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23화 (23/130)

23화

[길드] 카젤: 벌꿀님 3위까지 올라왔네?

[길드] 벌꿀오소리: 아씨... 들켰다

벌꿀오소리는 정모를 마치고 돌아온 천상검을 붙잡고 미친 듯이 돌더니 기어코 랭킹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집착이 아닐 수 없었다.

[길드] 천상검: 벌꿀님... 좀 쉬면 안 될까요;

[길드] 벌꿀오소리: ??? 헛소리 안 받음

[길드] 천상검: ㅠㅠㅠㅠㅠ

[길드] 카젤: ㅋㅋ 목표 랭킹은?

[길드] 벌꿀오소리: 안 들켰으면 1위였는데. 후..... 2위는 해야죠

[길드] 천상검: 리셋 시간까지 돌리려고요?;;;

[길드] 벌꿀오소리: 설마 못 한다는 말 하려는 건 아니죠?

[길드] 천상검: ;;;;;; 당연히 가능하죠 ^^;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천상검이었지만, 벌꿀오소리의 기세에 눌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현모 때문에 같이 해야 했을 콘텐츠를 못 했으니 벌꿀오소리가 얼마나 저기압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왜 이런 시기에 모임을 주최해서는. 결국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이었다.

[길드] 천상검: 근데 매주 이러면 악탑에 너무 시간 뺏기는 거 아니에요? 할 거 많은데;;

[길드] 벌꿀오소리: (ꐦ°꒫°) 지금 은근히 투덜대는 거임?

[길드] 천상검: ;;;; 현실을 말한 거라고 ㅠㅠ

[길드] 벌꿀오소리: 흠... 하긴. 항상 랭킹에 신경 곤두세우고 있긴 하겠네요

[길드] 천상검: ㅇㅇ;; 이러다 추월당하면 레이드 하다가 뛰쳐나갈지도 모르겠음

[길드] 벌꿀오소리: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길드] 천상검: 벌꿀님 자신 있...?

[길드] 벌꿀오소리: ........

벌꿀오소리는 침묵했다. 그 많은 평판 점수와 아이템 업그레이드 재료를 떠올리면 누구든 선택 장애가 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추월당한다는 것은 자존심상 두고 볼 수 없을 터였다. 멀리 가지 않고 당장 벌꿀오소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온종일 죄악의 탑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특히나 직장인들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상위권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질 테니 말이다.

적어도 동등한 출발선에 있어야 불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죄악의 탑에 들어갈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것인데……. 일단 저 또한 랭킹 집계 마감날마다 밤을 새워야 한다 생각하니 암담했다. 무조건 수정되어야 할 시스템이라는 건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도 당장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그나저나 2위면…….”

주하는 실시간 랭킹을 확인했다. 3위는 천상검과 벌꿀오소리. 2위는 리프 길드의 개인주의와 Snow였다.

2위와의 차이는 현재 10층. 이대로 둔다면 조만간 따라잡힐 수도 있겠는데?

[파티] 멜로디: 슬슬 악탑 갈까?

[파티] 카젤: 개인주의님 계속 달릴 거 같아?

[파티] 멜로디: 지금 둘 다 눈에 불을 켜고 달리고 있어

[파티] 카젤: 오늘도 잠자긴 글렀네

새벽 6시가 되어야만 일주일이 끝나고 리셋이 된다. 죄악의 탑도 그때까지 진행될 테니 결국 밤새우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10층 차이면 고지가 눈앞일 테니까.

[파티] 멜로디: 2위랑 3위도 차이 별로 안 나네

[파티] 카젤: 이쪽도 쉴 틈 없이 달리고 있어

[파티] 멜로디: 그래도 1위는 줄 수 없지

[파티] 카젤: ㅋㅋㅋ

당연한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해서 주하는 웃어 버렸다. 여기서 1위를 빼앗긴다면 아마 평생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물론 1위를 지켜내기 위해 밤을 새워야겠지만.

주하와 멜로디는 하던 것을 멈추고 대도시로 돌아왔다. 아이템 수리도 하고 가방도 정리하고 5분 정도 쉰 후 곧장 죄악의 탑으로 향했다.

죄악의 탑 앞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었다. 대도시보다 더 많은 인원이 있어서 그런지 채널은 몇백 개까지 늘어나 있었다. 잘못하다간 프레임 드랍18)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주하는 그나마 사양 좋은 PC방으로 와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멜로디와 함께 죄악의 탑으로 들어간 주하는 왼쪽에 떠 있는 창을 확인했다.

<죄악의 탑 99층 : 2인 실시간 랭킹 1위>

찬란한 금빛 메달이 랭킹 1위를 알려 주고 있었다. 2위와 3위, 그리고 그 아래 유저들도 등급별로 순위가 매겨져 있을 것이다. 역시 순위 싸움은 K 게이머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 같다.

[파티] 멜로디: 바로 갈까?

[파티] 카젤: ㅇㅇ

1위를 유지하기 위해 멜로디와 카젤은 곧장 100층으로 향했다.

99층에서 100층으로 넘어갈 때는 다른 층과 달리 단 하나의 문만 나타났다. 황금 게이트를 이용해 넘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보스가 있는 방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포탈을 타고 드디어 100층에 들어섰다. 주하는 전과 다른 맵을 보며 주변을 살폈다.

