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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 줍는 힐러-10화 (10/130)

10화

‘보통’이라면 그렇지. 다른 스킬도 많은데 굳이 꺼내 쓸 만큼 효율적이진 않으니. 좋게 봐줄 수 있는 건 화려한 이펙트뿐이랄까? 한때는 왜 이런 스킬을 만들었을까 궁금해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카젤의 보문은 달랐다.

얼음 장판을 지나온 몹들이 설치해 둔 보석에 닿자마자 스킬이 발동했다.

[파티] 멜로디: ?

화려한 빛이 터지고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생기자 멜로디가 의문을 표했다. 처음 보는 스킬 이펙트에 놀라기도 잠시, 발동된 보문은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소용돌이가 주변에 있는 몹들을 가운데로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파티] 멜로디: 제가 알고 있는 보문이랑 다른데요?

[파티] 카젤: 원래 보문은 끌어당기지 않죠

[파티] 멜로디: 설마... 히든 특성?

[파티] 카젤: ㅇㅇ

[파티] 멜로디: 어떻게 얻었어요?

[파티] 카젤: 우연히 히든 퀘스트를 발견했어요

노가다에 노가다를 얹고, 우연히 얻은 기회로 열게 된 히든 특성이었다. 주하는 그날을 떠올리며 흐리게 웃었다.

[파티] 카젤: 처음엔 날아갈 것처럼 좋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사용하기 까다로워서

[파티] 멜로디: 왜요?

[파티] 카젤: 보문 기본 스킬이 너무 별로잖아요; 히든 특성이 붙었어도 커버하기가 쉽지 않아요

[파티] 멜로디: 아

[파티] 카젤: 레이드에서는 범위가 너무 작고, PVP에서는 유저들이 보석을 깨면 사라지니까 의미가 없죠. 한 대만 쳐도 깨지는 쿠크다스 같은 애라ㅋㅋ

그래서 거의 사장되었던 스킬이었다. 멜로디가 스킬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할 정도로.

히든 스킬이 붙은 보문이라고 해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몹이 예쁘게 모여 있어야 했고, 대상이 설치된 보석을 깨지 않으며, 마나 소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거나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했다. 보통 이런 타이밍은 잘 오지 않는다.

멜로디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그렇군요, 라며 긍정했다.

[파티] 멜로디: 저거 얼마나 유지되죠?

[파티] 카젤: 30초요 꽤 길죠?

[파티] 멜로디: 괜찮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멜로디 덕분에 주하는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

보문으로 발이 묶인 몹들을 놔두고 카젤과 멜로디는 슬렁슬렁 폭탄을 피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 더 몬스터를 가지고 놀며 온 방을 뛰어다녔을 때, 1분이 지났는지 클리어 안내가 떠올랐다.

<30층 생존 완료>

시스템 알람이 사라지자마자 이번에도 두 개의 문이 생성되었다. 과연 멜로디가 어느 쪽 문을 고를까. 주하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왼쪽 문을 지켜보고 있는데 멜로디가 말을 걸었다.

[파티] 멜로디: 그럼 혹시 지난 시즌 보스 잡을 때 썼던 보문이 자폭 쫄 나왔을 때 쓴 거?

아직 스킬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나 보다. 주하는 카젤 옆에 서 있는 멜로디를 쳐다보았다.

[파티] 카젤: 우리 미터기 보셨구나

[파티] 멜로디: ㅇㅇ

[파티] 카젤: 그때는 상황이 좋아서 썼어요

지난 시즌 레이드 보스 기믹10) 중에는 자폭하는 쫄이 나왔다. 유저에게 붙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터지는데, 자진신고는 카젤이 담당해서 쫄을 묶어 두었다. 일반적인 공략은 두 명의 딜러가 붙어야 해서 딜로스11)가 나는 구간이었다.

[파티] 멜로디: 딜 이득 많이 봤겠네요

[파티] 카젤: ㅇㅇ 저도 묶어 두고 나서 바로 본진으로 합류했으니까요. 그래서 50% 기믹은 빨리 넘겼어요

이제는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공략이었다.

자진신고는 레이드 공략을 타인에게 알려 주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었다. 다른 공대도 그런 곳들이 많아 딱히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규율은 보통 시즌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유지된다. 새로운 확장팩이 나오면 버려지는 던전이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파티] 멜로디: 신고 길드가 카젤님 덕 많이 봤네

[파티] 카젤: ㅋㅋㅋㅋㅋ

칭찬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저를 알아준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팀원들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식의 칭찬은 잘 안 했으니까.

그러게, 보석술사도 나쁘지 않다니까? 주하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주장을 당당히 외치고 있었다.

[파티] 멜로디: 신고 길드는 로그 계속 닫아 두겠죠?

[파티] 카젤: 아마도요

라나텔 홈페이지에서는 레이드의 전체적인 동선과 스킬 사용 내용, 물약 먹은 횟수, 타임라인 등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것을 로그라고 하는데, 유저가 원한다면 숨기는 것도 가능했다. 로그를 숨기면 딜 미터기와 힐 미터기만 보일 뿐이었다.

신고 길드는 당연하게 이 로그를 오픈하지 않았다. 시즌이 지난 지금까지도.

