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딜러 줍는 힐러-7화 (7/130)

7화

[파티] 멜로디: 퀘스트 완료했어요?

[파티] 카젤: 아, 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주하는 부랴부랴 아이델에게 말을 걸었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다음 퀘스트도 수락을 누르는데, 지켜보고 있던 멜로디가 말을 걸었다.

[파티] 멜로디: 혹시

[파티] 카젤: 네?

[파티] 멜로디: 문 더 클릭하고 싶어요?

“…….”

왠지 묻고 있는 문장 뒤로 투명한 ㅋㅋ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모니터 너머에서 실제로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파티] 카젤: 아뇨. 퀘스트 완료하러 나가죠

지금은 죄악의 탑을 오르는 것보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평판을 열어야 하는 게 더 중요했다. 황금 게이트가 뭐라고, 나중에 다시 타워 오를 때 확인하면 되는걸.

[파티] 카젤: 수고하셨어요

[파티] 멜로디: 흐음

[파티] 멜로디: 수고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멜로디에게 이상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잠깐 급발진하긴 했어도 딱히 진상짓을 한 것도 아니니 쿨하게 잊기로 했다.

‘또 만날 사람도 아닌데 뭐.’

오늘이야 우연히 퀘스트를 같이 하긴 했지만,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각자 길드원들이랑 다니기 바쁠 테니 접점이 생길 수가 없었다. 생겨서도 안 되고.

우리 길드와 리프 길드가 마주치는 순간 또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말이다. 서로 길드전 신청을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멜로디와 헤어진 주하는 다시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신경 쓸 일이 없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선.

***

<자유게시판>

제목: 이번 주 죄악의 탑 랭킹 ㅈ망했음;;; [베스트]

작성자: 스윙

아…… 미칠 것 같아ㅠㅠ

개발사에서 죄악의 탑에 관한 정보를 안 풀더니 이렇게 똥을 투척할 줄이야. 보통 타워 하면 1인 콘텐츠 아님???

아니 뭐 백번 양보해서 2인, 5인 콘텐츠로 나왔다고 쳐. 랭킹 들어간 것도 좋아. 보상도 완전 개혜자임. 이번 시즌 아이템 강화 재료인 아드룬이랑 골드랑 평판 점수 주더라.

1위: 아드룬 200개+10,000골드+각 평판 3,000점

2위: 아드룬 140개+5,000골드+각 평판 1,500점

3위: 아드룬 100개+3,000골드+각 평판 1,000점

4~30위(플래티넘): 아드룬 60개+1,000골드+각 평판 500점

31~100위(골드): 아드룬 40개+500골드+각 평판 200점

101~200위(실버): 아드룬 20개

201~400위(브론즈): 아드룬 10개

근데 왜 그 팀을 일주일 동안 못 바꾸게 했냐고!

하필 메인 퀘스트로 묶여서 아무나하고 막 들어가서 퀘스트만 완료한 사람들은 어쩜??

나 지금 개발컨ㅅㄲ랑 듀오 됐다고 ㅅㅂ;;;;; 이러다 브론즈에도 못 들어갈 것 같아 ㅠㅠㅠㅠㅠㅠ 어쩌지?

(댓글/펼치기)

―헐? 다음 리셋까지 듀오 못 품?

―작성자: ㅇㅇ 한번 듀오 맺으면 그 주는 끝임

―야 보니까 2인이랑 5인도 택1이드만

└엥? 2인 선택하면 5인 못 해?

└ㅇㅇ 못 해

―야ㅇㅅㄲㅇ 네가 더 발컨이라고! 네가 ㅈ된 게 아니라 내가 ㅈ됐어! 판매해도 좋으니까 듀오 해지 상품 좀 내줘라 제발;

└발컨 듀오 등장☆

└둘이 잘 어울린다^^ 천생연분이야

―근데 이러면 후발 주자들만 좋은 거 아냐? 선두로 달린 애들 ㄹㅇ 망한 거 같아ㅋㅋㅋ 대부분 지나가던 사람들 붙잡아서 들어간 거 같던데ㅋㅋ 조합도 개무시됐을 거고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진짜 킹받네

└하위권 랭커 어서 오고ㅋㅋㅋㅋㅋㅋ

└이번 주 타워 랭킹 혼파망 예상ㅋㅋ

―다음 주부터는 다시 랭커들이 휩쓸 테니까 이번 주라도 랭킹 꼭 먹어야 함;

└응 그래도 넌 안 돼

―작성자: 근데 그거 암? 우리도 망하긴 망했는데 멜로디랑 카젤이 더 망했음ㅋㅋㅋ

―멜로디랑 카젤? 걔네가 왜?

―작성자: 둘이 타워 듀오한 것 같더라고ㅋㅋ

―헐? 둘이 앙숙 아님?

―리프 길드랑 신고 길드가 서로 앙숙임ㅋㅋ

―선두에 사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했나?

└작성자: ㅇㅇ 그런 거 같아. 우리 도착했을 때 두 사람 다 타워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음ㅋㅋ 근데 나와서 보니까 안 보였어

―찐이다 찐이야 이 겜창ㅅㄲ들;;

―선택적 앙숙이냐고ㅋㅋㅋㅋ

―나 같으면 아무리 아쉬워도 같이 안 한다;

└넌 랭커도 아니고 선두도 아니면서 뭘 아는 척이야ㅋㅋ

└너 라나탈 안 하지?

