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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34화 (34/130)

34화

멜로디는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내 버렸다.

유저들은 랭커 담당자가 정말로 존재했냐면서 신기해하거나 부러워했다. 자신들이 신고하거나 문의를 할 땐 세월아 네월아인데, 어쩜 저리 빨리 확인하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래서 랭커 해야 한다는 둥, 이번엔 진심으로 순위권 안을 노려보겠다는 둥, 부가적으로 유저들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때, 주하는 멍하니 멜로디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저를 신경 써 줄 줄은 몰라서 얼떨떨하기만 했다. 한순간에 핵 사용이 의심되는 유저에서 무고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한마디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남아 있을 의심까지 모두 제거해 주다니. 주하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괜스레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녀석들은 어느새 접속을 종료했고, 멜로디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무심히 훑고는 카젤에게 다가갔다.

[파티] 멜로디: 바보냐?

[파티] 카젤: ...어?

[파티] 멜로디: 왜 그냥 당하고 있어?

[파티] 카젤: 당하다니? 히든 특성이라고 말했는데?

[파티] 멜로디: 녀석들이 억지 부리는 거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잖아

[파티] 카젤: 그거야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거지

[파티] 멜로디: 설마 스킬 공개할 생각까지 했어?

“……뭐야. 얘 왜 이래?”

화난 사람처럼 달려드는 멜로디를 보며 주하는 주춤했다. 대체 뭐에 기분이 상한 건지 아주 전투적이었다. 그가 위험할 때 자기가 도와주고, 또 자신이 어려울 때 그가 나서줬다는 고마움이 떨떠름하게 변색되는 순간이었다.

[파티] 멜로디: 그만 좀 굴러. 뭐가 좋다고 그렇게 구르고 있어? 아주 여기저기서 당하고 있네

[파티] 카젤: 뭔 소리야?

[파티] 멜로디: 하...

[파티] 멜로디: 너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어?

[파티] 카젤: 무슨 말?

[파티] 멜로디: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말하라는 거

[파티] 카젤: 그게 왜?

주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멜로디가 하는 말들이 암호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구른다는 건 뭐고, 여기저기서 당한다는 것도 그렇고, 무슨 일 생기면 말하라는 것까지. 대체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멜로디는 제 반응을 보더니 한참 침묵했다. 그러다 기운이 한풀 꺾였는지 흐릿하게 말했다.

[파티] 멜로디: ......잊지 마라. 알겠어?

[파티] 카젤: 일단은 알겠는데... 설명은 안 해 주냐?

[파티] 멜로디: 아직 확신할 수 없어서 지금은 좀

[파티] 카젤: ......

[파티] 멜로디: 내가 더 짜증 나는 건, 예상했던 일들이 하나씩 다 들어맞고 있다는 거야. 그게 기분 좋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짜증 나

[파티] 멜로디: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싶기도 한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욕먹을 것 같아서 그렇겐 못 하겠고

[파티] 멜로디: ㅈㄴ 답답하다 진짜 ^^

멜로디는 답지 않게 한참 투덜대더니 이내 됐다며 손을 저었다. 답답한 건 저도 마찬가지라 팔짱을 낀 채 모니터 너머에 있는 멜로디를 노려보았다.

뭔가 미묘하게 가닥이 잡힐 것도 같은데……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멜로디의 행동이 분명 저와 연관이 있을 텐데 말이지.

주하는 자신의 팔죽지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하다가 저를 부르는 멜로디를 보았다. 왜? 하고 물으니 그는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평소처럼 툭 던졌다.

[파티] 멜로디: 영웅 던전 갈래?

조금 혹하긴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파티] 카젤: 아니

[파티] 카젤: 영웅 던전부터는 레이드 팀원들이랑 맞추면서 하려고

[파티] 멜로디: ...그래?

[파티] 카젤: ㅇㅇ 아마 어제 다들 영웅 던전 열었을 거야. 오늘이나 내일쯤엔 가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말하자 멜로디는 별다른 반응 없이 알겠다고만 답했다. 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물어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흘려 버리기만 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어서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뭐든 시간이 답이니까 기다리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멜로디는 노가다에 질렸는지, 업적이나 하러 가자며 제안했다. 오늘까지 평판 작업을 하면 한 단계 오를 수 있었던 주하는 싫다며 반항했지만, 멜로디가 꺼낸 노예 계약서에 입도 벙긋 못 하고 좌절했다. 잊고 있던 그 날이 불현듯 떠올라서 전투력이 급감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멜로디에게 끌려다니며 지역 이곳저곳을 활보했다. 업적 작업을 하는 동안 주하는 뚱해 있었지만, 내실 50% 달성 안내가 떠오르자 갑작스럽게 생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직관하던 멜로디는 어이없어하며 한마디 했다.

[파티] 멜로디: 밸도 없을 줄이야

물론 주하에게 타격감은 일절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내실 달성에 뿌듯해할 뿐이었다.

어깨에 달린 붉은 망토가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듯 신나게 펄럭거렸다.

