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일반] 렌지: 양가에서 허락해 준 건가?
[일반] 밀가루: 허락 안 해 줬어도 왔을걸?
[일반] Cocomon: 사랑은 앙숙 길드도 초월하는 법이란다^^
[일반] 내일의집: ㅋㅋ킹정합니다
[일반] 렌지: 사랑ㅋㅋㅋ 크! 세기의 사랑을 하고 있었군
[일반] 밀가루: 그럼 둘이 악탑으로 도망 왔나 보네
[일반] 렌지: 여기서 몰래 결혼하려고 온 거 같음ㅋㅋ 옷도 검은색 흰색으로 딱 맞춰 왔엌ㅋㅋㅋ 축하합니다^^
[일반] Cocomon: 급하게 온 거면 주례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대들?
[일반] 밀가루: 코코님이 주례하고 내가 진행 ㄱㄱ
가만 놔뒀더니 유저들은 끝도 없이 저와 멜로디를 놀려 대고 있었다. 주하는 그들 사이로 파고 들어가 광역 침묵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유저들 머리 위로 ‘……’이 쓰여 있는 말풍선이 떠올랐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표시였다.
[일반] 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반] 밀가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반] 내일의집: ㅋㅋㅋㅋㅋ 광역 침묵 스킬을 이렇게 쓰기 있음? 닥1치라니 ㅠㅠㅠㅋㅋㅋㅋㅋ
유저들은 재미있는지 신나게 웃어 댔다. 주하는 더 상대하다간 귀찮아질 것 같아 죄악의 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반] 렌지: ㅇㅇ? 멜로디님 웬 거래?
그런데 가만히 있던 멜로디가 렌지에게 거래를 걸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멜로디가 말했다.
[일반] 멜로디: 축의금
[일반] 렌지: 엥?
[일반] 멜로디: 말로만 축하하지 말고 축의금^^
[일반] 렌지: 아닠ㅋㅋㅋㅋ 미1친ㅋㅋㅋㅋ
렌지는 멜로디의 행동에 한참 ㅋㅋㅋㅋ를 남발하며 웃어 댔다. 당황스럽기는 주하도 마찬가지였다. 축의금을 왜 받아? 하지 말라고 혼내도 모자랄 판에 같이 즐기다니. 뭔 짓이야, 대체.
주하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일반 대화창을 보며 혀를 찼다.
[일반] 멜로디: 금액이 너무 싼데? 0 두 개 더 올리자
[일반] 렌지: 앜ㅋㅋㅋ 개비싸잖아요!!
[일반] 멜로디: 이런 결혼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괜찮음
[일반] 렌지: 아니... 실제로 결혼하는 것도 아니면서ㅠㅠ
[일반] 멜로디: ^^
[일반] 렌지: ....정말? 진짜로 달라고요?
[일반] 멜로디: ㅇㅇ
[일반] 렌지: ㄹㅇ?
[일반] 멜로디: 길드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일반] 렌지: ;;;;;;;;ㅠㅠㅠㅠㅠㅠㅠㅠ
놀려 댄 대가로 결국 돈을 뜯긴 렌지는 눈물을 듬뿍 쏟아 냈다. 그 후로 다른 유저들도 똑같이 당했는지 대화창이 축축해졌다.
[일반] 밀가루: ㅠㅠㅠㅠㅠㅠ
[일반] Cocomon: ㅠㅠㅠㅠ
[일반] 내일의집: ㅠㅠㅠㅠㅠㅠㅠㅠ
[일반] 밀가루: 줄로디라고 해서 빡친 거 같음 ㅠㅠ
[일반] Cocomon: 로미멜이라고 할걸 ㅅㅂ ㅋㅋㅋㅋㅋ
투덜거리면서도 또 실실대는 유저들을 뒤로한 채 멜로디가 다가왔다. 주하는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 어깨를 들썩였다.
멜로디는 랭커 1위임과 동시에 공대장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제게 권위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자진신고 길드원들과 리프 길드원들이 서버 채팅창에서 싸울 때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었기에 과묵한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친하지 않은 제게 선뜻 말을 걸기도 했고, 은근히 놀리기도 했으며 웃기도 했다. 생동감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사람처럼 느꼈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신기해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뜬금없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멜로디 님이 거래를 요청합니다.>
[파티] 카젤: ? 웬 거래요?
[파티] 멜로디: 수금한 거 반씩 나눠야죠
“수금이라니.”
이번에야말로 현실 웃음이 터져 버렸다. 의외로 골 때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주하는 멜로디의 거래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올라온 골드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키보드 위에 엎어졌다.
멜로디가 건넨 건 200골드. 라나탈 유저에게 100단위 골드란 코 묻은 금액과 다를 바 없었다.
고작 1골드 올려놓은 렌지도, 싸다며 0 두 개 붙이라던 멜로디도, 눈물 줄줄 뽑아내던 다른 유저들도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주하는 터진 웃음을 수습하지 못한 채 한참 엎어져 있어야 했다.
***
[파티] 카젤: 시계 방향으로 ㄱㄱ
[파티] 멜로디: ㅇㅇ
죄악의 탑에 진입한 카젤과 멜로디는 어려움 없이 층을 오르고 있었다. 타워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클리어 목표가 있었는데, 가장 흔한 것은 몰려오는 몬스터를 잡는 것이었다.
이번 층은 몬스터 무리가 한 번에 우르르 나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늘어나는 방식이었다. 적당히 몰다가 정리하고, 또 적당히 몰다가 잡는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던 두 사람은 조금씩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무난하게 29층을 클리어한 그들 앞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파티] 멜로디: 왼쪽? 오른쪽?