└이런 ㅅㄲ가 많아야 내 순위가 올라가는데^^

―걔들이라고 이렇게 묶일 줄 알았겠냐? 퀘스트만 끝내고 넘어가려고 했을 텐데ㅋㅋ 어쨌든 여기 듀오보다 거기가 더 ㅈ된 건 맞는 거 같음

―근데 둘은 안 싸우지 않았어? 카젤은 성격 좋아 보이던데

―둘 사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길드가 문제임ㅋㅋ

―두 길드 무슨 일 있었어?

└말하기 귀찮으니까 <링크> 여기 가서 봐라

―그나마 랭커 둘이 붙었으니 같이 하기만 한다면 1위 쌉파서블 아님? 거기다 조합도 좋네? 딜러랑 힐러

―내가 멜로디나 카젤이었으면 절대 포기 못 한다

└나도22

└나도333

└나도4444

└당연한 소리 좀 하지 마ㅋㅋㅋ

***

확장팩 오픈 3일 차 아침.

닫혀 있던 눈꺼풀이 스르륵 열리며 멍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이틀을 꼬박 밤새워 달렸더니 아직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몇 번 눈을 깜박인 주하는 핸드폰을 찾아 집어 들었다.

“……몇 시야.”

시간을 보니 아침 11시였다. 30분 일찍 일어났네?

이번에 대학교 종강에 맞춰 확장팩이 열린 덕분에 시간에 상관없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개강 전까지는 이런 생활을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새 학기 수강 신청도 성공한다면 학기 중에도 게임을 즐길 수 있을 테고.

주하는 1, 2학년 때 학점을 열심히 채워 놓아서 조금은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3학년으로 앞으로 1년 반은 더 남았으니 알차게 놀기로 다짐한 상태였다.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늘어져 있던 주하는 잠들기 전을 떠올렸다. 계획했던 대로 던전과 평판, 그리고 일일 퀘스트를 모두 오픈할 수 있었다. 만약 죄악의 탑을 멜로디와 깨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을 업적이었다. 멜로디 또한 간신히 성공시켰으니 서로에게 윈윈이었다고나 할까?

“……다행이다.”

잠깐의 오류가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던 어제 하루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컴퓨터 전원을 켜고 게임에 접속했다. 일요일 낮, 1섭 서버는 역시나 대기열이 걸려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서버 증설을 같이해서 그런지 예상 대기 시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의자에 앉았다. 대기 시간이 아직 10분이 남아 있는 것을 본 그는 라나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자는 동안 올라온 신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뭐가 올라왔는지 볼까.”

주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시판은 정보 게시판이었다. 사건 사고 게시판이나 자유게시판은 워낙 글이 빨리 올라오기도 했고, 이래저래 말 많고 탈 많은 곳이라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인에 뜬 자유게시판 베스트 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시글은 이번에 신규 오픈한 죄악의 탑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댓글과 조회 수가 다른 글에 비해 폭발적이었다.

제목: 이번 주 죄악의 탑 랭킹 ㅈ망했음;;; [베스트]

“무슨 일이지?”

대수롭지 않게 마우스를 클릭하고 천천히 게시글을 읽어 내렸다.

“잠깐, 뭐라고?”

그런데 글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믿기지 않아 다시 꼼꼼히 읽어 봤지만,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눈을 비벼 봐도, 몇 번을 읽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처음 같이 들어간 듀오와 일주일 동안 계속 함께해야 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런 그를 놀리려는 건지 라나탈은 대기를 끝내고 캐릭터 선택 창으로 넘어갔다.

작게 숨을 쉬며 들썩이는 카젤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제 멜로디와 서로 마주쳤을 때의 그 미묘한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된 듯한 모습이었다. 주하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한참 동안 눈만 깜박거렸다.

‘이게 웬 날벼락…….’

피로감이 급격하게 몰려왔다. 늘어지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생각이 많아졌다.

“……보상이 뭐라고?”

다시 홈페이지로 돌아가 죄악의 탑 랭킹 보상을 확인했다.

아이템 강화 재료에 골드에 평판 점수까지 주다니. 혜택이 너무 큰데? 포기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길드원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멈칫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댓글에 저와 멜로디의 듀오를 확인한 사람들이 가득했으니 길드원들이 모를 수도 없을 테고.

“일단…… 상황이 어떤지 봐야 하나.”

주하는 보이지 않는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단 문제를 마주하기로 했다.

게임에 접속하자 로딩 게이지가 꽉 차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길드] 카젤: 안녕하세요

[길드] 베르메르: 아! 거기 아니라고! 왼쪽에서 나오잖아

[길드] 천상검: 잡았어 잡았어

[길드] 온별: 살금 넌 그만 좀 처맞아라

[길드] 살금: 이거 좀 맞았다고 징징대냐ㅋㅋ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길드원들은 정신이 없었다. 신규 던전 돌고 있는 건가? 상황을 보니 하루 늦긴 했어도 폐인력을 발휘해 오늘 평판까지 끝낼 작정인 듯했다.

그런데 아직 죄악의 탑 상황은 모르는 것 같지? 왠지 유예 기간을 받은 듯한 기분에 주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 벌꿀오소리: ㅇㅋ 마지막 던전 끝!

[길드] 벌꿀오소리: 카젤님 ㅎㅇ

[길드] 카젤: ㅎㅇ 다 끝냈어요?

[길드] 벌꿀오소리: 이제 평판 오픈만 남음 하... 졸려 죽겠다

[길드] 카젤: 평판만 열고 어서 자요

[길드] 벌꿀오소리: ㅇㅇ 그래야져

[길드] 벌꿀오소리: 아 그런데ㅋㅋ 카젤님

[길드] 카젤: ㅇㅇ?

[길드] 벌꿀오소리: 멜로디랑 죄악의 탑 듀오라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게시판 그걸로 난리던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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