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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30화 (30/130)

30화

보통 그런 사람이 당할 때가 재미있긴 한데 공략이 쉽지 않다. 게다가 제게 돌아오는 보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워렌스워드 저택에서 의도치 않게 멜로디를 저격했을 때 리프 길드원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노예 계약서 세 장에 사인하는 엄벌에 처해졌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악탑에서 한 대 친 건 보복 안 당했네? 보스 방 끝나고 보자더니 예상과 다르게 조용히 넘어갔다. 아마 까먹지 않았을까 싶다.

“멜로디도 놓치는 게 있긴 있구나.”

주하는 멜로디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곤 가볍게 웃었다. 그 작은 허술함이 은근히 인간적이었달까?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보였던 사람에게서 발견한 빈틈은 생각보다 귀여워 보였다.

“음…… 귀엽나?”

애매하긴 한데, 그 정도면 귀여움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본가에 있는 클로이가 캣타워에 올라가려다 떨어졌을 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충분하지. 둘 다 고양이는 맞잖아.

주하는 제가 타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멜로디를 떠올렸다. 한동안 탈것은 하얀 고양이로 고정할 것 같았다.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맵을 가로질러 절반쯤 갔을 때였다.

[귓속말] 멜로디: 뭐 해?

멜로디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설마하니 잠깐 떠올렸다고 소환된 건 아니겠지?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해서 약간 소름 돋았다.

[귓속말] 카젤: 놀래라;

[귓속말] 멜로디: 왜 놀래?

[귓속말] 카젤: 아니야; 근데 왜?

[귓속말] 멜로디: 혼자 있어?

[귓속말] 카젤: ㅇㅇ

[귓속말] 멜로디: 뭐 할 건데?

[귓속말] 카젤: 평판작 하면서 채집이나 하려고

그러자 갑작스럽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멜로디 님이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

이거 설마…… 같이하자는 건가? 던전도 아니고, 죄악의 탑 때문에 시간 채우는 것도 아닌데, 왜?

수락을 누르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더니 멜로디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귓속말] 멜로디: 왜?

[귓속말] 카젤: 갑자기 웬 파티?

[귓속말] 멜로디: <링크: 지역> 여기서 노가다하려는 거 아냐?

[귓속말] 카젤: .....설마

[귓속말] 멜로디: 이미 우리가 자리 잡았는데

[귓속말] 멜로디: 싫음 말고

어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매번 겹칠 수가 있지? 주하는 한숨을 쉬다가 파티 초대창이 사라지려 하자 후다닥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익숙한 사람 하나와 처음 보는 이가 주르륵 인사를 건넨다.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ㅋㅋㅋㅋ 하잇!

[파티] 바나나: 안녕하세요~

[파티] Snow: 카젤님 어서 오세요 ^^

[파티] 카젤: 안녕하세요

이젠 내 소속이 자진신고 길드인지, 리프 길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파티] 개인주의: 우리 운명 같음 ㅇ.<

[파티] 카젤: 그거 아니에요

[파티] 개인주의: 그럼 카젤 형이 우리 쫓아온 거예용?

[파티] 카젤: .....

[파티] 개인주의: 우리가 먼저 하고 있었는뒈에?

[파티] 카젤: .....

[파티] 개인주의: 카젤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스토커였구나

[파티] 개인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주의가 탱커였던가? 도발 스킬이 아주 찰지네. 진짜로 스토킹해 주고 싶을 만큼.

[파티] 카젤: 원한다면 스토킹해 드림

[파티] 개인주의: 아...아앗! 정말요? +_+? 나만 쫓아와요? 부, 부끄럽지만... 카젤 형이라면.... ///

주하는 조용히 친구창을 열고 개인주의를 클릭했다.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친구 삭제하고 파티를 탈퇴하면 될 것이다. 요 며칠 PK를 안 했더니 손이 근질근질했다.

[파티] 바나나: ㅁㅊ놈아 그만해

[파티] 바나나: 정 그렇게 쫓기고 싶으면 내가 해 줄게 ^^

[파티] 개인주의: ......

[파티] Snow: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막내야

[파티] Snow: 너 때문에 카젤님 도망가면 알지? 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

[파티] 개인주의: 죄송해요...ㅠ

[파티] Snow: 안 그래도 네가 악탑 돌 때 카젤님한테 귓말해서 귀찮게 굴었다며ㅎㅎㅎㅎㅎㅎ 오랜만에 처맞아야 얌전해지려나?

[파티] 개인주의: 누나들...ㅠㅠㅠ 막내는 사랑입니다...

[파티] 바나나: 뭐래

[파티] Snow: ^^ㅗ

가차 없이 막내를 갈구는 두 사람을 보며 주하는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저 정도는 돼야 컨트롤이 가능하구나.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켜 뒀던 친구창을 닫고 열심히 이동하는 동안에도 세 사람은 계속해서 옥신각신했다. 일시불과 여름n모기가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오히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인주의도 맥을 못 추면서도 중간중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게 즐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참 재미있게 노는 리프 길드였다.

구경하며 왔더니 어느새 미니맵에 파티원들이 보였다. 주하가 가까이 다가가자 Snow와 바나나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티] Snow: 오! 카젤님 거의 다 왔다

[파티] 바나나: 드디어 그 유명한 카젤님을 보는 건가!

[파티] 카젤: ㅇㅇ? 유명하다뇨?

[파티] 바나나: 로미젤과 줄로디요 ㅎㅎㅎㅎㅎㅎ

[파티] 카젤: 아ㅋㅋ

[파티] Snow: ㅋㅋㅋ

[파티] Snow: 저희 진짜 그것 때문에 길드에서 빵 터졌어요ㅋㅋ

[파티] 멜로디: 어디까지 말하려고?

