라 거래도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분해해야 했다.
‘그런데, 잠깐…… 암살자?’
암살자 하니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주하는 친구 창을 열었다. 온라인으로 되어 있는 친구 중, 암살자는 단 한 명이었다. 리프 길드의 막내, 예의 있는 비글. 개인주의였다.
‘하필 암살자 아이템이 여기서 나왔네.’
분명 리프 길드에서 개인주의를 골리기 위해 아이템을 링크했을 것이다. 아니, 이 전에도 아이템이 나오는 족족 올리면서 놀렸을지도 모르겠다. 주하는 리프 길드에서 무슨 말을 하며 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분명 개인주의는 격하게 반응하겠지. 보지 않아도 알아서 상상돼서 웃음이 나왔다.
톡 건드리면 와다다다 쏟아 내는 개인주의의 반응을 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위로가 먼저겠지? 문득 핵무새들 일로 걱정하던 개인주의가 떠올라 주하는 다정을 한 스푼 담아 귓속말했다.
[귓속말] 카젤: 토닥토닥
[귓속말] 개인주의: 크! 역시 카젤 형밖에 없다!!! ㅠㅠㅠㅠ 길드 형과 누나들은 놀리기에만 바쁜데!
[귓속말] 카젤: ㅋ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개인주의: 물론 우리도 놀리기는 했지만... 후후후
[귓속말] 카젤: 서로 놀리는데 진심인 거 같음 ㅋㅋㅋ
[귓속말] 개인주의: 이곳은 야생입니다 야생! 사실 지금 길드원들이 카젤 형 앞에선 그나마 자제하는 거예요ㅋㅋㅋ 길드에서는 아주 피라냐들임!
[귓속말] 카젤: 개주 님한테도 동류의 냄새가 나는데요?
[귓속말] 개인주의: 에헷 :9 들켰나? 놀리는 건 못 참죠ㅋㅋㅋ 그나저나 내가 카젤 형 파티 가고 싶었는데ㅠㅠ 아쉽
[귓속말] 카젤: 다음에 같이 가면 되죠
[귓속말] 개인주의: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귓속말] 카젤: ㅇㅇ
신이 난 개인주의를 보며 주하는 픽 웃고 말았다. 역시 비글다운 활발함이었다.
—자! 그럼 일단 던전은 끝났고. 딜 내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실수니까 카젤 대신 내가 돈 줄게.
지금껏 조용히 있던 멜로디가 딜 내기 이야기에 그제야 나타났다. 딜 순위를 보면 1위가 바나나, 2위가 리미티드, 3위가 카젤이었는데, 죽기 직전까지 1위를 유지했던 사람이 꼴찌가 되자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았다.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대신 골드를 내준다는 거라니. 멜로디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주하는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멜로디를 말렸다.
“됐네요. 뭘 대신 내?”
—내가 안 움직였으면 1등 했을 거 아냐.
“해골 징표가 전이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어. 후반은 첫 트라이였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럼 그냥 나 죽이고 리트했어야지
“다 잡은 걸 굳이?”
—그래, 굳이 그랬어야 했어.
“몸이 먼저 반응한 걸 어째.”
—내가 주웠다고 해서 정말 동물인 줄 착각하는 거야? 본능 정도는 이성으로 막았어야지.
주하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억지 부리는 게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심통 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여기서 본능이랑 이성이 무슨 상관이야. 기믹 잘 처리하고 혼나 보기는 또 처음이네.
“그래,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내 잘못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됐지?”
—…….
“어허, 노려봐도 안 돼.”
—카젤…… 너 진짜.
인상 잔뜩 찌푸리고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아서 찍었는데 정말이었나 보다. 그는 평소와 달리 억눌린 목소리로 저를 불렀다. 이런, 너무 애완동물 대하듯 말했나?
—푸하하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역대급이야, 역대급!
—선율이 저런 모습 처음 보네.
—그러게요. 대장님의 의외의 모습.
‘……뭔가 멜로디 저격 담당이 된 것 같지?’
주하는 파티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단 한 번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꾸만 멜로디를 골리게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골드는 네가 낼 필요 없어.
“됐습니다. 딜러 내기에 왜 힐러님이 손을 얹으시나요.”
—내가 승패에 관여했으니까 당연히 내 지분도 있지.
“선택은 내가 했다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싫어.
“황소세요? 고집이 남다르시네.”
서로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계속해서 실랑이가 이어졌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지지부진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지켜보고 있던 바나나가 툭 튀어나왔다.
—사랑싸움 그만하시고, 내기는 없던 일로 합시다. 어차피 승률이 다 동일하니까 마지막 보스 하나로 결판 내기엔 애매하잖아? 마지막 보스는 없는 걸로 치고 무승부로 끝냅시다.