***

<라세아 잉어를 획득하였습니다.>

<낚시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358/400>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깊숙한 곳. 맵 가장자리에 있는 넓은 호숫가에서 카젤이 열심히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낚시 의자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물 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찌가 흔들리더니 물속으로 쏙 들어간다. 그때가 물고기를 잡는 타이밍이었다.

온종일 붙어 있다시피 했던 멜로디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두 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동안 주하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던 낚시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요리 재료를 구하려면 낚시는 필수였기에 미끼를 넉넉히 사서 조용한 곳에 둥지를 틀었다.

멍하니 흔들리는 찌만 클릭하기를 여러 번. 편안하게 여유를 느끼고 있는데, 개인주의에게서 귓속말이 들어왔다.

[귓속말] 개인주의: 형!! 일 있었다면서요!

[귓속말] 개인주의: 어떤 ㅁㅊ넘들이 우리 카젤 형을 개롭혔냐! ㅠ

[귓속말] 개인주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ㅠㅠㅠㅠ

[귓속말] 개인주의: 그 자식들 어디 있어요? 우리 대장님이 혼내 준 건 혼내 준 거고! 아직 내 몫은 남아 있는데!

[귓속말] 개인주의: 곧 영정당할 놈들이긴 하지만 그 전에 나한테도 좀 맞아야겠어요!!

[귓속말] 개인주의: 형?

[귓속말] 개인주의: 카젤 형? ㅇㅅㅇ??

[귓속말] 개인주의: 옴뇸뇸뇸뇸뇸

[귓속말] 개인주의: 우리 형이 어디 갔을까아~

미친 듯이 쏟아지는 귓속말에 주하는 조용히 자리 비움으로 설정해 놓았다. 지금 개인주의를 상대하면 멜로디가 올 때까지 붙잡혀 있을 것만 같았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이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귓속말] 개인주의: 앗! 자리 비움 떴네...

[귓속말] 개인주의: 우리 대장님도 자리 비웠던데...

[귓속말] 개인주의: 역시 잘 어울리는 듀오! ㅇ.<

[귓속말] 개인주의: 자리 비움까지 함께 하시는군요! 후후

함께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자유가 된 건데. 개인주의의 오해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정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자리 비운 사람한테 계속해서 귓속말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시간이 지나면 채팅창이 밀려 올라가 내용이 사라지게 될 텐데. 혹시……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주하는 낚시를 멈추고 개인주의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샤하스모르 지역에 있었다.

[귓속말] 개인주의: 저 평판작 하고 있을 테니까

[귓속말] 개인주의: 돌아와서 심심하면 찾아 주세용!

[귓속말] 개인주의: 뿅!

개인주의는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잠깐 사이 기가 빨린 주하는 의자에 반쯤 기대 누우며 중얼거렸다.

“저 텐션은 못 따라가겠다.”

그래도 걱정해 주는 걸 보니 기특하긴 하네. 주하는 피식 웃으며 다시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자리 비움을 달고 열심히 물고기를 낚고 있을 때였다. 길드 대화창에서 영웅 던전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길드] 온별: 야 오늘 영웅 던전 갈 거지?

[길드] 살금: 다 올려놨으니까 가 봐야지

[길드] 천상검: 아니. 오늘 말고 내일

[길드] 온별: 왜?

[길드] 천상검: 벌꿀님 없잖아. 오늘은 접속 못 한다고 했어

[길드] 온별: 그래? 그럼 자리 안 되긴 하겠네

[길드] 베르메르: 파티 구성은 다 짰어?

[길드] 천상검: ㅇㅇ

[길드] 베르메르: 어떻게 나눴어?

주하는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길드 대화창을 응시했다. 드디어 영웅 던전을 가는구나. 팀원들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멜로디랑 같이 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영웅 던전을 병행해야 하니 시간이 맞지 않을 것이다.

[길드] 세렌디피티: 왠지 우리 팀에 온별이 올 것 같아ㅋㅋ

[길드] 온별: ㅋㅋㅋㅋㅋ 나도 그럴 것 같음

[길드] 천상검: 천상팀은 천상검/베르메르/벌꿀오소리/키엘/윤느님

[길드] 천상검: 세렌팀은 세렌디피티/온별/살금/블랙체리/문정

[길드] 세렌디피티: 역싴ㅋㅋㅋ

[길드] 온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살금: 아... 난 왜 온별ㅅㄲ랑 붙였어;; 쟨 나 힐 안 주는데

[길드] 온별: 죽어 봐라 ^^

[길드] 살금: ㅅㅂ;;;

[길드] 블랙체리: ㅋㅋㅋ 형 나는 살려 줄 거지?

[길드] 온별: 당연하짘ㅋㅋㅋ

파티 구성을 발표하자마자 자진신고 길드원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존댓말 하던 블랙체리도 현모를 다녀오더니 길드원들과 친해져서 같이 말을 놓고 있었다. 길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보기엔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잘 지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

주하는 천상검이 올린 파티 구성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두 명의 탱커를 각 팀의 대장으로 잡고, 다섯 명씩 인원을 분배했는데…….

어째서 팀에 제 이름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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