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파티] 바나나: 그니까요! 그 운이 카젤님이잖아요! +_+ 막내즈도 덕분에 내기에서 이기고... 보문... 보문이 우리의 뒤통수를... 후....
[파티] 카젤: 영웅 던전에서는 보문 못 써요ㅋㅋ 전 내기에서 이길 거라는 장담 못 함;
[파티] 바나나: 보문이 아니라도 카젤님께는 승리의 오라가 있으심ㅋㅋㅋ 이 파티 들어오겠다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아세요?
[파티] 카젤: 네?
[파티] 지구침략: 치열하게 주사위를 굴렸죠 ^^
[파티] 지구침략: 얌전히 있던 리밋이가 먼저 주사위 굴릴 정도였어요ㅎㅎㅎ
[파티] 리미티드: ㅋㅋ
[파티] 바나나: 자! 그렇게 됐으니 저희와 함께 내기하시죠! 이번에도 돈은 안 내셔도 됩니다! 그때처럼 진지하게 달려 주시기만 하면 돼욧!
승리의 오라가 보인다는 바나나의 말은 바꿔 말하면 어떻게 해서든 이번엔 이기겠다는 강력한 다짐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승리를 갈망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역시 1위 레이드 팀답다고 해야 하나. 주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파티] 카젤: 가보죠ㅋㅋ 그리고 골드는 같이 내는 걸로 해요. 저번에 짭짤하게 벌어서 여유롭습니다 ^^
[파티] 지구침략: ...ㅠㅠㅠㅠㅠㅠ
[파티] 바나나: ㅠㅠㅠㅠㅠ 아놔... 시작 전부터 파티원 기죽이기 있으심?
[파티] 리미티드: ......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 ㅈㅅ
주하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팀원들을 겨우겨우 달래고 가방과 장비 내구도를 확인했다. 가방은 여유롭고, 도핑류도 꽉 채워져 있고, 내구도도 100%다. 마을로 돌아오면 바로 정리하는 게 습관이라 이대로 출발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어느 던전부터 가려나? 다들 영웅 던전 다섯 개를 모두 열어 놔서 선택지는 무궁무진했다. 은근히 기대하며 채팅창을 지켜보고 있는데, 드디어 멜로디가 목적지를 결정했다.
[파티] 멜로디: 하늘 정원부터 갈 테니까 던전 앞으로 모여
[파티] 지구침략: ㅇㅇ
[파티] 바나나: ㅇㅋ
하늘 정원이라니……. 지금껏 계속 실패했던 던전이 첫 던전으로 잡혔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제가 지금까지 하늘 정원에 있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어쩜 저리 자비도 없는지.
주하는 불만스럽게 멜로디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차피 가야 하는 던전이니까 좋게 생각하지 뭐. 그렇게 다짐했을 때였다.
[파티] 멜로디: 그리고 다들 보챗 들어와
[파티] 멜로디: 카젤은 <링크:주소> 이리 들어오고
[파티] 지구침략: ㅇㅇ
[파티] 리미티드: 네
[파티] 바나나: ㅇㅇ 말로 하는 게 빠르긴 하지
보이스 채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어차피 한동안 같이 던전을 돌게 될 거라서 주하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보이스 채팅을 열었다. 멜로디가 링크 걸어 준 주소로 접속하자 리프 공대 전용 채팅방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총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하나는 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고, 두 개는 다섯 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열 명 제한이 있는 곳은 텅 비어 있고, 다섯 명씩 나누어져 있는 곳 중 하나는 개인주의가 속한 팀이 사용하고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눠서 하다 보니 따로 방을 판 것 같았다.
주하는 한 자리가 남아 있는 멜로디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곧바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카젤 님!
—어서 오세요.
한 명은 발랄한 목소리의 여성이었고, 한 명은 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대화 아이콘을 보니 반짝이는 사람은 바나나와 지구침략이었다. 리미티드는 과묵하다고 하더니 음성에서도 조용한가 보다.
“네, 안녕하세요.”
—우와, 카젤 님 목소리다.
—왔어?
감탄하는 바나나의 목소리 뒤로 나긋나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굳이 대화 아이콘을 보지 않아도 말을 놓은 걸 보니 멜로디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뭐랄까……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조금 놀라 버렸다.
다정다정 열매를 먹은 건지 부드럽고 차분한 음성이 그간 봐 왔던 멜로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묘하게 간지러운 느낌이라 괜히 한번 귀를 문질러 보게 된다.
—내 말 안 들리나?
—들려! 난 카젤 님이 왜 조용한지 알고 있다. 나도 처음에 그랬거든. 이놈이 저놈이 맞나 의심스러울 것이다. 으하하!
바나나에게 속마음을 들킨 주하는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정말 멜로디가 ‘멜로디’ 했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뜻이다.
“……들려.”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싶었지만, 의외로 충격이 컸던지 제가 생각해도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러자 멜로디가 목울대를 울리며 낮게 웃었다. 이마저도 귀를 강타할 정도로 달달하게 느껴졌다.
—어색해?