[파티] 카젤: 오른쪽!
당당하게 오른쪽을 외치는 카젤에게 멜로디가 말했다.
[파티] 멜로디: 왼쪽 어때요? 오른쪽은 검은색 나올 것 같은데
[파티] 카젤: 오른쪽이요! 이번엔 정말 오른쪽 같아요
[파티] 멜로디: 다시 생각해 보는 건?
[파티] 카젤: ...오른쪽 하면 안 돼요?
[파티] 멜로디: ㅋㅋ
어쩔 수 없다는 듯 멜로디가 카젤이 선택한 오른쪽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연출이 나오고 게이트가 나타났다. 색을 확인한 주하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게이트는 검은색이었다. 이번에도 정석대로 다음 층을 깨야 하는 상황이었다.
[파티] 카젤: 그럼 다음엔 왼쪽;;
[파티] 멜로디: ......
[파티] 카젤: ......
29층까지 올라오면서 주하가 선택했던 문에선 모두 검은색 게이트가 나타났다. 반면 멜로디는 총 여섯 번을 선택해서 황금 게이트를 다섯 번이나 열었다.
황금 게이트가 등장할 확률이 높은 건지 아니면 멜로디가 운이 좋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더는 주하의 선택에 맡길 수 없었다.
[파티] 멜로디: 그냥 앞으로 선택하지 마셈
[파티] 카젤: ㅠㅠㅠ
[파티] 멜로디: 이젠 똥손임을 인정해야 할 텐데...?
차마 몇 번 더 믿어 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황금 게이트를 열어야 이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대체 나는 왜 황금 게이트와 척을 진 것일까. 주하는 제 운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파티] 카젤: ...네
[파티] 멜로디: ㅋㅋ 다음 층 가죠
씁쓸함을 뒤로한 채 멜로디와 함께 30층으로 들어서자 다음 목표가 떠올랐다.
<1분 동안 생존하기>
“생존이네.”
죄악의 탑에서 생존하기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몹들에게서 살아남는 것과 바닥에 깔리는 폭탄을 피해 뛰어다니는 것.
30층은 바닥에 깔린 폭탄을 피하는 유형이었다.
보석술사와 정령사는 기본적으로 이동 속도가 빨라서 다른 클래스에 비해 폭탄에서 살아남기는 쉬웠다.
주하는 중앙에 크게 생기는 폭탄을 보며 외곽으로 이동했다. 중앙 폭탄이 터지기 전, 12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작은 폭탄도 생성되기 시작했다. 움직일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뭔가 아까랑 다른 것 같은데……. 그렇게 화면을 보다가 전과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킬 바가 왜 활성화돼 있지?”
폭탄을 피하며 살아남는 상황에선 스킬과 물약 사용을 할 수 없도록 스킬 바 자체가 잠겨 버린다. 그런데 지금 그 스킬 바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며 타워 필드를 둘러보는데, 정중앙에서 몬스터가 떼로 생성되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무적기를 두른 상태로.
“폭탄도 피하고 몹도 피해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올라간 난도에 주하는 다급히 멜로디에게 다가갔다.
[파티] 카젤: 멜로디님 스킬 바 활성화됐죠?
[파티] 멜로디: ㅇㅇ
[파티] 카젤: 몹들 묶어 두면서 바닥 피해야 하나 본데
[파티] 멜로디: 12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폭탄 터지고 있으니까 따라가면서 피하죠. 제가 먼저 재우겠음
그렇게 말한 멜로디는 적당한 거리에서 광역 슬립 스킬을 사용했다. 카젤이 멜로디에게 달려오며 몹들을 예쁘게 모아 두었더니 두 마리를 빼곤 모두 머리 위에 Zzz가 떠올랐다. 멜로디와 카젤은 꾸벅꾸벅 잠을 자는 몹에게서 멀어지며 폭탄이 터진 곳으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난 몹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주하는 놓쳤던 두 마리의 몹을 뒤로 밀어냈다. 달려오는 몹들과 빠져나왔던 두 마리가 정확하게 모이자 그는 광역 기절 스킬을 시전했고, 시전이 끝나자마자 몹들은 눈앞에서 단체로 해롱댔다.
기절한 몹들을 뒤로하고 다시 폭탄이 터진 자리로 이동했다.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멜로디는 자신들과 기절해 있는 몹 사이에 얼음 장판을 깔았다. 기절에서 깨어난 몹들이 달려오다가 얼음 장판을 밟자 느릿느릿하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주하는 멜로디를 응시했다.
“타이밍 좋네.”
이전까지는 어려운 점이 없어서 대충 진행했지만, 역시나 난도가 올라가자마자 제 실력을 발휘했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몬스터 중 옆으로 삐져나온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하얀 서리가 이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었다.
또다시 폭탄이 터진 자리로 이동한 주하는 다음 스킬을 준비했다.
‘저렇게 예쁘게 모였으니까 이제 써도 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쓰기 좋은 스킬 하나를 떠올리며 스탠스를 변경했다. 얼음 장판이 끝나는 지점에 보석 하나를 설치하자 멜로디가 반응했다.
[파티] 멜로디: 저거 혹시 보텍스 문?
[파티] 카젤: 보문 아세요?
[파티] 멜로디: 보석술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스킬 중 하나로 아는데요. 마나도 많이 먹고 범위도 작고 대미지도 별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