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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24화 (24/130)

24화

주하는 다급히 회피기를 사용하며 아슬아슬하게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생각보다 빠른 공격에 놀라고 있는데, 공중에서 갑자기 거대한 앞발이 내리쳐졌다. 바닥을 보니 이번에도 공격 범위를 알려 주는 히트 박스가 그려져 있었다.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으려나, 하던 그때.

<물의 보호막>

다행히도 멜로디가 걸어 준 물의 보호막이 대미지를 흡수했다. 다만 공격력이 상당했던지 보호막이 깨지고서도 피가 10%쯤 닳아 있었다.

[파티] 카젤: 땡큐

[파티] 멜로디: 생각보다 속도감이 좀 있네

[파티] 카젤: 게다가 아파; 보막이 얼마나 흡수해?

[파티] 멜로디: 대상 생명력의 20%

[파티] 카젤: 내 피의 30%나 닳았다고?

이전 시즌 최고 아이템을 입고 있는 카젤이 단 한 방에 30%의 피가 사라졌다는 것은 꽤 심각한 일이었다. 딜러 조합으로 왔다면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러면 당연히 힐러를 데리고 오려고 하지, 딜러들끼리 무슨 수로 죄악의 탑을 돌까.

[파티] 멜로디: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일단 좀 더 보자

그래, 고작 첫 공방일 뿐이었다. 패턴은 분명히 있을 테고, 익숙해진다면 피할 수 있겠지. 주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집중했다.

이번에도 라스탈리온의 공격은 꼬리 치기부터 시작했다. 바닥에 생긴 히트 박스를 확인한 주하는 전과 달리 반대편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바닥을 후려친 꼬리가 따라오며 공격했다. 분명 이쯤에서 앞발 공격이었지? 혹시나 해 시선을 내리자 역시나 바닥에 공격 범위가 그려져 있었다.

꼬리 치기 후 유저를 따라와서 한 번 더 휘두르고 다음엔 앞발. 역시나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먼저 예상했기에 앞발 공격은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주하는 그제야 조금씩 보스에 딜을 넣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많은 터라 도트와 즉시 시전 스킬을 박아 넣고,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땐 스탠스를 변경해 시전 스킬을 썼다. 그렇게 조금씩 HP를 깎아 가며 보스 공격을 눈에 담았다.

라스탈리온의 공격 패턴은 꼬리와 앞발 이외에도 몸통 박치기와 물어뜯기가 있었다. 새로운 패턴이 나올 때마다 멜로디에게 보호막이나 힐을 받았더니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라스탈리온의 피가 75%가 됐을 때였다. 갑자기 맵 중앙으로 돌아간 라스탈리온이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그러자 맵 전체에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파티] 멜로디: 일단 보호막 넣어 둠

[파티] 카젤: 광역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 전체가 붉게 타올랐다. 예상한 대로 두 캐릭터 모두 피가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티] 카젤: 뭐야 틱당 대미지 왜 이래?

주하는 출렁이는 체력 바를 보며 잔뜩 긴장했다. 멜로디가 보호막과 광역 힐을 번갈아 넣으며 피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보다 들어오는 대미지가 더 강해 점점 밀리고 있었다.

딸피에서 간당간당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체력 바가 불안정해서 물약을 하나 먹었다. 앞으로 2분간은 물약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당장은 사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어오는 대미지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보스는 차단도 할 수 없고, 딜도 넣지 못하는 무적 상태라 꼼짝없이 시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캐스팅 바는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못 버티겠는데?”

멜로디는 쓸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총동원해 힐을 퍼붓고 있었다. 쿨타임이 3∼5분인 특수 스킬까지 모조리 사용하는 걸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안정권에 들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 랭킹 1위의 힐러가 버티지 못한다면 다른 누구도 불가능할 텐데.

혹시 다른 무언가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멜로디에게서 거대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심상치 않은 이펙트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새가 멜로디의 등 뒤로 솟구쳐 올랐다. 하늘로 떠오른 새는 머리 위를 돌더니 날개를 활짝 폈다. 황금빛 오라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며 주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정령 소환>

정령사의 궁극기. 대정령 소환이었다.

15분의 긴 쿨타임을 가지고 있는 스킬로, 한번 발동되면 파티원의 피가 모두 회복되고 생명력의 200%에 해당하는 보호막이 둘린다.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였다.

궁극기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선제 조건이 필요한데, 보통은 역할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탱커는 많이 맞을수록, 힐러는 유효 힐을 넣을수록, 딜러는 딜을 많이 넣을수록 일정 게이지가 차오른다. 그 게이지를 다 채우면 궁극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데, 비전투 모드일 때는 모두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 5인 던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이는 짧은 시간 동안 멜로디가 사용한 힐이 모두 유효 힐로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들어오는 대미지가 그만큼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정령 모습이 원래 저랬나?”

제가 알기론 저렇게 큰 새는 아니었다. 캐릭터를 덮을 정도의 크기였던 것 같은데……. 멜로디가 꺼낸 새는 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거기다 이펙트도 더 화려했고.