[파티] 멜로디: 로그 뜯어보고 싶었는데

[파티] 카젤: 이제 끝난 공략인데요 뭐ㅋㅋ

[파티] 멜로디: 기믹 수행하면서 딜 2~3위 꾸준히 유지한 거 보면 누구라도 궁금해할걸요? 기왕이면 플레이 영상도 보고 싶고

[파티] 카젤: 음;;

사실 이런 관심은 나쁘지 않았다. 얼마 만에 인정받은 건지 들뜨기까지 했다. 길드에서는 서로 기믹을 미루려 하고 딜 순위에 집착해 경쟁하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파티] 멜로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억지로 부탁하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파티] 카젤: 네 ㅎㅎ

[파티] 멜로디: 뭐 앞으로 볼 날은 많을 테니까

[파티] 카젤: 네?

[파티] 멜로디: 악탑 듀오잖아요

[파티] 카젤: 음... 그렇죠?

볼 날이 많다고 하기엔 이번 주만 지나면 없을 텐데? 다음 주부터는 길드원들과 함께 죄악의 탑을 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저와 다르게 멜로디에게는 한 주가 길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파티] 멜로디: 그럼 다음 문은 오른쪽 가죠

[퍼티] 카젤: ㅠㅠ

그래도 역시나 친절하거나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아까 제가 왼쪽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태연히 반대쪽을 선택했다. 제 운에 관해선 한 치의 자비도 없는 모습이었다. 주하는 작게 혀를 차며 오른쪽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연출과 함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하…… 운빨 망겜.”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황금빛 게이트가 나올 줄이야.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혹시 나만 따돌림당하고 있는 건가? 행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편파적이라 의심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몰빵에 투덜거리며 다음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다시 멜로디가 문을 선택했을 때, 주하는 황금빛 게이트를 보며 흐리게 웃었다.

역시, 인생은 될 놈 될이었다.

***

[일반] 내일의집: 님들 아까 멜로디한테 얼마 뺏김?

[일반] 렌지: 나 만 골 뺏김 ㅠㅠ 귓말로 봐달라고 애원애원 했는데 짤 없더라 ㅠㅠㅠㅠ

[일반] 밀가루: 만 골 없었으면 큰일 날 뻔... 창고에 있던 돈 다 들고 오길 다행이지;;;;

[일반] Cocomon: 님들 만 골...? 난 이만 골 뜯겼는데...?ㅠㅠ

[렌지] 렌지: 줄로디가 한 건 한 듯ㅋㅋㅋㅋ

카젤과 멜로디가 사라진 죄악의 탑 앞에선 유저들의 축축한 성토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일반] 신기하게생겼네: 근데 님들 조금 놀렸다고 왜 그렇게 뜯김?? 안 줘도 되지 않나?

[일반] 렌지: 님 멜로디 모름??

[일반] 신기하게생겼네: 정령사 랭킹 1위 유저 아닌가?

[일반] 렌지: 랭커 말고. 음... 확실히 시간이 좀 많이 지나긴 했나? 모르는 사람들도 있네. 예전에 멜로디 악명 높았음;; 지금은 얌전한 거야^^;;;

[일반] 신기하게생겼네: 악명 높다니?

[일반] Cocomon: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과거에 별별 사람들이 달라붙었는데 그중 안 접은 사람이 없어요ㅋㅋㅋ;;

[일반] 렌지: 사사게나 서버 게시판 잘 안 보는 사람들은 모르지... 멜로디가 자기 괴롭히는 사람들 ㅈㄴ 죽여 댔거든. 그 유저들 아마 게임 자체를 못 했을걸?

[일반] Cocomon: 지금이야 PVP 맵이 따로 있지만 1시즌 땐 필드 전체가 PK 가능했었음; 그래서 맘 잡고 쫓아다니면 그냥 필드 자체를 나가지 못했지. 결국 그 유저들 평판도 못 올리고 스펙업도 안 돼서 레이드도 못 가고 다른 길드로 옮기지도 못하고. 으... 생각만 해도 소름ㅋㅋ

[일반] 신기하게생겼네: ....? 그런 사람을 놀린 당신들은 그럼 뭐임?;;;

[일반] Cocomon: 이 정도 깝침은 봐줌 ^^;;

[일반] 렌지: 우린 괴롭힌 게 아니니까 ㅎㅎ 그래도 만 골은 좀 타격이 컸다 큽ㅠㅠ

[일반] 밀가루: 일반 대화창이랑 귓말이랑 따로 말하는 게 더 소름이었어. 일반 대화창만 보면 장난치는 걸로 보이는데 귓말은.... 후...

[일반] Cocomon: 후...

[일반] 렌지: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놀려... 난 후회 없다...

[일반] 밀가루: 그렇긴 해

[일반] Cocomon: ...ㅋ 마자

카젤은 들을 수 없는, 유저들만의 한탄이었다.

***

죄악의 탑 2인 실시간 랭킹 1위. 멜로디, 카젤.

오늘치 죄악의 탑을 끝내고 얻은 결과였다. 확장팩 초반이라 그런지 아직 달리는 이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유로웠다. 죄악의 탑 말고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은 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타워를 끝내고 나서는 너무 집중했던 탓인지 허기가 많이 느껴졌다. 대충 빵으로 때우려던 생각을 바꿔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서 밥다운 밥을 먹고 돌아왔다.

평소엔 음식에 관심이 없었는데, 몸은 영양소 부족을 느꼈는지 정말 알차게도 섭취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은 꽤 흘러 있었다.

“던전부터 갈까.”

10) 클리어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특정 패턴

11) 대미지가 약해지는 구간, 또는 딜을 넣을 수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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