크기는 이전과 동일하고 기본이 되는 배경도 같지만, 그 위에 추가된 그래픽은 섬뜩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혈흔이 벽과 바닥에 가득했고, 혈관처럼 움직이는 붉은 덩굴과 천장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은 분위기를 한층 더 기괴하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부서진 벽 사이에는 붉은색 알이 가득했는데,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처럼 꿈틀거렸다.

정말 쓸데없이 디테일이 좋아 비위가 약한 이들이 본다면 꽤 고생할 비주얼이었다.

[파티] 멜로디: 아무래도 보스 방 같은데

[파티] 카젤: ㅇㅇ 근데 저 알은 뭐지?

하지만 주하와 멜로디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저 맵에 있는 폴리건 덩어리들을 보며 어떤 퀘스트가 나올지 유추할 뿐이었다.

[파티] 멜로디: 부화한 녀석들을 잡거나

[파티] 멜로디: 부화하지 못하게 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파티] 카젤: 전자였으면 좋겠네

알을 부화하지 못하게 하는 건 꽤 귀찮은 기믹이었다. 보통 까다로운 전제 조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알을 빨리 깨야 한다든지, 어디로 옮겨야 한다든지 하는 조건들. 그러니 차라리 부화한 새끼들을 잡는 게 나았다.

주하는 꿈틀거리는 알을 지나쳐 주변 석상을 보았다. 뱀, 아니, 구렁이 네 마리가 입을 쩍 벌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뱀이나 이무기 종인가.”

어떤 종류의 보스 몹이 나타날지 예상하는데, 드디어 시스템 안내가 올라왔다.

<보스 잡기: 제한 시간 없음>

“제한 시간이 없다고?”

지금까지 죄악의 탑은 대부분 짧게는 1분, 길게는 15분까지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처음 나오는 보스 몹을 잡을 때는 제한 시간이 없다니. 타임 어택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그만큼 잡기 힘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 멜로디: 2인 레이드네

[파티] 카젤: 이래서 파티로 만들었구나

라나탈은 타워 콘텐츠를 약간 변형해 소규모 레이드로 만들었다. 1층에서 99층까지는 기존과 동일하게, 100층부터는 보스 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게임 자체가 레이드와 파티 위주로 진행되어 이런 것마저 유저들이 함께하길 원한 것 같았다. 아니면 랭킹 보상만으로는 하드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걸 수도 있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레이드 던전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사이 보스를 공략하는 콘텐츠가 나왔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주하는 멜로디의 앞으로 달려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힐러를 지켜야 한다는 딜러의 본능이었다. 장난치며 놀 때와는 다르게 할 때는 제대로 하는 그였다.

클리어 목표 안내가 나오고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화면 중앙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붉은 핏물이 바닥을 기어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원형과 작은 타원형이 만들어지고, 선과 선이 이어지며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졌다. 판타지를 좋아하거나 게임을 해 본 이들이라면 익숙한 것. 바로 누군가를 소환할 때 사용하는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에는 소환을 방해할 수 없게 투명한 막이 둘려 있었다. 주하는 혹시 딜이 들어가나 싶어 광역 스킬을 사용해 봤지만, 마법진과 투명한 막 위에는 ‘면역’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드디어 마법진이 완성됐는지 투명한 막이 사라지며 바닥에서 무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주하는 서서히 올라오는 보스를 보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파티] 카젤: 이번 컨셉 확실하네

100층의 보스는 예상한 대로 ‘뱀’이었다. 다만 익숙한 뱀의 형태가 아닌, 다른 생물들과 융화된 키메라에 가까웠다. 뱀의 머리에, 축축한 비늘로 둘러싸인 용의 몸통을 지닌 데다 등에는 뾰족한 송곳이 가득했고, 길다 못해 자기 몸을 칭칭 감을 정도로 늘어난 꼬리까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 같았다.

그중에서 뾰족한 송곳에 걸려 있는 해골을 보며 주하는 눈을 깜박였다.

[파티] 카젤: 꼬리에 잡히면 등으로 던져지는 건가?

[파티] 멜로디: 한번 맞아 보면 알겠지

[파티] 카젤: 네가 맞아 볼래?

[파티] 멜로디: 글쎄? 맞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나쁘진 않아서

그러시겠지. 주하는 당당한 멜로디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만약 제가 꼬리에 맞는다면 대놓고 놀릴 생각인가 보다. 제 반사신경을 의심하면서.

주하는 평소 레이드 때보다 더 집중하기 위해 몸을 긴장시켰다.

드디어 보스가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은 라스탈리온. 흉측한 모습을 한 보스는 곧장 카젤에게 달려들었다.

보스가 가까이 다가오자 카젤이 서 있는 바닥에 붉은색으로 긴 히트 박스19)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이라 집중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만큼 빨랐다. 주하가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나자 라스탈리온의 꼬리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내려쳤다. 공격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꼬리가 다시금 날아든 것이다.

18) 전자계산기의 한계 처리 속도를 넘어섰을 때, 화면 갱신이 늦어지는 현상. 화면 끊김, 캐릭터 순간 이동 등

19) 공격을 미리 알려 주는 표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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