“네? 그래도 그건 좀…….”
—1등은 접니다. 승리자의 말을 들으시죠.
—하긴, 다들 7승씩 가져갔지? 마지막 보스 제외하면 무승부긴 하네.
—응, 그러니까 다 같이 골드 먹고 쉬자! 팀 내기에서 이겼으면 됐지, 뭐. 무엇보다 저번 내기에서 지고 막내들한테 겁나 놀림당했었는데, 오늘 그 한을 풀었으니 목표는 달성했어.
—골드도 복구했죠.
—그럼, 그럼. 아주 만족스러워.
바나나의 쿨한 결정에 주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22만 골드를 포기한 그 배포는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래도 정말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건가? 적응할 수 없는 분위기에 눈만 깜박이고 있자니 한결 부드러워진 멜로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는데? 우리 사랑싸움 끝난 거야?
“……그 앞에 사랑은 좀 빼자.”
—대주주님께서 사랑싸움이라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해야지. 마음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아차, 죄송합니다. 사랑싸움 끝났습니다. 대주주님.”
—오냐. 앞으로 싸우지 말고 이쁜 사랑 하도록 하려무나.
바나나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주하를 포함한 파티원 전원이 웃어 버렸다. 하여튼 다들 놀리는 데 진심이라니까.
—어우,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할까? 야식 먹고 외계인이랑 남은 악탑 좀 돌아야겠다.
—우리 악탑 또 해?
—두 번 남았잖아.
—마지막 날에 하지, 왜.
—숙제 남겨 둔 것 같아서 찝찝해. 후딱 끝내고 남은 시간은 평판작이랑 업적이나 하자.
—그래, 그럼.
—아, 맞다. 카젤 님, 우리랑 계속 같이 도는 거죠? 한 번 오고 마는 거 아니죠?
“네, 한동안 같이 할 거예요. 팀원 한 분이 몇 주 못 오신다면서요. 그때까지는 할게요.”
—음? 아…… 그으래요? 멜로디가 다…… 말했구나? 그러고 보니 얼마나 못 온다고 했더라?
“한 3주 정도였던 거 같은데요.”
—아하? 흐음, 그렇군.
“왜요? 더 빨리 오신대요?”
—아뇨! 그게 아니라, ……흐흣. 큼, 그게…… 잊고 있었거든요. 으음, 제가 자주 깜박깜박해요.
바나나는 중간중간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뜻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새어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뭐 좀 보느라. 죄송해요. 웃는 걸 워낙 못 참아서.
“괜찮아요.”
—후후, 감사.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쉬세요!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시끄러웠던 파티는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마이크도 꺼 둔 걸 보니 제대로 쉬고 올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야식 먹는다고 했던가? 저녁을 걸렀더니 야식 소리에 조금 출출해졌다.
시간을 보니 10:00pm이었다. 뭘 시켜 먹을까 고민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아이템 수리도 하고 가방 정리도 하면서 핸드폰을 켰다. 배달 앱에 들어가 이것저것 살피고 있는데, 멜로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해?
“응? 쉬러 간 거 아니었어?”
—마을 와서 정리 중이야.
“나도 정리 중. 출출해서 뭐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뭘 먹지?”
—저녁 안 먹었어?
“응, 아까 던전 도느라. 별로 생각도 없었고.”
—바나나는 치킨 시켰다던데 너도 먹어.
“음…… 혼자 다 먹을 자신이 없어.”
—그럼 샌드위치나 햄버거?
“햄버거 콜. 맥주랑 먹어야겠다.”
오랜만에 같이 먹으면 딱 맞겠다. 주하는 만족스러운 메뉴 선택에 입매를 끌어 올렸다.
수제 햄버거집 베스트 메뉴로 주문을 마치고 맥주를 꺼내 와 자리에 앉았다. 한 캔 먼저 마실까 해서 캔 뚜껑을 따자 시원한 소리가 울렸다. 가볍게 한 모금 마시자 시원하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카젤.
“응?”
—이제 영던도 같이 가야 하니까 연락처 알려 줘.
“연락처……? 어차피 난 맨날 들어와 있을 건데?”
—그래도 팀인데 연락할 수단은 있어야지. 게다가 나랑 악탑 듀오기도 하잖아. 일 생겨서 급하게 밖에 나갔다가 연락 안 되면 어떡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음…….”
주하가 고민하는 듯 보이자 멜로디가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전과가 있네?
“그건…… 이제 그만 잊어 주지 않을래?”
—못 잊어. 그러니까 연락처 줘.
“너무 단호하시네. 오픈 채팅방 써도 되지 않아?”
—아니, 전화번호.
“저기요?”
—전화번호 좀 주시죠, 카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