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지역] 카젤: 핵을 왜 사용함; 히든 특성 맞음
[지역] OvOmlm: 웃기시넼ㅋㅋㅋㅋㅋㅋㅋ
보텍스 문의 약점을 찾지 못해 죽어 놓고 빈정대는 꼬락서니라니. 주하도 슬슬 짜증이 차오르고 있었다.
[지역] 카젤: 라나탈에 있는 히든 특성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지역] OvOmlm: 다 몰라도 저런 밸런스 파괴 스킬은 있을 수 없다는 건 알지ㅋㅋㅋㅋㅋ
[지역] 카젤: ㅋㅋ아는 놈이 스킬을 다 맞냐?
[지역] OvOmlm: 뭐?
[지역] 카젤: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자 ^^
[지역] OvOmlm: 핵 써 놓고 뭔 자신감?
[지역] 카젤: 신고해 그럼. 아니 제발 신고해 줄래? 나도 공식적으로 답변받아야 억울하지 않지;;
[지역] Britz: 와 어이없네
[지역] 손좀바꿔줄사람: 핵 아닌가 본데?
[지역] 크리힛: 그러게? 핵 쓴 사람이 신고해 달라고 조르진 않잖아ㅋㅋㅋ
카젤이 오히려 신고해 달라고 강하게 나오자 여론이 바뀌고 있었다. 그제야 누군가가 랭커는 따로 관리하는 담당자가 있어서 핵 사용하는 순간 계정 정지당한다며 알려 주기도 했고, 카젤의 말대로 차라리 공식적으로 답변받아야 의심도 사라진다면서, 차라리 신고당하는 게 좋겠다며 웃기도 했다.
[지역] OvOmlm: ㅅㅂ 그럼 스킬 링크나 해 봐 히든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보통 히든 특성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은 웬만해선 스킬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다. 방송하는 스트리머들이나 히든 특성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렇다.
라나탈은 히든 특성을 굉장히 많이 준비해 두었지만, 그중 유저들이 찾아낸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얻기 어렵고, 좋은 특성이 많았다. 캐릭터 간의 밸런스를 크게 파괴하지 않는 정도라고는 하지만, 다른 유저들의 기본 스킬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인전에서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은 스킬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지인이나 길드원 정도에게만 알려 줄 뿐.
저렇게 대놓고 스킬 공개를 요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주하는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보텍스 문 스킬을 쳐다보았다.
[보텍스 문: 설치한 보석을 중심으로 4m 내에 초당 600의 대미지를 입힌다. 보석은 최대 30초까지 유지되며 일정 대미지를 입었을 시 소멸한다.
+추가 효과: 소용돌이가 생성되어 적을 끌어당긴다. 단, 네임드급 이상 적에게는 효과가 없다.]
스킬 설명만 봐도 공략법은 너무나 쉽게 밝혀져 버린다. 아등바등 숨겨야 할 만큼 중요한 스킬은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지역] 카젤: 양심 없는 핵무새였네
[지역] OvOmlm: 핵이니까 핵이라고 한건데?
[지역] OvOmlm: 히든 스킬이면 링크해서 증명하든가ㅋㅋ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 있자, 사람들도 이젠 핵보단 제가 가지고 있는 히든 스킬이 궁금해져 슬쩍 손을 얹고 있었다.
솔직히 보텍스 문은 PVP에 적합하지 않은 스킬이다. 이 스킬이 없어도 싸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용했을 때 독이 될 가능성이 컸다. 마나 소모가 크기 때문인데, 방금은 녀석을 골릴 겸 해서 사용했을 뿐이었다.
[지역] OvOmlm: 링크 못 하는 거 보니까 핵 맞는데?ㅋㅋ
[지역] 악킬: 신고하라고 배짱부린 것도 노린 거 같음
[지역] ILLHVHL: 그런다고 못 할 거 같냐? ㅋㅋ
[지역] 힐판매중: 응 이미 신고했어ㅋㅋㅋㅋㅋㅋㅋ
녀석들은 여전히 유저들을 선동해서 스킬을 공개하라 압박하고 있었다. 한참 말없이 있으니 정말로 핵 아니냐며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차라리 신고하라고 했던 카젤의 말을 모두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냥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멜로디처럼 궁극기에 붙은 히든 특성이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리 대단한 특성도 아닌데 굳이 숨겨야 하나 싶기도 하고, 또 반대로 알려 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고민되는 상황이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키보드만 툭툭 건드리고 있던 그때였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멜로디가 폭탄을 들고 나타났다.
[지역] 멜로디: 핵은 니들이 썼겠지
[지역] 멜로디: 신고해서 조사 중이니까 ㄷㅊ고 있자ㅋ
[지역] 멜로디: 애먼 사람 붙잡고 늘어지지 말고
또 튀어나오는 핵 이야기에 주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티] 카젤: 핵이라니?
파티 말로 멜로디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지역 채팅창에서 녀석들을 저격했다.
[지역] 멜로디: 노가다할 자신 없으면 돈을 쓰든가 게임을 하지 말든가. 둘 중 하나만 해
[지역] 멜로디: *같은 핵 쓰지 말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 보니 직접 목격한 모양이다.