[파티] Snow: 그야 네가 줄로디에 빡친 것까지? ㅋㅋㅋ

제가 로미젤에 안도한 것과 반대로 멜로디는 탐탁지 않았나 보다. 하긴 저였어도 줄리엣 역할이었으면 기분이 미묘했을 것이다. 그래서 죄악의 탑 앞에서 축의금이라며 골드를 수거했구나. 이제야 멜로디의 마음이 이해 갔다.

[파티] 바나나: 요즘 카젤님 덕분에 저랑 눈이가 길드에서 멜로디를 줄로디라고 부르고 있어요ㅋㅋㅋ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 저 성격에 가만히 있어요?

[파티] 바나나: 보복쯤이야 뭐...

[파티] 바나나: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몰라서 ^^

[파티] Snow: 지금을 즐겨야 합니다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요즘 누나들 보면 내일이 없는 사람들 같아;;

[파티] Snow: 이런 건 원래 미래의 나한테 맡기는 거야

[파티] 바나나: 옳소

[파티] 카젤: 현명하네요 ㅋㅋ

바나나와 Snow는 역시 카젤 님도 우리 과일 줄 알았다며 즐거워했다. 그에 반해 멜로디는 대꾸하는 것조차 귀찮은지 한참을 침묵했다.

카젤이 도착했을 땐, 다들 열심히 맵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몹도 잡고 채집도 하고, 그러면서 수다까지. 역시 멀티태스킹은 기본으로 장착된 진정한 썩은물다웠다.

주하도 곧바로 노가다에 합류했다. 개인 루팅 시스템이라 각자 운에 따라 평판 토큰이 떨어지니 몹에 관한 경쟁은 없었다. 다만 채집은 한 번 캐면 다음 리젠21)까지 시간이 걸려서 누가 먼저 캐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말인즉슨,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리프 길드원들의 채집물에 손을 대야 한다는 건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멜로디가 말했다.

[파티] 멜로디: 넌 5시 방향 캐면 돼

[파티] 카젤: 자리가 돼?

[파티] 멜로디: 젠이 빨라서 괜찮아

[파티] 카젤: 생각보다 더 명당이네

몹도 많은데 채집물 리젠도 빠르다니. 이래서 파티로 작업하고 있었구나. 다섯 명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노가다 구역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 주하는 흐뭇하게 웃었다. 나중에 길드원들에게도 알려 줘야겠다.

[파티] 개인주의: 헐... 뭐지? 카젤 형! 우리 대장님이랑 말 놨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모야... 나는 안 된다고 해 놓고!!

[파티] 개인주의: 설마 나랑 시불이한테만 철벽 치는 거였어요? ㅠㅠㅠㅠ

바닥에 주저앉아 풀을 캐던 주하는 개인주의의 찡얼거림에 그제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개인주의와 일시불이 편하게 말하라고 했을 때 거절했지, 참.

[파티] 카젤: ㅇㅇ 맞아요

[파티] 개인주의: 헐ㅠㅠㅠㅠㅠㅠㅠㅠㅠ

[파티] 바나나: 카젤님이 눈치가 빠르네ㅋㅋ

[파티] Snow: 그럴 만도 하지ㅎㅎㅎㅎ 쟤네들은 한 번만 봐도 딱 견적 나오잖아. 답이 없겠다~ 싶은 게

[파티] 카젤: 비글은 제가 감당 못 해서 ^^

[파티] 바나나: 아무렴요ㅋㅋㅋㅋㅋ

[파티] 개인주의: 시불이한테 이를 거야...... 우리 받아 줄 때까지 둘이서 형 개롭힐꺼야아아.....

[파티] 카젤: ./차단 개인주의 일시불

[파티] 개인주의: 허윽 ㅠㅠㅠㅠ

[파티] Snow: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바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now와 바나나는 실제로 웃음이 터졌는지 캐릭터를 제자리에 세우고는 열심히 ㅋ를 남발했다.

[파티] 바나나: ㅋㅋㅋ 역시 막내즈는 놀려야 제맛

[파티] Snow: 카젤님에게서 동류의 냄새가 난다ㅎㅎㅎㅎㅎ

[파티] 바나나: 맞아ㅋㅋㅋ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형제를 만난 기분이랄까?

원래 누구 하나 제물로 던져 놔야 그룹이 화기애애한 법이다. 개인주의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만큼 파티 분위기는 더더욱 좋아졌다.

그렇게 저도 섞여서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노가다하면서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섯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중간중간 가방 정리를 위해 마을에 다녀왔던 걸 제외하면 거의 쉬지도 못했지만, 피로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파티] 바나나: 어! 우리 외계인 왔다! 나 밥 먹고 악탑 하러 가야 댐

[파티] 개인주의: 외계인 형... 또 끌려가는구나

[파티] Snow: 넌 나한테 끌려가야지? 이번엔 무조건 1위 할 테니까 집중해야 한다? 어제처럼 추월당하기만 해 아주!

[파티] 개인주의: ...누나; 우리 진짜 1위 가능해? 대장님이 버티고 있는데?

[파티] Snow: 벌써 졌다고 생각하면 안 돼!

[파티] 개인주의: 그렇긴 한데... 카젤 형이랑 대장님 듀오는 아무리 봐도 못 이길 것 같단 말이야 ㅠㅠㅠㅋㅋㅋ 겁나 잘 도망가... 못 쫓아간다구 ㅠㅠㅠ

[파티] 카젤: ㅇㅇ? 제가 왜요? 무슨 듀오?

21) 온라인 게임에서 몬스터나 채집물이 사라지고 난 뒤 다시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 말. 줄여서 ‘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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