멍하니 화면을 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보여선 안 될 문구가 보였다. 황금색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카젤 캐릭터 위로 ‘면역’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홀린 듯이 버프 창으로 마우스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대정령 소환 아이콘 위로 스킬 설명이 쓰여 있는 툴팁이 나타났다.

[대정령 소환: 보호막이 유지되는 동안 모든 마법, 물리 공격에 피해를 받지 않는다. 또한 이동이나 행동에 제약받지 않는다.]

생명력 200% 보호막은 어디로 가고 파티 무적기로 바뀐 거지? 패치 노트에 없던 것을 보면, 이는 분명.

“……히든 특성.”

보텍스 문에 히든 특성이 붙어 있는 저와 마찬가지로 멜로디도 궁극기에 히든 특성이 붙은 것이다. 와, 누구는 쓸모없는 스킬에 붙고 누구는 궁극기에 붙냐? 그것도 기믹 하나는 씹어 먹을 수 있는 무적기로.

말도 안 되는 사기 스킬에 허탈해하고 있는데, 화면을 가득 채웠던 커다란 새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두르고 있던 보호막도 같이 소멸해 버렸다.

3초 정도 유지됐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지지? 보통 보호막은 20초 동안 유지 아닌가?

[파티] 카젤: 보호막 사라졌는데? 히든 특성 아니야?

[파티] 멜로디: 무적기로 바뀌면서 정령 소환 시간만큼만 유지되도록 바뀌었어

[파티] 카젤: 아

[파티] 멜로디: 히든 특성이라도 밸런스는 맞춰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ㅋ

[파티] 멜로디: 거기다 쿨타임도 30분이라서 맘대로 쓰지도 못해

[파티] 카젤: ㅋㅋ

하긴, 20초 동안 무적이면 그건 정말 밸런스 파괴다. 그것도 개인이 아닌 파티 무적기니까. 기믹을 하나 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스킬이었다. 그 어떤 클래스보다 진정한 궁극기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스의 캐스팅 시간은 남아 있었다. 광역 대미지가 계속해서 들어왔고, 더는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남아 있지 않아 결국 두 사람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렸다.

[파티] 카젤: 이거 힐로 버티는 기믹 아닌 거 같은데

[파티] 멜로디: 내가 두 명이어도 이건 안 돼

[파티] 카젤: ㅋㅋㅋ

그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멜로디니까 가능했던 걸지도 모른다. 지난 시즌 최고 아이템을 입은 그가 풀로 힐을 당겨도 아슬아슬했으니 다른 힐러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 기믹을 넘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텐데 대체 뭘까? 조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려 보고 있는데, 멜로디가 물었다.

[파티] 멜로디: 뭐 찾은 거 있어?

[파티] 카젤: 아니

[파티] 멜로디: 나 힐 하는 동안 주변 안 둘러봤어?

그러고 보니까……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었지 참. 그러다가 멜로디가 궁극기를 사용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파티] 카젤: 너 힐 하는 거 구경한 거 같은데...

[파티] 멜로디: ㅋㅋ? 뭐라고?

[파티] 카젤: ...ㅋ

[파티] 카젤: 누가 히든 특성 붙은 궁극기 사용할 줄 알았나. 거기다 새가 하도 커서 이펙트가 화면 다 가리더만

[파티] 멜로디: 나 참 ㅋㅋㅋ

멜로디의 어이없어하는 웃음에 주하도 피식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참 뻔뻔한 대답이었다.

[파티] 멜로디: 내가 매력적이긴 한데 그렇다고 너무 홀리지는 마

[파티] 카젤: 돌았어?

[파티] 멜로디: ㅋㅋ

정정한다. 멜로디가 더 뻔뻔한 녀석이었다. 네가 매력적인 게 아니라 네 스킬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지만, 듣는 척도 안 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아주 이기적인 녀석이네.

주하는 아쉬운 대로 멜로디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같은 파티인 데다 친구가 되어 있어서 실제로 공격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제 마음만은 전해졌으리라 믿었다. 물론 멜로디는 제 공격에 ‘자비로운 미소를 짓습니다’라는 감정 표현으로 응수했다. 답도 없는 녀석이었다.

다시 죄악의 탑에 진입한 두 사람은 라스탈리온 공략을 재개했다. 초반부는 이미 패턴을 숙지해 둔 터라 전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75%가 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광역 공격이 시작되었다. 붉은 오라가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주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히 다른 건 없어 보이는데…….’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멈춘 주하는 이번엔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상호작용되는 물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우스를 휙휙 흔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마우스 포인터가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파티] 카젤: 오브젝트 있다

[파티] 멜로디: 어디?

[파티] 카젤: 잠깐

하나하나 차근히 살펴보는 동안 또다시 광역 공격이 시작되었다. 힐은 멜로디에게 맡기고 주하는 홀로 오브젝트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 이쪽이었는데?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문득 붉은 알이 눈에 띄었다. 맵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물체라 설마 하는 마음에 마우스를 올려 보았다.

그러자 마우스 포인터가 톱니바퀴로 바뀌며 알 외곽이 하얗게 반짝였다. 부화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용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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