게임사에서 아무리 관리한다고 해도, 불법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노가다가 특화된 라나탈은 다른 게임보다 그 비중이 더 높아서 매달 영구 정지당하는 계정이 2만 개에 달했다. 어떻게 매번 새로운 불법 프로그램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영자나 유저들에게는 암 같은 존재였다.
저보곤 스킬 핵 쓴다고 난리더니 정작 본인들이 쓰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멜로디랑 싸우고 있었던 건가?
[지역] 악킬: 어이없네? 누구보고 핵 썼다고 하는 거야?
[지역] Britz: 카젤ㅅㄲ 옹호하려고 그러나 본데
[지역] ILLHVHL: ㅋㅋㅋㅋㅋㅋㅋㅋ 개우끼네
[지역] OvOmlm: 증거 있냐? 없으면 좀 **
[지역] 힐판매중: 신박한 개소리였닼ㅋㅋ
상황이 반전되는 줄 알았는데, 녀석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너무 의기양양해서 대체 누구 말이 맞느냐며 지역 채팅창은 혼돈에 빠졌다. 멜로디의 말을 믿자니 저들이 너무 당당하고, 저들을 믿자니 멜로디의 이름값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역] 스쿼트1000개: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지역] 엄마잠깐만: 아침 댓바람부터 핵핵거리고 있노ㅋㅋㅋ 그나저나 지역창에 안 나타나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랐네ㅋㅋ
[지역] 비틱의황제: 멜로디가 신고할 정도면 저쪽이 진짜 핵 쓴 거 아냐?
[지역] 지꼬바: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당당한데
[지역] 스쿼트1000개: 멜로디가 신고까지 했다잖아
[지역] 비틱의황제: ㅇㅇ 아마 랭커 담당자한테 다이렉트로 들어갔을걸? 랭커들은 확신 없으면 신고 못 하는 걸로 암. 워낙 움직이는 인원이 많아서ㅋㅋ 거기다 멜로디면 뭐... 말 다 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멜로디가 우세해졌다.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들의 말보다 멜로디의 말이 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랭커이자 공격대 대장인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랭커에 들었던 카젤과는 위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항상 1위에 올라 있는 멜로디는 유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아이돌이었다.
요 며칠 멜로디와 함께 다니면서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도 과거엔 멜로디를 그런 시선으로 보았다. 멀리서 아이디만 보여도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그런 사람.
‘어쩌다 이렇게 편하게 지내게 됐더라? 같이 던전 돌았을 때부턴가? 아니면 말 놨을 때부터?’
주하는 어느샌가 멜로디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깨닫곤 살며시 웃었다.
떠올려 보면 멜로디와 있을 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놀았다. 게임 스타일이 잘 맞아서 불편한 점이 없기도 했고, 대화하거나 놀릴 때도 즐겁기만 했다. 가끔 얄미울 때가 있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지루하지 않던 것 같다.
은근히 잘 챙겨 주는 것도 신기하고, 힐러라며 약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도 꽤 귀엽다. 그러다가 빈틈없이 움직이는 노련한 사람이 될 때면 ‘맞다, 저런 놈이었지’ 하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빈틈을 발견하면 저도 모르게 또 풀어져서 웃게 된다.
그렇게 매일 함께 있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 위화감 없어서 몰랐네.”
이런 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처음 접속했을 땐 항상 길드 창부터 봤는데, 언제부턴가 친구 창을 먼저 확인하고 있었다. 이래서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거였다.
길드끼리 싸울 때도 공개 창에 나타나지 않았던 멜로디가 제가 핵 의심을 받자마자 나타나니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가 그에게 익숙해진 것처럼, 그도 저를 생각해 주는 것 같다. 큼큼, 아무래도 살짝 감동받았나 보다.
이제 지역 창에는 카젤의 이름과 핵 의심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역] ILLHVHL: 진짜 핵 아니라고!
[지역] 악킬: 아... 짜증 나네
[지역] OvOmlm: 증거 가져오라니까?
여전히 지역 채팅창은 정신이 없었다. 녀석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무죄를 외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상황이 흘러가려나 싶어질 때였다. 멜로디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한 방을 날렸다.
[지역] 멜로디: 너네 스피드 핵이랑 두더지 핵 쓰던데
[지역] 멜로디: 맵 아래에서 채집하고 몹은 한 방에 죽이고
[지역] 멜로디: 신고할 때 운영자랑 같이 확인했으니까 결과나 기다려. 정말로 핵이 아니면 사과글 올리고 골드로 보상해 줄 테니까^^
[지역] 멜로디: 물론 그럴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ㅋ
그제야 녀석들은 조용해졌다. 신고할 때 운영자랑 같이 확인했다는 건, 빼도 박도 못하고 걸렸다는 뜻이다. 어디서 어떻게 구한 불법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걸리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나 보다. 그러니 저리 당당하게 나왔던 걸 테지.
하지만 걸려도 하필 멜로디에게 걸려서 제대로 망해 버렸다. 아마 다시는 녀석들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는 확인되자마자 계정을 영구 정지시키니까 말이다.
[지역] 멜로디: 아 그리고
[지역] 멜로디: 카젤은 히든 특성이라고 방금 운영자한테 답변받았으니까 쓸데없이 스킬 공개하라고 선동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