“……조금 충격적이긴 하네.”
—대체 날 어떻게 봤길래 그래? 나 꽤 다정하지 않았나?
—뭔 헛소리래? 다정이 다 죽었냐? 목소리로 사기 치지 마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바나나가 해 줘서 다행이었다. 정말로 이놈이 저놈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니까. 목소리만 들으면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살랑거리는데, 이게 ‘그’ 멜로디라니. 이렇게 목소리랑 매치하기도 어려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카젤 님. 쟤 저런 목소리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하니까 미리 알아 두세요. 나중에 또 충격받지 마시고.
“그래요? 왠지 더 불안하네요.”
—그나마 내숭은 안 떨어서 금방 적응할 거예요.
시원하게 웃으며 말하는 바나나 덕분에 그나마 어색했던 기분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그 말대로 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답일 것 같았다.
—흉 다 봤어? 입만 움직이지 말고 손도 움직여.
—이미 마을이네요! 가방 정리 좀 하고 감.
그런데…… 멜로디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져서 주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목소리는 흔하지 않은 거 같은데, 어디서 들었더라?
—카젤, 준비 다 했어?
“어? ……어. 난 바로 출발해도 돼.”
—그럼 이동하자.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를 떠올리려 생각에 잠겨 있던 주하는 멜로디의 부름에 현실로 끌려왔다. 덕분에 흐릿하게 보였던 잔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던 기억의 끈은 그렇게나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주하는 허탈하게 웃다가 카젤의 옆에 있는 멜로디를 보았다. 아무렴 어떤가.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목소리였을 수도 있고, 제 기억이 잘못된 걸 수도 있으니. 분명한 건 지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해 낸다고 해도 지금과 달라질 건 없었다.
멜로디는 이동하자는 말과 함께 포탈을 사용했는지 흐릿해져 갔다. 그런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자 시전이 끝날 때쯤 그가 포탈을 취소했다. 가만히 있는 제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주하는 저를 쳐다보는 멜로디를 보며 픽 웃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포탈을 사용하자 지켜보던 멜로디가 잘게 웃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건데?
“내가 먼저 포탈 타려고?”
—의외로 귀여운 짓을 잘한단 말이야.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음성이었지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주하는 어깨를 감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 뭐?
“누가 뭘 해? 무슨 짓?”
—으악! 너 그런 말 하지 마! 으윽! 소름.
—형도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뭐 하는 짓이에요?
그동안 조용히 있던 지구침략과 리미티드까지 나타났다. 기겁하는 걸 보니 도저히 참아 줄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저만 할까.
“미쳤어?”
—네가 계속 날 자극하잖아.
“그럼 차라리 화를 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글쎄……. 싫어하니까 더 하고 싶어지네.
—내 귀 어떻게 해. 어흐흑. 카젤 님, 저 미친놈한테 떡밥 뿌리면 안 돼요. 차라리 당하는 게 나아!
절규하는 바나나의 외침에 주하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 버렸다. 미친 짓을 한 건 멜로딘데 왜 제가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저 녀석은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건가? 하필 저런 나긋한 목소리로 귀엽다 어쩐다 하니까 진짜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파티원들은 모두 멘탈이 갈려 있는데, 저 혼자 즐거운지 멜로디는 가볍게 웃고는 공대장 모드로 돌아갔다.
—다 놀았으면 이제 출발하지?
“……아무리 봐도 파티원 기죽이는 건 저보다 더 심해 보이네요.”
—죄송합니다아…….
—죄송해요, 카젤 님.
바나나와 지구침략은 우울한 목소리로 멜로디를 대신해서 사과를 건넸다.
그렇게 길드 마스터를 관리하지 못한 길드원들은 한참 동안 죄인이 되어 사과봇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멜로디만이 홀로 즐겁게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를 뽐냈다.
안타까운 동상이몽은 첫 번째 보스 몹을 만날 때까지 쭉 이어졌다.
***
“회오리 1시, 5시, 11시. 다 피해야 해요.”
—오케이.
하늘 정원 첫 번째 보스와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탱커인 지구침략이 보스를 끌고 12시 방향으로 쭉 달리자 파티원들은 멜로디를 중심으로 좌우로 넓게 퍼졌다.
첫 번째 기믹은 가장자리에서부터 다가오는 회오리였다. 닿으면 도트 디버프가 걸리고, 여러 번 닿을수록 대미지가 중첩되는 기믹.
하지만 멜로디를 포함한 파티원 전원은 회오리에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다가오는 방향과 속도를 미리 확인하고 적절할 때 몸을 피하니 딜이나 힐, 탱킹에 로스가 생기지도 않았다.
—저 회오리 외곽에서 튕겨서 다시 온다. 7시, 3시에서도 새로 생성됐어.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빠르진 않네.
—이제 회오리는 각자 알아서 보자. 오더할 것도 없는 것 같아.
“알겠어요.”
—곧 탱버 온다.
다들 기본적인 공략은 숙지하고 왔는지 알아서 척척 진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주하는 오랜만에 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스탠스를 변경하며 스킬을 사용하는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